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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스토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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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스토어즈
Homeplus Co., Ltd.
파일:홈플러스 로고.svg
기업명 정식: 홈플러스스토어즈 주식회사
영어: Homeplus Stores Co., Ltd.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업종명 종합 소매업[1]
설립일 1994년 3월 8일
해산일 2019년 10월 30일
주소 대전광역시 서구 둔산중로 1 (탄방동 592)[2]
법인형태 피합병법인
기업 규모 중견기업[3]
상장 여부 비상장기업
후신 홈플러스

1. 개요2. 역사
2.1. 한국까르푸 (1994-2006)
2.1.1. 한국콘티낭 인수2.1.2. 국내 시장 철수
2.2. 홈에버 (2006-2008)
2.2.1. 마케팅 및 영업 당시
2.3. 홈플러스테스코/홈플러스스토어즈 (2008-2019)
3. 로고4. 역대 임원5. 지점6. TV 광고
6.1. 까르푸6.2. 홈에버
7. 여담

[clearfix]

1. 개요

홈플러스의 자회사로, 프랑스계 유통회사인 한국까르푸와 이랜드그룹계 유통 브랜드인 홈에버의 법인이었다.

2. 역사

2.1. 한국까르푸 (1994-2006)

파일:까르푸 중동점 전경.jpg
한국까르푸 1호점인 중동점의 모습.[4]
Happy Price, Carrefour
후레쉬 대한민국, 까르푸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웹 아카이브)[5]

1994년 현지법인 '한국까르푸' 설립 후 1996년 7월 29일 부천시 중동신도시에 국내 진출 1호점인 중동점을 개장한 이후 신도시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장되었다. 서울 중계동에 있는 홈플러스 중계점이 사실은 까르푸 건물이 아니라 콘티낭(Continent) 한국점포 부지였는데, 건물 완공 몇 달전 프랑스 본사에서 콘티낭과 까르푸가 합병하면서 현지법인인 한국콘티낭이 까르푸에 사업을 넘겨주었고, 2000년에 법인까지 합병했다. 원래 까르푸가 중계동에 지으려고 갖고 있던 땅은 건영옴니백화점 앞의 대규모 공터였는데 현재는 브라운스톤 오피스텔이 들어서있다. 본사는 2003년경부터 서초 강남교보빌딩이었다가 2005년 서울 시흥점으로 이전했다.[6]

서울 면목점과 부산 해운대점 등 5개 점포는 1997년부터 (주)대우 무역부문 유통사업팀이 하이퍼마켓을 차릴 부지였는데, 외환위기 이후 대우그룹 구조조정으로 1999년에 까르푸가 인수한 것이다.

당시 대한민국에 할인점이라는 개념이 막 생겨날 때 등장하였다. 월마트코스트코[7]와 달리 점포도 많았고, 더군더나 신도시를 중심으로 많은 점포가 등장했다. 할인점의 개념자체가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할인점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하였던 시기였고, 경쟁사로는 4개의 점포[8]를 운영하고 있었던 이마트 정도였다.[9] 까르푸는 할인점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았던 한국 시장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여 직접 투자로는 국내진출 외국기업으로는 사상 최고액인 1조 2천억 원을 한국 땅에 쏟아 부으며 매장을 확대시켜 나아갔다. 국내 수익금과 본사 자금을 지속적으로 한국에 재투자하여 2001년에는 '최고 외국인 투자기업상'을 받을 정도였다. 2000년 말까지 19개 매장을 열어 1위인 이마트와 선두자리를 다투었으며 한국 진출 10년 만에 매장 32곳에 직원 수 7,000여명을 거느리는 대형 유통업체로 성장했다.

계산원을 파견용역형태로 돌렸던 회사이다. 원래 모국인 프랑스에선 이게 금지되어 있지만, 여기선 그래도 되니까. 1997년부터 파견근무형태로 계산원을 부려먹기 시작한다. 홈에버로 바뀌면서,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이 바로 여기부터였다.

파일:external/file.cbs.co.kr/k_041228_00006.jpg
까르푸가 한국에서 영업하던 시절의 점포 중 3곳. 위치는 사진에 나와있는대로다. 현재는 모두 홈플러스로 바뀐 상태이고 점포명도 그대로 동일하다.

재밌게도 안산에는 홈플러스가 3개나 있었다. 2000년에 생긴 홈플러스 안산점,[10] 2005년 생긴 홈플러스 안산선부점, 그리고 까르푸를 먹고 생긴 홈플러스 안산고잔점. 안산고잔점 전신인 까르푸 안산점은 유동인구가 그리 많지 않아 사람이 별로 없었다. 물론 나중에 들어온 홈플러스 역시 사람이 적었다. 특히 2015년 메르스 사태땐 유통기한 있는 음식들 거의 모두가 땡처리가 붙어있었을 정도. 한 층에 10명 남짓할 정도로 사람이 적었다. 결국 동네 자체가 그다지 잘 될 동네는 아니었던 것... PB 상품의 바코드는 8808573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고잔신도시 개발이 완료 되지 않고, 이마트 안산고잔점으로 사람이 몰린 것을 감안해야 한다.

2.1.1. 한국콘티낭 인수

파일:콘티낭 로고.svg

1996년 9월 4일 설립되었으며 본사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원서동 171 원서빌딩 5층에 위치해있었다.

당시 한국콘티낭 지점은 사상점 한곳만 있었으나 2호점인 중계점을 짓고 있을 때인 2000년에 콘티낭 프랑스 본사가 까르푸 프랑스 본사에 합병되자 한국지사인 한국콘티낭도 똑같이 한국까르푸에 인수 합병되면서 중계점 개점은 까르푸로 개점하게 되었다. 그 뒤인 3호점인 목동점은 단순히 설계도와 부지만 갖고있었을 뿐인지라 목동점의 착공은 까르푸로 착공하게 되었으며 아예 설계를 까르푸 매장 형태로 바꾸지 않고 콘티낭측이 설계했던 그대로 지었다.

