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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영/정계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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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논란
역대 선거 제15대 대통령 선거 · 제17대 대통령 선거 · 제20대 대통령 선거
20대 대선 대선 공약정권획득을 위한 선거대책위원회대권주자로서의 장단점
관련 인물 박병기 · 송순권
저서 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
기타 민주공화당 · 공화당 · 국가혁명당 · 허경영 효과 · 허느님 · 하늘궁 · 친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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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거2. 공약
2.1. 제15대 대선 10가지 혁명 공약2.2. 제17대 대선 33가지 대표공약2.3. 국가혁명배당금당 33정책

1. 선거

1.1. 제13대 대선: 출마 포기

파일:허경영신민당.jpg

허경영의 첫 행적은 40세이던 1987년 신민당 후보로 대선 출마를 시도한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예비후보로 등록은 했으나 기탁금 문제로 최종 후보로 출마하지 못했다. 참고로 허경영의 당시 소속 정당이었던 신민당은 김영삼김대중이 몸을 담았던 신민당, 신한민주당과는 이름만 같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정당이다.

1.2. 1991년 지선 출마

관련 블로그 글

당시 지방선거는 3월에 치러진 기초의원선거와 6월에 치러진 광역의원선거로 나눠져서 선거를 치렀는데, 허경영은 3월 기초의원 선거 때 무소속으로 은평구 갈현1동 기초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했으며, 이후 6월 광역의원 선거 때 민중당 소속으로 은평구 광역의원에 다시 출마했다가 역시 낙선했다. 우습게도 이때 스스로를 한국의 페스탈로치로 칭했다.

자료가 많지는 않지만 공보물은 남아 있다. 심지어 91년 3월 1일자 동아일보에는 허경영으로 보이는 사람이 수서지구 택지 특혜 분양 사건 규탄대회에 참여한 흔적도 남아 있다. 이 사진은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17면 좌상단

인터넷에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블로거가 직접 선거총람까지 찾아본 결과, 당시 기초의원선거는 3위, 광역의원선거는 4위로 낙마했다고 한다.

1.3. 제14대 대선: 출마 포기

진리평화당 대선후보로 출마 예정이었으나 기탁금을 마련하지 못해 출마하지 못했다.##

1.4. 제15대 대선 출마

당시 TV광고
50세이던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도 공화당 소속으로 출마했다. 결과는 39,055표를 얻고 7명 중 7위로 낙선. 박정희 정신을 운운하면서 공약은 조선왕조 부활, 핵주권 회복, 경기도를 서울시에 합병, 대통령의 명칭을 '국민대표'로 변경 등이다.

여담이지만, 허경영의 공화당 때문에 국민승리21의 정식 명칭은 건설국민승리21이 되었다. 원외정당의 순번 부여 순서는 가나다순인데 공화당이 국민승리보다 앞에 있었기 때문에 국민승리21 측에서 더 높은 순번을 부여받고자 당명을 건설국민승리21로 정한 것이다.

1.5. 제16대 대선: 출마 포기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하려 했으나 차후 대권을 위해 포기했다. 여담으로 후보를 사퇴하면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다.

1.6. 제17대 총선 출마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했다. 하지만 득표율 저조로 또 낙선했다.

이 때 선거공보물에 자신이 1950년 1월 1일 청계천 움막에서 출생했고 박정희 대통령의 양자라는 등의 서술을 적어놓았다. 실제로는 상위 문서의 인물정보에 적혀 있듯 1947년생이며, 진주 출신이다. 이 사실은 후술할 1차 피선거권 박탈 당시 검찰 조사로 알려졌다.

1.7. 제17대 대선 출마

제15대 대선 당시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 3자 대결에 묻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명박이 독주하던 선거여서 허경영이 더 주목받을 수 있었다.

