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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15:08:12

추억은 방울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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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경우 톱 크래프트에서 제작했으나 미야자키가 저작권을 가지기로 하고 제작한 작품이고 미야자키가 지브리에 저작권 관리를 위탁해 스튜디오 홈페이지 작품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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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니노쿠니 시리즈 중 1편을 한정으로 스튜디오 지브리가 제작을 검수하는 방식으로 참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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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방울방울 (1991)
おもひでぽろぽ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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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fff,#010101><colcolor=#3a68be> 장르 애니메이션, 코미디, 어드벤처
감독 타카하타 이사오
각본
원작 토네 유코
제작 프로듀서 미야자키 하야오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
목소리 출연 이마이 미키, 야나기바 토시로
음악 호시 카츠
주제가 미야코 하루미
- 사랑은 꽃, 그대는 씨앗 (愛は花, 君はその種子)
미술 오가 카즈오
작화감독 콘도 요시후미, 콘도 카츠야
사토 요시하루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
배급사 파일:일본 국기.svg 도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브에나비스타인터내셔널
개봉일 파일:일본 국기.svg 1991년 7월 20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6년 6월 8일
상영 시간 119분
월드 박스오피스 $545,825
북미 박스오피스 $453,243
일본 배급 수익[1] 18억 7,000만 엔
대한민국 총 관객 수 4,006명
국내 스트리밍
[[넷플릭스|
NETFLIX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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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예고편3. 시놉시스4. 특징5. 등장인물6. 제작 과정7. 미디어 믹스
7.1. 드라마
8. 기타

[clearfix]

1. 개요

私はワタシと旅にでる。
나는 나와 여행을 떠난다.[2][3]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 오카모토 호타루와 도네 유코의 만화를 원작으로 타카하타 이사오가 감독을 맡아 만든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1991년에 만든 작품으로, 일본 아카데미 화제상을 수상하였다.

독신인 어느 여성 회사원이 휴가를 얻고 지방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과거의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들을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제작진 ▼
* 제작 - 토쿠마 야스요시, 사사키 요시오, 이소베 리츠오

2. 예고편

예고편

3. 시놉시스

초등학교 5학년의 ‘나’를 데리고 떠난 여행!
프로듀서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맡아,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과 함께 콤비를 이뤄 만든 ‘여성 영화’. 마치 2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의 <추억은 방울방울>은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탓에 농촌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는 27살 타에코 이야기이다. 타에코는 10일간의 여름휴가를 이용해 시골에 내려간다. 그 곳 사람들과 어울리며, 타에코는 초등학교 5학년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게 되면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바라는지를 알게 되는데…

4. 특징

당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마녀 배달부 키키 등을 연속적으로 흥행시킨 미야자키 하야오에 비해 타카하타의 극장용 장편작은 반딧불이의 묘뿐이었기에 개봉당시에 비교적 주목을 덜 받았다.[5] 대중들의 인식은 타카하타는 TV용 작품에 특화[6]되어 있다고 보여졌던 이유도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상당히 높은 퀄러티로 공개되었고 세계명작극장 시리즈 못지않는 작품이라고 평가받았다.

주인공이 여행을 하며 어릴 때를 회상한다는 소재를 가진 이 작품은 어린이들의 순수한 심리표현에 능했던 타카하타다운 작품이기도 하다. 어른이 되어서 어릴 때의 추억을 회상하며 지금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건 어른이 돼가는 실제 우리들에게도 그리 생소하지 않은 경험이기에 공감요소가 상당하다. 그와중에 어린시절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잘 연출시켰다. 첫사랑, 친구, 진로, 학교, 부모, 형제 등 다양한 우리의 이야기들이 들어있는 작품.

