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당 함급의 중순양함 자체에 대한 설명은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 항목 참조.
제2차 세계 대전의 독일 해군 함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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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 | 1형, 2형, 7형, 9형, 10형, 14형, 17형, 21형, 23형, | |||
경순양함 | 엠덴급, 쾨니히스베르크급, 라이프치히급, | |||
중순양함 | 아트미랄 히퍼급, 도이칠란트급, | |||
항공모함 | ||||
항공순양함 | ||||
전함 | 전노급 도이칠란트급노급 샤른호르스트급, 비스마르크급, 순양전함 | |||
어뢰함 | 어뢰함 1923, 어뢰함 1924, 어뢰함 1935, 어뢰함 1937, 어뢰함 1939, | |||
어뢰정 | 슈넬보트 | |||
훈련함 | 브렘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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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 | ||||
아트미랄 히퍼 | 블뤼허 | 프린츠 오이겐 | 자이틀리츠 | 뤼초 |
Prinz Eugen |
1. 개요
크릭스마리네의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 3번함 프린츠 오이겐(Prinz Eugen).함명은 사부아 공자 외젠의 독일어식 표기에서 유래되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의 테게트호프급 전함인 SMS 프린츠 오이겐의 이름을 계승하였다. 전쟁 내내 비스마르크 추격전에 참가하여 비스마르크가 후드를 격침시키는데 공헌을 했다. 이후 동부전선의 포격지원에 나서다가 전쟁이 끝나면서 미 해군에게 노획된다. 이후 크로스로드 작전에서 미국의 렉싱턴급 항공모함 새러토가, 일본의 나가토급 전함 나가토 등과 함께 가라앉는다.
2. 제원
건조 | 1936년 4월 23일 |
진수 | 1938년 8월 22일 |
취역 | 1940년 8월 1일 |
최후 | 1946년 12월 |
기본배수량 | 16,970t |
만재배수량 | 18,750t |
전장 | 212.5m |
폭 | 21.7m |
흘수 | 7.4m |
승조원 | 1,382명 |
무장 | |
주포 | 20.3cm SK/C 34 60구경장 함포 8문 |
대공포 | 10.5cm SK/C 33 65구경장 12문 |
대공기관포 | 3.7cm Flak 43 연장기관포 6기 2cm Flak 38 단장기관포 8정 |
어뢰무장 | 53.3cm 어뢰발사관 12관 (3x4) |
장갑 | |
현측장갑 | 80mm |
갑판장갑 | 50mm |
포탑 전면 | 105mm |
3. 함생
3.1. 건조 배경
독일이 재무장을 선언할 무렵인 1933년, 당시 독일 해군의 처지는 참담하기 그지없었다.제1차 세계 대전에 패배한 독일은 1918년에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심한 규제를 받고 있었고, 그나마 남아있던 배들은 스캐퍼플로 독일 대양함대 자침 사건으로 인해 파괴된데다가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과 런던 해군 군축조약이 체결되어 독일 해군은 거의 위기에 몰리게 된다. 이 조약으로 인해 독일 해군에게 남는 것은 대부분 도이칠란트급 전함과 같은 이미 구식화된 전드레드노트급 전함 몇척과 SMS 엠덴과 같은 구식 군함들 뿐이었다. 따라서 독일은 재해권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거의 약소국 해군만도 못한 수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1933년, 독일이 재무장을 선언하고 베르사유 조약이 무용지물이 되어나가자, 독일은 영국 해군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두기 위해 함선 몇척을 더 건조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때, 독일 해군에게 금과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소련이 급격하게 세력을 키우게 되자 이를 견제할 국가가 필요했는데, 그중 하나가 독일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영국-독일 해군조약이 체결되어 함선의 보유를 어느정도 보유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은 Z 계획이라는 야심찬 계획을 수립하여 전함 2척(비스마르크급 전함)과 중순양함 3척(아드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의 건조에 착수한다. 물론 이 3척의 중순양함에 프린츠 오이겐도 포함되어 있다.
원래 프린츠 오이겐은 계획상으로는 존재하지 않고 중순양함 아드미랄 히퍼 1척과 아트미랄 히퍼의 설계를 적용한 15cm(5.9인치) 포를 장착한 경순양함 2척을 건조하고 끝낼 계획이었으나, 소련 해군에서 180mm 주포를 장착한 키로프급 순양함이 취역하자 계획을 급히 수정하여 중순양함 3척 건조 계획을 세운다. 이에 따라 프린츠 오이겐에 대한 건조 명령이 내려졌다.
