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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3 22:20:17

줄리 도비니

1. 개요2. 생애3. 기타4.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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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쥘리 도비니
Julie d'Aubigny
Extra Credits에서 설명하는 그녀의 생애[1]

프랑스 왕국여걸로 직업은 검객, 오페라 가수. 마드모아젤 모팽(Mademoiselle Maupin) 또는 라 모팽(La Maupin)으로도 알려져 있다.

2. 생애

1670년 혹은 1673년 베르사유 궁전에서 일하는 사용인 가스통 도비니의 딸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춤, 독서, 그림, 펜싱을 배웠고 소년으로 분장했다. 14살이었던 1687년에 아르마냑 백작의 정부가 되어 시에르 드 모팽과 결혼했고[2] 마담 드 모팽(혹은 프랑스의 관습에 따라 간단히 "라 모팽")이 되었다. 백작은 그녀의 남편을 남부의 한직으로 보내 버렸지만 그녀는 파리에 남았다.

1687년 경 '세랑네스'라는 이름의 펜싱 사부와 사랑에 빠졌다. 정부 당국이 세랑네스가 불법 결투로 한 남자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하려고 하자 두 사람은 도시를 떠나 마르세유로 도망쳤다. 프랑스를 유랑하며 라 모팽과 세랑네스는 술을 마시고 결투를 하면서 살아갔고 펜싱 결투를 열거나 선술집과 지역 박람회에서 노래를 부르며 생계를 유지했다. 이 즉흥적인 쇼에서 여행하고 공연을 하는 동안 라 모팽은 남장을 했으나 여자인 것을 숨기지 않았다. 이런 삶에 필요한 돈은 그녀가 '방랑하는 가수이자 일격필살 검객'으로 칭하면서 마련했다. 마르세유에 도착하자 오페라 극단에 참가해 오페라 가수로써도 활동했다.

그녀는 곧 펜싱 교사에게 질려서 헤어지고 어떤 소녀와 사귀기 시작했는데 당시의 프랑스인[3] 기준으로 동성애는 부정적으로 보였고 그 대상이 주먹다짐을 잘하기로 소문난 남장여자 검객이라면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녀의 애인의 부모는 자신의 딸을 아비뇽수녀원에 넣어 버렸다. 그러나 라 모팽은 애인을 포기하지 않았고 해당 수녀원에 입회한 후 죽은 수녀의 시체를 자신의 연인의 방에 넣고 연인과 함께 탈출하면서 수녀원에 불을 질러 연인이 화재로 죽은 것처럼 위장하고 3달 동안 동거했으나 애인이 부모님한테 돌아가서 발각되었다. 라 모팽은 납치, 방화, 그리고 재판소 앞에 나타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되었고 화형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당연히 그녀는 법정에 나가지 않았으므로 살아서 말짱히 마르세유를 떠났다.

라 모팽은 파리로 돌아왔고 다시 노래로 생계를 꾸렸다. 그 와중에 어떤 젊은 귀족 남성에게 모욕적인 말을 들어서 결투신청을 했는데 라 모팽이 자기 칼을 남자의 어깨에 찔러 넣었고, 다음날 괜찮은지 물어봤는데 이 남성이 륀느 공작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 사람의 친구가 사과를 전해서 보러갔다가 그의 방으로 가 연인 관계가 되었고 이후 친한 친구로 남았다. 이후 라 모팽은 루앙으로 갔고 그곳에서 그녀는 다른 오페라 가수와 사랑에 빠졌다. 그들은 파리 오페라(Opéra)에 합류할 것을 희망하며 아르마냑 백작에서 편지를 써서 그녀가 설 수 있는 자리를 요청하는데 아르마냑 백작은 루이 14세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흥미를 느낀 루이 14세에 의해 죄에 대한 용서를 받았다.[4] 그리고 이 모든 게 아직 현대 기준으로 그녀가 미성년자였을때의 일이다.