원래는 대선 1년 전인 2006년 열린우리당에 입당, 2007년 4월 열린우리당 대선 예비후보로 가장 먼저 등록한 바 있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은 그해 8월 대통합민주신당과 합당을 선언하며 해체되었다. 링크된 기사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해체가 결정되던 날 자신의 지지자들을 이끌고 김혁규, 김원웅 등과 함께 '열린우리당 지킴이'를 자처하며 합당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때 해체되지 않았다면 허경영이 열린우리당의 대선후보 경선에 나와 컷오프됐을지도 모른다.

열린우리당이 해체되자 경제공화당을 창당, 대선에 출마했다. 군소후보 토론회에 참석했으며 결과는 0.4%, 약 10만 표에 육박하는 득표로 다른 군소후보들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성적을 기록했다. 참고로 당시 이인제가 0.7%였는데 심지어 울산, 부산, 대구, 경북, 경남에서는 이인제를 앞섰다. 허경영 스스로도 "내 지지율이 이인제 후보와 비슷한데 다른 군소후보들과 비교하면 너절해진다"고 했을 정도.

당시 배정받은 기호가 8번이다 보니 이를 이용해 선거 포스터에 8번 찍으면 8자 핍니다 라는 문구가 기록되었다.

1.8. 1차 피선거권 박탈

허경영은 자신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단순한 친분 이상의 관계이며 결혼할 것이라는 주장을 자주 했었다. 이어 허씨는 2007년 9월 대선 당시 “대통령이 되면 박근혜와 결혼하기로 했고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취임 만찬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으며 이병철 삼성 회장의 양자이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책보좌역을 역임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됐다. 허씨는 대통령 후보 공보에 부시 대통령과 함께 있는 사진을 싣고 “부시 대통령의 당선 축하파티에 초청된 허경영. 이때 허경영은 유엔본부를 한국으로 가져와야 한국 안보가 해결된다고 하여 긍정적 결과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또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있는 듯한 사진을 싣기도 했다.

하지만 이병철 삼성 회장의 양자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책보좌역을 역임했다는 그의 주장은 거짓이었고, 부시 대통령과 함께 찍었다는 사진은 합성으로 밝혀졌고 조작된 증거가 상당히 많은 걸로 보아 이는 확실한 판결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재판부는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심어준 데다 잘못을 전혀 뉘우치지 않고 있어 실형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이후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으며 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되어 2017년 12월까지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되었다. #

1.9. 제18대 총선: 출마 포기

2008년 18대 총선에서 서울 은평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려 했으나, 구속으로 인해 출마를 포기했다.

1.10. 제18대 대선: 출마 불가

18대 대선 출마를 공언했지만, 징역 1년 6개월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아 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 상태였기에 출마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1.11. 제19대 대선: 출마 불가

여전히 피선거권 박탈 때문에 출마할 수 없었다.

비밀리에 여론조사를 해봤더니 자신이 1위였다고 주장했다. 조사기관은 허경영 페이스북이며(투표인원) 방식은 '허경영을 지지하는 사람은 이 글에 좋아요 누르세요' 하는 식이다. 당연히 공신력 있는 조사로 볼 수 없다.[1] 또한 자신이 19대 대선 때 출마했다면 100% 당선됐을 것이라고 했다.

파일:허경영 페이스북 여론조사.jpg

1.12. 제21대 총선 출마

2018년 12월 24일허경영은 형의 실효로 피선거권을 회복했다. 2020년에 진행되는 21대 총선을 위해 국가혁명당을 창당할 것을 선언했다. 이제까지 공약대로 당선 의원들의 무보수 활동을 내세운다. 지역구에 출마하게 된다면 정치 활동을 시작했던 서울 은평구 을 선거구, 본인의 출생지인 서울 중랑구 을 선거구, 아니면 하늘궁이 위치해 있는 경기도 양주시 선거구에 출마할 가능성이 있으며, 비례대표에 출마하게 된다면 1~2번을 배정받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상황으로 보아 비례대표로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허경영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기 위해서는 국가혁명배당금당이 비례대표 선거 득표율 3% 이상을 얻거나 지역구 국회의원 5명 이상을 당선시켜야 한다. 만일 달성한다면 지역구 의석이 적기 때문에 준연동형 시스템 하에서는 허경영 번호인 2번까지는 올 가능성이 크다.