리얼타임과 과거타임을 여러번 오가는 연출법 특성상 자칫 지루하거나 정신없어질 수도 있는데 그런거 없이 오히려 장면전환시 환기가 될 정도로 편집도 잘 되었다. 거기다가 이런 일상/서술식 작품들은 기승전개 굴곡이 전체적으로 완만해서 늘어지기 십상이지만 또 은근히 갈등 요소들[7]을 집어넣어서 완급 조절도 잘 된다.

5. 등장인물


==# 줄거리 #==
1980년대 초반 도쿄에서 거주하며 일하고 있는 타에코는 10일간의 휴가를 내 시골[13]에 일종의 농촌 체험 비스무리한 것을 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떠난다.[14] 그러면서 최근들어 자꾸만 자신이 10 살일때 있었던 여러가지 소소한 일들을 떠올리며[15] 아마 자신이 성장할 때라서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하며 침대칸에서 잠이 든다. 이내 도착한 시골에서 친절한 귀농 청년 토시오와 그리고 타에코가 머물게 된 시골집 가족들과 이런저런 농촌체험을 하며 자신이 10살일때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한다.[16] 그러면서 점차 휴가일은 끝나가고 타에코가 돌아갈 날이 다가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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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떠나기 전날 머물던 집 할머니가 시골이 마음에 들면 토시오와 결혼해서 사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의한다.

당황하고 복잡한 심경의 타에코는 그대로 머물던 집에서 나오고 걷다가 다시 토시오를 만나고, 비도 피할겸 토시오의 차에 있다가 자신이 10살일적 전학왔던 아이[17]를 타에코 자신이 굉장히 싫어하였고, 그래서 그런지 그 아이가 다시 전학을 가게 되었을때 반아이 모두가 그 아이와 악수를 하게 되었을때 오직 타에코만 악수하는 것을 거절받았다는 이야기를 토시오에게 한다. 자신은 항상 좋은 사람이려 하였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고 지금도 그렇다는 타에코에게 토시오는 오히려 악수를 거절한 그 아이는 타에코를 가장 좋아했을거라고 이야기하다 비가 그쳐서 타에코를 집에 데려다준다. 그러면서 타에코는 처음으로 토시오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한다.

이후 다음날 아침, 타에코는 도쿄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에 올라타고, 토시오와 머물던 집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났지만 자신의 어릴때 모습과 그 친구들이 이끌어주듯(타에코 눈에도 보이지 않는 환상 같은) 이내 마음을 돌려 다음역에서 기차를 바꿔타고 다시 마을로 돌아가서 머물던 집 가족들에게 전화, 마침 그곳에서 뭔가를 수리하던 토시오가 바로 차를 몰고 타에코를 데리러 오고 그렇게 도로 중간에서 버스에서 내린 타에코와 토시오가 재회하면서 엔딩. 이때 어떤 남자애가 토시오를 넘어트릴 뻔하는데(아마 현실에서는 돌에 걸리거나) 타에코의 어깨를 잡으며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살짝 어색한 분위기가 있었으므로 아마 밝은 분위기로 봐서는 타에코와 토시오랑 잘 될 확률이 높다. 10살의 타에코와 그 친구들이 나무로 만든 아이아이가사를 그들 사이에 높게 들고 따라가며 이때 신나서 따라오던 어린 시절의 자신과 어릴 때의 친구들이 타에코와 토시오가 차를 타고 떠나가기 시작하자 멈춰서서 멀뚱히 선채 바라보며 끝이 난다.[18]

