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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3 08:56:49

파이어 데이

1. 개요2. 내용3. 작중 분위기와 작가의 메시지4. 비판5. 고증
5.1. 한국군5.2. 자위대
6. 얘깃거리7. 관련 문서

1. 개요

윤종석 작가가 쓴 한일전쟁을 다룬 소설이다. 1995년 소학사 출간. 90년대 이후 쏟아진 현대전쟁소설의 물결 최선두에 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이 출간된 이후로 데프콘 등 한일간의 전쟁을 다룬 소설들이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파이어데이는 한국이 개도국 수준이었고 선진국의 반열에도 진입하지 못했던 당대에 출간된 한일전쟁을 다룬 소설들과 비슷하게 일본에 상륙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자위대가 대한민국에 상륙, 대한민국을 패망 직전까지 몰아간다[1]는 전개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

고증적 완성도는 굉장히 낮지만 소설적 완성도는 높다. 데프콘 이후 쏟아진 밀리터리물이 무기 성능과 숫자와 경제력에 의한 워게임을 중시하는 반면, 이 소설은 전쟁 속의 인간군상을 그려내는 기존의 고전적인 전쟁소설에 가깝다. 가끔씩 종전 이후 후대 시점에서의 역사 기록적 묘사를 넣어 마치 다큐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승달산 감제고지 사수 전투, 광주에서의 민간인 학살 사건, 봉황 작전과 관련하여 그러한 묘사가 나타난다. 근미래인지 구별이 안 가는 자위대의 신예 무인전차 등장과 관련하여 이를 희석하려는 용도가 아닌가란 생각이 들 상황이란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2.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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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은 일본, 들뜬 분위기 가운데 수천의 참배객이 모인 신사에서 때아닌 폭탄 테러가 일어나 무려 800명에 달하는 희생자가 발생한다. 희망찬 기운으로 새해를 맞으려던 일본은 평화로운 한해는 커녕, 신정의 서막부터 광범위한 공포와 분노를 마주한다. 전 열도가 새해벽두부터 벌어진 극악무도한 무차별 테러에 경악하고 분노하는 가운데, 사건 조사에 나선 일본 수사 당국은 테러 사건 범인으로는 재일한국인을, 또 배후세력으로는 다음아닌 대한민국 정부를 지목한다.

수사당국이 제시한 증거인 현장에서 발견된 폭탄의 부품과 성분이 모두 한국 회사인 H화약의 제품으로 밝혀졌고, 범인들이 렌트카 회사에 맡긴 여권이 한국정부가 발행한 여권[2]으로 밝혀지면서 일본 정부는 이 테러가 한국인의 소행이라고 간주한다. 이에 한국 정부는 격하게 반발하고, 이로 인하여 한·일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된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방위청 장관이라는 요직 중에 요직에 임명된 극우파 정치인인 방위청 장관 [3] 후지와라가 일본 정부를 뒤흔든 끝에 결국 일본국이 테러 배후로 지목된 대한민국과의 전쟁을 단행하면서 끝내 한일전쟁이 발발하게 된다.[4]

당연히 이런저런 정황을 살펴보면 실제로는 제3국의 공작인 것으로 보이나 확실한 범인이 누구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후지와라 방위청 장관은 범인들이 잠수함으로 탈출했을 것으로 추측한다고 밝히나, 범인이 정확히 어느 나라 잠수함을 타고 나갔을지는 알아내지 못했다고 내각총리대신에게 보고했다. 그러면서 미, 러, 중, 대한민국, 북한 등 주변국 모두가 그만한 잠수함은 가지고 있다고 언급. 이후 끝까지 그들의 정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한국측에서 주변국 모두가, 일본과 한국 스스로조차 혐의를 벗을 수 없다고 추측하는 언급만 나온다.

일본은 일부 산업단지를 군수공장으로 재편하고, 한국 침공을 위해 전차 1,500량과 최신예 전투기 300기를 준비한다. 모병제를 폐지하고 징병제로 전환, 이내 자그마치 50만에 달하는 인원을 징병해서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고, 기존의 정규 자위대와 신병을 합쳐 40만 대군을 원정군으로 편성한다. 나머지 병력은 빛바랜 전수방위 원칙에 의거, 국내 치안유지를 위해 본토에 남겨둔다.

한일전쟁의 시작은 남해 항로를 봉쇄중인 항공자위대 전투기 편대를 향해, 봉쇄를 돌파하려는 한국 공군 전투기들이 공대공 미사일을 발사하며 막이 올랐다. 일본은 한국의 침략에 대한 방어라는 이 전쟁의 명분을 위해 한국 공군이 먼저 발포할 때까지 쏘지 않았고, 첫 교전인 이 남해 공중전에서 양측은 상호 2기씩 손실한다. 곧이어 미리 사세보에 집결하여 작전 준비를 갖추고 있던 53척에 달하는 해상자위대의 대함대가 독도를 향해 닻을 올린다.