어쨌거나 그녀는 17살에 파리 오페라에 의해 채용되었다. 그녀는 빠르게 대사를 암기하는 능력이 있었고 아름다운 목소리, 연기 능력, 중성적인 외모, 뛰어난 검술 실력 때문에 많은 찬사를 받았다. 그녀는 '카드모스허마이오니'에서 팔라스 아테나로 데뷔했는데, 처음에는 소프라노로 노래했으며, 나중에는 더욱 자연스러운 콘트랄토 범위에서 노래를 불렀다. 어느 후작은 1701년 라 모팽의 대해서 그녀의 목소리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라고 썼다. 파리에서, 그리고 후에 브뤼셀에서 그녀는 마드모아젤 드 모팽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했다. (당시에는 여성 가수들을 결혼 여부와 무관하게 마드모아젤로 부르는 관습이 있었다) 그녀는 무대 뒤에서 결투를 하거나 많은 동료 배우들과 성별을 가리지 않고 잠자리를 하기도 했는데 몇몇 관계는 말싸움이 아니라 결투로 비화되기도 했다. 극단 내 다른 남배우가 여배우들을 계속 괴롭히자 결투를 해서 이기기도 했고[5] 극단 내 다른 여배우에게 구애를 했다 거절당하자 자살 시도를 하기도 했다.

1695년에 루이 14세의 동생 필리프에게 초대받은 무도회에서 남장을 한 채 도착해서 여성들과 밤새도록 춤을 추고 여러 남자들이 눈독을 들이던 아름다운 과부 후작부인에게 키스했는데 3명의 귀족 남성이 결투를 신청했다. 그녀는 그 결투에서 모두 이긴 뒤 파티장으로 다시 돌아가 즐겼으나, 왕이 파리에서 불법 결투를 금지한 상황이여서 왕에 대한 모욕으로 비칠 수 있었기 때문에 파문이 가라앉을 때까지 브뤼셀로 도망갔다. 그녀는 브뤼셀에서 오페라 공연을 1697년 11월부터 1698년 7월까지 했으며 이 기간 동안 바이에른선제후 막시밀리안 2세 에마누엘의 정부이기도 했다.

그리고 1년 후 파리로 돌아와 오페라 가수로 복귀했다. 이후 몇년간 라 모팽은 왕실 초청으로 노래를 불렀고 1702년에는 특별히 그녀를 위해 쓰여진 오페라에 출연하기도 했다. 물론 파리에 돌아와서도 라 모팽은 자신의 행복을 위한 자유분방한 삶을 살아갔고 좌충우돌 모험적인 삶은 계속되었다. 몇몇 주먹다짐을 벌이기도 했다. 그녀는 1705년까지 계속 오페라 공연을 했고 베르사유에서도 공연을 했다.

라 모팽은 그 사이 피렌체 후작부인이라고 알려진 여인과 사랑에 빠졌지만 1705년에 그녀가 숨을 거두었다. 라 모팽에게 있어 그녀의 죽음은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1705년, 라 모팽은 오페라 가수를 은퇴하고 이번엔 진짜로 수녀원으로 들어갔으며, 아마도 프로방스에서 33세의 나이로 1707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 라 모팽의 묘가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다. 33세에 죽었다는 얘기도 있지만 37세의 나이로 죽었다는 얘기도 있다.

라 모팽의 짧고 굵은 인생은 그녀가 살았던 세상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루이 14세는 예술가들을 크게 후원하는 군주였고 이런 예술에 대한 후원은 왕권 강화와 교회 세력에 대한 견제 측면에서 이루어 졌다. 루이 14세는 권력구조에 일탈적이고 비판적인 예술가들을 자신이 후원하여 그들이 왕 대신 교회에 그들의 분노를 집중시킨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풍자적이거나 기행적인 예술가들을 그는 적극 후원했고 라 모팽 역시 그 일환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유명인이기도 했지만 프랑스의 정치적, 문화적 규범이 변화해가는 틈새를 잘 비집고 들어간 사람이었고 그녀 스스로의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공간을 만들어간 여성이었다.

