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통치행위(統治行爲)는 국가기관이 행하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서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하기에 부적합할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판결이 존재하는 경우에도 그 집행이 곤란한 행위를 말한다. 의회(입법부), 국왕(국가원수)에게도 적용된다.
간단히 요약하면,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사법부는 행정부, 입법부와 동격의 기관이며, 우위에 있지 않다. 사법부의 본질적인 역할이 법에 대한 해석과 판결이라 하더라도, 행정부와 입법부의 모든 행위를 사법판단의 대상으로 삼을 경우 사법부가 다른 부 위에 군림하는 형상이 되어 삼권분립이 위협받을 수 있다. 따라서 일부 행위에 대해서는 사법부의 판단이 미치지 않을 수 있다.
대통령 등 통치자의 행위는 법률에 따르지 않고 맘대로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3] 어디까지나 법률에 따르는 게 원칙이지만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필요로 할 때에 한해서 법률의 적용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즉, 어디까지나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상황에서 행정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함이지 대통령이 법을 어겨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통치행위는 어디까지나 법이 규정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적용되는 것이지 해당 분야에 법률이 존재하면 당연히 그 법률을 따라야 한다. 또한 통치행위라고 사법이 적용되지 않는 게 아니며 법원에서 통치행위라고 인정받을 경우에야 법적인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대한민국에서 행해진 모든 통치행위는 법원에서 판결을 받았다.
2. 발전
2.1. 영국
영국에서는 의회, 국왕, 국가의 행위를 사법심사가 부적합한 행위로 보고 있다. 의회의 행위의 경우, '각 의원은 그 의회의 행위에 있어서 유일한 재판관'이라는 원칙에서, 국왕의 행위의 경우, '국왕은 불법을 행할 수 없다'는 원칙에서 사법심사가 부정되는데, 다만 후자의 국왕의 행위(국왕대권)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의 발전에 따라 사법심사가 배제되는 영역의 폭이 점차 축소되어 오늘날에는 1957년 제정된 국왕소추법에서 국왕대권에 대한 유보조항을 설정하여 사법심사배제의 원칙이 대폭수정되었다.2.2. 미국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영국과 같은 형태로 사법심사가 배제되는 영역을 인정하지 않았다. 즉, 사법부의 심사 대상이 되는 행위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러한 것 때문에 통치행위에 속하는 행위들도 사법부의 심사대상이 되어 정치적인 문제가 발생하자, 미국 연방대법원에서는 사법부의 자제라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이를 인정했고 이러한 일련의 연방대법원 판례를 통해 통치행위이론이 정립되었다.미국 연방대법원이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었던 것이, 계기가 된 Marbury vs Madison 사건은 헌법재판이라는 개념 자체를 낳을 정도로 연방주의와 자유주의가 정면충돌한 대형 사건이어서 그 존 마셜 대법원장도 피해버렸고, Luther vs Borden 사건(1849')에서는 대상이 무려 로드아일랜드주에서 일어난 반란사건으로 발생한 2개의 주정부간의 정당성 다툼이었다. 이건 누가 봐도 손만 대면 터질 것이 분명한 핵폭탄들.
이러한 방식은 법에 대해 관심이 있는 한국인이 보기에는 다소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 성문법주의를 원칙으로 하는 대륙법 계통인 한국의 법 체계에서는 주요한 법적 주제는 최대한 문서로 정해놓으려고 하며, 특히나 사법부의 권한, 특히 "행정부와 사법부의 고유권한 설정"과 같은 중차대한 요소는 헌법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이를 명문화된 규정의 제정이나 개정 없이 "건드리면 난리날 게 뻔하니까 자제할게" 하는 식으로 해소하고, 이것이 전통이 되어 사실상의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판례법주의를 원칙으로 하는 영미법 체계의 법적 상식이 한국과는 크게 다르기 때문.
현대에 가까운 주요한 사례를 들자면, 1979년 지미 카터 대통령이 미국-중화민국 상호방위조약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서 결과적으로 주대만미군의 존재근거가 사라지게 한 행위 역시 미국 연방대법원이 통치행위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오늘날에 들어와 선거구 인구 획정 문제를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판단하는 등, 연방대법원은 사법적극주의의 맥락에서 통치행위의 인정범위를 축소시켜 나가고 있다.