자위대의 함포사격을 시작으로 독도가 점령[5]된다. 다만 이 소설에서는 독도경비대의 영웅적인 저항같은 것은 나타나지 않는다. 자위대는 그냥 함포로 독도가 가루가 되도록 까버리는 지극히 현실적인 작전행동을 한다. 여기 걸린 시간은 고작 10분.

독도 함락을 보고받은 대통령은 군 수뇌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국민감정 등을 고려하여 해군을 총동원한 독도 수복작전에 나서나,[6] 이는 사실 자위대의 페이크. 대한민국 해군의 집결을 노린 자위대의 함정이었다. 30여 척에 달하는 한국 함대가 독도로 몰려오자 일본은 자국 영공을 일시적으로 비워놓는 것까지 감수하면서 171기에 달하는 FSX와 F-15E로 편성한 공격편대를 출격시켜[7]680발에 달하는 ASM-2 공대함미사일 샤워를 퍼붓는다.

이만한 규모의 비행편대가 들키지 않고 접근하는 건 불가능하므로, 자위대는 E-3A 조기경보기를 호위하던 F-15 편대로 강력한 레이더 재밍을 걸었다. 한국 해군은 이 재밍을 받으면서 함대를 향해 접근하는 2백 기 가까운 전투기를 가까스로 탐지했으나, 보고를 받은 함대사령관 김운규 중장은 일말의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레이더에 포착된 이 노이즈 덩어리를 새떼일 거라고 주장하며 묵살한다.[8] 항공자위대의 공격으로 거의 모든 함정들이 침몰하게 되자 그제서야 부하들을 죽음으로 내몰게 된 것을 후회한다.

한국 해군은 시스패로우채프, 기관포를 총동원해서 필사적으로 자위대의 미사일을 요격하지만, 최종적으로 311발이 요격망을 뚫고 함대에 쇄도했다. 한국 해군 전투함 30척 중 19척이 격침되고 3척이 대파, 5척이 소파되고 함대 북쪽 끝에 있던 3척만 무사히 살아남아 동해상의 대한민국 해군은 궤멸한다. 특히 해군력의 중핵인 신형 구축함은 완전히 전멸했다.

나중에 한국측은 보병 1개 중대를 오징어잡이 배에 태워 보내서 독도를 수복하여 독도 공방전에서 "승리"했다지만, 애초에 당대 아시아 최강 함대로 정점을 달리던 해상자위대에 비해 열세였던 한국 해군은, 손가락만 물고 빠는 완벽한 거지신세가 되었고, 해군이 괴멸당하는 장면을 본 F-16 조종사들이 복수심에 불타 후퇴하는 자위대 함대를 추격하다가 이지스함의 방공망에 걸려 2대가 희생되기까지 하였으나, 그러한 희생 감수에도 불구하고 한국군의 전과라고는 해상자위대 구축함 1척 격침, 1척 중파, 항공자위대 F-15E 전투기 3기 격추라는 손실에 비해 너무도 처참한 결과였다.

그나마 독도를 탈환한 것도 한국군이 잘 싸워서가 아니라 한국 해군을 쳐부순 뒤 해상자위대가 수비대 하나 안 남기고 미련 없이 철수해 버렸기 때문으로, 애초에 독도 점령의 목적이 대한민국 해군의 유인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수비대 둬 봐야 관리하기만 귀찮은 데다, 전쟁에 이기고 나면 협상을 통해 차지할 수 있기도 하다.

이 해전으로 대한민국은 주변의 제해권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고, 육상자위대의 한반도 상륙이 눈앞에 다가오게 된다. 상륙지점에 대한 예상으로 육군참모총장은 일본에서 가장 가까운데다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는 부산 상륙을 예상하지만, 합참의장은 제해권 상실 상태에서 서울까지 기동하는 거리가 짧은 목포 상륙을 예상하고 목포 주둔 사단에 경계강화를 지시한다.

