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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현대 모터스/최강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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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경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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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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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011, 2013~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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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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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대행에게 감독직을 맡긴 후 복귀한 경우
**: 공식적으로는 감독이지만 실질적인 감독 역할은 다른 사람이 한 경우
: K리그1 우승 / : 코리아컵 우승 / : AFC 챔피언스 리그 엘리트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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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희호
[[최강희(축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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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대 감독
최강희
<colbgcolor=#296052><colcolor=#fff> 감독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최강희 / 제4대 (2005~2011, 2013~2018)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이흥실 / 감독 대행 (2012)

[[브라질|]][[틀:국기|]][[틀:국기|]] 파비우 레푼지스 / 감독 대행 (2013)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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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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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형민 / 제11대 주장 (2017~2018)
계약 기간 2005년 7월 3일 ~ 2018년 12월 2일[1]
(13년 5개월 / 4900일)[2]
계약 종료 (자진 사임)
전술 스타일 닥치고 공격
4-2-3-1 혹은 4-1-4-1 기반 포메이션
┗ 강한 압박과 빠른 역습
┗ 매우 좁은 좌우, 공수 간격과 빠른 패스, 롱 볼 플레이
성적 2005 K-리그 (12위)
2005 FA컵 (우승)
2006 K-리그 (11위)
2006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FIFA 클럽 월드컵 일본 2006 (5위)
2007 K-리그 (8위)
2008 K-리그 (4위 / PO)
2009 K-리그 (우승)
2010 K리그 (3위)
2011 K리그 (우승)
2012 K리그 (준우승)
2013 K리그 클래식 (3위)
2014 K리그 클래식 (우승)
2015 K리그 클래식 (우승)
2016 K리그 클래식 (준우승)
2016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FIFA 클럽 월드컵 일본 2016 (5위)
2017 K리그 클래식 (우승)
2018 K리그1 (우승)


[clearfix]

1. 개요

특별기획 다큐 봉동이장 최강희
우리 구단의 비전은 K리그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이제는 더 먼 곳으로 눈을 돌려 아시아, 나아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클럽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최강희 감독이 있기 때문이다.
이철근 전북 현대 모터스 단장

축구 지도자 최강희전북 현대 모터스 감독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활동

10년의 순간

2.1. 2005 시즌

파일:external/kleague.com/_2013625134341.jpg
이 한 번의 FA컵 우승으로 감독과 구단, 그리고 K리그의 역사가 변하기 시작한다.

2005 시즌 중 전북 현대 모터스조윤환 감독이 성적 부진을 책임지고 사임하자 구단 프런트는 현대자동차가 운영하던 현대 호랑이 시절의 프랜차이즈 선수인 최강희를 감독으로 임명했고 7월 3일 전북의 4대 감독으로 부임한다.

일화로 2005년 6월 친한 지인이자 최강희처럼 야인 생활을 보내던 박항서와 함께 유럽에서 2005 FIFA U-20 월드컵2005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독일을 관전하던 중 전북에서 최강희를 이미 내정한 채로 면담을 가졌고, 그렇게 얼떨결에 자신의 첫 성인팀을 맡게 됐다.

하지만 당시 전임 감독 아래 부천 출신 선수들과 비부천 출신 선수들 간 파벌이 형성돼 있었고 최강희 감독이 전북에 부임하자 팀을 떠나겠다는 선수들이 대거 발생했다.

과거 2002년 국가대표 출신 골키퍼 서동명을 울산으로 내보내며 데려온 이용발이 대표적 부천파였는데 부천 시절부터 타고난 패션 센스는 그대로였지만 지나치게 공격적인 플레이로 잦은 실수를 일으키자 최강희 감독은 이용발 대신 만년 후보였던 이광석을 중용했다. 이외에도 이용발과 함께 대표적인 부천파였던 전경준, 윤정환 등을 모두 2005 시즌을 끝으로 내보냈다.

부천파 이외에도 부임 직후 손정탁, 남궁도 등을 내보내고 밀톤을 데려오며 팀을 정비하려 했다.

그리고 부임 한 달 만에 약 6년째 팀을 이끌던 프랜차이즈 스타 최진철의 주장직을 박탈하고 김현수라는 새로운 주장을 선임했다. 그럼에도 후기 리그에서 12팀 중 11위에 그치며 부진했다.

그러나 리그 종료 후 펼쳐진 대한축구협회 FA컵에서 고려대-FC 서울-수원 삼성 블루윙즈-인천 한국철도-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를 연이어 꺾으며 전북의 통산 3번째 FA컵 우승을 이끌었다.

2.2. 2006 시즌

부임 후 본격적으로 준비해서 시작한 2006년은 여러모로 전북과 최강희 감독에게 힘든 해였다. 내적으로는 지난 시즌부터 이어지던 부천파와 비부천파 간 갈등이 지속됐다.

그래서 겨울 이적시장에 이용발, 윤정환, 전경준, 김대건 등 부천파 선수들을 거의 다 내보냈고, 박동혁, 박규선 등 국대급 선수들이나 김태영, 네또 같은 수준급 선수들도 정리하는 등 체질 개선에 들어갔다.

논란 끝에 박동혁과 박규선이라는 대표팀 선수들을 울산에 트레이드하며 김형범이라는 무명의 유망주를 데리고 왔고, 울산에서 악동으로 불리던 제칼로도 데리고 왔다. 또한 수원 코치 시절 지도했던 김영선과 장지현을 영입했다.

