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현대고등학교와 울산대학교를 거쳐 1999년 드래프트에서 3순위로 울산 현대에 지명[1]되어 프로 생활을 시작한 손정탁은 1999년 8월 6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아디다스컵 경기에서 안홍민이 올려준 볼을 발리슛으로 득점해 프로 통산 첫 득점을 올렸고, 이후 울산에서는 주로 주전 투톱이던 김종건 혹은 장철민, 안홍민 등의 윙어와 교체하여 그의 큰 키를 이용해 경기 막판 공중전을 담당하는 역할을 맡아 입단 첫 해에 16경기 2골 2도움을 기록했다. 하지만 대졸 신인으로서 1순위 드래프티들이 흔히 첫해부터 주전으로 발탁되는 데 비하면[2] 소소한 활약을 펼쳤다. 이후 2000년에도 18경기 출전에 2골 2도움을 기록했다.
광주 상무 시절
그러다 2001년 11월에 상무로 입대를 해 군 생활을 시작한 손정탁은, 2003 시즌에 상무가 K리그에 참가함으로써 다시 프로 무대에 복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때는 조재진과 이동국이 부동의 투톱을 꿰어찼기 때문에 상무에서도 교체로 출전하거나 간혹 2군[3] 경기를 소화하기도 했다.
제대 후 전북에 입단했다가 2005년 여름 시즌에 수원 삼성으로 입단했다. 문제는 이 해의 수원이 디펜딩 챔피언임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빈공 속에 하위권으로 처졌다는 것으로, 팀내 최다 득점자가 센터백인 마토 네레틀랴크였던 데서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간판 골잡이 나드손이야 부상이다 치고, 복귀한 산드로도 삽을 푸는 상황. 그 중에서도 아예 득점이 없는 손정탁이 묘하게 컬트적인 인기를 얻었다.
결국 손정탁은 2006년 수원에서 방출된 후 내셔널리그 창원시청에 잠시 몸을 담았다가 은퇴했다. 역대 기록은 K리그(컵대회 포함) 106경기 출장(88경기 교체) 11득점 7도움으로, 34출장 4득점을 올린 광주 상무 2003 시즌이 커리어 하이다.
은퇴 후 경상북도경산시에서 유소년 축구 교실을 운영하다가, 청주대성고등학교 코치를 거쳐 2017년에 WK리그 보은 상무 코치로 부임해 이미연 감독을 보좌하면서 여자 선수들을 지도하는 군무원이 되기도 했다. 이후 군장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코치 생활을 하다가 2021년부터 한일장신대학교에서 축구부 코치를 하고 있다.
디시인사이드국내축구 갤러리나 사커월드 등 국내 축구 커뮤니티를 통해 손정탁과 같이 빈약한 득점 생산력을 자랑하는(?) 장신 공격수들을 묶어서 까는 '손정탁 클럽'[5]으로 꼽았다. 시즌별로 부진한 선수, 그것도 출장이 많으면서 득점이 적은 선수를 꼽기 때문에 전통적인 단골 멤버(?) 박성호, 삼동현[6] 뿐만 아니라 외국인 선수나 이동국도 걸리기도 했다. 2010년대 후반에 들어와 국축갤이 타 커뮤니티에 밀려 뜸해지면서 요새는 그다지 회자되지 않는다.
[1] 당시 제도에서 1995 시즌에는 연고 고교 우선지명이 없었으며, 울산대는 연고 대학으로 우선지명이 가능했으나 1999년에 우선지명된 선수는 미드필더 김도균이다. 우선지명은 형식상 4순위 취급.[2] 1999년의 경우 부천 SK의 이성재가 유명한 사례.[3] 이천 상무 명의로 K2리그 참가.[4] 사진 맨 우측.[5] 물론 야신 클럽 등 뛰어난 선수를 묶어내는 가십을 따온 것이다.[6]김동현, 서동현, 양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