<colbgcolor=#DCBDB8,#ddd><colcolor=#fff,#010101> 히다카 노리코 [ruby(日, ruby=ひ)][ruby(髙, ruby=だか)]のり[ruby(子, ruby=こ)][1] | Noriko Hidaka | |
본명 | 이토 노리코 ([ruby(伊, ruby=い)][ruby(東, ruby=とう)][ruby(範, ruby=のり)][ruby(子, ruby=こ)], Noriko Ito) |
출생 | 1962년 5월 31일 ([age(1962-05-31)]세) |
도쿄도 치요다구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성우, 라디오 DJ, 배우, 가수 |
신체 | 156cm|AB형 |
가족 | 부모님, 여동생 2명 배우자, 아들(1996년 2월생) |
소속사 | 81 프로듀스[2](1984~2006) 프리랜서(2006~2009.01.18) 콤비네이션[3](2009.01.19~현재) |
활동 시기 | 배우 | 1970년대 ~ 현재[4] 가수 | 1980년 ~ 현재[5] 성우 | 1984년 ~ 현재[6] |
별명 | 논코(ノン子) |
링크 | 공식 프로필 블로그 |
[clearfix]
1. 개요
일본의 성우.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중반 전성기를 누렸고 베테랑이 된 현재까지 활발히 일선에서 활동하는 성우. 맑고 또렷한 목소리로 터치의 아사쿠라 미나미, 이웃집 토토로의 언니 사츠키, 란마 1/2의 텐도 아카네 등 많은 국민 애니메이션의 여주인공을 연기했다. 소년 역에도 뛰어나서 유명한 애니메이션의 남주인공 역인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의 쟝과 피구왕 통키의 통키를 맡았다. 그리고 소녀 연기와 소년 연기를 적절히 조화시켜 연기하는 이누야샤의 키쿄우, 명탐정 코난의 세라 마스미역시 대표 캐릭터.
원래는 아역 배우, 아이돌 출신으로 피나는 노력으로 소년, 소녀, 성인, 중년 여성까지 소화할 정도로 넓고 뛰어난 연기력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까지 아역/아이돌에서 성우 전향한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로 꼽힌다.
2. 성우가 되기까지
80년대 아이돌 시절 |
당시 인기 음악방송 NHK 『렛츠 고 영』이라는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진[7]이 되고, 이런 저런 활동을 하면서 조금은 이름을 알렸지만 데뷔 동기인 마츠다 세이코, 타하라 토시히코에 비하면 한참은 모자란 무명 아이돌이었다. 아이돌 시절 갖가지 고초[8]를 겪었는데 라디오 생방송 도중 몰카 형식으로 스탭들이 조명을 끄고 전부 사라져서 혼자서 운 장면이 전국으로 퍼진 일이 몇번이나 발생했고, 공수도복을 입고 그라비아 화보를 찍기도 했다. 가장 유명한 사건은 로케로 온천에 갔는데 스텝들이 몰카로 곰을 풀어 곰에게 머리카락을 물린 사건[9][10]으로 "두 번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공언할 정도로 고난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1983년 당시 21세로 아이돌로서 전성기 나이가 지났지만 여전히 무명인 암담한 상황에서,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청취자에게 "목소리에 특색이 있으니까 성우로 전향하는 것은 어떨까요?"라는 사연이 온다. 이후 성우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1984년 《초시공기단 서던크로스》의 무지카 노바 역으로 성우 데뷔를 한다.
3. 성우 활동
데뷔 초에는 연예인 캐스팅다운 발연기로 엄청나게 욕을 먹었다고 한다. 1985년 데뷔 1년만에 아다치 미츠루의 전설적인 만화/애니메이션 《터치》의 여주인공 아사쿠라 미나미 역으로 캐스팅된다. 오디션에서 연기는 별로였지만 목소리가 워낙 좋았고 당시 스태프들 사이에서 완성된 성우들보다 신인들을 발탁해서 키워보자는 쪽으로 캐스팅 방향이 결정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11][12]신인을 키워보자는 생각으로 캐스팅 했지만 상상 이상으로 연기력이 나빠서 히다카가 연기를 하면 녹음을 멈추고 스튜디오 구석에서 음향감독과 선배 성우들이 심각한 얼굴로 한숨을 쉬며 회의했다고 한다.[13] 그걸 보는 히다카는 창피하고 자기가 한심해서 죽을 것 같았다고. 심지어 다른 모두가 돌아간 뒤에도 OK 사인을 받을 때까지 혼자 녹음을 했다고 한다. 2년간 《터치》에 출연하면서 정말 피나는 노력을 하여 연기력을 쌓아 최종화에서는 일취월장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처참했던 신인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선배가 돼서 반드시 후배에게 잘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고 한다.
