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본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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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간이 지나 특정한 표현이나 용법이 의미나 개념상은 맞지 않게 되었음에도 옛 표현이나 용법을 그대로 쓰는 현상.언어의 사회성, 언어의 역사성 등과 함께 언어의 특징을 밝혀 주는 또 다른 특성이다.
언어는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새로운 개념과 변화하는 삶의 방식과 문물에 맞게 같이 달라지는데, 이것이 언어의 역사성이다. 한편, 이 역사성은 기본적으로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이해되고 통용될 수 있는 합의점을 찾게 되는데, 이것은 언어의 사회성이다. 이 과정이 딱히 필연적이거나 논리적인 원리에 따라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언어의 자의성이다. 그리고 언어의 사회성은 만족하면서 정작 언어의 역사성에 반하는 일도 있는데, 이 특징이 바로 언어의 보수성이다.
즉, 겉으로 보기에 시대착오적인 낡은 표현이지만 정작 언어의 사회성에 따라 멀쩡히 통용되는 특성을 '언어의 보수성'으로 부르는 것이다.
2. 사례
대체로 관용어 내지는 연어 형식을 띠는 예가 많다. 〈의미변화〉에도 관련 예들이 많다. 또한 많은 관용어와 속담은 비록 비유적인 확장을 통하긴 한 것이어도, 언어의 보수성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2.1. 한국어
- 기차(汽車): 원래 '증기 기관차'의 줄임말이지만 증기 기관차가 퇴역한 지 한참 지난 지금도 여전히 열차를 '기차'로 부른다.
- 동전(銅錢): 옛날에는 주화의 재질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으나 구리 합금으로 만든 주화가 주류가 되면서 '구리돈'이라는 뜻을 가진 '동전'이라는 말이 사실상 '주화'의 동의어처럼 쓰이게 되었다.
- 문고리: 본래 전통적으로 문에 다는 손잡이를 원형 고리 형태로 했기 때문에 생긴 명칭이지만 오늘날에 나오는 문 손잡이에도 쓰인다.
- 차를 몰다: 본래 동사 '몰다'는 소나 양 따위의 동물 및 가축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을 뜻했는데, 전통적으로 자동차 대신은 말이나 소를 썼기에 이 동사를 썼다. 그러나 오늘날에 그 역할을 자동차가 맡고 있음에도 여전히 이 동사가 쓰인다. "차를 끌다"라는 표현도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 TV 따위를 틀다: 텔레비전의 터치나 버튼을 눌러 전원을 켜는 오늘날과 달리, 옛날에는 수도꼭지마냥 손잡이를 돌려 켜는 형태였기 때문에 쓰인 동사이지만 요즘도 그대로 쓰기도 한다. 채널을 돌리다라는 표현도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 시험에 붙다: 본래 과거시험에 합격한 명단을 문에 붙이던 옛 전통에서 유래했으나 오늘날에는 시험에 합격했다는 뜻으로 쓴다. 아직도 합격자 명단이 붙는 경우가 남아 있어서 그런 듯하다.
- 섣달: 12월을 뜻하는 말인데, '설이 드는 달'이라고 하여 섣달이라고 부른다. 이는 옛날에 음력 12월 1일을 설날로 했던 잔재가 음력 1월 1일을 설날로 하는 오늘날에도 남은 것이다.
- 수은전지: 1990년대 이전에는 단추형 전지에 진짜로 수은이 들어가 있다 보니 환경이나 안전성 문제로 수은을 사용하지 않게 된 현재도 단추형 건전지가 '수은전지'로 불리기도 한다.
- 전봇대(電報-): 과거에는 전선을 이용해 전보를 보냈기 때문에 전선들을 떠받치는 기둥을 전봇대라고 불렀고 이것이 그대로 굳어져 통신 수단의 발달로 전보가 쇠퇴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봇대로 불리게 되었다. 전신주(電信柱)의 경우도 본래 뜻과 현재 용법이 완전히 동일한 경우.
- 철가방(鐵-): 옛날에는 음식 배달에 사용되는 가방 모양의 컨테이너가 대부분 금속 재질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철가방'이라고 불렸고 이 때문에 플라스틱 재질의 배달 컨테이너가 등장한 뒤에도 철가방으로 불리게 되었다.
- 철모(鐵帽): 현재는 가벼우면서도 방탄에 효과적인 소재로 방탄모를 만들지만 1970년대 이전까지는 이름 그대로 진짜 철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철모'로 불러온 게 오늘날에도 그대로 남게 된 것이다. 또, 가난한 나라에서는 비용 문제로 아직도 진짜 철모를 쓰고 있다.
- 양은냄비
- 그 밖의 언어순화 운동 관련 사례들
2.2. 영어
- Dial up: 옛날 전화기는 '다이얼'(dial)로 불리는 둥근 숫자판을 상대방의 전화번호에 맞게 돌려서 전화를 거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다이얼(dial)을 돌린다(up)는 말이 곧 '전화를 걸다'와 같은 의미를 갖게 되었고, 이것이 버튼식 전화기가 주류가 된 오늘날에도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 Double U: 'W'의 발음인데, 원래는 'UU'로 쓰이다가 'W'로 바뀌었는데도 발음만 안 바뀐 것이다.
