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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토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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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 크래프트 · 스튜디오 지브리(연표)
관련 인물
미야자키 하야오스즈키 토시오콘도 요시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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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카의 숲 지브리 미술관지브리 파크
작품
극장 장편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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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배달부 키키 추억은 방울방울 붉은 돼지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귀를 기울이면 모노노케 히메 이웃집 야마다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고양이의 보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 벼랑 위의 포뇨
마루 밑 아리에티 코쿠리코 언덕에서 바람이 분다 가구야공주 이야기
추억의 마니 붉은 거북 아야와 마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지브리 신작 애니메이션
(1)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경우 톱 크래프트에서 제작했으나 미야자키가 저작권을 가지기로 하고 제작한 작품이고 미야자키가 지브리에 저작권 관리를 위탁해 스튜디오 홈페이지 작품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TV 애니메이션
바다가 들린다 기브리즈 아야와 마녀
단편 애니메이션
On Your Mark 빙글빙글 고래 잡기 고로의 산보
메이와 아기고양이버스 상상속의 비행 기계들 상상의 기계들 중 파괴의 발명 기브리즈 에피소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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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산 날 집찾기 쥐스모 빵반죽과 계란 공주
보물 찾기 털벌레 보로 젠 - 그로구와 더스트 버니
극장 실사 장편
식일 사토라레
실사 단편
거신병 도쿄에 나타나다 거신병 도쿄에 나타나다 극장판
게임(2)
니노쿠니 하얀 성회의 여왕 니노쿠니 칠흑의 마도사
(2) 니노쿠니 시리즈 중 1편을 한정으로 스튜디오 지브리가 제작을 검수하는 방식으로 참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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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스즈키 토시오
[ruby(鈴木, ruby=すずき)] [ruby(敏夫, ruby=としお)]|Suzuki Toshio
파일:23_871f9ace8180086a27fd71f1f09c4cba_600.jpg
출생 1948년 8월 19일 ([age(1948-08-19)]세)
아이치현 나고야시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직업 애니메이션 프로듀서
현직 스튜디오 지브리 이사회 의장 (2023~현재)
소속 도쿠마 쇼텐 (1972~1989)
스튜디오 지브리 (1989~현재)
자녀 스즈키 마미코( 鈴木 麻実子)
학력 나고야 시립 긴죠 초등학교 (졸업)
도카이 중학교 (졸업)
도카이 고등학교 (졸업)
게이오기주쿠대학 (문학부 / 학사)

1. 개요2. 경력
2.1. 지브리 이전2.2. 지브리 입사 이후
3. 비판과 논란
3.1. 애첩 관련 내부 폭로3.2. 스즈키 토시오의 딸 스즈키 마미코
4. 기타

[clearfix]

1. 개요

일본애니메이션 프로듀서이면서 동시에 스튜디오 지브리의 프로듀서이자 대표이사, 편집자이다.

2. 경력

2.1. 지브리 이전


스즈키 토시오 포브스 인터뷰

나고야에서 태어나 게이오기주쿠대학 문학부를 졸업, 1972년 출판사 도쿠마 쇼텐에 입사하여 <주간 아사히 예능> 기획부에서 기자로 일하다 1973년 오일 쇼크 등으로 인해 도쿠마 쇼텐의 기획부에서 아동소년편집부로 이동했다. 그러던 중 1978년 애니메이션 전문 잡지 아니메쥬가 창간, 초대 편집장의 부탁으로 아니메쥬의 편집부로 이동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와의 인연은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을 제작하던 당시 스즈키가 미야자키의 취재를 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미야자키는 "아니메쥬? 그거 애니메이션으로 돈벌이나 하려는 거잖아? 그런 거에 협력하면 내가 더러워지는 기분이 든다."라고 취재를 거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스즈키는 미야자키에게 끌렸고, 미야자키가 매번 바쁘니까 제발 가라고 퇴짜를 놓아도 끈질기게 스튜디오를 출입했다. 그러기를 며칠, 이번에는 미야자키가 루팡과 지겐의 카 체이스 씬을 짤 때 악당의 차를 앞지르는 장면에서 루팡이 어떤 대사로 받아칠지 고민하다가 스즈키에게 "이럴 때 뭐라고 하면 될까요?"라고 먼저 말을 걸었다. 이때 같이 갔던 아니메쥬의 편집부 직원 카메야마 오사무가 "まくるぞぉ!(마쿠루조! / 앞지르자!)"라는 경륜 용어가 있다고 하자[1] 이에 미야자키는 "아, 과연 그렇군."라고 말하며 바로 그 대사를 콘티에 집어넣었다. 그때부터 점차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칼리오스트로성 문서 기타 항목 참고.)

