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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5 19:25:14

폴 모피

Paul Charles Morphy
폴 찰스 모피
파일:모피.jpg
<colbgcolor=#000><colcolor=#fff> 출생 1837년 6월 22일

[[미국|]][[틀:국기|]][[틀:국기|]] 루이지애나 뉴올리언스
사망 1884년 7월 10일 (향년 47세)

[[미국|]][[틀:국기|]][[틀:국기|]] 루이지애나 뉴올리언스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타이틀 없음 (타이틀 도입 이전)
세계 챔피언 1858-1860 (비공식)
Elo 레이팅 없음 (Elo 레이팅 도입 이전)

1. 개요2. 일생3. 기풍
3.1. 오페라 게임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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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폴 모피는 19세기 미국의 체스 선수, 법률가이다. 체스 세계 챔피언 타이틀 도입 이전에 비공식 세계 챔피언이었던 인물이다.

2. 일생

1837년 6월 22일 미국 뉴올리언스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 아버지 알론소 모피가 다른 사람들과 체스를 두는 것을 보고 스스로 규칙을 깨우쳤다. 이후 9살이 되었을 때는 뉴올리언스에서 체스로 그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법률가가 되기 위해서 체스를 잠시 접었는데, 이후 21살에 변호사 자격증을 받기 위해 기다리던 사이 다시 체스를 두기 시작했다. 1857년 뉴욕에서 열린 미국 챔피언 결정전 결승에서 당시 미국 최강자였던 루이스 폴슨을 5승 2무 1패로 꺾고 미국 챔피언이 되었다.

미국에서 최강자로 등극한 이후 1858년, 그는 세계, 즉 유럽으로 떠나 내로라하는 체스 초고수들과 붙는다. 처음엔 영국으로 넘어가 고수들을 이겼다. 이때 영국의 최강자 하워드 스턴튼은 대국료를 문제삼아 모피와의 대국을 대놓고 피하기도 했다. (당시 스턴튼은 전성기를 지났기 때문에 설령 붙었다고 하더라도 모피가 무난히 이겼을 것이라고 본다.) 애초에 모피가 유럽으로 도장깨기 여행을 간 이유가 스턴튼이 잘 알려지지 않은 플레이어들과 붙기 위해 미국까지 갈 수는 없다며 니가와를 시전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이 행동은 오늘날까지 까이고 있다. 영국 다음엔 프랑스 파리로 가서 장기간 체류하며 호르비츠 등 프랑스 및 유럽의 고수들을 이겼고, 독일에서 온 1851년 런던 대회[1] 우승자 아돌프 안데르센을 상대로 7승 2무 2패로 우위를 점하면서 세계 최고로 인정받았다.[2] 더 이상 1:1로는 승부가 되는 사람이 없어서 마스터 5명을 상대로 동시대국을 하기도 했고 2승 2무 1패를 했다.

모피는 유럽과 미국에서 세계 체스 챔피언으로 불리며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 러시아 왕족이 그가 묵고 있는 숙소까지 찾아오기도 했을 정도. 이 당시는 FIDE도 없었고 세계선수권도 없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타이틀은 아니었지만, 이러한 업적으로 대부분 매체에서 비공식 세계 챔피언으로 꼽히곤 한다.

세계를 평정하고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법률가 활동에 전념하겠다며 체스를 그만두고 공식적으로는 다시 두지 않았다. 전설로 남은 체스에서와는 달리 법률가로서는 역사에 남을 만한 활동을 하지 못했고 물려받은 재산으로 나태하게 지냈다. 그의 변호사 사무실에는 법률 상담을 원하는 사람보다는 체스 애호가가 더 많이 왔다고 한다. 말년에는 망상과 편집증에 빠졌으며 47세의 젊은 나이에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그의 사망 이후 새로운 체스 최강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논쟁이 생겼고 이에 공식적인 체스 챔피언을 뽑는 챔피언십이 열리는 계기가 된다.