자위대 원정군은 합참의장의 예상대로 목포로 상륙한다. 목포에는 단 1개 사단밖에 없었는데, 육상자위대의 진격을 적어도 12시간은 지연시켜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24사단장 고영탁 준장은 자위대의 지휘소 공습을 우려하여 무단으로 사단을 후퇴시킨다.[9] 이를 알게 된 합참의장은 분노해서 고영탁을 사살해도 좋다고까지 하지만 고영탁은 정치권 실세와의 연분이 탄탄해서 잘못 건드리면 반대로 합참의장 등의 목이 날아갈수도 있기 때문에 합참의장과 육군참모총장조차도 그를 어찌하지 못한다.[10]

이로써 육상자위대는 아무런 장애 없이 파죽지세로 광주를 향해 진격할 수 있을 했으나, 목포에서 광주로 가는 도로변에 있는 승달산 고지를 선점한 24사단 예하 보병 1개 중대가 사단 본대의 후퇴에도 포기하지 않고 민간인[11]의 도움하에 참호를 완성하고 방어전에 나선다. 자위대의 이동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감제고지의 확보는 육상자위대 원정군 전체의 발목을 잡게 되고, 13차례에 걸친 포격, 7차례에 걸친 보병 돌격을 당한 끝에 부대원 전원 전사의 희생을 치르면서도 9시간 15분이나 고지를 지켜낸 투혼은 자위대의 진격을 11시간이나 지연시켰고, 광주와 그 이북에 주둔한 대한민국 국군에게 귀중한 시간을 벌어주게 된다.[12]

한국 측에서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일본군이 왜 11시간이나 진격을 멈췄는지 전혀 알지 못했으며 이 중대원들도 단순히 철수 중에 자위대와 조우하여 교전하다가 전멸한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전쟁이 끝나고 6개월 뒤에 한 전사 연구가가 승달산 고지 방어 전투 기록을 일본에서 발굴해내게 되면서 그제서야 생존한 일본측 참전자들(한국측 인원들은 민간인까지 전원 전사했으므로)을 통한 조사를 하였고, 해당 중대원들의 전공을 밝혀내어 12월 13일을 국가공휴일로 지정하고 승달산에 충혼탑을 건립해 그들의 넋을 기린다. 심지어 미 웨스트포인트의 전쟁사 교재에 수록되기까지 한다.

그러나 국군의 항전에도 불구하고 결국 광주는 자위대의 수중으로 넘어가게 되고 군경은 철수한다. [13] 이에 반해 전주는 열흘 이상 지속된 시가전으로 도시가 거의 전파되는 수준의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

그 와중에 광주 금남로에서 식량배급 중 일어난 충돌에 당황한 자위대가 전차와 헬기까지 동원해 민간인을 학살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광주에서 벌어진 일대의 대학살의 원인은 대단히 사소하고 그 전개도 어이없는 수준인데, 줄어들지 않는 배급을 받으려는 줄에 지친 한 남성이 짜증이 났는지 '쪽바리'라고 중얼거리고, 마침 주변을 지나가던 자위관이 그 '쪽바리'소리를 듣고 분노해 남성에게 린치를 가한다. 그 자위관은 한국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몰랐으나, '쪽바리'가 일본인에 대한 멸칭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던 것. 이에 군중은 집단으로 반발하게 되고 자위대와 충돌이 벌어지고, 곤봉과 방패로 진압을 나선 자위대에게 광주서 철수하던 군경이 뿌려둔 개인화기로 무장한 시민들이 응사하게 되고, 여기에 또 자위대가 대응사격을 가하면서 사태가 점점 커지게 된다.[14] 전차가 민간인을 짓밟으며 질주하고 공격헬기가 비무장한 민간인들에게 20mm기관포를 난사하는 참상이 벌어진다.
마침 일본 치하 광주의 식량 배급 장면을 취재할 생각으로 현장에 갔던 KNL이라는 방송국의 기자가 학살 현장을 목숨을 걸고 촬영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현장을 탈출하려는 중에 자위대에게 사살당한다.

사건을 보고받은 자위대 원정사령관은 대체 폭동 진압하는데 공격헬기와 전차가 왜 필요하냐 경악하며, 즉시 현장지휘관 전원을 총살하라고 명령하고, 사살된 민간인 시체를 소각하여 사실을 은폐하려고 시도한다. 헌병대를 급파해 학살에 투입된 부대원 전원을 포박하고 지휘관 전원을 총살시키라 지휘를 내리나, 이에 참모들은 몇개에 달하는 부대와 지휘관들을 날려버릴 것이냐며 반발한다. 하지만 현장을 촬영한 기자의 동료가 뒤늦게 금남로로 나가서 시체더미를 뒤진 끝에 피투성이가 된 동료의 시체와 주머니 속에 든 촬영테이프를 기적적으로 찾아낸다. 이 테이프는 곧바로 후방으로 전해져 대한민국 국방부와 대통령에게까지 전해지게 되고 곧바로 세상에 공개된다. 마이크가 고장나 소리는 녹음되지 않았지만, 영상만으로도 전 세계를 전율시키기는 충분했다.

