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 | |||||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word-break: keep-all" {{{#000,#DDD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nopad> 이승만 정부 | ||||
초대 이우익 | 제2대 서정국 | 제3대 정순석 | 제4대 정창운 | 제5대 배영호 | |
<nopad> 이승만 정부 | <nopad> 장면 내각 | <nopad> 김현철 내각 | <nopad> 박정희 정부 | ||
제6대 오성덕 | 제7대 소진섭 | 제8대 김용식 | 제9대 주운화 | 제10대 서병균 | |
<nopad> 박정희 정부 | <nopad> 전두환 정부 | ||||
제11대 오탁근 | 제12대 김종경 | 제13대 이종원 | 제14대 박준양 | 제15대 김성기 | |
<nopad> 전두환 정부 | <nopad> 노태우 정부 | ||||
제16대 이영욱 | 제17대 백광현 | 제18대 김기춘 | 제19대 허은도 | 제20대 김경회 | |
<nopad> 노태우 정부 | <nopad> 문민정부 | ||||
제21대 박종철 | 제22대 전재기 | 제23대 최명부 | 제24대 정경식 | 제25대 황상구 | |
<nopad> 문민정부 | <nopad> 국민의 정부 | ||||
제26대 이원성 | 제27대 김상수 | 제28대 심재륜 | 제29대 박순용 | 제30대 송인준 | |
<nopad> 국민의 정부 | <nopad> 참여정부 | ||||
제31대 김영철 | 제32대 이종찬 | 제33대 송광수 | 제34대 임내현 | 제35대 정상명 | |
<nopad> 참여정부 | <nopad> 이명박 정부 | ||||
제36대 서영제 | 제37대 정동기 | 제38대 권재진 | 제39대 이귀남 | 제40대 이준보 | |
<nopad> 이명박 정부 | <nopad> 박근혜 정부 | ||||
제41대 황교안 | 제42대 노환균 | 제43대 소병철 | 제44대 이득홍 | 제45대 박성재 | |
<nopad> 박근혜 정부 | <nopad> 문재인 정부 | ||||
제46대 김경수 | 제47대 윤갑근 | 제48대 황철규 | 제49대 김호철 | 제50대 오인서 | |
<nopad> 문재인 정부 | <nopad> 윤석열 정부 | ||||
제51대 장영수 | 제52대 권순범 | 제53대 최경규 | 제54대 노정연 | 제55대 이진동 | |
<nopad> 윤석열 정부 | |||||
제56대 신봉수 | }}}}}}}}}}}}}}}}}} |
역임한 직위 | ||||||||||||||||||||||||||||||||||||||||||||||||||||||||||||||||||||||||||||||||||||||||||||||||||||||||||||||||||||||||||||||||||||||||||||||||||||||||||||||||||||||||||||||||||||||||||||||||||||||||||||||||||||||||||||||||||||||||||||||||||||||||||||||||||||||||||||||||||||||||||||||||||||||||||||||||||||||||||||||||||||||||||||||||||||||||||||||||||||||
|
<colbgcolor=#1e4a71><colcolor=#fff> 대한민국 제36대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 서영제 Seo Young-jae | |
출생 | 1950년 |
충청남도 서천군 | |
현직 | 리인터내셔날특허법률사무소 변호사 |
학력 | 대전고등학교 (제46회 / 졸업) 성균관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법학 / 석사 · 박사) |
경력 | 제16회 사법시험 합격 제6기 사법연수원 수료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고등검찰관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대검찰청 공안3과장 부산지방검찰청 공안부장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장 서울지방검찰청 서부지청 차장검사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대검찰청 마약부장 청주지방검찰청 검사장 (제50대 / 국민의 정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제46대 / 참여정부)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 (제12대 / 참여정부)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 (제36대 / 참여정부) 충남대학교 법학대학원장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법조인.2. 생애
1950년에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태어났으며, 대전고등학교(46회)와 성균관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4년에 제16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1976년, 사법연수원을 6기로 수료하였다.사법연수원 수료 직후부터 대한민국 공군 법무관으로 있다가 1979년에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에 임용되어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골프장 불법 취득 사건과 관련해서 변호사법을 위반한 김종성 변호사를 변호사법 위반으로 구속했다. 이후 전두환 정부 때인 1982년에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 으로 발령났고 1983년에는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으로 다시 이동했다.