1981년, 미야자키의 여러 기획서를 도쿠마 쇼텐에 올리지만 원작이 없는 오리지널 기획이라는 이유로 퇴짜를 맞는다. 그래서 스즈키는 원작이 없다면 원작을 그리면 된다고 생각해서 미야자키에게 아니메쥬에 연재할 만화를 의뢰했고, 그렇게 그린 만화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다. 미야자키는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만화를 그린다는 것이 싫어서 자신의 취향을 담아 그리고 싶은 내용을 그렸는데, 어찌하다 보니 우여곡절 끝에 나우시카는 극장용 영화로 만들어졌다. 스즈키는 나우시카의 기획 회의에서 단행본 첫 권이 5만 부 발행된 것을 50만 부 팔렸다고 뻥을 쳐서 영상화가 되도록 했다. 나우시카의 단행본이 권당 페이지 수가 적은 이유도 일부러 낮은 가격에 많이 팔려는 속셈이 있었다.

나우시카의 성공 후, 아니메쥬의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이웃집 토토로, 반딧불의 묘 등등 스튜디오 지브리의 영화 제작을 도와준다.

2.2. 지브리 입사 이후

이후 미야자키 하야오의 권유로 1989년 도쿠마 쇼텐을 퇴사하고, 자회사인 스튜디오 지브리로 이직해 붉은 돼지, 추억은 방울방울, 모노노케 히메 등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들의 프로듀서를 도맡아 흥행에 성공하면서 명프로듀서의 위치를 확립한다.

원래 마녀 배달부 키키 이전까지 지브리는 영화의 선전 활동에 무심했다. 미야자키도 타카하타 이사오도 작품만 잘 만들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결국 스즈키가 미야자키에게 "그래서 영화관에 손님이 없어 텅 빈 것이 좋습니까?"라고 돌직구를 날리자 미야자키는 숙연해졌다고 한다. 스즈키는 평소 친분이 있던 닛폰 테레비의 윗분을 찾아가 밀월관계를 맺고 TV를 통해서 대대적인 홍보 활동을 했고, 흥행 대박이 난 마녀 배달부 키키 이후로는 지브리의 작품은 나올 때마다 일본 영화 흥행 순위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스즈키의 뛰어난 프로듀싱 및 경영 능력 덕에 지브리가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야자키와 타카하타가 훌륭한 작품을 쏟아내는 동안 스즈키는 그 영화들이 작품성에 걸맞은 흥행을 거두기 위해 열심히 뒷바라지하는 데 애썼다. 그의 노력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의 역사적인 흥행을 보면 결실을 맺었다 볼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여성들이 198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직장인이 되어 돈을 많이 쓸 것이라고 예상하였으며, 지브리 작품을 성인 여성 취향으로 맞추기 위해 작품에 조언 및 이미지 마케팅을 하기도 했다. 이는 정확히 성공을 거두었다.

2005~2008년까지 스튜디오 지브리의 CEO를 역임했고, 이후 대표이사(代表取締役) 프로듀서 직함으로 있었다. 2023년 다시 사장직으로 복귀했다.『君たちはどう生きるか』は宮崎駿監督の【引退作】ではない? 鈴木敏夫がスタジオジブリ社長に復帰した理由

