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10-16 00:18:56

후지오카 타카히로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width=320><tablebordercolor=#000000><tablebgcolor=#000000> 파일:치바 롯데 마린즈 로고.svg치바 롯데 마린즈
역대 1라운드 지명선수
}}} ||
{{{#!wiki style="margin: 0 -10px;"
{{{#000000,#e5e5e5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1px;"
1961년 1962년 1963년 1964년 1965년
드래프트 제도 미시행 오츠카 야스오
1966년 1967년 1968년 1969년 1970년
소노다 요시노리 무라타 쵸지 아리토 미치요 마에다 고스케 히에이 다다오미(5)
1971년 1972년 1973년 1974년 1975년
이노우에 케이이치 다테 야스지 사토 히로마사 박덕용(키쿠무라 토쿠요) 다나카 요시오
1976년 1977년 1978년 1979년 1980년
모리 시게카즈(5) 하카마다 히데토시 후쿠마 오사무(4) 다케모토 유키오(5) 아이코 다케시
1981년 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이베 야스지 이시카와 마사루(4) 히가 요시토모(4) 가사하라 에이이치 이시다 마사히코(4)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세키 기요카즈 이라부 히데키 마에다 유키나가(4) 코미야마 사토루(4) 고이케 히데오(5)
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요시다 아츠시 타케무라 준이치로 가토 다카야스(3) 사부로 사와이 료스케(4)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시미즈 마사우미(3) 와타나베 마사토 고바야시 마사히데(3) 다카하시 카오루(3) 다나카 료헤이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키타 타카시 니시오카 츠요시 우치 타츠야 쿠보 야스토모(3)
테지마 사토시(3)
야나기타 마사토시(1)
네모토 슌이치(2)(6)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오미네 유타(1)
코베 타쿠미(2)(6)
카라카와 유키(1)
핫토리 야스타카(2)(4)
키무라 유타 오기노 타카시 이시미네 쇼타(4)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후지오카 타카히로 마츠나가 타카히로(4) 이시카와 아유무 나카무라 쇼고 히라사와 타이가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사사키 치하야(4) 야스다 히사노리(4) 후지와라 쿄타 사사키 로키 스즈키 쇼타(4)
2021년 2022년 2023년 2024년 2025년
마츠카와 코 키쿠치 리쿠(4) 우에다 큐토(4) 니시카와 미쇼
(1) 고교생 드래프트
(2) 대학생, 사회인 드래프트
(3) 역지명, 희망 입단 범위
(4) 하즈레 1라운더
(5) 지명 후 미입단
(6) 1순위가 아니지만 그 해 첫 번째로 지명된 선수
}}}}}}}}}}}} ||
파일:후지오카타카히로2.jpg
후지오카 타카히로
藤岡貴裕 / Takahiro Fujioka
생년월일 1989년 7월 17일 ([age(1989-07-17)]세)
출신지 군마현 시부카와시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학력 키류대학제1고교 - 토요대학[1]
프로입단 2011년 NPB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2]
소속팀 치바 롯데 마린즈 (2012~2018)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018~2019)
요미우리 자이언츠 (2019~2020)
등장곡 Artists Stand Up To Cancer - Just Stand Up!


1. 개요2. 선수 경력3. 은퇴 이후4. 플레이 스타일5. 여담

[clearfix]

1. 개요

일본의 전직 야구선수.

2. 선수 경력

초등학교 2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고 고등학교 때 투타겸업을 시작. 코시엔에 두 번 출전하였으나 2학년 때는 백업 외야수로 나와 교체멤버로 출전하였고, 3학년 때도 주전 외야수로 나오다가 선발투수가 강판되자 불펜으로 등판한 것이 전부. 그나마도 1~2라운드 탈락이라 경험에 그쳤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토요대학 경영학부로 진학. 1학년 때부터 39이닝 무실점[3]을 기록하면서 대학리그를 정복하더니 4년간 토토 대학 리그[4]에서 2번의 MVP를, 전일본대학야구선수권에서 2번의 MVP를 기록하면서 대졸 투수 탑 3으로 꼽혔다.[5] 대학교 통산 49경기 303.1이닝을 던져 27승 9패에 323K를 기록했으며 ERA는 1.31이었다.

이후 대학교 4학년 때 롯데, 라쿠텐, 요코하마의 3구단 중복지명을 받고 추첨에서 승리한 롯데에 입단했다.

2.1.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데뷔 1년차인 2012년, 바로 개막 엔트리에 들고[6] 데뷔전에서 7.2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면서 선발승을 거둔다. 이렇게 승승장구하고 첫 1개월만에 3승을 올리면서 대형신인이 탄생하는 듯했으나, 점차 페이스가 떨어지면서 2군에도 갔다오고, 결국 21경기 115.1이닝 6승 7패 83K ERA 3.36이란 어중간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친다.[7]