국민 히로인 미나미를 연기하면서 성우로서 자리를 잡고 아이돌 활동을 완전히 그만두고 성우 활동에 집중한다.[14] 터치가 종영하고 곧이어서 1988년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에 쿠사카베 자매 중 언니 사츠키와 안노 히데아키의 OVA 《톱을 노려라!》에서 타카야 노리코를 연기하면서 대중들과 매니아들에게 모두 주목받는 당대 톱 성우가 된다. 《톱을 노려라!》는 이전까지 낭랑한 목소리의 소녀역할만 해온 히다카에게 목에 힘을 주고 소리를 지르는 최초의 배역이었다고 한다.
1989년 1월 세계명작극장 《피터팬의 모험》에서 생애 첫 소년역할 피터팬을 연기했는데 소년 목소리를 어떻게 내야하는지 전혀 감을 못잡아서 같이 출연한 마츠이 나오코와 시마모토 스미에게 매번 조언을 구하면서 연기했다고 한다.[15] 성우 양성소나 극단에서 체계적으로 배우고 성우가 된것이 아니라서 초창기에는 작품마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깨지면서 실력을 키웠다고. 자서전에선 남성 역은 극단에서 연기했던 게 전부라 성우로서의 발성법이 아닌 극단에서 연기하던 시절처럼 한 탓에 매번 힘을 다 쓰면서 녹음했기에 스태프에게 야위었다는 말도 들었는데, 히다카 본인도 '에헤헤, 소년역 다이어트예요~.'라고 자조적으로 대답했다고 . 이후 어느 정도 편하게 소년 발성을 낼 수 있게 된 건 나디아의 장부터 어깨 힘을 빼고 편하게 녹음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녹음했다고 한다.
같은 해 4월 《란마 1/2》의 히로인 텐도 아카네 역을 연기하며 높은 인기를 이어간다. 히다카 노리코는 《란마 1/2》를 의미있는 작품으로 꼽는데 항상 선배들에게 폐를 끼쳤던 자신이 선배가 돼서 후배들을 이끈 첫번째 작품[16]이고, 성우들끼리 사이가 매우 좋아 20년이 넘게 사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고, 연기한 캐릭터들 중 아카네가 자신과 가장 닮은 캐릭터이기 때문이라고. 아카네처럼 성격도 매우 활발하고 아버지가 가라데 사범이어서 어린시절 가라데를 배우고 여동생들이랑 싸우면서 놀았다고 한다.
유일하게 야마구치 캇페이를 미츠오라고 부른다. 이유는 같이 활동하던 때에는 아직 캇페이로 활동하기 전 이기 때문에, 스탭롤에도 야마구치 미츠오 라고 실렸다. 단, 리메이크 VOD에서는 캇페이. 그러나,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캇페이라고도 부르는 중 이다. [17]
이후 1990년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의 쟝과 1991년 《피구왕 통키》의 통키, 1994년 《빨간망토 차차》의 시이네/빙빙 등 소년 역할로도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다가 1992년 5월 라디오에서 만난 2살 연하 라디오 프로듀서와 결혼하였고 이후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서 활동을 줄인다. 그래도 여러 작품에서 주역이나 고정 레귤러를 맡으면서 활동했지만 1996년 2월 아들을 출산한 이후로는 대부분 조역이나 게스트로 일을 줄였다.