미야자키나 타카하타가 신념이 있고 고집이 센 성격이라 말을 너무 세게 하는 것도 있어서 지브리의 공식 인터뷰는 주로 스즈키가 대신 하는데, 잡지 편집장 출신답게 말을 정돈있고 재밌게 잘해서 인기가 좋다. 깐깐하고 히스테릭하고 오만한 천재 이미지였던 초기의 미야자키를 현재의 친근한 중년 신사 이미지로 새롭게 이미지 메이킹을 한 것이 바로 스즈키 토시오이다. 하지만 일부 발언은 신빙성이 부족한 걸로 드러나기도 해서 양념을 지나치게 치는 거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최근 영상 매체 시장이 스트리밍 위주로 변화함에 따라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 업체와 지브리의 협업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많아졌는데, 이에 대해 자신들의 영화가 싸구려 취급받을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협업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혀 잠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 # 그러나 최근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2]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미국 내 한정으로 지브리 영화들은 넷플릭스, 디즈니+ 등을 제외한 오로지 맥스를 통해서만 볼 수 있게 될 예정이라는공식 보도를 비롯해 천문학적인 계약 규모에 대한 기사가 연이어 올라오자 네티즌들은 그렇게 OTT 시장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하더니 결국 돈에 굴복한 거냐는 반응들이 오가고 있다.
스즈키는 이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우디 앨런 같은 원로 영화인도 스트리밍 서비스 독점 영화를 만들고, "이런 스트리밍 서비스가 많은 사람들에게 영화를 소개시켜준다"라고 말하는 걸 보고 마음을 바꾸었다고. OTT 플랫폼에 지브리 영화를 올리면 애니메이션 제작비를 구할 수 있으니 여전히 부정적이였던 미야자키를 설득해 스트리밍 계약을 했다고 한다. 북미 쪽만 맥스에 판 것이고 아시아에서는 넷플릭스가 독점 서비스하게 되었다.지브리의 땀투성이 스즈키 토시오 라디오 방송

2022년 애니상의 공로상인 윈저 맥케이상을 수상했다.

3. 비판과 논란

스즈키는 TV 방송과 인터뷰, 그리고 본인이 직접 쓴 저작물 책을 보면 이 사람이 없으면 스튜디오 지브리의 영광은 없었을 거라는 것처럼 포장했는데,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그 도금이 벗겨지고 있다.

한때는 지금의 지브리를 성공으로 이끈 민완 프로듀서로 인기를 끌고 그를 다룬 TV 특집 방송까지 꾸려지는 인기인이 되었는데, 현재는 지브리가 쇠퇴하면서 그 파멸을 초래한 장본인이라고 비판받게 되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여기서 하나하나 다 설명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하지만 예를 들면 모노노케 히메는 원래 미야자키 하야오아시타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해서 타이틀을 '아시타카 전기'라고 하고 싶었는데 스즈키는 모노노케 히메라는 타이틀이 흥행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자기 맘대로 미야자키와의 상의도 없이 '모노노케 히메'로 TV 선전을 해버리는 짓을 저질렀고 그래서 본래라면 아시타카라는 저주받은 어린 영웅이 어떻게 그 저주를 극복하고 이겨냈는가라는 영웅 신화에서 뜬금없이 늑대에게 길러진 이 영화의 주인공인 것처럼 관객을 미스 리드하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도 아부라유 온천장은 캬바쿠라 이야기인데 매춘을 하는 곳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인터뷰와 글을 써서 여러 오해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가구야공주 이야기도 역시 선전 문구의 '가구야 공주가 저지른 죄와 벌'라는 타카하타 이사오가 의도하지도 않은 문구를 집어넣어서 그를 화나게 만들었다. 이 밖에도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은 아들(미야자키 고로)이 아버지(미야자키 하야오)를 살해하는 이야기[3]라는 식으로 선전하는 등 과연 작품의 테마를 이해하고 있는지 싶을 정도로 오로지 흥행을 위해서 관객에게 호기심과 센세이션을 살 만한 문구를 만들어서 선전했다. 이런 것은 흥행에는 도움을 주었을지는 몰라도 관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해석하는 데는 방해가 되었다.