2.1.2. 국내 시장 철수

우리나라에선 2006년 9월 27일에 한국까르푸 법인을 이랜드그룹으로 팔며 철수했는데[11], 그 이유는 아래와 같았다.

당시는 IMF 구제금융 시기였는데, 임원들이 앞장서서 외화를 밀반출했다는 혐의 덕분에 불매 운동에 제대로 불이 붙어버렸었다.# 거기다가 추석 선물 배달 사고의 병크와 각종 불공정 행위로 고객들이 손절을 안한 게 이상할 정도였다.

또한 구제금융 시기 외국계 할인 마트를 견제하기 위해 토종 업체들의 공세가 있었는데 여기에 엉성하게 맞대응한 것이다. 양쪽 다 최저 가격으로 승부했는데 이런 식의 치킨 게임은 양쪽 다 순이익을 감소 시킨다.

채소 코너가 부실했던 이유는 서양인의 식습관에 맞춰서 상품을 팔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미국계 월마트도 같은 생각으로 영업했다. 본토 프랑스 사람들처럼 채소를 많이 안 먹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인 1인당 채소 소비량은 2000년 기준으로 세계 1위(187kg)였으며, 프랑스보다 62kg나 더 먹었다. 거기다 우리나라는 문화라 고기를 먹으면 당연히 채소를 찾기 마련이었고, 더구나 우리나라 요리는 생각보다 채소의 비중이 크다. 당장 김치의 종류만 보더라도… 그걸 간과한 것이다. 지금도 까르푸로 지어졌던 홈플러스 매장에 가면 채소 코너가 공산품 코너에 비해 작은 것을 알 수 있다.[15] 반대급부로 육류 코너는 특히 규모가 컸다. 자체 상품으로 까르푸 양념 갈비(호주산) 팩도 만들어서 내놓았을 정도이다.

게다가 매장 진열대 및 전시 공간도 한국인 평균 신장보다 조금 더 큰 프랑스인 체형에 맞춰진 형태를 그대로 가져와 한국인의 체형 등과는 다소 맞지 않았다. 매대는 원래 그 나라 여성의 평균 키에서 -30cm를 하는 것이다. 또한 창고를 따로 운영하는 소매업인 국내 기업과는 달리 외국계 할인 마트는 대부분 도매업이라 물류 센터 겸 창고이자 매장이라서 지게차를 써야 해서 높이가 2m 이상인 것도 이런 이유이다 이런 점포 덕분인지 몰라도 홈플러스 인수 이후 몇몇 까르푸 출신 매장들이 창고형 매장을 결합한 홈플러스 스페셜로 용이하게 전환되었다. 이는 월마트트레이더스 홀세일 클럽으로 전환된 것과 비슷한 경우이다. 사실 이 문제는 코스트코도 마찬가지이지만 거기는 가격이 깡패니… 반면에 화재 등에 대비 안전 시설을 충분히 갖추고 대피동선 등도 제대로 갖추었는데 이게 한국적인 현실과 안 맞았던 것. 외환 위기 직후는 경제 상황에 올인 했던 때라서 안전불감증이 있던 시절이었다. 비상 계단을 물품 적재소로 쓰는 것은 당시 한국의 대형 매장이라면 당연시했을 정도이다. 안전 시설은 물론 1층 매장을 대피가 용이하도록 시원시원하게 배치했다. 물론 이젠 비상 계단은 그러다가 적발되면 엄청난 벌금형이 나오며 홈플러스 같은 경우, 평소엔 보안 팀에서 잠그며 화재 알람이 울려야지 자동으로 열리게 끔 잠금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보면 월마트와 함께 현지화에 완벽하게 실패한 사례이며, 같은 외국계[16]이면서 국내 시장도 생각하는 ‘글로컬’ 전략을 내세운 홈플러스와 비교됐다.# 소비자들의 특성을 무시하고 본사 기준으로만 운영하다가 말아먹었다. 나중에 이랜드에서 까르푸를 인수한 다음에 매장을 점검해보니, 전부 프랑스식 Type E 콘센트여서 황당했다는 일화도 있다. 다만 같은 외국계 할인점이었던 월마트는 그래도 국내 규격에 맞게 220V 콘센트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콘센트까지 우리나라 규격 무시하고 프랑스 부품으로 채워넣을 정도 였으니, 다른 건 볼 것도 없다. 2000년대 중반부터 국내 업체와의 경쟁을 위해 매장을 개편 하는 등 뒤늦게 한국 소비자의 취향에 맞추려 노력하는 모습도 일부 있었으나 한번 빼앗긴 고객을 되찾지 못하고 철수하였다.

마지막 원인으로, 납품 업체의 고혈을 쥐어 짜는 것은 까르푸나 국내 대형마트나 다를 것이 없지만, 당시 까르푸 납품업자나 직원, 알바들의 경험담으로는 까르푸는 소위 말하는 갑질이 국내 다른 대형 마트보다 심각했다고 한다. 특히 까르푸 말기인 2005~2006년에는 급기야 (주)CJ를 비롯한 납품업체들이 협의하여 납품 거부를 했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한동안 CJ 백설표 설탕과 프레스햄인 스팸을(한국에서는 CJ에서 라이센스 생산) 까르푸에서는 살 수 없었다.

그 외에 회사 내부에서도 안 좋은 사건들도 종종 일어나는데, 2005년 7월 25일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연맹과 까르푸노조 측이 면목점에서 발생한 직장 내 성희롱 사건들을 열거한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냈다. 인권위 측은 8월 중순부터 4개월간 조사를 했으나 진정인과 참고인, 피진정인의 진술이 엇갈린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이에 노조 측은 2006년 3월 3일 서울행정법원에 고소하여 9월 12일에 일부 승소를 받아냈으나 한국까르푸 측이 이에 불복하고 항소했다. 노조 측도 민주노동당 여성위원회 등과 함께 '까르푸(현 이랜드) 성희롱 사건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어 11월 8일 공개질의서를 냈고, 14일에는 회사 측이 항소를 취하했다.(참고1, 참고2, 참고3)

결국 각종 논란 끝에 2006년 9월 27일에 철수했으며, 신흥 유통재벌 이랜드그룹이 인수전에서 롯데쇼핑, 신세계그룹, 삼성테스코를 제치고 한국까르푸 인수전에서 우선협상자가 되고 인수에 성공하면서[17] 이랜드리테일(홈에버)로 바꾸었다. 그러나 까르푸가 남기고 간 노조와의 갈등이 제대로 폭발하며 이랜드그룹의 이미지가 악화되었고, 막대한 인수자금에 대한 부담감도 상당했다.

