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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국

진리국
파일:옴진리교 문장.svg
정치
지도자 신성법황
정치 체제 전제군주제, 신권정치(사이비 종교)
지리
위치 일본 열도
수도 후지신도(시즈오카현 후지노미야시)

1. 개요2. 상세3. 결과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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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옴진리교일본 정부를 전복시킨 다음 천황폐위시키고 건국하려고 했던 국가. 아사하라 쇼코가 ‘신성법황’으로 군림하는 제정일치의 전제군주국인 《진리국》 건국을 목표로 하는 〈일본 샴발라화 계획〉을 세워 국가 찬탈을 계획했다.

2. 상세

1995년 3월 27일 방송 보도(KBS, MBC)에 의하면 야마나시 기도원에 붙여진 앞으로 수립할 새 정부의 주요 부처 명칭까지 있었다고 한다. 1994년 6월 20일에 옴진리교 조직 부서의 이름을 정부 조직처럼 성청제(省庁制)로 바꾸고 유사 국가 조직과 같은 체계를 갖추었고 아예 진리국의 헌법 초안까지 만들어 두었는데 헌법 초안은 다음과 같았다.

성청제의 부서는 다음과 같다. 각 성의 장관직과 차관직을, 각각 ○○성 대신(○○省 大臣), ○○성 차관 (○○省 次官)으로 칭했다.[2]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 이후 일본 경찰의 강제 수사에 의해 좌절되긴 했지만, 이들은 후속 테러로 11월 전쟁을 계획하고 있었다. 계획에 따르면, 1995년 11월 국회 개원식에 맞추어 교단이 소유한 군용 헬리콥터[3]를 도쿄 상공에 띄워 총 70t[4]의 순도 높은 사린 가스를 살포해, 천황과 내각 각료, 국회의원을 포함한 도쿄도민을 무차별 대량 학살하려고 했다.[5][6] 그 후 단기간에 전국을 돌면서 일본 주요 도시에도 사린 가스를 살포하여, 그 혼란의 와중에 사린 가스 살포로 국가 기능이 소멸된 수도권 포함 일본 전체를 자동소총폭탄으로 무장한 '하얀 사랑의 전사'들이 여러 정부 기관들을 무력으로 점거하는 것을 넘어 남은 것까지 다 파괴한 후, 신정권(神政權)인 '진리국'을 수립하려고 했다. 또 옴진리교는 일본의 혼란에 힘입어 1996년 제3차 세계 대전[7]을 유발하고 그 동안 옴진리교 신자들과 교단은 사티안[8] 건물 겸 실내 퇴피 쉼터에 머물며 1997년 핵전쟁 종결 후에 쇼코가 일본의 왕이 되며 일본을 통치할 계획이었다. 물론 1995년 11월은 '진리 원년'으로 선포할 계획이었다.[9]

심지어 옴진리교는 이를 넘어 세계정복까지 계획하기도 했는데, 옴진리교는 2003년에는 세계의 대부분이 옴진리교 세력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가 있다.

참고자료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에 연루되어 후에 처형된 옴진리교 간부 하야카와 기요히데[10]가 작성한 '하야카와 노트'에 언급된 내용들이다. 문서에는 없는 내용도 나온다. 링크에 따르면 옴진리교가 자동 소총 1000정과 총탄 100만 발을 제조한 후 일본의 주요 도시에서 동시 다발로 사린을 살포해 '아마게돈'을 불러 일으키고,[11] 그 혼란상 속에서 '2.26 사건 같은 쿠데타를 일으켜 수도를 장악, 종교국가 '태양정 나라'를 건국할 계획도 있었다.
참고자료 2

3. 결과

그러나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12]의 영향으로 옴진리교에 대한 수사가 강화되면서 옴진리교의 본부에 일본 경찰 기동대가 들이닥쳐 교주 아사하라 쇼코 및 주요 간부진들이 대거 체포되고 얼마 후 주요 간부들이 사형 혹은 수감당하고 옴진리교 교단이 해산하면서 진리국 건국은 없던 일이 되었다.