2.3. 독일
대륙법을 채택하고 있는 독일에서는 영국이나 미국과 달리, 2차세계대전 이전까지는 행정소송에 있어서의 열기주의를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통치행위가 문제되지 않았다.[4] 그러나 전후 행정소송 상의 개괄주의[5]를 채택함에 따라 연방헌법재판소 판단의 한계로서 통치행위에 관한 논의가 전개되었다. 독일의 통설은 통치행위(Regierungsakte)를 인정하는 입장이며, 연방헌법재판소도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에 관한 결정이유에서 '자유로운 정치적 형성의 영역'을 인정하여 최소한 사법자제의 원리를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2.4. 일본
일본도 독일과 마찬가지로 행정소송 개괄주의를 채택함에 따라 통치행위문제가 제기되었다. 마찬가지로 통설은 통치행위를 긍정하는 입장이며, 중의원해산(1960년 토마베치 사건/苫米地事件[6][7]), 중대한 외교적 행위, 국무대신(장관)의 임면 등이 그 예로 제시된다. 최고재판소 또한 미일안보조약의 위헌심사가 문제된 사건에서 '국가존립의 기초에 극히 중대한 관계가 있는 고도의 정치성'을 갖는 행위이므로, '국회의 고도의 정치적 내지 자유재랑적 판단'에 맡겨지며 '당연무효라고 인정되지 않는 한 사법심사권의 범위 밖'이라고 판시하고 있다.2.5. 프랑스
프랑스는 대륙법계이면서도 독일과 달리 행정과 관련한 사법심사를 일반 법원이 아닌, 별도의 기관인 국참사원이 공권력 작용에 대한 월권소송에 대한 심사로서 행하고 있는데, 국참사원의 판례를 중심으로 통치행위 이론이 정립되었다. 국참사원의 판례를 살펴보면 초기에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를 통치행위로 이해, 국가이성을 심판할 수 없다는 정치적 동기이론에 입각하여 통치행위성을 판단하였으나 19세기 후반 나폴레옹 공 관련 판결에서 정치적 동기로 발해지는 어떠한 행위도 국가이성이라는 이름으로 통치행위가 될 위험성이 있다는 비판을 수용하여 정치적 동기이론을 포기하였다. 이후 통치작용과 행정작용을 구별하여야 한다는 견해, 자유재랑행위에 해당한다는 견해 등이 제시되고 있으나 통치행위의 성격을 규명한 통설은 없으며, 그 구별기준으로 누적된 판례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1962년 드골 대통령의 비상대권발동에 대해 국참사원은 '통치행위의 성격을 가지며', 그 '통제는 국참사원에 속하지 아니한다'고 판시하였으나, 비상대권발동 자체에 한하여 통치행위성을 인정하였을 뿐, 일련의 후속조치에 대해서는 사법심사가 가능하다는 견해를 취하고 있다.3. 인정 여부
3.1. 부정설
법치행정의 원리 및 행정소송의 개괄주의 입장에서 통치행위 개념을 부정한다. 실정법상 헌법에서 법원의 명령 등에 대한 위헌심사권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 또한 주요 근거이다.3.2. 긍정설
헌법상 입법, 집행, 사법작용이 분리되어 있다는 권력분립의 측면에서 통치행위는 전적인 집행부의 권한이므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견해(권력분립설), 이론상 사법권이 통치행위에도 미치지만 법원이 정치문제에 대한 판단 개입을 회피하여 각 기관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견해(사법자제설), 통치행위도 행정행위이나 자유재량행위에 해당하여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헌법이 허용하는 자유재량의 한계를 넘는 행위에 대해서만 사법권의 심사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견해(자유재량설) 등이 존재한다.3.3. 검토
대체로 이론상으로는 통치행위의 독자성을 부인하는 입장을 취하는 학자가 많으나[8], 현실적으로 구체적 사안에서 법원의 판단이 아닌 정치적 영역으로 남겨두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되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기 때문에[9] 통치행위 개념의 불가피성을 긍정하는 편이다. 다만 '가분이론'에 의거, 통치행위와 분리될 수 있는 행위는 사법심사가 가능하다고 하여 그 인정범위를 축소,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확보하려 하고 있다.[10]4. 대한민국의 사례
4.1. 대법원
과거 권위주의 시기 대법원은 대통령의 비상계엄선포행위에 대하여 통치행위성을 권력분립설, 자유재량행위설, 사법자제설 등에 근거하여 긍정하였다.그러나 민주화 이후, 12.12 군사반란 및 5.17 내란 등의 사건에서 대통령의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행위의 통치성을 긍정하면서도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행하여진 경우에는 법원이 그 범죄행위 해당여부를 심사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대북송금 사건에서 남북정상회담의 경우는 고도의 정치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행위라 할 것이므로 사법부가 그 당부를 심판하는 것은 사법권 내재의 본질적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되어 부적절하지만, 북한 측에 송금한 행위 자체는 헌법상 법치국가의 원리와 법 앞에서의 평등 원칙 등에 비추어볼 때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판시하여 통치행위의 인정범위를 축소하는 추세이다.[11]
4.2. 헌법재판소
유신 헌법의 긴급조치는 최소한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고 헌재는 바라봤다. 그래서 긴급 조치의 위헌 여부를 심사할 권한도 헌재에 있다고 말한다.정부의 재량을 넓게 인정해 통치행위를 긍정하되 그것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면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12] 김영삼 정부 시절의 긴급재정경제명령에 대해서는 통치 행위를 긍정하면서도, 국민의 경제적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여지를 인정하여 본안심판에 들어갔다.[13] 주로 기본권을 폭넓게 인정했던 1기와 2기에 한정된 이야기라는 평도 있다. 단적으로 자이툰 부대 파병과 대통령의 사면 권한[14] 에 대해서는 국민의 기본권은 고려하지 않았다.
