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내가 너희에게 뱀이나 전갈을 짓밟는 능력과 원수의 모든 힘을 꺾는 권세를 주었으니 이 세상에서 너희를 해칠 자는 하나도 없다."
- 루카 복음서 10 : 19
- 루카 복음서 10 : 19
"(모든 종류의 잔인한 적대적 행동들에서) ...그들의 신앙심은 가면일 뿐이다."
- 윌리엄 제임스(1902), 미국 심리학자
- 윌리엄 제임스(1902), 미국 심리학자
영적전쟁(靈的戰爭, Christian warfare / Spiritual war)은 종교, 정확히는 기독교에서 신앙 생활을 방해하는 전반적인 요인으로부터 대항하는 행위의 총칭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유혹을 뿌리치고자 기도하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어둠의 세력 또는 마귀, 자기 자신과의 전쟁이라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나쁜 짓을 안 저지르거나,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의미한다. 신앙을 방해하는 욕망에 대한 절제, 나아가 타종교에 대한 부정을 통한 '신앙적 자아' 확립의 과정을 일종의 '전쟁'이자 '투쟁'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는 이슬람의 지하드와도 비슷한 개념이다.
이들의 행위에서 교리적 근거가 되는 것은 예리코의 전투라 불리는 일화로, 기도로서 이교도의 성을 무너트렸다는 이야기이다. 요컨대 예리코 성이 기도 앞에 박살나듯 "현세의 악마들도 나의 기도와 헌신 앞에 박살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근거가 되는 이 일화부터가 얼마나 끔찍한 이야기인지, 또 근거로 삼는 것 자체부터가 왜 문제인지는 예리코의 전투 문서를 참조하라.
영적전쟁은 은사주의 성향 개신교에만 있는 개념일 것 같지만, 온건파 개신교(성공회 포함)와 가톨릭, 정교회에도 있는 개념이다.[1] 심지어 이슬람에도 지하드라는 비슷한 개념이 있다. 그러나 근본주의 개신교와 달리, 온건(진보파 포함) 개신교와 가톨릭, 정교회에서의 영적전쟁은 주로 추상적인 차원이거나 악마 등 영적인 차원, 내면적인 차원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가톨릭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어떤 가톨릭 신자가 영적으로 위기에 처해있다면 그저 묵주기도를 자주 드리는 식으로 악과 싸운다는 의미다.
신사도 운동의 창시자이자 전 풀러 신학교 교수인 찰스 피터 와그너의 저서인 "영적 전투" 시리즈에서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 이후 신사도 운동의 대표자 중 하나인 신디 제이콥스 등을 통해 널리 퍼진 개념이다. 물론 이전에도 비슷한 개념은 있었으나, 신사도 운동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체계화되어 유명해진 것이다.
그래서 신사도 운동에서는 이러한 영적전쟁의 개념이 많이 쓰이고 있다. 한국에는 신사도 운동에서 영향을 받은 인터콥의 최바울 목사에 의해 널리 소개되었으며, 땅밟기 역시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행동이다.
비기독교도들을 전도하는 것도 영적전쟁으로 알려져 있는듯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기독교에서 전도란 비기독교도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을 돕는 것이지, 영적전쟁은 아니다. 만일 전도가 영적전쟁이면 누구랑 영으로 전쟁을 하는지가 문제다.
인터넷의 반기독교 사이에서는 위의 의미를 비아냥거리는 맥락으로도 쓰인다. 비꼬는 용도로 영적전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경우,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행위, 인간에 대한 존중이라거나 자유와 같은 기초적 윤리마저 저버린, 아집으로 똘똘 뭉친 종교 행위를 조롱하는 맥락으로 사용한다. 즉 나무위키에서 주로 서술하고 있는 의미 역시도 이런 의미의 영적전쟁을 일컫으며, 원래 의미의 영적전쟁의 취지 자체를 폄하하고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2]
2. 문제점
2.1. 무조건적 자기 정당화
마태복음 12장 30절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적과 나를 구분하는 이분법이 가장 큰 특징이다. 개신교인이 자주 일으킨다.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 지나친 고성방가와 집착적인 전도 행위를 누군가 저지하려하면 그가 마귀(사탄)의 손에 이끌려 저지하려고 든다고 매도함.
