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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23:45

트로츠키와 우리 조선 빨갛게 빨갛게/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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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소련
2.1. 소련계2.2. 영미계2.3. 프랑스계2.4. 기타 유럽계2.5. 조선계
3. 조선
3.1. 왕실3.2. 근왕파3.3. 수양대군3.4. 안평대군3.5. 대신파3.6. 향민계3.7. 기타
4. 남명5. 북명6. 일본
6.1. 마극종6.2. 무로마치 막부
6.2.1. 쇼군파6.2.2. 간레이파
7. 몽골8. 여진9. 모스크바 대공국10. 폴란드-리투아니아11. 신성 로마 제국12. 카스티야 왕국13. 아라곤 왕국14. 포르투갈 왕국15. 교황청16. 피렌체 공화국17. 메시카18. 오스만 제국19. 크림 칸국20. 마자파히트 제국21. 드막 술탄국22. 믈라카 술탄국23. 미래 세계

1. 개요

웹소설 트로츠키와 우리 조선 빨갛게 빨갛게의 등장인물을 정리한 문서.

이름 옆에 ★ 표시가 있으면 가공의 인물이다.

2. 소련

2.1. 소련계

오랫동안 객지에서 망명 생활을 이어가면서 나이를 먹으니, 그 레닌마저 기겁했던, 지랄맞기로 유명한 성격이 조금 유해지기는 했지만, 어중이떠중이였던 붉은 군대를 통솔하고, 강군으로 양성하여 신생 소련을 지켜냈던 카리스마는 여전하다.
그리고 "'스탈린주의'나 '트로츠키주의'나 별 다를 게 없고 트로츠키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이들은 정세판단 못 하는 머저리거나 대장 노릇하고 싶어하는 기회주의자다."라고 까면서 일만 잘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등 노회한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다. 그렇지만 자신을 숙청하고 추방한 정적, 이오시프 스탈린을 향한 강렬한 증오심만은 일반적인 인식과 다를 게 없다.
우연한 사고로 역사가 뒤바뀌어 프랑스에서 추방당하지 않고 계속 파리에 머물던 중, 에두아르 달라디에 프랑스 총리의 권유를 받아 정치인으로서 재기하기 위해 15,000명에 달하는 의용군을 이끌고 한창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스페인으로 향했으나, 스탈린의 부히들이 중간에 국민군에게 정보를 의도적으로 흘려서, 목적지였던 바르셀로나 땅을 밟기도 전에 프랑코 국민군의 어뢰 공격을 받았다.
그런데 정체를 알 수 없는 바다 안개에 휩싸여 지중해에서 물고기 밥이 되는 대신 1452년 조선국 원산에 이르렀다. 이후 원산현 호장 김밀의 장계를 읽고서, 자신들이 '일본령 조선'으로 공간이동을 한 게 아니라 시간을 거슬러 중세시대 조선에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 조희선, 하령군 이화의 토벌군을 연달아 방어전에서 격파하고 자치권을 공식으로 인정받았다.
원산 소비에트 공화국이 건국된 이후에 군사인민위원, 인민위원평의회 의장, 그리고 사실상 공화국의 구심점으로서 정력적으로 스탈린을 폄훼하는 연극을 만드는 등 국정에 임하고 영구혁명파와 현상유지파를 중재하던 중 조선의 소장파 관료들이 내전을 피해서 아직 어린 나랏님(?)을 데리고 망명하자 그 사실을 숨긴 채 중립을 선언했다. 그리고 '양국 간 이해 증진'을 목표로 열린 경연에서 이홍위에게 공산주의가 무엇이고 유물론이 무엇인지 가르쳤다. 세 대군의 난이 끝난 이후 복벽에 성공한 이홍위의 지명으로 잠깐 동안 조선의 섭정으로서 대리청정을 하였었다.
귀국 후에 원래 직책이던 소련의 인민위원평의회 의장으로서, 30여년간 통치를 위해 연임하다가, 극심한 과로로 인해 한 번 의식불명 상태로 쓰려져 치료를 받은 뒤에 건강 상 문제로 마침내 사임한다. 은퇴 후 정원을 가꾸고 자서전을 쓰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실제 트로츠키가 남긴 것과 거의 동일한 유언장을 쓴 직후에 노화로 인해 자연사했다.
사후 엠버밍해서 우상화하자는 등의 제안은 부결되고, 트로츠키와 사제 관계이자 유사 가족 관계였었던 이홍위의 제안과 그로 인한 최종 결정에 따라, 트로츠키의 유해를 그의 사저에 수목장하였고, 사저는 박물관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과 경험을 최대한 살려내어, 원산 및 조선을 비롯한 수 많은 소련 가맹국들의 농업 경제를 근대화한 총책임자로서 활동하였다. 소련 건국 이후 농업인민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이홍위의 복벽 이후로는 조선 향민계에 파견되어 에릭 아서 블레어와 그의 추종자들 같은 이상주의자 팔랑귀들 틈새에서 얼마없는 실무자로서 고생하였다.
소련 내에서 트로츠키 다음 가는 정치적 거물로 트로츠키를 몰아내고 정권을 잡을 기회를 계속 노리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이후 전략을 바꿔서 자신이 살아있을 때는 몰라도, 그 다음 세대에는 사회혁명당이 집권할 수 있도록 전략을 바꾼다. 트로츠키가 의식불명이 되었을 때 임시 정부수반이 되면서 드디어 꿈에 그리던 집권을 하나 했는데 2일만에 본인도 과로로 의식불명에 빠지면서 겨우 2일천하에 그쳤다.
트로츠키 사망 후 인민평의회 선거에서 공산당이 분열된 덕에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트로츠키 사후 공산당이 분열된 것처럼 자기가 죽은 후에 사회혁명당이 분열되는 것을 막으려면, 차기 지도자를 정해야 한다는 결론을 깊은 고민 끝에 내리고, 정계에서 은퇴하여 후계자감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유자광에게 인민위원장 자리를 넘긴다.
몽골의 기병들과 함께 동부 유럽 일대에서 거의 기계적으로 약탈과 전쟁을 반복하며 아카토프의 경우 '악마상장', 바토르스키의 경우 '수레바퀴'라는 별칭을 얻게 된다.[1]
고르바초프는 성이 하필 소련을 멸망시킨 그 인간과 같아서 시도때도 없이 드립의 타겟이 된다. 이름을 듣고 불길한 느낌을 받는 트로츠키와 에드워즈라던가, 위의 둘과 함께 유럽에서 날뛰면서 얻은 별명이 '경제 파괴자'라던가...