무엇보다 2006 K-리그 드래프트에서 무려 11명의 신인 선수를 지명하며 세대교체를 단행하려 했다. 이 11명엔 염기훈, 최철순, 권순태, 정인환, 이현승 등이 포함됐다.
파일:/image/139/2006/11/09/061108_champion01.jpg
K리그 최초의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3]
그러나 외부적으로 구단주이자 모기업의 수장인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구속되는 등 악재가 겹쳐 시즌 초반에는 참가 중이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를 포기하려고까지 했으나 대회 중도 포기를 하면 벌금을 내야되고 또 챔피언스리그에서 예상 외로 선전을 하게 되자 오히려 챔피언스리그에 주력하였다. 결국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며 역전의 명수라 불리며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부임 2년차에 우승컵이 2개.[4]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으로 강희대제란 별명을 얻었는데 이는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중국 팀들에게 연달아 이기자 중국 언론들이 그의 이름인 강희가 청나라의 왕 강희제와 한자가 똑같다고 지은 별명이다. 헌데 본인은 그보다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에서 유래된 별명인 '봉동이장'이라고 불리고 싶어하고 있다. 그 이유인즉슨 강희대제라는 강한 이미지보단 선수/팬들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이미지를 선호한다고. 특유의 가발같은 2:8 가르마도 이장이라는 별명과 잘 어울린다. 봉동읍에서 실제로 명예이장직을 제의하기도 했다.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비바 K리그 전북현대 AFC 챔피언스리그 06우승 엔딩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은 5억이라는 우승 상금뿐 아니라 우승 자격으로 참가한 FIFA 클럽 월드컵에서 모기업 현대자동차를 전세계에 홍보하는 효과를 거두게 했다.[5]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장면이 아시아 대륙 전역에 방송되고 아시아 챔피언 자격으로 출전한 클럽 월드컵의 모든 경기가 전 세계에 생중계되면서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가 메인 스폰서를 맡는 FIFA 클럽 월드컵에서 뜻하지 않게 도요타를 제치고 홍보를 누리는 효과를 얻게 된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모기업은 축구단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게 된다.

전북 구단이 AFC 챔피언스 리그나 FIFA 클럽 월드컵 등 국제 무대에 나가기만 해도 모기업인 현대자동차의 이름을 홍보하게 되는 격이니 세계시장 홍보에 힘을 쓰고 있는 모기업 현대자동차로서는 전북의 국제무대에서의 호성적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고 축구팀에 의한 모기업 홍보 효과가 상당히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된 모기업 현대자동차는 이철근 단장을 필두로 구단에 대한 전폭 지원을 약속하며 2010 프로젝트를 세우고 2010년까지 K-리그 우승이라는 목표를 세우게 된다.

비록 후기 리그 13위 등 리그에선 최악의 부진을 보였지만 신인급 선수들을 데리고 전북 구단의 청사진을 제시한 기념비적인 시즌이 됐다.
2006 전북 베스트 일레븐
FW
제칼로
FW
보띠
MF
염기훈
MF
정종관
MF
김현수
MF
김형범
DF
최철순
DF
김영선
DF
최진철
DF
김인호
GK
권순태
SUB
GK: 이광석
DF: 정인환, 전광환, 임유환, 김정겸
MF: 김재형, 왕정현, 장지현, 권집
FW: 조진수, 이현승, 최영훈

2.3. 2007 시즌

AFC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하였지만 그것이 곧바로 투자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축구계를 이해하지 못한 모기업이 AFC 챔피언스 리그 상금을 귀속시키려는 일도 있었다.[6]

시즌 전 대대적인 리빌딩을 다시 한 번 가동했다.

지난 시즌 우승 주역 보띠, 팀 레전드 김경량이나 나이가 많은 왕정현, 이광석을 내보낸데 이어 유망주였던 임유환, 조진수, 전재운, 최영훈 등을 내보냈다.

대신 마케도니아 리그에서 3시즌 연속 득점왕을 한 스테보를 영입했고, 트레이드 보상 선수로 최철우, 변재섭, 최광희, 김한원 등 중고참급 선수들을 대거 영입했다. 지난 시즌 신인 선수들이 주축이 된 팀에 경험을 더하겠다는 판단.

그러나 지난 시즌만큼 단합되지 못한 모습으로 부진했다.

시즌 중반 팀내 분위기를 흐리던 염기훈2007 AFC 아시안컵 기간 울산으로 강제 2대1 트레이드로 보내버리고 시즌 전 울산으로 떠났던 임유환을 정경호와 함께 데리고 오게 되었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전년도 우승 팀 자격으로 자동으로 8강에 진출하여 우라와 레즈와 맞붙게 되었다. 사이타마 원정에서 1-2로 패하고, 전주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역전을 이루고자 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칼리 알 감디 주심의 노골적인 편파판정으로 4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리그는 8위로 마감하며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였다.

그래도 지난 2년 간 두 번이나 우승한 공로를 인정받아 시즌 종료 후 구단과 2년 재계약을 채결했다.
2007 전북 베스트 일레븐
FW
스테보
FW
제칼로
MF
정경호
MF
권집
MF
김현수
MF
김형범
DF
최철순
DF
김영선
DF
최진철
DF
전광환
GK
권순태
SUB
GK: 성경일
DF: 정인환, 이정호, 김인호
MF: 임유환, 정종관, 변재섭, 최광희
FW: 이현승, 토니

2.4. 2008 시즌

파일:external/www.jjan.kr/259171_41677_1301.jpg

재계약을 체결한 만큼 본격적으로 최강희 감독이 전권을 쥐고 영입에 나섰다.

우선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또 다시 단행했다.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중용하지 않은 구단 레전드 최진철과 계약 만료로 은퇴시켰고, 이외에도 2년 전 우승 공신들인 김영선, 장지현, 김재형 등과 계약 만료되며 은퇴시켰다. 또한 정인환, 권집, 성경일, 이정호, 최광희, 김영신, 김정겸, 최철우, 변재섭 등 유망주들이나 중견급 선수들 중 최강희 감독의 플랜에 움직이지 않는 선수들은 가차없이 트레이드 시키거나 계약 해지해 버렸다.

