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320><tablebordercolor=#000000><tablebgcolor=#000000> | 치바 롯데 마린즈 역대 1라운드 지명선수 |
후지오카 타카히로 藤岡貴裕 / Takahiro Fujioka | |
생년월일 | 1989년 7월 17일 ([age(1989-07-17)]세) |
출신지 | 군마현 시부카와시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좌투좌타 |
학력 | 키류대학제1고교 - 토요대학[1] |
프로입단 | 2011년 NPB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2] |
소속팀 | 치바 롯데 마린즈 (2012~2018)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018~2019) 요미우리 자이언츠 (2019~2020) |
등장곡 | Artists Stand Up To Cancer - Just Stand U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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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전직 야구선수.2. 선수 경력
초등학교 2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고 고등학교 때 투타겸업을 시작. 코시엔에 두 번 출전하였으나 2학년 때는 백업 외야수로 나와 교체멤버로 출전하였고, 3학년 때도 주전 외야수로 나오다가 선발투수가 강판되자 불펜으로 등판한 것이 전부. 그나마도 1~2라운드 탈락이라 경험에 그쳤다.고등학교 졸업 이후 토요대학 경영학부로 진학. 1학년 때부터 39이닝 무실점[3]을 기록하면서 대학리그를 정복하더니 4년간 토토 대학 리그[4]에서 2번의 MVP를, 전일본대학야구선수권에서 2번의 MVP를 기록하면서 대졸 투수 탑 3으로 꼽혔다.[5] 대학교 통산 49경기 303.1이닝을 던져 27승 9패에 323K를 기록했으며 ERA는 1.31이었다.
이후 대학교 4학년 때 롯데, 라쿠텐, 요코하마의 3구단 중복지명을 받고 추첨에서 승리한 롯데에 입단했다.
2.1.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데뷔 1년차인 2012년, 바로 개막 엔트리에 들고[6] 데뷔전에서 7.2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면서 선발승을 거둔다. 이렇게 승승장구하고 첫 1개월만에 3승을 올리면서 대형신인이 탄생하는 듯했으나, 점차 페이스가 떨어지면서 2군에도 갔다오고, 결국 21경기 115.1이닝 6승 7패 83K ERA 3.36이란 어중간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친다.[7]2년차인 2013년에는 소포모어 징크스로 인해 초반에만 선발로 좀 나오다가 부진하여 중간에는 롱 릴리프로 전향, 118.1이닝을 던지면서 6승 10패 3홀드에 ERA 3.95를 기록하며 성적이 떨어졌다. 또한 2014년에는 개막전부터 선발진에 들어 132.2이닝을 던지면서 꾸준히 선발로 나왔으나 ERA 4.48로 최악의 성적을 냈고, 2015년에는 스팟선발로 잠깐 나오다가 3이닝 8실점을 하고 강판되는 바람에 이토 츠토무 감독으로부터 "프로야구 투수도 아니다"라고 엄청나게 욕을 먹고 2군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결국 이 사건 이후 선발은 포기하고[8] 불펜으로 전향한다. 주로 추격조로 등판하여 2015년과 2016년 각각 31경기, 32경기에서 2~3점대 ERA에 6홀드를 기록하면서 그럭저럭 살아남나 싶었으나 2017년에는 추격조도 못하면서 ERA 16점대로 멸망. 결국 2018년엔 2군에만 있다가 시즌 중 오카 히로미와 트레이드되어 닛폰햄으로 건너간다.
2.2.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시절
닛폰햄에서도 중용되지는 못하며 2018년에는 4경기에서 0승 2패 ERA 6.52, 2019년에는 2경기에서 ERA 15.00으로 부진하고 결국 2019년 시즌 중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된다. 참고로 이 트레이드는 레이와 첫 트레이드였다.2.3.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2019년에는 2군에만 있었고, 2020년에는 나름 중용되면서 시즌 초에 패전처리 위주로 꽤 등판하여 12경기 8.2이닝 ERA 3.12를 기록하였으나, ERA는 낮을 지 몰라도 세부 성적이 안 좋았기 때문에 2군행. 결국 2군에서 헤드샷 퇴장 하나만 남기고 그 시즌을 끝으로 전력외통고를 받았다.이후 12구단 합동 트라이아웃에 나갔으나 어디서도 오퍼를 받지 못하고 요미우리의 구단 직원 제의를 받아들이며 은퇴했다.