1936년에 건조 명령이 내려졌고, 4월 23일, 킬 항구의 게르마니에베르프트(Germaniawerft) 조선소에서 건조가 시작되었다.
1938년에 진수식이 이루어졌고, 그로 부터 1년 후,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다. 당시 전황이 급했기 때문에 건조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1940년 07월 01일, 거의 완성되어 갈 무렵 영국 공군에게 야간 공습을 당했지만, 다행히도 피해가 경미했기 때문에 8월 1일, 프린츠 오이겐은 정식으로 취역한다.
진수되는 프린츠 오이겐.
3.2. 실전
전술했듯 취역 전에 1940년 7월 1일에 킬에 대규모 폭격이 퍼부어졌다. 이때 프린츠 오이겐도 경미한 손상을 입었다.1941년 5월, 프린츠 오이겐은 전함 비스마르크와 함께 함장 헬무트 브링크만 대령의 지휘하에 라인 연습 작전에 참가하게 되었다. 18일, 고덴하펜을 출격해 스카게라크 해협을 통과해 북해로 나오게 되었다. 24일, 비스마르크와 프린츠 오이겐은 덴마크 해협에서 영국 해군 순양전함 HMS 후드(Hood)와 교전했다. HMS 후드는 비스마르크의 공격에 의해 두동강 나면서 격침되었다. 이때, 프린츠 오이겐도 영국 해군 전함 HMS 프린스 오브 웨일스(Prince of Wale)의 주포를 명중시켰다. 자세한 내용은 비스마르크 추격전 문서 참조.
그후, 프린츠 오이겐은 비스마르크와 헤어지게 된다. 이때가 비스마르크와 프린츠 오이겐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프린츠 오이겐은 6월 1일 항구에 입항하였고, 정확히 한달 후인 7월 1일 공습으로 손상되었다.
그리고 1942년 2월 11일에서 13일 까지 '켈베로스 작전(Operation Cerberus)'-통칭 채널 대쉬(Channel dash)라고 부른다.- 에 참가하게 되었다.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와 함께 가게 되었는데 이 작전은 영국의 도버 해협 눈앞을 통과한다는 매우 대담한 작전이었다. 3척의 주력함 중 두 전함은 기뢰에 피격되어 손상을 입었고, 프린츠 오이겐만 아무 피해 없이 통과하였다.
1942년 2월에 노르웨이로 이동했다. 그러나 2월 23일 트론 하임 앞바다에서 영국 해군의 T급 잠수함 HMS 트라이던트가 발사한 어뢰 중 1발이 함미에 명중하였다. 다행히 침몰만은 면했지만 50명의 승조원이 전사하고 항해불능 상태가 되어, 트론하임항까지 예인되어 응급수리에 들어갔으며, 5월에는 킬 항으로 수리를 받기 위해 독일로 향했다. 프린츠 오이겐은 영국 해군의 공격을 피해 5월 18일에 킬에 도착했고 직후 함미 수복 작업에 들어갔으며, 1942년 말에는 수리가 완료되어 훈련함으로 임무에 복귀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덧 1944년이 되었고, 프린츠 오이겐은 발트해로 건너가 활동하기 시작했다. 프린츠 오이겐은 요새화된 고글란드 섬에 포격을 가하기도 하고, 핀란드에서 철수하는 독일군 병력을 실은 수송선을 호위하기도 했다. 또한 도이칠란트급 장갑함 뤼초와 함께 소련의 후방도시 투쿰스에 포격을 가하는 선전성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서 대형 사고가 하나 터지는데, 1944년 10월 15일 라이프치히급 경순양함 라이프치히(Leipizig)와 충돌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그나마 프린츠 오이겐은 들이받은 쪽이었는데다가 배수량도 라이프치히보다 거의 두 배나 커서 경미한 손상을 입는 것으로 끝났으나, 라이프치히는 거의 두동강나기 직전까지 갔고 이후 간단한 수리만 받고 종전까지 말 그대로 항구에 틀어박혀 있을수 밖에 없었다.
