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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2-08 11:21:55

이영호/개인리그

1. 개요

이영호의 개인리그 경기 기록.

2. 역사

2.1. 2007년

개인리그에서 데뷔하자마자 듀얼 토너먼트에서 박성훈윤용태, 그리고 마조작을 잡은 김택용을 잡고 연달아 이윤열, 최연성 등 본좌 소리를 들었던 선수들을 이기고, 프로리그에선 임요환,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선 마주작과의 대결에서 아쉽게 지는 등 역대 본좌들과 데뷔 초부터 격돌했다. 8강에서 김택용치즈러쉬2:0으로 보내버리고 15살의 나이에 역대 최연소로 Daum 스타리그 2007 4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비록 결승은 가지 못했지만, 자신보다 훨씬 강한 수년 선배들을 쓰러트리는 모습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 염보성의 앙팡 테리블의 한단계 업그레이드 버전인 앙팡 호러블.[1] 이때 이영호의 최연소 로얄로더 대기록을 4강에서 저지한 선수가 김준영. 일생의 단 한 번 뿐인 로얄로더 기회를 놓친 게 못내 아쉬웠는지 4강 마지막 경기를 보면 땀을 뻘뻘 흘리며 포기하지 못하는 앳된 이영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후 벌어진 EVER 스타리그 2007에서는 8강에서 송병구에게 2:1으로 패하며 2연속 4강 진출이 좌절되고, 자신의 MSL 첫 본선 무대인 곰TV MSL 시즌3에서는 32강에서 디펜딩 챔피언 김택용에게만 두번이나 패 하며 최연소 로열로더 기록이 또 한 번 좌절되고 말았다. 하지만 16살이라는 중학생의 나이에 생애 처음으로 진출한 스타리그에서 4강을 기록하고, MSL 본선 무대에 진출한 것만으로도 그의 재능을 확실히 팬들에게 보여주었다.

2.2. 2008년

최종병기가 약진한 해. 2007년에 우승하지 못한 것을 수복하려는 듯 우수한 테란 코치 변길섭과 함께 만든 안티 캐리어 빌드로 개인리그 내에서 송병구, 김택용 등 S급 프로토스들을 싹다 잡아내며 16살 나이에 최연소 스타리그 우승을 석권했다. 하지만 아레나 MSL에서는 아쉽게도 박지수에게 정ㅋ벅ㅋ을 당하며 4강에서 멈추게 되었다. 하지만 그간 보여준 모습이 너무 굉장하였기에 2009년에도 이영호가 개인리그에서 활약할 것을 팬들은 기대하였지만…….

2.3. 2009년

2008년에 보여준 뛰어난 모습과는 달리 매우 저조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해였다. 프로리그에서는 같은 팀원들이 너무나 죽을 써 주었고, 전담 코치 변길섭 또한 군대를 가는 바람에[2] 어쩔 수 없이 혼자 프로리그에서 에결까지 2경기를 무조건 준비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경기 내적/외적으로 압박감이 느껴지는 상황에서 당연히 개인리그 연습에 소홀이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결국 모든 리그에서 저조한 성적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같은 해 부터 각성하기 시작한 같은 팀원 우정호와 그 바통을 이어받은 김대엽 둘 덕분에 프로리그에 대한 압박이 줄었고, 이는 2010년으로 이어지는데…….

KT 리플레이 유출이 발각된 사건 때 이영호 리플레이는 이전부터 신맵 연습경기까지 모두 퍼져나간 상황이 분명히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리플 유출 발각사건 이후 KT 측에서 리플 유출에 대해 철저한 조사와 방지를 다짐한 직후부터 이영호가 갓으로 까지 불리며 각성했는데, 이 시기와 맞물린다는 걸 우연으로만 보기는 힘들다. 이슈가 됐을 당시에는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과 맞물려 박찬수가 의심받았으나, 이후 자팀 2군 선수 하나가 그 이전부터 을 받고 유출시켰다는 소문이 파다했고, KT는 조사 이후에 사건을 확대시키지 않고 조용히 묻었다.

2.4. 2010년

GOD
스타판 역대 최강의 독주[3]

역대 이렇게 완벽한 모습을 보여준 선수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던 해. 같은 팀원 우정호, 김대엽의 각성으로 프로리그에 대한 압박 감소하여 개인리그에 신경쓸 수 있는 시간이 증가하였고, 변길섭의 공백을 별볼일 없던 현역 시절과는 별개로 예상 외로 코칭 능력에서만큼은 우수한 능력을 가진 김윤환 테란 코치가 붙어 이영호는 완벽한 각성을 이루게 되었다. 그로 인한 2010년의 개인리그 결과는 스타리그 2회 우승, 1회 준우승, MSL 2회 우승, 1회 준우승, WCG 그랜드 파이널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할 성적을 거두었다. 1년에 개인리그 우승 4회, 준우승 2회라는 기록은 MSL이 폐지되었기에 다시는 나오지 못할 기록이라 여겨지고 있다.