결국 비례대표 2번으로 출마하기로 했다. 출처. 여성할당제로 인해 비례대표 홀수 번호는 여성이다. 홀수 번호에 남성이 들어가면 해당 정당의 모든 비례대표 후보등록이 무효가 된다. 어차피 2번을 해도 3%만 넘긴다면 당선된다는 건 확실하기 때문이다.

국가혁명당이 151석을 획득하지 못한다면 당선되어도 당선자들이 전부 사퇴하겠다는 엄청난 배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21대 총선 이전에 TV조선의 탐사보도 세븐,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 궁금한 이야기 Y, 등 허경영의 실체의 관한 잇따른 언론보도와 과거 연예설이 불거졌던 최사랑의 허경영 본인의 실체 폭로로 인해 논란이 되는 바람에 결국 그 여파로 선거 결과는 0석이었다. 아무도 당선되지 못했다..[2]

1.13. 2021년 재보선 출마

2021년 재보궐선거의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할 예정이라고 2020년 7월 12일 하늘궁 강연 중 밝혔다. 2020년 12월 8일 서울시장 예비후보 등록을 하였고, 2021년 3월 18일에는 1호로 서울시장 후보에 등록했다.

정의당 김종철 대표가 성추행 사건을 일으키면서 정의당은 재보궐 선거에 불참했고,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와 단일화를 하면서 후보직을 사퇴하였다. 3등이 유력했던 국민의당, 정의당이 후보를 내지 않게 되면서 운좋게 최종 득표율 1.07%를 기록하며 3등으로 선거를 마무리했다. 이는 지난 91년 지방선거 이후 처음으로 1% 이상의 득표율을 획득한 것으로, 현재까지 지역구(구의원 및 시의원) 선거를 제외한 전국구 선거(대통령, 국회의원, 도지사 및 광역시장급 이상 지방자치단체장) 중에서는 유일하게 득표율이 1%가 넘었다. 군소후보들 중에서 득표율이 가장 높아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1.14. 제20대 대선 출마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나올 것을 암시했다. 그때까지 건강하거나 선거법 위반을 하지 않는다면 무조건 출마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선에서도 당선을 못한다면 70대 후반에 대통령 선거에 다시 나가야 된다.

2021년 8월 18일행주산성에서 출마 선언을 했다. 장군옷에 백마 탄 허경영 "내가 난세영웅"…세번째 대선출마(연합뉴스) 안철수 후보와 국민경선을 통한 단일화를 제안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안상수 예비후보와 하늘궁에서 회동했다. 안상수, 허경영과 손잡았다…“이재명보다 훨씬 현실적”

허경영 “대통령제 없앨 것. 내가 제국 황제 되겠다”(2021년 11월 8일, 세계일보.).
파일:AVMS202138CSqnKCXy4.png
2021년 12월 27일 월요일에는 완전 모병제 시행을 추진하겠다고 발언했다.
허경영이 대선 예비후보로 등록한 후 TV 등의 매체에서의 홍보가 여의치 않자, 여러 사람들에게 녹음된 통화를 돌리며 선거에 참여해줄 것을 홍보하는 방법을 택해 이슈가 되었다. 사실상 본인을 홍보하는 방법에 사람들이 피로감을 호소한다는 방송이나 기사가 연일 나왔다. 2022년 1월에도 계속 돌리고 있었으나 항의가 계속되자 그만뒀다. # 그러나 대단히 참신한 방법으로, 이후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에서 일반적으로 따라하는 방법이 되어버려 선거때가 되면, 많은 시민들이 불편함을 겪고 있다.

2022년 1월 17일, 가수 김필도 지속적으로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피로도를 느껴 SNS에다가 전화 사진을 캡쳐하고, "제발 전화 그만 해주세요."라고 글을 올렸다.