충돌사고 이후, 프린츠 오이겐은 코펜하펜으로 이동하여 한달간의 수리를 받았다. 수리가 끝나자, 프린츠 오이겐은 11월 20일부터 21일까지 4척의 어뢰정들과 함께 Sworbe 반도에 포격 지원을 실시했다. 이 때 무려 500번의 포격을 실시한 탓에, 프린츠 오이겐의 포신이 마모되었고 이를 교체하기 위해 프린츠 오이겐은 다시 고펜하펜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1945년 1월, 포신 교체가 완료되자마자 프린츠 오이겐은 다시 임무에 투입되었다. 프린츠 오이겐은 구축함 한 척과 어뢰정 한 척의 지원을 받으며 쾨니히스베르크로 진격해오는 소련군을 방어함과 동시에 쾨니헤스베르크를 방위하는 제 18군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1945년 3월, 프린츠 오이겐은 탄약부족으로 고펜하펜으로 돌아온 뒤 그곳에서 탄약을 보충받은 후 이번에는 도이칠란트급 전함 슐리지엔과 도이칠란트급 장갑함 뤼초와 함께 코펜하펜, 단치히, 그리고 헬라 인근으로 진격해 오는 소련군을 상대로 포격을 가했다. 이 작전에서 프린츠 오이겐은 주함포에서만 2025발이 넘는 포탄을 발포했다.
1945년 4월 8일, 프린츠 오이겐은 작전을 끝마치고 뤼초와 함께 슈비네뮌데 (현 폴란드 시비노우이시치에)에 정박했다. 그리고 4월 13일 34기의 아브로 랭커스터 폭격기가 프린츠 오이겐과 뤼초를 격침시키기 위해 출격했으나, 구름이 짖게 끼어 있어서 일단은 철수했다. 이틀 뒤, 구름이 완전히 개자, 영국 공군은 다시 랭커스터들을 보냈고, 톨보이 폭탄 한 발로 뤼초를 격침시키는데 성공한다. 이 공습에서도 살아남은 프린츠 오이겐은 4월 20일 최종적으로 코펜하겐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종전 때까지 정박해 있었다. 이후 5월 7일, 독일이 최종적으로 연합군에게 항복하였고, 프린츠 오이겐은 독일 해군에서 제적됨과 동시에 영국 해군 관할이 되었다.
4. 최후
프린츠 오이겐은 격전의 한중간에서 활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종전까지 살아남은 행운의 함이었다. 크릭스마리네의 전함과 순양함 중 종전 때까지 살아남은 함선은 프린츠 오이겐 외에는 라이프치히급 경순양함 2척이 전부였다.필라델피아 해군 조선소를 항해하는 USS 프린즈 유진 1946년 3월 10일 촬영.[2] |
제2차 세계 대전이 종료된 후 전리품으로 미국에 넘겨져 승조원 중 함장 한스-위르겐 라이니케(Hans-Jürgen Reinicke) 대령 등 항해에 필요한 절반의 승조원들만 남고 나머지는 이함했고, 그 자리를 아서 H. 그로버트(Arthur H. Graubart) 대령이 지휘하는 미 해군 장병들이 채웠다. 이 상태로 보스턴항으로 미독 해군 장병들이 함께 이동시켰는데, 이 항해 중 미 해군 인원들은 독일 승조원들에게 함의 구조와 장비의 작동 방법 등을 배웠다. 양측 승조원들의 관계는 꽤 화기애애했고 별다른 마찰도 없었다. 보스턴에 입항한 뒤 라이니케 대령 등 독일 승조원들은 개인 짐을 챙겨 전부 이함해 포로로 수용되지 않고 그대로 귀국했다.
온전히 미 해군 인원들만으로 운용을 하게 된 프린츠 오이겐은, 미분류 다용도함인 IX-300 USS 프린즈 유진(USS Prinz Eugen)[3]으로서 미국 해군에 편입되었고, 그로버트 대령이 함장으로 계속 유임됐다. 조사와 시험을 마친 프린츠 오이겐은 크로스로드 작전 원자 폭탄 실험 표적 함대에 배치, 함대 유일의 독일 함선이 된다.[4] 1946년 7월의 '에이블'과 '베이커' 실험에서 침몰하지 않고 살아남았지만 잔류 방사능이 너무 강하여 수리하지 못하였다. 이후 콰제린 환초로 옮기는 도중에 얕은 여울에서 전복되어 좌초되어, 현재도 그 위치(북위 8°45'9.49", 동경 167°40'59.60")에 놓여 있다.구글맵 링크
1978년, 프린츠 오이겐의 좌현 프로펠러가 인양되었으며, 프린츠 오이겐 승조원 전우회원들의 요청에 따라 독일로 반환되어 라보에(Laboe)의 독일 해군 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여담으로 라보에 독일 해군 기념관에는 현존하는 유일한 실전투입 7형 유보트인 U-995도 전시되어 있다.