애초에 진리국 건국은 실현 가능성이 0을 넘어서 마이너스인 일이었는데, 사실 이 계획 자체가 매우 황당한 계획일 수밖에 없다.[13] 막말로 사린가스로 자신들을 제외한 전 일본인을 죽일 게 아니라면 전성기 기준으로도 신도가 1만 내외였던 옴진리교의 전 신도를 무장시켜도 도쿄를 완전장악 할 수 있느냐를 장담할 수 없는 수준인데 옴진리교의 무장 수준은 아무리 좋게 쳐줘도 그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다 도쿄에 무차별 사린 테러를 저질렀다면 도쿄 이외의 지역에 주둔한 일본의 자위대요코타 공군기지에 주둔 중인 주일미군이 개입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망상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도쿄 이외 지역의 사는 일본 국민들이 이 진리국의 건국을 받아들일 리도 만무했다. 민주주의 국가인 일본에서 쿠데타가 일어난 것은 둘째치고 당장 이촌향도로 가족이 도쿄에 있는 사람이 많은데 이들이 전부 학살당해 죽어버렸으니 가족을 잃은 이들을 중심으로 하여 일본 모든 지역에서 옴진리교는 반드시 제거해야만 하는 절대악으로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 이후 들이닥친 일본 경찰 기동대에 의해 교주 아사하라 쇼코가 잡혀가면서 이들이 준비랍시고 만들어놨던 사제 총기나 무기 등이 압류되었고, 모두 조악한 품질의, 탄창 하나도 못 쓸 수준의 불량품이었다.[14] 즉 실제로 11월에 무차별 사린 테러를 감행했다고 해도 곧장 진압당했을 것이 명확관화한 수준이었다. 물론 옴진리교의 대규모 자금력과 러시아의 연줄을 생각해 보면, 시간이 더 지났었다면 자체적으로 제작한 총기의 질도 향상시키고 총기와 사린을 밀수해서 무장할 준비도 할 수 있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었지만,[15] 옴진리교가 무기를 충분히 준비한 채 테러를 저질렀어도 얼마 안 가 일본 정부자위대에 의해 즉각적으로 진압되었을 것이며, 옴진리교는 9.11 테러 당시 알 카에다도 능가하는 수준의 국제적인 비난은 물론이고[16][17] 옴진리교 수뇌부들도 일본 정부의 진압 작전으로 뼈도 추릴 수 없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아사하라 쇼코와 옴진리교 간부들이 유죄를 받은 혐의 중 진리국 건국 모의에 적용되었을 내란음모죄는 없었는데, 사실 체포 당시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에도 진리국 건국 모의 관련 내용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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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래 티베트 불교 용어인데 신도들 사이에서는 ‘살해한다.’는 의미의 은어로 쓰였다. 옴교도가 죄인을 살해하면 해탈한다는 주장으로 정당화했다.[2] 보통 일본에서는 ○○성(○○省)의 대신이면 성(省)을 떼고 ○○대신이라 칭하는데 특이하게 여기에서는 성(省)을 떼지 않았다.[3] 러시아로부터 Mi-17 한 대를 구입했다. 차후 교단 해체 과정에서 일본 정부에게 압수당했다.[4] 사린 생산 공장을 만들어 하루에 2t, 최대 합계 70t의 사린을 제조할 계획이었다. 심지어 아사하라 쇼코도 1995년 2월 27일 귀국 후 도쿄의 호텔에서 "이대로는 진리의 뿌리가 끊어져 버린다. 사린을 도쿄에 70t 쏟아부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5] 당시 옴진리교는 하늘에서 사린을 내려 도쿄도민 1200만명을 모두 죽일 계획이었다고 하는데, 벌어졌더라면 1995년 11월의 일본 전국, 아니 도쿄에서는 농담이 아니라 비전시에 단 하루 만에 천만 단위가 한꺼번에 목숨을 잃으며 르완다 학살조차 그 존재를 영원히 잊혀지게 할 정도로 인류 역사상 최단 기간 동안 최다 인명 학살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6] 저 계획이 진짜 말도 안 되는 게 킬링필드 사망자가 최소 170만 명, 홀로코스트 사망자가 600만 명, 심지어 중일전쟁 사망자가 2200만 명이다. 단 하루 만에 중일전쟁 사망자의 절반 가량 내지 그 이상을 죽이겠다는 옴진리교의 망상 수준이 어느 수준이었는지 알 수 있는 셈. 이것만 봐도 실현 불가능인 게 딱 보인다.[7] 미국, 러시아, 북한 3국의 군대에 의한 핵전쟁이라고 한다.[8] 옴진리교의 종교시설[9] 일본을 사실상 석기시대로 돌려놓은 후 자신들이 집권한 달을 새로운 역법의 시작으로 삼겠다는 것이 킬링필드와도 너무나 흡사하다.