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E THE GIA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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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필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본명 | 앙드레 르네 루시모프 André René Roussimoff |
링네임 | Andre The Giant Monsieur Roussimoff Monsieur Eiffel tower Giant Machine Jean Ferre Polish Giant |
별칭 | 세계 제8의 불가사의 (The Eighth Wonder of the World) Le Geant Ferre |
출생일 | 1946년 5월 19일 |
사망일 | 1993년 1월 27일 (향년 46세) |
출생지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쿨루미 |
사망지 | 프랑스 파리 |
신장 | 224cm[1][2] |
체중 | 236kg[3] |
피니시 무브 | 엘보 드랍 툼스톤 파일드라이버 자이언트 프레스 시티드 센톤 더블 언더훅 슈플렉스 고릴라 프레스 것버스터 드랍 |
유형 | 자이언트 |
주요 커리어 | IWA 월드 태그팀 챔피언 1회 NWA 오스트라-아시안 태그팀 챔피언 1회 NWA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태그팀 챔피언 (트라이 스테이트 버전) 1회 NWA 플로리다 태그팀 챔피언 1회 WWF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WWF 태그팀 챔피언 1회 |
데뷔 / 은퇴 | 1964년 / 1992년 |
테마곡 | Ave Satanus The Eight Wonder[4] |
당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 거대하다. (Even Bigger Than You Imagined.)
프랑스의 프로레슬러.
헐크 호건과 함께 1980년대 WWF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전설적인 프로레슬러이자, 프로레슬링 사상 최고의 거인 레슬러로 손꼽히는 인물이다.[6]
2. 커리어
전성기 시절 | 커리어 말년 (WWF) |
2.1. 당대 최고의 프로레슬러
거인증, 말단비대증을 앓고 있어서 다른 이들보다 그 덩치와 힘이 어마어마했다.[7] 그래서 이 어마어마한 체구를 이용한 일방적인 경기를 주로 치렀다. 게다가 목소리도 거인증 환자에게서 흔히 보이는 것처럼 매우 낮은 저음에 깊게 울리는 목소리였다.[8]
프로레슬러가 되기 전 10대 후반에 그는 파리에서 가구 운송회사의 직원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의 거대한 체구를 살려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프로레슬링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프랑스의 한 프로레슬링 도장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러던 중 프랑스계 캐나다인 레슬러 '에드워드 카르팡티에'가 앙드레의 잠재력을 알아보게 되어 프로레슬러로서 훈련을 받게 되었고, 1964년 프랑스에서 ‘도살업자’ 기믹으로 데뷔한다.
1966년에 프로레슬링 업계에 데뷔한 앙드레는 ‘몬스터 에펠탑’ 혹은 ‘몬스터 루시모프’, '장 페레'라는 링네임으로 링에 올라 본격적으로 프로레슬러 활동을 시작한다. 유럽, 일본, 캐나다, 미국을 돌아다니며 무수히 많은 경기에 참여한 그는 곧 프로레슬링계 최고의 슈퍼스타로 성공을 거머쥐었다. 당시 유행한 킹콩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 세계 8대 불가사의라는 닉네임도 얻게 되는데, 이 닉네임은 그의 커리어 내내 따라붙은 유명한 닉네임이 된다.
워낙 거대했던 체구였기 때문에, 어딜 가든지 그가 경기에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큰 화제가 되었고 이미 당대 프로레슬러 중에서 최고 액수의 몸값을 받던 대 스타였으며,[9]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십 년이 넘도록 제대로 패배한 적이 없을 정도로 독보적인 최종 보스급의 대접을 받았다.
2.2. WWF의 최종 보스
1972년에는 WWF의 빈스 맥마흔 시니어가 다가오게 되고 그를 스카우트하게 된다. 여기서 앙드레는 장 페레라는 기존의 링네임 대신, 프로레슬링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그 유명한 글자, 바로 앙드레 더 자이언트라는 링네임을 쓰게 된다. 처음에는 킬러 칸, 킹 콩 번디 등 거구들과의 매치업을 주로 상대하던 앙드레는 WWF 레슬매니아 I에서 빅 존 스터드를 상대로 바디슬램 챌린지를 벌여 승리해 1만 5,000달러를 가져갔고, WWF 레슬매니아 2에서는 WWF vs NFL 배틀로얄 매치에 참가해서 우승했으며, 탑힐로 군림하며 WWF에서도 최종보스로 군림하게 된다.Bigger! Better! Badder![10]
그러던 앙드레가 전설적인 악역 매니저 바비 'The Brain' 히난과 결탁하여, 당시 탑페이스였던 헐크 호건과 1987년 레슬매니아 3에서 가진 매치업은, WWF 챔피언십을 건 메인 이벤트로 올려져 수많은 언론의 이목을 끌었다. 1970년대를 주름잡던 앙드레 더 자이언트를 헐크 호건이 바디슬램하는 장면이 프로레슬링계의 헤게모니가 넘어가는 과정으로 칭해지며 프로레슬링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명경기로 남게 되었다.WWE의 다큐멘터리 앙드레 더 자이언트 에 따르면 이 전설의 경기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 당시 앙드레는 보스였던 빈스 맥마흔도 함부로 지시를 내릴 수 없을 만큼 프로레슬링계에서 대부의 역할을 하던 선수였다. 하지만 헐크 호건이 톱 선역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앙드레의 패배가 필요했는데, 빈스도 그렇고 호건도 그렇고 앙드레에게 대놓고 "이번 경기에 좀 져달라"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고. 빈스와 호건이 공책에 경기 스토리라인을 다 적어놨는데 마지막 장면은 빈칸으로 두었다고 한다. 앙드레가 맘을 바꿀 수도 있었기 때문. 이에 레슬매니아 3가 열리는 날 경기 전 호건이 포커를 치던 앙드레를 찾아가 "오늘 경기는 어떻게 할거야?"라고 물었더니 "잘 모르겠다. 그러나 옳은 일을 할 거니 걱정 마라."라는 말만 남겨서 호건은 "혹시 날 강제로 지게 만들지도 모른다"라는 걱정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앙드레는 부상을 달고 있었던 몸상태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스토리 합을 다 맞춰주었으며, 경기 막판에 가자 큰 소리로 "Slam(매쳐!)"이라고 외치자 호건은 그를 들어올려 바디 슬램을 날렸고, 그 이후 다시 "Leg Drop!"이라고 외치자 호건이 달려가 레그 드롭을 날렸다고 한다. 그리고 앙드레는 순순히 경기에서 패배해주었다.
