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일본의 정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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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보수정당 | ||||
자유민주당 | → | 신당대지 | → | 현재 |
新党大地 | 신당대지 | ||
<colcolor=#409f29><colbgcolor=#f5f5f5,#2d2f34> 영문 명칭 | New Party DAICHI: NPD | |
한글 명칭 | 신당대지 | |
창당일 | 1차 창당 : 2005년 8월 18일 2차 창당 : 2011년 12월 28일 | |
이념 | 지역주의 녹색 보수주의 자유보수주의[1] 국민 주권 아이누 민족을 비롯한 소수자 권리 친러시아 | |
스펙트럼 | 중도 ~ 중도우파 | |
당 색 | 녹색 (#409F29) | |
주소 | 도쿄도 치요다구 나가타초 2-9-6 (東京都千代田区永田町2-9-6) | |
대표 | 스즈키 무네오(鈴木宗男) | |
의 석 수 | 참의원 | 1석 / 248석 (0%) |
중의원 | 0석 / 465석 (0%) | |
도도부현의회[2] | 0석 / 2,687석 (0%) | |
시구정촌의회[3] | 6석 / 29,608석 (0.0%) | |
당원 수 | 95명 (2021년 7월 28일 기준)[4] | |
공식 사이트 | http://www.daichi.gr.jp/[5] | |
SNS |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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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정당. 자유민주당에 있던 스즈키 무네오(鈴木宗男)가 탈당하여 세운 정당. 스즈키 무네오는 자민당에 있긴 했지만 성향은 민주당에 가까웠고, 홋카이도가 민주당 강세 지역임과 동시에 자유민주당에서 홋카이도를 차별한다는 이유로 지역 정당을 만든 것이다.홋카이도 지역정당이니만큼 일부 도내 지방의회에서 의석을 보유하고 있다. 쿠시로시, 이시카리시, 키요사토초, 앗케시초에서 1석씩, 비호로초, 네무로시에서 2석을 보유중이다.
2. 성향
본사는 도쿄에 있지만 홋카이도 중심의 정치를 추구하는 지역정당이다. 또한 일본공산당과 같이 쿠릴 열도에 대해서는 가장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정당이기도 하다.3. 역사
홋카이도 지역정당이고 보수정당이지만 리버럴 성향도 가지고 있어 민주당과 친하게 지냈다. 이에 따라 국민신당과 더불어 민주당과 연립정권을 구성하던 정당이었지만, 2010년 제22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한 석도 못 얻고 내려갈 정당은 내려가더니, 2012년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아예 홋카이도 비례구에서 한 석만 건지고 지역구 전멸이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2013년 제23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를 앞두고 조직 재정비나 전국정당화를 목표로 뛰고는 있지만, 상황이 많이 좋지 않다. 홋카이도에서도 자유민주당 세가 강해질 뿐만 아니라,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비례대표는 권역 비례대표가 아니라 전국 비례대표라서 당선까지는 아주 많은 득표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한 석도 획득하지 못했다.
2014년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결국 아래의 스즈키 무네오의 딸 스즈키 다카코를 민주당 비례 1번(...) 및 홋카이도 제7구 후보로 공천하는 조건으로 비례 후보를 내지 않고 민주당 후보들을 지원해주기로 했다. 다카코는 선거구에서는 패했지만 중복입후보한 홋카이도 지역 비례대표로 당선되었다.
2016년 제24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는 후보를 공천하지 않고 자민당 후보를 지원했으나, 민진당 후보와 약 8,500표 차이로 낙선했다.
2017년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홋카이도 비례대표에 2명이 입후보했으나 모두 낙선했다. 반면 자민당 후보로 출마하기 위해 신당대지 대표대리직을 사임한 스즈키 다카코는 당선되었다.
2019년 통일지방선거에서는 홋카이도 지방의회에서 6석이 당선되는 데 그쳤다. 또한 제25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는 스즈키 무네오 당대표가 일본 유신회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한다.
이후 스즈키 대표가 당선되어 참의원 의석 보유 정당이 되었다.
2021년 2021년 일본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홋카이도 제2구 보궐선거에 출마한 유신회 후보를 추천했지만 3위로 낙선했다. 8월 22일 네무로시 시의회 선거에서 3명의 공인 후보를 옹립해 2명이 당선되었다.[7]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독자적인 비례대표 후보를 내놓지 않고 홋카이도 지역구에 출마한 유신회 후보를 추천했다.