2년차인 2013년에는 소포모어 징크스로 인해 초반에만 선발로 좀 나오다가 부진하여 중간에는 롱 릴리프로 전향, 118.1이닝을 던지면서 6승 10패 3홀드에 ERA 3.95를 기록하며 성적이 떨어졌다. 또한 2014년에는 개막전부터 선발진에 들어 132.2이닝을 던지면서 꾸준히 선발로 나왔으나 ERA 4.48로 최악의 성적을 냈고, 2015년에는 스팟선발로 잠깐 나오다가 3이닝 8실점을 하고 강판되는 바람에 이토 츠토무 감독으로부터 "프로야구 투수도 아니다"라고 엄청나게 욕을 먹고 2군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결국 이 사건 이후 선발은 포기하고[8] 불펜으로 전향한다. 주로 추격조로 등판하여 2015년과 2016년 각각 31경기, 32경기에서 2~3점대 ERA에 6홀드를 기록하면서 그럭저럭 살아남나 싶었으나 2017년에는 추격조도 못하면서 ERA 16점대로 멸망. 결국 2018년엔 2군에만 있다가 시즌 중 오카 히로미와 트레이드되어 닛폰햄으로 건너간다.

2.2.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시절

닛폰햄에서도 중용되지는 못하며 2018년에는 4경기에서 0승 2패 ERA 6.52, 2019년에는 2경기에서 ERA 15.00으로 부진하고 결국 2019년 시즌 중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된다. 참고로 이 트레이드는 레이와 첫 트레이드였다.

2.3.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2019년에는 2군에만 있었고, 2020년에는 나름 중용되면서 시즌 초에 패전처리 위주로 꽤 등판하여 12경기 8.2이닝 ERA 3.12를 기록하였으나, ERA는 낮을 지 몰라도 세부 성적이 안 좋았기 때문에 2군행. 결국 2군에서 헤드샷 퇴장 하나만 남기고 그 시즌을 끝으로 전력외통고를 받았다.

이후 12구단 합동 트라이아웃에 나갔으나 어디서도 오퍼를 받지 못하고 요미우리의 구단 직원 제의를 받아들이며 은퇴했다.

3. 은퇴 이후

요미우리 산하 아카데미 코치로 2021년부터 일하고 있다.

4. 플레이 스타일

포심 패스트볼 최고구속은 153km/h라지만 이건 일본 학원야구에 널려있는 구속 뻥튀기. 실제로는 평균구속은 140km/h정도에 최고구속은 150km/h까지 나왔다. 그 외에 변화구로는 종슬라이더, 횡슬라이더, 커브, 포크를 던질 수 있으나 주로 직선과 슬라이더 위주의 피칭을 보여준다. 결정구는 슬라이더.

프로에 가기 전에는 제구력 투수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프로에서는 볼넷이 꽤 많이 나오면서 그렇게 제구력이 좋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또한 구위가 그다지 좋지 않았는지 2014년에는 피홈런왕도 기록했다. 이 외에 야수 출신이라 그런지 수비능력이 좋았고, 퀵모션에 능숙했다고 한다. 즉 전형적인 좌완 피네스 피쳐.

5. 여담


[1] 경영학부.[2] 3구단 중복지명.[3] 정확히는 1학년 추계~2학년 춘계리그까지 이어진 기록.[4] 동도대학리그로도 불리는 대학야구 리그로 도쿄 6대학리그와 함께 일본 대학리그 중 가장 수준이 높은 대학리그. 이 리그에서 에이스 선발/4번 타자를 하면 프로에서는 1년차부터 즉전감으로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5] 다른 둘은 각각 토카이대학 스가노 토모유키, 메이지대학 노무라 유스케. 사실 후지오카가 이 셋 중에선 제일 안 풀렸다.[6] 참고로 이 해 드래프트 지명자 중 스즈키 다이치 혼자 유일하게 개막을 2군에서 맞이했다.(어떻게 이게 가능했냐면 이 해 롯데는 육성선수를 뽑지 않았고, 정규 드래프트에서도 즉전감 구한다고 대졸만 뽑았기 때문.)[7] KBO에서 1년차가 저 성적이면 신인왕이 유력하지만, 2012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 전체 평균 ERA가 3.00 즈음이었다. 즉 현재 KBO 수준으로는 4점대 후반~5점대 초반 ERA 느낌인 셈.[8] 저 사건 이후 커리어 내내 선발등판은 닛폰햄에서의 1경기가 전부.[9] 마스다가 전체 213표 중 116표를 가져갔으며 80표는 호크스의 타케다 쇼타가 받았다. 이외에 카마타 요시나오와 미마 마나부 등도 표를 받았지만 한 자릿 수였다.[10] 오기노는 부상으로 커리어를 날려먹어서 그렇지 부상이 없었으면 후쿠모토 유타카 수준으로 도루를 할 수 있다고 평가받았고, 이시미네는 1년 반짝이지만 데뷔 첫 해에 시즌 30도루를 기록했다. 참고로 그 오기노도 시즌 30도루는 못 해봤다.[11] 타카하시 슈헤이도 3구단 중복지명이라 사실 공동 1위다. 그리고 타카하시는 주니치로 갔다.[12] 정규시즌 말고 시범경기다. 이날 상대는 사와무라 히로카즈라 상당히 주목받았다.[13] 물론 정규시즌이 아니라 시범경기다.[14] 이 해 드래프트 동기는 고작 4명인데, 전원이 대졸 동갑내기였다. 거기다가 후지오카랑 스즈키는 대학 동기라서 사이가 나쁠래야 나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