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10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ff, #fff, #fff)"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0; border-radius:5px;"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argin: -5px 0; color: #000 ; min-width: 20%" {{{#000 {{{#!folding [ Studio Albums ] | <tablewidth=100%> | ||||
1993년 2월 22일 | 1995년 3월 13일 | 1997년 6월 16일 | 2000년 10월 2일 | 2001년 6월 5일 | |
2003년 6월 9일 | 2007년 10월 10일 | 2011년 2월 18일 | 2016년 5월 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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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000> 톰 요크 Thom Yorke | |||
본명 | Thomas Edward Yorke (토머스 에드워드 요크) | ||
출생 | 1968년 10월 7일 ([age(1968-10-07)]세) | ||
잉글랜드 노샘프턴셔 주 웰링버러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
직업 | 싱어송라이터, 작곡가, 환경 운동가, 영화 음악가 | ||
장르 | 얼터너티브 록, 익스페리멘탈 록, 일렉트로닉 음악 | ||
소속 | (1985년 ~ 현재) 아톰스 포 피스 (2009년 ~ 2013년) 더 스마일 (2021년 ~ 현재) | ||
서명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ff 30%, #fff)"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0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fff><colcolor=#000> 가족 | 남동생 앤디 요크 (1972 - )[1] | |
배우자 | 레이첼 오웬 (2003년 ~ 2016년; 사별) 다야나 론치오네 (2020년 ~ 현재) | ||
자녀 | 슬하 1남1녀 노아 요크 (2001 - ) 아그네스 요크 (2004 - ) | ||
학력 | 엑시터 대학교 (미술사학 ∙ 영문학 / 문학사) | ||
신체 | 166cm, 64kg | ||
종교 | 무종교 | ||
활동 | 1985년 ~ 현재 | ||
사용 악기 | 보컬, 기타, 베이스, 건반 악기, 드럼 | ||
레이블 | XL Recordings |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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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라디오헤드의 리더이다.
2. 생애
1990년대 | 2000년대 | 2020년대[2] |
요크의 가족은 집을 자주 옮겨다녔다. 요크는 학교에서 다른 학교로 옮겼고, 그곳에서 그는 같은 반 친구들에게 그의 눈 때문에 괴롭힘을 받았다.[3] '샐러맨더'란 별명으로 불리며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가족은 1978년에 마침내 옥스퍼드 주에 정착했다. 요크는 그의 첫 번째 기타를 그가 일곱살 때 받았고, 퀸(밴드)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11살 때 그는 밴드에 들어가서 그때 첫 번째 노래를 썼다. 그는 남자 명문 사립기숙학교인 애빙턴 스쿨에 들어갔고, 그 곳에서 라디오헤드 멤버가 되는 에드 오브라이언, 필 셀웨이, 콜린 그린우드, 그리고 콜린의 동생인 조니 그린우드를 만났다. 요크와 그의 친구들은 밴드를 구성했고, 이름을 On A Friday라고 지었는데, 금요일이 그들이 만나서 연습을 할 수 있는 때였기 때문이다. 초기 구성 때 요크는 기타 연주와 보컬을 맡았었지만 그는 이미 작사와 작곡 실력도 늘고있었다. 요크는 학교에 다닐 때의 음악의 영향에 대해서 "학교는 견딜만했다. 왜냐하면 음악 부분이 학교 밖의 것들로부터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부스들 안에는 피아노들이 있었고, 나는 방과 후 많은 시간을 그 곳에서 보냈다." 라고 했다.
학교를 마친 후 요크는 대학에 가는 것을 1년 미루었다. 그리고 1988년 요크는 엑시터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옥스퍼드 주를 떠났는데, 이 때문에 On a Friday는 주말에 연습하는 것을 중단하게 되었다. 엑시터 대학교에 재학하면서 그는 문학과 미술을 전공했고, 정신병원에서 간호원으로 일했으며, 후에 학교의 길드인 Lemon Grove의 나이트클럽에서 DJ로 일을 하면서 대학강사와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였던 애인 레이철 오언을 만난다. 오언과는 혼인신고를 안 했을 뿐, 함께 살림을 꾸리면서 슬하에 두 자식을 두었으나 2015년에 이별했다. 레이철 오언은 암으로 2016년 말 사망하였고 톰은 라디오헤드 정규 9집 트랙 "Daydreaming"으로 그녀를 기렸다.