그러다가 1985년에는 장기 해외연수를 가게 되었고 검찰로 복귀한 1986년에는 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 검사로 발령났다. 1987년에는 법무연수원 교관이 되었다. 노태우 정부가 들어선 1988년에는 고등검찰관[1]으로 승진하였고 1989년에는 대전지방검찰청 강경지청장이 되었다. 강경지청장으로 있으면서 성경을 5차례나 독파하였지만 정작 서영제 전 고검장은 무신론자였다.
1990년에는 대검찰청 검찰연구관으로 영전하였으며 1991년에는 대검찰청 공안3과장으로 영전하였고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1993년에는 부산지방검찰청 공안부장으로 갔다가 서울지방검찰청 서부지청 특수부장이 되었다. 서울지검 서부지청 특수부장으로 있을 당시 호적 변조 금품 수수 사건, 두원교통 횡령 사건, 조철권 전 노동부장관 구속 사건, 고리대금업 신용카드 사채업 사건 등 여러 비리 사건을 수사했으며 김일성 회고록 출판 사건도 수사했다.
1995년에는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장으로 영전하였고 그 이후에 한국인 국제 필로폰 밀매조직을 적발하여 처벌하였고 용산파 등 10개 조폭 조직을 모두 소탕하는 데 공을 세웠다. 1997년에는 서울지방검찰청 서부지청 차장검사가 되어 차장검사로 승진하였으며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1998년에는 전주지방검찰청 차장검사가 되었다.
이후 1999년에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이 되었으며 연이어 서울지방검찰청 서부지청장[2]으로 발령났는데 이 당시에 서울 시내 구청장의 혼인빙자간음 사건 수사를 지휘하기도 했다. 연이어 2000년에는 검찰, 국방부 병역비리 합동수사반에 파견되었다. 그러다가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이 되면서 검사장으로 승진하였다.
2001년에는 대검찰청 마약부장이 되었으며 이 당시에 동북아 최대 마약조직을 수사하였고 외국에서 한국인 마약사범을 처음으로 인도받는데 공을 세웠으며 2002년에는 청주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발령났다. 이 당시에 <<미국 특별검사제도의 과거와 미래>>라는 책을 발간했고 웃음의 날 행사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 뒤 2003년에는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영전하였다.[3] 이 당시 그는 SK그룹 수사를 지휘하였고, 연이어 노무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과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의 대표였던 정대철을 구속기소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4], 연이어 송두율 사건의 수사를 지휘하였다. 그러나 안상영 전 부산광역시장이 감옥에서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체면을 구기기도 했다.
2004년에는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이 되어 고검장으로 영전하였으며 2005년에는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이 되었다가 정상명이 검찰총장으로 내정되면서 사의를 표했다.
이후 한솔제지 사외이사, 라인터내셔널특허법률사무소 변호사, 충남대학교 법학대학원장, 세종대학교 감사 등을 하고 있다.
3. 가족관계
부인 김윤주 여사와 2녀가 있다. 이중 장녀는 2003년, 이영상 변호사[5]와 결혼했는데, 이영상의 아버지가 바로 이득렬 前 MBC 사장으로, 결혼식을 올릴 당시 사돈인 이득렬은 이미 이로부터 2년 전에 고인이 된 상태였다.[1] 현재 고검 검사(부부장, 부장)급이다.[2] 서부지청은 차치지청으로 차장검사가 보임되는 지청이다. 물론 한 지청에 동급(차장검사 급)이 둘이나 있는 것이 이상해보이는데, 둘은 위상이 다르다. 지청장은 지검장 승진을 앞둔 차장검사 자리, 차장검사는 막 승진한 차장검사 자리이다.[3] 그의 임기 중에 서울지검이 휘하 지청인 동부, 서부, 남부, 북부, 의정부, 고양을 전부 분리하고 서울중앙지검으로 전환되었다.[4] 이 문제로 인해 정대철은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가했고, 대선 당시의 공로에도 불구하고 친노계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5] 추후 윤석열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법률비서관과 국제법무비서관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