2.2. 영미계

영어권 국가들과 아일랜드를 하나로 묶었다.
이홍위의 복벽이 성공한 이후 섭정직에 오른 트로츠키의 측근으로서 영의정으로 제수되어 직위상으로 조선의 최고 권력자가 됐다. 그렇지만 원산과 조선 간의 합의에 따라 문인일 뿐 정치인은 아닌 허수아비 내지 명예직이였기에 금성대군과 대신파의 사면을 요구하는 상소를 쓴 것을 제외하면 조지월(朝支月)이라는 호을 짓고 양반 자제들과의 사교활동에 열중했다. 그런데 끼리끼리 논다고 자기처럼 좋게 말하면 생각이 유연하고 편견 없는, 나쁘게 말하면 머리에 든 거 없고 줏대도 없는 선비들이랑 어울리다 보니 농촌 공동체 중심의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는 인민주의자(나로드니키)로 각성했다.(...)
트로츠키는 이를 막으려다가 곧 쓰임새[2]를 발견하고는 오히려 권장한다. 이들은 곧 향민계라는 이름의 집단으로 발전하고 머리에 꽃밭만 들어찬 블레어를 대신해 김종직을 비롯해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렇지만 신생 파벌이다보니 신진 사류가 성장할 때까지는 일단 블레어를 실권은 없지만 좌우의정 없이 유일한 정승으로 두고 향민계의 편의를 봐주는 등 의도적으로 밀어주게 된다.
작중 등장인물들에게 현실 감각이 없는 이상주의자라고 까이는 횟수가 꽤 많다. 트로츠키 등 소련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신숙주나 이홍위 등 조선인들마저도 말이다.
트로츠키 입장에서는 죽어도 안 아까운 인물인지라 조선을 협박하는 에센을 상대로 시간을 끌거나, 에센의 군세에 생존을 위해 피난 온 만주의 여진족 난민들을 관리 및 중재하는 등 북방에서 뼈가 빠지도록 구르게 된다. 이 와중에 반쯤 의도치 않게 해버린 사소한 행동으로 여진족 난민들 사이에서 자생적으로 사회주의가 싹트자, 이를 알게된 상부의 명령에 따라 민족문제 전문가로서 에센의 정복으로 타타르의 멍에가 갱신된 루스의 총관으로 파견가게 된다.
조선의 내란이 정통 세력인 세자 이홍위와 소장파의 결정적인 승리로 끝이나게 되자, 소련의 건국 과정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내각의 사회복지인민위원 자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믈라카 술탄국의 재상 툰 페락이 방문했을 때, 소련의 몇 없는 말레이어 구사자라는 이유로 통역으로 그의 귀국길을 수행하게 되었으며 이후 얼떨결에 잔지바르까지 가게되었고, 또 유럽까지 긴 여행을 하게 된다. 이 과정을 여행기로 남겼는데, 이 여행기가 쥘 베른이 연상되는 벨 에포크 분위기의 문체로, 외전 회차에서 연재되어 호평을 받았다.
잉글랜드 귀족인 부모의 영향으로 문장학, 라틴어 등의 고급 학문들을 강제로 익혔고, 이것이 쓸모없다고 생각했었으나, 이 지식들이 작중 사건사고를 해결하는 데에 아주 요긴하게 쓰인다. 이후 소련 정보총국으로 배속된 뒤 주 피렌체 스페인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대사로 임명받아, 이탈리아 내전에서 큰 활약을 한다.

