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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2 00:14:25

이광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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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대 한국과학기술원 총장
이광형
李光炯 | Lee Kwang-hyung
파일:카이스트 이광형.png
<colbgcolor=#1487C8> 출생 1954년 11월 15일 ([age(1954-11-15)]세)
전라북도 정읍시
현직 한국과학기술원 총장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민간위원장
재임기간 제17대 한국과학기술원 총장
2021년 2월 23일 ~ 현직
제7기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장 (장관급)
2024년 8월 1일 ~ 현직
상훈 국민훈장 동백장 (2016)
녹조근정훈장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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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487C8><colcolor=#fff> 학력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산업공학 / 학사)
한국과학기술원 대학원 (산업공학 / 석사)
프랑스국립응용과학원 (전산학 / 박사)
병역 전문연구요원 복무만료
(1978년 4월 11일 ~ 1987년 9월 10일)
경력 한국과학기술원 공과대학 전산학과 교수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스탠퍼드 대학교 초빙교수
도쿄대학 방문교수
한국과학기술원 미래산업 석좌교수
한국과학기술원 정보보호교육연구센터장
동아일보 객원논설위원
한국과학기술원 국제협력처장
한국과학기술원 공과대학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및뇌공학과장
한국생물정보학회 회장
한국과학기술원 교무처장
한국과학기술원 과학영재교육원장
한국과학기술원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미래창조과학부 미래준비위원장 (박근혜 정부)
특허법원 사법행정자문위원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민간위원 (박근혜 정부)
국방부 국방개혁자문위원 (문재인 정부)
한국과학기술원 교학부총장
대통령소속 국가교육회의 위원 (문재인 정부)
제17대 한국과학기술원 총장
교육부 국가교육과정 정책자문위원 (문재인 정부)
특허청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 기본계획 수립 추진단장
경찰청 미래비전위원장
제5기 기획재정부 중장기전략위원장 (문재인 정부)
대통령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윤석열 정부)
교육부 교육정책자문위원장 (윤석열 정부)
대법원 대법관후보추천위원장
제7기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민간위원장 (윤석열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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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활동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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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과학기술원 제17대 총장이자, 전산학과 및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1985년 KAIST 전산학과 교수로 임용.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와 일본 도쿄대학에서 초빙교수를 지냈다. KAIST에서는 국제협력처장, 교무처장, 국제협력처장, 과학영재교육원장, 교학부총장을 거쳐 2021년 총장에 선임됐다.#

2. 생애

어릴 때 가난한 시골에 살았었다.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가 "나의 희망"이라는 주제로 글을 지어봐라 했는데 쓸 말이 없어서 고민하다가 문뜩 자신이 읽었던 에디슨 전기가 떠 올라 "나는 과학자가 되겠습니다."라고 적으니 아버지가 무척 좋아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 종이를 벽장에 넣어두고 손님이 올 때마다 그 종이를 보여주며 자랑하셨다고 한다.

학교 다닐 때 왕복 3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갈 때 1시간, 올 땐 2시간 걸렸는데 이렇게 차이나는 이유가 하굣길엔 놀면서 와서 그렇다고 한다.

수험생 시절, 수능을 말아먹고 대학도 다 떨어져서 재수를 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기출 문제만 풀고 새로운 신 유형에 대해선 대비하지 않았다고 한다. [1] 대학에 떨어진 이후 같은 처지에 처한 친구들과 함께 멀리 여행을 가서 놀았다는데, 이때 아버지가 오히려 좋아하셨다고 한다.

그는 약 50년 간 혼자 아웃사이더로 살아왔다고 한다. 이유는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고 특이한 행동만 해서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도 친구 없이 혼자 다녔다고 한다. 이 때문에 나중 가서는 지혜를 얻어 혼자 생각할 때만 특이한 발상을 하고 겉으로는 일반인처럼 다녔다고 한다. 그가 교수가 되고 업적을 하나씩 쌓자 그제서야 인정을 받아 요즘엔 특이한 발상을 밖으로 드러낸다고 한다. 이 때문에 많이 외로워서 그간 힘들었다고 한다. [2]

3. 활동

전산학부 교수 시절, 카이스트 연못이 너무 정적이어서 무언갈 키우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시장에서 거위를 사와 연못에 키웠다고 한다. 그런데 윗사람한테 이야기 하지 않고 키웠다고 한다. 이 때문에 나중에 경고를 먹고 개체수 조절에 신경 써 달라는 말을 듣게 된다.

총장 취임식때 그는 학생들에게 제발 공부를 하지 말고[3] 많이 놀면서 지내라고 하였다. 이유는 학생들의 창의성을 기르기 위해서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려면 공부만 하지말고 많이 놀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광형 총장은 공부 잘한다고 세상을 이끄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총장이 되고 나서 카이스트를 세계 일류대학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학교에 매일 출근하지 않고 가끔 밖에서 사람을 만나 기부금을 모으고 다닌다고 한다. 취임 후 1일 1억의 기부금을 유치하겠다는 그의 목표는 취임 1년 후 무려 896억을 유치하면서 기존 목표의 2.5배의 기부금을 받게 된다.

카이스트에선 원래 휴학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광형 총장은 이에 의문을 제기 하며 교수들을 불러서 휴학에 왜 제한을 둬야 하는 지 물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 답하지 못해서 휴학을 무제한으로 언제든지 할 수 있게 바꿨다고 한다. [4]

2022년부터 카이스트-뉴욕대 공동 캠퍼스 설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그는 한국의 저출산 위기에 카이스트가 살아남으려면 글로벌화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4. 여담



[1] 그래서 이 이야기를 미래에 대한 투자,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같이 이야기 하는 경우도 있다.[2]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시울을 붉히며 이야기한다. 그만큼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 짐작된다.[3] 심지어는 박사 과정을 중퇴하라고도 했다.[4] 10년, 50년 심지어 아예 안 돌아와도 상관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