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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25 17:30:21

서효원(작가)

<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서효원
徐孝源
파일:external/cfs9.blog.daum.net/46ee5b003b0b0&filename=%EC%84%9C%ED%9A%A8%EC%9B%901.jpg
출생 1959년 11월 29일
강원도 원통
사망 1992년 12월 14일 (향년 33세)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가족 서희원 (형)
직업 무협 소설 작가

1. 개요2. 작품 특징3. 다작에 대한 일화4. 대표작5. 내용에 대한 비판6. 작가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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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1세대 무협지 작가.

성균관대 산업심리학과에 재학중이던 1980년에 판정을 받아서 수술을 받았고,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 시한부 생명을 선고받는다. 이후 암 치료비를 벌기 위해 당시 고소득직종[1]이었던 무협을 집필하기 시작, 1992년에 폐기종으로 사망할 때까지 단 12년 동안에 128편, 1000여권에 달하는 저서를 남겼다. 다만 집필 과정을 일일이 검증할 수 없기 때문에 기네스북에 오르지는 못했다.

2. 작품 특징

서효원이 이렇게 다작이 가능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우선 서효원 특유의 문장이 한몫한다. 건조체의 궁극에 도달한 듯한, 작중 묘사와 수식어를 최대한 배제하고 사건 위주로 서술한다. 때문에 한번이라도 서효원 작품을 읽어본 독자라면 누구나 '이거 서효원이 썼구나'하고 쉽게 알아본다.
황금의자.
무게가 천 근은 되어 보이는 황금의자 위에는 눈빛이 아주 차가운 중년인이 하나 앉아 있었다.
"구파일방소림사를 제외한 아홉 문파가 제왕성에 칼부리를 돌렸다고?"
그는 도열해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두 줄로 늘어선 사람들. 그들 사이에는 핏빛 융단이 길게 깔려 있었다.
융단의 길이는 백여 장.
제왕전.
거대한 대전은 무림계가 두려워하는 신위를 지니고 있는 장소였다. 구파일방 장문인 중 여기 와서 경배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지 않은 자 있겠는가?
이곳은 무림인들에게는 꿈의 장소였다. 아주 오랫동안. 그런데 이곳이 지금 바닥에서부터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위 예문은 '제왕성'의 첫머리다.

두번째는 플롯이다.
서효원은 많은 작품을 썼지만, 많은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즉 동일한 플롯을 조금씩 다르게 변주해 반복적으로 들려줬다[2]. 바로 부활이다. 일단 부활하려면 당연히 전에 죽었어야 하니까. 서효원 작품에서 주인공은 고생 정도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 거지반 죽었다 가까스로 살아난다. 물리적인 죽음이 아니라, 아이덴티티 상실이라는 변형도 즐겨 썼다. 서효원의 작품에 있어서 부활에 대한 집착은 본인이 시한부 생명 선고를 받고도 끈질기게 버티고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으며 이런 처절한 이야기 전개는, 특유의 건조한 문장과 결합해 하드보일드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하지만, 이러한 작풍을 뒤집어 말하자면, '또 그 얘기 또 그 문장'이란 소리다.무협의 아다치 미츠루 그래서 읽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타입이다. 참고로 생전에는 흔히 말하는 4대 작가[3] 가운데 흥행 파워는 한수 떨어질지 몰라도, 골수팬을 보유하고 있어 꾸준한 인기를 끌었다.

3. 다작에 대한 일화

한편, 서효원 다작에 관해서는 전설적인 일화가 많이 전한다.

4. 대표작

대표작은 말하는 사람마다 중구난방인데, 아무리 못쓴 작품도 중간은 가는 고른 퀄리티를 보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독자의 입맛에 달렸다고 보는 편이 옳다. 대체로 범작은 있어도 졸작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그냥 아무 작품이나 읽어보고 마음에 들면 다른 작품도 계속 읽으면 된다. 반면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도저히 못 읽겠다 싶으면 깨끗이 포기하자.[7] 다만 초기작과 후기작은 작풍이 미묘하게 차이가 난다. 도무지 웃지 않던 주인공이 '훗!'하고 웃게 되었다든지.