라디오헤드의 보컬, 기타로 활동하면서, The Bends, OK Computer, Kid A, In Rainbows 등의 명반을 냈다. 작곡과 작사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2000년대부터 솔로 활동도 병행하고 있는데, 일렉트로니카와 미니멀리즘에 영향을 받은 모습을 보인다. 솔로 1집 The Eraser의 소리를 라이브로 재현하고자 결성한 밴드가 바로 Atoms for Peace이다. 나이젤 고드리치, 플리 등과 함께하여 화제가 되었다.
2021년 조니 그린우드, 드러머 톰 스키너와 같이 더 스마일 (The Smile)이라는 밴드를 결성해서 2021년 글라스톤베리 공연에서 데뷔한 바 있다.
3. 음악 스타일
[]The White Chocolate Farm, Thom] | [5] |
또한, 솔로활동에 있어서도 펑크적인 요소 & O.S.T에도 참여하면서 자신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혀나갔다. 다른 최고의 뮤지션들과는 달리, 장르나 스타일에 국한되지 않고 끊임없이 음악적인 변화를 시도하면서, 그리고 언제나 고퀄리티의 아웃풋을 내놓는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뛰어난 뮤지션인지 알 수 있다.
보컬 스타일은 읊조리는듯 하면서도, 가성과 진성을 오가면서 감정을 보컬에 잘 녹여낸다. 실제로, 이후 나온 뮤즈의 매튜 벨라미와 콜드플레이의 크리스 마틴은 보컬 창법에서 톰 요크와 많이 비교가 되었다. 끈적이는 특유의 느낌을 잘 살리며, 자신의 음악 스타일에 맞게 카멜레온처럼 보컬을 바꾸는 데 능하다.
4. 평가
비틀즈가 1960년대의 상징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톰 요크는 우리 시대를 가장 분명하게 반영하고 있는 아티스트이다. 그는 거의 20년 전 이미 미래를 내다보고 거기에 도취되었다. 'OK Computer'와 'Kid A'는 21세기 음악의 기반을 다졌다. 환원주의적 장르의 틀에 구애받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뛰어넘는 실험적 아티스트의 표본을 마련한 것이다. Just as The Beatles came to embody the 60s, Thom Yorke is the artist who most clearly reflects our times. Nearly two decades ago he looked into the future and it weirded him out. 'OK Computer' and 'Kid A' laid the foundation for 21st-century music; one that cared not for reductive genre boxes but expected boundary-leaping experimentation from artists as standard. |
5. 음반
톰 요크의 단독 활동만 기록한 문단입니다. 2인 이상 그룹 활동은 라디오헤드/음반 목록 문서를 참고해 주세요. |
5.1. 정규
5.1.1. The Eraser (2006)
이 그림은 11세기의 잉글랜드 바이킹의 왕 카누트 황제[6]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야기에 따르면 카누트 황제는 그의 왕좌를 해변으로 옮기게 했고 밀려드는 파도에 그의 옷이 젖지 않도록 파도에 대고 다가오지 말라고 명령했다. 예상한 대로 그의 옷은 흠뻑 젖었다. 그러자 그는 바다의 고집은 황제인 자신도 막을 수 없으므로 왕이 가진 권력과 능력은 하느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중략)...우리는 대통령이나 수상, 정치인, 스스로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가식과 허세에도 불구하고 혼돈은 늘 찾아온다는 걸 잘 안다.
- 라디오헤드로 철학하기 中
1.The Eraser (4:56)- 라디오헤드로 철학하기 中
앨범의 타이틀 격인 곡이다. 다른 트랙과 달리 다른 멤버 조니 그린우드와 같이 작곡했다.