대신 지난 시즌의 과오를 밟지 않기 위해 보다 검증된 자원을 영입하려 했다. 우선 시미즈 S펄스와 계약 만료된 조재진[7]을 영입하며 K-리그 전체의 판도를 흔들 정도의 파급력 있는 영입에 성공했다. 또한 선수 생활에 고비를 겪던 최태욱김성근을 영입했고, 국가대표 강민수와 리그 수준급 미드필더 김용희를 데려왔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원재, 이요한, 하성민, 서정진, 정훈, 김민식 등 유망주들도 대거 수집했다.

그리고 기존 주장 김현수를 주장에서 내리고 입단한 지 6개월된 국가대표 정경호를 주장에 선임한다.

이러한 대규모 리빌딩 작업을 실시하며 K-리그의 다크 호스로 주목을 받았으나 기대와 다르게 시즌 초반 부진한 성적을 이어가자 성급한 팬들의 비판으로 최강희 감독의 경질론까지 나오게 되었지만 최강희 감독은 직접 전북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올려 "아직 시즌은 끝나지 않았다" 읍소하며 팬들의 비난을 잠재웠다.#
저는 전북을 지키면 안되는겁니까?

저는 영원히 전북감독을 하면 안되는거지요?

저도 가끔 꿈을 꿉니다

가슴에 별을 달고 축구판을 호령하는 모습

우리팬들의 영원한 숙제 리그우승도 꿈꾸고

다시한번 아챔 도전을해서 역사를 다시한번 써보자

2006년을 재현해보자

그런 꿈을 꿉니다

그리고 후반기를 앞두고 또 다시 선수단을 개편했는데, 조재진에게 주전 경쟁에 밀린 제칼로는 방출, 스테보는 트레이드로 포항에 보내며 유망주 신광훈을 데려오며 좌측의 최철순에 걸맞은 우측 풀백을 구축했다. 또한 부진한 토니를 방출시키고 수원에서 루이스손승준을 데려오며 중원을 강화했고, 마지막으로 조재진의 백업으로 다이치를 데려오며 뎁스를 키웠다.

이러한 보강이 효과를 보이며 시즌 후반기에 들어서 7승 1무 3패, 후반기 승률 1위라는 놀라운 상승세를 보이며 8위까지 오르게 된다.

정규리그 최종전 홈에서 만난 경남은 무승부만 거두어도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 할 수 있는 유리한 7위의 자리에 올라있었다. 전반에 경남의 김동찬에게 먼저 선제골을 허용했으나 후반 17분 김형범의 크로스를 주장 정경호가 헤딩으로 동점골을 넣었고 후반 31분 김형범의 직접 프리킥 득점으로 역전에 성공한다. 이후 다이치가 추가골을 넣으며 3-1 역전승을 거두고 시즌 첫 리그 6위로 상승하며 극적으로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하였다.
파일:/image/076/2008/11/09/8bj74129.jpg
6강 플레이오프에서는 리그 3위이자 국가대표가 즐비한 성남을 원정에서 만났다. 전반 중반 전북이 두두에게 페널티킥을 허용하며 리드를 허용했다. 그러나 후반에 포기하지 않고 두들기던 전북에게도 기회가 왔다. 바로 교체로 나온 김형범이 얼마 뛰지 못하고 부상으로 교체되었지만 코너킥 후 혼전 상황에서 최태욱이 밀어넣으면서 동점골을 성공시켰고 경기는 원점으로 돌아가며 연장으로 이어졌다. 연장전에 들어서자 전북이 또 다시 투지를 발휘하면서 다이치의 패스를 받은 루이스가 오른발 슈팅으로 정성룡을 넘겨 역전에 성공하며 성남을 상대로 2-1 역전승을 거두었다.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울산과 대진하게 되었지만 1-0으로 패배하며 최종 순위 4위로 마감하였다. 그래도 전북이 리그 판도를 흔들 수 있을 만큼 저력이 있음을 보여준 시즌이 됐다.
2008 전북 베스트 일레븐
FW
조재진
MF
정경호
MF
이현승
MF
루이스
MF
김형범
DM
임유환
DF
최철순
DF
강민수
DF
알렉스
DF
신광훈
GK
권순태
SUB
GK: 홍정남
DF: 김현수, 전광환, 김인호, 이원재, 성종현
MF: 이요한, 서정진, 이요한, 정훈
FW: 스테보, 다이치, 최태욱, 홍진섭

2.5. 2009 시즌

파일:external/pr.hyundai.com/091209%20%ED%98%84%EB%8C%80%EC%B0%A8%20K%EB%A6%AC%EA%B7%B8%20%EC%9A%B0%EC%8A%B9%EA%B8%B0%EB%85%90%20%EC%9D%B4%EB%B2%A4%ED%8A%B8%20(1).jpg

최강희가 전북으로 부임한 직후 주장직을 맡겼던 김현수가 은퇴했고, 지난 시즌 팀의 상징이던 조재진이 감바 오사카로 떠나며 거액의 이적료를 팀에 안겨줬다. 게다가 기존 주장인 정경호가 신생팀 강원으로 떠나는 등 많은 이적료 수익이 발생했다.

성남에서 방출되다시피 한 트레이드로 김상식과 이동국을 데려왔고, 대구에서 '총알축구' 선봉장이던 에닝요, 하대성, 진경선 역시 함께 합류했다. 드래프트로는 임상협을 1순위로 뽑았다.