밀리언 달러맨 & 버질 & 앙드레 더 자이언트 |
1985년에는 잠시 가면을 쓰고 '자이언트 머신' 이라는 기믹으로 신일본 프로레슬링 에서 활동한다. 그 뒤 데몰리션 엑스[12] 와 '더 머신즈' 라는 태그팀을 만들어 가끔씩 경기를 하였다.
메인 이벤터의 자리에서 내려온 뒤에는 하쿠와 태그팀 챔피언에 오르기도 하였다.
그러다 1990년 WWF와의 계약이 만료되자 일본으로 돌아가[13] 자이언트 바바와 함께 태그팀을 맺고 활동하며, WWF에서 활동할 당시와는 다른 활약상을 보이다가 1992년 프로레슬러 생활을 끝내고 은퇴하게 된다.
단순히 프로레슬러로만 아니라 6백만불의 사나이에서[14] 빅풋으로 나오거나, 영화 프린세스 브라이드에서 주인공 3인조 중 덩치인 페직(Fezzik) 역으로 활약하는 등[15] TV, 영화에도 출연하는 인기인이었던 인물이었다. 거인 레슬러로 한 시대를 주름잡았지만 그 거인병이 화근이 되어, 1993년 1월 27일. 급성심부전으로 46세라는 이른 나이에 프랑스의 라 트레모일 호텔에서 세상을 뜨고 만다. 물론 프로레슬러 대부분이(특히 앙드레 같은 거인들) 수명이 그다지 길지 않은 편이고, 원래부터 거인병 때문에 사실상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앙드레였기에 늘 폭식과 과음, 과식을 즐겨 하는 등 쾌락주의적인 인생을 산 것 치고는 비교적 오래 살았다고 볼 수 있다.
1993년, WWF는 그와 그가 남긴 수많은 업적을 영원히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명예의 전당의 초대 헌액자로 지정하였다.
3. 경기력과 평가
수많은 거인 레슬러들이 있었고 그 중에는 언더테이커나 케인, 빅 쇼처럼 팬들에게 인정받는 선수도 있으며, 그레이트 칼리나 자이언트 곤잘레스처럼 팬들에게 자주 회자되지 못하는 선수도 있지만, 앙드레 더 자이언트는 최고의 거인 레슬러로서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수준이다.엔터테인먼트라는 것이 프로레슬링에 사실상 전무하던 시절 프로모터들과 회사는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선수를 원했고, 선수의 몸집과 피지컬은 이목을 쉽게 끌기에 충분했다. 앙드레가 이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그 시절 엄청난 거구라는 자신의 신체적 특성을 이용해 그걸 자신만의 기믹으로 이용할줄도 알았던 뛰어난 엔터테이너였다는 점이다.[16] 사실상 현대 거인 레슬러들의 기믹 전반은 앙드레에게서 나온 수준.[17]
경기력 또한 그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뛰어난 기량을 자랑했는데, 1970년대까지의 젊은 앙드레의 경기들을 보면, 그 거구에서는 상상도 할수 없을 만큼 민첩한 움직임과 함께, 각종 관절기나 그외 자잘한 기술에도 매우 능했던 테크니컬한 레슬러였다. 힘도 대단히 세서 훈련 코치에게 절대로 전력으로 링 위에서 싸우지 말라는 권고를 받기도 했었다. 실제로 폴리스맨[18]이 존재하던 시절 앙드레가 WWF의 용병으로 타 단체에 불려다닐 때에는 업계에서 유명한 후커이기도 했다.[19]
그의 피니쉬 무브로는 툼스톤 파일드라이버가 대표적. 언더테이커가 쓰는 그것의 창시자라고 한다. 그러나 파일 드라이버 류의 기술들이 그렇듯 위험성이 짙었는데, 1972년 이 기술로 상대선수 목이 부러지자 끝내 봉인했다.[20] 움짤의 피폭자는 마사 사이토[21].
