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24 21:48:57

김형범(축구)

김형범의 역임 직책
----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e83827><tablebgcolor=#e83827> 파일:경남 FC 로고.svg경남 FC
역대 주장
}}} ||
{{{#!wiki style="margin: 0 -10px;"
{{{#f2c91f,#e0b70d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000000,#e5e5e5
초대 2대 3대 4대 5대
김도근
(2006)
김효일
(2007)
이상홍
(2008~2009)
김영우
(2010~2011)
정다훤
(2011)
6대 7대 8대 9대 10대
강승조
(2012~2013)
김형범
(2013)
이한샘
(2014)
박주성
(2014)
진경선
(2015)
11대 12대 13대 14대 15대
이원재
(2016)
배기종
(2017~2019)
하성민
(2020)
황일수
(2021)
윌리안
(2022)
16대 17대 18대 파일:경남 FC 워드마크.svg
이광진
(2022)
우주성
(2023~2024)
한용수
(2024~)
}}}}}}}}}}}}}}} ||
김형범의 수상 이력
{{{#!folding ▼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베스트팀
파일:K리그1 로고.svg
}}} ||
대한민국의 축구인
파일:4237B795-B7D6-4121-86E2-8D11F3127B97.jpg
<colbgcolor=#eeeeee><colcolor=#000000> 이름 김형범
金炯氾 | Kim Hyeung-bum
출생 1984년 1월 1일[조기입학] ([age(1984-01-01)]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74cm, 69kg
직업 축구 선수 (윙어 / 은퇴)
축구 해설가
학력 서울신묵초등학교 (졸업)
태릉중학교 (졸업)
보인정보산업고등학교 (졸업)
건국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학 02 / 중퇴)
소속 <colbgcolor=#eeeeee><colcolor=#000000> 선수 울산 현대 호랑이 (2004~2005)
전북 현대 모터스 (2006~2012)
대전 시티즌 (2012 / 임대)
경남 FC (2013)
부리람 유나이티드 FC (2014)
해설 JTBC GOLF&SPORTS (2022~2023)
국가대표 5경기 (대한민국 / 2008~2012)
병역 면제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
2.1. 울산 현대 호랑이의 무명, 전북 현대 모터스의 에이스가 되다2.2. 부상, 부상 그리고 또 부상2.3. 전북 현대 모터스의 에이스, 대전 시티즌의 소년 가장 되다2.4. 경남 FC로의 이적과 태국 진출 무산2.5. 은퇴
3. 해설 위원 경력4. 지도자 경력5. 플레이 스타일6. 대회 기록7. 여담8. 논란 및 사건 사고
8.1. 무면허 운전 교통사고8.2. 벤투호 관련 실언 논란
9.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축구 선수 출신 해설자.

세계 10대 프리키커로 선정될 만큼 뛰어난 프리킥 실력으로 많은 전북 팬의 사랑을 받으며 데이비드 베컴을 따서 형컴이라 불리고 타 구단 팬들에게는 잦은 부상 때문에 K리그오언 하그리브스로 불렸던 선수다.

2. 선수 경력

2.1. 울산 현대 호랑이의 무명, 전북 현대 모터스의 에이스가 되다

파일:200907140266.jpg
전북 현대 모터스 시절

또래보다 다소 늦은 태릉중 1학년때 처음 축구를 시작한 김형범은 어렸을 때부터 특유의 스피드로 주목을 받았다. 보인정보고 3학년 시절인 2001년에는 아시아학생대표에 선발되어,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시아학생선수권에서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건국대학교 축구부에서 2003 추계대학연맹전 우승을 차지하는 등 김철 감독 아래에서 윙어로 포지션을 변경해 대학 무대 정상급 선수로 거듭났다.

