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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0 23:54:08

흥선대원군/여담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4a122d, #6d1b43 20%, #6d1b43 80%, #4a122d)"{{{#!wiki style="margin:-10px"<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6d1b43><tablebgcolor=#6d1b43> 파일:기린 흉배.png흥선대원군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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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 섭정 배경 · 평가 · 여담 · 매체

1. 개요2. 여담

1. 개요

흥선대원군의 여담을 다룬 문서.

2. 여담

나는 천리를 끌어다 지척을 삼고, 태산을 깎아 평지로 만들고, 남대문을 3층으로 높이고자 하는데, 공들의 생각은 어떠시오?"
(吾欲引千里爲咫尺, 吾欲剗泰山爲平地, 吾欲高南大門三層 於諸公何如?)
"진실로 백성에게 해가 되는 거라면 비록 공자가 살아 돌아와도 용서할 수 없다."
파일:external/img.khan.co.kr/20090114.01100122000002.01M.jpg
<colbgcolor=#29176e> 흥선대원군이 그린 묵란(墨蘭)
휘호지면하시독(揮毫紙面何時禿)고 마묵연전필경무(磨墨硏田畢竟無)라
묻노라 저 사람아 이 글 뜻을 능히 알따[15]
기인(其人)이 완이이소(宛爾而笑)하고 유유이퇴(唯唯而退)하더라
종이에 붓을 휘두르니 언제야 모지라질까[16]? 먹을 벼루에 가니 마침내 없어지리라.
묻노라, 저 사람아, 이 글 뜻을 알겠느냐?
그자가 빙그레 웃고서 '예, 예' 하고 물러나더라.
파일:/image/032/2015/03/01/l_2015030101000080100005655_99_20150301213103.jpg
<colbgcolor=#29176e> 2015년 삼일절에 양상현 교수가 공개한 《그리피스 컬렉션》에 실린 흥선대원군 추정 사진
파일:attachment/흥선 대원군/man.jpg
<colbgcolor=#29176e> 흥선대원군으로 알려진 사진

[1] 책의 완성 자체는 갑신정변 이전에 되었다.[2] 실제 역사에서 이장렴은 고종 즉위 직후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강화유수, 진무사를 거쳐 형조판서와 금위대장(고종 6년)에 올랐고 종친직으로는 지종정령에 올랐으나 고종의 밤 행차 때 횃불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1872년(고종 9년) 파직되었다.[3] 그런데 이장렴도 전주 이씨, 그러니까 흥선대원군처럼 왕족이라는 점. 비록 흥선대원군보다'도' 왕위 계승권이 한참이나 멀고 먼 인물이지만.[4] 참고로 이 이야기는 원래 미국이나 유럽 쪽 유머이며, 이게 흥선대원군 일화로 와전되고 잘못 알려져서 여기 적혔다는 것은 일화의 일부가 근대도 아니고 대한민국 정부1948년 8월 15일, 정식으로 수립된 이후에 더해졌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5] 그런데 동일한 내용의 에피소드가 선조이항복의 관계에서도 발견된다.[6] 해당 지역은 당시만 그런 게 아니라 오늘날에도 '배천'이라고 읽는 게 맞다.[7] 땅바닥에 판을 그려놓고 돌, 풀잎, 나뭇가지 등을 말로 삼아 승패를 내는 놀이. 일반적으로는 작은 돌로 많이 하는 민속놀이다. 만약 노인이 고누놀이를 할 줄 알았다면 조선의 섭정 흥선대원군이 땅바닥에 쪼그려 앉아 작은 돌멩이나 움직이는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8] 이와 유사한 내용의 이야기가 또 있는데, 다만 흥선대원군은 집주인으로, 노인은 나그네로 바뀌어 있다. 고누놀이를 할 줄 아냐고 묻는 것까지는 동일하고, 이후 답답해진 집 주인이 "그럼 대체 할 줄 아는 게 뭐요?"라고 묻자 나그네가 "은 먹을 줄 압니다."라고 했다는 이야기.[9] 황문을 항문으로 잘못 들은 척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똥구멍'을 한자로 '황문'이라 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누런 것이 나오는 문'이라는 뜻.[10] 남사당패 대표쯤 된다[11] 망건에 달아서 당줄을 걸어넘기는 작은 고리. 사극 같은 데서 망건에서 관자놀이 부근을 보면 조그만 동그라미가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게 관자다. '관자놀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한 표현이다.[12] 2013년 황선홍이 지휘봉을 잡았던 포항 스틸러스는 모종의 사정으로 모기업 포스코의 지원이 줄어들면서 외국인 선수 없이 전원 국내 선수들만으로 시즌을 치러야 했고, 이 때문에 황선홍 감독에게 '황선대원군'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런데 그 시즌에서 포항은 K리그 30년 최초의 리그 + FA컵 더블을 달성하는 영광을 누렸다. 다만 황선홍 본인은 외국인 선수를 안 쓰고 싶어서 안 쓰는 게 아닌데 이런 별명이 붙는다는 사실에 대해서 상당히 불쾌해 했다.[13] 그렇다고 1차 세계대전은 낫냐면 당연히 아닌게 옆동네에 있는 일본 때문이다. 오히려 1차 세계대전에서는 보는 눈이라도 있으니 막나가지 못하지 보는 눈도 사라진 상황이면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활개칠건 뻔한 일이다.[14] 이 경우 가짜인 줄 알면서도 독립운동 자금을 대주기 위해 모른 척하며 사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사기당했는데 독립운동 자금 대주느라 그랬다고 정신승리를 하는 걸 수도 있고.[15] 중세 한국어의 2인칭 특수 의문어미(-ㄴ다, -ㄹ다)가 문어체에는 흥선대원군 시대까지 간혹 등장했다.[16] 끝이 닳거나 잘려서 없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