미야자키의 아들 고로에게 게드전기의 감독을 맡긴 장본인이다. 스즈키는 고로가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다지만 별로 좋은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그 밖에 요네바야시 히로마사를 감독으로 발탁하고, 추억의 마니를 원작으로 선택하고, 두 감독에게 만들고 싶어하지도 않았던 바람이 분다와 가구야공주 이야기를 억지로 설득해서 만들게 했다. 결과적으로 말년의 이러한 판단 미스는 지브리의 경영 악화와 제작 부문 해체를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스즈키 본인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감독에게 강요한 것도 문제인데, 미야자키가 정작 만들고 싶은 영화를 못 만들게 한 것도 문제다. 미야자키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만들기 전 1년 동안 『煙突描きのリン』이라는 작품을 차기작으로 기획하고 있었다. 그 내용은 여기서는 생략하고 아무튼 '린'이라는 18살의 소녀와 60살의 노인이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었는데 스즈키가 반대해서 기획은 무산되었다.

프로듀서라는 감독을 지원하고 보조하는 역할을 뛰어넘어, 원작도 본인이 좋아하는 소설이나 소재(이웃집 야마다군, 추억의 마니)를 정해서 그것을 만들고 싶지 않은 감독한테 억지로 만들라고 강요하고, 영화의 선전 문구도 타이틀도 영화의 테마와는 상관없이 감독과는 상의도 없이 자기 멋대로 선전하고, 미야자키의 맹반대에도 애니메이션에는 문외한인 그의 아들 고로를 감독직으로 맡겨 졸작 게드전기를 만들어서 지브리의 명성에 먹칠을 했다. 그리고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감독 도중 강판 사건도 정황상 호소다 마모루를 감독직에서 해고한 것도 미야자키와는 상의가 없이 스즈키가 독단적으로 내린 결정으로 여겨지며, 호소다 마모루한테는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매장될 뻔한 좌절을 겪게 만들었고 미야자키에게도 그동안 승승장구하다 처음으로 악평을 받는 졸작이나 범작이라는 평을 듣게 만들었다는 등의 안하무인 독재자 식으로 경영을 해서 지금의 지브리의 쇠퇴를 초래했다는 비판이다.

키타쿠보 히로유키는 애니메이션 잡지 시절부터 스즈키를 알았는데 "스즈키 토시오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타카하타 이사오 외에는 안하무인하고 남의 아이디어를 자신의 것으로 훔치는 사람[4]"이라면서 지브리의 일을 하자는 의뢰도 있었으나 스즈키 때문에 안 했다고 하기도 했다. # 스즈키도 키타쿠보를 좋아하지 않아 키타쿠보 말로는 본인을 업계에서 매장시키려고 했다거나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를 보고는 스토리가 없어서 졸작이라는 혹평을 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오카다 토시오도 자신도 스즈키에게 당한 것이 있다(스즈키가 아니메쥬의 편집장 시절 다이콘 필름에게는 아무런 승락도 없이 다이콘 3와 다이콘 4를 소개하는 글을 잡지에 실어서 항의하니까 아니메쥬가 선전해 줬으니까 좋지 않냐며 적반하장이었다고[5] 키타쿠보의 말이 전혀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니라고 옹호했다. 다만 스즈키는 사소한 건 신경쓰지 않는 악마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작품을 잘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악랄함이 없으면 고집이 센 미야자키와 타카하타와 같이 일할 수 없다고 한다. # 지금은 스즈키가 지브리의 속사정을 언론 통제하기 때문에 앞으로 10년 후에야(스즈키가 사라져야) 제대로 된 정보가 나올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 밖에도 오카다 토시오가 하는 말이라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지브리 직원에게 도게자를 하라고 시켰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3.1. 애첩 관련 내부 폭로


2023년 3월 28일, 일본 주간지 "주간 여성 PRIME(週刊女性PRIME)"에서 공과 사를 구별 못하고 태국인 애첩에게 지브리의 IP나 자본을 맡겼던 정황이 폭로되었다. # 2013년도부터 스즈키 토시오가 미혼모태국인 여성 칸야다[6]를 끌어들여 여행비와 체류비를 지브리에 지불하게 하고, 2018년 태국 방콕에 개업한 지브리 공인 레스토랑의 운영을 그녀에게 맡기는 등, 지브리의 '공과 사'를 혼동하는 행태를 보였다고 한다.

스즈키 토시오는 이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南の国のカンヤダ'(2018년)라는 소설도 직접 써서 출판했다.