심지어 권역응급의료센터의 핫라인 전용 콜폰에도 전화가 걸려왔다.#

진용진 유튜브에 출연해 랜덤으로 아무 번호나 전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

2021년 12월 아시아리서치앤컨설팅의 여론조사에서 정의당심상정 후보, 국민의당안철수 후보를 제치고 지지율 4.7%로 3위 자리에 안착했다.

TV 토론 출연 여부가 어떨지가 관건이다. 앞서 허경영은 주요 정당 토론회에 참여를 요청했고 일부 비정규 여론조사의 경우 최대 5.5%까지 찍기도 했다. 평균적으로는 2%에서 3% 정도의 지지율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심상정에 약간 밀리는 수치이다. 심상정이 속한 정의당은 원내 정당에다가 직전 총선 득표율이 3%를 넘어 TV토론 참여가 가능하지만 허경영은 직전 총선 득표율이 1%도 미치지 못한 데다가 소속 정당이 본인 광신도로 이루어져 있어 정상적인 정당이 아닌데다. 정작 주요 정당 토론회에 참여하려면 그 이전에 21대 총선에서 5명 이상을 당선시켜 원내 정당이 되었어야 하는데 총선 이전에 TV조선의 탐사보도 세븐,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 궁금한 이야기 Y, 등 허경영의 실체의 관한 잇따른 언론보도와 과거 연예설이 불거졌던 최사랑의 허경영 본인의 실체 폭로로 논란이 되는 바람에 결국 그 여파로 선거 결과는 낙선한 상태라 아무도 당선되지 못한 원외 정당이며 그동안 철저하게 쌓인 사기꾼, 사이비 교주 이미지 때문에 유의미한 세력을 얻을 수 없는 상황이라 평균 지지율도 5% 미만인 걸 생각하면 아예 출연이 불가능하다.

글로벌뉴스통신이 주관한 1월 21일 20대 대통령후보 초청 토론회에 초청되었다. 초청기준이 TV토론 기준인 지지율 평균 5%보다 2% 낮은 3%이기 때문에 조건에 부합한 것으로 보인다. # 하지만 아무 후보도 수락을 하지 않으면서 무산되었다.

2022월 1월 26일 발표된 코리아정보리서치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5.6%가 나왔다.

한편, 대부분의 조사 결과에서 허경영은 심상정과 지지도가 비슷한데, 많은 언론에서는 아예 허경영을 기타/무당층에 포함해 발표한다. 이를 두고 허경영 지지자들은 항의를 하고 있고, 한 지지자는 차를 타고 선관위 건물로 돌진하기도 했다. # 3% 정도의 지지율이 나오는 허경영을 넣지 않지만 1%도 안 나오는 김동연 후보는 넣는 언론이 많은 것도 이들이 분노한 이유 중 하나로 추정된다.

대통령후보 TV토론에 출연하지 못하자 유튜브를 통한 단독 정책토론을 예고했다. 2022년 2월 7일 오후 2시 30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단독 정책토론을 진행하며 100명 이상의 유튜버들이 토론을 생중계한다고 말했다. #

두 번째 TV토론 역시 허경영의 참여가 불가능해지자 허경영 측은 법원에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그러나 2022년 2월 9일 법원은 신청을 기각했으며 그 근거는 "방송사들이 후보 네 명만 초청해 토론회를 여는 것은 유권자들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토론을 활성화하려는 합리적이고 상당한 차별", "방송사의 재량을 일탈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

이렇게 기각당했음에도 또 가처분 신청을 냈다. #

2월 14일, 대통령 후보 등록을 마쳤다. 소속 정당 국가혁명당의 당명이 'ㄱ'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기호 후보 번수는 원외 정당 중 가장 높은 순번인 6번으로 정해졌다.