2007년 한미연합 군사훈련의 전시증원연습은 연례적으로 해왔으며 다음의 이유로 통치행위가 아니라고 하였다. 이때 평화적 생존권은 국민의 기본권이 아니라고 명시하였다.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에서 수도 이전 행위 자체는 통치 행위가 아니라고 하였다. 하지만 헌재는 수도 이전의 문제를 국민투표에 붙일지 말지에 대한 대통령의 의사 결정은 통치 행위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대통령의 이런 결정과 이와 관련된 법률이 국민의 기본권(여기서 국민의 기본권은 국민투표권이며 주민투표권은 아니다.)은 침해와 직접 관련되어서 헌재 사법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다.
4.3. 서울행정법원
2000년 2월 2일 대통령의 사면권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결하여 통치행위를 인정하였다.[15]4.4. 고등법원
1966년 2월 24일 서울고등법원에서 통치행위를 긍정하였다.[16][17] 당시 한일기본조약 국회 비준을 진행하던 한일기본조약 비준안 심사 특별위원회(한일간조약과제협정비준동의안심사특별위원회)에서 위원 28명 중 단 2명만이 찬성하였음에도 위원장이 비준안 가결을 선포하였고, 해당 비준안을 여당 의원으로만 구성된[18] 국회 본회의에 제출해 가결시켰다.이에 서울고등법원은 국회가 국정의 최고기관의 하나로서 고도의 자주성과 자율성에 의하여 처리한 행위이므로 통치행위라고 판단했고 해당 사건을 각하했다.
4.5. 통치행위와 국가를 대상으로 한 손해전보소송
4.5.1. 국가배상청구소송
통치행위에 해당하는 행위는 위법성 심사가 배제되는데, 이에 대하여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여부가 문제된다. 국가배상소송은 행위 자체를 다투는 것이 아니므로 통치행위라 하더라도 국가배상청구소송이 가능하다는 견해(긍정설)가 있으나, 통치행위에 대하여 사법심사가 배제된다고 보는 이상 위법성 심사가 소송의 형태를 불문하고 불가능하다고 보는 부정설이 통설이다.4.5.2. 손실보상청구소송
손실보상청구소송에서도 그 청구가능성을 긍정하는 견해가 있으나, 통치행위의 법적 효과는 위법성 심사의 배제이지 위법성의 배제가 아니므로 행위 자체가 적법한 것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므로 손실보상책임 성립의 요건인 특별희생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적법성 심사도 배제되므로 손실보상책임 역시 인정되기 어렵다.[1] 다만 이 말은 대통령이니까 그냥 절대권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국회와 각료가 결정하기 어렵거나 애매한 상황에서는 대통령 본인이 책임지고 결정하는 것이 불법이 아니라는 의미다.[2] 이 말을 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불법 도감청 워터게이트 사건을 일으켜 탄핵당하였고 결국에 하야했다.[3] 물론 시작이 거기서부터인 건 맞다. 기본적으로 통치행위라는 말 자체가 왕정국가에서 왕의 통치에서 시작된 개념이기 때문. 하지만 현재에 와서는 민주주의, 법치주의의 개념이 정립되고 이론과 제도가 발전하면서 통치행위에 대한 개념도 현재처럼 바뀌어왔다.[4] 열기주의일 경우 법에 명시된 것만 다루기 때문에 통치행위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5] 법률적으로 굳이 열거되지 않은 행위도 행정소송이 가능하다는 주의. 반대말은 열거된 행위만 행정소송이 가능하다는 열기주의[6] 한국식 독음으로는 점미지 사건.[7] 당시 일본의 중의원 의원이던 토마베치 기조(苫米地義三) 의원이 중의원 해산 조치를 거부하고 정상 임기 만료일까지의 신분 보장과 세비 지급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다. 여담으로 이 토마베치 기조 의원은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결 당시 일본 야당을 대표하는 전권위원으로 참가하여 조약에 서명한 인물 중 하나이다.[8] 원래 모든 행정 영역에 행정법을 제정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9] 설령 법을 계속 제정하더라도 인간 사회의 발전으로 인해 법이 커버하는 영역이 항상 100%일 수는 없는 법이다.[10] 대표적으로 통치행위라고 해도 법원의 심사(판결)를 받아야 하고 그 인정 범위를 줄이는 것과 관련법을 제정하는 것 등이 있다.[11] 통치행위의 인정범위 축소란 쉽게 말해서 관련법을 제정해서 법률에 근거를 두라는 것 + 어디까지나 예외적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12] 헌재 1996. 2. 29. 93헌마186[13] 결과적으로는 기각이었다. 그러나 이는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뿐으로, 통치행위가 인정되면 헌법소송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각하 결정이 나온다.[14] 거의 모든 나라에서 사면을, 행정부가 사법부를 견제하는 고유 권한으로 인정하고 있다.[15] 서울행정법원 2000. 2. 2. 99구24405[16] 서울고등법원 1966. 2. 24. 선고 65구246 제1특별부판결[17] 이 판결은 대법원 종합법률정보에서 검색되는 판결 중 통치행위를 인정한 최초의 판례이다.#[18] 야당 의원들은 비준안 통과에 항의하는 뜻으로 전원이 사퇴서를 제출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