2.Analyse (4:03)
이 곡은 톰이 옥스포드에서 살면서 경험한 블랙아웃 현상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고 한다.
2006 머큐리 시상식에서 연주되었다. 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프레스티지의 엔딩 크레딧의 배경 음악으로 쓰였다.
3.The Clock (3:48)
4.Black Swan (4:50) 가사번역
Kid A 시절 만들어진 곡, 영화 스캐너 다클리의 엔딩 크레딧에 삽입되었다.
5.Skip Divided (3:36) 가사번역
6.Atoms for Peace (5:14)
톰 요크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계속해서 노래하면서 제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삶을 살려고 해요. 록 스타라면 하늘을 찌를듯한 자신감을 늘 갖고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아니에요... 기본적으로 우선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아내는 늘 말해요."
- 라디오헤드로 철학하기 中
7.And It Rained All Night (4:16)- 라디오헤드로 철학하기 中
톰 요크는 일본에서 교통체증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고 있을때 지쳐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기어가 중립에 있는 백만 개의 엔진들 (A million engines in neutral)" (훗날, And It Rained All Night 안의 가사에 들어간다.)
- 라디오헤드로 철학하기 中
8.Harrowdown Hill (4:39)- 라디오헤드로 철학하기 中
톰 요크의 곡 Harrowdown Hill의 주인공이자 암살인지 자살이였는지 모르게 사망한 데이비드 캘리 박사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무기전문가로서 신념을 지켜면서 일했던 켈리 박사는 2003년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던 대량살상무기 관련 서류를 검토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는 이라크 정부가 명령을 받은 지 45분만에 생화학무기를 발사할수있다고 한 정부의 주장에 반박했다. 영국 <<옵저버>>지는 켈리 박사의 제보를 가지고 이라크 현지를 취재했고 박사가 2003년 7월 이라크를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과 보고서를 토대로 이라크의 두 개의 이동식 실험실에서는 생화학무기를 제조할 수 없다고 영국 전역에 전했다. 켈리박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문가로서 증인을 자처한 그는 정부에게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방송이 나가자 켈리 박사는 국방부의 표적이 되었고 언론의 취재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가 사망하던날, 박사는 국방부 관계자로부터 그를 지지하는 이메일과 언론인들과의 대화 내용을 모두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메일을 받았다. <<뉴욕타임즈>>기자에게 보낸 답장에서 박사는 지지해줘서 그리고 "어둠 속에서 게임을 하는 배우들"을 세상에 알려줘서 감사하다고 썼다.
- 라디오헤드로 철학하기 中
9.Cymbal Rush (5:16)무기전문가로서 신념을 지켜면서 일했던 켈리 박사는 2003년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던 대량살상무기 관련 서류를 검토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는 이라크 정부가 명령을 받은 지 45분만에 생화학무기를 발사할수있다고 한 정부의 주장에 반박했다. 영국 <<옵저버>>지는 켈리 박사의 제보를 가지고 이라크 현지를 취재했고 박사가 2003년 7월 이라크를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과 보고서를 토대로 이라크의 두 개의 이동식 실험실에서는 생화학무기를 제조할 수 없다고 영국 전역에 전했다. 켈리박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문가로서 증인을 자처한 그는 정부에게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방송이 나가자 켈리 박사는 국방부의 표적이 되었고 언론의 취재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가 사망하던날, 박사는 국방부 관계자로부터 그를 지지하는 이메일과 언론인들과의 대화 내용을 모두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메일을 받았다. <<뉴욕타임즈>>기자에게 보낸 답장에서 박사는 지지해줘서 그리고 "어둠 속에서 게임을 하는 배우들"을 세상에 알려줘서 감사하다고 썼다.
