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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11 14:39:59

사탄 전투

파일:고려 의장기 문양.svg 고려의 대외 전쟁·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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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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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성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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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성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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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성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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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라벌 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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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삼국통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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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조물성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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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백제
서라벌 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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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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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 신라고려
삼년산성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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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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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8,
후백제 고려
고창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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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백제
예성강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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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 고려
사탄 전투·자도 전투
,933,
고려 후백제
운주성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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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백제
고려의 나주 탈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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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백제
일리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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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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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670000> 사탄 전투
沙灘 戰鬪
<colbgcolor=#fedc89,#444444> 시기 933년 (태조 16년)
장소

경주
원인 후백제의 신라 재침공
교전 세력 <rowcolor=black> 고려-신라 연합
(수세)
후백제
(공세)
주요 인물
지휘관

파일:고려 의장기.svg 유금필
지휘관

파일:백제 군기.svg 견신검
병력 병력 규모 불명 병력 규모 불명
피해 피해 규모 불명 피해 규모 불명
결과 고려의 승리
영향 고려의 신라 구원 성공

1. 개요2. 배경3. 전개
3.1. 신라를 구원하다
4. 결과5.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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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933년 발생한 후삼국시대의 전투.

2. 배경

고창 전투의 대승 이후 고려(+신라)는 다시금 삼한 통일 경쟁에서 우위에 서며 후백제를 조여오기 시작한다. 이에 후백제는 어려움을 극복해보고자 수군을 동원하여 예성강 전투를 개시, 고려의 수군 전력을 약화시키고 일시적으로 눌렸던 기세를 푸는 등 어느 정도 성과를 보았지만 왕건의 제거라는 소기의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다.

결정적으로 934년 7월경 쯤 멸망한 옛 발해의 태자 대광현을 비롯한 잔존 왕족과 대신들의 귀부를 받아들이며 인적인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동시에 신라보호국화 하는 등 날로 영향력을 키워갔다. 대광현을 비롯한 발해 고위 인사들의 귀부에 대해 고려사는 934년 7월의 일로 기록하고 있으나 고려사절요는 925년 12월이라 말하고 있으며 동국통감에는 926년 1월의 일로 적혀 있는데, 학계에서는 이 동국통감의 기록 쪽을 더 신뢰하여 926년 1월 이후 고려 쪽에 편입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에 후백제의 왕 견훤은 927년 서라벌 침공을 재현하기 위해 견신검을 총사령관으로 하여 다시 신라 공격을 준비하였다.

3. 전개

3.1. 신라를 구원하다

933년, 신검이 벌써 혜산성과 아불진 일대까지 침공하자 왕건은 급히 유금필에게 출진 명령을 내렸다. 이에 유금필은 자신의 제번병 중 80기를 이끌고 후백제군에게 맞섰다. 이후 사탄에서 양군이 만났는데, 고려군의 대오가 정예로운 것을 보자 신검은 싸우지도 않고 도망갔다.

4. 결과

후백제를 물리친 후 유금필군이 서라벌에 입성하자 경애왕 시해의 악몽을 똑똑히 기억하던 서라벌 사람들이 성 밖까지 나와 유금필을 눈물로 영접하고 절을 했다고 한다.
"뜻밖에 오늘 대광을 뵈옵게 되었습니다. 대광이 아니었다면 우리들은 백제군들에게 살육당했을 것입니다."

5. 대중매체

소설 전화앵에서 묘사된다.

후백제가 의성부 등 고려의 여러 성을 점령하면서 왕건의 친위 세력들이 유금필을 견제해 유금필이 1천 명의 군사만 거느렸으나, 정예병을 선발했다. 유금필은 윤선, 재충, 인일, 홍양표, 조현영, 마족, 남영유 등과 출정했고, 유검필이 신검이 서라벌 방향으로 갔다는 것을 알고 기병 80기를 뽑아 급히 출발했다.

마죽을 첩자로 보내 후백제군의 상황을 살피고 남영유로부터 아불의 개천인 차탄에서 후백제의 1,500명 정도의 군사가 있다는 것을 보고받으며, 유금필은 윤선을 선봉으로 삼아 80기를 이끌고 후백제군을 기습했다. 후백제군은 기습을 받자 부달, 애술이 소규모의 군사인 것을 파악하고 김상금, 정한대가 군사를 거느리고 맞섰으나, 유금필이 화살로 목을 꿰뚫어 김상금이 전사하고 윤선이 장창으로 찔러 정한대도 전사했다.

고려군이 공격한 후 물러나는 것을 본 우봉이 추격을 하자 고려군이 화살을 쏘아 공격했고, 마죽이 우봉에게 도전했다가 머리가 도끼에 베여 전사했다. 마죽이 죽은 것을 보고 인일이 우봉을 공격했지만 패해서 부상을 입어 달아났고, 윤선이 우봉을 공격했지만 무기가 부러지자 우봉이 달아났다.

부달이 나서서 윤선을 공격하고 윤선이 부달을 궁지에 몰지만 말이 지치는 바람에 윤선이 퇴각했으며, 홍양덕이 나서서 부달을 공격해 싸웠고 부달이 밀려서 달아났다. 부달이 달아나자 애술이 나서고 고려 측에서는 재충이 나서서 싸웠는데, 고려군에서 몇 명의 군사를 통해 말꼬리에 나무를 끌고 깃발을 들고 달리게 해서 많은 군사들이 원군으로 오는 것처럼 위장하자 신검이 고려가 이끄는 대규모의 기병으로 알고 재충을 물러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