전북에서 극적으로 부활, 득점왕과 MVP를 차지하며 몬스터 시즌을 보낸 이동국과 에닝요, 루이스, 최태욱, 브라질리아, 김상식 등이 포진한 막강 미드필더진을 앞세워 시즌 내내 순항을 거듭했으며 11월 1일 경남 FC와의 최종전에서 4-2로 승리하고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챔피언 결정전에서 성남 일화를 상대로 1차전 성남 원정에서 0-0, 2차전 전주 홈경기에서 3:1 승리로 창단 후 15년만에 첫 K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목표로 했던 2010년보다 1년 앞서 우승을 차지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순간 셔츠안에 부상 당한 김형범 선수가 마킹된 유니폼을 입고 있어 팬들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2009 전북 베스트 일레븐
FW
이동국
FW
루이스
MF
에닝요
MF
정훈
MF
하대성
MF
최태욱
DF
진경선
DF
임유환
DF
김상식
DF
최철순
GK
권순태
SUB
GK: 홍정남
DF: 정인환, 손승준, 신광훈, 완호우량, 알렉산더
MF: 이현승, 김형범, 이요한, 임상협
FW: 서정진, 브라질리아, 이광재

2.6. 2010 시즌

파일:/image/5359/2015/05/23/holic20150523182023_P_02_C_1_99_20150523234503.jpg
2010년 수비라인은 아직 정비되지 않아 흔들리는 모습을 자주 연출하였다. 중국 국가대표 펑샤오팅을 영입하면서 수비 안정화에 기대를 걸었지만 공격력이 그리 좋다고 할수 없는 제주에게 2골을 내주며 2-2로 비겼고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수비에 실수를 보이며 가시마에게 2-1로 역전패 당했다. 제주 유나이티드에 덜미를 잡혀 리그 3위로 마쳤으나 한편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중국의 창춘 야타이에게 2연승을 거두며 16강 진출을 확정 지었다. 이후 16강 단판에서는 호주 원정을 뛰는 악조건 속에 이동국의 헤딩 결승골에 힘입어 아들레이드 유나이티드에 3:2로 승리하고 8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8강전에서 사우디의 알 샤밥에게 1,2차전 합계 2:1로 패하면서 결국 탈락의 고배를 들었다.

2.7. 2011 시즌

파일:external/www.kfa.or.kr/2011124171538.jpg

FA컵과 컵대회에서는 16강 8강에서 탈락했으나 정규리그인 K리그에선 16라운드까지 11승 2무 3패에 무려 38득점(!!) 19점으로 2위 포항 스틸러스와는 승점 5점차로 1위를 독주하고 있으며 이후 포항 스틸러스와 승점차를 3점에서 9점까지 늘였다 줄였다 희망고문만 하다가(...) 29라운드에서 정규리그 1위를 확정짓고 챔피언 결정전으로 직행했다. AFC 챔피언스 리그 역시 결승에 순조롭게 선착하여 리그 더블을 노리고 있는 중이다.[8]

무엇보다 무서운 게 약팀 강팀 안 가리고 매경기 평균 2골 씩 퍼부으며 닥공(닥치고 공격) 축구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6강 PO부터 차례로 서울 수원 포항을 깨부수고 올라온 울산의 철퇴축구 기세에 맞서 닥공으로 맞불을 놓았고, 원정 1차전에서 2:1로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앞선 팀 입장에서 으레 취하기 마련인 수비적인 전술 대신 공격적인 전술을 들고 나와 결국 2:1 역전승을 이루어 2011년 우승을 차지한다. 이에 대해 본인은 '어차피 축제의 장을 마련하자고 했기 때문에 비기고 우승하는 것보다는 이기자고 했다. 홈팬들에게 이기는 기쁨을 나눠주고 싶었다. 큰 경기 부담감으로 미흡한 점도 있었지만 이기려는 의지가 강했다'라고 직접 밝혔다.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알 사드를 안방으로 불러들여 경기를 했으나 승부차기 끝에 패배하였다. 지난 4강에서 알 사드가 수원을 상대로 비매너 플레이 등을 하며 결승에 올라갔기 때문에 대다수의 K리그 팬들이 전북을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아쉽게 패배하여 빛이 바랬다.

2011 한 시즌 동안 최강희 감독의 전북은 정규리그, FA컵, AFC 챔피언스 리그, 컵대회 포함 47경기에서 108골을 기록, 경기당 2.29골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작성하며 닥공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2011년 9월 18일 K리그 25라운드 경남전에서 3:1 승리를 거두며 감독 개인 통산 100승 감독의 대열에 올라섰다. 이는 역대 11번째 100승 기록이자 역대 최단 기록이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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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4일 챔피언 결정식 시상 이후 신의 한수준비한 밀짚 모자와 장화(!!)를 쓰고 나타나 '봉동이장'이라는 별명을 직접 인증했다. 본인이 준비한 게 아니라 봉동주민들이 챙겨온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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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올스타팀 감독으로 바르셀로나와 상대했다. 하지만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동아시아를 휩쓸고 있는 K리그가 일개 유럽 구단과의 경기에 올스타를 출전시킨다는 것은 스스로 리그의 격을 떨어뜨리는 행동이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되었다. 게다가 이러한 친선 경기를 이기건 지건, K리그 입장에서는 손해면 손해지 득이 될일이 거의 없다는 점도 문제였다. 팀으로서도 전술적으로도 완성되지 않았던 K리그 올스타는 바르셀로나에게 2-5로 참패하게 된다.[10] 최강희 감독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라며 인터뷰했다.

2.8.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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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를 썼던 소녀는 최강희 감독의 홈 복귀전에 초청되어 직접 최강희 감독을 만났다.