- 라디오헤드로 철학하기 中
5.1.2. Tomorrow's Modern Boxes (2014)
1.A Brain in a Bottle (4:40)
2.Guess Again! (4:23)
3.Interference (2:48)
4.The Mother Lode (6:07)
5.Truth Ray (5:13)
6.There Is No Ice (For My Drink) (7:00)
7.Pink Section (2:34)
8.Nose Grows Some (5:22)
5.1.3. ANIMA (2019)
1. Traffic (5:17)
2. Last I Heard (...He Was Circling The Drain) (5:06)
3. Twist (7:03)
4. Dawn Chorus (5:23)
5. I Am a Very Rude Person (3:44)
6. Not the News (3:57)
7. The Axe (6:59)
8. Impossible Knots (4:19)
9. Runwayaway (5:56)
10. (Ladies & Gentlemen, Thank You For Coming)[7]
5.2. EP / Single
5.2.1. Feeling Pulled Apart by Horses / The Hollow Earth (2009)
[8]1.Feeling Pulled Apart by Horses (6:36)
2.The Hollow Earth (4:10)
6. 여담
- 톰 요크는 채식주의자이자 환경운동가이며 인권운동가이기도 하다.
- 데뷔 초에는 동안이었는데,[9] 전 부인 레이철 오언의 투병 시기인 2010년대 즈음부터 여러모로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급격한 노화를 겪었다. 얼마 전까지는 50을 간신히 넘기는 나이에도 너무 나이가 들어보인다는 얘기가 많았었다. 최근에는 50대 중후반 정도로 이미 나이가 많아져서 딱히 그런 얘기는 안 듣는다.
- 취미는 라디오 들으며 산책하기.
- 2002년 Q 매거진에서 음악계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사람에서 6위를 했으며, 2005년에는 블렌더와 MTV 주최의 투표에서 가장 위대한 싱어로 18위를 차지했다.
- 인디 일렉트로니카 아티스트 Burial, 포 텟과 합작을 해 Ego와 Mirror를 발표했다. 그리고 플라잉 로터스와의 콜라보도 있다.[10] 08년부터 잭 화이트와 같이 공동 앨범을 내려 했으나 지금까지 무소식인걸 보니 바빠서 작업이 진척되지 않는 것 같다. # 폴 매카트니도 라디오헤드에 관심을 갖고 톰과 공동작업을 요구했으나 톰이 라디오헤드 일에만 흥미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거절하여 리스너들의 안타까움을 산 적도 있었다. # 2013년 다시 합작을 요구했으나 아톰 포 피스 밴드 활동과 투어 일정으로 무산되었다고 한다. 그 외 비요크, PJ 하비, 시규어 로스, DJ 섀도우, Modeselektor와의 합작을 했으며, 조니, 버나드 버틀러, 앤디 매케이와 합작으로 록시뮤직의 커버를 한 2HB가 있다. 벡과 함께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곡을 커버한 적도 있으며, REM의 티베트 자유공연에서 같이 노래를 부른 적도 있다. 2011년 11월엔 MF DOOM과 조니와 함께 Retarded Fren라는 곡을 만들었다.
- 일부 팬 사이에선 외모가 고흐와 비슷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 사실은 낯을 상당히 가리는 편이라 Bridge School Benefit Concert에서 잭 블랙이 솔로 앨범 마음에 든다고 인사를 했는데 그냥 무시하고 걸어간 일이 있었다. 잭 블랙은 톰이 사람들에게 차갑게 대하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고 한다. 이후 블랙은 "그 사람이 나만 경멸하는 게 아니라 온 세상을 경멸한 것 같았다."라고 말하기도. 비슷한 이유로 칸예 웨스트도 불만을 토로했다. #
- 솔로의 싱글 곡 중에선 벌레의 날갯짓 소리를 연상시키는 The Hollow Earth도 나왔었고 Latitude 2009에서는 Black Swan이라는 솔로 곡을 기타에서 목소리를 녹음해 다중으로 겹치게 하여 연주하였다. 영화 뉴문에서 웅웅거리는 저음의 변화가 인상적인 Hearing Damage(#)를 들을 수 있다. 위키백과에서 그를 일렉트로닉 뮤지션로 분류할 때도 있다.
