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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블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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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제이슨 블룸
Jason Blum
파일:02BLUM-1-superJumbo.jpg
이름 제이슨 페러스 블룸
Jason Ferus Blum
출생 1969년 2월 20일 ([age(1969-02-20)]세)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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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배서 칼리지 (연극학 / 학사)
신체 188cm
직업 영화 제작자, 드라마 제작자, 기업인
소속 블룸하우스 프로덕션
활동 1995년 – 현재
가족 아버지 어빙 블룸
어머니 셜리 닐센 블룸
배우자 로렌 A.E. 슈커(2012년 결혼)
슬하 자녀 3명
링크 파일:IMDb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Threads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틱톡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3. 제작 스타일
3.1. 관련 발언들
4. 제작 작품
4.1. 블룸하우스 프로덕션 작품4.2. 기타 작품
5. 여담6. 관련 문서7. 외부 링크

[clearfix]

1. 개요

저는 공포 영화를 좋아합니다. 저는 공포 영화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호러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고 앞으로 오랫동안 공포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

미국영화 제작자, 드라마 제작자, 기업인.

블룸하우스 프로덕션의 창립자이자 CEO다. 2000년대 후반부터 많은 히트작을 제작했으며, 영향력있는 공포 영화독립영화 제작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2. 생애

1969년 10월 20일,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저명한 현대미술 아트 딜러였고[1], 어머니는 미술사학자이자 대학교 교수였다. 그래서 예술과 가까운 환경에서 자랐다고 하며, 아버지와 함께 현대미술을 공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희귀한 현대미술 세계보다는 대중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영화계에 끌렸다고 한다. 또한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부터 앨프리드 히치콕 영화, B급 장르 영화, 스릴러 영화를 자주 봤다고 말했다.
저는 일찍이 어린 나이부터 프로듀서가 되고 싶었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하지만 현대미술이 항상 저를 괴롭혔던 것 중 하나는 그것이 매우 엘리트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대중을 위한 예술에 대한 생각에 정말 집착했습니다. 그것이 제가 어떻게 영화 산업에 뛰어들게 되었는지에 대한 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

베서 컬리지(Vassar College)에서 경제학연극를 공부했으며 1991년 졸업했다. 대학 재학 당시 노아 바움백과 룸메이트였다. 1995년 블룸은 바움백의 장편 영화 데뷔작 《졸업 연습》의 제작을 돕기 위해 제작비를 모았고, 자신의 첫 번째 프로듀서 크레딧을 받았다. 이 영화의 각본을 좋아했던 배우이자 가족 친구 스티브 마틴이 블룸에게 후원 편지를 써줬는데, 이 편지가 커리어의 전환점이 됐다.[2] 이 편지는 그가 뉴욕의 독립 스튜디오 '애로우 필름스(Arrow Films)'에서 인맥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곳에서 인수 담당 부사장으로 업계 첫 직장을 얻었으며, 케이블홈비디오 회사에 허가를 받기 위해 장르 영화를 5만 달러 이하로 구입했다. 또한 절친인 에단 호크가 설립한 말라파르트 극단의 프로듀싱 감독을 역임하기도 했다.[3]

이후 블룸은 미라맥스 필름스로 직장을 옮겼으며, 1998년부터 인수 및 제작 부서의 공동 사장을 역임했다. 미라맥스에서 《디 아더스》, 《스모크 시그널》 《워크 온 더 문》, 《하우스 오브 예스》를 포함한 50개 이상의 영화를 배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밥 & 하비 와인스틴 형제 밑에서 일했다고 한다. 후일 제이슨 블룸은 인터뷰에서 하빈 와인스틴에 대해 "그는 당근이 아니라 채찍을 들었습니다. '욕설'이 매일 사용되었으며 더 명백한 학대 사례가 있었죠"라고 말했다. 블룸이 인수 합병을 실패하자, 와인스틴이 불을 붙인 담배를 그에게 던지면서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2000년에 미라맥스에서 퇴사했다. 퇴사 이후 자신의 성을 따와서 이름지은 영화 제작사 블룸하우스 프로덕션을 설립했다.[4] 매우 적은 예산으로 운영되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모인 소규모 회사였다. 이 시기는 블룸의 커리어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한다. 자신이 어떤 종류의 영화를 제작하고 싶은지 결정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하며, 인터뷰에서 "10년 동안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할지 예상하려고 노력했다"라고 말했다. 당시 블룸은 《이지 식스》, 《다윈 어워드》, 《히스테릭 블라인드》 등 거의 아무도 보지 않은 저예산 독립 영화들을 연속으로 제작했으며, HBO에서 만든 TV 영화 두 편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나마 반응이 좋았던 영화는 공포 영화였고, 그래서 점점 더 '많은 공포 영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또한 블룸은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배급과 마케팅에 감명을 받았지만, 그들의 고된 개발 과정에 좌절감을 느꼈다고 한다.
영화 생태계에서 제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독립 영화를 많이 만들었는데, 그 중 어느 것도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독립영화 배급에 매우 좌절했지만, 독립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너무 좋았어요. 저는 스튜디오 제작에 실망했지만, 스튜디오 배급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운이 좋게도 저는 초자연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고 그 두 가지를 결합했습니다. #

