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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高崎晃(たかさき あきら)
1961년 2월 22일, 오사카부 오사카시 히가시스미요시구 출신. 혈액형은 A형.
애칭은 '탓칸'. LAZY시절의 예명인 '수지'로도 불린다.
헤비메탈 밴드 LOUDNESS의 기타리스트. 결성 당시부터 지금까지 라우드니스를 단 한 번도 떠난 적 없는 유일한 멤버다. LAZY 재결성 때도 당연히 기타리스트로 재적했다. 국내에서는 부활의 기타리스트 김태원이 부활 결성 이전에 아키라의 기타 연주에 매료되어 그의 실력을 넘어서겠답시고 그를 쫓아버리겠다며 헤비메탈 스타일을 추구했다고 베이시스트 이태윤이 언급한 것으로도 나름 유명했다.
2. 바이오그래피
중학생 시절에 형 덕택에 어쿠스틱 기타를 만짐으로서, 기타와의 인연을 맺었다. 기타와 함께 하모니카도 연주했다고 한다. 가장 영향을 받은 기타리스트는 리치 블랙모어와 마이클 솅커. 고등학교 때는, "그 학교에 엄청난 기타리스트가 있대!"라는 소문이 퍼질 만큼 유명했다고 한다.초등학교·중학교 동창인 카게야마 히로노부, 타나카 히로유키와 함께 1973년 밴드 'LAZY'를 결성하였고 이노우에 슌지와 훗날 라우드니스에서도 함께하게 되는 히구치 무네타카를 끌어들인다. 방송 출연을 계기로 데뷔 기회를 잡게 된 이들은 상경 후 한 달 뒤에 메이저 데뷔를 달성한다. 그러나 소속사는 아이돌 노선으로 활동을 강제했고 밴드 멤버들은 이에 당혹했다. '팔리면 나중에 하드록 음악도 할 수 있다'는 설득과 함께 확실히 팝 기타는 칠줄 몰랐기에 음악성을 넓힌다는 생각으로 진지하게 연습하긴 했지만 스트레스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LAZY가 그럭저럭 히트하고 밴드도 말년에 헤비메탈로 노선을 변경하게 되지만 결국 음악성의 차이로 LAZY는 1981년 해산한다. 이후, 당시 Earthshaker에 있었던 니이하라 미노루, LAZY의 드러머이자 학교 선배인 히구치 무네타카[1]를 맞아들여 LOUDNESS를 결성했다. 당초에는 LAZY의 베이시스트인 타나카 히로유키도 참가할 예정이었으나 음악성의 차이로 무산[2]되었다. 대신 Zephyr 출신의 야마시타 마사요시가 합류하였다.
라우드니스의 기타리스트와 작곡가로 활동해 왔고 CRAZY NIGHTS, LIKE HELL, Soldier Of Fortune, You Shook Me등 많은 명곡을 남겼다. 단순한 비트에 화려한 색채를 입힌 곡과 더불어 니이하라 미노루라는 명 보컬리스트까지 얻었으니, 그의 이름은 일본 뿐 아니라 전 세계 메탈사에 길이 남게 된다.
3. 기타리스트로서 평가
록/메탈 계열에서 세계적으로 수위를 다투는 초절 테크니션이다. 그의 연주에서 트레이드 마크처럼 거론되는 양손 태핑 연주뿐 아니라, 짜임새 있고 타이트한 리프와 정교한 피킹도 큰 장점이다. 전체적으로 약점이 없다는 평.* 라우드니스의 미국 투어 당시, 풋내기였던 메탈리카가 데모 테이프를 보내며 꼭 같이 공연하는 게 소원이라고 한 적이 있다는 썰이 있다. 심지어 공연 때 맨 앞줄에서 열심히 헤드뱅잉하기도. 다만 이건 어느정도 와전된 소문으로서 1983년 데이브 머스테인을 해고한 메탈리카 측의 매니지먼트에서 데모 테이프를 보내 밴드 가입을 종용한 것. 당시 라우드니스는 유럽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메이저 레이블 애틀래틱과 계약항 미국 데뷔를 준비중인 앞날이 창창한 밴드였고 메탈리카는 아직 데뷔앨범도 발매하지 못한 상태였다.