이후 피니쉬 무브로 시티드 센턴, 엘보 드롭을 사용하였다. 단순한 기술이었지만 앙드레의 거대한 체구 덕에 피니시 무브로 설득력이 충분했다. 일본에서 활동하던 시절에는 바디 스플래시도 피니시 무브로 사용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점점 앙드레의 기량이 노쇠하였고, WWF에 왔을 때는 이미 전성기 시절은 한참 지난 때였다. 따라서 큰 기술보다는 매우 간단한 기본 기술인 찹이나 클로홀드 초크, 포암 클럽, 바디 슬램만을 고집하는 등 경기의 퀄리티가 점점 하락하였다. 말년에는 엘보 드롭과 언더훅 슈플렉스를 피니쉬 무브로 사용했는데 노쇠한 시기라는 것을 감안해도 시전 방식이 좀 심하게 저질이었다.(...)[22]
4. 여담
앙드레 더 자이언트 일대기사람들은 맹인을 위해 뭔가를 바꾼다. 절름발이들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 같은 거대한 사람들을 위해선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위해 설계되지 않은 공간에 우리 자신을 맞추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세상에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거구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별 거 아닌 일도 굉장히 힘들어 했다는 일화들도 많다.
- 손가락이 성인 남성의 손가락이 3개나 들어가는 반지를 쓸 만큼 굵다보니 손가락이 그 당시의 전화기 다이얼 구멍에 들어가질 않아서 다이얼을 돌릴 일이 있으면 연필을 끼워서 돌리거나, 그조차 여의치 않으면 다른 사람을 불러서 대신 하도록 했다고 한다.
- 비행기를 타도 의자가 너무 작으니 편하게 쉴 수가 없었고, 차도 너무 좁아서 운전도 할 수 없었고 뒷좌석에 타야했다. 당장 위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비행기를 탈 때 좌석 2개를 써야했다. 선수전용 버스를 타도 역시 좌석 2개를 써야하는 건 물론이고, 역시나 그나마도 의자가 작아 편하게 있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게다가 서 있으면 머리가 천장에 닿아서 타고 내리는 것도 힘들었다. 특히 운전 관련은 실제 키가 비슷한 그레이트 칼리도 비록 대형차를 타야하지만 그래도 운전은 가능하다는 점에서 앙드레의 몸집 자체가 운전석에 앉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크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 식기도 너무 작았기에 음식을 먹는 데 늘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의 식사시간이 매우 오래 걸린 것도 식사량 자체가 많은 것도 있지만 식기가 너무 작았던 탓이 컸다. 아래의 식사 사진을 보면 앙드레가 보통의 식기를 쥐었는데 보통 성인이 어린이용 식기를 쥐는 것보다도 더 불편해보인다. 빵이나 피자, 햄버거, 샌드위치, 과자처럼 식기류가 필요없는 음식들은 먹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없었겠지만 매 끼니를 그런 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식기류를 주문제작해서 들고 다니기도 불편하고. 게다가 특히 뼈째 조리된 고기나 생선류, 껍데기째로 나오는 어패류일 경우에는 살을 발라내서 먹어야하니 더더욱 고역이었을 것이다. 만약 앙드레가 휴대폰이 대중화된 2000년대나 스마트폰이 나오기 시작한 2010년대에도 아직 살아있었다면 폰을 사용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호소했을 것이다. 만약 스마트폰 시대까지 살아 있었다면 아이패드, 갤럭시 탭 같은것을 사용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 신체 자체가 워낙 컸기에 새 옷을 살 때마다 일일이 주문제작을 해야 했을테니 일상 생활 자체가 거의 매사에 힘들었을 것이다. 아무리 기본적으로 옷 사이즈가 큰 북미라고 해도 앙드레의 신체는 옷도 따로 주문제작이 필요할 정도로 컸으니 말이다. 특히 30cm가 훨씬 넘는 발 사이즈로 인해 신발은 일일이 주문제작을 하기 위해 신발 가게에서 매번 발을 재야 했다. 칫솔과 손톱깎이도 그한텐 너무 작아서 힘들었을 것이고, 고무장갑이나 조리도구도 그한텐 너무 작아서 설거지 및 요리도 그한텐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샤워하는 것도 특히 호텔에선 욕조 및 샤워칸이 작아서 편하게 하지 못했다고 한다. 침대도 특히 호텔 침대는 그한테 너무 작아서 불편했다고 한다.
- 자신이 죽은 뒤 이틀 내로 화장을 해주길 원했지만, 그의 고향인 프랑스에는 그의 거대한 몸을 수용할 시설이 없어서 미국으로 이송한 후에야 화장되었다고 한다.[23] 다큐멘터리인 앙드레 더 자이언트에 따르면 화장된 유해는 노스캐롤라이나 앨러비에 뿌려졌다. 그의 유산은 유일한 후손인 딸이 물려받았다.
그는 하루에 맥주 106캔을 마셨다.
릭 플레어
릭 플레어
- 식사량이 그야말로 엄청났는데 레슬매니아 3 경기 전날에 프랑스산 와인을 단숨에 14병이나 해치웠다. 헐크 호건의 자서전에 따르면 함께 식당에 가면 그 식당의 모든 메뉴를 한꺼번에 먹어치웠다고 하는데, 어떤 때는 식당에서 하루를 장사할 만한 양의 음식을 혼자서 다 먹어치운 적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남들이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기까지 대략 1시간 정도 걸린다면 그는 기본 8~10시간을 앉아 있었으며 그게 한 끼 식사를 마치는데 걸리는 시간이었다고. 다만 그의 식사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린 건 상술했듯이 식기류가 앙드레에게는 너무 작아 식사하는 게 불편했던 게 컸다. 또한 가뜩이나 거구인데 식탐까지 있어서 프로레슬링을 하면서 벌어들인 돈의 대부분을 먹고 마시는 데에 쏟아부었다고 한다. 그가 생전에 몇번이고 병원을 들락거리면서 수술을 받곤 한데다, 북미, 유럽의 의료비가 엄청나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가 생전에 벌어들인 돈의 대부분이 의료비도 아닌 먹고 마시는 데에 쓰였다는 점에서 먹고 마시는 데에 돈을 엄청나게 쏟아부은 셈이다. 물론 그가 술도 매우 좋아했고, 따라서 주로 술값으로 쓰인 게 컸을 것이다.