6. 제작 과정


스즈키 토시오가 밝힌 제작 비화 1 ▼
||“이 작품을 파쿠 씨에게 만들게 하자.”
마녀 배달부 키키」의 다음 작품을 검토하던 어느 날, 음향감독인 시바 시게하루가 가져온 「추억은 방울방울」의 기획을 앞에 두고 미야가 이렇게 말했다.[19]
이유는 이러했다. 다카하타 감독은 「반딧불이의 묘」에서 미완성 영화를 개봉하는 상상 초유의 문제를 일으켰다. 아무리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도, 그런 감독에게 작품을 의뢰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렇게 재능 있는 사람을 이대로 묻히게 할 수는 없다. 여기까지 생각한 미야가 스스로 프로듀서가 되어 다카하타를 기용한다는 작전을 짠 것이다.
나는 재빨리 다카하타의 집으로 찾아가서 타진했다.
“이런 기획이 있습니다만.”
물론 다카하타의 성격상 “그래, 하겠네”라고 흔쾌히 대답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는 “내가 왜 이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가?”를 모든 각도에서 검토하는 사람이다. 사실대로 말하면 일일이 트집을 잡을 게 분명하므로 나는 프로듀서로서 차분히 대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매일 그의 집을 찾아가 어떻게든 의욕을 끌어내기 위해 계속 작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반년쯤 지났을까? 상황이 조금도 진전되지 않자 미야가 답답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스즈키 씨, 오늘은 나도 가겠네.”
그는 다카하타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파쿠 씨, 이 작품을 해줘요”라고 대뜸 애원하더니, “처음을 이렇게 시작하는 게 어떨까요?”라고 잇따라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내용은 영화의 첫 부분을 타에코 가족의 이사로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어른이 된 타에코가 이제 곧 철거될 집에 작별을 알리고 있을 때, 언니의 가방이 나온다. 깜짝 놀라서 달려간 순간, 불현듯 초등학교 5학년인 자신을 떠올린다…….
다카하타는 잠자코 미야의 이야기를 들은 뒤에 하나에서 열까지 꼬투리를 잡았다.
미야 씨, 그러면 과거를 그리워하는 영화가 되잖아? 그건 좀 그렇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까지 그런 시점에서 영화를 만든 적이 없잖나?”
인내심이 강한 미야도 마지막에는 분통을 터트렸다.
“어지간히 하십시오! 파쿠 씨는 아이디어를 하나도 내지 않고, 남이 낸 아이디어를 부정하기만 하잖아요! 할 마음이 없으면 그렇다고 말하세요!”
미야는 성실함으로 똘똘 뭉친 사람으로, 자신이 정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한 걸음씩 내딛으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타입이다. 반면에 다카하타는 하루 종일 빈둥거려도 행복하게만 살면 된다는 사람으로, 그 연장선에서 영화도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는 타입이다. 정말이지,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 다르다. 그것도 극단적일 만큼……. 미야는 다카하타를 가리켜 ‘엄청난 게으름뱅이(나무늘보)의 자손’이라고 말하는데, 실제로도 젊은 시절부터 제대로 된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데뷔작인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만 해도, 1년의 제작기간을 3년으로 늘렸으며 한 작품을 끝내면 회사에 나오지 않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미야가 집으로 달려가서 “파쿠 씨, 이러면 안 됩니다. 어서 일어나서 회사에 가요” 라고 깨워서 데려가기도 했다. 1974년에 TV에서 방영한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만들 때도, 1년간 한 번도 방송 펑크를 내지 않은 것은 오로지 미야의 노력 덕분이다. 미야는 입만 열면 “파쿠 씨를 돌보는 게 지긋지긋하다”라고 불평하지만, 나는 미야의 그런 지극정성이 지금의 다카하타를 만든 게 아닌가 생각한다.
아무튼 미야는 펄펄 뛰며 화를 내고 책상을 뒤집어엎더니, 혼자 돌아가버렸다. 그의 분노에 자극을 받았는지, 그토록 태평하던 다카하타가 이렇게 말했다.
“제목을 「추억은 방울방울」이라고 한 걸 보면 과거를 회상하는 어른이 있다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그 사람의 나이는 어느 정도일까?”
그러더니 타에코의 현재 모습과 초등학교 시절의 회상 장면을 번갈아 그린다면 괜찮을 것 같다고 얘기하며 허리를 들었다.
“기획이 좋은지 나쁜지는 둘째 치고, 일단 한번 해볼까?”
이미 한밤중이었지만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미야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카하타 씨가 해주기로 했습니다.”
“아까 한다고 했으면 좋잖아? 괜히 무게만 잡고 말이야…….”
전화기 너머의 그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듯했다.||