건국대 2학년을 중퇴하고 2004년 울산 현대에 입단, 이때에는 부상도 없고 출장하면 제 몫을 해주는 선수였으나 같은 포지션 경쟁자가 치트키 켠 시절의 이천수최성국이어서 출장 기회가 적었다. 그래서 타 팀 팬들에게는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듣보잡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를 지켜본 이가 있었으니, 전북의 최강희 감독은 2006 시즌을 앞두고 그 전까지 전북 현대 모터스의 얼굴마담이라 할 수 있었던 국가대표 박동혁박규선을, 울산 현대에서 제대로 출전도 못한 이 듣보잡 선수와 2:1로 트레이드해 버리는 수를 둔다.

2006 시즌에는 AFC 챔피언스 리그까지 참가를 해야하는데 중요한 선수를 듣보잡과 바꿨다며 전북 현대 모터스 팬들은 우려가 많았지만 2006 AFC 챔피언스 리그 첫경기인 2005 일본 J리그 우승팀인 감바 오사카와의 조별 예선 1차전에서 패배에 끌려가던 팀을 2골을 몰아넣으며 역전승을 일구어 낸다. 이후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중요한 경기마다 장기인 프리킥과 중거리슛으로 팀의 역전을 이끄는 등 반대편 염기훈과 함께 전북 현대 모터스의 첫 ACL 우승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

게다가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자격으로 출전한 클럽 월드컵에서는 왼발 무회전 중거리슛 골을 넣으며 축구팬들에게 큰 관심을 받게 된다. 이러한 활약으로 최강희 감독이 주도한 시즌 전 2:1 트레이드가 신의 한 수로 떠받들어지게 된 것은 물론이다.

2.2. 부상, 부상 그리고 또 부상

2006년 시즌 중반 휴식기에 염기훈을 태우고 운전하다 교통사고를 냈다. 2006년의 좋은 활약은 2007년에도 이어질 것 같았으나 홈경기 개막전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경기에서 김남일의 태클에 넘어지고 십자인대 파열로 6개월 진단을 받는다. 부상 치료 후 그해 9월에 복귀하지만 별 보탬이 안되며 전북은 그해 플레이오프 진출과 챔스 4강 진출에 실패한다.

2008년에는 절치부심하여 시즌 내내 부상없이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국가대표에까지 뽑혔지만 시즌 막판 성남 일화 천마와과의 6강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장학영에게 발목을 다친다. 김형범의 부상 후 전북 현대 모터스은 플레이오프에서 울산 현대에게 패배했다.

이 부상으로 또 6개월동안 치료와 재활을 하고 2009년 7월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경기에 복귀를 하였지만 복귀한 그 첫 경기에서 곽희주의 태클에 넘어지며 또 무릎이 부상당했다. 이 부상으로 김형범은 또 6개월 진단을 받아 시즌 아웃. 다행히 전북 현대 모터스는 이 해에 우승했다.[2]

이후 2010년 큰 부상은 다 나았지만 훈련 도중 잔부상이 계속 발생해 출장을 별로 못했다. 2011 시즌을 앞두고는 팀에서 내보낸다는 소문까지 돌았으나 잔류했다. 4월까지 출장을 못하다가 5월 10일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 예선 6차전 아레마전에 후반전 교체 출장하였고 로브렉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부활을 알렸다.

2011년 중반부터 간간히 경기에 나서면서 부활하나 싶었지만 끊임없이 잔부상에 시달렸고, 결국 2011년 9월에는 전북 현대 모터스의 이흥실 코치에게 은퇴 결심을 밝혔다. 그러나 이흥실 코치의 만류로 수술과 재활에 들어갔고 2012 시즌을 앞두고 본인의 의사로 대전 시티즌으로 임대 이적했다.

2.3. 전북 현대 모터스의 에이스, 대전 시티즌의 소년 가장 되다

파일:external/file.mk.co.kr/image_readtop_2012_789736_1354102728786816.jpg

2012 시즌을 앞두고 본인의 의사가 구단에 받아들여져서 대전 시티즌으로 1년 임대 이적하였다. 이후 2012 시즌 동안 몸을 완벽히 만든 후 고군분투하며 강등권으로 떨어진 팀을 먹여살리고 있었다. 계속 골과 도움을 기록하면서 6월 27일에는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개인 통산 20-20 클럽에 가입했다. 그리고 이러한 활약을 인정받아 2012년 8월 잠비아와의 친선 경기를 앞두고 4년 만에 재발탁되었다.