투자한 금액 대비 두둑한 인수 금액을 받고 우리나라에서 철수한 이유는 사실 중국 시장에 올인하기 위한 투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함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18][19]

2.2. 홈에버 (2006-2008)

파일:한국까르푸 이랜드그룹 인수.jpg
파일:홈에버 계산점 전경.jpg
홈에버 계산점.[20]
Sweet Home Forever
홈에버는 까르푸의 새이름입니다.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웹 아카이브)[21]

2006년 9월 27일 이랜드그룹이 한국까르푸를 인수했다.[22][23] 인수 후 기존 한국까르푸의 법인명은 이랜드리테일로[24], 브랜드명은 홈에버로 결정하면서 2개월 뒤 기존 까르푸 목동점을 홈에버 목동점으로 새로 리모델링하여 홈에버 1호점으로 새롭게 개점했다.

지난 날의 까르푸의 안 좋은 인상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해온 듯 했지만, 애석하게도 표면적으로 등장한 것은 없었다(…). 인수 당시 이랜드 측은 기존 직원 전원의 고용보장을 약속했으나, 2007년 6월 15일에 사측이 2년 이상 된 비정규직 중 일부만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나머지를 용역으로 돌린 탓에 노동자들은 격하게 분노했다. 같은 시기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을 앞둔 터라 논란의 쟁점이 됐다.

이에 따라 6월 30일부터 노동자들이 홈에버와 뉴코아 등 총 12개 점포를 점거해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농성 기간 동안 3번이나 협상이 있었으나 전부 결렬됐고, 오히려 회사는 구사대용역깡패들을 동원해 매장 출입문을 봉쇄하는 등으로 강경 대응했으며 7월 13일에는 연대 시도를 하려던 김종철민주노동당 당원 6명이 경찰에 의해 가로막힌 채 다음날 새벽에 연행됐다. 동월 19일 최종 협상이 결렬되자 다음날 경찰병력이 투입돼 물대포와 방패로 강제 해산시켰고, 김경욱 노조위원장을 비롯해 홍윤경 사무국장, 정병원 전 뉴코아 노조위원장 등이 구속 기소됐다. 이랜드 측은 이 파업으로 130여억원의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이 파업에서 이랜드그룹 회장 박성수가 “성경에는 노조가 없으니 하지 말라!” 같은 말도 안되는 망언까지 하면서 언론에 크게 보도되자, 노조에서는 성경에는 비정규직도 없다! 라고 반격하면서 박성수는 전국적으로 개망신을 당했다. 이런 일이 크게 보도되면서 진보단체/언론, 개신교 진보-보수단체 막론하고[25] 사탄의 헛소리나 다름없다고 박성수를 독사의 새끼 마냥 깠을 정도였다.

다만, 의류, 전자 등 매장 입점 상인들은 민주노총 때문에 장사 안 된다고 해서 부정적으로 바라봤고, 파업이 진행되는 매장마다 맞불 시위를 하는가 하면 8월 23일에는 여의도 민주노총 앞까지 와서 썩은 음식물 등을 뿌리며 시위했다.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회사 편을 드는 입점 상인들은 뉴코아 등과 계약을 맺은 임차인들이라고 전했다.

사태 당시 한겨레를 뺀 대다수 주요 언론들은 노동자에 대해 대체로 침묵하거나 비판적으로 봤다. 월간조선은 이랜드 사태를 민주노총의 선동 탓이라고 주장했으며, 문화일보도 막말 현수막을 지적하면서 해당 파업을 언급했다.[26] 이러한 대립 속에 이랜드그룹의 이미지는 점차 약해졌다.

다만 10월 22일에 서울서부지방법원은 김경욱 노조위원장 등 관련자 3명에 대해 비정규직의 사회문제화를 고려해 징역 10개월 및 집행유예 등을 선고했고, 2008년 5월 홈플러스가 홈에버를 인수하고 난 뒤 11월에야 노사 협상이 타결되어 이 문제는 해결됐으나, 협상 과정에서 노조 간부 12명이 퇴사한다는 조건이 달리면서 '반쪽짜리 성과'라는 견해가 있었다.[27]

반면 파업 당시 연대했던 김종철 등 6명은 벌금으로 약식기소됐다가 재판을 시작해 2008년 11월 서울서부지법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가, 검찰의 항소로 2009년 6월 동 법원 형사항소11부에서 벌금 50만원형을 선고하면서 또 상고했다. 그해 9월 헌법재판소가 집시법의 야간 옥외집회 금지 조항을 위헌으로 판결했긴 하나 대법원은 이 사건을 항소심으로 돌렸고, 2014년 서울서부지법 형사항소1부가 김종철 등의 손을 들어줬다.

사실상 이랜드그룹은 까르푸를 인수하여 홈에버로 바꾼 이후부터 매각할 때까지 노조와 싸움만 한 셈이었다. 게다가 프랑스식의 널찍한 매장들은 이랜드그룹이 손을 대면서 매대 간격이 좁아지는 등 롯데마트를 연상시키는 조잡함이 더해졌다. 그나마 야채 코너가 전보다 조금이나마 늘어난게 다행으로 보일 지경.

의외로 잘 안알려진 사실이지만 사실 이랜드리테일(홈에버)의 대주주는 이랜드그룹이 아니라 뉴코아였다. 당시 이랜드리테일의 지분에 이랜드그룹은 없었고 뉴코아가 가장 많이 갖고있었기 때문이다.

