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ce of Wales
1. 영국 왕세자의 칭호
자세한 내용은 웨일스 공 문서 참고하십시오.2. 영국 해군의 군함
2.1. 킹 조지 5세급 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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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 | 1937.1.1. | |
진수 | 1939.5.3. | |
취역 | 1941.1.19. | |
침몰 | 1941.12.10. | |
기준배수량 | 38,000톤 | |
길이 | 227미터 | |
너비 | 31미터 | |
최고속도 | 28노트 | |
주무장 | 356mm 4연장포 2기 / 연장포 1기 (10문) |
킹 조지 5세급 전함의 2번함으로, 1941년에 취역한 영국의 최신예 전함이었다. 비스마르크 추격전에 참여했고 덴마크 해협 전투에서 비스마르크가 쏜 주포탄에 함교가 피격당하고 4연장 주포탑들이 기계적 문제 등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더는 전투를 속행할 수 없어서 퇴각한 뒤 수색 작업에 참여했다가 귀환하여 6주간 수리를 받았다. 막 취역하여 혹독한 첫 전투를 치렀는데 퇴각하기 전 한방을 제대로 먹여 비스마르크가 프랑스로 도망가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했다.[1][2]
이후 윈스턴 처칠 총리가 미국의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를 만나러 갈 때 프린스 오브 웨일스를 타고 갔으며, 지중해 지역의 호송작전에 참여하여 이탈리아의 공군기를 격추하기도 하였다.
1941년 일본의 동남아시아 침공이 가시화되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서 Z 기동부대(Task Force Z)를 조직하여 파견하였는데, 이때 기함 역할을 맡았다. 원래 Z부대에는 항공모함 인도미터블이 포함되기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항해중 좌초로 수리해야 될 일이 생겨서 결국 따라가지 못했다. 결국 항공모함이 따라가지 못한 대신 동남아 지역의 항공대로부터 지원을 받기로 약속했었다. 하지만 F2A 버팔로 중심으로 편성된 동남아시아 지역의 영국 공군은 일본군에게 거하게 털려서 항공력을 지원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이것이 화근이 되어서, 일본군을 견제하려고 당당히 출항하였지만 항공지원이 없는 바람에 말레이 해전에서 순양전함 리펄스와 함께 일본 해군항공대의 육상공격기들에게 흠씬 두들겨맞고 격침당했다. 존 리치 함장과 필립스 제독은 살아남지 못했다. 배와 운명을 같이 할 것을 결심하고 일부러 배에 남았다는 설도 있고 리치 대령의 경우 퇴함을 지휘하고 마지막에 탈출했으나 너무 늦어서 살아남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프린스 오브 웨일스의 침몰은 전함의 몰락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꼽힌다. 일본군은 말레이 해전 승전 당일에 이를 소재로 한 영국동양함대궤멸이라는 군가를 만들어서 뉴스에서 불렀다. 같은 해전에서 가라앉은 HMS 리펄스와 함께 후렴구에 등장한다.
그리고 얼마 뒤, 영국은 또 굴욕을 맛보지만, 대서양 건너에 있는 별 48개짜리 국가가[3] 일본의 항공모함 4척을 조져서 전세가 역전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마지막으로 침몰한 연합국 전함이 되었다.[4]
함장 존 리치 대령의 아들 헨리 리치(Sir Henry Leach, 1923~2011)가 해군 소위로 임관한 직후 프린스 오브 웨일스에 배속되었으나, 아버지가 함장으로 부임하면서 순양함 HMS Mauritius로 전출갔고 이후 아버지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말레이 해전이 벌어지기 2일 전까지 같이 수영도 했었다는 것을 보면 부자 관계는 좋은 편이었던 모양. 여하튼 이후 듀크 오브 요크에 탑승해서 노스 케이프 해전에 참전하고 한국전쟁에도 참전하였으며 포클랜드 전쟁때는 해군 참모총장이었고 그해 퇴역했다. 최종 계급은 해군 원수.
전함소녀와 벽람항로에도 등장한다. 프린스 오브 웨일스(전함소녀), 프린스 오브 웨일즈(벽람항로) 참조.
2.2. 퀸 엘리자베스급 항공모함
2011년 6월 30일에 기공되고, 2019년 12월 10일에 취역한 영국의 신형 퀸 엘리자베스급 항공모함의 2번함에도 같은 이름이 붙었다. 2017년 9월 8일에 진수되었다. 퀸 엘리자베스급 항공모함 2번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 진수식에는 찰스 3세(당시 왕세자) 부부도 참석했다.어비스 호라이즌에 등장했다.
3. 트와이닝의 홍차 블렌드
트와이닝의 홍차중 하나로 프린스 오브 웨일스 직위에 있던 에드워드 8세의 직위를 따 이름이 지어졌다. 중국 기문 베이스의 홍차로, 기문계 홍차답게 훈연향이 난다. 바디감이 약해 가볍고 섬세한 맛을 가지고 있다.[1] 비스마르크도 프린스 오브 웨일스의 주포탄에 비장갑부위인 함수를 맞아 함수 연료탱크가 파손, 연료 누출로 항속거리가 감소하기 시작했고, 침수 때문에 함수가 눈에 띄게 잠겨 전투에 지장이 생기는 등 통상파괴작전 속행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작전을 포기하고 브레스트로 항로를 돌렸다.[2] 프린스 오브 웨일즈는 전쟁 때문에 내장공사를 완전히 마치지 못하고 작전에 참여했다. 비스마르크 추격전 당시 배에는 민간인인 군무원이 함께 탑승해 있었는데, 이들은 내장공사 마무리를 위해 군함에 탑승해 있었다.[3] 당시 알래스카와 하와이가 주로 승격되지 않은 상태였다.[4] 강구트급 마라는 착저 이후 수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