이 영상의 공개는 국제여론을 환기시켜 일본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고,[15] 북한마저도 남한과 비밀리에 군사동맹을 맺게 하는 계기로 작용한다.[16] 그로 인하여 대한민국 국군은 북한 해군공군의 도움을 받게 되었고,[17] 휴전선에서의 위협 감소로 인하여 수기사 등 휴전선 인근 최정예 전방부대의 투입이 가능해지게 됨은 물론 봉황작전의 실행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한편 대한민국은 자위대의 서울 진격 고리를 끊고 전라도에서 돈좌시키는 등, 한숨 돌렸다지만, 내부적인 상황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 개전 이전부터 시작된 해상자위대의 해상봉쇄에 물자공급이 차단되어 전국민이 굶주리는 상황이며, 더군다나 해군은 개전 당일 동해상에서 궤멸되었기에 봉쇄망을 돌파할 여력도 없다. 바다가 장악당한 상황에서, 그나마 행운은 중국을 통해 AIM-120 등 신예 무기가 꾸준히 공급된다는 점. 광주 학살에 대한 보복으로 자위대 포로들은 잡히는 즉시 학살당하며, 수도 서울은 밤마다 자위대의 신예 스텔스 전투기 FSX의 공습에 시달린다. 날이 밝으면 숨어있던 일본인들이 군경에 의해 굴비처럼 줄에 묶여 울부짖으며 끌려나온다. 식량 고갈에 항의하며 벌어진 폭동에 경찰은 기관총을 쏘며 진압을 나서고, 그러다 날이 어두워지면 다시 자위대의 공습이 이어진다.

이 와중에 기획된 봉황 작전, 즉 도쿄 공습작전은 일본의 전쟁 수행능력을 떨어뜨리고 일본국민의 불안감을 조성하며 영공방어 부담으로 인한 항공자위대의 전력약화를 꾀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작전이었다. 그러나 작전 성공율도, 조종사의 무사 귀환율도 극히 낮은 그야말로 죽음의 작전. 더욱이 전투기 몇대에 탑재된 무장만으로는 일본의 산업시설을 마비시키는 것도 무리이며, 이것도 어디까지나 일본의 방공망을 돌파했을 때의 경우다. 물론, 산업시설의 복구는 말 할 필요도 없다. 즉, 전술적 목적보다는 국민의 사기를 올리려는 정치적이고 전략적 목적이 더 큰 작전인 것. 그 위험성을 알게 된 대통령은 작전 취소를 하고자 하나 작전에 임하는 제151전투비행대대[18] 부대원들은 모두 죽음을 각오하고 작전을 수행하고자 한다.

결국 작전 은폐를 위한 육군 3개사단의 다발적인 양동작전 하에 F-4 30기[19]가 동경을 향해 날아오른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항공자위대의 요격편대에 맞서 공대공 무장을 한 절반의 편대가 공중전으로 희생[20]되는 사이 폭장만을 한 나머지 편대[21]는 일본 본토에 접근하는 데 성공한다. 이들도 도중에 2기를 잃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최첨단 시스템을 갖춘 도쿄 주변의 환상[22] 방공망.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통한 요격이 개시되면 편대가 모두 전멸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그러나 개전 전 일본에 잠입한 특수부대원이 조총련과 함께 구성한 특수부대가 작전대로 자위대의 환상 방공망 시스템 일부를 무력화하는데 성공, 구멍이 생긴 방공망을 돌파하여 마침내 도쿄 공습에 성공하게 된다.

훗날 비행대대장과 부대대장(임시 대대장)에게 3계급 특진, 공습에 직접 참여한 대대원에게 각각 2계급 특진, 한시적으로 제정된 태극최고무공훈장의 추서 및 부대명에 영구적인 '호국' 명칭 부여 등이 이루어져 그들의 전공을 기린다. 여담으로 비행대대원들이 추서받은 중령 계급은 대대장에, 권환석 부대대장이 추서받은 준장 계급은 비행단장에 해당하는 계급이고, 장정욱 대대장이 추서받은 소장 계급은 무려 공군기능사령관과 맞먹는다.

금강에서 진격이 멈춘 자위대는[23] 전력을 아껴온 대한민국 국군의 본격적 저항[24]에 직면하여 더이상의 진격을 하지 못한데다 본토 공습까지 당한 일본은 전황을 타개할 방안을 모색하게 되고, 결국 서울까지의 쾌속 진격을 위한 대규모 금강 도하를 준비하게 된다.

