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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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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우
吳承雨 | Oh Seung-woo
파일:화가 오승우.jpg
<colbgcolor=#686da4> 본관 동복 오씨
출생 1930년 6월 19일
전라남도 동복군
(現 전라남도 화순군)
사망 2023년 4월 3일 (향년 92세)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직업 화가
학력 조선대학교 (미술과 / 학사)
약력 광주여자고등학교 미술교사
서울 배화여고 미술교사
경희대, 서라벌예술대, 홍익대, 중앙대 미술과 출강
목우회 회장, 고문
경기미술대전 심사위원장
국전 심사위원
미술대전 운영위원
한국미술협회 고문
무등미술대전 심사위원장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목우회 공모 미술대전 심사위원장
서울시 미술장식심의의원
국립현대미술관 운영 자문위원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장
전라남도전 심사위원장
대한민국 예술원 분과 위원장
단원미술대전 심사위원장
환경운동연합중앙회 지도위원
한중문화협회 상임 고문

1. 개요2. 생애3. 사망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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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화가.

2. 생애

1930년 전남 화순에서 화가 오지호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1957년 조선대학교를 졸업한 후 4년 연속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특선하며 화단에 진출했다. 선친의 뒤를 이은 서정적 자연주의 풍경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사실적 표현보다 인상주의 화풍을 바탕으로 대상에 대한 주관적이고 정서적인 해석을 담은 자유로운 화풍을 전개하였다. 그는 1960년대, 환상적인 분위기를 담은 그림을 그렸다.

그러던 1974년 유럽에 가서 1년간을 머물게 되었고 유럽일대를 여행하면서 그들이 만들어 놓은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성과 성당들, 궁전과 개선문 등의 건축물들, 공원이나 네거리에 늠름하게 서있는 조상들, 미술관에 걸려있는 수많은 태서 명화들과 현대작품들, 인간 능력으로는 더 이상 해낼 수 없는 신필의 경지에 이른 이들의 예술품을 본 후로는 오랫동안 위축되고 기가 죽어 있었다. 그림을 시작한 자신이 초라하고 후회스러웠다고 한다.

그렇게 다시 현실 세계 속의 대상에 주목했던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에는 전국의 명산 100곳을 오르내리며 연작을 완성하였다. 이때 한국 100산의 대작위로 제작은 어둡고 굵은 선과 터치로 산의 내면성을 추구하여 산이 가지는 웅장함을 심도있게 다룬 역작이라 평가를 받는다. 1990년대에는 1990년 우연한 기회에 중국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금성을 보는 순간 아무런 설명을 듣지 않고도 찬란한 문화라는 것을 직감하였다. 그 규모나 건축술, 예술성이 서양의 것과 양식이 다를 뿐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니 서양 여행 이후 움츠렸던 가슴이 펴지고 자부심도 생겼다.

이 유적들을 비록 우리나라 것이 아니지만 동양인도 할 수 있다는 확신과 가능성을 보여준 거대한 증거물이으로 여긴 것이다. 그는 이 장엄한 유적물을 모두 화폭에 담고 싶은 심경이 불꽃처럼 일어났다. 이후 동양 각국을 여행하며 그곳의 전통과 정신이 담신 고건축물들을 강렬하고 분방한 색채와 필치로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덕분에 동방의 고건물 시리즈는 적, 청, 황, 보라 원색적인 색채로 호방하고 광란적인 터치로 제왕들의 절대 권력과 영화와 번영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는 평을 받게 되었다.

이후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또 한 번의 변신을 시도하며 부드러운 파스텔 톤으로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낸 <십장생도>를 그려냈다. 이후 2011년 2월 무안군에 175점의 작품을 기증하여 그의의 이름을 딴 무안군오승우미술관을 개관했다. 그리고 2016년에는 광주시립미술관의 초대전에 응하는 등 활동을 이어갔다. 다음해인 2017년에는 생의 마지막 기증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60여 년 화업을 담은 작품 27점을 모교인 조선대학교에 기증했다.

3. 사망

2023년 4월 3일 오후 5시 16분께 노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92세.

4. 여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