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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릴란드 공화국 Jamhuuriyadda Soomaaliland جمهورية ارض الصومال | Republic of Somaliland | |||||
<rowcolor=white> 국기 | 국장 | ||||
<colbgcolor=#006d21><colcolor=white> 국가 | 오래 평화롭게 (Samo ku waar) | ||||
면적 | 176,120km² | ||||
인구 | 3,508,180명(2017년) | ||||
민족구성 | 소말리인 90%, 기타 10% | ||||
수도 | 하르게이사(Hargeysa) | ||||
최대 도시 | |||||
정치 체제 | 대통령제[1], 공화제, 양원제[2], 다당제[3] | ||||
대통령 | 무세 비히 압디 | ||||
부통령 | 압디라흐만 압달라히 이스마일 사일리이 | ||||
GDP(PPP) | GDP | $70억[A] | |||
1인당 PPP | $1,530[A] | ||||
공용어 | 소말리어, 아랍어 | ||||
종교 | 이슬람 99% 기타 1% | ||||
시간대 | UTC +3 (소말릴란드 전 지역) | ||||
통화 | 소말릴란드 실링 | ||||
ccTLD[6] | .so[7] | ||||
주요 사건 | 1960년 6월 26일 (영국으로부터 독립) 1960년 7월 1일 (소말리아와 합병) 1991년 5월 18일 (소말리아로부터 일방적 독립) | ||||
여행경보 | 여행금지: 전 지역[8] | ||||
링크 | 소말릴란드 공화국 정부 |
위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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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수도는 하르게이사(Hargeysa)이며 국교는 이슬람교로, 표어는 샤하다('알라 이외의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이다')와 '정의, 평화, 자유, 모두에게 민주주의와 성공'.
주로 하르게이사 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할 수 있다. 입국 시 소말릴란드 출입비자가 필요하다.[9]
독립한지 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국제적 입지는 미승인국가이며 2024년 기준 에티오피아와 대만만이 독립 국가로 승인했다.
2. 상징
2.1. 국기
초록색은 번영, 하얀색은 평화, 빨간색은 독립에 쏟은 희생. 초록 띠에 샤하다가 쓰여 있으며, 하얀 띠의 검은 별은 소말리아로부터의 이탈 의지를 상징한다.2.2. 국가
자세한 내용은 오래 평화롭게 문서 참고하십시오.3. 역사
소말리아와 지부티의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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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가디슈 술탄국 | 아주란 술탄국 | 오만 제국 | 이탈리아령 소말릴란드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 | 신탁통치령 소말리아 | 소말리아 민주 공화국 | 소말리아 연방 공화국 | 내전 |
1960년 6월 26일 영국령 소말릴란드는 5일 후인 7월 1일에 독립하는 이탈리아령 소말릴란드와 연합할 계획으로 영국으로부터 잠깐 독립했고, 이탈리아령 소말릴란드가 독립하면서 소말리아로 합쳐졌다.
하지만 하르게이사를 비롯한 전 영국령 소말릴란드 지역은 모가디슈를 비롯한 소말리아 남부에 비해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소외되어 둘 사이 갈등이 빚어졌다. 이런 갈등은 1969년에 무함마드 시아드 바레 대통령이 쿠데타로 집권하면서 심화되었다. 바레는 오가덴 전쟁의 여파로 소말리아 전역이 혼란스런 마당에 자신의 씨족인 다로드-마레한 족에게 권력을 몰아주고 다른 씨족을 차별하기 시작했다. 이에 격렬하게 반발한 여러 씨족들 중 3대 씨족인 하비에 족(통일소말리아회의 / USC, 1987년), 다로드 족(소말리아애국운동 / SPM, 1989년), 이사크 족(소말리아국민운동 / SNM, 1981년)이 각자 반군을 구성하고 연합해 바레 정권에 대항했다.