6월 27일, 전북 현대 모터스는 최강희 감독과 3년 6개월의 계약을 맺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계약기간은 2016년까지. 복귀가 약간 지연되어 새롭게 수석코치로 내정된 신홍기가 1게임을 감독 대행을 맡아 치렀다. 6월 28일부터 구단에 복귀하였다. 일각에선 당분간 휴식을 취하고 가을 즈음 복귀하지 않을까 예상했고, 구단측에서도 내심 복귀를 바라면서도 그동안 최강희 감독의 내적, 외적고생이 극심했음을 아는 터라 쉬고 오라는 분위기였으나 수원전에서의 5:4 패배를 본 최강희 감독 본인이 이대로는 안되겠다며 빠른 복귀를 선언했다. 지난 시즌은 이흥실 수석코치가 감독 업무를 대신했으나, 이번 시즌은 그마저도 놓치고 파비오 피지컬 코치가 감독 업무를 보는 파행이 반년이나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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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쓴 소녀와 홈 복귀전에서 만나는 모습

사실 K리그 팬들 사이에선 최강희 감독이 부재 중이던 1년 6개월 사이 전북이 완전히 망가졌다는 평가가 공공연히 흘러나오는 판국이었다. 일부 비관론자들은 전북이 과거 끝판대장 포지션을 되찾으려면 처음 최강희 감독이 취임했던 때처럼 5~6년 세월은 걸릴 것이라 할 예측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단 측에서 감독 부재중인 상황에서도 지난 이적 시장에서 케빈 오리스, 이승기, 박희도, 송제헌, 정인환, 이규로, 정혁, 이재명 등 좋은 자원들을 꾸역꾸역 끌어모았고 이재성을 자유영입하며 발굴했다. 기존 1, 2군 선수들의 기량 역시 리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인지라 이런 막강한 스쿼드를 보유한만큼 이번 시즌에서도 얼마든지 반등을 꾀할 동력 자체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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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6월 30일, 일리야 페트코비치 감독 체제로 바뀐 뒤 대전을 6:0으로 대파하며 호조를 보이던 경남 FC를 전주 홈에서 맞이하여 복귀전을 치렀다. 결과는 케빈과 이동국이 각각 2골씩 기록하며 4:0 대승을 거뒀다. 이를 두고 찌라시들은 닥공 부활을 외쳤으나, 사실 경기 내용을 봤을 땐 닥공과 거리가 멀었다. 전후반 내내 주도권을 쥔 쪽은 경남이었는데, 최강희 감독은 상승세의 경남에 맞불을 놓는대신 점유율을 포기하고 대신 공격을 끊었을 때 빠른 역습으로 털어버리는 전북식 철퇴축구를 들고나왔다. 경남으로선 좋은 경기를 했지만 화룡점정-골을 넣을 공격수가 부족했다는 점에서 분루를 삼켜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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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대표팀 감독 과정에서 심란한 사건들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호주 출신으로 전북에 입단했으나,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2군에 처박혀 있던 용병인 윌킨슨을 마개조해 최고의 수비수로 만들어 놓지를 않나, 칼럼참조 역시 최강희 감독은 전북에 있어야 한다. 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덤으로 해당 선수인 윌킨슨은 호주 국대로 뽑혀 나가 조별 예선 칠레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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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30주년 레전드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최강희 감독

15라운드를 마친 6월 30일 전북은 승점 24점으로 리그 5위. 4위 제주와 승점은 같지만 득실차로 밀렸다. 한편 1위 포항은 29점, 2위 울산은 27점. 결국 승점 63점으로 3위로 시즌을 끝마쳐 K리그 최초 AFC 챔피언스리그 5연속 진출 기록을 세웠다.

2.9.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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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세번째 우승을 하였다. 후반기 들어 닥공보다는 수비 밸런스에 더 중점을 두는 모습을 보였다. 8월과 9월을 기점으로 상대의 극단적인 수비텐백에 여러모로 고전하는 모습이 보이자, 승리를 놓치지 않는 실리적인 축구로의 변화를 추구하였기 때문이다. 전북은 그 동안 과정이 좋으면 결과가 따라온다는 철학을 뒤집고, 결과를 내는 실리를 추구했으며 결과가 좋아지자 점차 경기력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결과 10월부터 K리그 최초 8경기 무실점 연승을 기록했고, 리그 종료시에는 실점률은 22점, 득실차로는 39점을 기록했다. 시즌 초부터 대다수 축구인과 팬들에게 1강으로 꼽힌 전북이었고, 예상대로 무난하게 24승 9무 5패 승점 81점을 획득하며 일찌감치 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2위 수원이 승점 67점 3위 서울이 승점 58점임을 감안한다면 압도적인 페이스다.

팬들에게는 수비 밸런스적인 축구지만 공격적인 본능을 잃지 않고 방패로 상대팀을 후두려팬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 가지 이채를 띈 기록이라면 리그 최다 득점 최소 실점을 동시에 기록했다는 점이다. 시즌 내내 최강희 감독은 전북은 1강이 아니고 올해 전력도 역대급이 아니라고 거듭 밝혔는데[11] 실제로 닥공을 트레이드 마크로 내건 전북이 수비에 역점을 두고 팀을 운영했을 만큼 고민이 깊었던 시기였다.

최강희 감독은 휴식기간 동안 유럽으로 건너가 스페인의 AT마드리드의 시메오네 감독과 만나 수비에서 공격으로 넘어가는 밸런스 전술에 대해 상의하고 완성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2011년과 같은 파괴적인 닥공을 선보이겠다고 예고했다.

