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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04 22:25:41

쿠메타 코지

久米田康治
1967년 9월 5일([age(1967-09-05)]세)

파일:쿠메타 코지.jpg

담당 편집자 트위터

1. 개요2. 성향3. 특징 및 장점4. 비판점5. 인간 관계6. 생전장 일화7. 그 외8. 작품 목록9. 연재 잡지10. 관련 인물11. 관련 문서

1. 개요

일본만화가. 가나가와현 출신. 대표작은 《제멋대로 카이조》, 《안녕 절망선생》.

2. 성향

작가의 활동은 왕비호의 100배 이상으로, 여러 화제를 두고 신랄한 풍자와 독설을 뱉는 특유의 작품 스타일과 자학적인 평소 행동이 독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해외에 사인회 하러 가서 만난 팬들에게 "호오, 이러고 알바비는 얼마 나옵니까?"라고 비꼬기도 했으며, 인터뷰를 하면 대체로 절망적인 답변을 해서 인터뷰어를 절망시킨다. 그래서 안티도 많지만 이 자체가 기믹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혐한 성향도 강해, 작중에서 툭하면 노골적인 혐한 네타를 집어넣는다. 물론 까는 레벨로 보자면 미국이나 중국 등도 상당히 높은 레벨로 까지만, 북한한국의 경우 그 활용빈도와 예시가 수준이 다르다.

쿠메타 코지는 일단 자국도 적극적으로 까는것처럼 보이나 한국이나 중국에 대한 공격성에 비해 자국민은 너무 온순해서 탈이라며 까는 식으로, 기본적으로 넷 우익들이 말하는 '일어나라 닛뽄' 하는 각성계이지 결코 디스가 아니다.[1] 인터넷에서도 흔히 보이지만 가끔씩 광적인 정치병자들이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인은 온갖 합성에 고인드립을 해가며 모독하다가, 자신의 진영에 있는 정치인을 깔 때는 '니들이 열심히 안하니까 저놈들이 설쳐서 나라가 이 모양이다'라는 식의 말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심리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안 까는 나라는 친일성향이 강하기로 유명한 대만 정도. 그래서 '반성을 모르는 일본인'의 입장에서 마음에 드는 건 안 까고, 마음에 안 드는 건 개처럼 깐다는 비판을 받는데, 피아구별 없이 자기 맘에 안 들면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동족혐오까지 한다. 염세주의자에 가깝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 염세주의자들은 이렇게 시각이 편협하지 않다.

카이조 연재 시절 단행본 후기에서 극도의 자학성으로 사실 가장 강렬하게 까는 건 자기 자신인것처럼 보이는 것도 위에서 언급한 그런 컨셉의 연장으로 보이며 수위 자체도 어중간하다. 철저한 타자가 될 수 없는 자아비판의 한계라고도 할 수 있다. 문제발언 전담 캐릭터까지 창조해 가면서 웃음기 싹 빼고 전문적으로 욕을 퍼붓다시피 까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전적으로 비판하기보다는 은근히 비참 기믹을 섞어 동정표를 얻을 여지를 남겨 놓거나, 혹은 웃음거리 정도로 순화하는 등 '가장 강렬하게' 깐다고 하기엔 무리가 많다. 카이조에는 작가 등장 횟수가 꽤 많지만 그 중 많은 경우가 작가를 둘러싼 주변 정황을 같이 비판할 여지를 남겨 두며, 개중에는 그냥 일반 작가들이 화자를 캐릭터로 등장시켜 개그화하는 수준을 넘기지 않는 것도 많이 있다. 절망선생 시리즈에 오면 아예 출연 자체도 거의 없다.

작화 중 톤 사용을 극단적으로 배제한다. 거의 펜터치와 먹칠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편. 특유의 스타일로 인정받기도 하지만 욕도 참 많이 먹었다.[2]

만화에 종종 러브 코미디 요소가 들어가곤 하는데, 이게 작중의 미쳐돌아가는 분위기 속에서 약방의 감초 마냥 나오곤 해서 분위기를 환기시키곤 한다. 데뷔작인 '막 나가는 아이스하키 부'에 경우 에피소드 대부분이 시모네타지만 그중에서 그나마 러브 코미디 분위기인 에피소드가 나오는 날에는 순위가 높았다고 한다. 정작 러브 코미디가 주 요소인 '어서 자라줘 달링'은 지금까지 그린 만화중에서 가장 짧은 2권으로 조기완결했다.