1986년 시아드 바레가 친위대를 동원해 다른 씨족에 대한 탄압에 박차를 가하자 내전도 심화되었는데, 1987년 소말리아 정부는 이사크 족을 상대로 체계적인 씨족 학살을 주도해 1989년까지 소말릴란드 지역에서 수만 명의 이사크 족이 사망하고 50만에 달하는 난민이 에티오피아로 몰렸다. 1988년 5월, 소말릴란드의 중심 도시(소말리아 전체에서도 둘째, 셋째 가는 도시)인 하르게이사와 부라오가 소말리아 공군에게 폭격당해 거의 완전 파괴되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SNM은 구성원이 이사크 족인 정치 투쟁에 가까웠으나, 학살 이후 씨족 단위로 SNM에 가담하게 됐다.[10]
1991년 반 시아드 바레 연합은 수도인 모가디슈를 장악하고 바레 정권을 붕괴시켰지만 내부의 권력 투쟁이 격화되면서 결국 내란으로 번졌다. 이 와중에 1991년 SNM은 독립을 선언했고, SNM의 지도자였던 압디라흐만 아흐메드 알리 투르(Abdirahman Ahmed Ali Tuur)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이 당시만 해도 소말릴란드는 소말리아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는데, 정부의 통제력은 약했고 관세와 같은 이권을 두고 씨족끼리 전투가 빈번했다. 결국 1992년 베르베라 항구의 이권을 둘러싸고 일어난 내전에서 크게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1993년, 보라마(Boorama)에 소말릴란드 전 씨족이 모여 3달간의 평화협상을 벌였는데, 협상 결과 평화와 안정을 위해 각 씨족이 자발적으로 민병대를 해산하고 무기를 회수해 소말릴란드 군경으로 재편성하기로 합의하며 역사적인 타협에 성공한다. 그리고 원로들의 투표를 통해 바레의 쿠데타 이전까지 소말리아의 총리였던 무함마드 하지 이브라힘 에갈(Muhammad Haji Ibrahim Egal)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씨족 원로 단위에서 무장 해제를 결의했지만, 실제로 무기를 쥔 민병대 지도자들이 결의안에 협조할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에갈은 자신의 씨족 하바르 아왈(Habar Awal)의 인맥과 자금을 이용해, 민병대 지도자와 개별 협상을 진행하고 테크니컬과 같은 중화기를 사들이는 식으로 협조를 얻어냈다. 이러한 무장 해제는 대부분의 씨족에서 원만하게 진행됐으나, 이전 집권 세력이던 하바르 유니스(Habar Yunis) 씨족은 대통령 선출 과정 그 자체, 부통령으로 자신들의 술탄(씨족 지도자)을 선정해달라는 요구가 반영되지 못한 것, 특히 베르베르 항구 및 하르게이사 공항의 관세 이권이 정부로 이양되는 것에 반발해 무장 해제를 거부했다. 결국 1994년 또다시 내전이 발발했는데, 이 역시 1996년 10월 하르게이사에서 열린 평화협상 타결로 진정되었다. 이때 소말릴란드 헌법이 정립됐으며, 복수정당제, 무장 해제 완수가 결의된다. 2001년 주민 투표를 통해 소말릴란드 헌법이 통과되고 2003년 최초로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이래, 무력을 동반한 큰 분쟁은 벌어지지 않아 평화가 이어지고 있다.[11]
2024년 1월, 에티오피아가 베르베라 항 사용 및 소말릴란드 해안에 대한 접근권을 대가로 소말릴란드의 독립을 공식 승인하겠다는 내용의 MOU를 체결했다. 만일 합의한대로 양국의 관계가 증진된다면 에티오피아는 UN 회원국 중 최초로 소말릴란드의 독립을 인정하게 된다.[12] 소말리아, 이집트와 중국은 에티오피아 - 소말릴란드 간 MOU 체결에 대해 항의하였다.