2.10. 2015 시즌

에두 영입과 에닝요를 재영입하며 그 동안 이동국을 중심으로 했던 4-2-3-1 전술에서, 에두와 이동국의 투톱을 중심으로 한 4-4-2 전술로 변화를 시도했다. 최강희 감독은 전반기 내내 지속적으로 투톱의 가능성을 시험했다. 투톱을 가동한 닥공은 미드필더 숫자가 줄어들어 수비에 약점이 생겼지만 최전방에서는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하였다. K리그 최강의 공격력을 자랑한 투톱의 닥공으로 에두는 11골로 득점 선두를 달렸고, 이동국은 8골로 2위에 올랐다. 리그에서는 1위 선두를 달리며 2위 수원과 승점 10점차로 벌리며 전반기를 마감하였다. 에두와 에닝요가 이적과 계약해지를 하였지만 후반기를 앞둔 여름이적시장에서 루이스와 베라, 이근호를 영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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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팀 최다승 154승 대기록을 달성한 최강희 감독

수원전에서 수원의 김호 감독과 단일팀 최다승 153승이라는 타이기록을 함께 가진 수원을 상대로 승리하며 전북에서 단일팀 최다승 154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였다. 역전승으로 인한 열광적인 분위기에 취하여 루이스와 함께 승리의 춤을 추었다. 그리고 이 날이 오기까지 전현직 선수들과 팬 여러분의 도움으로 이 자리에까지 왔다고 감사하다면서 팬들에게 큰 절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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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올스타 팀 최강희 VS 팀 슈틸리케

K리그 올스타전에서 팀최강희의 감독이 되어서 팀슈틸리케와 대결을 벌였다. 양팀은 각 포지션별로 드래프트로 선수들을 추첨했다. 그 동안의 이벤트식 경기와는 달리 진검승부를 펼쳤고, 뜨거운 공방전속에서 3-3으로 무승부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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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연속 K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2.11.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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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시즌 때 이동국, 이재성이 건재하고 이적시장에서 이종호, 로페즈, 김보경 등의 굵직한 선수들을 쓸어모으며 전북은 순식간에 강력한 우승후보로 자리매김했으며, 도르트문트와의 친선경기 이후에는 김신욱까지 영입하며 화룡점정을 이루었다.

토마스 투헬 감독의 도르트문트와의 친선 경기는 도르트문트가 4차례나 전북에 대결을 원해서 이루어졌지만, 한창 시즌 중이었던 도르트문트를 상대하기는 전력상 쉽지 않았고, 결국 1대 4로 패했지만[12] 이동국이 골을 넣고 김보경, 명준재[13]가 나름 활약하면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시즌 시작을 알린 2016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1차전 FC 도쿄를 상대로 한 개막전에서는 고무열, 이동국의 골을 묶어 2:1로 무난하게 승리하였다.

하지만 2차전 알렉스 테세이라, 첼시 출신의 하미레스 등이 포진한 장쑤 쑤닝 원정에서는 국내 선수로 팀을 꾸리고 경기에 나섰지만 예상 밖으로 장쑤의 외인들은 강했고 2:3으로 석패했다.

리그 개막전에서는 라이벌 서울을 상대로 김신욱이 결승골을 터뜨려 1:0으로 이겼다.

4월 16일 성남을 상대로 한 홈경기에서는 김보경이 결승골을 넣어 전북이 3:2로 승리하였다.

5월 장쑤 쑤닝을 상대로 한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임종은의 동점골로 16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이후 멜버른 빅토리를 상대로 한 16강 1차전 원정에서 레오나르도의 프리킥 동점골로 1:1로 비기고 2차전을 앞두고 전북 현대의 심판매수 사건이 발각되면서 전북에 대한 K리그 팬들의 시선이 싸늘해졌다. 이는 전북이 매북이라는 멸칭이 생기는 단초가 되었다. 전북은 레오나르도의 멀티골에 힘입어 2대 1로 간신히 8강에 진출했다.

원래는 전북과 맨체스터 시티의 친선 경기가 전주성에서 열릴 예정되었지만 이 심판 매수 사건으로 인한 후폭풍과 싸늘한 시선들 때문에 경기는 취소되었고, 대신 AFC 투비즈를 상대로 8:1로 압승했다.

7월과 8월 서울 원정에서 각각 3:2, 3:1로 압승하였다.

부천 FC를 상대로 한 FA컵 8강전에서는 주전 일부가 결장했다고는 하지만 충격의 2:3 패배를 당하며 FA컵 탈락을 하고 말았다. 이 경기가 루이스의 고별전이었기 때문에 더욱 아쉬운 부분이다.

8월 헐크의 상하이 상강을 상대로 한 8강 1차전 원정에서는 0대 0으로 비겼고 9월 2차전 홈경기에서 '슈퍼맨' 이동국의 활약에 힘입어 5:0으로 대승을 거두었다.

9월에 열린 상벌위원회에서 심판 매수에 대한 징계를 받아, 최종적으로 해당 리그 승점이 9점 감점되었다. K리그 팬들은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크게 반발하였다.

9월 28일 FC 서울을 상대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1차전 홈경기는 레오나르도, 로페즈, 김신욱의 골을 묶어 4:1로 완승했다.

10월 15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홈경기에서 이동국의 선제골로 앞서갔지만 이내 마르셀로가 동점골을 넣고, 이동국의 페널티킥 실축 직후 이창민이 어시스트를 올린 안현범의 역전골로 끌려가게 되었고, 신형민이 동점골을 넣었지만 김호남의 결승골로 시즌 첫 패를 당하였고, 무패행진 기록도 33경기에서 종료되었다. 이동국이 페널티킥을 실축한 게 좀 아쉬웠다.

10월 19일 서울 원정에서의 4강 2차전은 1:2로 석패했지만 종합 스코어 5대 3으로 앞서면서 결승 진출에는 성공하였다.