2월 22일 마침내 군소 후보 토론회에 참가했다. 토론 이전부터 박정희 대통령에게서 받았다고 주장하는 백금 지휘봉을 꺼내 들었다. 이에 토론회 관계자는 규정위반이라며 제지에 나서자 허 후보는 "어디서 눈을 부라리고 쳐다보고 있어"라며 당장이라도 지휘봉으로 때릴 듯한 태도로 호통을 치고 "남들 자는 시간에 토론한다", "여야 후보들은 밤 1시까지 하냐 근로자법이 어떻게 돼 있어. 근로자들은 밤 1시에 근무하나. 나쁜놈의 OO들 같으니" 라고 분노를 표출했으며, 방송국과 선관위를 맹비난했다.[3] 토론회 관계자의 일방적인 진행에 반발하며 , 진행자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허 후보는 공약 발표 도중 혁대와 지휘봉을 꺼내 들었다. 그러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내게 준 선물"이라며 "박정희 대통령이 왜 이걸 (내게) 줬겠나. 대한민국을 바꿀만한 능력이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허경영의 과거 사기 전과 및 사이비 교주, 박근혜와 결혼한다는 주장 및 최사랑과의 사실혼 등이 모두 허위라고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이 일방적인 보도를 함에 분노하고 있었고,  언론의 무시를 뚫고 과도한 자기 정당 홍보 전화 및 광고 를 통해 홍보에 노력하고 있고, 비현실적 포퓰리즘 공약이 비판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토론회에서도 다른 군소 후보들과 달리 국민이 가진 피선거권자로서의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태도를 보여 논란이 되고 있다.

2022년 3월 3일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단일화를 하면서 2021년 재보궐선거때 처럼 3위 경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재보궐 때랑 달리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존재해 3위 가능성은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여론조사상에서는 심상정 후보하고 그리 큰 차이가 있게 지고 있지 않거나 동률로 나오고 있기 때문에 안철수 지지자들이 실망해서 던지는 기권표를 흡수하는 게 중요해 보인다.

2022년 2월 들어 이재명 후보가 허경영의 무궁화 꽃 발차기, "나라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도둑놈이 많은 겁니다!"라는 발언을 유세에서 사용하자 허경영 후보는 도둑질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2022년 3월 8일, 대선을 불과 하루를 앞두고 다시 투표 독려 전화를 하였다.

지상파 3사가 코리아리서치·입소스·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여론조사를 한 결과 1.6%로 1.8%로의 지지를 받은 심상정과 단 0.2%p 차이다.

그러나 심상정과 비슷한 득표율을 보일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와는 달리 0.8%를 득표해 2.4%의 지지율을 얻은 심상정에게 약 3배가량 밀렸다. 또한 허경영 후보가 그나마 3위라도 한 곳은 읍면동 112곳[4]에 불과했다. 즉, 논란이 많은 군소 후보자답게 28만여 표를 얻으면서 원외정당 중 가장 많은 득표율을 얻고 낙선하였다. 다른 군소후보보다는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대선이 끝난 직후 허경영은 뇌성마비 장애인인 20대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

그리고 2022년에도 대선 중에도 이병철의 양자, 박정희의 정책보좌관을 역임했다고 또다시 주장했다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이를 허위 사실 유포로 판단, 지난 4월 허 전 후보를 대검찰청에 고발했고 2008년 혐의와 동일한 허위사실공표죄, 즉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경찰에 입건되었다.# 허경영은 2008년 재판이 잘못되었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

2023년 10월 25일 의정부지법 제13형사부(부장판사 박주영)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허경영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발언 내용은 허위사실이 인정된다"면서 "이 발언들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지지를 호소하며 이뤄진 점, 피고인의 가족 관계나 경력 등에 관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과시하려는 목적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은 공정한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선거의 공정성을 보장한다는 입법 취지를 몰각시켰고, 선거를 혼탁하게 하고 민주주의를 훼손시키는 중대한 범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만 피고인의 연령과 선거의 결과에 미친 영향이 미비했다는 점 등을 참작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

하지만 의정부지검은 허경영한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1심 판결에 불복, 더 중한 형의 선고가 필요하다고 판단돼 항소했다.#

1.15. 제22대 총선 출마

4년 전 제21대 총선에 이어 다시 국가혁명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2순위 후보로 총선에 출마하였다.