4. 언어
공용어는 소말리어와 아랍어이다. 아랍어는 표준어도 쓰이지만 방언이 더 널리 쓰이는데, 예멘 방언과 유사한 편이다. 그리고 영국의 지배와 영향으로 영어도 쓰이고 있다.5.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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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카보베르데, 세이셸, 모리셔스, 나미비아, 보츠와나,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과 함께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한 곳. 소말리아로부터 독립 선언을 하며 떨어져 나왔지만, 현재 군벌이 할거하며 잦은 내란과 내전으로 무법천지 무정부 상태가 된 소말리아보다는 훨씬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독립한 이후 각 씨족들이 유혈충돌을 막기 위해 상호 합의 하에 무장해제를 단행했고, 2001년에 다당제를 도입하였다. 그 후 2003년 대통령 선거를 실시해 행정부를 구성, 2005년 총선거를 통해 의회를 구성하였다. #
정당을 3개로 한정하는 독특한 정당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10년마다 이 3개의 정당을 공인하기 위한 '정당 공인 선택' 선거를 치른다. 이는 정당의 수를 제한함으로써 각 씨족과 지역별로 정당이 우후죽순 난립하는 것을 막아 정치적 분열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으로, 각 씨족이 자신들의 이익만을 외치는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공인3당 내에서 대화하고 협력하도록 유도하는 제도적 장치다. 정당공인선거에는 여러 비공인정당이 참여할 수 있지만 득표수 1,2,3위에 드는 정당만이 공인받아 '정당'으로 활동할 수 있는데, 이때 이 1,2,3위 정당은 전국득표율 1,2,3위와 함께 전국의 6개 권역(선거구) 중 4곳 이상의 권역에서 각 20% 이상씩 득표해야 한다. 이 또한 정당들이 한 씨족이나 지역의 몰표를 받아 1,2,3위에 진입하여 씨족이기주의와 지역주의를 심화하는 행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의회 총선거 시 후보들은 공인3당 중 하나의 당에서 공천을 받아 꼭 특정 정당 소속으로 출마해야 하며, 대통령 선거에서는 공인3당에서 후보를 1명씩 내세워 총 3명의 대선후보가 경쟁하게 된다.
따라서 10년마다 한번씩 치르는 정당공인선거가 대통령 선거, 의회 총선거, 지방선거와 함께 매우 중요한 선거로 손꼽히고 있다. 제도권 정당이라도 정당공인선거에서 3위 이내에 들지 못하면 한순간에 비공인정당으로 굴러떨어져 정치생명이 끊길 수 있기 때문. 2023년 기준 공인3당은 대통령이 소속된 쿨미예 평화통합개발당(쿨미예당), 의회 원내 제1당인 애국당(와다니당)[13], 만년 제3당이지만 가장 오래된 정의복지당이다.
입법부는 양원제로, 하원인 '의회'와 상원인 '원로원(구르티, Guurti)'으로 구분된다. 하원인 '의회'는 전체 82석으로, 국민 직선으로 선출된 의원들로 구성하며 임기는 5년이다. 총선거는 권역별 개방명부 비례대표제로 실시되며,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누어 정당별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한다. 공인된 정당이 3개밖에 없으므로 선거 참여 정당도 3개이고 무소속 출마가 허용되지 않으므로 의원 후보들은 모두 3당 중 한 곳에 소속되어 있다. 국민의 직접선거로 치른 총선은 2005년에 처음 있었는데, 여러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고 선거 절차에 관한 정치적 논쟁이 일어나면서 다음 총선을 치르지 못한 채 표류한 끝에 16년여 만인 2021년에 와서야 두 번째 총선을 실시할 수 있었다. 선거 결과 3당이 6개 권역에서 각각 고르게 당선자를 내며 의석을 배분받았다.
원로원(상원)은 의회(하원)와 똑같이 전체 82석으로, 각 씨족 대표들을 인구비례에 따라 선임하는 방식으로 구성하며 임기는 5년이다. 원로원을 뜻하는 현지 명칭 '구르티'는 원로들이 특별히 모이는 회의란 뜻으로, 유래는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상설 회의는 아니었다. 현대 소말릴란드의 구르티는 1988년 바레의 학살 이후 이사크 족이 소집한 원로 회의에서 유래했다. 이후 1993년 평화 협상으로 상설화됐으며, 이사크 족뿐만 아니라 모든 씨족의 원로가 원로원에 참여하게 됐다. 원로원은 분쟁을 조정하거나 의회가 통과시킨 법안을 심사하는 일을 맡는다. 또한 원로원은 소말릴란드라는 국가의 정통성을 상징한다. 전통적으로 씨족사회였고 영국 식민지 시대에도 영국은 구 체제를 인정하는 간접적 통치를 했기 때문에 하나의 통일된 국가로서의 정통성이 부족했다. 원로원을 씨족의 대표로 채워 원로원은 소말릴란드의 씨족들을 대표하는 기관이 됨으로서 국가의 정통성을 상징하게 된 것이다.