- 어마어마한 술고래여서 한번에 맥주 118잔을 마시고도 멀쩡했다는 일화도 있고, 다른 사람들은 입에 댈 엄두조차 못 낼 정도로 독한 폭탄주를 즐겼다는 증언도 있다. 영화 <프린세스 브라이드>에 함께 출연했던 캐리 엘위스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앙드레는 커다란 주전자에 갖가지 독주를 들이부어 자신만의 폭탄주를 제조했는데, 그런 걸 여러 잔 마셨다. 내가 항공유 맛을 본 적은 없지만, 아마 그것과 맛이 아주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너무 강렬해서 내가 기침도 여러 번 한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물 마시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면 대략 7000 Kcal에 해당하는 막대한 양의 술을 아무렇지도 않게 마시는 것이 일과였다고 한다. 주량은 신체 사이즈, 정확히는 혈액과 혈류량에 좌우되므로 남들보다 훨씬 거대한 몸을 가졌던 그는 주량도 엄청났을 것이 확실하다. 앙드레의 어마어마한 폭음과 폭식은 업계 사람들에겐 정말 유명해서 당시 함께 활동했던 동료들의 증언을 쉽게 찾아볼 볼 수 있다.
그는 비행기에 타기 전 45분 동안 맥주 108캔을 마셨다.
헐크 호건
헐크 호건
- 한 번은 캔자스시티의 어느 술집에서 영업시간 종료 직전까지 술을 들이켜던 앙드레에게 어느 바텐더가 "술을 계속 마시고 있어야지 여기서 계속 머무를 수 있다."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낸 적이 있었다. 이는 당연히 "이제 영업 시간 끝났으니까 제발 그만 좀 퍼마시고 집에 가달라."라는 뜻을 아주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었다. 이러면 부담을 느끼고 자리에서 그만 일어날 줄 알았던 것. 하지만 앙드레는 이를 되려 정반대의 의미인 "더 안 마실 거면 나가라"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유용한 정보(?)를 준 바텐더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낸 후 그 자리에서 보드카 40잔을 추가로 주문했고, 기어이 날을 꼬박 지새우며 술잔을 전부 비워버리는 놀라운 모습을 보였다.(...) 참고
- 이렇게 폭음을 하는 이유에 대해 '술을 마시지 않으면 등, 목, 무릎 등등이 아파서 견딜 수 없다'라고 대답했다 한다. 거인증으로 인한 통증을 잊기 위해 술을 마셨던 것으로, 진통제 복용 정도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기에 술을 마신 것이다.
- 어마어마한 덩치만큼이나 방귀 소리 역시 크고 아름다웠던(...)걸로 유명했다. 빈스 맥마흔이 말하길 그의 방귀 소리가 마치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같았다고 증언하였다.
도대체 어떤 소리가 났을까
- 트레이너로부터 '절대로 힘을 세게 줘선 안 된다'는 식의 권고를 들었을 정도로 힘이 세서, 백스테이지의 폴리스맨[25]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언더테이커의 증언에 따르면 육체적으로 노쇠해지고 거인병의 후유증으로 건강이 크게 나빠진 말년에도 터프하게 구는 망나니 선수들을 조용히 손 봐주는 일을 했었다고.
- 늘 브로드웨이 공연장을 직접 찾아가 공연 관람을 하고 싶어했지만 자신의 거대한 체구를 보고 다른 사람들이 겁을 먹을 것을 걱정해서 티켓만 구매하곤 했었다.[26]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상대방이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와도 거리를 두는 성격이었고, 사적으로 만나는 친구도 많은 편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거대한 덩치 때문에 놀림을 많이 당해서인지 성격이 많이 괴팍해졌다고 한다. 대중들에게 그가 자이언트 곤잘레스처럼 굉장히 온화하고 유순한 성격을 가졌다고 알려졌었는데 실제 성격은 그것과는 아무래도 거리가 먼 듯하다.
- 사실 앙드레가 처음부터 성격이 거칠었던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가 원래부터 마음씨가 좋은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는 진정으로 프로레슬링을 사랑했는데, 자신처럼 큰 인간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은 바로 경기장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남들과 다른 체격과 외모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아왔는데 다큐멘터리 '앙드레 더 자이언트'에 출연한 한 인터뷰어는 '당대 최고의 스포츠스타인 무하마드 알리도 얼굴과 몸을 칭칭 감으면 남들 눈에 안 띌 수 있었다. 그런데 220cm에 육박하는 신장에 체중 또한 200kg을 훨씬 웃도는 거인은 길거리 어느 곳에도 숨을 수 없었다. 어딜 가나 그를 쳐다보는 사람도 넘쳤으니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 있겠는가?'라며 안타까움을 말했다. 특히 북미에서 선역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1970년대와 달리 커리어 말년에 접어들던 1980년대에 WWF에 복귀한 후 당대 탑페이스였던 헐크 호건을 상대하는 악역[27]을 맡았다가 자신들을 사랑해주던 경기장의 팬들까지 야유를 보내는 걸 경험한 이후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고 백스테이지에서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특히 1980년대는 케이블TV가 개발되고 방송 송출 지역이 확대되면서 전국 어디에서나 TV를 볼 수 있게 되면서 70년대에 비해 프로레슬링 팬과 앙드레에 대한 관심이 비할 바 없이 늘어났기에 악역으로 먹는 욕도 그만큼 커졌다. 이로 인해 커리어 말년으로 갈수록 안 그래도 그다지 좋다고는 볼 수 없었던 성격이 점점 더 안좋아졌다고.