금강에 놓인 다리 중 유일하게 전차의 대규모 도하가 가능한 신립대교[25]를 이용한 육상자위대의 도하작전 계획은 자위대의 교란에도 불구하고 북한 공군 에이스 파일럿등의 항공정찰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 도하계획을 알게 된 대한민국 국군은 급히 전투 후 재보급조차 완료되지 않은 해병대 제1사단과 제12보병사단의 전차[26]를 급파하여 신립대교 이북을 사수하고자 하나 자위대의 선제 포사격으로 해당 지역을 방어하던 연대 지휘부가 날아가 기선을 제압당하였고, 방어하는 전차의 대부분이 M47, M48 등의 구형 전차인 데다 수도 부족했기 때문에 계속하여 밀고 올라오는 90식 전차들과 맞서 치열한 전차전을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감당해낼 수 없어 돌파당하여[27] 결국 자위대의 신립대교 도하는 성공한다. 한국 공군도 다리를 폭파하려고 급히 전투기를 보내지만 방공망이 너무 두꺼워 실패한다. [28]

일격을 당한 대한민국 국군 역시 작전명 <토멸>을 발동한다. 1단계로 최소한의 부대가 전투에 임하는 동안 나머지 부대가 보급 등 재편을 완료하고, 2단계로 전 부대가 일시에 총공세에 나서 화력을 집중시키는 반격작전. 그러나 이는 전투중의 보급계획이 입안되지 않아 장기공세를 펼 수 없는 한계가 있는 작전이었고, 자위대가 신립대교를 넘어 지속적인 보급을 받고 있는 점에서 결코 만만치 않은 작전이었다.

하지만 해병대 특수부대의 활약으로[29] 마침내 신립대교 폭파에 성공하고, 홍성을 넘어 평택에까지 모습을 드러낸 육상자위대는 보급지원을 받지 못하고 고립되게 된다.

신립대교 폭파 성공이 확인된 즉시 작전명 토멸의 2단계가 발동되었고 수원 등에서 날아오른 대한민국 공군과 북한 공군은 건국 이래 최대 출격을 하여 압도적인 전력 우위로 영공을 장악하고 항공자위대 전투기들과 육상자위대 전차들을 파괴시켜나갔으며, 지상에서는 대한민국 육군의 각 부대가 계속하여 승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전투력이 최상의 상태인 수도기계화사단이 거지꼴의 자위대 부대를 만나자 참모들은 당장이라도 쓸어버리자며 사단장을 조르지만 사단장은 이 핑계 저 핑계대며 명령을 미룬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하는 게 '빨리 종전선언하라고. 더 이상 죽을 필요 없잖아!'

결국 자위대는 휴전과 일방적인 무장해제 의사를 제안하여 사실상 항복하며, 전쟁은 끝이 난다. 그리고 자위대 원정군의 수장인 아케치 육장은 패전에 대한 책임을 혼자 지고자 자살을 선택한다. 한편 패전의 책임을 지고 정계에서 쫓겨나고 지지세력들도 축출당하여 궁지에 몰렸지만 여전히 극우적인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재기를 획책하던 후지와라 장관은 퇴역 자위관인 요시다[30]에 의해 암살당하며 일본의 극우세력은 일소된다.

종전 이후에는 자위대가 반 이하로 줄어들게 되고 대한민국과 북한의 협력관계가 한층 강화되지만, 양국 모두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수습하는 데 적잖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3. 작중 분위기와 작가의 메시지

전체적인 전쟁 상황은 말그대로 독소전쟁의 한국-일본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앞서 서술된 바와 같이 이 소설은 전쟁속의 인간군상의 모습을 잘 묘사해낸 소설로, 단순히 전투상황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메세지를 독자에게 전달한다.

우선 주목할 점은 전쟁이 인간과 국가를 어떤 모습으로 바꾸어버리는가이다.

개전 전부터 시작된 일본의 해상봉쇄[31]로 각종 물품의 수입이 끊긴 바람에 극심한 물자부족에 시달리게 된 한국은 최소한의 배급량으로 버텨야하는 등 민간인들의 고통이 날로 높아져만 가고[32], 결국 식량 부족에 폭동이 일어날 경우 경찰이 기관총을 무차별 난사하여 강제 진압하는 등 막장의 모습을 보여준다.[33] 일본의 경우 한국의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반전시위와 극우파들의 폭동과 두 시위대의 유혈 충돌,물가 상승과 조총련을 비롯한 재일 한국인들의 테러로 치안이 엉망이 된다.

그리고 광주학살로 분노한 한국 대통령의 명령으로 한국군은 일본군과 소련군,독일군도 하지 않았던 포로를 잡지 말고 바로 사살하라는 공식 명령을 내리게 된다[34] 만약 이를 위반하여 일본인을 살려줄 경우 살려준 한국군이 즉결처형을 당하게 되고, 이전에 포로가 된 자위대원들의 경우 처형하라는 명령은 없었지만 대신 강제노역에 투입하고, 최소한의 식량만을 지급하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그러나 광주에서의 민간인 학살 영상을 시청한 일선 부대에서는 분노가 극에 달하여 아예 일본인 포로에 대한 보복학살까지 일어난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를 후회하지 않는 모습까지도.
이는 평소 선량한 모습을 보였던 한 병사가 잔인하게 포로학대를 하는 모습으로 변모했음을 언급하는 국방부장관 등의 대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심지어 한국에 체류하던 일본 민간인까지 들키기만 하면 사살당한다.[35]