대통령은 국민 직선으로 선출하며 임기는 7년이다. 2003년 첫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으며, 연합인민민주당의 다히르 리얄레 카힌 후보가 당선되었다. 2010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현직인 다히르 라얄레 카힌 대통령이 집권 연합인민민주당의 후보로 재선에 도전한 가운데 제1야당 쿨미예 평화통합개발당의 아흐메드 모하메드 모하무드 "실라뇨"[14], 정의복지당의 파이살 알리 와라베가 대항마로 출마했다. # 선거 기간 동안 푼틀란드에서 넘어온 민병대가 투표소를 습격하면서 4명이 사망하는 등 잡음이 일기도 했으나, # 선거 결과 평화통합개발당의 실라뇨 후보가 49%의 득표율로 당선되고 카힌 대통령이 패배에 승복하면서 여야 간에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달성하는 성숙한 민주주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
2017년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카힌 전 대통령이 소속된 연합인민민주당은 분열하여 정당공인선거에서 낙제점을 받아 2011년을 끝으로 해산되었고, 정의복지당에서 갈라져 나와 2012년에 창당한 신생정당 '애국당(Xisbiga Waddani, 와다니당)'이 새로 공인을 받으면서 정당구도에도 변화가 일었다. 선거에는 쿨미예당의 무세 비히 압디, 와다니당의 압디라흐만 모하메드 압둘라히, 정의복지당의 파이살 알리 와라베 3인이 출마했으며, 주된 논제는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독립국 지위를 승인받을 것인가?"였다. # 선거 결과 압디 후보가 55.1%를 득표, 40.73%를 득표한 압둘라히 후보와 4.17% 득표에 그친 와라베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며 평화통합개발당이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다만 부정선거 시비가 일면서 논란이 불거졌는데, 관련 시위에서 충돌이 일어나 2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
2021년 5월 31일, 상술한 것처럼 2005년 의회 구성 이후 무려 16년 만에 두 번째로 의회 총선거를 치렀다. 연이은 가뭄 등 여러 사회문제를 비롯해 선거 절차에 대한 논쟁으로 계속 지연됐었는데, 지방선거나 대통령 선거는 어떻게든 치렀으나 총선거는 계속 미뤄졌고, 16년 만에야 시행된 것. 65.3%의 투표율을 보여준 총선은 두 야당 애국당(와다니)과 정의복지당(UCID)의 선거연대에 따른 집권 평화통합개발당(쿨미예)의 패배로 귀결되었고, 관련 부처 내 권력 이양 절차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선거는 국제 선거 감시단의 감독 하에[15] 이루어졌으며, 알샤바브가 준동하는 상황에서도 폭력 행위에 대한 보고는 없었다. # 해당 선거 통계 자료
2017년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세계 최초로 홍채 인식을 통한 투표자 신원 확인 절차를 도입하여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6. 경제
비공식 환율은 달러 당 6,000에서 6,500 실링 수준.[16] 화폐 제조 기술이 없어 영국에서 수입 해오는 중이며, 인플레이션은 나날이 심해지고 있지만 영국과의 관계 개선 및 기술 탐구에 중점을 두고 있다.사우디아라비아나 여러 나라에 양, 염소, 낙타 등의 가축을 수출하는 것이 경제에 도움이 되고 있다. 소말리아 측에서 이 문제로 사우디아라비아에 항의했으나 가축 수입을 잠시동안 중단했다가 재개했을 뿐이었는데, 사우디아라비아의 입장은 소말릴란드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도 없고 가축을 싼 값에 사는 것뿐이니 소말리아가 그 값에 팔 수 있다면 사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소말리아도 연방 자치 행정구역인 푼틀란드를 통해 가축을 싸게 팔고 있다.
또한 레바논,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에서 과일을 수입하면서 아랍 동맹의 여러 나라와 경제적인 교류를 하고 있다. 아직까지 그들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와 별개로 관계는 매우 우호적이다.
