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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30 19:31:15

서전 슬로터

파일:서전 슬로터.jpg
Sgt. Slaughter

1. 프로필2. 개요3. 커리어4. 둘러보기

1. 프로필

파일:Sgt_Slaughter_pro.png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본명 Robert Remus
출생일 1948년 8월 27일 ([age(1948-08-27)]세)
출생지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거주지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버링턴
신장 196cm
체중 141kg
피니시 무브 아토믹 누기
카멜 클러치
코브라 클러치
레프트 암 래리어트
커리어 AWA 아메리카즈 챔피언 1회
AWA 브리티시 엠파이어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NWA 센트럴 스테이츠 헤비웨이트 챔피언 3회
NWA 조지아 태그팀 챔피언 1회
NWA 캐나디안 헤비웨이트 챔피언(토론토 버전) 1회
NWA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헤비웨이트 챔피언 2회
NWA 월드 태그팀 챔피언(미드-애틀랜틱 버전) 1회
NWF 아메리카즈 챔피언 1회
NCW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NWA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태그팀 챔피언(트라이-스테이트 버전) 1회
WWF 챔피언 1회


2. 개요

WWE, AWA 출신 프로레슬러로, 키 196cm다. 본명은 로버트 리머스(Robert Remus)이며 서전 슬로터는 링 네임이다. 피니쉬 무브는 대표적으로 코브라 클러치카멜 클러치가 있다.[1] 그리고 왼팔로 사용하는 독특한 래리어트를 피니쉬 무브로 상당히 자주 애용하였는데, 특히 80년대 무렵 경기들을 보면 순간적으로 터지는 호쾌한 래리어트로 경기를 가져가는 일이 많았다.[2]

G.I. Joe에서는 그를 모델로 한 캐릭터인 슬로터 상사가 나오는데, 이는 본인 허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3]

WWF 시절에 나온 게임인 WWF 레슬페스트에서도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정작 피니시가 코브라 클러치도 카멜 클러치도 아닌 상대롤 강제로 주저앉힌 상태에서 머리를 마구 주먹으로 짓누르다가 기권을 받아내는 희한한 피니시였다. 정확히는 아토믹 누기라고 하는 기술인데 코브라 클러치는 함께 게임에 나온 테드 디비아시의 밀리언 달러 드림과 같은 형태의 기술이다보니 중복을 방지하려고 구현이 안 됐을 것이고, 카멜 클러치는 이 당시 기술력으로 구현하지 못하여[4] 이런 희한한 피니시가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대체용으로 고른 피니시가 프로레슬링에서 역대 최악의 피니시 계보에 들어가는 아토믹 누기라서 영 폼이 안 났다. 여기에 과거 AFKN으로 WWF를 접한 국딩들 입장에선 아토믹 누기라는 기술을 알 방법이 아예 없기에, 당시 슬로터가 자버들을 괴롭히는 장면과 비슷하다고 '괴롭히기' '핵꿀밤' 등의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3. 커리어

1948년 8월 27일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났다. 전설의 레슬러 번 가니에 밑에서 기술을 배우다가 1972년에 본격적으로 데뷔한다. 1980년도에 서전 슬로터라는 군인 기믹[5]으로 WWE에 입성해 악역으로 강력한 푸쉬를 받는다. 장기간[6] WWF 챔피언으로 군림하던 밥 백런드 및 초대 WWE 인터컨티넨탈 챔피언 팻 패터슨과 대립각을 세운다. 1981년 팻 패터슨과 벌인 시합은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가 선정한 올해의 시합으로 뽑혔다. 1984년 선역으로 전환해 반미 기믹을 내세운 아이언 쉬크와 대립을 가졌다.[7]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열받은 빈스 맥마흔이 슬로터를 방출시켜버린다.[8]

이후 AWA와 계약해 각종 챔피언을 지내는 등 순조로운 경력을 쌓았다. 지금이야 WWE에서 방출당하면 초라한 신세가 되기 일수지만, 1980년대 초중반 WWF는 아직 레슬매니아를 개최하기 전이었기에 지금같은 영향력을 발휘하던 시기도 아니고, 지방 프로모터들의 권한이 강력할 때라 오히려 서전 슬로터는 직장을 옮기면서 앞날이 트인 경우에 가깝다.