- 2011년 9월 MoneyBack Mix 앨범에서 Twist라는 말을 중얼거리는 The Twist이라는 배배 꼬인 곡을 내놓았다. 게다가 팝콘 머신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나는 Stuck Together와 I Don't Need an Excuse라는 곡과 함께 패션쇼를 위한 음악을 작곡했었다.
- 2014년 4월 호주에서 열린 스탠리 돈우드[11]의 전시회를 위해 Subterranea라는 432시간짜리 곡을 작곡했다. 이 곡은 총 18일의 전시 기간동안 BGM으로 사용되었다. 아쉽게도 음원을 정식 발매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 학창시절부터 클럽에서 해온 디제잉 실력으로 11년 3월 경에는 캘리포니아 클럽에서 디제잉을 했다. #
- 인터뷰에서 자신과 유사한 음악가로 The Black Keys, 디어후프(#). Liars, LCD 사운드시스템, Modeselektor를 언급했다.
- MTV 인터뷰에서 밝힌 톰의 TOP 5곡은 이렇다. #
Nathan Fake - The Sky Was Pink (Holden Mix) 곡 링크# Four Tet - Ringer 곡 링크# Tricky - Council Estate 곡 정보# The Bug - Poison Dart (South Rakkas Crew Remix) 곡 링크# Squarepusher / AFX - Freeman, Hardy and Willis Acid 관련자료
- 라이브를 보면 알겠지만 톰 요크는 라이브에서 유별난 춤을 춘다. 데이비드 번이나 이언 커티스, 자비스 코커같은 춤꾼과 비견되기도 한다. 오래 전 비요크가 톰의 퍼포먼스가 밴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거라 조언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그 점을 인정했으나 지금은 그다지 신경도 쓰지 않는 듯하다. Lotus Flower 뮤직비디오 인터뷰를 보면 라디오헤드 구성원도 톰의 퍼포먼스를 즐기는 편인 것 같다. 결국 SNL에서 패러디가 나오게 되었다. #
- 트위터로 의미불명의 한글을 써서 한국 팬들을 설레게 했다.☞
- 톰은 목소리를 부여받지 못한 것들같은 무관심한 것에 관심이 많아보인다.제가 음악을 하는 이유는 목소리를 부여받지 못한 존재에게 목소리를 주기 위해서죠. 그런 존재들은 극도로 부정적인 경우가 많거든요. 솔직히 말해서 저는 스스로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려고 늘 애를 써요. 안 그러면 미쳐버릴 것 같기 때문이에요.(톰 요크), <<피치포크>>와의 인터뷰, 2006년 8월 16일
- 톰 요크는 소설가 윌리엄 S. 버로스의 컷 업 방식(글을 부분으로 쪼개어 다시 배열하는 방법)과 비슷한 방법으로 가사를 만들었다.나는 들어가는 길목에 앉는데, 거기에 작고 예쁜 탁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이 뭉치를 꺼내서 정돈한다. 나는 그 종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잃어버리지 않게 책 속에 넣는다. 그럼 여기에서 글을 쓰냐고? 그럴 수도 있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지금은 정보를 모으고 정돈할 뿐이다. 이건 별로 힘도 안 들고 멋진 일이며 이렇게 하면 머리도 식힐 수도 있고 모든 일에 정신을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몰랐던 게 보인다.라디오헤드로 철학하기 中
- Lift 뮤직비디오 첫 장면에 나오는 두 명은 여자친구 다야나 론초네(현부인)와 톰의 딸 애그니스이다. #
- 밴드메이트인 조니 그린우드가 영화 음악 작업 하는 것에 영감을 받았는지 톰 역시 서스페리아 리메이크로 영화 음악가로서의 데뷔를 했다.
- 맨유 팬이다.