아들이 태어난 후 맡은 레귤러는 《록맨 에그제 시리즈》와 《이누야샤》의 키쿄우와 《데스노트》의 니아 등이 있다. 아들이 고등학생이 된 2011년 이후로는 활동이 늘어나서 《명탐정 코난》의 세라 마스미, 《PSYCHO-PASS》의 시빌라 시스템와 도미네이터, 《러브 라이브!》 코토리의 어머니 등 으로 출연하여 젊은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나이도 있어 어머니 역할이나 성인 여성 역할이 대부분이지만 가끔씩 맡는 소녀 역할에서 여전히 맑은 목소리를 들려준다.[18]
게임 「リングドリーム」의 PV. 배경음악이 Back drops의 데뷔곡 「Don`t fly」 |
2015년 12월 여자 프로레슬링 게임 링드림과 관련하여 마츠이 나오코, 야마자키 와카나와 함께 평균 연령 52세 3인조 아이돌 Back drops를 결성하였다.[19] 이전에도 DoCo나 바나나 프리터즈 등 성우 유닛활동은 했었지만 '아이돌' 성우 유닛은 최초. 12월 29일 이벤트를 통해 데뷔할 예정이고 CD발매도 계획중이라고 한다. 블로그에서 밝히길 9월 초 마츠이 나오코에게 제안을 받았고 아이돌로 데뷔한 자신에게 마지막 아이돌 활동이 되고,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승낙했다고 한다.
최근 2018년, 선배성우들인 후루카와 토시오와 히라노 후미의 레전드 성우 인터뷰에 초청되었다.[20]
4. 출연 작품
자세한 내용은 히다카 노리코/출연작 문서 참고하십시오.5. 여담
- 성격이 매우 밝아서 시마모토 카즈히코는 '화장실에 쓸데없이 달아놓은 100와트짜리 전구같은 성격'이라고 평하였다. 천사라고 불릴정도로 온화한 성품이라서 후배들이 쉽게 다가가는 선배이다. 이런 성격에 비해서 주로 기가 세거나 강단있는 캐릭터를 주로 맡았다.
- 란마 역의 야마구치 캇페이와 하야시바라 메구미가 히다카 노리코를 친누나/친언니처럼 생각하고 따른다. 연극배우 출신으로 첫 애니메이션 데뷔였던 야마구치를 하나하나 가르쳐줬고, 그 불같은 성격의 하야시바라를 다독여 주었다고 한다. 야마구치 캇페이는 자신의 딸 이름을 '아카네'라고 지었고, 하야시바라 메구미는 히다카가 감기로 당일에 라디오 생방송을 취소하자 저녁 녹음이 있었음에도 일을 마치고 심야 라디오 대타를 뛰어줄 정도. 출산 휴가동안 히다카 노리코의 라디오를 둘이서 번갈아가며 진행했고, 라디오 공개녹음 때면 단골 게스트로 등장한다.
- 결혼식 때 절친한 사쿠마 레이의 웨딩드레스를 물려받아 입었고, 그 드레스는 마찬가지로 절친한 하야시바라 메구미에게 물려줬다. 사쿠마 레이는 아이돌 겸 성우 후배로 비슷한 길을 걸으며 매우 친한 사이인데 아이돌 시절 처음 만났을 때 히다카가 아이돌용 영업 미소를 지으면서 인사해서 사쿠마는 히다카를 굉장히 냉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 반면 요코야마 치사와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커리어 내내 요코야마와 함께 출연한 작품이 거의 없을 정도이며 요코야마 치사는 일본 성우 업계에서도 굉장히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라 히다카 노리코같은 성격과는 서로 상극에 있을 만하다. 히야마 노부유키와도 같이 출연한 작품이 보기 드물 정도로 적지만 이쪽은 그래도 사이가 괜찮은 편이다.
- 안노 히데아키에게 프로포즈를 받았지만[21] "저는 이쪽 업계와 관련된 사람과 결혼할 생각이 없습니다"라며 거절했다. 하지만 라디오에서 일 관련으로 알게 된 2살 연하의 남자와 결혼했다. 그냥 안노가 싫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안노가 에반게리온으로 성공을 거둔 뒤, 노리코가 한 방송 프로그램의 리포터로 인터뷰하게 되는데 평소 잘 씻지도 않는 [22] 안노가 히다카 노리코가 온다고 하자 싹 씻고 머리 염색까지 하고 온갖 치장을 하고 나와서 화제가 됐었다. 꽤 진심으로 좋아했었던 것 같다. #
- 아이돌 시절부터 라디오를 진행했었고 토크력이 뛰어나고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줘서 DJ로서 평판이 높다. 분카방송 아나운서인 하세카와 후토시(長谷川 太)와 함께 『논코와 노비타의 아니메스크램블』(ノン子とのび太のアニメスクランブル, 약칭 아니스쿠)를 1991년 4월 14일부터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6년 4월 27일, 방송 26년차와 1306회를 돌파하며 역대 최장수 애니라지 프로그램이 되었다.