참고로 실명 시리즈와 천년 시리즈는 제목만 비슷할 뿐 세계관이 이어지는 작품은 아니다. 즉, 실명대협과 실명마제는 서로 상관없는 작품이다.
개중 이름난 작품을 꼽으면 다음과 같다.
스토리는 기억상실에 걸린 채로 대자객교의 사살로 활동하는[8] 이혈릉이 자객 활동을 하다 보니 작중 무림을 정복하려는 흑도의 비밀 단체와 싸우게 되며, 이 와중에 잃었던 자신의 기억과 출생의 비밀에 대해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작중 대자객교의 '교' 자는 위에서 볼 수 있듯이 마교 등에 쓰이는 가르칠 교() 자가 아닌 다리 교() 자다. 작중 대자객교가 풍뢰곡이라는 절벽을 잇고 있는 널빤지 다리라서 그렇다. 대자객교는 자객 집단으로 돈만 받으면 누구든 암살하는 집단이다. 일단 작중에선 악인이든, 선인이든 누구든 죽여 줍니다.라는 모토가 있고, 실제로 작중 어떤 정파 인물 한 명을 죽이는데 협조한 이혈릉이[9] 속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묘사가 있는데 후반부에선 반전으로 대자객교주인 귀수옹이 "사실 대자객교가 죽인 인물 대부분이 월영도에 가담한 악한 인물이었다." 는 말을 한다.[10]
다만 청부 대상에는 조건이 있는데 죽여달라는 이들이 최소 내공 일 갑자 이상의 고수여야 한다는 점, 그리고 최소 돈이 얼마가 든다는 점이 있다. 또한 만약 청부가 실패한다면 청부금의 두 배를 돌려준다고 한다.
후반부 반전으로 사실 이혈릉이 실종되었던 명나라의 황태자 주천업이었다는 내용이 나오지만 뻔한 반전이다. 중간에 이혈릉이 우연히 황제의 처소에 들어가서 황태자의 자상화를 보는데, 이때 황태자의 얼굴이 나랑 똑같다니? 하며 놀라는 장면이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최종보스인 만사부주를 죽인 이혈릉이 "저렇게 대단했던 인물도 죽으니 한줌 흙밖에 안 된다." 고 생각하는데 아마 시한부 인생인 작가의 생각을 투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대자객교 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로, 다른 작품들도 분명 해피 엔딩임에도 주인공이 슬퍼하거나, 허무함을 느끼거나, 혹은 무공을 버리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기껏 찾은 자신의 신분을 버리고 은둔하여 세상에 나오지 않는 장면이 꼭 나온다.
대자객교와의 공통점을 예로 들면 1. 작품 초반, 이혈릉/백무엽은 서생으로 변장하고 있다가, 자신을 호출하는 신호를 본다. 2. 이혈릉/백무엽은 암살 대상에 대한 편지를 전달 받는데, 이 편지는 책 속에 숨겨져 있었다.[11] 3. 편지의 내용은 각각 "사살에게!", "제십좌에게!" 로 시작하며, 편지 끝부분에 "너에게 일을 맡기는 이유는 네 경공/임기응변이 가장 뛰어나서다." 라는 말이 덧붙여져 있다. 4. 대자객교는 초반에 냉혼이라는 기녀가 이혈릉의 뺨을 때리는데 대설에서는 설향이라는 기녀가 백무엽의 뺨을 때린다.
내용과는 별개로 이 소설은 무협에 별 관심없는 일반인들에게도 유명한데 그 이유는 창세기전2가 이 작품의 스토리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맥빠들은 창세기전2의 기본 플롯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스타워즈와 만화 바스타드이며 기억상실이나 선악반전은 클리셰일 뿐이기 때문에 생억지라고 꾸준히 반론하지만, 대설의 스토리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은 마도가 천하를 통일하고 백도를 탄압하는 시대에 기억을 상실한 마도의 일인자가 백도의 구세주로 활약한다는 부분이다. 마도를 제국으로 치환하면 창세기전 2의 스토리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그리고 창세기전의 프로듀서인 최연규는 하이텔 무림동에서 활동하며 원래 무협 소설가를 꿈꾸었을 정도의 무협 소설 매니아였으며 무림동 활동 당시 서효원 작가의 열성 팬으로서 상당히 유명했기 때문에 이 작품을 모를 수가 없다.
백무영이란 소년은 자신의 원래 신분도 모른채 태어났을 때부터 여섯 명의 사부에게서 무공을 배우는데[17] 알고 보니 자신이 자객이 되기 위해 무공을 배웠다는 것을 깨닫는다. 작품이 흐름에 따라 사실 자신에게 무공을 전수해주던 일사부가 당시 백도 최고수인 잠풍이란 사실을 알게 되며[18] 이후 진짜 목표는 잠풍이 아니라 마도 최고수인 함백이지만 함백 암살에는 실패하고 주인공이 무공을 잃고 변황으로 도망친다. 스토리가 진행됨에 따라 자신이 과거 무림 최고수였던 백비룡의 아들이란 사실을 깨달으며[19] 사실 여섯 사부들은 백비룡을 죽인 원수인데, 백비룡한테 미안해서 백무영을 키웠다는 과거가 있다. 아무튼 최종적으로 자신이 백비룡의 아들이란 걸 깨달은 백무영이 최종보스를 물리치지만 무림맹주가 되어 달라는 잠풍의 요구를 무시하고 죽은 척하여 은둔하는 엔딩이다. 백무영의 뜻을 깨달은 잠풍이 큰소리로 "그 녀석, 결국 죽었구나!" 라고 말해주어 무림인들은 주인공이 죽은줄로 알고 있다.
제목답게 한국 무협중 드문 곤륜파 출신이 주인공인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곤륜파는 구파일방 소속 문파가 아닌, 변황에 있는 신비 문파로 나오기에[20] 다른 한국 무협 소설에서 나오는 곤륜파를 생각하면 실망할 수도 있다.
후술하듯이 2008년에 대자객교과 함께 영상노트에서 재출간해서 21세기에 종이책으로 나온 서효원의 세 작품중 하나다.