- 건즈 앤 로지스의 리드 기타리스트 슬래시가 자신의 솔로 앨범을 만들 때 톰 요크같은 느낌의 보컬을 찾으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톰 요크에게 따로 연락을 하진 않았다고 한다. 톰 요크가 헤비메탈 밴드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
- 에이펙스 트윈의 팬이다. 톰 요크는 에이펙스 트윈이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고 말하면서 기타로는 만들 수 없는 특유의 사운드에 매료되었고, 그 당시 라디오헤드를 둘러싼 브릿팝에 관한 이야길 증오했다고 하며 에이펙스 트윈의 사운드는 완벽했다고 추켜세웠다. #[13] 근데 에이펙스 트윈 본인은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타 밴드에 비해 훌륭하나 지나치게 상업적인 느낌이 들어서 자신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애초에 트윈이 락, R&B 등 메인스트림 장르를 혐오하는 걸 생각하면 오히려 극찬에 가까운 편이다. 그리고, 이후 2011년에 가진 인터뷰에서는 "내가 라디오헤드를 썩 좋아하지 않는건 맞는데, 그걸 언론에서 좀 과장해서 떠드는 감이 있다. 저번에 톰 요크를 봤었는데, '언론 얘기 너무 믿지는 마라'고 말했었다" 고 재차 발언했다.
- 2019년 7월 28일 단독 내한공연을 한다는 오피셜이 떴다. # # 공연 당일 역대급 음향과 라이브 퍼포먼스를 선보이자 관객들은 대호평. 그리고 같은 날 진행될 예정이었던 지산 락페, 앤마리 공연 등등이 줄줄이 취소되는 대혼란이 벌어지자 평가가 더더욱 올라갔다(...)
- 톰요크 크랙매거진 인터뷰 #
- 애니마 인터뷰 #
- 2020년 9월 23일 이탈리아 배우 다야나 론초네와 재혼했다. #
- 정치 성향은 으레 얼터너티브 록 아티스트들이 그렇듯[14] 진보, 좌파 성향이다. 위에서 볼 수 있듯 문재인의 탈원전 정책을 지지하였고, OK Computer에서는 반 세계화, 반 신자유주의적인 메시지를 전파하였으며 여러가지 시점에서 고전적 보수주의[15], 대안 우파에 모두 반하는 의견을 내고 있다.
- 그와는 별개로 외교적 성향은 전형적인 친이스라엘 성향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시하고 친이스라엘 성향을 드러내서 골수 진보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인식이 좋지 않다. 이로 인해 피터 가브리엘, 엘비스 코스텔로 등과 함께 이스라엘 콘서트 보이콧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골수 진보주의자 로저 워터스에게 지탄받은 적이 있다. 이에 대해 톰 요크는 매우 모욕적인 일이라고 비판하였다.[16] 다만 그는 반이스라엘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켄 로치 같은 사람들은 개인적으로는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 2003년 BBC와의 인터뷰에서 '타 뮤지션의 곡들 중 내 곡이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한 곡이 있느냐' 라는 질문을 받자 블러의 Girls and Boys를 꼽았다. '내가 만들었어야 하는 곡인데 블러 그 개자식들이 먼저 뺏어갔다(..)' 라고 장난스럽게 대답했다고 한다.[17][18]
- 일본잡지 스누저(Snoozer)의 표지로 나온 적이 있는데 묘한 분위기이다. #
- 톰 요크의 아들인 노아 요크가 직접 작사작곡하고 노래를 부른 Trying Too Hard라는 곡을 공개했다.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의미로서 부전자전이라는 평이다.
- 톰 요크의 남동생 앤디 요크는 93년~2000년까지 unbelievable truth라는 밴드의 보컬로 활동했다. 장르는 꽤나 소프트하고 대중적인 모던락으로 형과는 상반된 음악을 하지만, 형제답게 노래 부르는 목소리가 꽤나 비슷하다(라디오헤드 1-2집 한정). https://youtu.be/rbb6pNLC9wk
- MF DOOM과 같이 작업을 한 적이 있는데, 실제로 2013년에 있었던 인터뷰에서 둠을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래퍼로 꼽았던 적이 있다. 자신에게 있어서 둠의 랩은 궁극적으로 랩이 아닌 한편의 시처럼 느껴진다고.[19] 이후 둠이 사망하자 트위터를 통하여 애도하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하였다.