3. 특징 및 장점

4. 비판점

4.1. 혐한 발언

쿠메타 코지/혐한 발언 문서 참고.

5. 인간 관계

위에 서술했듯이 행적이 저렇다 보니 인간 관계도 좋지 않고 트러블도 자주 일으킬것으로 보이지만 그와 정 반대로 원만한 관계들을 유지하고 있다. 일단 제자로 하타 켄지로가 있으며, 카이조 본편 중에 하타 켄지로의 오리지널 캐릭터가 출연하거나, 하야테처럼!에서 인기투표 순위에 쿠메타가 들어가는 등 관계가 깊다.(1회 14위, 2회 19위) 정발된 만화 광고를 보면 '제자보다 안나가는 스승에 절망했다!'라는 문구가 있다. 진심으로 싫다고 까지만 그게 어쨌든 애정인 사람. 본인은 하타 싫다고 이래저래 까대는데 하타 본인은 실실 웃으며 받아넘기고 있다. 어쨌든 사이는 좋은 편인지 선배 만화가와의 합작을 주선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선배 만화가는 '그 자식(쿠메타)하는 짓이라 별볼일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제대로 하더라'라고 말했다.

어시스턴트들에게 잘 해주기로 유명하며, 친목도모차 해외여행까지 간다. 하타 켄지로는 쿠메타 코지가 보내준 해외여행이 기억에 남는다고 발언했는데 정작 쿠메타에 의하면 같은 값이면 그냥 돈으로 달라고 했다고...

그래도 하야테처럼! 본편에 안녕 실망선생을 연재하는 만화가가 등장하는 등 여전히 사이좋게 지낸다.

소년 선데이 시절부터 꼭두각시 서커스의 후지타 카즈히로와 친분이 깊다. 제멋대로 카이조 본편에서 꼭두각시 서커스후지타 카즈히로 관련 네타가 엄청나게 등장하며(특히 판탈로네를 사랑하는 듯...), 역으로 츠보우치 치탄이 꼭두각시 서커스의 배경맨으로 등장한 적도 있다. 제멋대로 카이조 25권 작가의 말에 의하면 유일하게 위로해 준 것도 후지타 카즈히로라고... 안녕 절망선생 애니메이션판 1화 엔드카드를 후지타 카즈히로가 그려주었다.

아카마츠 켄과는 앙숙(?). 제멋대로 카이조 시절 "잘 팔리는 만화가", "팬과 결혼한 만화가" 등으로 까고, 작중 오덕을 까는 요소로 러브히나를 엄청나게 활용하였다.(관련자료) 그러나 카이조 완결 이후, 이적한 곳은 아카마츠 켄의 텃밭인 소년 매거진. 안녕 절망선생은 네기마의 흥행요소를 답습하여 대성공...이라는 딜레마. 실제로는 둘이 사이가 나쁘지 않다. 아카마츠도 네기마에서 절망선생 18금 동인지를 등장시키곤 한다. 농담반 진담반인 악연. 그냥 자기보다 잘 팔려서 열폭했던 것 같다.

이 작가가 스스로의 캐릭터성 때문에 친한 사람이 별로 없으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1991년부터 지금까지 만화를 그려 온 중견작가이기 때문에 타카하시 루미코, 시마모토 카즈히코 같은 다른 중견만화가들과 많이 친하다.

또한 절친인 후지타와 마찬가지로 극렬 아다치 미츠루빠이기도 하다.

히토 나미 역의 신타니 료코가 사인을 부탁한다고 직접 사온 절망선생 단행본을 건넸었는데 먹튀했다.(안녕 절망방송 휴대폰판 참조) 방송종료 후에도 연락하고 있는 건지 최근 라디오에서 신타니가 쿠메타를 부르는 호칭이 쿠메타 센세(쿠메타 선생님)에서 쿠메텐테(쿠메떤땡님)로 바뀌었다. 2009년 들어서는 신타니 료코에게 쿠메이라 불린다.

절망선생의 성우인 카미야 히로시는 메일을 꾸준히 보내는 사람이라 애니메이션이 끝난 이후로도 계속 연락을 하는 모양. 1월 1일에 서로 연락이 안 옴을 위로해주었다고 한다. 종이 블로그에 카미야 히로시로 추정되는 '천사'를 언급.