3. 은퇴 이후
요미우리 산하 아카데미 코치로 2021년부터 일하고 있다.4. 플레이 스타일
포심 패스트볼 최고구속은 153km/h라지만 이건 일본 학원야구에 널려있는 구속 뻥튀기. 실제로는 평균구속은 140km/h정도에 최고구속은 150km/h까지 나왔다. 그 외에 변화구로는 종슬라이더, 횡슬라이더, 커브, 포크를 던질 수 있으나 주로 직선과 슬라이더 위주의 피칭을 보여준다. 결정구는 슬라이더.프로에 가기 전에는 제구력 투수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프로에서는 볼넷이 꽤 많이 나오면서 그렇게 제구력이 좋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또한 구위가 그다지 좋지 않았는지 2014년에는 피홈런왕도 기록했다. 이 외에 야수 출신이라 그런지 수비능력이 좋았고, 퀵모션에 능숙했다고 한다. 즉 전형적인 좌완 피네스 피쳐.
5. 여담
- 입단 첫 해 목표는 신인왕이었다. 다만 신인왕 후보에도 못 들고 오히려 드래프트 동기이자 최하위픽이었던 마스다 나오야가 신인왕을 가져갔다.[9]
- 팀에서 얼마나 기대가 컸냐면 신인 기숙사에 입주할 때도 오기노 타카시 - 이시미네 쇼타가 썼던 방을 배정했다고 한다. 팀에서 이 방을 1라운더/1년차부터 주전 먹은 선수에게 배정하는 방이라 출세방으로 불렀다고.[10]
- 그런데 기숙사에 들어갈 때는 짐을 매우 간소하게 챙겨와서 이유를 물어보니 빨리 활약해서 일찍 신인 기숙사를 나가고 싶다고 답했다. 또한 데뷔 첫 해 스캠에는 캠프용으로 구입한 다키마쿠라를 까먹고 안 들고 오고, 노무라 유스케, 스가노 토모유키와 함께 찍은 사진이 자신이 가장 아끼는 사진이라고 해놓고 기숙사에는 이 사진을 까먹고 들고 오지 않는 등 덜렁대는 마이페이스 성향이 있다.
- 항상 뭔 일이 일어나면 다른 일이 터져서 묻히곤 하는 일화가 종종 있었다. 예를 들어 드래프트는 3구단 중복지명으로 2011년 드래프트 최다 구단 중복지명[11]임에도 불구하고,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스가노 토모유키 강행지명 사태가 터지면서 그대로 묻혔다. 또한 정식 계약을 하는 날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단장이 구단 회장을 고발하는 바람에 묻혔고, 신인 기숙사 입사날에는 입단 동기 나카우시로 유헤이, 마스다 나오야가 전철을 잘못 타서 50분이나 지각을 하는 바람에 취재진들의 신경이 다 그쪽으로 쏠려서 1라운더임에도 불구하고 묻혔다. 또한 처음으로 불펜에서 투구를 한 날에는 다르빗슈 유가 메이저리그 팀과 계약을 하면서 묻혔고, 데뷔전은 우천취소당했으며[12], 홈 데뷔전[13] 날에는 마에다 아츠코가 AKB48 졸업을 하는 바람에 묻혔다. 본인도 이걸 알고 있어서 자기 입으로 말하기도. 그리고 프로에서는 신통치 못한 성적을 내면서 트레이드를 두 번이나 당하고도 묻혔다.
- 경기 중 성격과 일상생활에서의 성격이 달라서 주변에서는 이중인격 소리도 한다는데, 본인은 자각하지 못한다고 한다.