2009년 자신이 제작한 저예산 공포영화 《파라노말 액티비티》가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면서 단번에 스타 프로듀서 반열에 올랐다. 이후에도 수익성이 높은 수많은 저예산 공포 영화를 히트시키면서, 미국 독립 영화와 공포 영화 산업에서 빠질 수 없는 영향력있는 거물 프로듀서가 됐다. 대표적인 히트작으로는 《인시디어스 시리즈》(2010~2023), 《살인소설》(2012), 《오큘러스[5](2013), 《더 퍼지 시리즈》(2013~2021), 《위플래쉬》(2014), 《더 기프트》(2015), 《허쉬》(2016), 《23 아이덴티티》(2016), 《위자: 저주의 시작》(2017), 《겟 아웃》(2017), 《해피 데스데이》(2017), 《업그레이드》(2018), 《블랙클랜스맨》(2018), 《할로윈》(2018), 《어스》(2019), 《글래스》(2019), 《인비저블맨》(2020), 《블랙폰》(2022), 《메간》(2023), 《프레디의 피자가게》(2023) 등이 있다. 다만, 굉장히 다작하는 프로듀서이기 때문에, 성공작도 많지만 졸작이라고 평가받는 실패작도 많이 제작했다.

블룸하우스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여러가지 투자를 하고 있다. 인터뷰에서 더 많은 돈을 쏟아붓고,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함으로써 더 많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2014년 유니버설 픽쳐스와 블룸하우스는 10년 계약을 맺었으며, 2022년에는 제임스 완의 제작사 '아토믹 몬스터'와 합병을 추진한다는 뉴스가 발표됐다. 합병후에도 '아토믹 몬스터'와 '블룸하우스'는 각자의 독창적인 자율성과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며 별도의 레이블로 계속 운영된다고 한다. 블룸은 인터뷰에서 "블룸하우스는 역사적으로 3~4편의 공포 영화를 매년 극장에서 개봉하도록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완은 NBC 유니버설의 스트리밍 서비스인 피콕을 위해 또 다른 공포 영화를 만들고 싶어합니다. 블룸하우스는 또한 텔레비전 시리즈를 만들겁니다"라고 말했다.

장르 영화 제작자로 유명하지만, 《위플래쉬》, 《겟 아웃》, 《블랙클랜스맨》으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TV 드라마, 다큐멘터리 제작도 적극적으로 해서 두 개의 에미상을 거머쥐었다. 2022년에는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인디 정신을 대표하는 프로듀서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독립영화 프로듀서상'을 수상했다.

3. 제작 스타일

블룸의 명성은 재능 있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기회를 주는 거물이자, 메이저 영화 배급사들과 가장 최신의 공포와 스릴에 굶주린 대중들의 관심을 끄는 방식으로 영화를 제작하고 패키징하며 마케팅하는 능력을 가진 제작자로 확립되었다. 그는 약간의 로저 코먼과 약간의 윌리엄 캐슬(William Castle)[6]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21세기 배급 방식의 변화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특징을 지닌다.
영국 영화 협회 #