- 2003년 일본 아사히TV의 방송 「전국 일제 테스트」에서 '결정! 이것이 일본의 성우 베스트 100'에서 5위에 랭크되었다.# 상위를 차지한 성우들은 오오야마 노부요를 비롯하여 노자와 마사코, 카미야 아키라 등 정말로 전설적인 성우들. 동시대&후배 성우들 중에선 야마데라 코이치, 타카야마 미나미, 하야시바라 메구미, 이시다 아키라, 야마구치 캇페이, 야지마 아키코 등.
- 이누야샤의 애니메이션화가 결정됐을 때 히구라시 카고메역을 열렬히 하고 싶어 스스로 오디션에 참가했다고 잘못 알려져 있다. 소속사로 카고메 역을 오디션에 참가해달라는 요청이 와서 원작 만화를 읽었는데 지금의 자신이 15살 여중생을 연기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준비해서 오디션에 참가하긴 했는데 '아카네 같기도 하고, 카고메 같기도 한 목소리'가 나와서 키쿄우를 맡게 되었다. [23][24]
- 2014년 슈퍼전대 시리즈 신작인 열차전대 토큐저에서 그리타 양의 목소리를 맡으면서 배틀피버 J 이후 35년만에 슈퍼전대에 참여하였다. 35년 전에는 전대 멤버들의 연락원이었지만 여기서는 적 간부이며, 당시에는 배우로서 참가했지만 이번에는 성우로서 참가했다는 것이 차이점.
- 30대로 접어들면서는 끊겼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는 개인 음반 발매와 성우 유닛 등 음악 활동도 했었다. 1990년부터 1994년까지 <란마 1/2>의 여자 성우들과 DoCo라는 성우 유닛으로 활동했다. 1991년부터 1995년까지 야마데라 코이치, 세키 토시히코와 함께 성우 유닛 바나나 프리터즈를 결성하여 활동했다.
- 사쿠라 대전 시리즈 리즈시절때는 배역을 맡은 에리카 폰티느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게임 내의 가장 인상적이었던 마라카스를 들고 오하요우 댄스라는 괴상한 노래를 에리카가 오오가미 이치로에게 시전한 적이 있었는데 이걸 실제로 하기도 했다.
- 삼인조 클럽의 토크에서 명탐정 코난의 세라 마스미역을 하게 되어, 영광이라고 말했었다. 야마구치 캇페이를 발로 찬 것을 미안해했었고,[25] 실제로 녹음이 끝나고도 괜찮냐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 2018년 텔레비전 드라마 목소리 걸!에서 키쿠치 마리 역을 맡아 오랜만에 배우로 연기하게 되었다. 무려 30여년만이다!
- 성우인 이노우에 카즈히코와 엮이는 경우가 많다.
- 울티마 3의 패미컴판인 울티마 3:공포의 엑소더스 의 이미지송을 불렀으며 게임 중 NPC로도 등장한다. 참고로 이 게임은 NPC를 죽이는게 가능하다. 그리고 밖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보다 마을 NPC들을 죽이는게 초반에 더 돈을 벌기 쉽다. 그 이후는 상상에...
- 30대 시절에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을 소홀히하게 된 결과 살도 찌고 고음이 잘 안올라간다고 느껴져 보이스 트레이닝 선생님에게 상담을 했더니 근육트레이닝을 추천받아 시작했다고 한다. 나이를 먹으면 소리의 힘이 약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었지만, 소리의 노화를 최대한 막을 수 있다는 걸 알고, 희망이 생겼다고... 그 이후로 철저하게 입관리와 더불어 요가나 스트레칭 등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절대로 무리하게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 결과 본인 曰 지금이 30대 시절보다 소리의 힘이 더 좋아졌다고. 참고로 히다카 노리코는 톱을 노려라시절에 여자성우로서는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샤우팅연기로 호평받은 적이 있다. [26]
- 출세작인 터치의 아사쿠라 미나미 배역을 맡은 이력으로 인해 실제 프로야구의 장내아나운서를 맡기도 했다.2009년 오릭스 버팔로스 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의 교세라 돔 오사카 경기이다.