그밖에도 다른 작품이 많다. 다만 가끔 인터넷 서점에서 전자책으로 '이광주'라는 작가와 공저인 작품들이 있는데[23] 이런 작품들은 확실치는 않지만 이광주의 작품이지만 서효원의 이름만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문체나 스토리가 서효원의 기존 작품들과는 상당히 다르다.

유고집으로 '나는 죽어서도 새가 되지 못한다'가 있다. 서효원이 생전에 지은 시들[24]과 산문, 그리고 그를 추모하는 글을 실었다.

서울창작에서 90년대 말 상당수 작품을 재판했으나, 최근 들어 영상노트에서 재판한 작품은 대자객교와 대곤륜 밖에 없다. 그리고 청어람에서 재판한 작품은 실명대협 뿐. 2020년 기준 대자객교, 대곤륜은 절판되었다.

그리고 2011년에 와서 전자책으로 수많은 양의 저서를 다시 재판했지만 100% 전부 재판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서효원이 가장 처음 쓴 작품인 무림혈서가 전자책으로 없는데 아마 종이책을 구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무협 연구가로 활동 중인 그의 형 서희원은 서효원의 지인들과 뜻을 모아 출판사 서울창작을 설립하고 서효원의 작품들을 재간했으며 네이버 캐스트에서 무협에 대한 글을 연재 하고 있다.

5. 내용에 대한 비판

과거 한국 구무협을 대표하는 사람중 한명[25]이지만 2024년 독자들이 보기엔 내용이 거북할 수도 있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다.
매 작품마다 등장하는 이러한 장면은 작품의 긴장감을 떨어트리는데 한몫하였다. 예를 들어 실명대협에선 초반~중반까진 마교에 납치된 주인공이 수련한 끝에 대마종이 되고, 이후 무림 정복을 하다가 정파 측의 반격으로 무너지는 스토리가 연출되었다. 그러나 모든 걸 잃은 주인공이 좌절하는 스토리로 진행되다가, 절벽 밑에서 영약 한 번 얻고 다시 강자가 되어 상대방을 쓸어버리는 먼치킨 깽판물로 바뀐다.
이는 혈탑 역시 마찬가지인데, 초반엔 주인공이 1천일 동안 수련하다가 내공을 빼앗기고 폐인이 되는 과정을 자세하게 썼지만, 역시 뜬금없이 절벽에서 기연을 얻고 다시 강해진 주인공이 악당을 때려잡는 흔한 먼치킨 깽판물이 된다.
사실상 절벽에 떨어지는 것이 치트키나 인생 역전급으로 나온다. 주인공이 절벽에 떨어지는 장면이 나오면 "아, 이 녀석 엄청 강해지겠구나."할 정도이다.