2.2.1. 마케팅 및 영업 당시

파일:홈에버 일러스트.jpg
HOMEVER brand illust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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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ter sea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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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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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k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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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일반인과 함께 광고를 촬영해서 특정 물품이 싸다는 식으로 홍보한게 전부. 이마저도 2008년 여름 홈에버 마감전을 끝으로 면목점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홈플러스로 리모델링되면서 흑역사가 되었다. 당시 광고 모델도 김희애를 주로 내새웠으며 프리미엄 고급마트라는 타이틀로 홍보를 하면서 일러스트도 함께 제작하여 매장 내에 일러스트를 입히거나 타포린 장바구니에 입히거나 했다.

까르푸의 피를 이어받아 매장의 시원시원한 구조적 디자인이 이어졌으나 홈에버와 홈플러스를 거치며 굉장히 조잡해졌다. 심지어 OK캐쉬백과 제휴하여 쿠폰 수거대를 운영하기도 했으며 당시 이랜드클럽 멤버쉽을 새로 출범하여 이랜드 계열 통합 멤버쉽 서비스도 운영하곤 했었다.

그리고 그룹 계열인 이랜드월드 외식BU(현 이랜드이츠)의 패밀리 레스토랑 체인점 애슐리를 각 지점 내에 입점시키기도 했다. 그래서 홈플러스에 넘어간 뒤에도 현재까지 애슐리를 운영하는 곳이 존재한다. 물론 홈플러스로 바뀌면서 같이 폐점되거나 홈플러스로 바뀐 후에도 이어서 영업하다가 중간에 폐점된 곳도 있고.

2.3. 홈플러스테스코/홈플러스스토어즈 (2008-2019)

파일:홈플러스 홈에버 인수 기자간담회.jpg
홈에버홈플러스가 됩니다.[28]
결국 2008년 5월 14일 홈에버 출범 1년 8개월 만에 홈에버를 홈플러스에 다시 매각했다. 삼성테스코 이승한 대표와 이랜드개발 권순문 대표[29]와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이랜드그룹측은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기 위해 홈에버 매각을 결정했다는 입장이지만 이랜드가 까르푸를 잘 못 먹고서 노조와의 갈등을 겪은 것은 물론 박성수 회장의 망언과 파행 운영으로 인해 손해를 보아 사실상 회사를 버린거나 마찬가지이다. 이랜드가 까르푸를 인수하면서 프랑스 본사에 준 인수 금액이 1조 7500억원이었고 삼성테스코가 홈에버를 인수하면서 준 인수 금액이 2조 3천억원이니 금전적으로는 이득을 본 셈이 맞기는 하다.[30]

동년 11월까지는 홈에버 간판을 그대로 유지했다. 하지만 모기업이 이랜드에서 삼성테스코로 바뀌었기 때문에 사실상 홈플러스의 멀티에 가까운 형태로 운영된 셈이었다.[31] 12월부터 홈에버 전 점포를 대상으로 본격적인 리모델링을 시작했으며 홈플러스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칠곡IC점[32]상주점[33]당시 대표이사가 수익성이 없는 점포라고 판단하여 홈플러스로 개점되기도 전에 먼저 폐점되었다. 상주점 공간은 현재 상주종합버스터미널 소유이지만 칠곡IC점 같은 경우에는 신전뮤지엄으로 전환되기 전까지 재산권이 홈플러스에 있었다. 그렇기에 취득세, 등기비용, 전기세, 수돗세 등 전부 홈플러스가 부담하였다고 한다. 칠곡점과 다르게 상주점은 그대로 공실 상태가 되어버렸고, 1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까르푸에서 홈에버로 전환할 때는 점포를 폐쇄하여 마개조 수준으로 리모델링을 한 뒤 새로 개점을 하였으나, 홈에버에서 홈플러스로 전환할 때는 따로 폐쇄를 하지 않고 영업은 그대로 하면서 일부분만 홈플러스식으로 바꾸었다. # 탑시계도 일반 홈플러스 매장과 동일하게 까르푸로 지어졌던 건물에 새로 만들기도 했다. 위로 튀어나온 부분[34]을 이용하여 지붕과 시계를 설치하거나 위로 튀어나온 부분이 없다면 새로 사각형 모양을 새로 만들어 그 위에 지붕과 시계를 설치하거나.

법인은 이랜드리테일에서 홈플러스테스코를 거쳐 홈플러스스토어즈라는 별도의 자회사로 운영했었다가 2019년 10월 경 홈플러스 법인으로 완전 통합되었다. 이 영향으로 법인 통합 이전엔 일반 홈플러스 매장은 영수증의 점포명 왼쪽에 "홈플러스" ○○점으로 출력되고 홈에버였던 매장은 "홈플러스스토어즈" ○○점으로 출력되었다.[35] 그리고 공사는 홈에버로 시작했지만 중간에 인수되면서 홈플러스로 개점한 점포는 홈플러스스토어즈가 아닌 홈플러스로 출력됐었다. 본격적인 영업은 홈플러스로 시작했기에 그런 듯하다. 물론 지금은 어떤 매장을 가도 ''홈플러스'' ○○점으로 나온다.