4. 특징
이 정당에 있는 유일한 중의원이었던 스즈키 다카코는 당선 당시 나이가 만 27세 5개월로 현직 일본 국회의원(중의원, 일본 참의원) 중 최연소 당선자이다.[8][9]홈페이지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를 할 당시에는 홋카이도 비례대표 선거구에서 다른 사람이 당선되고 타카코는 2번이었는데, 1번으로 당선된 사람이 일본 대법원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상실하여 2013년 6월 1일부로 의원직을 승계받았다.
2014년의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에서 민주당에 입당, 홋카이도 제7구에서 출마. 자민당 후보와 표 차이가 225표의 근소한 차이로 패했지만, 비례 홋카이도 블록와 같이 중복 입후보 했기 때문에 재선하는데 성공한다.
2016년 민주당이 재보궐선거로 일본공산당과 손잡자 민주당에 탈당서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민주당 측은 탈당을 받아들이지 않고 제명하였으며 이후 스즈키 타카코는 무소속으로 자민당과 같은 회파에 참가하여 의정 활동을 하고 있다.
정치관으로는 일본 헌법의 개헌을 찬성하고 일본의 핵무장에 대해서는 '미래에 검토해야 한다.'고 발언하며, 경제관에서 일본의 TPP 참여에 반대한다.
대표인 스즈키 무네오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2010년에 유죄판결을 받아 2017년 6월까지 선거운동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 7년 동안은 선거운동이 금지된 사람이 당수인 유일한 정당이었다. 성을 보면 짐작했겠지만, 스즈키 다카코는 스즈키 무네오의 딸이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신당대지의 대표 대리를 맡았었다.
허나 최근엔 다카코가 신당대지로 되돌아올 가능성은 적어진 상태이다. 2017년 자민당 입당 이후로 방위대신 정무관, 부간사장으로 기용되었고 2021년 기시다 내각에서는 외무부대신으로 기용되는 등 자민당에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은 상태인데 굳이 1인정당이라 집권 가능성은 커녕 연립여당이 될 가능성도 적은 신당대지로 되돌아와 정치 커리어를 스스로 꼴 리가 없다. 실제로 다카코는 자민당 입당 후 홋카이도 7구 출마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고 49회 총선에선 일단 현역 이토 요시타카가 지역구로, 다카코가 비례로 출마하지만 이토가 70대의 고령이라 50회 총선쯤에서 지역구를 가져오면 그때는 5선이니 국무대신 입각의 가능성도 있다.[11]
5. 관련 문서
6. 둘러 보기
[1] 경제적으로는 부의 재분배도 주장한다. (일본이 왕국이라 잘 사용되지는 않지만)철학적으로 접근하자면 '우파 공화주의'의 공동체관과 비슷하다.[2] 한국의 광역의회에 해당한다.[3] 한국의 기초의회에 해당한다.[4] #[5] 제25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기간 이후 스즈키 대표의 개인 선거 페이지로 리다이렉트중[6] 2017년 이후로 쓰이지 않고 있다.[7] #[8] 첫 당선 당시부터 8년이 지난 3선의원이 된 현재까지 현직 중의원 중 최연소 의원으로 있는 중이다. 참고로 현직 제48대 중의원 의원 중 최고령은 교토부 제1구의 이부키 분메이 의원이며, 일본 참의원에서 최고령 의원은 가타야마 도라노스케 현 일본 유신회 공동대표이다.[9] 참고로 일본의 역사상 최연소 국회의원은 2000년 제4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만 25세 4개월의 나이로 당선된 하라 요코(原陽子)이다. 대한민국에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만 26세로 역대 최연소 대한민국 국회의원 당선 기록을 가지고 있다.[10] 주소지가 같다. 즉 부녀가 같이 살고 있다는 뜻.[11] 일본에서 국무대신 입각은 일반적으로 6선 이상은 되어야 노려볼 수 있고 총리는 7선 이상 원로쯤 되어야 도전해볼 수 있다. 그러나 다카코는 세습 정치인이기 때문에 그보다 낮은 선수인 5선 정도로도 국무대신을 생각볼 수 있다. 실제로 고이즈미 신지로가 4선으로 환경대신을 한 바가 있지만 진외증조할아버지(마타지로), 할아버지(준야), 그리고 총리 출신 아버지(준이치로)에게서 4대째 세습받은 도련님이었다. 아베 신조 역시 총리 하기에는 한참 선수가 낮은 5선으로 총리가 되었는데 외할아버지와 작은외할아버지가 전직 총리였던 기시 노부스케, 사토 에이사쿠에 아버지 아베 신타로도 고위급 정치인이었던 세습 정치인이었고, 6선 의원으로 총리가 된 후쿠다 야스오도 전직 총리 후쿠다 다케오의 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