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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05-06 17:18:30

신승선/생애

1. 개요2. 상세
2.1. 출생2.2. 세조 ~ 예종 시대 활동2.3. 성종 시대 활동2.4. 연산군 시대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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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전기 문신 신승선의 생애에 관한 문서.

2. 상세

2.1. 출생

1436년 출생하였다.

2.2. 세조 ~ 예종 시대 활동

1453년[1] 진사과에 합격하였는데 그 때 나이가 고작 18세였다. 용모가 아름다워 임영대군[2]사위로 발탁되었다.

1455년[3] 세조는 고의적으로 과거 시험에 대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신승선[4]에게 과거 시험을 시키는데 이례적으로 그가 1등을 달성했다. 반대파들은 그가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였으나, 세조는 그를 결국 판서로 임명한다.

1468년[5] 10월 예종남이 사건을 잘 처리한 이유로 그를 승진시킨다.

2.3. 성종 시대 활동

1471년[6] 좌리공신[7]에 임명되었다.

1478년[8]4월부터 세자 연산군을 2년 반 동안 과외시켰는데, 세자가 눈에 띄게 성장하자 그 후부터 성종이 그를 매우 신임하였다.[9] 그 후 고위직인 병조판서로 임명되자 일부 사림파들이 그를 아래와 같이 비판하였다.
사람들이 많이 그를 가리키면서, '세조 시대 신승선이 남의 손을 빌려서 장원을 차지하였는데, 남이 지은 글을 빌려서 장원하는 일이 어느 시대에나 없겠는가.' 고 비웃었다.
성종실록

1487년, 성종은 "병조 판서 신승선의 딸로 세자빈을 삼도록 하라." 라는 명을 내린다. 하지만 이 일이 엄청난 나비 효과를 불러일으킬지 아무도 몰랐었다...

2.4. 연산군 시대 활동

상술했듯 신승선은 연산군의 장인어른이었다. 소혜왕후는 이 점을 감안해 신승선을 좌의정으로 승격시킨다. 하지만 연산군의 난폭함으로 인해 신승선은 병을 핑계 삼아 여러 번 휴가를 냈다. 그의 호가 사지당(仕止當)인 이유도 '나 벼슬 안 할래' 라는 자신의 의견을 담은 것이다. 신승선은 결국 사직한 뒤 향년 67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는데, 이후 본격적인 연산군의 폭군성이 드러난다.

[1] 단종 첫 통치 후 1년.[2]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3] 세조 첫 통치 후 2년.[4] 신승선은 한 마디로 공부는 잘 하는데 시험은 못 보는 사람이었다.[5] 예종 원년.[6] 성종 첫 통치 후 2년[7] 성종을 임금으로 세우는 데 많은 도움을 준 사람들.[8] 성종 첫 통치 후 9년[9] 신승선은 알 수 없는 병으로 죽었는데, 그 병이 이 후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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