많은 저예산 영화(특히 공포 영화)를 제작해, 제작비 대비 높은 흥행 수익을 거두는 프로듀서로 유명하다. 제이슨 블룸은 자신의 제작 스타일을 "저비용, 하이 콘셉트(low cost, high concept)"라고 요약했다. # 공포 영화같은 장르 영화를 중심으로 제작하고 있으며[7], 이러한 틈새 시장을 공략하여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과 철학을 구축했다. 그의 제작 방식은 할리우드 영화 제작의 새로운 모델을 개척했다고 평가받고 있다.[8]

또한 능력만 있다면 신인이든 경력자든 가리지 않는다. 확고한 비전을 가졌지만 연출 경험이 별로 없는 신인 감독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있다. 블룸은 (예산 내에 있는 한) 완전한 창조적 통제권을 감독에게 줌으로써[9] 유망한 감독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블룸은 이러한 특징이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블룸과 자주 협업하는 유명 감독으로는 제임스 완, M. 나이트 샤말란, 조던 필, 스콧 데릭슨, 리 워넬, 크리스토퍼 랜던, 일라이 로스, 마이크 플래너건, 롭 좀비 등이 있다.

2017년 NPR 인터뷰에서 예산 제약이 자신의 영화 제작 결정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했다. 그는 이것을 저예산 영화의 "세 가지 규칙"이라고 불렀다.

블룸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더 많은 돈을 투자하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의 생각에 반대하고 있다. 그는 적은 예산으로 많은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데, 심지어 그 중 많은 영화들은 와이드 릴리스로 개봉하지도 않는다. 또한 신규 영화에 5백만 달러 이상의 제작비를 투자하지 않고 있다.[10] 제작비가 5백만 달러 이하이면, 영화의 전반적인 평가와 상관없이 아이튠즈, 넷플릭스, VOD에서 배급을 통해 제작비를 회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블룸이 매년 제작하는 여러 편의 영화들 중에서, 50%만이 극장 개봉을 한다.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은 영화들은 주문형 비디오나 넷플릭스와 같은 스트리밍 사이트에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 다만 2021년 인터뷰에서 할로윈과 같은 속편이나 '인지도 있는 IP'의 경우에는, 최대 1,500만 달러에서 2,000만 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할로윈 때의 방한 인터뷰에서는 블룸하우스의 영화들은 인디 영화처럼 다양하고 자유롭게 제작하되, 배급과 개봉은 상업 영화로 하는 방식을 고수한다고 밝혔다.

로카르노 영화제는 제이슨 블룸의 제작 방식에 대해 "무엇보다 지속가능한 저예산 제작 모델을 성공적으로 구축해 이 과정에서 장르 영화 제작을 부활시켰다. 로저 코먼의 전통에 따라 그는 내면에서부터 혁신을 실천해 왔지만 비판적인 시선을 버리지는 않았다. 프랑스 뉴웨이브(누벨바그)의 '작가주의 정책' 개념을 적용하면 제이슨 블룸의 접근 방식을 '프로듀서 정책'의 완벽한 예라고 부를 수 있다"라고 호평했다. # 종종 저예산 영화의 거장인 로저 코먼과 비교되기도 한다. 뉴욕 타임스는 "블룸은 종종 현대판 로저 코먼으로 묘사된다"라고 평했다. 코먼이 저예산 공포 사업을 완성하고 약 400편의 영화를 제작하여 막대한 수익을 얻은 독립 영화 제작자였기 때문이다. #

블룸은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는 것보다 감동적인 스토리를 발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내한 인터뷰 당시 “거대한 물량 투자를 받은 영화들은 스토리는 진부하고 오로지 볼거리에 치중한다. 그것은 내가 생각하는 영화 제작 방식이 아니다”고 말했다. # 또한 "사실 예산을 많이 쓸 수도 있지만 비싼 영화를 만들면 앞서 흥행한 영화와 비교될 수밖에 없다"며 "예산을 적게 써야 오히려 독창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저예산 영화를 고집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최대한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장르는 슈퍼 히어로 영화 아니면 저예산 공포영화"라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최대한 많은 관객에게 이야기하기 위해 저예산 공포영화를 만든다"라고 말했다. #

제이슨 블룸의 효율적인 영화 제작 덕분에, 블룸하우스 영화는 평론가들의 반응과 상관없이 자주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2020년 개봉한 《판타지 아일랜드》는 로튼토마토에서 8%라는 처참한 지수를 기록했다. 그러나 700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제작해 4,500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거둬들여 평론가들의 평가와 상관없이 블룸하우스 모델의 효과를 입증했다. 다만, 이러한 블룸의 제작 스타일을 싫어하는 평론가들은 "제이슨 블룸이 제작한 영화는 '공장' 스타일의 제작 방식 덕분에, 계산적이고 무정하게 보일 수 있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