11월 6일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는 비기기만 해도 다득점에 앞서면서 우승이었으나 박주영의 결승골로 FC 서울에게 역전당하며 준우승을 거두었다. 박주영의 위치가 오프사이드가 의심되긴 했으나 전북도 조성환 선수가 그 직전에 박주영에게 비매너 태클을 해서 넘어뜨리고도 카드를 안 받은 것을 따지자면 할 말은 없었다. 승점 삭감만 아니었으면 이 경기와 상관없이 진작 우승이 확정되었을 것이니, 결국 심판 매수에 대한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 셈이었다. 그래도 리그에서 단 2패만 내주는 등 리그 자체의 내용으로 보았을 때 아쉽지만 압도적인 시즌을 거두었다는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

리그 준우승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11월 알 아인을 상대로 한 1차전 홈경기에서는 후반전 선제골을 얻어맞았지만, 선제골 직후 전술 실패를 인정한 최강희 감독이 빠르게 포메이션을 바꿔 김보경 대신 이동국을 투입해 투톱을 가동했고, 이게 먹혀들면서 레오나르도의 멀티골로 2:1 역전승을 거두었다.# 이후 원정에서는 한교원의 골에 힘입어 1대 1 무승부를 통해 전북은 10년 만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14]

클럽월드컵 6강전에서 마주친 상대는 10년 만에 만나는 북중미 강호 클럽 아메리카. 이번 시즌 전북이 상대한 팀들 중 도르트문트 다음으로 강한 팀이었다. 전북은 김보경이 선제골을 넣었지만 부상으로 월드컵에 합류하지 못한 권순태의 공백은 컸던지 연달아 골을 내주며 1:2로 석패했다. 레오나르도가 선발로 나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던 경기였는데, 본인은 선발이 아닌 교체로 나온 것에 불만을 표현하기도 했다. 4강전에 진출했으면 지네딘 지단 감독이 이끄는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할 수 있었기에 더더욱 아쉬웠다.

5/6위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리그 소속팀인 마멜로디 선다운즈를 상대로는 김보경, 이종호 등의 골로 4:1로 승리하며 상대를 그야말로 가지고 놀았다. 시즌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일궜다는 점에서 나름 만족스러운 편이었다. 비록 리그 3연패와 FA컵 우승은 못 이뤘지만 10년 만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상당히 인상깊은 시즌을 이루는 데 성공했다.

2.12. 2017 시즌

심판매수 사건의 후폭풍으로 아챔 진출권을 박탈당하면서 2017시즌 AFC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대구 FC 소속의 에델을 데려오고 국가대표 수비수 김진수가 호펜하임에서 전북으로 이적을 오면서 전북은 레프트백을 확실하게 보강하는 데 성공했다. 다만, 레오나르도가 중동으로 떠나고 권순태가 가시마 앤틀러스로 이적하면서 전력에 공백이 생겼다. 여기에 울산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이종호, 김창수를 내보내고 대신 이용 등을 데려왔다.

전북은 2017 U-20 월드컵 개최 관계로 전주월드컵경기장을 새로 단장하기 때문에 전반기 홈경기를 모두 과거 홈경기장이었던 전주종합운동장에서 치른다.

리그 개막전 전남을 상대로 2대 1로 극적 승리했다.

부천과의 FA컵 32강전에서는 주전을 가동했음에도 불구하고 1골도 넣지 못하는 부진 끝에 승부차기에서 김진수가 실축하는 등 결국 패하면서 일찌감치 충격 광탈하였다. 전북은 부천전 패배 및 승부차기 징크스를 계속 이어가게 되었다.

포항과의 홈경기에서 2:0으로 완승하였다. 이후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 U-20 팀을 상대로 3:0으로 완승하였다. 이승우는 당시 신인이었던 김민재를 상대로 완전히 봉쇄당했다.

그러나 5월 3일 열린 제주를 상대로 홈에서 0:4로 대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후 원정에서도 1:2로 패하면서 제주는 전북 상대로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서울 원정에서 종료 직전 박주영이 극장골을 터뜨리면서 전북은 1대 2로 패했다.

몸을 추스린 전북은 연승행진 끝에 2위 제주와의 홈경기에서 3:0으로 완승하면서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수원과의 마지막 홈경기에서는 산토스가 2골을 터뜨리며 활약하면서 2:3으로 아쉽게 분패하였다.

2.13. 2018 시즌

2018년 4월 25일 vs강원 전에서 2:0으로 승리하며, 개인통산 211승 달성으로 K리그 최다승 감독에 등극했다. 김호나 김정남 감독 등과 달리 한 팀에서만 달성한 대기록으로 더욱 의미가 큰 편이다.

FA컵은 아산 무궁화와의 16강전에서 이한샘에게 멀티골을 내주며 1대 2로 패배했다.

아챔에서는 부리람 유나이티드를 상대한 16강 1차전 원정에서 2대 3으로 석패했지만 2차전 홈에서는 2:0으로 완승했다. 서정원 감독이 사퇴한 수원과의 아챔 8강 1차전 홈경기에서는 데얀에게 2골을 내주며 충격적인 0:3 완패를 당했고, 2차전 원정에서 따라붙었지만 승부차기에서 신화용이 2번 선방하면서 아쉽게 패배, 탈락했다.

그래도 2016년 아챔 우승과 리그 준우승[15], 2017년 리그 우승을 이끌며 한계라고 지적받던 전술 및 경기상황에 대한 즉각적 대응에서 일취월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6시즌 챔스 결승 2차전 원정에서 부상으로 대신 투입한 한교원이 득점을 기록하면서 안정적인 우승을 이끌었고, K리그에서는 후반 교체선수 3명이 전원 득점을 기록하는 등 누구나 예상 가능하다고 비판받던 교체 전략으로 신들린 승리를 거둬내는 경기도 많아졌다. 투톱 배치 정도를 제외하면 경기력과 결과를 모두 놓치는 경기가 현저하게 줄면서 전북 팬들에게는 안정감을, 타팀 팬들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느낌을 주고 있다.