- 미스터 빅의 기타리스트 폴 길버트는 기타 키드 시절 그의 브로마이드를 방에 붙여 놓았을 정도로 타카사키 아키라의 광팬이며, 타카사키 아키라의 솔로 앨범에 게스트로 참여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밤낮으로 기타 맹연습을 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는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데 유투브에 young paul gilbert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영상 후반부에 라우드니스의 곡들을 연주하는 폴의 모습과 자신이 굉장한 팬이었다는 말까지 했다
- LOUD PARK 09' 당시, 공연을 끝내고 기자재를 정리하고 있는데 메가데스의 리더인 데이브 머스테인이 다가와 "예전부터 Akira Takasaki의 팬이었다"며 피크를 얻어갔고, 머스테인은 답례로 자기 피크를 한 무더기 줬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틀 뒤 메가데스의 오사카 공연에 게스트로 초청까지 해서 'Symphony of Destruction'을 같이 연주했다.
- 마티 프리드먼은 자신의 방에 타카사키 아키라의 큰 브로마이드를 항상 걸어놓는다고 한다.
- WWE 챔피언 타이틀을 가졌던 레슬러 크리스 제리코는 "내가 생각하기에 최고의 기타리스트는 타카사키 아키라인거 같아! 그의 팀이 같은 땅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 흥분된다고! 이번 포지 공연의 마지막은 LIGHTNING STRIKES의 곡으로 마무리할 거야!"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 잉베이 말름스틴은 타카사키 아키라만이 일본의 대표라고 했다.
간혹 사람들이 에디 밴 헤일런에게서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이야기하는데, 에디 밴 헤일런이 헤비메탈에 도입했던 태핑을 매우 정교하게 구사했기 때문에 나온 추측으로 보인다. 임진모와의 인터뷰 당시, 리치 블랙모어에게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언급했다.
마이클 솅커에게 영향을 받은 사실은 다음 두 가지를 통해 확실히 알 수 있다.
1. LAZY시절 메인 기타는 마이클 솅커의 상징인 하얀색 플라잉브이였으며, 이 시기에 LAZY가 커버한 UFO의 곡에서는 마이클 솅커 특유의 플라잉브이 톤을 완벽히 카피한 걸 들을 수 있다. 2. 84년에 잡지 <YOUNG GUITAR>에서 '격돌 플라잉브이'라는 제목으로, 마이클 솅커와 대담 형식의 인터뷰가 있었다. 마이클 솅커는 그의 테크닉 위주의 플레이에 대해 다소 불만스러운 언급을 하지만, 그것에 대해 그답지 않은 온순한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직접 가장 존경하는 선배라고 언급. |
기타 뿐 아니라 베이스 기타나 드럼도 연주할 줄 안다. 그것도 그냥 칠 줄 안다 정도가 아닌 프로 수준의 솜씨다. .
특히 베이스는 예전에 라우드니스에 있었던 TAIJI나 시바타 나오토가 "나보다 낫다"고 말할 정도로 잘 치는 듯. 개인 프로젝트인 'JI-ZO'에서는 모든 악기 파트를 연주했다. 또한 LAZY의 Ultra High 녹음 당시에도 그가 베이스까지 맡았다. 당시 베이시스트였던 타나카 히로유키가 합류하기 전이어서 그가 직접 베이스를 연주했다고.
▲ 타카사키 아키라가 커버한 AC/DC의 'Back in Black'. 기타, 베이스 기타, 드럼, 보컬까지 본인이 직접 녹음했다.