현재 미승인국이라는 현실과 기술의 부족으로 인해 소말릴란드 실링의 가치가 매우 떨어지기에 국민의 25%가 전자화폐를 쓸 정도로 전자화폐 거래가 활발하다고 한다.#
에티오피아가 소말릴란드 베르베라항에 출자했다.#[17]
2021년 5월, DP World라는 두바이 소재 기업이 소말릴란드와 베르베라 항구에 한화 약 5,000억 원(4억 4,000만 달러) 규모의 항구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소말릴란드에 대한 투자 금액으로는 역대 최대이며, 지역 무역 중심지로 개발될 가능성이 매우 커진 상황이다.#
7. 사회
2021년 9월, Arte에서 취재한 소말릴란드 # |
소말릴란드 정부의 치안 유지를 위한 노력과 소말릴란드 해군의 활약 덕택에 과거 해적으로 득만 봤던 푼틀란드와 다르게 인근 영해에서의 해적으로 인한 피해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 대통령 선거 등 선거제도도 순탄하게 돌아가며, 민주 국가로서의 외양을 갖추었다. 무엇보다 소말리아나 아프가니스탄, 예멘등 현재 치안이 최악인 막장국가들과 차원이 다른 게, 소말릴란드의 씨족들은 평화를 위하여 스스로 무장을 해제했다. 이는 상당히 의미가 있는 일인데, 아프가니스탄 평화유지군으로 간 한국군 채수문 중령(당시 계급. 대령으로 예편)의 글을 보면 각 부족에게 무장을 해제할 것을 권유해도 다른 부족들이 먼저 해제하면 따르겠다며 양보하려 들지를 않고 그러다가 다시 무력 충돌을 벌였다고 한다. 무력 충돌 벌이던 이유도 사냥하다가 사냥감을 두고 싸우다가 한 마을 사람이 총에 맞아 죽어 그 마을 사람들이 보복으로 가해자 마을에 무차별 기관총을 발포하여 사냥으로 인해 싸우던 것이 결국 수십여 명이 죽는 일로 벌어지는 게 흔하다고 한다.
이에 견주면 자발적으로 무장을 해제한 이곳은 평화를 위하여 엄청난 양보를 한 셈이며, 소말릴란드 씨족들이 무장을 해제했을 당시 유엔 사무부에서 일하던 영국인 데이 보일은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수십여년 동안 내전이 일어난 지역에서 아무리 회유를 해도 무장해제를 시키기가 어려운데 자발적으로 무기를 내려놓은 곳은 소말릴란드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19]
여기도 90년대 중순만 해도 각 씨족들이 AK-47과 RPG-7을 위시한 화기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1993년에 서부의 보로마라는 지역의 장로가 서로들 안 한다면 우리 먼저 무장을 해제하겠다며 솔선수범을 보이면서 서서히 평화가 찾아오게 되었다. 이 씨족을 시작으로 다른 씨족들도 차츰 무장을 해제했고, 어느 씨족이 총기를 독점하여 지배권을 행사할 것을 막고자 UN 평화유지군의 협조로 10년 가까이 천천히 설득해 가며 총기를 회수하게 하여 7만 정이 넘는 총기와 8천 정이 넘는 RPG-7, 900대가 넘는 기타 무기들을 회수, 유엔 측에서 관리하게 되었다. 모든 총을 다 회수하는 것은 아니고 아직도 사냥으로 벌어먹는 곳이 있다보니 오래된 엽총 같은 것에 한하여 총기 소유자를 확실히 등록하고 소유를 인정하고 있다. 이것도 사람을 해칠 수야 있지만 AK-47과 RPG-7에 견주자면 대량 살상 같은 것은 어렵기에 허락한 것이다. 이들이 등록한 총기에는 100년도 넘는 제자일까지 있다고 한다.
2010년, 소말릴란드를 방문한 아사히 신문 취재진이 보로마 지역 장로를 찾아갔는데 이젠 나이가 들어서 은퇴하여 고향 마을에서 요양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는 먼저 무장을 해제한 것에 대한 질문을 받자 우리는 지겹도록 싸웠지만 이제 후손들은 더 이상 싸우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었다고 밝혔으며, 소말릴란드 정부에서도 국가의 안정에 기여한 공을 인정하여 훈장을 수여했다. 