3.1. 관련 발언들

제이슨 블룸의 제작 스타일을 알 수 있는 발언들이다.
유럽에서는 제작자가 손을 떼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할리우드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블룸하우스) 감독들은 영화의 최종 편집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항상 감독에게 '당신에게 흥행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그 영화가 당신의 것이 될 것이라고 약속한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세계 어디에서도 크게 의미가 없지만, 할리우드에서는 매우 의미가 있어요. 그 결과, 제가 발견한 것은 - 유럽에서는 모두가 알지만 할리우드는 이해하지 못한 것 - 감독에게 최종 편집권을 주면 더 많이 들어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창의적인 통제력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많은 의견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대본 개발을 하고, 캐스팅을 돕고, 촬영 장소인 물리적 제작을 돕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케팅에 매우 관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실천적이지만, 우리가 감독에게 많은 선택권을 주고, 감독이 선택하고 감독이 최종 결정권을 갖는 접근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항상 감독에게 말합니다 "만약 내가 당신의 촬영 현장에 하루 이상 머무른다면, 뭔가 매우 잘못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촬영 현장에 머물기를 정말 싫어하며, 정말로 매일 촬영 현장에 있어야 한다면, 아마도 비용이 많이 드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거나 (우리는 그런 영화를 만들지 않으므로 이 문제는 없습니다), 또는 준비 과정에서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저는 감독에게 배우가 다른 색상의 블라우스를 입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지만, 촬영 장소와 관련된 문제가 있을 경우 우리는 물리적인 제작에 관여합니다. 우리는 영화의 재정적 책임을 집니다 - 그래서 만약 예산을 초과하게 된다면 우리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매우 유념합니다. #
우선 무엇보다 아이디어에 독창성이 있어야 합니다. 공포라면 어쨌든 무서워야겠죠. 그리고 제작비를 싸게 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를 클리어한 다음에 저 또는 블룸하우스의 다른 중역이 진심으로 마음에 들면 제작에 고사인을 내는 거예요. 하지만 이러한 정책은 블룸하우스 초기부터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관객이 느끼는 두려움도 시대와 함께 바뀌는 것이고, 무엇보다 정책을 고정하면 그 시점에서 창조 노력도 상실됩니다. 그래서 저 자신도 항상 기획을 재검토하기로 했습니다. 매일매일 선택 기준이 달라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
저는 1억 달러짜리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할리우드 제작자, 감독, 심지어 배우들의 99퍼센트가 자신들이 성공을 거두면, 자신들이 더 비싼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우리가 오랫동안 우리의 모델을 고수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
제작비가 많은 영화에서, 이해관계는 선 위에 있는 사람들과 금융가 사이에 일치하지 않습니다. 선 위에 있는 사람들은 영화가 작동하든 안하든 돈을 받기 때문입니다. 금융인은 영화가 통해야만 돈을 벌 수 있고, 그것은 근본적으로 논쟁적인 관계를 형성합니다. 제가 저예산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저의 관심사와 감독의 관심사와 배우들의 관심사가 일치하는 것입니다. 영화가 흥행하지 않으면 아무도 돈을 벌지 못하고, 그것이 모든 창의적인 결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
스튜디오 영화 제작의 방식은 예산과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에 영화 제작비가 많이 들수록 감독은 자신들의 방식대로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을 세우고 있습니다. 2억 달러짜리 영화에서, 그 감독은 그들의 시간의 80%를 정치에 쓰고 있고 20%는 실제로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400만 달러짜리 영화는 좋은 영화를 만드는 데 100%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
우리의 시스템은 완벽하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많은 영화를 만들었지만 작동하지 않았거나 우리 모두가 기대했던 것과 같지 않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감독이 시스템 내에서 실제로 작업하지 않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요. 저는 그 경험이 무엇이 될 것인지를 설명하는 것을 매우 조심스럽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파이널 컷을 받고, 창의적인 통제력을 얻고,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여러분이 얻는 돈이고 여러분이 얻는 전부입니다. 마침표. 이야기의 끝. 당신이 예산에 서명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으로부터 흔들리지 않습니다. (중략) 감독들에게 통제권을 주자마자, 그들은 모든 아이디어를 원합니다.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다투지 않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이라는 생각에 위안을 얻자마자, 그들은 우리에게 미친 듯이 우리의 의견을 간청합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제작자나 제작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 영화에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감독들에게 창조적인 통제권을 주기 때문입니다. #
기자: 블룸하우스는 500만달러 이하로 영화를 만드는 대신 창작자의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독특한 모델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시스템이 유지 가능한 이유는 무엇인가. 또한 <23 아이덴티티>(2016)의 제임스 매커보이 같은 배우를 캐스팅하면 제작비가 올라갈 수밖에 없는데 그 균형을 어떻게 맞춰가는지 궁금하다.