스즈키 토시오가 밝힌 제작 비화 2 ▼
||드디어 제작에 들어가면서 다카하타가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과거를 회상하는 쪽의 타에코를 고등학생으로 설정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27세로 바뀌었다.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지만 다카하타의 따님이 마침 그 나이대였기 때문이 아닐까? 두 사람의 작품은 항상 가족 중 누군가를 연상케 하는 부분이 있다.
주인공을 27세로 정하고 나서, “그 나이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시에는 남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당당하게 일하면서, 사생활도 소중히 지켜나가는 커리어우먼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유행이었다. 27세는 그런 여성들이 갈림길에 서게 되는 나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현상을 보고 다카하타가 물었다.
“여성이 실제로 자신이 원하는 일과 지위를 손에 넣고 사회에서 성공할 확률은 몇 퍼센트인가?”
“5퍼센트도 채 안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나머지 95퍼센트의 여성은 그렇지 않다는 거군.”
그렇다면 95퍼센트의 여성 중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는 편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타에코의 이미지가 설정되었다.
한편 시나리오의 초기 단계에서는 농가의 청년인 도시오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왠지 아쉬운 느낌이 들어서 다카하타에게 말했다.
“여성이 혼자 여행을 하면 아무래도 남자를 만나는 법이지요.”
그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 그런 걸 안 하면 안 되나?”
“꼭 그렇지는 않지만 영화에는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몇 번 부탁하고 나서 겨우 내 이름을 붙인 남자 주인공 도시오가 태어났다.
여행의 무대를 야마가타로 선택한 이유는 미술을 담당한 오가 가즈오의 그림을 최대한 살리고 싶다는 다카하타의 의도 때문이었다. 「이웃집 토토로」의 미술에 감탄한 그는 오가와 꼭 작업을 해보고 싶어 했다.
풍경을 그릴 때는 역시 태어나고 자란 고향의 영향을 많이 받는 법이다. 북쪽 지방은 공기도 맑고 흙 색깔도 다르다. 「이웃집 토토로」를 제작할 때, 미야는 관동지역에 있는 롬(loam)층의 붉은 흙을 그리고 싶어 했지만, 아키타 출신인 오가가 그리자 흙 색깔이 검어진다는 문제가 있었다. 때문에 오가가 멋진 그림을 마음껏 그릴 수 있도록 무대를 아키타 옆에 있는 야마가타로 정한 것이다.
영화에 잠시 등장하는 ‘횻코리효탄섬(ひょっこりひょうたん島)’ 에피소드도 잊을 수 없다. ‘횻코리효탄섬’은 NHK 개국 초기에 방영되었던 어린이 인형극이다. 다카하타는 잡지의 특집 기사를 통해 인형극에 등장하는 노래를 조사하더니, 도라히게와 돈 가바초의 노래를 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재빨리 NHK에 연락해서 비디오를 빌려왔다.
“정말 재미있군. 이렇게 걸작이었을 줄이야! 이걸 매일 만들다니, 역시 이노우에 히사시 작가는 대단해!”
그의 입에서는 감탄사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노래가 나오는 영상이 없었다. 당시에는 비디오테이프가 비싸서 방송이 끝나면 다른 프로그램에 돌려서 사용했기 때문이다.
레코드판을 냈던 일본 콜롬비아에 문의해도 주제가 음원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다카하타가 “작곡가에게는 악보가 있을지도 몰라”라고 해서, 우노 세이치로의 집에도 찾아갔지만 안타깝게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상황을 설명하자 다카하타는 말없이 내 말을 듣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꼭 듣고 싶군.”
감독이 그렇게 말하면 프로듀서는 포기할 수 없게 된다. 내가 편집장으로 일했던 《아니메쥬》에는 마니아들이 우글거려서 그중 한 사람에게 말했더니, 인터넷이 없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지인에게 연락해 방송을 녹음한 카세트테이프를 사흘 만에 구해주었다.
“이런 노래였던가?”
다카하타는 몹시 기뻐하면서 노래를 들으며 악보를 직접 그렸다.
그걸로 모든 것은 해피엔딩이다…… 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이번에는 “안무는 어땠나?”란 말이 나왔다. 거기에는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인형극을 만든 히토미좌 극단에 갔지만 워낙 오래된 일이라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당시 연출가를 통해 안무가를 찾아내 가까스로 안무를 배웠다. 그 짧은 장면의 뒤에 이런 땀과 눈물의 수색작전이 있었던 것이다. 다카하타 감독과 영화를 만들면 고생도 많이 하지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서 재미있다. 영화 제작 자체가 일종의 다큐멘터리이자 지적 엔터테인먼트가 되는 것이다.||

