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4-22 22:55:02

찰스 3세/생애/다이애나와의 결혼과 이혼

파일:Semi_protect2.svg   가입 후 15일이 지나야 편집 가능한 문서입니다.
(~ KST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1F7E, #1353b4 20%, #1353b4 80%, #001F7E)"{{{#!wiki style="margin:-10px"<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1353b4><tablebgcolor=#1353b4>파일:찰스 3세 모노그램.svg 찰스 3세
관련 문서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1353b4,#1353b4>재위<colbgcolor=#fff,#1f2023>영국 국왕 · 영연방 왕국 국왕 (캐나다 국왕 · 호주 국왕 · 뉴질랜드 국왕 · 그레나다 국왕) · 웨일스 공
재위시기 즉위 · 대관식 · 찰스 시대 · 사건 일람
생애 생애 (다이애나와의 결혼과 이혼 · 재위기간)
가족관계 배우자 카밀라 파커 보울스 · 전처 다이애나 스펜서 · 장남 웨일스 공 윌리엄 · 차남 서식스 공작 해리 왕자 · 아버지 필립 마운트배튼 ·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 · 동생 프린세스 로열 앤, 요크 공작 앤드루 왕자, 에든버러 공작 에드워드 왕자
기타 God Save the King · 찰스 3세(드라마)
}}}}}}}}} ||


1. 다이애나와 카밀라2. 변명과 반론3. 결론

1. 다이애나와 카밀라

파일:external/www.newsmaker.or.kr/6266_14594_1938.gif
방한했을 때 경기도 파주군 설마리 전적지의 영국군 묘지를 배알하는 모습이다.[1]
파일:external/i.telegraph.co.uk/wedding-supp-26041_1878425b.jpg
1992년 11월에 왕세자 부부가 노태우 대통령의 초청으로 한국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 찍힌 사진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한국 방문을 끝으로 공식적으로 별거에 들어갔다.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부인 다이애나 스펜서를 등지고 카밀라 파커 보울스불륜을 저질러 사람들에게 불륜남으로 낙인찍혔다. 1981년 다이애나와 결혼했다가 1996년 이혼하면서 카밀라 파커 보울스와 불륜 관계를 지속한 것이 드러나서 지탄을 받고 인기가 폭락했다. 더더욱 지탄받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부부의 나이 차이인데 찰스는 1948년생인데, 다이애나는 1961년생으로 13살 차이였다. 같은 연배라고 보기 힘들 만큼 나이 차이가 난다.

이러한 찰스의 선택이 어머니와의 관계가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어머니이기 전에 영국의 여왕이고, 찰스는 아들이기 전에 왕세자다. 엘리자베스 2세는 찰스를 상당히 엄격하게 키웠고, 삶에서 공적인 부분이 크게 차지했기 때문에, 찰스는 애정결핍을 겪었다. 그 와중에 만난 카밀라는 푸근한 성격이라, 찰스에게 상당히 매력적이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1996년에 시끄럽게 이혼하고, 1년 뒤에 다이애나가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때 슬퍼하는 모습도 보여 주었으나, 그것도 잠시. 이내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카밀라 파커 보울스와 함께 공식 석상에 참석하는 행보를 보여 혹독한 비난을 받았다. 2005년에 기어이 카밀라와 재혼했다. 일각에서는 '저것도 사랑'이라는 반응을 받았으나 대부분은 '세기의 불륜'으로 비난했고 이미지가 더 나빠졌다.

생전 다이애나의 인기가 워낙 많았던지라 그녀의 사망으로부터 [age(1997-08-3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린 아내를 두고 불륜을 저지른 부도덕한 자로 회자된다.

사실 다이애나와 결혼하기 전에 카밀라와 교제하다가 깨졌는데, 다시 카밀라와 재결합했을 때 이미 그녀는 앤드루 파커 보울스라는 사람과 결혼한 상태였다. 즉, 카밀라와 결혼하려면 그녀가 이혼해야지 가능했던 것. 하지만 왕실은 절대 심프슨 부인과 에드워드 8세 사건을 되풀이하지 않고 싶어했다. 또한 이혼녀는 무조건 죽기살기로 싫어했던 외할머니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의 영향도 있었다. 카밀라와는 결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왕세자비에 적합한 여자로 당시 막 성인이 된 다이애나로 선택해 결혼한 것이니 다이애나 입장에서는 사기결혼을 당한 셈이다.

그리고 다이애나를 추천한 것은 카밀라의 영향도 있었는데, 찰스와 비슷한 나이대보다는[2] 다이애나처럼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어린애라면 함부로 휘두를 수 있기 때문. 카밀라가 예상했던 대로 결혼할 당시 이제 갓 21세였던 다이애나는 그렇게 한동안 휘둘리며 살았다. 하지만 다이애나가 생각보다 자기 주장과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기에, 카밀라와 영국 왕실은 결국 된통 한 방 먹게 된다.