또한 제일 심각한 문제는 2023년 7월 일본에서 개봉 예정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작중 등장하는 쇼와 시대의 여성이 칸야다를 모티브로 한 여성 히로인으로 등장한다는 점 때문인데 스즈키 토시오는 이미 2018년에 '남쪽 나라의 칸야다' 라는 '논픽션 소설' 을 출간했고 이것을 미야자키에게 보여줘 기모노 차림의 히로인으로 그렸다고 한다. 태국인 애인 사진

2008년부터 스튜디오 지브리의 사장을 맡았던 호시노 켄지가 2023년 3월에 사장직에서 사임하고 6월에 퇴직했다. 이 전까지는 모른 척했던 스즈키 토시오의 태국인 애인 문제를 작심하고 언급하기 시작하면서 트러블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스즈키 토시오가 다시 사장직으로 복귀했다.

3.2. 스즈키 토시오의 딸 스즈키 마미코

자신의 친족을 스튜디오 지브리의 경영진으로 영입해서 일본에서는 말이 나돌았다. 그런데 이 딸은 미용 살롱 즉 미용실에서 일한 것이 경력의 전부라서 세습 경영 아니냐는 소리가 나왔다. 그 남편도 미용사인데 스튜디오 지브리에 자주 들락날락 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도 말이 나오고 있다.

이 딸은 1976년생으로 1989년의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당시 13살로 키키의 캐릭터 모델이었고, 귀를 기울이면에서 컨트리 로드의 개사곡 일본어 가사를 썼다. 이후에도 지브리 관련 영화에서 2곡인가 주제가의 가사를 썼다. 그리고 유명한 아버지 스즈키 토시오의 딸이라는 후광으로 스즈키 집안 이야기를 담은 엣세이책도 출판했다. 이에 대해 스즈키 토시오에게 반감이 있는 키타쿠보 히로유키는 딸바보 스즈키가 딸한테 비위 맞추려고 노래 작사가도 만들어주고 저작권 수익도 주려고 연줄을 이용했다고 비꼬았다.

4. 기타



[1] まくる는 경륜 용어로 뒤에 있던 자전거가 순식간에 상대방을 앞지른다는 표현이다. 가메야마는 평소 경륜 팬이었다고 한다.[2] 당시 워너 미디어[3] 영화에서 주인공 아렌이 아버지 국왕을 죽이는 장면을 집어넣으라고 한 것도 스즈키였다. 시사회를 보던 미야자키는 이 장면을 보고 시사실 밖으로 나와버렸다.[4] 키타쿠보는 벼랑 위의 포뇨는 스즈키 토시오가 나쿠라 야스히로의 아이디어를 훔쳐서 만들었다고 주장한다.[5] 그러나 다이콘 3나 다이콘 4나 저작권을 무시하고 무단으로 사용한 작품이라 저작권을 주장하는 것도 뻔뻔한 소리다.[6] 처음 만난 2013년에 칸다야의 나이가 일본 나이로 31살. 참고로 스즈키의 외동딸 나이가 1976년생(2013년에는 38살). 칸다야는 막내 딸 정도 되는 나이다.[7] 스즈키 토시오 본인이 미야자키 하야오를 언급하는걸 들어보면 전담 프로듀서치고 의외로 솔직하고 중립적인 구석이 있다. 바다가 들린다 10주년 기념 대담회에서 미야자키와의 충돌을 털어놓으며 괴로웠다는 모치즈키의 입장을 어느정도 두둔해주면서 "싫어하는 작품이라면 그냥 넘어 갔겠지만, 자신이 만들지 못 하는 젊은 작품이기에 인정하기 싫어 그렇게 분개하였다."라는 얘기를 했다. 심지어 게드 전기 제작 당시 르 귄 여사 앞에서 아들의 그림과 자신의 그림을 비교하는 하야오의 행동을 보고 솔직히 때리고 싶었다라는 발언한데 이어, 자신의 아들을 인정 안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 (하야오)은 작품을 통해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라고 고백했을 정도. 그냥 예스맨이었다면 오시이와의 관계 역시 그리 살갑진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