2.3. 프랑스계

2.4. 기타 유럽계

2.5. 조선계

스피리도노바가 의식불명에 빠졌을 때 발빠른 대처로 당의 공중분해를 막는 공을 세우면서 사회혁명당의 차기 지도자로 유력해졌다. 트로츠키 사후 선거에서 승리한 스피리도노바가 유자광에게 인민위원장 자리를 넘기고 은퇴하면서 트로츠키에 이어 두번째 인민위원장이 된다. 역사에는 주로 전설적 인물인 최금옥과의 관계가 강조될 뿐, 유자광 본인은 별 특징없는 밋밋한 지도자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이후 별장을 등록하는 과정에서 무두질 기계 홍보 포스터[3]를 보고는 공장을 정부 소유로 돌리고 생산자 조합을 결성하여 가죽공장까지 운영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간 지역 일자리 창출을 해온 과정에서 얻은 명망을 통해 생산자 조합장을 역임하고, 사치를 하는 성격이 아니니 늘어나기만 하는 수입을 정부와 사회에 환원하다 보니, 얼떨결에 노동영웅 훈장을 받고, 제화공 소비에트 대표로서 소비에트 의원직에 나서기까지 한다.
그렇게 입문하게된 정치에는 초연해보이는 듯 했으나, 마리아 스피리도노바와 정치적 거래로 자신의 아들 유자광을 스피리도노바의 부관으로 넘긴다. 이후 하네스 마이어의 후임으로 산업인민위원까지 역임하게 된다.
그러나, 양아버지와 다른 점으로는 대외 확장 정책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식민주의적 행보 논란 때문에 벌어진 원산 내 유럽계 민족주의자들의 소요 사태에서 조선계 주민들을 대표하여, 소련 인민경찰들의 폭동 진압을 지지하며 유럽계 민족주의자들을 비판하는, 이상주의적 모습보단 현실주의적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3. 조선

3.1. 왕실

이후 원산의 힘을 빌어 수양을 무너뜨리고 다시 왕위에 오른다. 복벽 이후엔 경복궁 내에 한림원이란 콘크리트 건물을 세우곤 동서고금의 철학을 공부하여 원산의 경험을 조선에 적용시키는 가교 역할을 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다. 누구보다 왕의 공부를 위해 힘써야 할 조선의 신하들이 '주상께선 공부에 미치셨다.'라고 할 정도로 연구에 미친듯이 매달려서 국혼도 이립이 되어서야 할 정도.
원산에서 트로츠키의 도움을 받음과 동시에 자신을 둘러싸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 때문에 왕이란 작위에 대해 일종의 혐오감을 나타내고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라고 생각했으나, 트로츠키와의 대화로 전제군주정 국가의 왕으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인정하게 된다. 다만 원산에서의 일로 봉건적인 의식은 거의 사라져서 스스로를 '동지'라고 부르는 것을 선호하며[6] 논문을 왕후와 공동저자로 제출할 때 이홍위라는 이름 그대로 서슴없이 제출하기까지 한다[7].
자신의 후계자가 될 원자가 탄생한 이후, 아들을 걱정하는게 아니라 자신의 아들 때문에 공산주의 체제가 위협받을까 걱정한다. 이후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조선이란 나라의 근본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마르크스를 문묘에 공자와 대등한 위치로 배향하거나 정도전을 복권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다.
사후 원역사와 같은 단종이지만, 대리청정을 하게된 윤순비의 제안[8]에 의하여 '끝 단(端)'이 아닌 붉을 단(丹)을 쓰는 단종(丹宗)이라는 묘호를 받는다.