이후 이 인물은 2012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2010년 당시 하르게이사를 방문한 일본 취재진들의 증언에 의하면 환전상이 거리에서 총없이 탁자를 앞에 두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 사람과 인터뷰를 하니 자신도 여기서 10여 년전만 해도 총으로 무장하고 건물에서도 철망에 들어가서 일해야 했으며 지금처럼 이렇게 거리에서 비무장으로 대놓고 환전상을 한다면 즉시 무장 강도에게 총 맞아 죽고 돈은 다 털렸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젠 여긴 소말리아와 달리 평화롭다며 모가디슈에서 어디 이럴 수 있냐고 자랑했는데, 실제로도 모가디슈에서는 거리에서 총 맞아 죽기 싫으면 방탄복 입고 총 들고 나가야 하며 정말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밖에서 나돌아다닐 생각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 일본 취재진들도 이 환전상의 말에 공감하면서 소말리아에서는 총 소리가 그치지를 않는데 이쪽은 전혀 들리지가 않으니 정말로 같은 나라였는지 모를 정도라고 보도했다. 그 밖에도 대통령 청사를 경비하는 병력이 4명에 불과했으며, 경찰이 퇴근할 때 총기를 경찰서에 놓아두고 가야 한다고도 보도했다. 아프리카에서 소말릴란드 말고 이렇게 하는 나라는 남아공밖에 없으며 이집트나 튀니지, 모로코 같이 소말리아보다 훨씬 안전한 북아프리카 나라들조차 경찰이 총기를 집에까지 가지고 갈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다만 이렇게 안정을 찾고 있기는 해도 알 카에다로 보이는 것들이 날뛰며 테러를 벌이고 있으며, 동부 국경지대인 사낙·술 지역을 두고 1998년 푼틀란드 독립 직후부터 푼틀란드와 분쟁이 있다. 씨족적으로는 이쪽에 더 가깝다는 푼틀란드의 주장과 옛 식민지 경계선에 따라 국경을 정하자는 소말릴란드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데다 양측으로부터 모두 독립적인 연방주의 지역 군벌까지 있어서 상황이 복잡하며, 2008년 12월에는 하르게이사에서 자폭 테러가 벌어지기도 했다. 2014년 현재는 두 지역 모두 소말릴란드 측이 우세한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분쟁이 완전히 해결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소말릴란드 입장에선 식민지 시절 국경선을 주장하는 것이 정통성과 국제적 합의 측면에서 유리하다 보고 있으므로[20] 양보하기 힘든 사안이다.
국민들이 소말리아로 건너가 해적이 되기를 자처하거나 인재가 해외로 유출되는 현상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이야 대부분의 빈곤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소말릴란드 정부는 국제적으로 미승인국가로 취급되어 국제 투자 등에 한계가 많아서 이렇다고 해명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해적 우호 소말리아의 자치지역인 푼틀란드의 경제 상황이 훨씬 나아져, 더 심해지고 있다. 푼틀란드가 이렇게 앞선 이유는 소말릴란드와 달리 독립을 요구하지 않기에 여전히 내륙에서도 내전이나 무장 세력이 강도 짓을 벌이는 소말리아에서 안전한 경제지역이라고 하여 소말리아 곳곳에서 투자가 쏟아지고 소말릴란드와 달리 국제적 투자를 합법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론리플래닛 아프리카 편 2013년판에서 사람들이 많이 안 가는 나라(리비아[21], 차드, 남수단, 앙골라, 상투메 프린시페 등)는 아예 빼버렸다. 그리고 소말리아 역시 수도 모가디슈를 비롯한 지역은 빼버렸다. 원래 론리플래닛은 자유여행자가 다니는 게 도저히 힘든 지역 여행정보는 아예 빼버린다. 그런데 소말릴란드는 하르게이사의 도로와 호텔, 식당 등이 매우 상세하게 나와 있다. 남수단이나 앙골라 등 몇몇 멀쩡한(?) 나라들보다 오히려 (치안적으로) 낫다고 간주한 것이다.
2018년 1월, 소말릴란드는 강간범들을 처벌하는 법안을 하원에서 통과시켰고, 상원에서도 통과될 예정이다. # 2013년부터 시민단체들이 하원과 교섭한 결과로, 씨족 공동체 간의 관습법인 헤르(Xeer)가 담당하던 영역이 점차 현대적인 법 체계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 헤르 자체가 이 일대의 전근대적인 성 인식[22]을 반영하는 데다가, 공동체 단위의 합의와 배상을 중시하기 때문에 피해자가 속한 공동체에 배상금을 지불하거나 강간범이 피해자와 결혼하면 무마되는 등 당사자의 인권이 공동체의 편의에 묻히고 공론화가 일어나지 않는 문제가 있다.