- 밤 늦은 시간 찬송가를 크게 틀어놓고 기도를 한다든지 찬송을 할때 소음피해로 신고가 들어오면, 신고한 사람은 마귀가 시켜서 신고했다고 한다.
- 아파트 단지에서 전도하다가 관리인이 쫓아내면, 마귀 편을 든다고 욕한다.
- 전도를 거부하는 사람은 마귀가 꽉 잡고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 타 종교를 믿는 행위를 마귀가 끼어 저주받을 짓을 한다고 매도한다.
- 자기 교파, 교단, 교회에 피해를 주는 사람은 마귀가 들었다고 한다.
- 교회 사업에 방해되는 사람은 마귀, 악마, 좌파, 간첩, 빨갱이.
- 타 종교[3]를 믿거나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은 마귀, 악마, 이단, 빨갱이.
- 자기네 종교를, 아니 자기네 교회나 목사를 비판하는 사람은 마귀, 악마, 빨갱이.
즉, 자신의 신앙에 반대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마귀, 악마, 빨갱이로 보고 적대한다.
난데없이 반공 메카시즘이 끼어든 이유를 설명하자면 우리나라의 경우 기독교, 특히 한국의 개신교는 한국기독교장로회와 성공회, 감리회 소속 몇몇 교회를 제외하면 대부분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고[4], 한국의 보수 개신교 자체가 이북 출신 월남민들과 연관이 깊어서 반공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공산권 국가에서 국가 무신론을 표방하고 있기도 하고, 개신교가 한국의 극우 정치세력과 이해관계가 얽혀서 종북몰이, 메카시즘이 엮이는 경우가 많다.
이 빨갱이 드립의 기원은 8.15 광복 직후부터 한국 전쟁 휴전 직전까지 월남한 서북지역 개신교인들로부터 시작한다. 당시 해방 이후 북한 정권에서 이것이 문제가 되어서 탄압받게 되었다. 해방 직후 소련군정,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의 민주개혁으로 이들이 월남하면서 공산주의자 치하에서 받았던 고난을 종교적 고난으로 투영하고, 확대, 재생산하게 된 것. 참고로 한국의 개신교 교단 중 가장 큰 규모인 장로회의 신학교들은 모두 그 뿌리를 평양 신학교에 두고 있다. 해방 이전에 평양이 한국의 기독교에서 얼마나 중요했냐면 한때 조선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렸을 정도였다. 그런 도시를 하루아침에 공산주의자에게 빼앗겨 버린 트라우마가 각인되었던 것이다.
영적전쟁이라는 것은 결국 기독교, 특히 한국의 근본주의 개신교 세력이 일으키는 온갖 사건사고의 동기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자기가 민폐 끼치는 모든 행각은 하나님의 뜻이고 옳은 일이며, 자기에게 반하는 모든 존재는 마귀, 악마, 빨갱이이므로 이들에게 당당히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 이렇게 되면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성찰하고 비판하고 의심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또한 이는 위에서 배척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 다를 게 없다.
영적 전쟁이라는 키워드는 또한 의식화를 이룩하는 데에도 깊게 관여한다. 영적 전쟁의 관점에 따라서 적과 아군을 분명하게 구분하게 되면, 집단 내부의 결속력과 교인들의 신앙심이 강화되는 효과가 있다. 정체성 측면에서 자기 자신을 영적전쟁을 치르는 하나님의 군세라고 성공적으로 내면화할 경우, 완전한 광신도(컬티스트)의 탄생을 목도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영적 전쟁의 아군과 적군을 명시한
특히나 위 문서에서 웃긴 점은 용산이 영어로 Mt.Dragon이라는 해석인데, 그러니까 용이 공중의 권세를 잡고 있는 곳이며, 따라서 용산은 악마의 산이라는 것. '어디어디에다 선교사들의 유해가 있으니 신성하다', '유행어가 만들어졌으므로 음란하다', '살인사건이 일어났으니 위험하다'는 등 아주 웃기는 소리를 하고 있다. 이 말대로라면 뭐만 해도 다 영 때문이라는 굉장한 논리가 된다. 게다가 더 웃기는 건, 이렇게 성도의 유해를 신성한 것으로 취급하는 사고방식은 그들이 거의 불구대천의 원수이자 경쟁자로 여기는 가톨릭의 전형적인 사고방식이라는 점이다.[7]
그 영적전쟁의 최정점이 바로 일부 교회 수련회인데 청소년, 대학생들까지 근본주의화 시키려는 대한민국 개신교의 썩음의 절정을 보여준다.[8]
영적전쟁을 선전하는 목회자는 현재 세상이 악에 지배당하고 있으며, 특히 과학적, 세속적 사고방식에 기초한 학문, 교육, 과학기술, 대중문화, 젠더관 등이 세상을 타락시키는 선봉이라며 매도하기를 즐긴다. 물론 종교쟁이들이 그런 식으로 세상 망한다고 떠들어싼지가 수십 년째이며, 그들의 말대로라면 지금쯤 사탄 숭배자들이 교회 때려부수고 다닐 때가 되었을 법 한데도 교회에서 기도하는 사람 계속 기도하고, 설교하는 목사는 계속 설교하며 헌금 걷고 잘 산다.