2018년 프린츠 오이겐의 연료탱크에 남아 있던 잔존유를 환경 오염 예방 차원에서 회수하였다.#[5]
유럽 해전에서 구르며 살아남았고, 종전 후 핵무기 실험에서도 버티다가 좌초되어 최후를 맞이했다는 점으로 인해 높은 평가를 받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맷집이야 당시 해군조약에서 중순양함은 규격 1만톤으로 제한했으나 프린츠 오이겐은 이를 어기고 1만 5천톤 규격이었으니 맷집이 좋은 거야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설계 문제로 배수량값을 전혀 못하였고, 배수량과 비교하면 우월한 맷집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미군에서 똑같이 탈조약형으로 만든 중순양함들과 나란히보면 과대평가가 있다. 그리고 독일 해군은 애초에 유보트를 활용한 통상파괴전 이외에 대규모 수상함대 운용을 한 것도 아니라 프린츠 오이겐이 살아남기에는 난이도가 낮은 편이었다. 오히려 더 치열한 태평양 전쟁에서 구르고도 살아남은 포틀랜드급 중순양함 포틀랜드가 프린츠 오이겐보다 더 빛나는 활약을 펼쳤다.
물론 전쟁 말기에 끝도없이 항구를 폭격하러 오는 폭격기를 피해 살아남는 것이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실제로 경순양함 엠덴, 쾰른, 그리고 중순양함 아드미럴 히퍼 등등 수많은 함선들이 공습으로 항구에서 착저 및 격침당했다. 그 와중 살아남은 건 분명 행운함 소리를 들을 자격은 충분하다. 본함의 승조원들도 소수의 전사자 외엔 다른 독일 해군 장병들에 비하면 여러모로 운 좋게 종전을 맞은 셈이다.
5. 미디어에 등장
- 우주세기 건담 시리즈 중 건담 센티넬에서는 살라미스급 순양함에, 게임 SD건담 사이코 샐러맨더의 위협에서는 치베급 중순양함에 본 함급명이 인용되었다.
- 네이비필드에 정규전함/항모트리 2차 중순양함으로 등장한다.
- 네이비필드2에서 10티어 중순양함으로 등장한다.
- 함대 컬렉션에서 등장한다.
- 전함소녀에서 등장한다.
- 벽람항로에서 SSR중순양함으로 등장하며, 로그인 8일차에 무료로 받을 수 있다.
- 월드 오브 워쉽에 독일 8티어 프리미엄 함선으로 등장. 8티어임에도 내구도가 45,000이라는 가히 6티어 전함에 맞먹는 흠좀무한 맷집을 보여진다.[6][7]
파일:external/wiki.gcdn.co/Prinz_Eugen_wows_main.jpg - Naval Creed:Warships에서 4티어 프리미엄 순양함으로 등장한다.
- 워 썬더에서 독일 4랭크 해군 프리미엄 장비로 등장한다.
- 어비스 호라이즌에서 등장한다.
- 스틸 디비전 2의 발트 도펠코프 작전 캠페인에서 슈트라흐비츠 전투단을 지원포격한다.
6. 관련 문서
[1] 위 사진은 비키니섬 핵실험에 동원되었을 당시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2] 1번 주포탑의 포신이 제거되어 있는데, 이 포신들은 실험을 위해 필라델피아 해군 조선소에서 해체되어 버지니아의 Dahlgren 해군 무기시설(현재 Dahlgren 해군 수상전 센터)에 옮겨진 뒤 전시되고 있다.[3] 미국에서는 영어식으로 프린츠 오이겐을 이렇게 불렀다.[4] 자국에 유사한 무기체계가 없거나 성능이 특출나게 우수하거나 전력 보강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전리품으로 얻은 함선을 자국의 전력으로 편입하는 것도 별 무리가 없지만, 같은 분류의 함선을 상당히 많이 보유한 상태인데다 대대적인 군축이 필요한 상황이라 굳이 전력으로 편입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하고 표적함으로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5]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석유 유출로 인한 해양 오염에 대한 인식이 미비해서 난파선의 잔존유를 그대로 방치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현대에 들어 잔존유 유출로 인한 해양 오염을 예방하기 위해 오래된 난파선의 잔존유를 회수하는 일이 종종 있다.[6] 아드미랄 히퍼도 높은 편인데 얘는 더 높다.[7] 참고로 벽람 이벤트 때 전투 임무를 달성하면 위에 있는 벽람항로 프린츠 오이겐 함장을 뽑을 수 있으니 알아두자. 만약 독일 군함 키우기 싫다면 후드도 있으니 그걸 선택하자.(눈치챘겠지만 전투 임무 완전 달성시 프린츠 오이겐이나 후드 함장 중 하나를 준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