4. 성격
그는 음악계에서 성격이 매우 거친 남자로 유명하다. 실제로 어릴 때부터 이름있는 주먹이었다. 고등학교 때 주변에서 엄청난 기타리스트라는 소리도 들었지만, 악명높은 일진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미국 서해안 투어 당시, 술에 취해 시비거는 지역 건달들을 패고 돌아다녔다는 소문도 있다. 나이가 50이 넘었는데도, 그 날이 선 성격은 한결같다. 실제로 술을 마시고 본인 성격이 이상하다고 말한, SHEJA[4]를 흠씬 두들겨 팼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히구치 무네타카가 제작한 레드 제플린의 추모앨범인 SUPER ROCK SUMMIT 〜천국으로의 계단〜에 같이 참여했다가, 레코딩 후 회식에서 있었던 일이다.한때 라우드니스에 있었던 마이크 베세라[5]도 아키라 앞에서는 완전 순둥이였다. 베세라는 연습을 특히 무서워했는데, 실수할 때마다 타카사키 아키라가 흠씬 두들겨 팼기 때문. 게다가 기복이 심해서 계약 끝나자마자 바로 해고해버렸고, 훗날 베세라에 대해 대놓고 '보컬의 기본도 안 된 놈'이라고 까는 걸 봐도 결코 무난한 성격은 아닌 듯. 그만큼 니이하라 미노루를 아끼는 이유도 있겠지만...
내한공연 당시, 한 음악 평론가
5. LAZY 관련 일화를 포함한 여러 이야기
당시에 충격적인 기타 테크닉을 선보였고 갑자기 긴 머리를 싹 밀어 스킨헤드를 감행하는 기행 탓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별 희한한 루머에 시달렸다. 종교에 미쳐서 접신할 때만 곡을 쓴다거나 공연 때 마약을 이용하고 무대에 오른다는 말도 있었으며 물론 모두 사실무근이다. 한국에서는 오토바이로 거리를 질주하다가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문까지 돌았는데, 타카사키 아키라 본인이 "오토바이는 타본 적도 없다"고 일축했다.LAZY 시절 텔레비전에 출연했을 때, 당시 일본에 왔던 KFC 창립자 할랜드 샌더스가 직접 만든 프라이드 치킨을 먹은 적이 있다고 한다. 정말 맛있었다고. 그 이야기를 KFC에서 주문 기다리면서 점원한테 했다가, 가게가 난리가 났다고.
LAZY의 정규 4집을 기점으로는 거의 다 그가 작곡했다. LAZY 최고의 걸작이라 불리는 앨범 <우주선 지구호>의 6번 트랙 'EARTH ARK'가 그의 작품이다.
LAZY 해체 이후에도 전 멤버였던 카게야마 히로노부, 이노우에 슌지와 여러 인연으로 같이 작업했으며, 1997년 LAZY로 재결성한다.
2008년 11월 30일 라우드니스와 LAZY의 드러머인 히구치 무네타카가 사망했을 당시 직접 조사를 낭독했는데, "히구치 무네타카의 록 스피릿을 계승해 가면서 앞으로도 매일 정진하여 LOUDNESS 그리고 LAZY의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이는 2009년, 진 마징가 충격! Z편의 주제가와 란티스 마츠리, 히구치 무네타카 추모 공연을 통해서 성사되었다.
LAZY 시절에는 Gibson Flying V를 사용하다, LAZY 후기부터 ESP 랜덤스타를 메인으로 사용. 이후 킬러[7] 사의 시그니처 기타 'KG-PRIME'을 병용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킬러 기타를 메인으로 쓰다, 요즘은 ESP 랜덤스타도 라이브에서 심심찮게 들고 나온다. 현재는 Seymour Duncan 픽업을 애용한다. 깁슨 플라잉브이는 LAZY 공연 때 가끔 연주한다. 솔로 앨범을 제작할 때는 Fender Stratocaster를 애용하기도.
세계에서 3대밖에 없는 Gibson 12현 Les Paul[8]을 보유하고 있으며, 90년대 중반 라우드니스가 비잉 계열의 Rooms Record로 이적 후 낸 일명 '3부작 앨범'에 녹음에 사용했다. 그 외 오래된 기타로는 트위스트의 마츠우라 요시히로에게 받은 깁슨 58년산 레스폴이 있고, 심지어 54년[9] Fender Stratocaster를 가지고 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기타를 잘 안 내주는 것으로 유명한데, 2006년 2월 일본 야후 옥션에 그가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에 쓴 기타들이 매물로 올라왔다고 한다. 옥션에 올린 사람은 '기타를 양도받았다'고 하지만, 도난당한
2009년 란티스 마츠리 출장 당시, 타카사키 아키라 자신은 란티스 레코드와는 별 인연이 없어서 그저 카게야마 히로노부의 요청에 의해 참가했다고 한다.[10] 당시 란티스 레코드가 애니메이션 관련곡 전문 레이블이라는 것을 거의 몰랐던 그였기에 처음엔 당혹스러워했지만[11] 공연 후 자신의 블로그에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강하다!"라는 글을 남기고 카게야마 히로노부의 일기에서도 카게야마에게 한 전화에서 "어제 고마웠어~"라 하면서 재미있게 즐겼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카게야마는 타카사키 아키라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2010년 6월 9일에 발매된 잼 프로젝트의 오리지널 앨범인 MAXIMIZER~Decade of Evolution~에 기타 세션으로 출장했다.