3. 기풍

소위 낭만주의 시대 인물답게 정교한 포지셔널 플레이보단 공격적이고 전술적인 기풍을 가지고 있다. 기물 전개를 한 뒤 전개 우위를 통한 희생과 공격을 쏟아붓는 것을 즐겼다. 1.e4를 선호했고 많은 게임을 30수 이전에 체크메이트로 끝냈다. 즐겨 사용한 오프닝은 백일 땐 킹즈 갬빗이탈리안 게임, 흑일 땐 더치 디펜스모피 디펜스였다.

[include(틀:체스게임, info=Adolf Anderssen v. Paul Charles Morphy(1858.12.24 paris FRA game 6),
a8=Rb, b8=Nb, c8=, d8=Qb, e8=Kb, f8=, g8=, h8=Rb,
a7=Pb, b7=Pb, c7=Pb, d7=, e7=, f7=Pb, g7=Pb, h7=Pb,
a6=, b6=, c6=, d6=Bb, e6=Bb, f6=, g6=, h6=,
a5=, b5=, c5=, d5=Nb, e5=Pb, f5=, g5=, h5=,
a4=, b4=, c4=, d4=, e4=, f4=, g4=, h4=,
a3=Pw, b3=, c3=Nw, d3=, e3=Pw, f3=Nw, g3=, h3=,
a2=, b2=Pw, c2=, d2=Pw, e2=, f2=Pw, g2=Pw, h2=Pw,
a1=Rw, b1=, c1=Bw, d1=Qw, e1=Kw, f1=Bw, g1=, h1=Rw,
caption=1.a3 e5 2.c4 Nf6 3.Nc3 d5 4.cxd5 Nxd5 5.e3 Be6 6.Nf3 Bd6)]
오프닝이 아닌 미들게임에서는 비숍들을 꺼낼 때 흑으로 d6-e6(d7-e7) 또는 백으로 d3-e3(d2-e2)로 전개하는 것을 선호했다.

3.1. 오페라 게임

모피의 화끈한 공격 기풍을 보여주는 예시로 오페라 게임이 있다. 체스에서 가장 유명한 미니어쳐[3]들 중 하나다.

1858년 파리에서 오페라 공연 중 보라는 오페라는 안 보고 진행된 경기여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모피가 백이었으며, 상대는 체스 애호가였던 독일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카를 2세프랑스의 보베나르그 아이수아르 백작이었고 둘이 상의해서 수를 두었다.

모피는 백으로 퀸을 희생하여 체크메이트시켰다. 오페라 메이트라는 체크메이트 패턴이 여기서 유래했다.

파일:Opera_Game,_1858.gif
기보로 쓰면 다음과 같다. 1.e4 e5 2.Nf3 d6 3.d4 Bg4?! 4.dxe5 Bxf3 5.Qxf3 dxe5 6.Bc4 Nf6? 7.Qb3 Qe7 8.Nc3?! c6 9.Bg5 b5? 10.Nxb5! cxb5 11.Bxb5+ Nbd7 12.o-o-o Rd8 13.Rxd7! Rxd7 14.Rd1 Qe6 15.Bxd7+ Nxd7? 16.Qb8+! Nxb8 17.Rd8# 1-0

이 게임은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의 마커스와 칼의 체스 장면에서도 오마주되었다.

4. 기타

"The ability to play chess is the sign of a gentleman. The ability to play chess well is the sign of a wasted life."
"체스를 둘 줄 아는 것은 신사의 소양이다. 단, 체스를 두는 것은 인생을 낭비했다는 신호다."

[1] 최초의 국제 체스 대회[2] 심지어 이때 모피는 장염에 걸려 제 컨디션이 아닌 상태였다. 거머리 치료로 대량의 피를 뺀 상태라 혼자서는 서 있지도 못했다고 한다.[3] 20수 내외로 끝난 짧은 경기[4]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