- 나이에 비해 목소리 자체는 여전히 맑고 노화가 느린 편이지만, 본인의 언급으로 10대 역할은 이제 좀 버겁다는 듯 하다. 야마데라 코이치는 "나는 요즘 유행하는 10대 미형 캐릭터 계열의 캐릭터는 자신이 없다. 목소리가 높은 편도 아니고..." 라는 말을 하자, 히다카는 "목소리는 어떻게든 높게 낼 수 있는데 마음이 안된다" 라고 언급을 했고, 야마데라도 역시 공감을 했는데 "자신들은 쇼와시대 사람(...)이라 쇼와 시절의 10대와 헤이세이, 레이와 시대의 10대는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따라가기 힘들다" 라고 한다. 실제로 베테랑 성우들 중에서는 나이를 먹어도 목소리 자체는 젊어보이게 내는 사람들도 꽤 있지만, 젊은 감성까지 따라가는 것은 정말로 힘들다. 한국에서도 나이에 비해 젊은 목소리를 유지중인 베테랑 성우들이 비슷한 논지의 말을 자주 하는 등, 국적을 가리지 않는 고충인 듯 하다.
- 카나이 미카와 마찬가지로 가끔 뮤지컬 관람하는 인증글을 올린다. 최근에는 2023년 6월 26일부터 일본 도쿄 제극에서 초연한 뮤지컬판 물랑루즈!를 관람했다고 트위터에 게시했다.#
6. 관련 문서
[1] 히다카의 髙는 높을(고) 高의 속자이다. 현재 잘 쓰이지 않는 한자고 PC 환경에 따라 글자가 깨질 수 있어서 (입력 자체는 IME에서 지원한다) 일본어 웹에서는 높을(고)자를 써서 日高로 표기한다.[2] 아이돌 시절부터 함께 한 매니저가 있는 연예 기획사에 있었으나 이 소속사가 폐업을 하면서 81 프로듀스로 이적한다.[3] 2006년 퇴사 후 잠시 프리로 활동하다가 2009년 1월 미츠야 유지와 함께 콤비네이션을 설립했다.[4] 첫 데뷔작은 《将来は女優志望》.[5] 싱글 「첫사랑 선샤인」.[6] 첫 데뷔작은 《초시공기단 서던크로스》.[7] 히다카는 1981년 4월부터 1982년 9월까지 레귤러였는데, 82년 10월 히다카의 후임으로 들어온 후배 아이돌이 나중에 성우가 되는 사쿠마 레이다!![8] 자서전에 따르면 아이돌로서의 일이 워낙 없는 탓에 주휴 6일이라는 믿기지 않는 스케줄이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성인식 후 어머니에게서 22살 이전에 눈에 띄는 활약을 하지 못한다면 연예계를 관두고 4년제 대학에 가라는 말을 듣고 자신감 없는 자기자신에게 강하게 마음을 먹게 만들고 닥치는 대로 일을 받기 시작했다고 언급된다. 아래의 곰에게 물린 사건도 유명하지만 나라에서 사슴 전병을 주다 사슴에게 걷어차인 적도 있다고 한다. 이같은 갖가지 고초는 히다카 본인이 예능계를 떠나고 싶지 않았기에 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던 셈이다.[9] 데뷔 40주년 기념으로 내놓은 신곡은 제목부터 시작해 '곰한테 물리는 것보단 낫지'라는 가사가 반복적으로 나올 정도. 본인도 지금 와서는 본인에게 일어난 유명한 일화 정도로 여기는 수준이 된 건지 마지막 파트에 '곰한테 물리는 건 그렇게 흔히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라고 자조적인 대사가 들어가있다.[10] 이전에는 팔을 물렸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각종 인터뷰나 40주년 기념 자서전에는 당시 포니테일의 끝을 아기곰에게 물렸다고 기술하고 있다.[11] 자서전에 기고된 매니저의 회고록에는 처음엔 제작진 측에서 '신인을 고용할 생각은 없다.'