결국 전쟁이 끝나지만 승자는 없었다. 전쟁으로 인해 2천억 달러의 피해를 본 한국[36]보다 군사장비 중심으로 6백억 달러의 손실만 본 일본은 그나마 상황이 나았지만 무리하게 군수생산 시스템으로 전환한 산업체계의 복구가 만만하지는 않았다고. 결과적으론 전쟁 당시 무기 판매로 돈 좀 만지고 태평양의 헤게모니를 계속 쥘 수 있었던 미국과, 일본과 한국의 고자화로 동아시아 강대국 지위를 유지하게 된 중국만 이득을 본 셈.

또한 작중에서는 무기 국산화에 소홀했을 때의 단점을 매우 노골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일본이 국제가격보다 비싼 돈을 들여가며 자국산 무기를 생산할 때 그를 비웃으며 상대적으로 저렴한 미국산 무기도입에 의존하던 한국은 전쟁 발발과 더불어 평시와는 달리 갖가지 핑계로 가격이 몇배나 급등한 무기들조차도 제대로 도입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모습이 나타난다. 그러한 역경 속에 한국군이 어렵게 사들인 암람 미사일 등은 역학관계상 일본의 일방적 우위를 원치 않는 중국 수뇌부의 비밀 지원 속에 철도편으로 중국과 북한을 경유하여 한국에 보급되는 전개를 보여주기는 한다.[37]

4. 비판

군사적 고증은 완전히 물건너간 스토리이다. 무기 조달에 관한 내용은 현실적으로 보면 무기 국산화에 대한 우호적인 시각을 2차 세계대전식으로 묘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전에 쓰이는 무기체계들은 불과 수십년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진보되고 복잡해졌으므로 개인화기나 비장갑차량같은 간단한 장비가 아닌 이상 전시상황에서 즉석 충원해내는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평시 상황에도 웬만한 나라들은 1년에 몇기씩밖에 도입할수 없는 항공기 전력은 물론이고, 가장 간단한 기갑 전력마저도 2차 대전식처럼 뚝딱뚝딱 생산해낼수 없는게 현대무기체계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는 무기들이 워낙에 단순했으므로 한달에 수백, 수천대씩 뽑아낼수 있었지만 현대무기는 그게 안된다는 뜻.[38] 반면 현대전의 기간은 아무리 길어봐야 몇달[39]이고, 짧은 경우에는 고작 1~2주면 승패의 향방을 짐작할 수 있을정도로 짧아졌으므로 아무리 무기를 국산화한다 하더라도 고작 몇달간의 기간동안 생산할 수 있는 중장비 숫자는 제한되어 있다.

거기다가 현대전에 쓰이는 중장비의 필수적인 중요부품은 대부분 수입해다 쓴다. 미국이나 러시아처럼 군사기술 세계 1위권을 다투는 거대 군사강국이 아닌 한, 경제력도 안 되면서 군사장비 구성요소를 전부 국산으로만 충당하는 나라는 없다. 이 소설에서 한국군의 대척점이자 국산화에 집착하는 일본 자위대마저도 많은 군사장비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판이다. 게다가 겉으로만 국산화라 하지 정작 부품은 외제가 많이 들어가서 이 소설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무기 국산화 적극적으로 했다고 아무런 외부 요인없이 생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90식 전차마저도 주포 포신은 라인메탈꺼 쓴다. 일본이 반대로 해상봉쇄를 당하고 부품이 고갈되면 전시에 곧바로 90식 전차를 생산해 충원할 수가 있을까? 사실 현실을 따지자면 이 소설의 내용 대부분이 말이 안되지만 무기국산화 vs 외국산도입의 논쟁은 밀리터리 커뮤니티 전체에서 만만치 않은 키배를 불러오는 소재이므로 오해를 남길 여지가 없도록 하는게 좋다. 아닌게 아니라 무인전차는 떡하니 등장하면서 자국산 헬기나 전투기. 심지어 다연장로켓이나 같은 발사대를 이용한 전술미사일은 있는지 없는지가 우스울 따름이다. 거기에 미국제 수입만 한다는 한국이 대전차 미사일이 아닌 국산 자주포 개발을 한다는 것이 어느정도 나왔을 무렵임에도 기갑장비로 하는 주제에서 작가의 전차 애호가 도가 지나쳤다란 말이 나와도 무방할 지경이다.

5. 고증

고증은 개판이므로 크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 좋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 소설의 출간시점인 1995년으로부터 약 5년후의 미래인데, 작가가 한국군의 차후 전력 증강에 대해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여 당시 한국군의 실제 무장과 일부 맞지 않는 사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과학기술 발달도 대놓고 부정하는 억지를 부린 격에 뭐하려 썼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사족이 되었다.