스즈키 토시오가 밝힌 제작 비화 3 ▼
||「추억은 방울방울」은 다카하타가 내용과 표현기법의 일치를 시도한 첫 번째 작품이다. 그중에서 가장 큰 과제는 캐릭터 얼굴의 입체감이었다.
사토 추료라는 조각가의 대표작 중에 「군마 사람」이라는 작품이 있다. 유럽에 유학한 대부분의 일본인 조각가가 서양인 얼굴을 만들던 시절에, 사토는 일본인의 입체적인 얼굴을 처음으로 유럽에 소개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다카하타는 그와 똑같은 일을 애니메이션 세계에서도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사토의 아틀리에를 찾아가 어떤 방식으로 일본인의 얼굴을 그림으로 재현할지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 배우인 이마이 미키의 얼굴에 주목했다. 특히 광대뼈 모양에 반해서 “이마이 씨의 얼굴은 그야말로 일본인의 얼굴이야”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황급히 이마이에게 타에코 역을 부탁하러 갔지만 거절당했다. 당시에 인기 절정을 누리던 배우라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다카하타에게 말했더니 그는 다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녀로 하고 싶네.”
이렇게 되면 그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다시 그녀를 찾아가 몇 번으로 설득한 끝에 가까스로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다.
상대역인 도시오 역을 야나기바 도시로에게 부탁한 것은 그가 아키타 출신이라서 말할 때의 입 모양까지 리얼하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카하타의 경우, 그림이 완성되기 전에 배우의 목소리를 녹음하는 선녹음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데, 이때 배우의 표정이나 연기를 비디오에 담아 그림을 그릴 때 참고했다. 이런 방식을 사용하면 목소리와 그림의 타이밍이 맞을 뿐만 아니라 입 모양이나 얼굴의 움직임까지 재현할 수 있어서,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느낄 수 있다. 다카하타의 작품이 보통 애니메이션과 다른 점은 이런 부분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무렵부터 다카하타 이사오미야자키 하야오의 지향점이 나누어진 게 아닐까? 미야의 영화는 흔히 말하는 만화 애니메이션이다. 만화다운 캐릭터가 만화답게 움직인다. 다카하타는 미야와 같이 작업했을 때는 그것을 받아들였지만, 미야가 감독으로서 자립한 이상, 똑같은 무대에서 승부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으리라. 그래서 캐릭터 디자인과 작화감독을 맡은 콘도 요시후미에게 리얼한 입체감을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기술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애니메이션에서 광대뼈를 나타내는 선을 그리면 주름으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콘도는 다카하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다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다카하타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이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나를 불러서 이렇게 말했다.
“정말로 이 선을 그려야 합니까? 꼭 하라고 한다면 할 테니까 프로듀서가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나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카하타의 꿈을 이루어주고 싶었다.
콘도는 합리적인 사람이라서 내 지시를 받아들여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그림의 모든 공정을 자기 혼자 보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애니메이션의 경우, 많은 스태프가 나누어서 그림을 그린다. 그 이후 그림을 정리해서 깨끗하게 만들고 연기를 통일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므로, 작화감독의 부담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그때 콘도는 이렇게 제안했다.
“기본이 되는 그림은 제가 준비할 테니까, 연기는 다카하타 감독님이 봐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처음에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과연 감독이 연기만을 보는 일이 가능할까? 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은 실제로 분담 작업을 실시했다. 콘도를 비롯해 스태프가 그림을 그리면, 다카하타는 원화와 동화를 촬영해 움직임을 보는 퀵 액션 레코더(quick action recorder)라는 기계를 이용해 캐릭터의 연기를 확인한다. 그곳에서 부분적으로 그림을 빼거나 타이밍과 스피드를 바꿈으로써 연기의 의미를 절묘하게 바꾸는 것이다. 물론 그와 동시에 선녹음된 대사와 연기를 합치는 작업도 진행했다. 이것은 다카하타가 아니면 결코 할 수 없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렇게 섬세하게 작업하면 당연히 스케줄이 늦어진다. 「반딧불이의 묘」 때와 마찬가지로 이대로는 개봉에 맞출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때 이번 작품을 처음 기획한 미야는 어떻게 했을까? 회의실에 메인 스태프를 전부 모아놓고 스튜디오가 떠나가라 고함을 쳤다.
“그림 그리는 방법을 바꿔! 이렇게 해서는 영영 끝나지 않아!”
그가 그렇게 화를 내는 모습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본 적이 없다. 한편 당사자인 다카하타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미야가 “파쿠 씨, 뭐라고 말 좀 해보십시오!” 라고 소리쳐도 묵묵부답이었다. 그런데 황당한 일은 그 이후에 벌어졌다. 미야가 돌아간 다음, 다카하타가 스태프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지금까지처럼 그리면 되네”라고 말한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스태프들이 공포를 느낀 모양인지 재미있게도 그날 이후 스태프들의 작업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화를 낸 미야가 아무도 몰래 광대뼈 그리는 연습을 했다는 점이다. 정말이지, 어이가 없을 만큼 성실한 사람이다.