- 동료들 역시 앙드레가 흥분해서 불쾌해진 모습으로 주정을 떠는 광경을 많이 목격했었기에 선뜻 다가가기가 난감했다고 증언했다. 그나마 마음이 잘 맞은 상대로는 헐크 호건[28]이나 자이언트 바바[29] 정도. 다만 이런 괴팍한 성격의 앙드레도 배드 뉴스 브라운이나 하쿠에겐 쩔쩔맸다고 한다. 배드 뉴스 브라운과의 일화는 앙드레가 모 언론에서 대놓고 흑인 비하 발언을 했다가 신문을 보고 열받은 배드 뉴스 브라운이 앙드레를 찾아가 고래고래 욕설을 하며 사과하라고 강력히 요구했던 것. 앙드레가 몆번이고 무시하자 인내의 끈이 풀려버린 브라운이 앙드레를 옥상으로 끌고가서 멱살을 잡고 옥상 끝까지 가서 "사과를 하지 않을 경우 널 옥상 밖으로 떨어뜨려 버리겠다"며 길길이 날뛰었고, 그제서야 앙드레가 빌면서 사과하고 이를 발견한 동료 레슬러들이 만류해서 간신히 위기를 벗어난것.
- 자신의 위상에도 자부심이 대단해서 자기가 인정하지 않는 선수에게는 잡을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콧대 높은 앙드레가 나름 열심히 잡을 해 준 선수가 바로 그 유명한 제이크 로버츠. 로버츠가 들고 있는 애완 뱀 데이미언에게 겁을 먹고 로얄럼블에서 자진 탈락하기도 했고, 몸뚱이에 뱀이 휘감기자 그 충격으로 그 자리에서 픽 혼절해버리는 굴욕적인 연출까지 해 주곤 했다. 평소 앙드레의 괴팍한 성격과 높은 입지를 생각하면 이건 정말 대단한 수준의 잡. 제이크는 앙드레 같은 거물이 자길 위해 흔쾌히 잡을 해준 것을 대단히 영광스러워했다.
데미안이 무서워서 그랬던게 아니었을까
- 1965년 19살 당시의 앙드레의 모습. 이미 신장 210cm, 체중 140kg를 넘긴 상태였다. 그의 거인병은 유전이 된 것으로 그의 할아버지도 거인병을 앓았고 앙드레만큼 컸었다고 한다.[30] 그래서인지 그는 12살 때 신장 191cm, 체중이 90kg이나 나가는 대단한 거구였다.
- 랜디 새비지를 싫어했는지 굉장히 갈궜던 걸로도 유명했다. 헐크 호건의 다큐멘터리 증언에 따르면 앙드레는 랜디 새비지와 경기가 잡히면 워밍 업 시에도 함부로 대하거나 폭언을 쏟아붓기 일쑤였다고 한다. 한 번은 랜디 새비지가 또 그와 경기가 잡혀서 경기 전날 워밍업을 핑계로 또다시 된통 시달렸다고 한다. 경기 당일 랜디 새비지가 몸에 연고와 기름을 바른 상태로 백스테이지에서 포커를 치고 있던 그에게 다가가 "오늘은 어떤 식으로 날 괴롭히실 작정이시죠?" 라고 하며 힘없이 질문했더니 앙드레가 갑자기 욕설과 폭언을 하면서 "꺼져, 니 몸에 바른 베이비 오일 다 지울 때까지 내 눈에 띄지마!" 라고 하며 가지고 있던 포커 카드까지 마구 집어던지며 쫓아냈다고 한다. 그리고 랜디 새비지와 경기를 치러 승리한 후에도 "이 승리의 영광을 미스 엘리자베스에게 돌린다." 라고 하며 랜디 새비지를 조롱했다고 한다. 평소에는 다른 선수들이 자신의 아내의 이름만 언급해도 길길이 날뛰며 분노하던 마초맨 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그런 소리를 듣고도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 팀 버튼의 영화 '빅 피쉬'에 나왔던 거인 배우 매튜 맥그로리(Matthew McGrory)를 주연으로 출연시킨 앙드레 더 자이언트의 전기영화가 촬영 중이었으나, 그 배우도 역시 사망하면서 제작이 중단된 적이 있다.[31]
- 또한 언더테이커의 증언에 의하면 말년에는 백스테이지의 대부로 군림하였으며 갓 신인으로 WWF에 들어온 언더테이커를 "꼬맹아(Kid)"라고 부르며 살갑게 챙겨줬다고 한다. 당시에는 모든 선수들이 경기장에 출근하면 백스테이지에서 술을 마시며 포커를 치던 앙드레를 찾아가 "보스, 저 왔습니다"라고 인사하는게 관례였다고.##
- 레슬매니아 30의 호스트를 맡은 헐크 호건이 앙드레 헌정 30인 배틀 로얄 매치가 열릴 것이라는 발표했다. 자세한 사항은 앙드레 더 자이언트 메모리얼 배틀로얄 항목 참조.