3.2. 근왕파

원산 망명 동안에는 늦게 배운 포커로 노름판을 전전하면서 무료함으로 달래다가 그 특유의 천재성으로 '저들'이 경연에서 말한 '근대 자본주의적 사회'의 함의가 무엇인지 벼락처럼 깨달아 내면의 '유학자 신숙주'를 죽이고 '근대인 신숙주'로 거듭났다.[9] 그리고 먼 미래에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동아시아 공산주의 혁명 대전략'을 입안하고 그 프로젝트의 총책임자로서 일본으로 건너가 통상 전면 허용을 선언하여 수양대군을 엿먹이고 일향종 신도들 사이에 레닌 신앙을 퍼뜨렸다.
이홍위의 복벽이 성공한 이후 예조판서직에 올랐다. 복벽 후 3파벌 중 친소파의 좌장.
왕자의 난 이전부터 건축에만 몰두해 지탄받는 사람이었지만, 복벽 이후로는 조선의 재개발 붐과 더불어 하네스 마이어와 만나고 난 뒤에 같이 의기투합하여, 건축 얘기만 나오면 서로 미쳐날뛰는 건축광이 되었다.
물론 자기 본분에 최선을 다하는 게 되려 독이 될뻔한 일도 있었는데, 트로츠키가 조선 섭정으로 있을 때 하네스 마이어와 예산 생각도 하지않고 너무 많은 자금과 자원을 충당하고, 그로 인해 생길 부작용들을 생각치 않은 상태에서 조선과 원산을 주먹구구식으로 '재개발'한 것이였다.
당연하게도 귀국한 트로츠키가 사태 파악이 끝나자마자 극대노하였으며, 두 건축광에게 '이 난장판'을 수습하지 않으면 혼춘 탄광에 일벌백계 목적으로 투옥할 것이라고 은근슬쩍 협박하여 사태를 수습할 것을 명령했다. 굴라그는 죽어도 싫었는지 동료 하네스 마이어와 함께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변경하면서, 사태를 그나마 좋게 마무리지었다.
숙청 이후에는 정치적 기반이 전부 날아간지라 소련에 빌붙어 친소파로 분류되나 소련 입장에서도 쓸모가 없기에 몽골, 루스로 파견되는 등 안 죽으려고, 열심히 구르게 된다.

3.3. 수양대군

이 장면이 트로츠키가 이홍위에게 헤겔의 주인-노예 변증법을 가르쳐주는 장면과 교차되는데, 이 소설에서 가장 훌륭한 연출 중 하나로 손꼽힌다. 한확을 살해하고 몇 초 지나지 않아 한확의 종의 철퇴에 맞아 사망했지만, 그 사이 몇 초간 노비가 아닌 운명의 주인이 되며 자유로움을 느꼈고 수양대군, 안평대군 등 높으신 어른들은 노비의 칼질 한 방에 운명이 뒤틀려버리며 운명의 노예가 된다.

3.4. 안평대군

3.5. 대신파

3.6. 향민계

3.7. 기타

4. 남명

5. 북명

주기옥 사후 제위를 계승한 뒤에 소련을 모방하여 산업화를 시도한다. 산업혁명기 영국이 연상될 정도로 노동자를 착취하고 고통을 주는 구조였음에도 어느정도 성과는 있었으나, 몽골의 배신으로 남명에게 무력하게 정벌당했고 본인도 사망한다.
그러나 사후 반 주견심파들에 의해 우상화되어 생전의 실책들마저 전부 미화되고 자애로운 노동자의 아버지로 기억되게 된다.