그러다가 1990년에 다시 WWF로 복귀해 잠시 충성스런 군인 기믹을 수행하다가 아랍계 레슬러 제네랄 아드난, 콜로넬 무스타파와 손을 잡고 친이슬람 매국노 기믹으로 전환한다.[9] 걸프전과 맞물려 성공적으로 악역 메인이벤터로 입지를 굳히고, WWF 로얄럼블(1991)에서 벌어진 타이틀 매치에서 얼티밋 워리어를 꺾고 WWF 챔피언에 등극했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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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헐크 호건과 대립을 가졌으며 WWF 레슬매니아 VII에서 WWF 벨트를 64일만에 넘겨줬다.[11] 헐크 호건과 대립이 끝난 뒤 다시 선역으로 전환해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의 애국심을 강조하는 기믹을 가진 핵소우 짐 더간과 태그팀을 맺고 내스티 보이즈와 대립했다.

그러나 헐크 호건과의 대립을 정점으로 조금씩 위상이 낮아졌으며, 차츰 출연도 적어졌으며 가장 결정적으로 1993년초에 네일즈와의 경기에서 경기 시작벨이 울리기도 전에 네일즈의 공격을 받았는데 이때 체어샷을 잘못맞아 경기 자체를 못한 채 결국 은퇴했고 그후 4년간 경기를 하지 못했다. 이후 1997년부터 1년여간 WWF 커미셔너 역할로 나와 악동 DX와 대립하며 골탕먹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제럴드 브리스코, 팻 패터슨과 함께 빈스 맥맨의 충실한 딸랑이 간신배 역할을 하면서 코퍼레이션의 일원으로 활약한다. WWE에서 에이전트 직함을 가지고 일하며, 가끔 신예들을 띄워주기 위해 잠시 대립상대가 되어주기도 한다. 2004년에 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003년에는 반미성향 프랑스군 기믹인 라 레지스탕스한테 패했던데 이어 랜디 오턴한테도 패했었고, 2005년에는 무하마드 핫산한테도 패했었다. 랜디 오턴은 2004년에 메인이벤터가 되었고, 라 레지스탕스의 경우, 그중 르네 듀프리는 그 당시엔 WWE측에서 듀프리를 제2의 랜디 오턴으로 키우려 했던데다 하드코어 할리와의 불화만 아니었다면 차후 메인이벤터가 될 가능성이 높았으며, 무하마드 핫산은 원래 언더테이커와의 대립 이후 바티스타를 꺾고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할 계획이었으나 기믹을 잘못 받았다가 버려지면서 방출된 케이스였으니 2000년대 들어서는 유망주들을 띄워주는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지미 스누카랑 태그팀이 되어 듀스&도미노한테 패했다.

2013년 미국 국수주의를 강조하는 기믹을 장착한 잭 스웨거의 매니저로 나올 뻔했으나 취소되고, 대신 젭 콜터가 잭 스웨거의 매니저가 되었다. 알베르토 델 리오가 WWE에 입성했을 때 그의 기량이 매우 대단하다면서 나중에 거물이 될거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그래서 멕시칸인 알베르토 델 리오가 미국 팬들을 도발하는 세그먼트를 하는 도중 난입해 경기를 치르고 패하는 각본을 수행하기도 했다.