절망선생 관련 이벤트나 안녕 절망방송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MAEDAX가 대신 참가하였다. 영영 안 나올 작정인 듯. 덕분에 MAEDAX는 초특급 유명 어시스턴트화. 이것도 까는 소재다.

6. 생전장 일화

2007년 제 31회 코단샤 만화상 소년 부문을 수상했다. 근데 강담사 만화상 2차 파티에서 자신의 생전장(生前葬)[12]을 치렀다.(...) 이유는 '지금까지 인연도 없었던 만화상 수상과 애니화 등의 행운이 따라붙었으니 그 뒤에 큰 불행이 찾아올까봐 불안해서'.

소년 선데이, 소년 매거진 관계자, 타카하시 루미코, 후지타 카즈히로 등이 생전장에 참가했다고 한다. 절망선생의 작가 후기에 따르면 강담사 만화상 상금보다 생전장 준비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가 적자가 났다고 한다. 그리고 절망선생 1기 오프닝 人として軸がぶれている(인간으로서 축이 흔들리고 있어)에 나오는 쿠메타 코지의 얼굴은 바로 이 생전장때 쓰인 영정사진. 역시 절망선생 작가후기에 따르면 일본어판 위키백과의 생전장 항목에 자신의 항목이 들어있어서, 만화가보다 생전장을 치른 사람으로 더 유명해졌다든지, 자신에게 생전장에 대한 일을 물어온다든지 하는 등의 일이 있는 것 같다.[13]


[14]

소년 매거진의 もう、しませんから라는 만화에 실린 생전장 이야기.

2011년 6월 19일 MBC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방송에서 이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네이버 실시간 검색순위 1위에 오르기까지 했다. #

7. 그 외

절망선생 제18집에 의하면 노안으로 인해 가까이 있는 글씨가 보이지 않아 라식수술을 했다고 한다.

만화의 남주들이 대부분 인기남이라는 속성이 있다. 하지만 이 작가의 특성상 남주들은 하나같이 설정이 아까운 뻘짓만 하고 다니는게 특징. 또한 동물을 못 그린다고 말했는데, 개나 고양이는 정말로 못 그리지만 파충류나 곤충, 대형 동물들은 태연히 그리는 것으로 보아 컨셉인 듯 하다.

2011년에 데뷔 20주년을 기념하여 소학관과 강담사의 공동 기획으로 소년 선데이에 연재한 제멋대로 카이조소년 매거진에 연재한 안녕 절망선생이 서로 잡지를 바꾸어서 연재되기도 했다.(카이조는 매거진에, 절망선생은 선데이에.)

카이조 초기까지는 오너캐가 '시모네타 모자'를 쓴 젊은 작가였지만, 자학속성이 강해진 뒤에는 덥수룩한 머리에 찌질한 중년으로 나오고 있다.

데뷔작인 남국 아이스하키부(막 나가는 아이스하키 부)에서 어시스턴트들과 함께 누드를 공개했다. 모든 것을 까는 사나이가 이 시절엔 몸을 깠었다. 3명의 남자가 나체로 가릴 부분만 가린채 찍은 사진은 실로 업계의 전설. 소학관은 무슨 생각으로 이 사진을 단행본에 실은 것일까. #

쿠메타 코지 위키

카쿠시고토 애니화 기념 인터뷰를 보면, 일본의 인터뷰치고는 정말 막나간다는 걸 알 수 있다. 이걸 사이다로 볼지 꼴깝으로 볼지에 따라 쿠메타 코지에 대한 인상이 갈린다.1 2 3

일본의 애니메이션 업계인들 중에서도 그의 만화의 팬을 자처하는 인물들이 몇 있다. 대표적으로 안녕 절망선생 시리즈의 부감독과 제멋대로 카이조의 감독을 맡았던 타츠와 나오유키가 있다.