결국 대전 시티즌은 13위로 강등을 모면했으나 후반기 페이스가 좋지 못했고, 최종전 직전에 유상철 감독이 재계약 불가를 구단에게 통보받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또 전북 현대 모터스가 시즌 초반부터 수비수 줄부상으로 고생했던 만큼 팬들은 김형범의 친정 복귀를 기정 사실이나 다름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2.4. 경남 FC로의 이적과 태국 진출 무산

2013년 시즌을 앞두고 뜬금없이 경남 FC로의 이적이 확정되었다. 2013년 6월 30일 전주성에서 열린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경기에서 4:0으로 패배한 뒤, 전북 현대 모터스 서포터즈에게 인사를 했는데, 몇몇 경남 FC 팬들은 가뜩이나 4골 차로 진 경기인데 배려심이 없다며 김형범을 깠다.

21경기 8득점의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나, 유리몸의 명성은 어디 가지 않았는지 8월 포항 스틸러스와의 FA컵 8강전에서 허리뼈 횡돌기 골절을 당해 거의 시즌 1/3을 날려먹고 시즌 막바지에야 복귀했다.

그렇게 허리 부상에서 복귀하고 시즌을 마친 뒤 또 부상을 당했다. 왼쪽 발등의 인대가 끊어졌지만 수술을 하면 엄청난 기간이 걸리기에 수술 없이 재활 치료만으로 이를 극복하려 했고 이것마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지라 국내 팀들의 러브콜 제의를 사양할 수 밖에 없었다.

파일:SK004_20140521_130201_99_20140521044202.jpg
부리람 유나이티드 FC 시절

그러던 중 태국 프리미어 리그부리람 유나이티드 FC에서 영입 제의가 오자 '부상이 많은 선수는 따뜻한 나라에서 뛰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이흥실 前 경남 FC 수석 코치의 조언을 받아들여 부리람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한다. 그러나, 입단 후 김형범이 결혼을 위해 잠시 태국을 떠난 사이 부리람에서는 김형범 대신 새로운 외국인 선수를 뽑아 리그 엔트리로 등록시켜 놨고 김형범은 리그 엔트리에 등록되지 않아 컵 대회에서만 뛸 수 밖에 없었다. 부리람 유나이티드 FC 측은 2015 시즌에는 김형범을 리그 엔트리에 반드시 넣어 주겠다고 설득했지만, 김형범은 해당 지역이 너무 오지라 가족과 함께 생활하기에는 무리라 생각하여 계약을 해지하고 귀국을 하게 되었다.

국내로 돌아온 뒤에는 한 K리그 챌린지 소속 구단에서 '플레잉 코치처럼 편하게 뛰어달라'며 영입 제의가 있었지만 최선을 다해 뛰지 않는 것이 싫어서 이를 거절했다 한다. 그 와중에 몸을 만들다가 허벅지 근육 파열을 당하는 등 부상이 계속되자 더이상 축구 선수로 뛰는 것은 무리라 생각을 하게 되고.

2.5. 은퇴

2015년 11월 칼럼니스트 김현회와의 인터뷰를 통해 사실상 은퇴했음을 시인했다. '은퇴 선언' 김형범 "나는 45점짜리 선수였다"

아내인 서규린조차 남편이 그라운드로 복귀할지 말지는 완전히 알지 못했던 듯. 위의 인터뷰가 뜨고난 뒤에야 일반인으로써의 삶을 살아가게 될 남편을 응원하는 포스팅을 올렸다.