- 어렸을 적에 앙드레가 살던 마을에서는 아이들이 어른들의 차를 타고 통학했다고 하며, 앙드레도 그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통학해줬던 어른 중에 사뮈엘 베케트도 있었다고 한다. 앙드레만 특별하게 통학했다는 루머도 있으나, 증언에 따르면 그냥 평범한 마을 어른과 아이 정도의 관계였다고 한다. 출처.
- 혈육으로는 슬하에 딸이 1명 있다. 딸도 아버지의 유전자 때문인지 풍채가 어마어마하다. 신장이 자그만치 183cm라고.
- 빅 쇼 항목에 빅 쇼/빅 쇼를 든 사람들처럼 앙드레를 든 선수들도 꽤 많이 있다. 대표적으로 헐크 호건[32], 얼티밋 워리어[33], 안토니오 이노키, 초슈 리키, 스탠 핸슨, 카말라등이 있다.
- 자이언트 곤잘레스와 은근히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비(非) 미국인(프랑스, 아르헨티나)이며 둘 다 상상을 초월한 거체였으며 둘 다 요절(앙드레 47살, 곤살레스 44살)했다는 공통점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슬하에 1녀만 존재하는 것도 공통점이다. 단 둘의 성격과 인지도는 차이가 있는데, 곤잘레스는 험악한 외모와 거대한 체격과는 달리 매우 선한 인품을 가져 대인관계가 원만한 반면 대중들에게 인지도는 떨어졌고, 그와는 다르게 앙드레는 대중들에게 역사상 최고의 거인 레슬러로 각광받으며 엄청난 인기를 누린 반면, 성격은 좋은 편이 아니라 매우 신경질적이고 거칠어서 대인관계가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 장 크리스텐센(Jean Christensen, ?~2008년)이 앙드레의 아내이며 로빈의 어머니이다.
- 앙드레의 딸 로빈 크리스텐센 루시모프(robin christensen roussimoff, 1979년~)는 아버지를 닮아 체격이 크지만 거인증이 아니며 키도 182cm로 그냥 남자보다 덩치가 크다 정도이지 아버지같은 거인은 아니다. 하지만 몸무게가 100kg나 되는 비만이다. 2023년 현재 아직도 미혼이다.
- 아놀드 슈워제네거, 윌트 체임벌린와 함께 찍은 사진. 영화 코난을 촬영할 당시에 찍은 사진이다. 188cm의 슈워제네거가 꼬마로 보이는게 압권. 사진에서 보이다시피 셋의 친분이 꽤나 깊어 자주 어울려 다니곤 했는데, 슈워제네거가 ESPN의 빌 시몬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앙드레와 체임벌린이 종종 아놀드를 아이처럼 번쩍 들어올리곤 했다고 한다. 또한 앙드레가 워낙 대인배라서 항상 저녁값을 지불한 반면에 체임벌린은 천하의 짠돌이라 절대 안 냈다고. 그러던 어느 날, 아놀드가 오늘은 자기가 쏘겠다고 맘을 먹고 앙드레가 화장실에 간 사이 몰래 계산을 했는데 이 사실을 안 앙드레가 화가 나 "너 나 열받게 했어!"라면서 아놀드를 들어 올리자 옆에서 체임벌린이 "그래! 나도 낼려고 했다고!"하면서 거들었다고 한다. 여기에 대한 아놀드의 반응은 "웃기고 있네!(That's a good one!)"
- 앞서 언급된 윌트 체임벌린과의 친분과는 별개로 기본적으로 인종차별적 마인드가 상당히 깊게 깔려있어 여러 구설수를 만들어냈는데 상단의 배드 뉴스 브라운과 일화 이외에도 일본 활동 시절에도 일본인들을 매일 같이 비하하는 발언을 하고 사인회때도 짜증을 부리는 등 물의를 일으킨 바가 있다. 생전에 인종차별적 마인드가 상당했던 만큼 성향 자체도 구시대적이고 보수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34] 이러한 점들 때문에 앙드레가 거인으로 당시에 차별을 받아왔다는 이야기로 인해 생긴 동정론을 부정하며 '그렇게 동정받을 사람은 아니었다.'라는 여론도 일부 존재한다.[35]
5. 앙드레 자이언트를 오마쥬한 캐릭터
- 더블 드래곤 2 - 스테이지 2의 보스 아보레는 대놓고 자사의 레슬링 게임인 WWF 슈퍼스타즈에 나온 앙드레 더 자이언트의 스프라이트로 만든 캐릭터이다.
- 더 자이언트 - WCW에서 활동하던 당시 빅 쇼의 링 네임. 앙드레의 아들이라는 설정으로 데뷔하였다.
- 마이 자이언트 - 프린세스 브라이드에서 만나 친구가 된 빌리 크리스탈이 앙드레에게 바친 영화. 거인역으로 NBA 선수였던 게오르그 무레산이 출연했다.
- 바키 시리즈 - 안도 레이치
-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 휴고
- 챔피언 레슬러 - 마터호른 데커라는 레슬러가 딱 앙드레의 오마쥬. 게임 내에서도 사기캐다.
