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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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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4대 한국과학기술원 총장
서남표
徐南杓 | Suh Nam-Pyo
파일:seonampyo.jpg
출생 1936년 4월 22일 ([age(1936-04-22)]세)
경상북도 경주시
본관 이천 서씨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1948 ~ 1963)

[[미국|]][[틀:국기|]][[틀:국기|]] (1963 ~ )[1]
재임기간 제13·14대 한국과학기술원 총장
2006년 7월 14일 ~ 2013년 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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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487C8><colcolor=#fff> 가족 아버지 서두수[2]어머니 ∙ 2남 4녀 중 셋째
배우자 서영자 ∙ 장녀 서미경 ∙ 차녀 서혜경
3녀 서진경 ∙ 4녀 서유경
학력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전학)[3]
Buckingham Browne & Nichols (전학)[4]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기계공학 / 학사)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기계공학 / 석사)
카네기 멜런 대학교 대학원 (기계공학 / 박사)
약력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조교수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5]
Surtech Corporation of New Hampshire 소장
Intelitec Corp 소장
Axiomatics Corp 이사
Mixalloy Corp 이사
미국과학재단(NSF) 공학담당 부총재
한국공학교육인증원 제3대 원장
한국과학기술원 제13대 총장
ASME(미국 기계기술자 협회) 블랙올 공동수상
1995년 KBS 해외동포상
1997년 호암상 공학부문
2007년 자랑스러운 서울사대부고인상
2008년 PONY鄭(포니정) 혁신상
2011년 덴마크 공과대학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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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평가
3.1. 부정적 평가
4.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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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공학자이자 교육자이며, KAIST의 13·14대 총장직을 지냈다.

2. 생애

경상북도 경주시에서 2남 4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서두수(徐斗銖, ? ~ 1994)는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였고, 서울사대부고 재학 도중이던 1954년, 부친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다.

이후 1959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때 공리적설계(Axiomatic Design)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관련 책을 저술하였다. 이후 1964년 카네기 멜런 대학교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5년부터 1969년까지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교에서 조교수로 근무하였고, 1975년 모교인 MIT 기계공학과에서 부교수로 근무하다가 정교수로 승진해 그곳에서 은퇴하였다.

2006년 7월 14일부터 2013년 2월까지 KAIST 13대 총장으로 재직하였다. 카이스트가 이수영 회장에게서 766억원을 기부를 받았을 때 이 서남표의 연설 영향이 컸다.[6]

3. 평가

카이스트 총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영어 강의 전면 도입, 하위권 학생 수업료 부과 등 수많은 개혁 정책을 실시했으나, 이를 권위주의적으로 시행하여 재학생과 교직원을 심하게 압박하였고, 이로 인해 많은 학생들과 교수가 자살#하는 일이 터지는 등 여러 사건사고들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또한 영어를 잘 못하는 교수들과 전공과 상관없는 교양과목, 심지어 한국사나 일본어 교양 강의를 하는 교수들에게까지 영어강의를 강제한 탓에 부작용을 겪기도 했다.

3.1. 부정적 평가

2011년 발생한 KAIST 연쇄 자살 사건에 대해, 서남표 당시 총장의 경쟁일변도 학교 개혁정책이 그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당시 사건에 대해 다룬 동아일보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항으로, 2006년 3월 발전구상안 중 논란이 컸던 부분은 평점 2.0 이하인 학생에게 장학금 수여 대신 수업료를 받는 소위 '징벌적 수업료'였다. 학점이 3.0 이하인 학생들에게 0.01점 당 6만원씩 2.0 미만일경우 수업료를 최대 600만원(!!!)까지 부과한다는 정신 나간 사립대 수준의 정책을 내밀어 여론의 비난을 받기 시작했다.

카이스트는 이전까지 수업료가 전액 무료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제도는 과태료에 가깝게 느껴진다는 게 학생들과 일선 교수들의 입장이었다. 카이스트는 상대 평가로 학점을 부여하기 때문에, 학생의 능력과 관계없이 하위 30% 정도의 학생들은 반드시 수업료를 내야 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 징벌적 수업료 논란은 2011년 학생 4명이 이로 인해, 연달아 자살하면서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고, 학생, 교수들의 사퇴 요구에 소송으로 맞섰지만 결국 2013년 2월 총장직에서 사퇴했다. #

징벌적 수업료 관련하여 자신의 정책을 비판하는 재학생에게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김영진 의원은 미네르바 사건에 빗대어서 보도자료를 내기도 하였다. 또한 소송과 더불어서 여론 통제 의혹도 있었는데, 한국어 위키백과에 등재된 서남표 문서를 당시 비서실 직원이 여러 차례 반달하기도 했으며, 현재도 해당 로그를 열람할 수 있다. 즉 자신의 의견과 다른 견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추태를 여러 차례 보였다.

