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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연(經筵)은 고려ㆍ조선 시대에 임금이 유학의 경서를 강론ㆍ연마하고 더불어 신하들과 국정을 협의하던 행사. 쉽게 말하면 임금이 신하들이랑 유학 내용 토론하는 행사이며, 경전(經典)을 공부하는 자리라는 뜻이다.2. 내용
고려사에 의하면 12세기에 예종이 '경연(經筵)'을 처음 도입했고, 태자 또는 원자를 교육하는 자리는 '서연(書筵)'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원 간섭기로 인해 한동안 국왕이 개최하는 경연도 서연으로 명칭이 격하되었고, 공민왕 때에 사헌부에서 경연 개최를 요청한 후 공양왕 때에 다시 명칭이 경연으로 정립되어 조선시대에 계승되었다.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에는 서연도 세자를 교육하는 자리의 이름이 된다. 세자를 교육하는 기관은 시강원이라고 했다.경연은 전한 선제가 유학자들에게 유교 경전(오경)을 강의하게 한 것에서 유래한다. 이후 송나라 태종 때 경연이라는 개념이 확립되었다. 한국사에서도 신라의 국학에서 임금에게 경론을 강의하는 등 비슷한 활동은 그 전부터 있었지만 중국 송나라에서 경연 제도가 확립되면서 고려 초중기에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중국에서는 원나라 이후 형식적인 행사로 그친 반면 한국의 고려-조선에서는 유교의 이상정치를 실현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중요한 학술 행사이자 정치 행사로 자리잡았다.
경연의 기능은 크게 둘로 나뉘는데, 유교 학문/교육의 기능과 정치적 기능이다. 본래 목적은 학문/교육의 기능으로 군주와 신하들이 함께 유교 경전을 연구함으로서 국정 운영의 기초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각종 유학 서적의 편찬 및 보급도 병행되었다.
정치적 기능은 본래는 부수적인 형태였으나, 점점 경연 자체의 목적이 되었는데, 바로 신권과 왕권의 조화이다. 경연은 그 특성상 대부분이 신하가 군주에게 유교 경전을 '가르치는' 형태로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군주의 실책이나 이후의 정책 계획에 대한 비판이 가해졌다. 군주로서는 경연 자체의 가치를 무시할 수 없었으므로 이 비판을 가급적 수용해야 했고, 이를 통해 왕권을 제한하고 신권을 유지하는 견제 효과가 일어났다.
그래서인지 실록을 보면 경연을 놓고 왕과 신하의 다툼이 비일비재하다. 경연 중 분쟁은 당연한 것이며 경연 참가를 원치 않는 군주와 참여해야 한다는 신하들의 실랑이가 수없이 기록되어 있다. 경연을 꺼렸던 왕은 대표적으로 태조, 태종, 세조, 연산군, 광해군이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을 보면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한 왕들이라는 점이다. 조선 최고의 왕권을 호령했고 과거에 급제한 경력이 있으며, 임금을 가르쳐야 할 경연관들이 쩔쩔 맬 정도의 유교 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 태종도 억지로 신하들을 찍어누른 채 경연에서 빠진 적이 많았다.
태종은 경전에 대한 지식과 말빨로는 신하들에게 밀리지 않았지만, 왕권 강화를 추구한 본인의 의지 때문에 경연을 자주 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세조와 연산군은 경연을 아예 정지했고 광해군은 했던 횟수가 14회로 1년에 한번도 하지 않았다. 그나마 연산군은 재위 10년 경까지는 좀 했다가 갑자사화 이후 폐지한 케이스다.[1] 태조는 경연을 안 하려다가 역관광을 맞고 다시 했고, 세조는 술자리 중에 경연을 여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조는 자신은 경연을 폐지했지만 성균관 유생들과 무신들에게는 끊임없이 배울 것을 권하면서 "유생이 글만 읽으면 약해서 뭐에 쓰고 무신이라고 공부 안하면 금수와 뭐가 다르냐?" 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경연을 폐하는 대신 강독과 강학 시간을 늘렸는데, 유교 경전이 아니라 수학이나 의학 같은 소위 잡학서들을 읽게 해서 대신들이 상당히 안 좋아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김종직이 강학 시간에 수학책을 강독하던 세조에게 분노하여 '이런 잡학 따위를 공부하는 것은 선비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라고 비판하다가 파직당했다. 이런 강학 과정에서 세조가 집필하여 나온 책이 의약론, 병장설, 주역전의구결 등이다.