그래서 이런 전개나 묘사는 후대 작가들이 비판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홍정훈 작가가 쓴 흑랑가인에선 고수가 되고 싶은 사람은 바로 절벽에 투신한다, 춘약이라고 속이고 그냥 평범한 가루를 뿌렸더니 플라시보 효과로 고수들이 여성을 덮치더라, 무협에서 전투 장면은 1줄이지만 성행위 장면은 수십줄이다, 구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산삼 밭을 만들고 죽었다[26]같은 서술이 나오는데 서효원 특징들을 비꼰 것이다.

그리고 유기선 작가가 쓴 극악서생에선 1부 중후반부에 병에 걸린 여성을 주인공이 치료해야 하는 상황에서, 주인공이 "옛날 무협에 나오는 성행위로 치료하는 짓은 하지 말고 다른 방법으로 치료하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서효원 소설에서 성행위로 병에 걸린 여자를 치료해주던 걸 비꼰 걸로 추정된다.

6. 작가 연보[27]

1959년 11월 29일 강원도 원통에서 출생
1966년 3월 금성국민학교에 입학
1968년 4월 간염이 발병하여 앓아눕다. 이후 타계할 때 까지 병마에 시달리는 삶을 살았다.
1972년 3월 서울대학교 사대부속중학교에 입학.
1975년 3월 동북고등학교에 입학.
1978년 3월 성균관대학교 산업심리학과에 입학.
1980년 3월 위암 판정을 받고 위, 비장, 췌장을 절개하는 수술을 받았다. 집도의로부터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 시한부 생명을 선고받았다.
1980년 9월 무협 소설 작가로 데뷔, 데뷔때 부터 월평균 1만여매의 원고를 집필하였다.
1982년 2월 성균관대학교 산업심리학과를 졸업하였다.
1987년 집필한 무협소설이 100종을 돌파하였다. 이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다.
1988년 5월 시 운동단체 '바우시낭송단'에 가담하여 1991년까지 단장을 맡았다.
1989년 4월 잠잠하던 병세가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1989년 12월 각종 합병증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990년 6월 만화 전문 프로덕션 '서울창작 패밀리'를 동료작가인 사마달, 야설록, 설화담, 유남광, 형인 서희원과 함께 설립하였다.
1990년 12월결핵 3기를 진단받았다.
1991년 11월 병원에서 가망없다는 통보를 받고 귀가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6개월간은 집필과 외출이 가능했다.
1992년 5월 육체의 쇠잔으로 다시 병상에 눕다.
1992년 12월 14일 새벽 1시 30분. 운명했다. 향년 만 3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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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검궁인 인터뷰를 인용하자면, 당시 대기업 초임이 25-30만원이었는데, 첫출판한 무협소설 한질의 원고료가 66만원이었다고 한다.[2] 검궁인은 구무협 작가의 스타일을 비율하면서, 사마달을 구성주의라고 불렀는데, 그보다 더 한 구성주의가 서효원이라고 평했다.[3] 금강, 야설록, 사마달, 서효원[4] 다른 작가들은 그가 포기한 것으로 여기고 계속 포커를 쳤다고 한다.[5] 금강의 말에 의하면 이건 루머라고 하는데 좌백도 그의 책 '부부만담'에서 '포커를 치다 말고 원고를 쓰고와서 다시 포커를 쳐서 과거 전설이 된 작가'를 언급했다. 