즉 2차대전 오마주하려다가 걸프전에도 미치지 못 하는 효율성 떨어지는 작전 전개는 비극이 약화되는 요인이 되었다.

5.1. 한국군

5.2. 자위대

6. 얘깃거리

7. 관련 문서



[1] 참고로 소설속에서 일본은 테러사건 후 징병제를 실시하여 한국과 별 차이가 없는 규모의 병력을 가진 것으로 설정. 건설용 중장비 운전자로 가족과 함께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일본인이 자위대 전차부대에 배치되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2] 분명히 진짜 여권이지만 한국 외무부는 그런 여권을 발행한 적이 없었다. 더구나 여권 주인은 한국에 주민등록이 된 사람도 아니었다![3] 소설이 집필될 당시에는 방위청이 방위성으로 승격되기 이전이었다.[4] 재미있는 점은 이 소설이 출판된 90년대 중반 당시 일본 총리는 진보정당 소속의 무라야마 도미이치였다.[5] 사실 전쟁 발발시 자위대가 확전을 노리고 독도부터 침공할 것이라는 생각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데프콘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데, 그만큼 독도가 한·일 양국의 첨예한 대립점이기 때문이다.[6] 근데 당시 해군 참모총장도 참 똥별스러운 게 자신들이 공을 세울 기회를 갖기 위해 무기는 뒤지더라도 투철한 군인 정신으로 이기겠다는 황군다운 발언으로 주력 함대를 끌고 나간다.[7] 본래 172기를 준비했는데, 갑작스러운 고장으로 출격하지 못한 비행기가 1기 있었다.[8] 애초에 새떼와 같은 저속비행체와 대함 미사일, 전투기와 같은 고속 비행체의 도플러 편이는 상이하게 차이가 난다. 그걸 모르지 않는 사령관임에도 작중에서 레이더에 잡히는 수많은 물체들을 새떼라고 일축해버리는건 자신 휘하의 전 함대가 패닉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의도된 현실부정에 가깝다.[9] 만약 전시에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군형법 제20조(불법 진퇴), 제23조(부대 인솔 도피), 제24조(직무유기), 제27조(지휘관의 수소 이탈) 등이 적용되어 총살에 처해지게 된다.[10] 결국 이도일 육군참모총장은 종전 후 정치권의 압력으로 예편한다.[11] 일제시대를 경험한 노인들이 앞장서서 공구를 들고 땅을 팠다고 묘사된다.[12] 워게임적으로 보면 목포방어사단이 후퇴하지 않았던 것과 별 차이가 없다. 고전적인 '전쟁소설'의 테이스트를 발휘하면서 시뮬레이션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은 작중 장치라고 할 수 있다.[13] 이때 상무대에 비축되어 있던 개인화기를 시민에게 지급하여 게릴라전의 기반을 만드는데, 이건 엄연한 제네바 협정 위반이다. 적군이 처음부터 작정하고 나치 독일군처럼 약탈과 학살을 일삼지 않는 이상 민간인들의 저항은 오히려 더 큰 화를 키울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작중 자위대의 최대 악행으로 지목되는 광주 대학살의 원인이 한국에도 있게 된다.[14] 대놓고 5.18 민주화운동의 오마주인 셈이다.[15] 유엔총회에서 일본을 제외한 회원국 전체의 찬성으로 일본에 대한 규탄결의안이 채택되고, 양자에게 꿀을 빨며 전쟁에 중립을 지키던 미국이 마침내 항모전단을 동원해 일본을 공격하기로 결정한다. 다만 오가사와라 제도만 일부 공습을 받았고, 본토 공격 직전 종전이 되어 본토까지는 폭격하지 않았다.[16] 소설에서 남한 지원을 결정하는 북한 지도자는 김일성이 아닌 가공 인물이다. 주석께서도 승인한 일이라는 구절이 등장하기 때문.[17] 여담으로 북한 공군 MiG-29의 에이스 파일럿은 한국공군의 F-16C를 추격하고 있던 자위대의 F-15E를 한번에 격추시킨다.[18] 여담으로 해당 부대는 제11전투비행단 산하의 F-4D 운용부대였으며, 기체 퇴역에 따라 2010년에 해편되었다.[19] 최신예 전투기를 잃지 않기 위한 선택이자, 한국군에는 도쿄까지 날아갈 수 있는 전폭기가 그것밖에 없었다.[20] 비행대대장인 장정욱 중령이 앞장서 싸웠다. 그나마도 대당 사이드와인더 한발이 공중전 무장 전부였는데도.[21] 부대대장인 권환석 소령이 지휘하였다.[22] 環狀. 즉, 고리 모양이라는 뜻이다.