2.2. 개인의 책임 회피
크리스천들이 자신의 범죄를 미화하는 데에 곧잘 써먹는 단어이기도 하다. 요컨대 자신이 과거 겪었던, 심지어 자신이 저질렀던 일들이 모두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에 따른 영적 전쟁이었다는 신드립을 치는 것.실제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저지른 이한상 전 사장과 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을 저지른 불법 여행자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영적 전쟁'이라고 불러 미화해서 오지게 욕먹은 전례가 있다. 이러한 발언을 순수한 종교적 신앙 고백으로 볼 수 없는 것이, 이러한 케이스에서 활용되는 '영적 전쟁' 발언은 사건에 영적 예정론을 개입시킴으로서 결과적으로 자신의 책임은 없고, 하나님의 뜻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이는 본인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임과 동시에 잘못된 짓이다.
이한상 사장의 경우, 그 영적 전쟁의 와중에 왜 그토록 많은 사람이 희생되어야 했냐는 질문에 "순종."이라고 답했다 한다.
3. 관련 문서
[1] 베네딕토 16세도 퇴임 직전 교황청의 부패를 간접적으로 암시하면서 영적 싸움이라는 식으로 언급한 바 있다.[2] 이슬람권의 '지하드' 역시 원래의 의미와는 상당히 벗어나 과격화되어 부정적인 이미지로 자리잡은 지하드의 존재만이 알려져 있다.[3] 여기에는 같은 그리스도교인 가톨릭과 정교회도 포함되며, 심지어 WCC/NCCK 계열 진보-중도 성향의 개신교 교단들이 포함되기도 한다.[4] 같은 예장 계열 교단이라도 예장통합은 온건 보수, 예장합동/고신은 강경 보수 성향.[5] 현대 한국 개신교의 과도한 복음주의 성향 및 타 종교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 등은 문제이지만 이 비난은 다소 억울할 수 있는데, 신사 참배 등을 허용하고 반민족행위에 일부 동참한 것은 천주교나 불교 등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현재는 극우 성향이나 보수성 때문에 질타받는 예장고신의 경우 신자들이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옥고를 치르거나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다. 천주교는 1936년 5월 25일 ‘신사참배는 종교적 행사가 아니고 애국적 행사이므로 그 참배를 허용한다’는 신사참배에 대한 교황청의 훈령이 내려왔다. 이는 당시 일본과 관계 개선을 꾀하던 로마 교황청의 정치적 입장이 다분히 들어갔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많다. 불교 역시 봉은사나 범어사 주지를 조선 총독부 승인을 받고 취임시키는 등 친일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즉 일제강점기 신사참배/친일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메이저 종교는 없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6] 현재는 없어짐[7] 이들의 사상을 신학적으로 접근을 해보면 깊이가 너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땅밟기 기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단지 그들의 머리 속에 이미 자리잡고있는 무속적인 요소들도 전혀 거리낌 없이 기독교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다. 이런 그들에게 보편교회에 근거한 교리인지, 개혁주의에 의한 신앙인지... 이런 건 전혀 중요한 게 아니다.[8]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며 요즘은 관광을 가고 예배는 저녁에 1시간~1시간반 정도만 드리는 경우도 매우 많다.물론 교회와 같은 방식과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