남양주의 스크린 골프 연습장과 가평의 펜션을 운영하며 당장은 축구와는 거리가 먼 업종에 종사했지만 이는 생계를 위해 하는 것일 뿐이고 언젠가는 축구계로 꼭 돌아올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꽁병지[3]의 고정 멤버로 출연하기도 했다.

감스트축구 감독 콘텐츠에 입단 지원자로 출연해 압도적인 프리킥 능력이 죽지 않았음을 뽐냈다.

3. 해설 위원 경력

2022년 8월 3일 26라운드 수원 FC vs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 JTBC GOLF&SPORTS K리그1해설진에 합류하였고 좋은 평을 받고 있다.

2023년에도 그대로 K리그1 해설을 하게 되었다. 다만 때때로 경기 내용과는 상관없는 사족을 붙이는 것과 더불어, 전체적으로 갑갑한 해설 스타일을 한다는 것이 단점으로 꼽히면서 호불호가 크게 갈리고 있다. 2023시즌 종료 후 해설을 잠시 그만한다고 한다.

4. 지도자 경력

2024년 4월부터 본인의 현역 시절 별명을 따 형컴FC이라는 아마추어 축구단을 창단했다.

5. 플레이 스타일

프리킥 스페셜리스트로, 왼발과 오른발, 일반적인 스핀킥과 무회전 킥을 가리지 않는다. K리그에서 프리킥으로 김병지, 이운재, 조현우를 모두 뚫은 전력이 있다.# 왜소한 체구이지만 강력한 중거리 슛도 일품이다. 하지만 그 놀라운 킥력 때문에 무릎이 많이 상했다. 유리몸이 발목을 잡은 셈.....

필드 플레이 스타일은 굳이 따지자면 베컴과 비슷한 스탠드 윙어로[4] 형컴이라는 별명은 여기에서 따온 것이다. 이천수최태욱처럼 경기장을 휘젓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크로스와 프리킥으로 경기를 뒤집는 한방형 선수이다.

6. 대회 기록

7. 여담

8. 논란 및 사건 사고

8.1. 무면허 운전 교통사고

김형범이 2006년 7월 무면허 상태에서 과속 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일으켜 현역 군인 두 명에게 각각 전치 6개월과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혔다. 당시 동승자였던 염기훈도 이 교통사고로 인해 머리와 이마가 깨지는 부상을 당했다. 염기훈 머리에 있는 흉터가 바로 이 사고로 인해 생긴 것이다.

한편, 2022년 8월 에펨코리아를 통해 이 사건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정정하기도 했다.링크 특히 해명 전까지 민주일보에서 김형범이 무면허인 걸 감추려고 동승자였던 염기훈이 운전한 것처럼 꾸몄다는 기사를 작성해기사 16년간 무면허+동승자 바꿔치기한 선수로 낙인 찍혀 있던 것에 대해서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8.2. 벤투호 관련 실언 논란

벤투호의 16강행에 관련해 실언을 해서 논란이 됐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직후 김형범은 김민구 해설 위원 등과 함께 유튜브 채널 '채널 석세스'에 등해 벤투호에 대해 평했는데, 파울루 벤투 감독이 월드컵까지 이끄는데 불안함이 있었음에도 16강 진출로 갑자기 너무 찬양 받고 있다고 주장하며, "한국인 감독이어도 그 선수단이면 비슷한 성적을 냈을 것"이라는 발언을 해 구설수에 올랐다.[5]

또한 "우리가 경기를 치를 때 빌드업 축구보다는 수비 축구, 조직력 있는 축구, 헌신하는 축구를 보여 줬는데, 벤투 감독은 이러한 축구를 해오지 않았다."는 말까지 했다.우루과이전을 안 봤나 보네

다시 말해 벤투 감독의 축구는 조직력도, 헌신도 없는 축구라는 의도로 말한 것으로 해석되는데, 당연하게도 축구에 있어서 조직력과 헌신은 어느 나라든, 어느 스포츠든 간에 중요시 되는 기본적인 요소이다. 김형범의 발언은 마치 조직력과 헌신이 대한민국만의 고유한 전유물인 것 같은 뉘앙스로 최소한의 논리도 갖추지 않고 벤투호를 무지성으로 비난한 것이다.