3. 로고

||<table bordercolor=#e60013><table align=center><width=25%><bgcolor=#ffffff> 파일:한국까르푸 로고.svg ||<width=25%><bgcolor=#ffffff> 파일:홈에버 로고.svg ||<width=25%><bgcolor=#ffffff> 파일:홈플러스 로고(2011-2018).svg ||<width=25%><bgcolor=#ffffff> 파일:홈플러스 로고.svg ||
1994 ~ 2006 2006 ~ 2008 2008 ~ 2018 2018 ~ 2019

4. 역대 임원

5. 지점

지점 목록
지점명 주소 비고
서울특별시
가양점
[41]
강서구 양천로 431 (가양동 18-24) 구 까르푸-홈에버-홈플러스.[clearfix]근처에 홈플러스 강서점이 있다(...) [42] 가양점이 삼단 변신하고 강서점은 홈플러스 본사가 있는 곳이어서 두 곳 모두 영업 중.
시흥점
[43]
금천구 시흥대로 201 (시흥동 992-47) 구 까르푸-홈에버-홈플러스.[clearfix]
중계점
[44]
노원구 동일로204가길 12 (중계동 509-2) 콘티낭-까르푸-홈에버.[45][clearfix]홈플러스로 넘어간 뒤, 추후에 8~9층으로 증축한 뒤 CGV 중계점이 입점했다.
방학점
[46]
도봉구 도봉로 678 (방학동 707-7) 구 까르푸-홈에버.[clearfix]
월드컵몰
[47]
마포구 월드컵로 240 (성산동 515) 구 까르푸-홈에버.[clearfix]서울월드컵경기장 내 입점
영화 카트의 모티브가 된 점포.
목동점
[48]
양천구 목동서로 170 (목동 919-7) 콘티낭-까르푸-홈에버-홈플러스.[49] 홈에버 1호점.[clearfix]
면목점
[50]
중랑구 사가정로 332 (면목동 168-2) 구 까르푸-홈에버.[clearfix] 단층매장.[51][clearfix]홈에버에서 홈플러스로 첫 리뉴얼된 지점이다.
부산광역시
서면점
[52]
부산진구 동천로 4 (전포동 892-20) 구 까르푸-홈에버.[clearfix]
장림점
[53]
사하구 다대로 225 (장림동 185) 구 까르푸-홈에버.[clearfix]
해운대점
[54]
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 140 (우동 1406-2) 구 까르푸-홈에버-홈플러스.[clearfix]
대구광역시
동촌점
[55]
동구 동촌로 127 (검사동 908-5) 구 까르푸-홈에버.[clearfix]
칠곡점
[56]
북구 관음로 43 (관음동 1369-1) 델타클럽-까르푸-홈에버.[clearfix]홈플러스에게 인수된 후 기존 홈플러스 칠곡점과 상권이 중복된다는 이유로 폐점된 후 계속 폐건물로 방치되어 있었다. 현재는 신전뮤지엄이 들어섰다.
내당점
[57]
서구 달구벌대로 1821 (내당동 65-8) 구 황제예식장-탑마트-까르푸-홈에버.[clearfix]
인천광역시
계산점
[58]
계양구 오조산공원로 14 (계산동 1061) 구 까르푸-홈에버.[clearfix] 바로 옆에 롯데마트 계양점이 있다(...)[59]
인하점
[60]
미추홀구[61] 소성로 6 (용현동 648) 구 까르푸-홈에버.[clearfix]
구월점
[62]
남동구 예술로 198 (구월동 1130) 구 까르푸-홈에버.[clearfix]
대전광역시
둔산점
[63]
서구 둔산중로 1 (탄방동 592) 구 까르푸-홈에버. 홈플러스스토어즈의 사업자등록지.[clearfix]1999년 당시 이곳을 폭파시켜버리겠다는 협박 소동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다행히 폭발물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2021년 2월 28일 영업종료했고 현재는 철거되었다.
유성점
[64]
유성구 한밭대로 502 (봉명동 669) 구 까르푸-홈에버.[clearfix]2006년 까르푸 시절 화재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 화재는 3층 사무실에서 났다고 하며 스프링클러 작동으로 10여분만에 진화되었고 큰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한다.#
문화점
[65]
중구 계백로 1690 (문화동 1-17) 구 까르푸-홈에버.[clearfix]
울산광역시
울산점
[66]
북구 신답로 26 (상안동 322-9) 구 까르푸-홈에버.[clearfix]
경기도
일산점
[67]
고양시 일산동구[68] 중앙로1275번길 64 (장항동 755) 구 까르푸-홈에버.[clearfix]
중동점
[69]
부천시 원미구 길주로 297 (중동 1059-2) 구 까르푸-홈에버-홈플러스. 한국까르푸 1호점.[clearfix] 웹툰 송곳의 모티브가 된 점포이기도 하다. 2018년 10월 14일 폐점했다. 그리고 신중동역 랜드마크 푸르지오 시티를 지었다.
분당점
[70]
성남시 분당구 탄천상로151번길 20 (구미동 159) 구 까르푸-홈에버-홈플러스.[clearfix]
야탑점
[71]
성남시 분당구 성남대로925번길 16 (야탑동 341) 구 까르푸-홈에버.[clearfix] 테마폴리스 3층 입점
원천점
[72]
수원시 영통구[73] 중부대로 437 (원천동 177-1) 구 까르푸-홈에버.[clearfix]
안산점
[74]
안산시 단원구 광덕대로 175 (고잔동 707-2) 구 까르푸-홈에버-홈플러스.[clearfix]한때 까르푸 시절에 사용되었던 간판 흔적이 남아있었다.[75] 현재는 시간이 흘러 간판 흔적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안양점
[76]
안양시 동안구 엘에스로 76 (호계동 555-9) 구 까르푸-홈에버.[clearfix]
병점점
[77]
화성시 경기대로 985 (병점동 399-4) 구 까르푸-홈에버.[clearfix]까르푸에서 마지막으로 개점한 지점이다.
전라도
순천점
[78]
순천시 팔마로 222 (풍덕동 300) 구 까르푸-홈에버-홈플러스.[clearfix] 300m 옆에 이마트 순천점이 있다.
전주점
[79]
전주시 완산구 기린대로 170 (중노송동 495-6) 구 까르푸-홈에버-홈플러스.[clearfix]
충청도
천안점
[80]
천안시 동남구 신촌1길 23 (신방동 784-9) 구 까르푸-홈에버-홈플러스.[clearfix]
청주점
[81]
청주시 상당구 사직대로 346 (서문동 157-14) 구 까르푸-홈에버-홈플러스.[clearfix]
까르푸로 폐점했거나 홈에버 및 홈플러스로 개점한 점포
강동점
[82]
강동구 양재대로 1571 (천호동 42) 구 까르푸-홈에버.[83][clearfix]착공과 공사는 모두 홈에버가 했지만 개장과 본격적인 영업은 홈플러스로 했으니 홈플러스스토어즈 매장으로 분류되지는 않았다.
신도림점
[84]
구로구 경인로 661 (신도림동 337) 까르푸-홈에버.[85][clearfix]경부선 철길 반대편에 이마트가 있다.
사상점
[86]
사상구 광장로 17 (괘법동 531-2) 콘티낭-까르푸.[87][clearfix] 신기하게도 바로 옆에 홈플러스 서부산점이 있다(...) 만약 사상점이 계속 영업했다면 홈에버를 거쳐 홈플러스가 됐을 것이다. 홈플러스 옆에 또 홈플러스...
상주점 상주시 삼백로 71 (무양동 291) 홈에버.[clearfix]공사 당시만 하더라도 까르푸로 개장할 예정이었으나, 개장되기 전에 홈에버가 되어 홈에버 명의로 문을 연 첫 매장이었다. 그러나 홈플러스에게 인수된 후 당시 막 개점한 문경점과 상권이 중복된다는 이유로 폐점되었다. 이로써 상주시내에는 대형마트가 이마트 상주점이 유일하게 되었으며, 현재 홈에버 자리는 아무것도 없이 비어있다.[clearfix](상주종합버스터미널 2~3층 입점)
포항점
[88]
포항시 남구 중흥로 77 (상도동 582) 홈에버.[clearfix]상주점과 마찬가지로 까르푸 시절에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개업은 홈에버로 한 매장이다. 신도림점이랑 같은날에 개업했으며, 홈에버에서 마지막으로 개점한 지점이기도 하다.[clearfix](그랜드애비뉴 2~3층 입점)