[1] 워낙 형의 유명세에 가려져서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동생 역시 Unbelievable Truth라는 밴드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했고 솔로 앨범도 발매한 베테랑 뮤지션이다.[2] 보면 알겠지만, 본인의 나이보다는 더 나이들어 보인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앳된 외모에 꽤 동안이었는데 이렇게 돼서 많은 팬들이 안타까워하는 중. 톰 요크보다 조금 더 어려보이는 인물인 노엘 갤러거보다 요크가 실제로 1살 더 어린데, 노엘 갤러거도 미중년은 맞으나 동안이라고 보기는 힘든 평범한 수준임을 감안하면 요크는 많이 노안이라고 볼 수 있다. 참고로 톰 요크는 폴 러드보다 1살 많다.[3] 그 때 그를 괴롭힌 게 한국인 학생이어서 그 후로 생긴 한국에 대한 악감정 때문에 라디오헤드가 내한을 오지 않는거라는 터무니없는 루머가 있기도 했었다. 톰은 2012년 라디오헤드 멤버들과 한 번, 그리고 2019년 솔로로 한 번 총 두 번 내한을 온 적이 있었다.[] [5] 톰 요크가 스탠리 돈우드와 함께 앨범아트 제작할 때 사용하는 별명이다.[6] 잉글랜드의 왕이자 덴마크의 왕, 그리고 노르웨이의 왕이었던 사람이다. '크누트'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자세한 내용은 크누트참조.[7] 바이닐 보너스 트랙.[8] 톰 요크가 영향을 받은 밴드인 조이 디비전의 Unknown Pleasures의 오마주로 추정된다.[9] 이 때에도 탈모가 진행 중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은 동안이었다.[10] 일렉트로닉 음악가Four Tet(#)과 한 때를 보내는 톰, 플라잉 로터스와 같이 있는 모습. #[11] The Bends 시절부터 라디오헤드 앨범 커버 디자인을 전담하고 있다.[12] 톰의 아들인 노아는 아직 어린데도 불구하고 상당히 시크한 편으로 아빠의 공연을 직접 봤을 때도 '응, 우리 아빠네.' 정도의 반응이였다고 한다.[13] 실제로 라디오헤드의 명작 Kid A는 에이펙스 트윈을 위시한 일렉트로닉 음악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고, 요크의 솔로 활동 역시 에이펙스 트윈의 영향을 받았다.[14] 얼터너티브 록의 대명사인 커트 코베인, 노엘 갤러거 모두 리버럴이다.[15] 여기서의 보수주의는 신자유주의까지 포함한다.[16] 비슷한 시기 이안 페이스는 요크와 비슷하게 이런 일을 매우 멍청한 일이라고 욕한 적이 있다.[17] 얼핏 라디오헤드와 블러의 음악적인 분위기가 무척이나 달라서 의아할 수도 있는 대답이다. 곡의 대부분이 우울하고 신경질적인 분위기를 띠는 라디오헤드와 다르게 girls and boys가 속한 블러의 초창기 곡들은 대부분 메이저 코드 진행의 발랄한 곡들이다. 하지만 두 밴드 모두 진취적이고 독창적인 음악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한다. 사실 블러도 멜로디나 코드 진행만 발랄하지 가사나 전체적인 정서는 라디오헤드와 비슷하게 굉장히 시니컬하고 음울하다. 또한 라디오헤드와 블러 모두 중반기 이후 록 음악에 일렉트로닉 음악을 성공적으로 이식한 몇 안되는 밴드라는 공통점도 있다. 아마도 톰 요크는 본인이 하는 음악과 다소 분위기가 다르더라도 진취적인 시도를 하는 시니컬한 정서의 음악을 좋아하는 듯 하다.[18] 또 한가지 알아야 할 부분은 지금이야 우울한 감성, 신경질적인 감성으로 유명한게 라디오헤드지만 1집 당시에만 해도 너바나의 영향을 받은 밴드들 치고는 제법 밝은 노래들이 많았다.[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