하지만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인데다, 하늘궁에서의 행적과 불로유 등에 관련된 여러 논란으로 법정 다툼에 휘말린 상황이다. "(과거에) 허경영과 계약을 하고 빌린 돈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5]한 사업가 박경자 씨, 10년 전 허경영과 같이 찍은 사진으로 불로유 연구에 관한 허위 사실이 유포되어 명예 훼손 피해를 본 전세일[6] 원장, 사실혼 관계임을 주장했으나 허경영 측으로부터 일축당한 뒤 갈등을 빚은 무명 가수 최사랑 씨 등이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또한 하늘궁 탈퇴자 수십 명이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내가 대통령이 되면 온갖 특혜를 받을 수 있는 대통령 대리를 시켜주겠다'며 정치 자금 명목으로 돈을 갈취하고 부동산 사기를 저질렀다"며 경기북부경찰청에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 # # #

결국 범죄 혐의 전반에 대한 수사가 광범위하게 진행되면서 국가혁명당은 물론 당원들에 대한 자신의 신뢰감도 휘청였고, 선거 결과 직전 선거 때보다 무려 3분의 2가 증발한 0.23%의 정당 득표율로 모든 후보자들과 함께 낙선하였다.[7]

총선이 끝난 뒤 경기도북부경찰청으로부터 하늘궁에서 신도들을 성추행한 혐의로 수사 대상이 되었고, 하늘궁이 압수수색을 당했다. # 이후 경찰은 수사 진행 상황을 설명하며 "정치자금법 위반, 식품위생법 위반, 성추행 등의 혐의로 고소·고발이 많이 접수되었다"고 밝혔고, "성추행 혐의에 관해 압수수색을 진행했고 휴대전화와 영상 등을 확보했다"고 언급했다. 분석이 끝나면 경찰이 소환조사를 예고한 상황이라 소환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1.16. 2차 피선거권 박탈

2024년 6월 9일 밝혀진 바에 따르면 약 6주 전인 4월 25일, 앞선 2022년 제20대 대선 당시 허위사실을 공표하는 등[8]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시작된 재판의 대법원 상고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최종 선고받아 피선거권을 향후 10년간 박탈당했다. 이로 인해 2034년까지 각종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되었다. # 참고로 허경영은 2034년 피선거권이 풀릴 때에 만 86세로 거의 90살에 육박한 나이이므로 그의 정치 이력은 사실상 여기까지이다. 개헌, 탄핵 등의 변수가 없다고 가정하면, 제25대 국회의원 선거가 2036년에, 제23대 대통령 선거가 2037년에 치러질 예정인데, 이때 허경영은 세는 나이로는 이미 90살을 바라보는 매우 고령이 되어 있다. 저 많은 나이에 최근 10년 동안 아무것도 못했다면 선거 경쟁력이 전혀 없기 때문에 허경영의 정치생명은 사실상 끝났다고 볼 수 있다.[9][10]

2. 공약

2.1. 제15대 대선 10가지 혁명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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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제17대 대선 33가지 대표공약


10년 사이 5개 공약이 유지되었다.

수당 지급을 위한 예산 확보 정책으로는 1회만 실시하는 화폐도안 변경으로 불법 지하자금 몰수로 약 900조, 지자체를 감시 가능한 광역지자체만 남기고 없앤 뒤 임명제로 바꿔 지자체로 인한 예산 낭비를 막아 연간 약 200조를 확보하는 등등이 있다.

이후 2012년에는 시험, 등록금, 군대, 취직, 결혼에서 해방되는 5대 해방 공약을 쓰기도 했다.