그리고
6. 디스코그래피
6.1. 싱글
- SHAFT DRIVE(2001년 5월 2일 발매
6.2. 앨범
- 재규어의 이~TUSK OF JAGUAR(ジャガーの牙~TUSK OF JAGUAR)(1982년 4월 1일 발매)
- 기(氣)(1994년 10월 25일 발매)
- 윤(輪)(1996년 8월 10일 발매)
- GENE SHAFT ORIGINAL SOUND TRACK(2001년 5월 23일 발매)
- TRANS=MIST MUSIC FROM "GENE SHAFT"(2001년 6월 27일 발매)
- Made in HAWAII(2002년 3월 20일 발매)
- SPLASH MOUNTAIN(2004년 9월 22일 발매)
- MACA(2005년 9월 21일 발매)
- OSAKA WORKS #128(2006년 8월 23일 발매)
- NENRIKI(2006년 9월 20일 발매)
- BLACK BROWN(2007년 9월 26일 발매)
6.3. 레코딩 참가
- 카게야마 히로노부 『BORN AGAIN』및 『I'm in you.』
- 카르멘 마키's 5X
- 사일런트 뫼비우스 이미지 앨범 『뫼비우스 클라인 1~진감~』
- 옴니버스 앨범 「COZY POWELL FOREVER 〜 TRIBUTE TO COZY POWELL」,『SUPER ROCK SUMMIT 〜천국으로의 계단〜』,「Guitar Monster Vol.2」
- 잼 프로젝트 『MAXIMIZER~Decade of Evolution~』
[1] 고등학교 선배였고, 타카사키 아키라가 직접 끌어들였다고 한다.[2] 타나카 히로유키는 LAZY의 연장선상인 소프트 록과 팝 노선을 주장했고, 타카사키 아키라는 하드록 및 헤비메탈 방향으로 갈 것을 주장했다.[3] 언급된 내용은 과장된 일화일 수 있으니 재미로만 보자.[4] 前 ANIMETAL/GARGOYLE, 현재 Volcano의 기타리스트. '일본의 마이클 솅커'라고 불릴 만큼 멜로디컬한 프레이즈가 장기지만, 술만 마시면 개가 되는 버릇 때문에 기피대상이 된 인물이다.[5] 베세라도 만만찮은 망나니며, 거기서도 여자 버릇이 더럽다. 이후 잉베이 말름스틴의 라이징 포스에서 보컬을 담당했을 때, 잉베이의 아내와 바람을 피워서 가정을 파탄내기도.[6] '동시대 밴드로서 X JAPAN과 자신들을 비교하면 어떤가?'라는 질문에 멤버들이 말없이 굳은 표정으로 불쾌감을 표시했고 미노루 니하라가 "우리보다 한참 후배기 때문에, 애초에 비교 대상이 아니다"라고 수습하며 넘어갔던 것이다. 원래부터 탐탁지 않게 여겼던 후배 밴드를 자신들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받았으니 이들이 불쾌해했던 것은 당연하다.[7] 나중에는 직접 부사장도 역임했다.[8] 한 대는 전 Guns N' Roses의 슬래시가 소유했다고 전해진다.[9] 스트라토캐스터가 처음 생산된 연도이다![10] 타카사키 아키라가 란티스 레코드에서 앨범을 낸 것은, 그때까지만 해도 LAZY 재결성 후 낸 곡이 전부였다.[11] 사실 2001년, 2002년 경의 란티스는 굉장히 작은 회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