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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05 07:53:20

석금성

石金星
1907년 12월 3일 ~ 1995년 9월 3일

1. 개요2. 생애3. 가족관계4. 출연작 목록
4.1. 영화4.2. 연극4.3. 드라마
5. 수상경력6. 참고 자료

1. 개요

대한민국의 배우로, 본명은 석정의(희) (石丁義), 창씨명은 가야마 사다코(桂山貞子).

2. 생애

1907년 12월 3일 평안남도에서 서민의 딸로 태어났다. 일찍이 상경해 진명여학교를 다니다가 기생이 되었다. 이후 여러 요정을 떠돌다가 당시 토월회 전무였던 이서구 작가(1899~1981)에게 픽업되어 <추풍감별곡>의 추향 역을 맡으면서 연극배우로 데뷔했다. 이 작품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 선배 복혜숙과 쌍벽을 이뤘고, <희생하던 날 밤>과 <춘향전> 등지에 나오며 입지를 다져왔다. 1929년 김영환 감독의 영화 <약혼>에 나와 은막에 처음 얼굴을 내밀었지만, 크레딧상에 안 나올 정도로 주목을 못 받았다.

토월회의 일시 해체 후 남편 최승일과 함께 미나토좌의 신극부에서 활동하다가 태양극장, 신흥극단 등지를 옮겨다니며 주연을 많이 했고, 1937년 안석영 감독의 <심청>을 통해 영화계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상당수 커리어를 영화에 매진했고, 1945년 8.15 광복 후 1949년 문예영화 <마음의 고향>에 나온 이래 조연으로 많이 나왔는데, 주로 주모, 나쁜 계모, 독부와 같이 개성 있는 역할로 관객들의 주목을 받게끔 했다. 그러나 그 와중인 1965년 도박 스캔들이라는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1972년 <궁녀> 이후 별다른 활동이 없다가 1982년 정진우 감독 작품 <백구야 훨훨 날지마라>를 통해 흑산도의 악덕 포주 역으로 컴백해 노익장을 과시했고, 1985년 KBS1 <TV문학관> '사평역' 편을 시초로 TV 드라마에도 간간히 나왔다. 말년에는 생활고 때문에 홀로 서울 남영동 여관에서 살다가 1991년경 경기도 광명시로 정착했고, 1995년 9월 3일 오후 3시 45분에 광명 성애병원에서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 향년 88세.

3. 가족관계

1925년경 충청도 갑부 이충직과 결혼한 뒤 이듬해 장남 이택균(1926~2011)을 낳았으나 결혼 3년만에 헤어졌고, 이후 무용가 최승희의 오빠 최승일과 결혼해 2남 2녀를 뒀으나 1948년 남편과 자식들이 전부 월북해 소식이 끊겼다. 그러나 1991년에 일본에서 온 북한 잡지를 받고서야 소식을 알았는데, 막내딸 최로사는 북한에서 유명한 시인이 됐으며 막내아들 최호섭도 안무가로 일해왔다고 한다. 반면 전 남편에게서 나온 이택균은 1950~60년대에 배우로 활동했고, 아내 강숙희와 함께 '부부 배우'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4. 출연작 목록

4.1. 영화

4.2. 연극

4.3. 드라마

5. 수상경력

6. 참고 자료



[1] 홍콩 쇼브라더스와의 합작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