서남표의 구성원 인권 탄압은 이뿐만이 아니다. 카이스트는 'Welcome-KAIST'라는 이름의 자체 와이파이망을 사용하는데, 서남표 총장 시절부터 SteamcommunityDiscord 서버 등 여러 사이트의 접속이 막혔고, 이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는 와이파이뿐만 아니라 캠퍼스 내부의 모든 이더넷망에 대해서도 동일하다. 이는 명백한 인터넷 검열 행위로 기본권 탄압으로밖에 볼 수 없다.

연차초과자에 대한 박한 대우가 시작된 것도 서남표 시절이다. 이전과는 달리 연차초과자의 필수과목 이외 재수강이 일절 금지되었고, 본원 내부의 생활관도 배정받을 수 없도록 했다. 지금은 연차초과자도 재수강을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생활관 관련 불이익은 우선순위 최하위 강등이라는 불이익의 형태로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다른 개혁은 카이스트 교수들의 영어 수업 실시와 정교수 직급(tenure) 승진 심사제도 강화 시도였다. 교수진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쳤음에도 시행되었고 서남표 총장 퇴진 이후에도 유지되어, 궁극적으로는 카이스트의 국제 경쟁력이 향상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20138 그러나 동시에 졸업 이전 영어 수업이 필수로 규정되며 수준에 미달하는 강의로 시간을 빼앗기는 학생들이 불만을 성토하게 되었고, 태뉴어 심사의 엄격화는 교수마저 자살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타 대학도 총장들이 욕을 먹는 경우는 늘상 있지만 교외에 알려질 정도로 심각했던 경우는 드물었고, 드디어 임기 말에는 총장 조롱이 교내 밈이 될 지경이었다. 학생들과의 야간 간담회를 갑자기 일방적으로 끝내며 "Anyway, good night"이라고 외친 사례는 2012년의 "Anyway good night concert"로 패러디 되었다. # 카포전에서 카이스트가 홈팀이던 2011년에 총장 입장 직전 "카이스트의 약점은... 그리고 서남표"(!)라는 높은 수위의 포스텍 디스전 영상이 띄워지기도 했다.[7]

총장직에서 퇴임한 이후에도 그는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자서전 <한국 교육에 남기는 마지막 충언>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 재학생과 교직원들의 부족한 교육열을 힐책하기도 했다. 인터뷰 당시 그는 "MIT나 하버드 대학은 교수들이 서로 존경하고 성과를 칭찬해주는 문화가 있는데 서로 음해하는 교수들을 보며 충격 받았다"며 교수들을 비난했고, 징벌적 수업료 관련 논란에 대해서는 "수업료 등 1년에 약 7만 달러를 내야 하는 MIT 학생들은 한 학기라도 먼저 졸업하기 위해 애를 쓴다", "KAIST 학생들보다 공부량도 많고 경제적 부담도 큰 MIT 학생들과 비교하면, 압박 때문에 학생들이 자살했다는 주장은 억측이다. 나를 음해한 사람들은 언젠가 스스로 부끄러워할 것"이라며 파렴치한 억지 주장을 펼쳤다.

4. 가족 관계

부인 서영자 여사와의 사이에서 장녀 서미경, 차녀 서혜경, 3녀 서진경, 4녀 서유경으로 딸만 넷을 두었다.


[1] 1963년 5월 1일에 미국으로 귀화하여 시민이 되었다.[2] 생전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였다.[3] 3학년 재학 중 미국으로 전학갔다.[4]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시에 위치한 12학년제 사립학교이다.[5] 은퇴까지 근무해 Ralph E & Eloise F Cross 명예교수 직위로 남아있다.[6] 직접 이수영 회장이 여럿 인터뷰와 방송에 출연해서 한 말이다. 이 탓에 이수영 회장은 동창들에게 모교를 냅두고 서운하다, 동창회에서 빼버린다 등등 여럿 일을 겪는다.[7] 양측 응원단이 가벼운 디스전 영상을 상영하는 식전 행사인 것인데, 대학 총장이 욕을 먹는데도 욕을 먹을 만 한지라(...) 논란이나 야유보다는 씁쓸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하필이면 카이스트는 07, 08, 10에 이어 11에서도 연패했으며, 서남표의 임기가 끝나가는 2012년에야 어웨이 경기에서 이기며 이후 연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