다만, 이쪽에서는 창작이 빠르다는 의미가 아니라 집중력이 강하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창작을 해보면 백지에 글 한줄 적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것이다.[6] 또 다른 유명한 워커홀릭은 검궁인이 있다. 이쪽도 서효원 못지 않게 빨리 작품을 썼다. 위 각주에서 언급된 인터뷰에서도 나오지만, 한달에 한질을 꾸준히 쓴 사람은 서효원과 검궁인 뿐이었다. 다만 활동기간이 짧기 때문에 검궁인의 경우는 80종 정도로 끝난다. 재미있는 것은 검궁인도 폐결핵에 시달리다가 병 치료 등을 위해서 무협을 썼다는 것이다. 물론 검궁인은 2010년대까지 쌩쌩하게 살아있다.[7] 꾸준히 구무협 클리셰가 나오는 것도 호불호가 갈릴 요소이다. 예를 들어 절벽에 떨어졌더니 무공 비급이나 영약이 있다거나, 주인공이 절정 고수임에도 춘약에 당해 성욕이 끓어올라 여자를 강간하는 이야기가 수도 없이 나온다. 이런 특징은 홍정훈흑랑가인에서 비판했다.[8] 이 사살은 죽이라는 뜻의 사살(射殺)이 아니라 네번째 죽음이란 뜻에서 사살(四殺)이다. 대자객교의 자객들은 교주를 제외하면 일살, 이살, 삼살 같은 코드 네임이 붙어 있는데 이혈릉이 네번째라 그런 것이다.[9] 이혈릉이 죽인 건 아니고 선배인 삼살이 죽였다.[10] 좀 얄팍한 반전이다. 그동안 누구든 죽여준다더니...[11] 이혈릉의 취미는 오래된 서가에서 중고 책을 빌려 보는 것인데, 중고 책 속에 편지가 있었고 백무엽은 거대 상단이 배달해준 책 속에 편지가 있었다.[12] 코드네임이다. 일호, 이호 순으로 있으므로 일천호는 가장 마지막 아이. 본명은 능설비로 원래 명나라 황제의 조카이나 "마도 고수에게 본명은 필요없다." 는 철칙 때문에 본명을 쓰지 못한다. 이 본명과 황제의 조카라는 신분은 최후반부에서야 되찾는다.[13] 수많은 정파 무림인들을 학살했다.[14] 나머진 영상노트에서 2008년에 출간된 대자객교, 대곤륜 종이책.[15] 양자라는 사실 때문에 "내 친부모는 누굴까?" 라는 고민을 수도 없이 하고, 얼굴이 망가져서 주변 관계도 끝장났다. 원래 탁옥룡을 사모하던 소녀가 있었는데 얼굴이 망가지고 못 알아본다.[16] 작중 꾸준히 주인공에게 덤비던 소림승 무혈검이 친아버지였다.[17] 여섯에게서 동시에 받는 것이 아닌, 순서대로 배웠다. 그래서 육사부 밑에서 몇년 수련하고 오사부로 넘어가고, 나중에 사사부에게 넘어가는 식. 다만 소설이 시작했을 땐 이미 육사부의 수련을 끝낸 상황이라 오사부부터 등장한다.[18] 일사부가 백무영에게 "잠풍을 암살하라." 고 명령했는데, 알고 보니 잠품이 일사부인 걸 알고 백무영이 당황하는 장면이 있다.[19] 백비룡의 초상화를 본 백무영이 "나랑 똑같이 생긴 얼굴이라니!" 라며 놀라는 장면이 있다.[20] 구파일방인 건 맞다. 다만 이 작품에서 구파일방은 마교에 대항하는 연합체가 아니라 강한 문파 9개를 묶어서 부르는 것 뿐이다.[21] 사부에게 배운 무공을 쓸 땐 '2대 사형령주'라 불리는데,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땐 다른 무공을 쓰며 '냉혈신마'라는 별호를 쓴다. 이 때문에 주인공의 정체를 모르는 무림인들은 이 둘이 다른 인물인줄 안다.[22] 무공을 익히던 절이 아니라 불경 공부만 했다.[23] 예로 고검구만리.[24] 서효원은 198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고 1988년부터 시 운동단체 '바우시낭송단'에 가담하여 1991년까지 단장을 맡았다.[25] 금강, 야설록, 사마달, 검궁인, 서효원.[26] 만년 묶은 산삼을 비꼬는 것.[27] 유고집 <나는 죽어서도 새가 되지 못한다.>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