6. TV 광고

6.1. 까르푸








6.2. 홈에버


[89]








7. 여담


[1]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등록내용[2] 지금은 사라진 대전탄방점의 주소지이다.[3]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기준 변경, 모기업이 금융보험업인 MBK파트너스로 변경됨에 따라 규정에 의거해 중견기업 선정.[4] 이후 홈에버 중동점이 되었고 얼마 못 가 홈플러스 중동점으로 다시 바뀌고 계속 영업을 했으나, 2018년 10월 14일 영업을 종료한 뒤 철거되어 현재는 신중동역 랜드마크 푸르지오 시티가 들어섰다. 여담이지만 저 모습은 초창기의 모습으로 까르푸 시절에 한 번 리뉴얼 되어서 바뀌었다.파일:까르푸중동점리뉴얼후.gif[5] 이랜드그룹에게 인수된 후 까르푸 홈페이지 접속 시 홈에버 홈페이지로 포워딩되었다.[6] 기존 건물을 새로 증축하여 7층 꼭대기로 이전했으며, 홈에버로 바뀌었을 때도 본사가 이곳에 위치해있었다.[7] 당시에는 프라이스 클럽이었다. 신세계와 프라이스 클럽이 합작해서 운영했으나 프라이스 클럽을 코스트코에 팔아버린 후 코스트코 코리아가 운영중이다.[8] 창동점, 일산점, 안산공단점, 부평점.[9] 이마트는 1993년, 홈플러스는 1997년, 롯데마트는 롯데마그넷이란 이름으로 1998년, 월마트는 1998년으로 1996년 당시엔 정말 4개의 이마트 점포가 한국 대형마트(할인점)의 전부였다. 물론 상기하였듯 홈플러스와 롯데마트, 그리고 미국에서 온 월마트까지 줄줄이 나오면서 한국에서 대형마트의 인지도는 1990년대 후반에 폭증하였지만.[10] 홈플러스 안산점은 전국 홈플러스 3호점이며 삼성과 영국의 유통업체인 테스코의 합작으로 지어진 큰 의미가 담긴 점포다. 하지만 안산점 부지를 한 개발 업체에 매각하여 2021년 11월 12일 폐점하여 없어진 상태이다.[11] 한국까르푸 자체는 2006년 4월 28일에 이랜드에 매각했다는 뉴스가 나왔으며, 9월 27일에 공정위가 이랜드의 까르푸 인수를 승인하면서 공식적으로 철수했다.[12] 이마트와 롯데마그넷(現 롯데마트)의 물량전에서 패배.[13] 이랜드가 까르푸를 인수해서 홈에버로 변경할때 매장들을 둘러봤는데 전기플러그 모양이 전부 프랑스식의 Type E 플러그여서 몹시 당황했었다고 한다. 결국 이랜드는 인수 이후에 이걸 싹 다 개조해야 했다.[14] 까르푸는 해외 진출을 하고 해당 국가의 매출 3위권 안에 들지 못하면 철수해야 하는 원칙이 있다. 이 방침으로 인해 우리나라와 일본을 포함한 5개의 나라에서 철수했다.[15] 예외로 까르푸 월드컵몰은 대규모 매장이라 채소 코너가 대다수의 까르푸 점포에 비해 매우 컸다. 그래서인지 월드컵몰 매장이 다른 점포에 비해 유독 장사가 잘 되었었고 홈플러스로 넘어간 뒤에도 현재까지 전국 홈플러스 매장 중 매출 1위를 달리는 초우량 점포로 자리잡았다.[16] 삼성물산과 영국 테스코의 합작 회사였다.[17] 이 과정에서 공정위가 조건으로 제시한 일부 까르푸 점포 매각을 했어야 했다.[18] 사실 그 동안 까르푸가 국내에서 영업을 해서 얻은 이익은 별로 없고 오히려 손실을 입었을 정도인데, 진출 당시에 비해 철수 당시까지 국내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오르는 탓에 매장이 위치한 부지 가격 상승으로 기업 지산가치가 크게 올라서 투자금 대비 두둑한 인수 금액을 받을 수 있었다. 여담으로 동 시기 서울 아파트값은 2배 이상 상승했을 때이다.[19] 다만 지금은 2019년 이후 중국 시장에서도 회생불가 상태로 전락하고 있어 현 시점에서 까르푸가 자충수를 쓴 것 아니냐는 말이 있다.[20] 2008년 홈플러스에 매각하여 현재는 홈플러스 계산점으로 리모델링되었다. 해당 사진은 홈플러스가 홈에버를 인수한 직후에 촬영되었다.[21] 한국까르푸가 이랜드그룹에 매각되고 홈에버 홈페이지를 새롭게 만들자 당시 한국까르푸 도메인을 접속하면 홈에버 홈페이지로 리다이렉트되었고, 2008년 홈플러스에 매각되면서 홈에버 홈페이지 역시 홈플러스로 리다이렉트되었다.[22] 한국까르푸에 먼저 눈독을 들인 회사가 롯데쇼핑이었으나, 이랜드에게 인수전에서 패했다.[23] 참고로 이랜드는 옛 뉴코아에서 운영했던 킴스클럽을 인수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까르푸를 인수하면서 기존 까르푸의 명칭을 킴스클럽으로 바꾸지 않은걸 보면 컨셉을 킴스클럽과 달리 운영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사실 이 시기 되면 킴스클럽 자체 매장이 대부분 매각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뉴코아 아울렛 식품 매장 정도의 컨셉으로 바뀐 상황이었다.