8. 외교
자세한 내용은 소말릴란드/외교 문서 참고하십시오.9. 군사
자세한 내용은 소말릴란드군 문서 참고하십시오.[1] 국민 직선제 선거로 선출.[2] 총원 82석의 '의회'(하원)와 총원 82석의 '구르티(원로원=상원)'. 의회는 국민 직선으로 구성, 구르티는 각 씨족 대표들을 인구비례에 따라 선임하여 구성.[3] 3당제. 10년마다 정당공인선거를 시행해 '전국득표율 1,2,3위 및 권역득표율 6곳에서 각각 20% 이상' 조건을 만족한 정당 3곳만이 공인되어 활동 가능.[A] https://www.govsomaliland.org[A] [6] 국가코드 최상위 도메인(country code top-level domain).[7] 소말리아 와 같다.[8] 현재 소말릴란드의 상황은 최대 여행유의까지 가능할 정도로 그나마 안전하다. 소말릴란드의 자체적인 치안 문제 보다는 소말릴란드를 통해 소말리아로 들어갈 수 있고 대한민국은 소말릴란드를 미승인한 상태이므로 여행금지이다. 외교부 해외안전여행 홈페이지에 있는 세계지도를 보면 언제부턴가 소말릴란드 경계선을 굳이 그어놓은 것을 보면 어느정도 염두에는 둔 것 같아보인다.[9] 소말리아 출입비자는 사용할 수 없으며 비록 둘 다 여행금지 국가이긴 하나 한국 여권 소지자들에게 도착 비자를 발급한다.[10] 폭격에 사용된 전투기들은 하르게이사 공항에서 이륙했기에, 이 학살은 전투기가 자기 공항이 위치한 도시를 폭격하는 초유의 사례로 남게 됐다. 하르게이사에선 근처 추락한 소말리아 공군의 MiG-17을 활용해 당시 학살에 대한 추모비를 세워놨다.[11] 다카노 히데유키, 『수수께끼의 독립국가 소말릴란드』, 글항아리, 2019, p. 404-409, 467-474, 499-505[12] #[13] 소말리어 당명 'Xisbiga Waddani'를 직역하면 '애국당'이지만, 영문명은 '소말릴란드 국민당'이어서 혼선이 생길 수 있다. 그냥 'Waddani(와다니)'당이라고 하거나, 두 단어를 합쳐 '와다니 국민당'이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14] '실라뇨(Silanyo)'는 소말리어로 '도마뱀'이라는 뜻으로, 모하무드의 별명이다.[15] 유럽연합이 공정선거 감시를 주도하였다.[16] 여담으로 1,000 실링 동전의 뒷면은 소말릴란드의 국장 대신 소말리아의 국장이 그려져 있다.[17] 참고로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내에서 드물게 정치, 사회적으로 안정된 편에 속하는 나라이다. 그만큼 발전의 기반은 있으나 문제는 내륙국가라 외국과의 교류를 위해 항구도시가 절실한 입장이다. 소말릴란드에의 투자는 이러한 맥락으로 보면 될 듯하다.[18] 도시의 개발도 소말리아보다는 잘 되어 있는 편이고, 최빈국이라서 국민들이 빈곤층이 대다수에 알샤바브와 정부군과의 충돌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소말리아에 비하면 이곳은 경제적으로도 비교적 안정되어 있는 개발도상국에 속한다. 또 반군과 해적이 활개를 쳐서 사실상 무정부 상태인 소말리아 본토와는 다르게 소말릴란드는 정부도 제대로 운영되고 있고, 법치 체계도 민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군과 경찰이 열심히 치안을 적극적으로 유지하려는 노력도 많이 기울이는 등 국가의 기능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19] 먼저 무장을 해제하기를 주저하는 이유는, 무장을 해제하면 이를 기회삼아 주변의 무장한 부족들이 공격해올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는 다에시의 위협 때문에 각 지방의 부족들과 민병대, 군벌 세력들, 정파들이 통합에 서명한 리비아가 있는데, 이마저도 부분적으로 이루어졌을 뿐 아직도 내전이 진행 중이다.[20] 1963년 아프리카 통일 기구(OUA), 현 아프리카 연합(AU)은 식민지 시절 국경선을 준수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문화나 민족을 따라 국경을 재조정하고는 싶지만, 그걸 실제로 착수했다간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답이 없어지기 때문.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 주UN 케냐 대사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21] 카다피가 물러나면서 입국이 자유로워졌다.[22] 예컨대 요르단 같은 경우는 강간범이 결혼하면 무죄를 해주던 악법을 2017년 8월 1일부터 폐지했는데 이게 아랍권에서 모로코, 튀니지, 이집트에 이어 4번째다. 이 4개국은 아랍권에서 제일 세속적인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