전북은 K리그 사상 처음으로 스플릿 라운드 돌입 이전에 우승을 확정하였고 최강희 감독 고별전인 경남 FC와의 최종전에서 1:1로 비기면서 최강희 감독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게 되었다.

훗날 전북의 감독으로 선임된 주제 모라이스김상식, 단 페트레스쿠가 전부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이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최강희가 재평가 받고 있다.[16]

3. 경기 결과

4. 공격 포인트 순위

5. 평가

전북 현대 모터스, k리그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모기업의 적극적인 투자, 팬 프렌들리 문화 등도 함께 이루어낸 감독으로 만년 중하위권에 머물던 전북을 리그 최고 명문팀으로 만들어냈다고 평가받는다.

전술적인 면에서는 닥치고 공격, 줄여서 닥공이라고 불리며 매우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하였다. 본인도 "홈에서 무승부를 거둔 것은 진 것과 같다"며 팀의 상황이나 상대 팀과의 전력 차이와 관계 없이 공격 일변도의 축구를 구사했는데, 그러면서도 다른 팀들에 비해 좋은 성적과 압도적인 실력차를 보였다.[17]

공격 시에 좁은 공간에 많은 선수들을 두어 빠른 템포의 패스 플레이로 상대를 벗겨낸 후, 빠른 윙어들을 통해 측면을 부수고, 크로스를 통한 헤더, 세컨볼을 통한 공격 전개를 사용하였다. 상대팀들은 좁은 공간에서 선수들이 위치를 수시로 바뀌며 움직이니 일정한 패턴을 파악하기 어려워 막아내기 매우 까다로워했다.

상술했듯이 매우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하지만 수비적인 면도 신경 써서 지도를 하였다. 당시 전북의 경기를 보면 골키퍼와 센터백을 제외하고는 모두 공격에 가담할 정도로 수비 뒷공간을 이용한 역습에 매우 취약한 포메이션을 취했지만 철저한 상대 분석을 통해 역습 경로를 미리 파악하여 역습을 차단하고, 선수들에게 강력한 1:1 대인 수비를 지시함과 더불어 좁은 공간에 많은 선수들을 몰아 넣어 상대가 공을 잡자마자 끊어내 다시 공격을 진행하는 모습도 보여줬다.[18]

[1] 2011년 12월 21일 ~ 2013년 6월 19일까지는 대행 체제[2] 대행 기간 포함[3] 아시안 클럽토너먼트와 아시안컵 위너스컵 통폐합으로 개편된 AFC 챔피언스리그에서의 K리그 첫 우승.[4] 이 시기 역전의 명수로 불리었는데 원조는 공교롭게도 같은 지역 고교 야구팀인 군산상고 야구부가 원조였다.[5] 게다가 이 클럽 월드컵은 일본 도쿄에서 현대자동차의 경쟁사인 토요타가 메인 스폰서를 하는 대회다.[6] 이는 납득하기 어려운 서술인 것이 현대가는 K리그 초창기부터 꾸준히 구단을 운영해 왔다. 물론 그 핵심은 현대중공업의 정몽준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현대차가 축구계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다고 보는 것은 난센스다.[7] 조재진 선수의 영입은 시사하는 바가 많은데 지방구단의 전북에도 대형 스타선수가 올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며 이 후의 다른 선수 영입에서 전북에 긍정적인 계기가 되었다.[8] 특히 AFC 챔피언스 리그 8강에서 세레소 오사카를 만났는데, 1차전 원정 경기에서는 패하였지만 2차전 홈경기에서는 무려 6골을 터뜨리며 발라버렸다.[9] 100승 달성 시점: 224경기 – 차경복(2003년 9월 3일), 최강희(2011년 9월 18일), 261경기 – 박성화(2000년 3월 22일), 269경기 – 차범근(2007년 3월 4일), 271경기 – 고재욱(1997년 5월 4일), 272경기 – 허정무(2006년 8월 30일), 275경기 – 이회택(2000년 8월 30일), 276경기 – 조광래(2004년 5월 15일), 292경기 – 김정남(2002년 11월 17일), 294경기 – 김호(1999년 7월 7일), 329경기 – 박종환(2004년 10월 9일)[10] 게다가 바르셀로나는 1.5군이 출전했고 후반에는 유스 선수들을 대거 출전시키면서 능욕을 당했다.[11] 전북이 순수하게 힘으로 압도한 게 아니라, 경쟁 팀들이 전력 보강에 실패해서 상대적으로 결과가 좋게 나왔다는 뜻.[12] 이 경기에서 오바메양이 세트피스 상황에서 넣은 헤딩골이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아 무효됐다. 명백한 오심.[13] 상대 골키퍼를 제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골은 못 넣었지만.[14] 그 당시 알 아인의 감독이었던 즐라트코 달리치는 나중에 크로아티아 축구 대표팀 감독에 올라 크로아티아를 사상 최초로 월드컵 준우승을 이루는 데 공헌한다.[15] 최다 승점이었으나 2013년 사건 징계로 승점 9점을 삭점 당했다.[16] 모라이스도 김상식의 어이없는 전술로 재평가 받고 있다.[17] 2014년에는 3-5-2 포메이션의 극단적인 수비 축구로 일관하던 최용수 감독의 서울을 상대로 똑같은 전술로 완전히 틀어막고 후반 막판 득점으로 승리한 뒤 "우리도 내려서면 지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러면 팬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겼다.[18] 최강희 감독은 훈련때나 경기중 수비할때 바짝 붙으라는 말을 정말 많이 쓰는데 타이트한 수비가 이뤄지지않아 뚫렸을때 차분한 최강희 감독이 강하게 호통칠만큼 골키퍼 제외 포지션 불문하고 적극적이고 타이트한 수비를 철칙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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