지브리는 이 영화부터 처음으로 연수생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스태프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보수도 두 배로 올렸다. 그 탓에 제작비는 「마녀 배달부 키키」의 두 배로 부풀었다. 나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판단했지만 배급사인 도호의 예상은 달랐다. 이번 작품은 히트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실제로 프로모션을 위해 전국 극장을 돌아다니자 도쿄의 메인 상영관은 아예 잡기 힘들었고, 겨우 마련한 지방의 개봉관은 평소에 포르노를 상영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개봉 첫날, 전국의 관객 숫자를 보고 도호의 사내에서 큰 소동이 벌어졌다. 예상치를 크게 뛰어넘은 것이다.
“이 숫자는 뭐야! 한 자릿수가 틀린 거 아니야?”
우리의 목표는 4억 엔이었지만, 최종 배급 수입은 약 18억 엔. 흥행 수입으로 바꾸면 30억 엔 정도가 된다. 당연히 그해 일본 영화 랭킹 1위를 차지했다. 배급 전문가들의 예상을 보기 좋게 배신한 것이다. 지방을 돌아다닐 때마다 극장 사장으로부터 “그때는 정말 굉장했지요”라는 말과 함께 고맙다는 인사를 받곤 했다.||

7. 미디어 믹스

7.1. 드라마

8. 기타


[1] 총 흥행 수익에서 극장몫을 뺀 수익[2] 한국어로는 구분되지 않지만 일본어로는 私와 ワタシ로 미묘하게 다르다.[3] 私는 본인 정도의 어감이다.[4] 이노우에 토시유키는 논크레딧[5] 그 반딧불이의 묘도 나우시카, 라퓨타, 토토로 등에 비하면 흥행에서 밀리는 편이었고.[6] 세계명작극장 시리즈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엄마찾아 삼만리, 빨강머리 앤 등의 타카하타의 TV명작 시리즈가 워낙에 성공했기에 이런 이미지가 당시엔 더욱 강했다.[7] 주인공의 결혼 문제, 어릴 때의 사랑/진로 문제[8] 1966년에 5학년이라고 언급했다.[9] 이것이 후반 절정부의 스토리 터닝 포인트가 된다.[10] 이 때문에 타에코가 아버지에게 뺨을 맞았을 때 정신적 충격이 훨씬 강했다. 아버지도 막상 때려놓고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짓는다.[11] 참고로 이상 시인의 유언에도 등장하는 가게다. "레몬 향기가 맡고 싶소"가 그의 유언인데, 아내 변동림에 따르면 멜론을 잘못 말한 것일 수 있다고 한다. 