또 조직력은 수비 상황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 공격상황에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실제로 벤투 감독의 재임 후반기로 갈수록 한국팀이 최종예선에서 보여줬던 경기력이 좋아졌던 이유는 선수들이 일관된 시스템에 맞추어 전체적인 조직력이 좋아졌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많고, 특히 만나는 상대마다 물러서긴 커녕 최대한 대등하게 맞서는 축구를 보여줬기 때문에 많은 축구 팬들로부터 "축구 제대로 보긴 했냐"며 상당한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또한 정작 연령대 대표팀에서 부진을 거듭하는 황선홍 감독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을 안해 축구팬들의 분노를 사는 중이다. 애초에 U-23 축구 국가대표팀의 스쿼드 질은 결코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는데, 이 스쿼드 가지고 개막장 전술로 일관한 끝에 일본과의 경기에서 0:3으로 참패한 결과를 불러일으켰다.[6] 즉, 애초에 선수빨이라는 것도 감독의 능력도 있어야 발휘되는 것이며, 감독의 기본적인 역량이 미달되면 아무리 초호화 선수진을 가져도 소용없다라는 것을 황선홍 감독이 몸소 증명하였다. 하물며 더 상위레벨인 월드컵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당장 독일, 벨기에, 멕시코, 덴마크, 스페인, 브라질, 우루과이 등이 16강은 단골로 가며 더 높은 자리, 상황과 팀에 따라서는 우승도 노려볼만한 강력한 스쿼드를 가지고도 전술과 선발 라인업, 교체 카드 등에서 감독의 역량 부족을 드러내며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고 제대로 죽을 쒔다. 유로 우승을 한 이탈리아는 아예 본선에 오지도 못했다. 여기에 같은 국내 감독인 김학범이 큰 논란을 일으킬때도 침묵으로 일관하다 벤투에게만 비판적인 국내 축구인들을 두고 제식구 감싸기 식의 선택적 비판이라는 여론까지 대두했다.

월드컵 성적이 괜찮게 나오니까 벤투에 비판적이었던 팬들이 그를 '벤버지'라고 찬양한다며 냄비근성을 보였다고도 발언했다. 그러나 이 별명은 월드컵 성적에 따라 붙은 것만이 아니다. 벤투는 무뚝뚝하고 고집센 이미지와는 다르게 냉철하지만 사려깊은 성격으로 선수들에게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다. 게다가 가나와의 조별 예선에서 주심에 거칠게 항의하는 한국 선수들이 경고 받을 것을 우려해 자신이 대신 거세게 항의하다가 퇴장 받을 만큼 선수 보호에 적극적이었다. 선수를 이끌어가는 이런 리더십과 책임감에 '벤버지'라는 애칭이 붙은 것이지, 결과가 좋게 나오자 그제야 벤투를 찬양한다고 비난하는 행위는 핀트가 맞지 않다.

한편 논란을 의식한 것인지 현재 김형범의 발언 부분은 재편집되어 볼 수 없는 상태이다.