2. 변명과 반론

3. 결론

위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속적인 불륜 행각이 한 여자의 인생을 비극적으로 만든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다이애나가 맞바람을 피운 것은 분명 비판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사랑하지 않는 다이애나를 후계자를 낳아 줄 왕세자비로 낙점한 것도, 다이애나와 결혼하고 나서 지속적으로 불륜을 자행해 온 것도 찰스 3세 본인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다이애나가 막판에 가서 맞바람을 피워 구실을 잡힐 만한 일들을 벌인것도, 전부 찰스가 원인이라는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자신을 사랑할 것이라 믿었던 남편이 사실은 다른 여자와 사랑을 하고 있었고, 자신에 대한 애정은 전혀 없었으며, 결혼 생활 중에도 상간녀와 당당하게 밀회를 하며 밖으로 나도는데 세상 어느 본처가 기분 좋게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여성 인권이 낮았던 중세나 근대도 아니고 엄연히 여성 총리까지 배출했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치세인 20세기 후반에 말이다.

찰스는 큰할아버지가 그랬듯 왕위를 버리고 카밀라를 선택하던지, 아니면 다이애나와 왕위를 선택하고 카밀라와의 관계를 접던지 해야했다. 왕위와 사랑, 둘 모두를 욕심내었기 때문에 한 여자를 불행하게 만들었고 그 대가로 본인이 비난을 받음와 동시에 왕실의 이미지까지 실추시켜 버리게 된 것이다. 본인의 선택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에 당연히 받아들여야한다.

다이애나가 막판에 실책을 몇가지 한 건 사실이지만, 사람들이 그 부분에 대해서 크게 비판하지 않고 두둔하는 것은, 다이애나의 상황이 "그럴만했다"라고 자연스레 생각이 들기 때문일 것이고, 찰스와 카밀라는 다이애나 입장에서 엄연한 정신적 폭력을 휘두른 불륜남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찰스가 사전에 다이애나에게 카밀라와의 사이를 처음부터 말하고 결혼했다면 합의된 것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 이건 엄연히 속이고 결혼한, 명명백백한 사기극이었기 때문.

게다가 영국 왕실은 국민들에게 입헌군주제 폐지의 꼬투리가 될만한 스캔들을 어떻게든 무마시키고 덮으려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찰스의 외도를 알면서도 모른척, 입다물고 쉬쉬할 수 밖에 없었고, 다이애나 입장에서는 제 편을 들어줘도 시원찮을 시어머니와 시댁 식구들이 전부 자신에게 참고 살라고만 하니 당연히 속이 터질 수밖에 없다. 다이애나의 익히 알려진 성격 상, 절대 넘어갈 수 있을만한 일도 아닐 뿐더러, 찰스는 자식들까지 낳아놓고 당당히 카밀라와 불륜을 저지르고 심지어 다이애나가 사고로 죽어주니 아예 카밀라와 재혼했다.

아버지로서의 자각도 남편로서의 자격도 없는 정말 찌질한 면모만 잔뜩 보이니 영연방 국가에서는 "윌리엄 왕세손이 왕이 되면 인정해줄 수도 있겠지만, 찰스가 왕이 되는 꼴은 못 본다. 차라리 국민투표입헌군주제를 폐지해라"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위에서도 지속적으로 언급되어 온 사실이지만, 찰스 왕세자는 제 3자의 입장에서 볼 때 왕위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권력욕 때문에 큰할아버지인 에드워드 8세와 달리 사랑만을 택하는 방법을 쓰지 않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포기할 용기는 없지만 자기 마음대로 살고는 싶은 이기적인 욕심을 위해서 왕세자비감으로 손색 없는 다이애나를 인형처럼 앉혀 놓고, 후계자 출산 셔틀로 써먹으며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했다. 그리고 이는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도 왕위를 물려받을 왕세자로서도 빈말로조차 잘했다고 할 수 없는 역겨운 행실이었다.

이 때문에 다이애나 사후부터 지금까지 평생을 불륜커플이라는 꼬리표를 뗄레야 떼지 못한 채 언제 어디를 어떻게 가든 뒤에서 은근히 따라붙는 비웃음과 조롱 속에 영원히 시달리며 사는 것으로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지 찰스와 카밀라는 이에 대해 변명 한 마디 없이 살고 있다.

찰스와 카밀라의 사랑이 안타까운 사랑이라고 동정하며 "저만 하면 인정해 줘야 한다"는 아주 극소수의 반응도 있는데, 문제는 이 둘의 행실 때문에 피해자가 나왔다는 것이다. 꿈 많던 한 어린 여자의 인생이 철저히 망가졌다. 그런데도 이들은 그것을 외면한 채 지속적으로 부도덕한 사랑을 나눠 왔으며, 결국 다이애나가 이혼하고 왕실을 떠난 뒤 곧 사망하자 얼마 지나지도 않아 대놓고 우리 사귄다는 티를 내며 둘이 같이 다니기 시작하더니, 끝내 결혼에 골인했다. 이혼 후 바로 재혼한 것은 아니고 9년간 텀을 두긴 했지만, 그것도 세상의 눈치를 봤다기보다는 찰스 왕세자의 외할머니인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왕대비가 이혼녀를 말 그대로 극혐했기 때문이 크다. 엘리자베스 왕대비가 101세까지 장수하지 않았다면 말 그대로 이혼하자마자 재혼했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왕대비가 죽고 난 바로 이듬해(2003년)부터 동거를 시작했고, 3년상 끝나자마자 재혼했는데 이 타이밍이 과연 우연일까?