2.3. 국가혁명배당금당 33정책

2020년 21대 총선에 출마하면서 허경영이 제안한 정책이다. 몇몇 공약이 바뀌고 지급액도 늘었다.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네이버 블로그에 허경영 33정책 만화가 그려져 있다.

수당 지급을 위한 예산 확보 정책으로는 국가예산 절약으로 300조, 재산비례벌금제로 100조, 세금혁명으로 400조, 양적완화로 2,000조를 확보해 1년에 2,800조 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1] 허경영 페이스북이면 당연히 허경영 지지자가 더 많이 볼 것이니 허경영의 표가 압도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다. 계정을 여러 개 파서 중복투표도 가능하다.[2] 그래도 0.74%로 당시 원외정당중 상위권인 우리공화당,여성의당과 비슷한 지지를 얻어 장난정당치곤 선전했다.[3] 군소후보에 대한 홀대를 표현한 유일한 후보이며, 다른 모든 후보들은 묵묵히 이런 불이익을 감수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대선 후보 토론회에 참여하지 못해서 불만을 토로했을 가능성이 높다.[4] 경기 4곳, 인천 4곳, 부산 3곳, 경남 24곳, 대구 1곳, 경북 40곳, 전남 13곳, 전북 5곳, 충남 3곳, 충북 2곳, 강원 11곳[5] #[6] 2023년 12월 21일 MBC 실화탐사대에서 방영된 '불로유 만든 허경영' 편에 출연하였다.[7] 국가혁명당은 제22대 총선에 12석을 확보해 원내 제3당이 된 조국혁신당처럼 지역구 후보 없이 비례대표 후보만 10명을 출마시켰다.[8] 삼성 이병철 회장의 양아들이었다는 주장,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밀보좌관이었다는 주장 등이 허위사실로 판명받았다.[9] 25대 총선 기준으로는 만 88세, 23대 대선 기준으로는 만 89세이다. 덤으로 11회 지선(2034년 예정)이 허경영이 피선거권이 풀리기 직전에 치러지는데, 12회 지선(2038년 예정) 기준으로는 만으로도 90세이다.[10] 물론 박지원의 사례처럼 80세가 넘었다고 해서 무조건 정치 생명이 끝장나는 것은 아니고 앞으로 평균 수명 또한 증가할 것이 분명하지만 허경영이 그 이후에도 당선될 가능성은 희박하다.[11] 유럽 및 미주지역에서는 실제로 대학 입학을 쉽게 해준다. 대신 졸업이 끝장나게 어려운 구조다. 프랑스의 대학교에서는 3번의 자질고사에서 2번 낙방하면 출교당하며, 아르헨티나의 대학교에서는 이름만 4년제이지 졸업하는 데 걸리는 평균기간이 7년 정도 될만큼 학업량이 장난이 아니다.[12] 이 자체가 모순인 게 이 공약을 지킬 경우 허경영은 대통령 당선과 동시에 퇴임이기 때문이다. 입헌군주제라면 국가수반 권한이 총리에게로 넘어가며 전제군주제일 경우 국가수반 권한이 조선 왕실로 넘어가기 때문에 이 공약이 이루어지면 어떤 방법으로 이루든 무조건 대통령이라는 보직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 아랍에미리트라면 대통령과 군주가 같이 존재할 수 있겠지만 이건 특수 케이스고 이조차도 대통령(아부다비 군주 겸직) 에 지방 군주들이 있는 것이다.[13] 이러면 서울 공화국이라 불리는 서울 과밀화가 극단화되어 대한민국 5000만 인구 중 2650만 가량이 서울특별도에 거주하게 된다. 당장 인천광역시대전광역시를 비교해보더라도 둘 다 처음 광역시가 될 때의 인구는 비슷했으나 현재는 인천만 300만을 넘어 대구광역시를 한참이나 추월해버렸다.[14] 이러면 유령기업이 융자를 먹튀하는 일이 계속 발생한다.[15] 당연하지만 이 부분은 한국 국회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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