죽기 한 달 전 이상 본인이 "센비키야의 멜론이 먹고 싶다"라고 변동림에게 말했기 때문이다.[12] 근데 집안 어른들이 먼저 타에코에게 시골로 내려와줄 수 있느냐고 물었으니 뭐 상관없을지도.[13] 도호쿠의 야마가타현이다.[14] 농촌 체험이라기보단 큰 언니 나나코의 시댁이다. 어린 시절 부터 시골을 동경(?)해왔지만 갈만한 곳이 없었던 타에코는(할머니와 함께 거주하므로 흔한 시골 할머니댁도 없었던 것.) 언니가 결혼한 후 종종 휴가를 내고 시골에서 한동안 머물며 일을 도와주는 것이다. 정작 큰 언니 내외는 도쿄에 거주.[15] 학교 성교육과 생리에 관한 일들, 다른 반 아이가 자신을 좋아했던 일, 친구들은 방학이라고 시골로 내려가는데 자신의 가족은 생판 도쿄 토박이라 아무데도 안간다고 찡찡대다 할머니 따라 요양원 따라갔다 온천을 너무 오래해서 기절한 일 등등..[16] 학교 연극에서 엑스트라였는데 대본에 없던 애드립으로 유명해져 대학 연극부에서 아역배우로 스카웃 제의를 받았지만 아빠의 반대로 무산되었던 일, 언니들에게 물건 물려쓰기 싫다고 땡깡부리다가 맨발로 집 밖에 나왔다고 아빠에게 맞았던 일,(글만 읽으면 타에코가 차별 받는것처럼 속단할 수 있는데, 오히려 아빠는 막내딸인 타에코를 귀여워했다. 상술한 뺨을 맞은 이유도 고집부리고 어리광을 피운다고 맞은게 아니라 맨발로 뛰쳐나왔다고 맞은 것이다.) 분수의 나누기를 이해하지 못해서 수학 시험에 25점을 받은 일(정상적인 애라면 이런 점수를 맞을리가 없다며 계속 옆에서 얘기하는 둘째에게 안그래도 기분 안 좋던 참에 짜증이 난 엄마가 "타에코는 정상적인 아이가 아니야." 라고 소리쳤는데 주인공은 그것을 직접 들어 충격을 받는다. 이를 눈치챈 엄마가 깜짝 놀라며 소름 돋는 것이 포인트.)일 등등[17] 집이 가난하고 하는 짓도 구질구질해서 반 아이들의 기피대상이었다.[18] 이는 추억 속에 머물며 살아가던 타에코가 토시오와 맺어지면서 추억을 뒤로 떠나간다는 것을 표현하였다고 볼 수 있다. 때문인지 어린 타에코나 친구들의 표정은 방금까지 밝았던 것과는 반대로 썩 달가워하지 않는 표정을 짓고 있다.[19] 미야 씨는 스즈키 프로듀서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부르는 별칭. 마찬가지로 파쿠 씨는 다카하타 이사오의 별칭이다.[20] 1991년 개봉이니 1989~90년의 배경자료를 사용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