- Drive: 한국어의 '몰다'와 마찬가지로 본래 말을 운용하던 전통에서 유래했으나 오늘날은 자동차 운전에서도 쓰인다. 그 밖에도 '어떤 사람이나 대상을 (물리적·심리적으로) 몰아붙이다', '기계 따위를 작동시키다' 등의 뜻도 존재하는 다의어다.
- One coin clear: 물가가 오른 현 시점에서 1회 이용 시 100원짜리 동전 하나(원 코인)만 쓰는 게임은 없음에도 아직도 쓰이고 있다(1회 플레이에 500원을 쓰는 게임 제외). 해당 용어는 영어지만 한국에서만 쓰인다.
- Hang up: 20세기 전반~중반에 전화기는 대체로 공용이었고, 마치 인터폰처럼 벽에 걸어 거치해 두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1] 그렇기에 수화기를 걸이 위(up)에 달면(hang) 전화를 끊는 것이었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전화를 '끊는다'는 뜻으로 쓰인다.
- Roll up/down: 현재는 자동차의 모든 창이 모터로 여닫는 파워 윈도우이지만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차량은 손잡이를 손으로 돌려서 창문을 열고 닫았다. 그랬기 때문에 차량의 창문을 여닫는다는 표현으로 'Roll up', 'Roll down'을 사용하였고 기술의 발달로 더이상 돌리는 손잡이가 없음에도 자동차 창문을 여닫는다는 표현을 할 때 'Roll up', 'Roll down'을 사용한다.
- Mortar: 초기 박격포의 형태가 절구와 유사하여 생긴 명칭이며, 오늘날에도 이어진다.
- Shotgun: 미국 서부개척시대 당시 마차를 타고 이동했을 때 각종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산탄총으로 무장한 경호원을 마부 옆에 대동시키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Shotgun(산탄총)'이라는 단어가 화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조수석을 가리키게 된 유래가 되었다. 북미 매체 밖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은어이기에 오역되는 일이 흔하다.
- Turn on/off: 스위치의 기초는 회로의 특정 부위를 붙이느냐 떼느냐이다. 그래서 본래 스위치는 손잡이를 돌려(turn) 회로를 연결하거나(on) 끊는(off) 형태였다.
2.3. 독일어
- Druck/drucken: 누름/물리적 압력/부담을 의미하는 동사와 명사지만, 활판을 종이에 찍어 누르는 방법이 전통적인 인쇄법이었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이러한 방식의 인쇄를 하지 않음에도 여전히 인쇄/출판을 의미하는 명사와 동사로도 쓰이고 있다. 영어의 press와 일맥상통한다.
- Korn: 곡물을 의미하지만, 옛 총기의 가늠쇠가 곡식 낱알처럼 동그란 모양이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가늠쇠의 의미로도 쓰이고 있다. 이를 응용한 표현으로 사람/사물을 겨누거나 주시한다는 의미로써 'et./jn. aufs Korn nehmen'이라는 표현도 존재한다.
- Kugel: 동그란 모양의 구슬을 의미하지만, 초기의 탄환은 구슬과 같은 형태였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탄환이란 의미로도 쓰이고 있다. 그래도 컨트리볼에서 쓰이는 듯하다. 예) Deutschlandkugel(독일공)
- Mörser: 절구라는 뜻이지만, 영어의 mortar와 같은 맥락으로 박격포로도 쓰인다.
- Schifferklavier: 아코디언이란 뜻으로, 직역하면 선원+피아노라는 뜻인데 예로부터 선원들이 즐겨 쓰던 악기였기에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다.
2.4. 한자
- 鯨(고래 경): 이 한자가 만들어질 당대에는 고래도 물고기의 일종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魚(물고기 어)를 의부로 해서 이 한자를 만들었고 이것이 생물학의 발달로 고래는 어류가 아닌 포유류에 속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오늘날에도 그대로 이어져 온 것이다.
- 菌(버섯 균): 당대에는 버섯을 식물의 일종으로 보았기 때문에 草(풀 초)의 머리 부분(艹)을 붙여 이 한자를 만들었다.
- 鰐(악어 악): 鯨과 비슷하다.
- 安(편안할 안): 여자(女)가 집(宀)에 있으면 편안하다는 의미인데, 오늘날에는 성차별이나 다름없는 시대착오적인 표현이지만 계속 쓰이고 있다.
2.5. 기타
- (수사)+구(口)/stoma/stome: 흡충 이름에서 유독 Distoma(디스토마), Polystome, 쌍구흡충 같은 용례가 보이는데, 이는 옛날에 흡충 빨판을 모두 입으로 착각하였기에 이러한 이름을 붙혔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3. 관련 문서
- 경로의존성
- 모순어법
- 언어의 사회성
- 언어의 역사성
-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 - 언어의 보수성에 의한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