[24] 현재 이랜드그룹 내에 이랜드리테일이라는 똑같은 이름의 계열사가 있는데 그 이랜드리테일과 홈에버의 이랜드리테일과는 전혀 다른 회사이다. 현재 이랜드그룹에서 존속중인 이랜드리테일은 이랜드월드 유통부문을 새로 인적분할 및 독립법인으로 전환하면서 이랜드리테일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설립된 회사이고 이 문서에 서술되어있는 이랜드리테일은 한국까르푸 법인명을 이랜드리테일로 바꾼 것이다. 그리고 이랜드리테일이라는 이름은 이곳이 먼저 사용했기 때문에 홈에버가 원조(?) 이랜드리테일이라고도 볼 수 있다.[25] 농담이 아니라, 이딴 헛소리를 받아 들인 게 아니라 오히려 또라이라고 깠다.[26] 물론 문화일보가 상당히 보수적인 논조를 가진 신문이며, 대기업(현대중공업) 산하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27] 국내에서 노사갈등이 심각하게 벌어지는 경우, 특히 장기분규 사업장들은 이런 식으로 타결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노조가 강경하게 반발하면서 대치 국면이 오래 지속되면, 회사측에서 일단 노조측 요구를 수용하는 대신에 노조 핵심 간부들의 퇴사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3~4년 뒤에 보면 핵심 간부들이 빠진 노조는 회사 측의 집요한 회유와 방해로 무력화되고 노사 간의 합의는 휴지조각이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특히 인수합병 과정에서 고용유지 조건의 경우 설사 노사간에 자율합의가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이를 회피할 수 있는 다양한 꼼수들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 문제가 많다.[28] 위 홈에버 계산점 사진에서 볼 수 있는 문구.[29] 어째서인지 이랜드리테일 홈에버 대표이사인 오상흔 대표가 아닌 같은 이랜드그룹 계열사인 이랜드개발 권순문 대표가 대신 참석했다. 현재 권순문 대표는 이랜드그룹 소속이 아니고 에브라임이노베이션 대표이사와 토스뱅크 사외이사로 역임하고 있다.[30] 물론 이랜드그룹 자체는 가진 현금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까르푸 측에 30%만 현금으로 인수금액을 주고 나머지 70%는 빚으로 때워버렸는데 매년 이자가 650억원에 달해서 이랜드그룹의 재무구조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공식 매각 가격은 2조 3천억원이었지만, 이랜드가 받은 현금은 1조원이었고, 나머지 1조 3천억원은 이랜드 측이 까르푸에 줘야 할 인수금 잔금 및 부채를 합산한 금액이었다.[31] 이때부터 이랜드 PB상품은 진열되지 않았으며 홈플러스 PB상품들만 진열되기 시작했다.[32] 본래는 동아백화점 계열의 회원제 창고형 할인점인 델타클럽이었으나, 2005년 까르푸에게 매각한 것을 거쳐 홈에버가 되었다. 이후 홈플러스에 인수되었으나, 칠곡3지구 거동교 옆에 넘사벽급의 홈플러스 칠곡점이 있어서 당연히 중복 상권에 따른 폐지. 공교롭게도 이 매장을 처음 오픈한 동아백화점은 나중에 이랜드로 인수되었다. 2019년 7월 대구에 본사를 두고 있는 떡볶이 프랜차이즈 기업 ㈜신전푸드시스에서 세계 최초의 ‘떡볶이 박물관’인 ‘신전뮤지엄’을 조성했다.[33] 상주점은 홈에버 인수 이후 처음으로 개점한 점포였다.[34] 보통 이 부분의 공간은 계단실이나 엘리베이터가 있는 공간이다. 게다가 엘리베이터의 경우 꼭대기층 바로 위에 기계실이 있어야하므로 외부에서 봤을때 위로 튀어나온 부분이 당연스럽게 보이게 된다.[35] 홈에버를 인수하고 얼마안됐을때쯤인 2000년대 후반에는 영수증에 일반 홈플러스 매장은 삼성테스코 CI, 홈에버 출신 매장은 홈플러스 BI가 출력되었었다.[36] 이후 홈플러스 대표이사를 역임했다.[37] 개점 예정 점포 포함. 미포함하면 1개.[38] 옛 한국콘티낭 점포 포함. 미포함하면 29개. 까르푸 시절 폐점했던 점포와 한국콘티낭 점포까지 포함하면 33개.[39] 옛 한국까르푸 점포 포함. 미포함하면 3개, 홈에버로 짓고있었으나 홈플러스로 개점한 특이케이스인 강동점까지 포함하면 4개가 된다.[40] 까르푸 점포만 포함하면 28개, 홈에버 점포까지 포함하면 30개.[41]홈플러스 가양점.[42] 두 점포는 심지어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도 9호선 가양역으로 출구 번호만 다르다(...)[43]홈플러스 시흥점.[44]홈플러스 중계점.[45] 본래 이곳은 콘티낭 점포였는데 건물 완공 몇 개월 전을 앞두고 프랑스 본사에서 콘티낭과 까르푸가 합병되어 한국콘티낭도 한국까르푸로 합병되어 최종적으로 까르푸로 개장했다.