거기다 이영호는 이 해에 무려 상금으로만 2억 2천만원ㅋㄲㅈㅁ을 수령했는데, 이는 역대 스타1 개인대회 한 해 최다 상금 수령액이라고 한다.

2.5. 2011년

2011년은 이영호의 팬이라면 약간 아쉬운 맘이 생기는 한해였다. 2010년에 보여준 신급의 경기력을 또다시 기대하였지만, 지난 해 연말에 시작한 박카스 스타리그 2010피디팝 MSL에서 급속한 광탈[4]은 팬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게다가 그 후에 열린 ABC마트 MSL 도중에 팔에 고통이 느껴진다는 말로 팬들에게 걱정을 하게 하였지만, 다행히 완벽한 경기력으로 결승전에서 김명운을 잡고 우승하면서 최후의 금뱃지 획득자가 되었다. 스타리그 우승 3회, MSL 우승 3회로 양대 개인리그 도합 6회 우승을 거둔 두 번째 커리어를 가진 선수가 되었다.[5] 게다가 World Cyber Games 역시 2011년부터는 스타크래프트를 종목에서 제거하였기 때문에 이영호는 역대 최초이자 최후의 골든 그랜드 슬램의 영광을 차지하였다.[6] 그리고 이어 열린 진에어 스타리그 2011에서는 무서운 경기력을 보여주며 3전 전승으로 가볍게 8강에 갔지만, 가을의 전설의 힘을 받은 각성한 허영무에게 명경기 후 패하며 결국 골든그랜드 슬램을 완성한 것으로 위안삼으며 2011년을 마감하게 되었다.

2.6. 2012년

스타크래프트 1으로 펼쳐지는 마지막 시즌이자 스타크래프트 2 병행 시즌. 브루드 워로 진행되는 마지막 스타리그에서 이신형, 김성대와 재경기까지 가는 끝에 겨우 8강에 올랐으며, 8강에서는 태풍을 잠재우고 4강에서 정명훈을 만났지만, 정명훈의 완벽한 경기력에 4강에서 무너지며 마지막 브루드워 리그를 마감했다. 그 이후, 스타크래프트 2에서도 빠르게 적응하기 시작했지만, 처음으로 GSL에 나선 2012 HOT6 GSL Season 4부터 코드 A에서 계속 발목을 잡히고, 옥션 스타리그 2012에서는 8강에 올라갔으나 역성현에게 리버스 스윕을 당하며 첫 우승에 실패하고 말았다.

2.7. 2013년

이후에 2013 HOT6 GSL Season 1부터 WCS 시즌이 끝나는 내내 하부리그는 좋은 경기력으로 계속 뚫었지만, 문제는 16강을 뚫지 못한다는 것. 16강에서 죽음의 조에 계속 걸리며 발목을 계속 잡히다 탈락하는 것이 패턴화되었다. 심지어는 해외 리그에서도 MLG를 제외하면 전부 16강 탈락했다. 그래서 스2 이영호에 가장 가까운 게이머는 스1 염보성이라는 말 또한 이때 생기기 시작했다.

2.8. 2014년

관뚜껑에 못질까지 할 뻔했다가 뒤늦게 가능성을 보여 준 갓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 2014년 GSL Season1, 2 모두 코드 A에서 탈락한 후 피시방으로 가면서 서서히 경기력이 저하되는 것이 아닌가, 이제는 틀린 것이 아닌가라는 여론이 다수였다. 하지만, 원이삭과의 프로리그 결승전 매치에서 승리한 것, IEM 예선에서 유력 선수들을 여럿 격파한 것을 기점으로 경기력이 돌아오기 시작하더니, IEM 토론토에서 첫 스타크래프트 2 개인리그 우승을 거두면서 부활하는가 했으나...또다시 GSL 시즌 3 16강에서 탈락하면서 불안을 주기 시작했다... 그것도 IEM에서와는 다르게 경기력 자체가 좋지 않았고, 특히 컨트롤보다는 최적화 등 빌드의 우위가 주 무기였는데 박수호전에서 빌드를 저격당하는 등 패턴이 공략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가장 불안한 점이다. 거기에 손목 통증이 다시 심해졌다는 이야기가 돌아 팬들을 심란하게 만들었으나, 케스파컵에서 손석희서성민을 연달아 격파하며 4강 진출에 성공하면서 혹시...?하는 기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김준호에게 셧아웃당하면서 블리즈컨 진출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또한 홈스토리컵에서도 막판에 아쉽게 준우승에 머무르거나 핫식스컵에선 예상 외의 복병인 조병세에게 발목 잡혀 탈락하는 등 의외로 찝찝한 연말을 보낼 듯. 하지만 어찌 되었든 원이삭과의 프로리그 결승전 매치의 승리를 기점으로 개인리그에서도 하반기부터 서서히 살아나고 있는 모습을 보인 점은 2015년을 기대할 수 있는 원인으로 평가받으며, 이후의 선전을 기대해 볼 수 있는 긍정적인 요소라 볼 수 있다.