4. 둘러보기

파일:WWEHOF.jpg
2004년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Frank Gotch Award-logo.jpg
2019년 조르지 트라고스/루 테즈 프로레슬링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PWI 로고.png PWI 선정 올해의 악역
어스퀘이크
(1990)
서전 슬로터
(1991)
릭 루드
(1992)
파일:PWI 로고.png PWI 선정 올해 감동을 준 레슬러
헐크 호건
(1983)
서전 슬로터
(1984)
마이크 폰 에릭
(1985)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선정 올해 최악의 대립
앙드레 더 자이언트 vs 빅 존 스터드
(1984)
서전 슬로터 vs 보리스 주코프
(1985)
더 머신즈 vs 킹콩 번디 & 존 스터드
(1986)
릭 플레어 vs 정크야드 독
(1990)
헐크 호건 vs 서전 슬로터
(1991)
얼티밋 워리어 vs 파파 샹고
(1992)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경기 [★]
1981년
5월 4일
WWF 앨리 스트리트 파이트 매치
_팻 패터슨_ vs 서전 슬로터
1983년
3월 12일
MACW/NWA
더 파이널 컨플릭트
NWA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 스틸 케이지 매치
_제이 영블러드_(O) & _리키 스팀보트_ vs 돈 커노들(X) & 서전 슬로터(C)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90px-Wrestlemania_Neutral_Logo.svg.png
역대 레슬매니아 메인이벤트[★]
1991.3.20
레슬매니아 7
WWF 챔피언십
서전 슬로터 vs 헐크 호건


[1] 코브라 클러치는 원래부터 사용하던 피니시였고 카멜 클러치는 WWF(현 WWE)에서 매국노 기믹 중 사용하던 피니시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WWF가 한참 유행하던 시기에 사용했던 카멜 클러치가 더 유명하겠지만 서전 슬로터가 카멜 클러치는 피니시로 사용한 것은 이시기 뿐이다.[2] 유튜브 등에 공개되는 서전 슬로터의 과거 경기를 보면 대체로 이 기술로 결정타를 내는데, 추천할 만한 경기는 하술하는 1984-06-16 WWF에서 한 아이언 쉬크와의 Boot Camp 경기로, 선혈이 난무하는 와중 끝부분에 이 기술이 호쾌하게 들어간다.[3] 아이언 쉬크와의 대결 기믹과, 군인 출신(미합중국 해병대에서 6년간 복무)이라는 점이 맞아 떨어져 실존인물로는 최초로 애니메이션 콜라보가 되었다. 극장판 애니메이션에선 본인이 직접 목소리 연기까지 했다. 이후 G.I. Joe는 두번째로 실존인물을 콜라보 하게 되고, 그 주인공은 NFL 시카고 베어스에서 활동했던 191cm 159kg의 거대한 덩치로 유명한 수비라인맨 윌리엄 '냉장고' 페리{William 'Refrigerator "Fridge"' Perry}였다.[4] 사실 게임은 WWE 게임이지만 일본 회사에서 만들다보니 주로 이 선수들이 일본 시절 사용하던 기술을 구현하는 경우도 많았다. 사실 아토믹 누기나 보스턴 크랩을 구현할 수 있는데 카멜 클러치를 구현하지 못한다는 건 말도 안 되고.[5] 1990년대 말 한국일보에 ('서전트 슬로터'라고) 이 시절 모습을 언급한 사설이 나온 적이 있다.[6] 2136일로 역대 2위 기록이다. 다만 이때는 지금처럼 월례 PPV가 하나 없던 초창기다.[7] 1984년 6월 16일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가진 부트캠프 매치는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가 선정한 올해의 경기 2위다.[8] 일설에는 당시 잘 나가던 지 아이 조 기믹과는 다른 기믹을 요구했기 때문에 불화가 생겼다고 한다.[9] 이 기믹 때문에 분노한 팬들에게 살해 위협까지 받았다고 한다. 실제로 당시 프로모 영상을 보면 관중의 야유 소리가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고 이때는 카멜 클러치를 피니쉬 무브로 썼다. 원래 카멜 클러치로 유명했던 아이언 쉬크는 이때 이라크의 '무스타파 대령' 기믹으로 서전 슬로터와 함께 활동했다.[10] 당시 워리어는 헐크 호건 못지 않은 무적기믹이라 처음부터 거의 끝까지 얻어 맞았지만 마지막에 마초킹 랜디 새비지가 난입해 자신의 셉터로 워리어의 뒤통수를 공격한 덕에 챔피언이 될 수 있었다.[11] 헐크 호건이 이 때를 회상하기를, 이 당시 서전 슬로터가 아내와 가족들을 죽이겠다는 살해 협박에 시달렸고, 그 때 쇼는 흥했지만 너무 위험하다 생각했다고.[★]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 오른쪽이 도전자,밑줄이 승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