- 파이널 파이트 시리즈 - 안도레(Andore) 일가
6. 둘러보기
1993년 WWF 명예의 전당 헌액자 |
1996년 레슬링 옵저버 명예의 전당 헌액자 |
2002년 프로레슬링 명예의 전당 헌액자 |
역대 월드 태그 리그 우승자 | ||||
1980 | → | 1981 | → | 1982,1983 |
안토니오 이노키 & 밥 백런드 | → | 앙드레 더 자이언트 & 르네 굴렛 | → | 안토니오 이노키 & 헐크 호건 |
PWI 선정 올해의 선역 | ||||
와후 맥대니얼 (1976) | → | 앙드레 더 자이언트 (1977) | → | 더스티 로즈 (1978) |
타미 리치 (1981) | → | 앙드레 더 자이언트 (1982) | → | 지미 스누카 (1983) |
PWI 선정 올해의 악역 | ||||
릭 플레어 (1987) | → | 앙드레 더 자이언트 (1988) | → | 랜디 새비지 (1989) |
PWI 선정 올해의 경기 | ||
1981년 | 5월 2일 WWF | 싱글 매치 킬러 칸 vs 앙드레 더 자이언트 |
1988년 | 2월 5일 메인 이벤트 | WWF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헐크 호건 vs 앙드레 더 자이언트 |
레슬링 옵저버 선정 올해의 대립 | ||||
브루노 삼마르티노 vs 래리 즈비스코 (1980) | → | 앙드레 더 자이언트 vs 킬러 칸 (1981) | → | 테드 디비아시 vs 정크야드 독 (1982) |
레슬링 옵저버 선정 올해 최악의 대립 | ||||
창설 | → | 앙드레 더 자이언트 vs 빅 존 스터드 (1985) | → | 서전 슬로터 vs 보리스 주코프 (1986) |
미드나이트 라이더 vs 툴리 블랜처드 (1988) | → | 앙드레 더 자이언트 vs 얼티밋 워리어 (1989) | → | 릭 플레어 vs 정크야드 독 (1990) |
레슬링 옵저버 선정 가장 불쾌감을 준 선수 | ||||
조지 스틸 (1988) | → | 앙드레 더 자이언트 (1989) | → | 더스티 로즈 (1990) |
역대 레슬매니아 메인이벤트[★] | ||||
1987.3.29 레슬매니아 3 | WWF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매치 헐크 호건 vs 앙드레 더 자이언트 |
[1] 레슬매니아3 기준.[2] 영문 위키피디아에 등록된 신장은 224cm이나, 여타 다른 거인 레슬러들이 그렇듯 과장된 신장이며, 전성기 시절 실제 신장은 218cm 정도로 추정된다. 말년에는 척추와 고관절 수술로 인해 신장이 209~ 211cm 가량으로 줄어들었다.[3] 520 파운드, 레슬매니아3 기준. 워낙에나 과식을 많이 해서 그런지 체중이 저것보다 더 많이 나갈 때도 많았다고 한다. 말년에 위절제 수술로 인해 체중역시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200kg을 초과하였다고 한다.[4] 이 두개의 테마곡은 전부 훗날 DVD, 게임 등에서 추가된 것으로 일본에서 활동할 당시 사용했던 여러개의 이름없는 테마곡 외에는 WWF에서는 테마곡 없이 등장했다.[5] 앙드레 더 자이언트를 소개할 때 앞에 붙는 별칭. 1933년, 2005년작 영화인 킹콩에서 콩에게 붙은 수식어로 굉장히 유명하지만, 당시 이런 거인 레슬러가 생소하던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앙드레의 엄청난 덩치와 가공할 만한 위압감은 그야말로 불가사의한 괴물 수준이었기에 자연스레 이 별칭이 붙었다. 이 별칭은 뒷날 차이나가 등장하면서 제 9대 불가사의가 되었고, 그런 그녀를 패러디했던 WCW의 아시아에게 제 10대 불가사의란 별명이 붙게 된다.[6] 물론 여기서 말하는 최고란 최고의 기량을 가진 거인 레슬러라는 뜻이지, 가장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혹은 가장 키가 큰 레슬러라는 뜻은 아니다. 프로레슬러 중 역대 최중량 선수는 요코주나, 역대 최장신 선수는 자이언트 곤잘레스, 두 번째로 무거웠던 선수는 해피 험프리(Happy Humphrey), 역시 두 번째로 키가 컸던 선수는 폴 버니언(Paul bunyan)이다.[7] 그 힘이 어찌나 어마어마했는지 철봉을 양쪽 승모근쪽에 걸쳐 부러뜨린 다음 부러진 봉에다가 2000파운드짜리 추를 끼워서 잠시동안 들어올렸다! 킬로그램으로 환산하면 약 900kg정도를 들어올린것. 일반적으로 스트롱맨들이 500kg 데드리프트를 간신히 드는 걸 생각하면 실로 엄청난 파워다. 거기다가 양쪽팔에 밧줄을 묶고 한쪽팔씩 여섯명이 끌어당겨 총 12명과 줄다리기를 하였는데도 이기는등 비상식적인 힘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다만 이 두개다 그 당시 WWF 측에서 앙드레를 홍보할 목적으로 광고한 것이라 약간의 눈속임과 과장이 포함되기는 하였다.[8] 이는 똑같이 거인증을 앓는 자이언트 실바와 최홍만에게도 나타났다.[9] 1970년대 프로레슬러로서 뿐만 아니라 당대 거의 모든 스포츠 분야의 스타들 가운데서도 최고 연봉을 받아 기네스 신기록을 세운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고액의 몸값 덕분에 1980년대 이전까지 세계 여러 단체에 WWF의 용병으로 활약하며 자금을 모았고, WWF는 여기서 벌어들인 자금을 바탕으로 전성기의 시작을 알리게 된다.[10] 여기서 Badder는 간지를 뜻한다.[11] 앙드레의 화려했던 커리어 사상 유일한 WWF 월드 챔피언 경력이었는데 초창기 WWF 최고의 공헌자이자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앙드레가 월챔 경력없이 은퇴하는건 누가봐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므로 업적을 기리는 의미에서 회사 차원에서 타이틀전을 치르게 했다고 보는 의견이 있다.