[46]홈플러스 방학점.[47]홈플러스 월드컵점. 당시 지점명이 월드컵몰'점'이 아니라 월드컵몰이었다.[48] 홈플러스 목동점.[49] 원래는 이곳이 콘티낭(Continent) 부지였는데 건물 완공 몇달전 프랑스 본사에서 콘티낭과 까르푸가 합병되어 개점은 까르푸로 했다.[50]홈플러스 면목점.[51] 수도권 홈플러스 매장 중 유일한 단층매장이다. 이유는 바로 아래가 유수지이기 때문에 단층으로 밖에 짓지 못하기 때문이었다.[52] 홈플러스 서면점.[53]홈플러스 장림점.[54] 홈플러스 해운대점.[55]홈플러스 동촌점.[56]신전뮤지엄.[57]홈플러스 내당점.[58]홈플러스 계산점.[59] 심지어 롯데마트 계양점 또한 그랜드마트를 인수한 지점이다. 인수된 경험이 있는 지점끼리 서로 붙어있는 셈. 참고로 계산지구 내에 있는 모든 대형마트는 월마트였던 이마트 계양점까지 포함해 전부 타사에 인수된 지점이다.)[60]홈플러스 인하점.[61] 개장 당시는 남구. 2018년에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62]홈플러스 구월점.[63] 홈플러스 대전탄방점. 기존 홈플러스 대전둔산점과 지점명이 중복되어 대전탄방점으로 변경.[64]홈플러스 유성점.[65]홈플러스 문화점.[66]홈플러스 울산북구점. 기존 홈플러스 울산점과 지점명이 중복되어 울산북구점으로 변경.[67]홈플러스 일산점.[68] 개장 시 일산구였다가 2005년 분구.[69] 홈플러스 중동점.[70]홈플러스 분당오리점.[71]홈플러스 야탑점.[72]홈플러스 원천점.[73] 개점 시 팔달구였다가 2003년 영통구로 분구.[74]홈플러스 안산고잔점. 기존 홈플러스 안산점과 지점명이 중복되어 안산고잔점으로 변경.[75] 파일:attachment/홈플러스/Ansancarrefour.jpg[76] 홈플러스 안양점.[77]홈플러스 병점점.[78]홈플러스 순천풍덕점. 기존 홈플러스 순천점과 지점명이 중복되어 순천풍덕점으로 변경.[79]홈플러스 전주완산점. 기존 홈플러스 전주점과 지점명이 중복되어 전주완산점으로 변경.[80]홈플러스 천안신방점. 기존 홈플러스 천안점과 지점명이 중복되어 천안신방점으로 변경.[81]홈플러스 청주성안점. 기존 홈플러스 청주점과 지점명이 중복되어 청주성안점으로 변경.[82]홈플러스 강동점.[83] 병점점 다음으로 지어질 까르푸 매장이 이곳이었는데 2006년 까르푸 한국사업 철수가 결정이 나서 착공은 홈에버로 했지만 중간에 홈에버가 홈플러스에 매각되어 개장은 홈플러스로 했다.[84]홈플러스 신도림점.[85] 공사 당시에는 까르푸였으나, 포항점이랑 같은날에 홈에버로 개점하였다. 그리고 홈에버에서 마지막으로 개점한 지점이기도 하다.[86]이마트 사상점.[87] 본래는 이 곳이 콘티낭(Continente) 매장이였는데 프랑스 본사에서 콘티낭과 까르푸가 합병되었으나, 매출 부진으로 3년만인 2003년에 일찌감치 폐점 후 이마트에서 인수하였다.[88]홈플러스 포항점.[89] 내레이션은 아마추어 성우인 박나연이 맡았다.[90] 이건 사실 까르푸에서 유래된 건데, 홈에버가 사실상 까르푸 핏줄을 이어받아서 운영한 기업이었다보니 까르푸만의 특색들을 대부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물론 홈플러스에 넘어간 뒤로는 이런 까르푸만의 특색들은 모두 사라졌다.[91] 비구매 고객전용 출구에만 도난방지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입구엔 보안요원이 지키고 있었다.[유도사인] 파일:홈에버 유도사인.jpg[쇼핑카트] 파일:까르푸-홈에버-홈플러스 쇼핑카트.jpg[계단] 파일:홈에버 계단 층 표시.jpg[95] 파일:홈플러스 면목점 천장높이 사진.jpg
대표적으로 면목점이 있는데 약간 전등을 높이 조정한다면 코스트코트레이더스에 있는 진열대를 갖다놔도 전혀 문제없는 높이이다.
[96] 사실 이때 홈에버의 이미지 타격과 손실이 너무 컸던지라 까르푸를 내놓았을때와 달리 관심을 보였던 기업들이 잘 없었다.[97] 간혹 너무 오래전에 지어졌던 점포중에서 직원용 엘리베이터만 만들어 놓고 고객용 엘리베이터가 없는 점포들이 종종 있었다.[98] 드물게 LG산전이 설치되어있는 경우도 볼 수 있다.[99] 작중에서 묘사되는 마트의 모습은 중동점의 모습과 동일하며 작중 시대상이 2003년으로 까르푸가 존재했던 시기이기 때문에 까르푸를 모티브로 한 것이 거의 확실하다. 실제로 까르푸 노사 갈등은 심각했고 그것이 홈에버로 넘어와 터졌기 때문이다.[100] 부산광역시, 울산광역시를 제외한 경남 전 지역[101] 강지웅 MBC플러스 대표가 당시 취재 PD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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