6. 일본

6.1. 마극종

6.2. 무로마치 막부

6.2.1. 쇼군파

6.2.2. 간레이파

7. 몽골

조선 섭정 자격의 트로츠키가 교섭을 시도하여 예상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호시를 개설하는데 성공했고, 이 과정을 피 한 방울 없이 조선을 굴복시킨 것으로 인정받으면서 몽골족으로부터 카간으로 인정받게 됐다.
내부가 안정되고 조선, 소련과의 무역으로 당시 다른 철기와는 비교도 안되는 강도와 물량을 자랑하는 소련제 강철을 얻게 되면서 무력적으로도 강대해지면서 칭기즈 칸 급의, 아니 그 이상가는 속도의 정복전쟁을 펼치는 희대의 정복군주가 된다. 모굴리스탄 칸국, 주치인 울루스까지 정복해 옛 제국을 재건하고는 트로츠키가 나온 루스를 경계해 거의 빠져나오기 직전이었던 타타르의 멍에를 다시 씌우고야만다. 명나라가 다시 흔들리는 틈을 타서 이번에는 북경을 털어먹는데 성공한다. 나이가 든 후 아들인 호루크다슨에게 권력을 양위한다.

8. 여진

9. 모스크바 대공국

에센 타이시에게 정복당하면서 미래인들이 자신들이 만든 나비효과를 깨닫게 된다.

10. 폴란드-리투아니아

11. 신성 로마 제국

12. 카스티야 왕국

13. 아라곤 왕국

14. 포르투갈 왕국

15. 교황청

16. 피렌체 공화국

17. 메시카

18. 오스만 제국

19. 크림 칸국

20. 마자파히트 제국

21. 드막 술탄국

22. 믈라카 술탄국

23. 미래 세계

그러나 이는 단순히 잉여인간 치우기가 아닌, 눈엣가시 같은 트로츠키와 소련 내부의 반체제 인사들, 그리고 트로츠키의 추종자들을 모두 한 번에 죽여 없애려고 준비한 차도살인이었다. 트로츠키가 스페인으로 향하자 곧바로 국민파에게 정보를 흘려 원정군이 이베리아 반도에 닿기도 전에 어뢰 공격을 받게 했다.
본인은 꿈에도 모르고 있지만, 원산 소비에트 공화국 내 조선계 주민들 사이에서 일종의 재앙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작중에서는 실제로 등장하기 보다는 보통 다른 등장인물들이 '상상하긴 싫지만 스탈린이라면 해결책을 내놨을까?'라고 고민할 때쯤 '상상속 친구'...아니 '상상속 민족전문가'로 등장한다.


[1] 유럽인들에게는 귀족 포로를 잡으면 당연히 명예를 존중하여 정중히 포로 대우를 해주고 몸값을 받고 석방하는 것이 상식인데, 오히려 귀족들만 전부 처형해버리고 평민들은 살려주는 아카토프는 유럽인의 이해를 벗어난 존재이고 피에 굶주린 악귀처럼 보일수밖에 없다.[2] 사회적으로는 농촌의 붕괴를 막으면서도 공산주의 사회로의 이양을 주도하고 정치적으로는 신숙주의 친소파와 박팽년의 대신파의 무한 대치 상태 사이에서 세번째 파벌을 만들어 상호 균형상태를 이루고 국왕이 양 파벌을 번갈아 숙청하며 자신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사태를 방지한다.[3] 기계를 통해서 인력 집중이 필요 없게 되다 보니 중공업과 비교해서 소련 정부에서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사업인데다, 이렇게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을 인민위원평의회에서 원산 시민은 생산자 조합을 결성하면 누구든 불하받을 수 있게 하자고 했으나, 조선인들이 신량역천으로 여겨 꺼리다보니 결국 누구도 손대지 않게 되었다.[4] 정확히 말하면 소장파 관료들이 늦은 밤에 깊은 잠에 빠져있던 어린 단종을 술에 취한 상태로 데리고 튄 것이다.(...)[5] 그래서 용상을 차지한 수양대군이 단종이라고 묘호까지 올렸다.[6] 그래서 소련 의회에서 부르는 호칭은 '조선국왕 동지'였다가 자주국화 이후엔 '대군주 동지'로 불렸다.[7] 면접대상자인 김종직이 놀라 피휘의 관습을 언급하자 원산에 보낼 것이라고 간단히 해명하기는 했다.[8] 정확히는 단종이 살아생전에 윤순비에게 남긴 부탁에 따라서[9] 그래서 호인 보한재라 불려지는 것도 거부한다. 그러나 호로 부르지 말라고 하자마자 단종은 이전처럼 전하라고 부르면서 처세술은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10] 노먼 베순.[11] 동일인물이다.[12] 외적으로는 소련의 침공을 받고 내적으로는 세 대군의 난이 벌어지고 있었다.[13] 문제는 그 계획이 피로 얼룩진 조선의 건국 및 초기 역사, 특히 왕자의 난과 선죽교 정몽주 피살 사건에서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한 모티브를 얻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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