- 동기 나카우시로 유헤이, 마스다 나오야, 스즈키 다이치와 절친이라고 한다.[14]
- 1년차부터 구단 버스가 아닌 자차 출퇴근을 허락받았다고 한다. 일본프로야구는 보통 1년차는 대졸이나 대졸사회인도 구장에서 버스를 타고 신인 기숙사까지 가게 하는데 후지오카는 자동차를 타는 특혜를 준 것.
- 2013년 결혼했다. 부인은 6살 연상으로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만났다고 한다.
- 3구단 중복지명이지만 아마추어 시절 명성만큼 성공하지 못했는데, 롯데가 그래도 완전히 망한 것은 아닌게 후지오카를 지명했다가 물 먹은 요코하마와 라쿠텐의 1라운더는 후지오카보다 더 망했다. 라쿠텐이 하즈레로 지명한 무토 요시타카는 딱 1년 제대로 뛰었는데 그 1년도 추격조로 ERA 4점대 중반을 기록한 거라 팀에서 잘 써먹었다 싶은 해는 없다. 요코하마에서 지명한 키타가타 유죠는 1군 기록 없이 방출당하더니 독립리그에서도 6점대 찍는다.
- 치바 롯데 마린즈 드래프트 지명 당시 모 사이트의 지명선수 일람에 올라온 프로필에서 사이트 관리자의 불찰로 수비 위치가 군마현으로 잘못 기재된 바람에 한동안 일본 인터넷상에서 '위협적인 수비범위', '군마의 수호자'등으로 불리며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1] 경영학부.[2] 3구단 중복지명.[3] 정확히는 1학년 추계~2학년 춘계리그까지 이어진 기록.[4] 동도대학리그로도 불리는 대학야구 리그로 도쿄 6대학리그와 함께 일본 대학리그 중 가장 수준이 높은 대학리그. 이 리그에서 에이스 선발/4번 타자를 하면 프로에서는 1년차부터 즉전감으로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5] 다른 둘은 각각 토카이대학 스가노 토모유키, 메이지대학 노무라 유스케. 사실 후지오카가 이 셋 중에선 제일 안 풀렸다.[6] 참고로 이 해 드래프트 지명자 중 스즈키 다이치 혼자 유일하게 개막을 2군에서 맞이했다.(어떻게 이게 가능했냐면 이 해 롯데는 육성선수를 뽑지 않았고, 정규 드래프트에서도 즉전감 구한다고 대졸만 뽑았기 때문.)[7] KBO에서 1년차가 저 성적이면 신인왕이 유력하지만, 2012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 전체 평균 ERA가 3.00 즈음이었다. 즉 현재 KBO 수준으로는 4점대 후반~5점대 초반 ERA 느낌인 셈.[8] 저 사건 이후 커리어 내내 선발등판은 닛폰햄에서의 1경기가 전부.[9] 마스다가 전체 213표 중 116표를 가져갔으며 80표는 호크스의 타케다 쇼타가 받았다. 이외에 카마타 요시나오와 미마 마나부 등도 표를 받았지만 한 자릿 수였다.[10] 오기노는 부상으로 커리어를 날려먹어서 그렇지 부상이 없었으면 후쿠모토 유타카 수준으로 도루를 할 수 있다고 평가받았고, 이시미네는 1년 반짝이지만 데뷔 첫 해에 시즌 30도루를 기록했다. 참고로 그 오기노도 시즌 30도루는 못 해봤다.[11] 타카하시 슈헤이도 3구단 중복지명이라 사실 공동 1위다. 그리고 타카하시는 주니치로 갔다.[12] 정규시즌 말고 시범경기다. 이날 상대는 사와무라 히로카즈라 상당히 주목받았다.[13] 물론 정규시즌이 아니라 시범경기다.[14] 이 해 드래프트 동기는 고작 4명인데, 전원이 대졸 동갑내기였다. 거기다가 후지오카랑 스즈키는 대학 동기라서 사이가 나쁠래야 나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