[10] 옴진리교 무장화의 선두에 있었다.[11] 말도 안 되는 게 '하얀 사랑의 전사'가 도쿄 곳곳에서 총기난사, 폭탄 테러를 하는 중 사린을 살포하면 '하얀 사랑의 전사'도 다 죽는다.(...)[12] 사실 이것도 1995년부터 옴진리교에 대한 수사가 강화되면서 수사를 저지하기 위해 도심에서 대혼란을 불러일으키려 벌인 일이었다.[13] 세계정복 계획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훗날에 (같은 메이저 선진국들에서) 계획된 2017년 계엄령 문건 사건2022년 독일 쿠데타 모의보다도 더 현실성이 떨어지는 수준. 물론 이 둘도 실현 가능성이 0을 넘어 마이너스 수준인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진리국 건국은 저 둘보다도 현실성이 훨씬 떨어지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저 둘의 성공 가능성이 0.0001%라도 있었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14] 다만 테러를 일으킬 수 있는 사린은 완벽히 갖춰 놨다. 실제로 주간문춘(...) 보도에 따르면 1995년 4월 기준 옴진리교가 일본 남부 산악 지역에 은닉한 사린 가스의 양은 수백만 명을 죽일 수 있는 수준이었으며,(#) 이는 비슷한 시기 경시청의 발표에서도 교차검증된다.(#) 일본 경찰이 야마나시(山梨)현 소재 옴진리교 시설의 사린가스 제조능력과 원료구입량 등을 통해 분석 추정한 결과 최소 수백kg에서 최대 5.6t의 사린가스를 만들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하는데, 이는 세계 인구보다 많은 93억 명을 죽일 수 있는 수준이다. #[15] 다만 마츠모토 사린 사건 수사 과정에서 증거 인멸을 해야 해서 사린의 대량 생산은 포기했다고 한다. 참고자료 하지만 이것도 사린을 러시아에서 밀수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면 그만이었다.[16] 당장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의 수도에서 사이비 종교 집단에 의해 민간인 1200만명이 학살당하고 사실상의 내전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뉴스로 보도되었으면 국제적으로도 비슷한 시기에 있던 르완다 학살(!!!)유고슬라비아 내전을 훨씬 능가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쇼크를 줬을 수밖에 없으며, 실제 역사 속의 9.11 테러 이상으로 전세계적으로 난리가 났을 것임은 당연지사다. 여기서 르완다 학살과 비교하는 게 전혀 과언이 아닌 게 르완다는 르완다 학살 당시 1인당 GDP가 250달러도 되지 않는 아프리카 오지의 소규모 극빈국으로 모든 면에서 1995년의 일본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민망한 수준이었는데도 저렇게나 충격을 줬다. 그리고 르완다 학살은 중앙아프리카내륙국이라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학살의 참상 대비 충격도 덜한 편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얼마 전까지 미국을 추월하는 게 아니냐는 말들이 진지하게 나올 정도의 경제대국이면서 동아시아의 해상강국인 일본에서 르완다 학살의 최소 15배에서 최대 24배나 되는, 1200만명이 학살당했으니 이 학살은 르완다 학살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17] 이 테러가 실행되었을 시 르완다 학살과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외국인들도 무차별적으로 희생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일본 도쿄에는 일본인들만 있는 게 아니라 외국인들도 아주 많이 있다. 1995년 당시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라서 일본으로 파견근무를 와서 체류하거나 관광을 온 외국인들이 아주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도쿄에 사린가스를 살포하면 당연히 외국인들도 수십만명가량이 죽었을 것이니 전세계 모든 나라가 100% 확률로 개입했을 것이다. 여기에는 외교공관에 근무하는 외교관들도 있을 테니 개입을 안 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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