9. 관련 문서



[조기입학] [2] 이때 최강희 감독이 김형범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는데, 얼마나 김형범을 아꼈는 지 알 수 있는 대목.[3] 꽁병지tv, 꽁병지 라이브 둘 다[4] 물론 베컴은 돌파에 능한 선수가 아니었고 뛰어난 킥력으로 영향을 발휘하는 선수였기에 스탠드 윙어로 분류하지만, 실제론 엄청난 하드워커라서 둘을 비슷한 유형으로 보긴 어렵다.[5] 웃기는 사실은 국내 감독으로 16강, 아니 월드컵에서 호성적을 이뤄낸 감독은 허정무가 유일하다. 나머지 국내 감독들은 엉망인 전술에 엉뚱한 선수기용으로 그럭저럭 괜찮은 선수층 가지고도 어이없는 부진에 빠져 가장 중요한 월드컵 본선에서 처참한 경기력으로 일관했으며, 2018 러시아 월드컵에는 카잔의 기적이라는 성과를 이루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조별 리그 탈락이었기에, 호성적을 거뒀다기에는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애초에 그 선수단을 뽑고 기용한 것이 누구인가? 황인범, 나상호, 정우영 등 월드컵 전까지만 해도 욕받이 1순위였던 이들을 꿋꿋이 기용해 대표팀에서 맹활약하게 만들고 올림픽 본선에도 가지 못한 조규성을 왜 오세훈을 안 뽑냐는 비아냥 속에서 발탁해 차세대 국가대표 스트라이커로 자리 잡게 만든 게 누구인가? 외국인 감독에 비해 선수 선발과 기용 측면에서 여론의 영향을 받기 쉬운 다른 국내 감독이 대표팀을 맡았더라도 그와 비슷한 선수단을 구성한다는 보장이 있는가? 애초에 다른 감독이어도 어땠다를 따지는 것은 어디까지나 현실이 아니라 가정일 뿐이기에 의미가 없고 결과론일 뿐이다. 결정적으로 단순히 스쿼드가 역대급이었다고 하기엔 손흥민, 황의조, 황희찬, 김민재 모두 부상 등의 문제로 폼이 저하되어 월드컵 전부터 우려를 받았었고 이는 실전에서 네 선수 모두 제 기량을 온전히 보여 주지 못하며 현실이 되었다. 김형범의 이 발언은 감독이 선수빨을 받고 싶어도 받기 힘든 상황이란 걸 전혀 생각하지 않고 겉핥기 식으로 선수단의 이름값만 보고 벤투 감독의 지분을 평가절하하는 지극히 축알못스러운 말이다. 무엇보다 한국 내에서 역대급 스쿼드니 뭐니 설레발을 쳐봤자 세계 강호들과 겨루는 월드컵 기준으로 보면 코웃음이 나올 정도로 귀여운 수준이다. 당장 조별 리그 H조의 팀은 공격-중원-수비진 모두에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빅리그 클럽 소속 선수들이 한 명 이상씩 포진해 있었고 지금은 변방 리그에서 뛰는 노장들조차 빅리그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잔뼈가 굵은 선수들이었다. 특히 중원에는 단순 네임밸류만 따지자면 빅클럽 선수들이 들어가 있던 반면 한국은 마인츠-올림피아코스-알 사드 중원이었다. 애초에 스쿼드의 격차는 과거나 지금이나 세계 무대에 비벼보기도 벅찬게 현실이지만 이런 사실은 무시당하고 있다. 그래서 우물 안 개구리마냥 상대방과의 전력 차는 고려도 안 하고 한국 내에서 역대급 스쿼드 따지는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특히나 이런 발언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K리그의 실력 자체를 비하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작 그 K리그 출신이 주력인 대표팀 전력은 유럽에서 뛰는 다수의 선수들이 주축인 팀들과 비빈다는 평가를 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잦기에 더욱 그렇다.[6] 피지컬과 기술적인 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좌풀백 조현택을 거의 기용하질 않고, 최고의 폼을 보여주고 있는 엄지성, 양현준을 기용하지 않고 경기 감각이 거의 없는 정상빈을 고집하는 등 선수 기용마저 엉망진창인데다, 라리가에서 공격적으로 써야 제 힘을 발휘하는 이강인이나 대구에서 리그 13골을 달리며 절정의 골 감각을 달리고 있는 고재현을 수미로 출전시키고 윙백 김태환을 윙어로 쑤셔넣는 경기를 본 K리그 팬들이 "주 포지션에 서 있는 선수가 없다"며 크게 화를 냈을 정도다. 이것도 부상병동이나 징계 등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런게 아니라 그냥 멀쩡한 선수들을 일부러 주 포지션을 피해가면서 박아놓은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