[23] 자위대도 보급 사정이 극악한 지경이었다. 한겨울에 제대로된 배급이 되지 않아 차디찬 통조림이나 빵조각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고 어쩌다 레토르트 카레가 한번 나온 걸 가지고 눈물나게 반기는 지경. 증원병력과 지원물자를 보내 달라고 본국으로 건너간 야마무라 육장은 사실상 전쟁을 일으킨 주범인 방위청장관이 송아지 통구이에 스키야키를 먹는 거 보고 빡친다.[24] A-10이 이 시점부터 등장한다.[25] 한국군은 다른 다리는 모두 폭파했지만 이 다리는 반격에 쓰려고 폭파하지 않고 남겨두었다.[26] 신립대교 최인근에 있는 전차부대들이었다.[27] 이 과정에서 일본측 주인공 중 하나인 아사쿠라가 전사한다.[28] 레이저 유도폭탄이나 공대지 미사일 놔두고 그냥 자유낙하 폭탄만 쓰다 실패.[29] 한국측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상준이 작전 실패를 막기 위해 원격 폭파 대신 폭탄과 스위치를 직접 연결하고 교전으로 인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그 스위치를 누른다. 폭사로 인해 상준의 시신을 찾지 못해 공식적으로는 실종으로 처리된다.[30] 한국 전선에서 한국군의 기습으로 부대가 전멸하고, 중대장과 적지 한복판에서 조난당하였으나 천신만고끝에 한국군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탈출에 성공하였으며 이때의 경험으로 전쟁의 무의미함을 누구보다도 통감하는 사람이다.[31] 개전후에는 해군마저도 전멸하였으니 대한민국은 해상봉쇄에 나선 해상자위대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32] 암시장에서 쌀 한가마가 백만원에 거래되는 막장 상황이다.[33] 다만 허공에 대고 사격하여 쫓아내는 정도로만 쓰였는지, 직접 발포하는지는 묘사되지 않는다.[34] 일본군이 포로 대우를 형편없게 하긴 했지만, 그래도 공식적으로는 포로를 "잡았다." 소련군과 독일군도 전선에서는 서로에 대한 포로학살이 만연했고 잡혀가더라도 수용소에서의 대우가 형편없었지만 적어도 공식적으로 모든 포로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다.[35] 그래도 모두가 미쳐 돌아간 건 아니라서 상기에 언급된 자위관 요시다는 들키면 즉결처분 임에도 먹을 것까지 주며 도와준 한국군 때문에 목숨을 건지고 귀환했다.[36] 그나마 남북의 군사적 협력이 이루어지면서 통일에 보다 다가가게 되기는 하였다.[37] 이 링크 등을 보면 파이어 데이의 신문광고를 볼 수 있는데, 2권의 내용으로 적시되어 있는 '중국의 은밀한 편들기?'라는 구절이 바로 이 부분과 관련한 것이다.[38] 그래도 단순한 편인 1세대나 2세대 주력전차는 어느정도 유의미한 숫자를 전시에도 뽑아낼수 있겠지만, 현대전의 주역은 이미 3세대와 3.5세대 전차로 넘어갔고 이 전차들은 사통장치를 비롯한 여러 지원장비와 전자장비를 덕지덕지 달고있는 하이 테크놀로지의 결정체들이기 때문에 이제 생산하기가 만만치 않아졌다. 웬만한 나라라 하더라도 전시 생산으로 그렇게 쉽게 만들수 있는 제원이 아니다.[39] 이웃나라끼리의 전면전 한정이라면 이것도 지나치게 길게 잡은거다. 기동력과 화력이 크게 향상된 현대무기의 특성상 전차, 전투기, 함선 등 중장비를 이용한 실질적인 전투는 채 몇주가 안걸리고 승패가 결정난다. 그 이후는 어느 한쪽이 확실한 승기를 잡은 가운데 지지부진한 소모전이나 게릴라전이 계속되는 정리절차일 뿐이다.[40] 미국 가상전쟁소설 붉은 불사조나 한국 소설인 데프콘 초판에서도 한국군 소속 A-10이 나온다.[41] 시스패로우를 장착한 광개토대왕급과 비슷한 스펙이다. 그래도 작중 시점에선 10척이나 보유. 실제로 1980년대 KDX 계획 수립 시에는 광개토대왕급만 18척 건조할 예정이었고 이순신급은 계획에 없었다. 광개토대왕급을 운용해보니 3천톤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42] 림팩 훈련 등지에서 미해군 원잠을 격침시켰다던가 항모를 타격했다던가 하는 소식이 들리면서 주목받게 되었다.[43] 일본 대기업들이 고도의 첨단기술을 집중해서 만든 무기라 야전정비창에서는 그 수준의 정비를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