물론 신하라고 경연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경연을 꺼리는 대신들도 많았다. 이유는 바로 여유 시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행정업무를 하기에도 바쁜데 그 안에서 경연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논박을 받을 수 있어 따로 시간을 내서 공부해야 했다. 오늘날과 비교하면 직장인들이 회의 시간을 오래 보내는 것을 꺼리는 이유와도 같다.
다만 조선시대에 실질적인 행정업무를 한 곳은 육조의 실무형 관료들이었고, 경연에 참석해 왕과 함께 경연을 논할 정도의 대신들은 의정부에 소속되어 나랏일에 대한 전반적인 로드맵 구성, 의사결정, 기타 왕에게 나랏일을 조언하는 정도의 업무를 하였기 때문에 왕과의 경연에도 참석을 못 할 정도로 몸이 바쁜 경우는 전쟁이 터졌다던가 하는 아주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별로 없었다. 오히려 상기한 바와 같이 왕과의 정치적, 인간적인 상호 조율의 측면에서 경연에 참석하는 것이 대신들에겐 상당히 중요한 일로 여겨졌기에, 그냥 바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경연에 참석하지 않는 행동은 왕과 대신들 모두 핑곗거리로만 여겼다. 율곡 이이 같은 대학자마저 경연일기라는 기록까지 남기며 왕과의 경연을 중시했기 때문에 당장 저런 핑계를 대며 경연에 자주 참석하지 않는 이에겐 같은 대신들도 뒷담화를 까며 수군거렸고, 왕 또한 경연을 싫어했던 쪽은 딱히 별 말을 안 했지만 경연을 중시했던 왕들은 이를 좋게 보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정조가 초계문신제를 실시하며 신하들에게 일갈한 내용도 같은 맥락이다. 때문에 조선에서도 경연에 참여를 잘 하지 않는 이런 대신들은 오늘날로 굳이 비유하자면 위에 언급한 것처럼 직장인이 회의시간을 꺼리는 정도를 넘어 국회의사당에서 국회의원이 졸고 있는 모습 수준으로 안 좋게 봤다.
반면 경연 자체를 좋아하는 왕도 존재하는데 대표적으로는 세종과 정조가 있다. 세종은 재위기간 동안 경연 횟수가 1898회로 경연을 아예 즐겼다. 세종의 재위기간이 32년이니 대강 매주 한두번 꼴로 경연을 했다는 얘기다.[2] 게다가 가르치는 입장인 대간들이 오히려 쩔쩔맬 정도로 학식이 넘사벽이었다. 세종 다음으로 경연을 좋아했던 왕은 정조인데, 신하들에게 공부 좀 하라고 했을 정도였다. 나중에는 아예 경연을 폐지하고 자신이 직접 중하급 관리를 가르쳐 발굴하는 초계문신제를 펼쳤다.
성종, 중종, 효종, 영조도 경연을 열심히 하였다. 이들의 공통점을 보면 대체로 정통성이 떨어지는 왕들이 유학자들에게 충실한 왕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경연을 열심히 하였다. 이 중에서도 특히 평소 학업에 열중하며 다혈질적인 성격에 연륜까지 갖춘 영조는 경연관조차 압도하는 실력을 선보였다.
경연시간에 사용한 책은 성리대전(性理大全), 근사록, 소학, 심경, 대학연의, 정관정요, 국조보감, 자치통감이었다. 주로 중국의 유교 성현들이 남긴 가르침을 외웠다.
종종 경연은 정치적인 대 사건의 포문을 여는 무대가 되기도 했다. 한 예로 폐비 윤씨의 사사는 경연 도중 윤씨가 폐비라지만 그래도 전 국모니 최소한의 예우는 갖춰주자는 말이 나온 것에서 시작되었다.
오늘날로 치면 대통령의 정책 자문위원회와 비슷한 면모가 있다 대통령이 잘 모르는 비전문적인 정책이나 왕의 학식과 교양을 학습하는 것이 비슷한 면이 있다. 다만 정치적 기능 면에서는 경연에 비해 그 중요도가 떨어진다.
국정감사와도 닮은 구석이 있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국회의원들에 의해 행정부의 정책이 비판받는 과정은 성리학의 근간을 이루는 사대부에 의해 국왕의 정책이 비판받는 과정과 닿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