[12] 같은 기믹으로 '슈퍼 머신' 이라는 링네임을 사용했다.[13] 현재도 일본에서는 헐크 호건과 함께 외국인 프로레슬러 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사람 중 한명이며, 그를 오마쥬한 캐릭터들도 상당히 많다. 특히 데뷔를 일본에서 했고, 전성기때도 일본에서 경기를 가졌으며, 선수 커리어의 마지막도 일본에서 보낸 선수였기 때문에, 일본팬들과 인연이 굉장히 깊다.[14] 이 영화의 주인공의 이름이 스티브 오스틴인데, 실제 해당 문서의 인물이 당초 링네임을 스티브 오스틴으로 하기를 망설이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물론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은 영화 주인공 오스틴보다 프로레슬러 스티브 오스틴이 훨씬 유명하지만.[15] 프린세스 브라이드에 같이 출연했던 맨디 파틴킨이 인터뷰에서 앙드레 더 자이언트의 생일에 그에 대해 떠올렸다.[16] 덩치를 더욱 커보이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펑퍼짐한 파마 머리를 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17] 수많은 여성들을 목마를 태우거나 파워하우스 레슬러가 거인 레슬러를 드는 퍼포먼스 등등 대다수가 앙드레가 하던 활약들에서 발전한 것이다.[18] 지금이야 북미건 일본이건 엄격한 각본의 통제 속에서 경기가 이루어지지만 당시에는 자신의 신체적인 능력만 믿고는 지시받은 각본을 어기고 대놓고 돌발 행동, 이른바 '슛'을 하는 선수들이 적지 않았다. 폴리스맨은 이러한 돌발 상황 중에 그러한 선수들을 실전으로 제압하고 처벌하는 역할을 맡는 선수들이었다.[19] 다만 40줄에 들어선 앙드레는 후커로써는 굴욕적인 일들이 제법 있었다. 마에다 안면축격사건 참조.[20] 피폭자가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소리가 있으나 사실이 아니며, 며칠간 혼수상태에 빠져있었다고 한다.[21] 안토니오 이노키와 한적한 야외 갈대밭에서 공식경기를 벌이기도 했던 선수. 물론 당시 승자는 이노키.[22] 하지만 젊었을 적에는 피니쉬 무브에 맞게 정석으로 썼다.[23] 미국은 비만인구가 많기에 비만인들이 사망한 후 장례를 위한 시설이 많다. 비만인들을 위한 특수제작 관,화장로가 발달한 곳도 미국이다.[24] 이를 양으로 환산하면 약 55리터 정도로, 일반적인 성인 남성의 경우 1리터만 들어가도 위가 가득 찬다. 뭐 화장실 다녀오면서 마시긴 했겠지[25] 자신의 신체적 능력이나 실력을 믿고 행패를 부리거나 각본을 어기고 실제 싸움을 거는 선수들을 제압하는, 실전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맡는 비공식적인 직책을 일컫는 프로레슬링 용어.[26] 한 번은 연극표만 사고 극장에는 못 들어간 채 뒷골목에서 울기도 했다고 한다.[27] 일본 등 해외에서는 악역을 해본 적이 있는데, 미주에서 악역을 한 건 처음이었다고.[28] 당대 선수들 말로는 호건은 앙드레의 괴팍한 성격을 잘 알아서 늘 그의 말에 고분고분했다고 한다.[29] 둘 다 어마어마한 거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서로의 고충에 대해 잘 알았기에 그만큼 공감대가 쉽게 형성되어 가까워졌다고 한다.[30] 아버지의 신장은 170cm대로 의외로 평범했다고 전해진다.[31] 특이하게도 맥그로리는 32세의 나이로 자연사하였으며, 228cm의 거구임에도 거인증으로 진단된 적이 없다고 한다. 그가 사망한 후 롭 좀비는 The Devil's Rejects를 그에게 헌정하였다.[32] 레슬매니아에서의 바디슬램 말고도 1980년대부터 숱하게 대립해서 호건이 언제나 들어올렸다. 마치 빅 쇼 vs 브록 레스너와 대립 때처럼.[33] 경기력이 떨어지는 워리어가 순수 힘으로 들어올려 메쳤다.[34] 사실 안타깝지만 앙드레와 비슷한 세대거나 더 윗세대인 백인들은 인종차별과 관련해선 이렇게 구시대적이고 보수적인 경우가 여전히 많은 게 현실이고, 이러한 윗세대의 인종차별적 마인드는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라고 해도 별 다를 건 없는 상황이다.한국도 1960년대 이전 생들도 이런 경향이 크다.[35] 앙드레가 업계에서 가지고 있는 명성과 문단 상단에 나열된 여러 일화 때문에 유독 동정적인 여론이 많이 생겨서 이러한 어두운 쪽으로는 별로 조명이 되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당시 앙드레가 거인이라는 기믹으로 활동하면서 지나치게 큰 키와 덩치로 괴물 취급받았다고 자신을 PR했지만, 모든 거인증 환자들이 앙드레처럼 괴팍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는 않으며, 이는 당장 같은 업계에서 일하던 자이언트 곤잘레스의 사례만 봐도 알 수가 있다. 물론 그가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 중 하나였다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선수 시절때의 수많은 구설수와 악행을 모두 다 쉴드 쳐줄 수는 없다.[★] 오른쪽이 도전자, 밑줄이 승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