8. 작품 목록

9. 연재 잡지

10. 관련 인물

11. 관련 문서



[1] 그런데 그런 식으로 까는 것만으로도 우익들 심기를 거슬렸는지 살해협박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직후에는 좀 약하게 까다가 다시 까는 강도를 올렸다.[2] 지금이야 날카롭고 가느다란 그림체로 확립되었지만, 카이조 초반까지는 지나치게 가느다래서 부러질 것 같은 인체 묘사에 혹평이 많았다. 나름 극화에 가까운 남국 아이스하키부 초기 연재 시절의 그림체와 비교해보면 갈수록 음영과 선이 줄어드는게 거의 퇴화 수준.[3] 절망선생의 캐스벌 렘 다이쿤[4] 이는 만화인생에서 후반부로 갈수록 심해진다.[5] 사람이 옷을 입지않는 만화[6] 절망선생 1권과 마지막권 그림체 비교. 절망선생 본편에선 단골 독자(골수팬)만 받는 에피소드에서 골수팬이 주인공을 보고 또 그림체 바뀌었네?라고 말하기도 한다.[7] 카이조에 경우 에피소드가 진행될때마다 바뀌는 그림체를 그대로 반영했고, 절망선생에 경우 한화에 작가의 이전 작품의 그림체를 전부 집어넣었다.[8] 안녕 절망선생 OVA에서는 남국 아이스하키 시절, 카이조 초기, 그리고 절망선생 초기의 그림체가 나왔는데 갈수록 쓰는 선이 줄어들고 선이 날카로워진다.#[9] 안녕 절망선생 시절부터 여성향 팬층이 있었다.[10] 본문에서는 정치 관련 소재만 쓴다고 나와있지만, 정확히는 사람들의 부정적인 면(지적허영심, 자기합리화 등)과 그러한 사람들이 모인 사회의 부조리를 비꼬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정치 소재도 쓰이는 것이다.[11] 다른 개그만화들은 그래도 개성은 유지하는데 쿠메타에 경우 개그가 '대화'에 있다보니 대화에 집중하느라 캐릭터의 개성이 옅어진다는 문제도 있다.[12] 말 그대로, 생전(살아있을 때)에 미리 자기 장례식을 치르는 일본 문화.[13] 사실 생전장은 일본에서 주로 개그맨 등의 유명인들이 스스로의 인생을 돌아보는 의미로 하는, 장례식의 형식만 빌린 자아성찰을 위한 행사이자, 일종의 액막이 의식에 가깝다. 쿠메타 코지 본인 입장에서도 어차피 돈이 많이 들어도 나름대로 돈 쓴 의미는 있는 행사였다. 그 스스로도 길바닥에서 돈을 주워서 꽁돈 생겼다고 좋아하는 틈에 소매치기한테 가방을 날치기당하는 등의, 소소한 불운이 잦았기 때문에 이런 행사를 해서라도 징크스를 떨치고 싶었을 터이다. 이런 생전장 문화는 무려 에도 막부 시기부터 기록이 전해져 오는 오래된 문화로, 전후에 사라졌다가 기타노 다케시가 생전장을 하여 화제를 모았던 일로 인해, 원로 연예인들을 중심으로 생전장 문화가 부활했다.[14] bgm은 천개의 바람이되어[15] 사실 주인공이 유명한 이유는 잦은 반칙 플레이 때문이며, 이 때문에 아이스하키 협회에서 추방된 상태였다.[16] 아예 시모네타를 가지고 말장난을 한 에피소드도 있다. 해당 에피소드는 터미네이터의 일본식 발음(터미네타)를 이용한 말장난.[17] 사실 연재 중간에 잘리고 이후 2001년 주간 소년 선데이에 완결편이 실렸다.[18] 카이조를 연재하기 전까지는 그림체가 지나치게 가늘었다.당시 그림체 신장판 그림체[19] 에피소드 중에는 블리치는 컷을 크게 써서 다른 만화보다 컷 수가 적은데도 원고료는 똑같이 받는다고 까는 내용이 있었다.(...) #[20] 제목이 카쿠 시고토(그리는 일)과 카쿠시 고토(숨기는 것), 두가지 의미가 담겨있다.[21] 완전 성인 만화는 아니고 에로 개그 만화를 말한다. 초기작 '막 나가는 아이스하키 부'가 모델인 것 같다.[22] 참고로 작가가 프롤로그에서 7년 뒤 딸이 고등학생이 될 무렵에 들킨다고 스포했다.[23] 인터뷰에 의하면 작중에서 오해가 생겨 경찰이 집에 쳐들어온 일도 실화라고 한다. 심지어 만화에선 1번으로 그쳤지만 실제로는 2번 찾아왔다고...[24] 카츠 카이조, 나토리 우미, 츠보우치 치탄[25] 작중에선 카이조 당시의 이름은 배역명이라고 나오기 때문에 각자 다른 이름(카이조-타카하시, 우미-사토, 치탄-코바야시)으로 나온다.[26] 오키나와어로 '어떻게든 되겠지' 정도가 되는 なんくるないさー에서 따온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