라고 했지만 히다카 본인이 매니저에게 미나미 역을 맡고 싶다고 했고, 음향 감독과도 잘 부탁해 메카독에서의 인연으로 어떻게든 오디션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치러진 테이프에 번호만 붙여놓은 비공개 오디션을 통해 뽑히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히다카의 번호는 8번이었다.[12] 그런 방침으로 남자주인공 우에스기 타츠야는 음향 스태프였던 미츠야 유지가 캐스팅 되었다.[13] 그 선배 성우이자 음향 스태프였던 미츠야 유지(작중에서는 소꿉친구 사이였던 우에스기 타츠야를 맡았었다)는 정말 눈물 쏙 뺄만큼 엄격하게 가르쳤다고 한다. 실제로 미츠야 유지는 성우 교육에 있어서는 호랑이 선생님 그 자체로 유명하다고.[14] 훗날 스쿨 아이돌의 엄마와 아이돌 기획사 사장님 캐릭터를 연기할 줄 누구 알았으랴...[15] 이 둘과는 나중에 명탐정 코난에서 함께 만난다. 마츠이 나오코는 스즈키 소노코, 시마모토 스미는 쿠도 유키코 역을 맡았다.[16] 당시 히다카 노리코의 나이와 경력은 후배를 이끌 정도는 아니었지만 란마 주역 성우진들 대부분이 신인이라서 히다카가 젊은 성우들을 보살피게 되었다. 80년대 중후반 소학관 계열의 작품들은 신인을 발굴해서 쓰는 정책이었고 여기서 스타가 된 성우들이 히다카 노리코, 하야시바라 메구미, 타카야마 미나미, 야마구치 캇페이, 사쿠마 레이, 이노우에 키쿠코 등이 있다.특히 하야시바라 메구미는 지금까지도 그녀를 히다카 노리코 언니라고 부르고 있다.[17] 토크에서 말하길 미츠오군도 출연하지 않았었나?라는 질문에, 야마자키 와카나는 미츠오? 누구야 그 사람? 이라 답했으며, 이에 노리코는 캇페이군 이라고 대답 했다.[18] 2018년 방영한 팝팀에픽 1화 B파트의 피피미 연기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19] 이 두 성우와는 명탐정 코난을 같이 하고 있는 멤버이기도 하다! 히다카는 세라 마스미, 마츠이는 스즈키 소노코, 야마자키는 모리 란을 맡고 있다.[20] 시끌별 녀석들의 주인공 커플인 모로보시 아타루와 라무의 성우들이다. 이 두 사람도 명탐정 코난에 참여하고 있다. 후루카와는 야마무라 미사오, 히라노는 와카사 루미를 연기하고 있다.[21] 이상한 바다의 나디아 시기. 여담으로 나디아와 비슷한 시기에 가이낙스에서 제작했던 불꽃의 전학생 OVA에도 히다카 노리코가 히로인을 맡았는데, 대사 중 "(선생이) 히다카 노리코와 결혼하라면 할 거나!!!"라는 대사가 있다. (원작에서는 마츠모토 이요) 다만 이 작품의 각본은 오카다 토시오가 썼기 때문에 안노의 프로포즈와 관계가 있는지는 불분명.[22] 안노는 방송에서 취재하러 온다고 해도 씻지 않고 취재에 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23] 공식 블로그의 2012년 10월 7일자 일기 내용 참조.[24] 본인은 역발의 유라를 맡을 줄 알았다고.[25] 더 리얼한 연기를 위해 주먹으로 살짝 때리는 정도였다고 한다.[26] 공교롭게도 그녀의 초창기 작품과 많이 겹치는 한국 성우 서혜정도 신인 당시 라디오 PD에게 목소리에 힘이 없다고 엄청 지적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 PD가 거의 괴롭히다시피(....) 서혜정 성우를 훈련시켰다고 한다. 당시에는 그 PD를 원망했지만 그 훈련 덕분에 지금은 여성 성우 중에서도 발성이 제일 좋은 성우로 손꼽히게 되었다고 회상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