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038><colcolor=#fff> 영국 제7대 제국총참모장 윌리엄 로버트슨 William Robertson GCB, GCMG, GCVO, DSO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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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초대 준남작 윌리엄 로버트 로버트슨 경 Sir William Robert Robertson, 1st Baronet | |
출생 | 1860년 1월 29일 | |
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 링컨셔주 웰번 | ||
사망 | 1933년 2월 12일 (향년 73세) | |
영국 런던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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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무 | 영국 육군 (1877~1920) | |
최종 계급 | 원수 | |
참전 | 치트랄 원정 보어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 |
재임기간 | 제7대 제국총참모장 | |
1915년 12월 23일 ~ 1918년 2월 19일 |
1. 개요
영국의 군인.2. 생애
링컨셔주 웰번에서 정원사이자 우체국장의 아들로 태어나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가난한 집안을 부양하기 위하여 1875년 육군 사병으로 입대해 1877년 제16근위창기병연대에 배치되어 훌륭한 활약을 보이며 부사관까지 진급했다. 1888년 부족한 급료를 올리기 위해 장교에 지원했고 제3근위용기병연대 소위로 임관했다. 장교로 임관하고 나서도 품위 유지에 필요한 돈이 부족했던 편이였다. 인도에 파병되며 봉급이 올라갔으며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했다. 부대 내 펜싱, 검술 대회에 입상하고 우르두어, 페르시아어, 펀자브어, 푸슈투어, 구루칼리어를 익혔다. 1891년 중위로 진급했으나 육군본부 정보부에서 복무했다. 1893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1894년 치트랄 원정에 정보장교로 참가해 공을 세우며 공로훈장을 받았다. 1898년 참모대학을 졸업해 인도군 참모를 거쳐 전쟁부 정보참모가 되었다. 보어 전쟁이 발발하고 프레더릭 로버츠의 휘하 참모진으로 합류해 크고 작은 전투를 치러 1900년 소령으로 진급했다. 이후 전쟁부로 복귀해 중령으로 진급했으며 병참 담당 참모가 되었다. 1903년 대령으로 진급해 당시 어린 축에 속했다. 작전부장 제임스 그리어슨 밑에서 일하며 제1차 모로코 위기 때 국제정세에 대해 계획을 세웠다.
잠시 금전적인 문제로 인해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군사교범을 번역하는 일을 했고 올더숏사령부 군수차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준장으로 진급했다. 본인은 여단장을 하고 싶었으나 참모진으로 계속 복무했다. 1909년 헨리 윌슨의 후임으로 참모대학교장에 재직했고 1910년 소장으로 진급해 데이비드 헨더슨의 후임으로 전쟁부 훈련부장을 맡았다.
1차 대전이 발발하기 이전 아일랜드계 군인들의 반역시도인 커라흐 사태가 발발했고 휴버트 고프, 존 고프 형제가 연루되자 변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영국 원정군 군수부장으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몽스 전투에서 대패했다. 9월 13일 중장으로 진급하고 헨리 휴즈 윌슨과 함께 총사령관 존 프렌치, 참모장 아치볼드 머리를 비판했다.
1915년 머리의 후임으로 제국총참모장이 되어 더글러스 헤이그와 함께 공세를 주장했다. 하지만 솜 전투, 파스샹달 전투로 대표되는 전투에서 성과에 비해 병력 손실이 상당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도 그를 불신하기 시작했으며 로베르 니벨에게 영국 원정군을 맡기겠다는 협박까지 했다. 1917년 제3차 이프르 전투때도 공세를 강조해 피해를 입게되었다.
결국 1918년 2월 총참모장직을 사임하고 동부사령관으로 발령받아 후방을 담당하다가 종전을 맞이했다. 전후 주라인사령관이 되었고[1] 1920년 원수로 진급하고[2] 1922년 제대했다. 1933년 사망했다.
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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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원수 Field Marshal/Admiral of the Fleet | |
육군 원수 | 허버트 키치너† | 존 프렌치 | 더글러스 헤이그 | 프레더릭 로버츠 | |
해군 원수 | 존 피셔 | |
대장 General/Admiral | ||
육군 대장 | 허버트 플러머 | 에드먼드 앨런비 | 줄리언 빙 | 헨리 롤린슨 | 휴버트 고프 | 이언 해밀턴 | 찰스 먼로 | 윌리엄 버드우드 | 윌리엄 로버트슨 | 헨리 휴즈 윌슨 | 휴 트렌차드 | |
해군 대장 | 바텐베르크의 루트비히 공자 | 존 젤리코 | 데이비드 비티 | |
중장 Lieutenant-General/Vice-Admiral | ||
육군 중장 | 새뮤얼 로맥스† | 로버트 브로드우드† | 아치볼드 머리 | |
해군 중장 | 존 루스 | |
소장 Major-General/Rear-Admiral | ||
육군 소장 | 휴버트 해밀턴† | 톰슨 캐퍼† | 조지 세시저† | 프레더릭 윙† | 루이스 볼스 | |
해군 소장 | 로저 키스 | |
준장 Brigadier/Commodore | ||
육군 준장 | 존 고프† | 레지널드 다이어전 | 버나드 프레이버그전 | 시릴 뉴월전 | |
해군 준장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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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휘하에 버나드 로 몽고메리도 있었다.[2] 역대 원수 중 유일한 사병 출신 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