블룸: 블룸하우스는 독립적으로 영화를 만들고, 배급은 대부분 유니버설 스튜디오 같은 큰 회사가 맡는다. 적은 예산으로 만든 영화가 극장에서 돈을 벌면 그 수익은 모든 사람이 나눠 가지는 구조다. 때문에 적은 예산은 <겟 아웃>처럼 독창적이면서 수익성 있는 이야기를 만들게끔 창작자를 장려한다. 또한 예산이 적게 들어가면 로케이션 장소 등이 제한되는 대신 독특한 스토리를 만들 수 있는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 제임스 매커보이와 그의 에이전시는 이 시스템에 동의했고, <23 아이덴티티>의 성공으로 큰 이윤을 챙겼다.

기자: 넷플릭스 등의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을 견제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들도 블룸하우스처럼 창작자의 자율권 보장을 내세운다.

블룸: 크리에이터 입장에서 넷플릭스와 블룸하우스는 완전히 다른 회사다. 넷플릭스는 창작자에게 선급하고선 수익을 나누지는 않는다. 우리는 선급 개런티가 없는 대신 극장 개봉 이후 수익을 전부 나눈다. 감독들에게 최종 편집권에 대한 완벽한 자율권, 창작의 자유를 주면서 자기 작품에 대한 ‘도박’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넷플릭스와는 달리 작업을 마친 후 감독이 나를 찾아와 조언을 요청할 때도 있다. 프리 프로덕션부터 포스트 프로덕션, 배급 및 마케팅까지 감독과 블룸하우스가 의견을 교환한다. #

4. 제작 작품

4.1. 블룸하우스 프로덕션 작품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블룸하우스 프로덕션 문서
4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2. 기타 작품

제이슨 블룸이 프로듀서로 참여했지만, 블룸하우스에서 제작하지 않은 작품들을 기재
<rowcolor=#ffffff> 연도 작품 감독 비고
1995 졸업 연습
(Kicking and Screaming)
노아 바움백 부제작자
1996 원 웨이 아웃
(One Way Out)
케빈 린 기획
2000 햄릿
(Hamlet)
마이클 알메레이다 기획
2002 톰 썸과 썸벨리나의 모험
(The Adventures of Tom Thumb & Thumbelina)
글렌 차이카 기획
2019 어스
(Us)
조던 필

5. 여담

6. 관련 문서

7. 외부 링크


[1] 앤디 워홀과 친분이 있었던 굉장히 유명한 딜러였다.[2] 당시 블룸은 영화 제작자가 아니라, 부동산 중개업을 했다.[3] 그래서 블룸은 뉴욕의 뉴 그룹 극장의 이사회에서 일하기도 했다.[4] 회사를 설립하기 전에, 잠깐동안 워너 브라더스에서 독립 프로듀서로 활동하기도 했다.[5] 기획으로만 참여했다.[6] 이 사람도 저예산 공포 영화의 거장으로 유명하다. 악마의 씨의 프로듀서이기도 하다.[7] 물론 위플래쉬같은 다양한 독립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8] 하버드 대학교에서 보고서를 펴냈을 정도로 그의 제작 방식은 굉장히 유명하다. #[9] 심지어 캐스팅 결정권, 최종 편집권도 감독에게 준다. # 프로듀서가 입김이 강한 할리우드에서는 굉장히 이례적인 케이스.[10] 다만, 회사 규모가 성장한 이후에는 1,000만 달러 이상의 신규 영화도 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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