3. 기타

프랑스의 작가 T. 고티에는 1835년에 출판된 소설 '마드모아젤 드 모팽'(모팽양)을 제작하여 실제 라 모팽을 모티브로 삼아, 그녀와 그녀의 지인들의 이름을 따서 캐릭터들의 이름을 붙였다. 내용인 즉슨 주인공이자 시인인 달베르는 이상적인 여인상을 꿈꾸며 젊은 미망인 로제트라는 여인을 만나지만 불만족감을 느낀다. 한편 로제트에게 한 미모의 젊은이가 말을 타고 찾아왔는데 테오도르라는 그 젊은이는 좀 여성적인 면[6]을 제외하고는 매력적인 청년이었다. 로제트 역시 테오도르를 좋아했다.

한편, 달베르는 그 젊은이가 남장 여자가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사실 미모의 여주인공 모팽은 무지와 감시 속에 있는 여성에게 주어지는 교육에 만족하지 못하고, 남자가 관습의 가면으로 자신을 가리고 여자 앞에서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눈치채고 남성의 비밀을 알기 위해 남장을 하고 테오도르라는 이름으로 모험을 한 것이었다. 남성으로서 행동하는 것에 익숙해진 그녀는 로제트에게 사랑을 고백받지만, 달베르에게 여자라는 것이 발각된다. 발각된 후, 모팽은 그 길로 로제트를 방문하여 침대에서 그녀와 사랑을 나누고는 다음날 행방을 감추고 만다. 모팽을 이상적인 여성으로 여겼던 달베르는 실의에 빠지고 모팽에게서 편지를 받게 되지만, 그 내용은 그를 만족시킬 만한 것이 아니었다는 내용이다.

4. 대중매체

4.1. 대항해시대 오리진에서

2022년 10월 26일 S급 음악 테마 항해사로 등장.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실제 역사를 반영하여 프랑스의 4개 항구(마르세유, 몽펠리에, 낭트, 보르도)에서 고용이 가능하지만 S급 항해사 답게 극악의 등장 확률을 보이며 선행 항해사가 꽤나 많다. 다행인 점은 존 데이비스를 제외한 선행 항해사들은 유럽에서 고용이 가능하다는 것.

직업은 타격대로, 백병술 스탯이 높고 8개의 스킬 중 6개가 백병 관련 스킬이라 유저들의 선호도가 매우 높다. 같은 S급 전투 항해사 중 고용이 가능한 항해사로 장 플뢰리, 레밍톤, 에제키엘이 있는데 이 3명 모두 연대기가 고용 조건으로 걸려있는데다 레밍톤은 아예 비선호 스탯인 지원술이 특화이다. 장 플뢰리와 에제키엘 모두 포격술 성능은 매우 좋지만 백병술이 현 대항오에서 선호되는 스탯인 관계로 도비니의 우선순위가 좀 더 높다.

4.2. 데스티니 차일드에서

모팽(데스티니 차일드) 항목 참조.


[1] 자막을 보면 한국어 자막도 있으니 영어에 익숙하지 않으면 이걸 사용하면 된다.[2] 당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왕족, 귀족들의 관행으로, 정부에게 중간계층 정도 신분의 명목상 남편을 맺어 줘 명목상 유부녀로 만들고 남편은 멀리 보내 버렸다. 퐁파두르 부인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부와의 사이에서 사생아가 생길 경우 호적상 남편의 자식으로 처리하는 용도였고 호적상 남편은 위장결혼의 대가로 작위/관직/재물 등을 받았다.[3] 당시로 따지면 거의 전세계인.[4] 여담이지만 루이 14세의 동생 또한 동성애자였고 당시 프랑스 궁정의 인기인이었다.[5] 그 남배우와의 결투는 사실 결투라고 칭하기 민망한데 줄리 도비니가 검을 들고 '결투를 하자'라고 했을 때 남배우가 거절하자 그냥 일방적으로 패버리고 회중시계를 가져갔다. 다음날 상처를 입고 나타난 남배우에게 사람들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는 흉악범을 만났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줄리 도비니가 회중시계를 보여주고 거짓말이라는 것을 까발렸다.[6] 루이 13세의 차남으로서 루이 14세의 동생인 오를레앙 공 필리프 1세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