어쨌건 해리 왕자는 일단 "새어머니가 좋다"면서 대외적으로는 카밀라를 어머니로 인정하는 발언을 한 바 있으며, 뿐만 아니라 영국 왕실에서는 찰스의 재혼에 대해서 크게 반대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서열과 전통을 그렇게 중요시하는 영국 왕실에서 과연 아들이 새어머니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을지도 의문이다. 더군다나 친어머니는 이미 교통사고로 사망해 이 세상을 떠난지 오래고, 아버지는 불륜 빼면 잘못한 게 없고, 할머니도 왕위 계승을 지지하며 버젓이 살아 계시는 상황에서 말이다.
두 왕자가 카밀라를 어떻게 생각하든 윌리엄 왕세자가 친어머니를 그리워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윌리엄은 오래전부터 항상 같은 시계만 착용해왔는데, 다이애나 비가 생전 마지막 생일선물로 준 것이라고 한다.

[1] "명색이 부부라는 사람들이 공개 석상에서 서로 손도 잡지 않을 정도로 관계가 나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의견도 있으나, 원래 영국 왕실은 부부 사이라도 공식 석상에서는 손을 잡지 않는 것이 관례이다. 어린 아이들의 손을 잡는 것은 예외. 서식스 공작 헨리 왕자메건 마클은 공식 석상에서 이 규율을 어기고 손을 잡고 팔짱을 끼는 모습을 자주 보이기도 했다.[2] 찰스와 비슷한 나이대면 이미 사회 생활 경험이 꽤 있어서 세상 물정에 능하고 머리도 커져서 함부로 다루기 힘들다.[3] 다이애나의 친정은 부유한 최상류층 귀족 가문이었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 일할 필요가 없었다. 다이애나가 했던 일은 어디까지나 취미생활이었다.[4] 당시에는 스펜서 백작위를 물려줄 후계자가 없어 작위가 단절될 위기였다. 영국 귀족 작위는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여자의 승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현재는 다이애나의 남동생인 현 스펜서 백작이 낳은 두 아들이 있다. 여담으로, 부계쪽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현 스펜서 백작도 딸들만 줄줄이 얻다 아들을 얻은 것이다.[5] 사실 그렇게 못생긴 건 아닌데, 다이애나의 미모가 워낙 뛰어난지라 비교되어서 못생겼다는 평가가 나온 것이다.[6] 아들 하나, 딸 하나를 원했던 찰스는 차남 해리 왕자가 태어났을 당시 둘째도 아들이 태어나자 매우 실망했다고 한다. 그 실망이 어찌나 컸는지 아내 다이애나와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악화되는 계기가 되었을 정도. 해리 왕자가 빨간머리라서 더 싫어했으며, 심지어 언론에 아기를 본 소감을 말해줄때 "머리카락은 어중간한 색이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후에 이 비화가 알려지자 사람들은 해리 왕자가 핍박받으며 자란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는데, 주변인들은 왕세자는 두 왕자를 차별 없이 매우 아꼈다고 말했다. 다이애나도 "찰스는 윌리엄보다 해리와 더 친근하다." 라고 말할 정도였다. 부인과의 불화와 개인의 생각과는 별개로 자기 자식인 아들들에겐 다정하게 대해준것.[7] 감정을 속였다지만…[8] 다만 당시 영국 상류층 사회의 정서를 생각하면 다이애나가 현재 왕실에 시집온 평민 출신 며느리들처럼 '알 거 다 알고 자기 뜻으로 왕실에 시집 온' 케이스라고 보기 어렵다. 그녀는 당시 20세의 어린 나이에, 연애 경험 한 번 없는 숫처녀였다. 남자와 사귀어 본 경험이 전혀 없는 다이애나의 입장에서는 찰스가 자신을 대하는 것이 사랑인지, 그저 적당히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얼굴마담을 내세우기 위해 대충 속여넘기는 것인지 알아차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또한 당시만 하더라도 왕족들과 귀족들은 뒤로는 정부를 둘지언정 겉으로나마 대단히 보수적인 결혼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어린 다이애나 혼자 주변의 압박을 무시하고 파혼을 결정할 수 있었을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9] 오랜 시간이 흘러서 영국에서의 여론은 많이 나아진 편이지만 바다 건너 먼 나라인 한국에서는 아직도 욕을 먹는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