2.9. 2015년

2014년의 가능성을 보였다면, 2015년에는 이것을 성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또 다시 특유의 최종전 탈락 본능으로(...)염라인에 머물고 말았다. 심지어 초창기에는 프로리그의 부진과 맞물려 예선 탈락마저 걱정해야 했을 정도. 하지만, 시즌 2부터 다시 코드 S에 입성하는 등 염라인 탈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특히 2015 HOT6 GSL Season 3에서는 32강에서 0:2로 패배한 이신형에게 또 다시 1:2로 패배하였지만 패자전에서 인간상성인 원이삭을 넘으며 군심에서 마지막으로 염라인 탈출을 노렸다. 그러나 고병재와의 최종전 1:1 상황에서 기적의 임즈모드(...)로 말아 먹으며 염라인의 클래스는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며 사실상 2015 시즌을 마감하고 말았다.

WCS 포인트 시스템 때문에 경쟁력이 센 대회라도[7] 급에 따라 그 선수의 커리어 부분이 얼마나 높게 평가되나 구분되는데 1급 북미나 유럽 리그보다 훨씬 쟁쟁한 경쟁자들이 포진된 KeSPA Cup같은 2급 리그에서 4강에 들며 실력 자체는 그래도 중간 이상은 간다고 증명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과거의 영광과 예전에 보여준 커리어에 직접 비교당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팬들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결과와 실력으로 희망고문을 오랜 시간동안 시키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고 2급 리그의 4강 진출자에게 부여되는 WCS포인트가 생각보다 높지 않기 때문에 공식적인 랭킹에서 많이 뒤떨어지고 있다. 예를 들자면 2015 HOT6 GSL Season 3에서 이영호가 16강에서 3위로 탈락하여 WCS포인트 400점을 받았는데, 2015 KeSPA Cup Season 2에서 4강까지 진출한 이영호가 받은 WCS포인트는 375점이다. 덧붙여서 이영호가 우승했던 IEM Season Ⅸ - Toronto에서 이영호가 받은 WCS포인트는 750점으로, 1급 4강급(900점)에도 못 미친다. 그렇기에 다른 해외 1급 리그보다 네임밸류는 떨어지더라도 더 경쟁력이 센 국내 2급 리그나 한국 선수들이 많이 참여하는 국외 2급 리그에서 아무리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한들 국내 1급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 하면 실속을 거의 못 챙긴다고 보면 된다.

지속되는 염라인 탈출의 실패로 인하여 마지막 확장팩인 공허의 유산에서는 확실한 각오와 다짐이 필요해 보인다. 현재 초기 공허의 유산의 종족 밸런스는 테란이 제일 열세인 관계로 과연 어떻게 극복할지가 관건이다. 또한 2015년 11월 중국에서 열린 GPL 대회에서 인지도가 낮은 중국인 선수 상대로 2:0로 패, 패자전에서 오랜만에 공식적 리쌍록이 펼쳐졌고 며칠 전에 있었던 비공식 리쌍록에서는 이제동을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인 것과 달리 2:0으로 패하였기 때문에 여전히 군단의 심장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몇 년째 희망고문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긍정적인 부분을 보자면 아직 공허의 유산이 출시한지 얼마되지 않았고 계속해서 연구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테란이 열세인건 사실이나 이것을 잘 극복하면 오히려 다시 정상에 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절호의 기회도 될 수 있기 때문에 정규 개인리그와 프로리그가 시작하기 전에 어떤 모습으로 준비하고 임할지가 관건이다.

결국 이영호에게는 더 이상 나이도 예전처럼 어린 편도 아니고 마지막 확장팩이다보니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에 군대와 은퇴를 하기 전에 예전의 영광처럼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되찾고 단 한 번이라도 GSL이나 SSL을 우승하고 정상에 선 모습을 보여줄지가 앞으로 지켜봐야할 행보다. 참고로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우승자 출신 중 아직까지도 GSL이나 SSL을 우승한 선수가 단 한 명도 없고 현재 스타크래프트 2 현역 선수 중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우승자 출신이 대거 은퇴했기 때문에 과연 이영호가 이 대망의 기록을 세울지가 관건이다.
하지만, 2015년 12월 1일 자로 kt와 계약 해지와 동시에 은퇴하고 말았다.


[1] 제작자는 역시 엄옹.[2] 이영호의 첫 우승 시절 변길섭의 영향이 어마어마했었다는것을 생각해보면 큰 타격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3] 임요환, 이윤열, 최연성, 마재윤, 김택용, 이제동 등도 독주를 보여준 시절은 있지만 이 시절 이영호에 비하면 1수 접어야 한다는게 어느 모로 보나 팩트이다.[4] 박카스 스타리그 2010에서는 1승 2패로 16강 광탈, 피디팝 MSL에서는 2연패로 32강 광탈.[5] 첫 번째는 이윤열.[6] 골든 마우스, 뱃지, 메달.[7] 1급 대회가 2급 대회보다 경쟁상 더 약할때도 있기 마련이다, 이것은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때와는 달리 스타크래프트 2부터 직접 블리자드가 관여하고 스테일이 글로벌로 커졌기 때문에 지역상의 차이로 인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