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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19:10:29

사무국(스포츠)/목록/북미

1.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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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앤 휘트니 페이슨 구단주 (1962~1975), 찰스 쉽맨 페이슨 구단주 (1975~1980)[2] 1986년부터 공동 대주주.[3] 1998년에 대행.[4]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머니볼의 기초를 닦은 단장. 이 사람 아래에서 일하던 빌리 빈이 단장 자리에 오르면서 머니볼과 세이버메트릭스가 대세가 되는 시대가 열렸다.[5] 국내에서는 이장석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총연봉을 최저 수준으로 졸라매고 투자 없이 사치세만 받아먹는다는 점에서는 이장석보다 더 악질이라 평가할 수 있다. 참치팬들의 영원한 주적.[6] 2000년부터 사장,[7] 2007년까지는 단장, 2008년부터 사장.[8] 1925년부터 사장 겸임.[9] 밥 퀸 구단주 겸 사장 겸 단장 (1935~1945), 존 퀸 단장 (1945~1959)[10] 1957년까진 사장.[11] 1967~1973년까지 사장 겸임.[12] 1986년까지는 사장.[13] 일명 JS라고 불렸으며, 단장 재임기간 동안 애틀란타의 14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등 전성기를 이끌었다. 빌리 빈이 몇 안 되게 트레이드에서 참패를 맛보게 한 단장이기도 하다. 추후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수 있는 단장 중 하나다.[14] 2007년부터 사장.[15] 1978~1984년까지 단장 겸임.[16] 일명 트레이드 짐. 트레이드 매니아로서 해설자로 일하는 지금도 말도 안 되는 창의적인 트레이드를 생각해내곤 한다.[17] 2009년까지는 부단장, 2010년까지는 부사장.[18] RRM 카펜터 시니어 구단주 (1943~1950), RRM 카펜터 주니어 구단주 겸 사장 (1943~1972[199]), 럴리 카펜터 구단주 겸 사장 (1972~1981)[19] 1997년까지는 사장, 1984~1987년까지는 단장 겸임.[20] 1997~2014년까지 사장 겸임.[21] 박찬호를 영입했던 텍사스 레인저스 GM이었다. 다만 이것으로 폄하당하기에는 현재의 텍사스에 미친 영향이 매우 크다. 90년대~2000년대 초의 텍사스의 맹타선을 만든 것도 그이며, 투수 트레이드도 상당한 성공을 거둔 적이 있다. 밀워키에서도 팜 운영 중심의 철학을 그대로 운용하여 만년 꼴찌 밀워키가 2000년대 중후반에는 지속적인 컨텐더로 활약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캐나다 출신이다.[22] 1920년부터 사장 겸임.[23] 윌리엄 듀잇 주니어 구단주 (1995~ ), 빌 듀잇 3세 사장 (2008~ )[24] 윌리엄 리글리 주니어 구단주 (1921~1932), 필립 K. 리글리 구단주 (1932~1977), 윌리엄 리글리 3세 구단주 (1977~1981)[25] 1984년부터는 사장.[26] 2000~2001년까지는 단장 겸임.[27] 세 차례 NL 중부지구 우승을 이끌었지만, 팜의 황폐화와 팀의 노쇠화, 페이롤의 유동성 악화를 불렀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 단장. 결국 2011년에 짤리고 엡스타인과 호이어가 똥을 치우고 있다. 현재는 뉴욕 양키스의 스카우팅 디렉터.[28] 일명 호구어. 트레이드만 하면 호구짓을 한다고 붙여진 별명이다. 특히 유명한 것이 애드리안 곤잘레스 트레이드다. 그래도 수완을 어느 정도 인정받았는지 애드곤조 트레이드의 상대였던 테오의 부름으로 컵스의 단장으로 재직중이다. 그런데 곤조 트레이드의 주요 칩이었던 앤서니 리조를 컵스로 싸게 데려오며 장기계약까지 맺은 2013년 현재는 이 딜에 대한 재평가가 시급하다.(...)[29] 現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구단주 윌리엄 듀잇 주니어의 아버지.[30] 1961년부터 단장 겸임.[31] 메이저리그 사상 첫 여성 구단주. GM의 신시내티 지역 딜러로 자수성가하면서 레즈의 대주주로 등극하며 구단주에 올랐다. 쇼트가 구단주로 있는 동안 레즈는 '빅 레드 머신'이 불을 뿜으며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여자 스타인브레너(…)'로 불렸을 만큼 괴팍한 성격에 있어서는 보스와 쌍벽을 이루었다. 경기 전에 레즈 선수들에게 자기 애완견인 세인트 버나드를 쓰다듬을 것을 강요했고, 수염은 절대 기르지 못하도록 했다. 그리고 유색인종 선수 및 직원 영입 금지 방침으로 엄청난 욕을 퍼먹고 1999년 지분을 처분하며 구단 운영에서 손을 뗐다. 2004년 사망.[32] 1977 시즌까진 단장, 1973년부터 사장 겸임.[33] 1984 시즌부터 단장, 1985년까지 부회장 겸임.[34]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에 이르는, 2006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포함하는 시기를 이끈 단장. 명예의 전당 떡밥이 도는 단장 중에 하나이다.[35] 1894~1897/1899년 두 차례 단장 및 사장 겸임.[36] 1950년부터 사장 겸임.[37] 1890년부터 사장 겸임.[38] 찰스 에베츠 구단주 겸 사장 (1897~1925), 그레이스 슬레이드 에베츠 구단주 (1925~1944)[39] 1932년부터 사장 겸임.[40] 1945년부터 구단주 겸임, 1950년에 단장도 겸임.[41] 월터 오말리는 브루클린에서 로스앤젤레스로 구단을 옮기며 구단들이 서부로 영향력을 확대하는데 도움을 줬으며, 피터 오말리는 박찬호의 양부라고 불릴 정도로 친분이 있는 구단주이다. 다저스 재인수에 도전했으나 실패했고, 대신 피터의 아들 케빈이 론 파울러 등 4명의 사업가와 함께 컨소시엄을 이루어 파드리스를 인수했다.[42] 1950~1970년까지는 사장 겸임.[43] 막장 구단주로 유명하다. 성적은 안 좋았어도 나름 합리적으로 단장직을 수행하던 폴 디포데스타를 자른 일부터 시작해서 온갖 삽질을 하더니, 마침내는 아내 제이미와의 부부싸움 끝에 이혼소송까지 간 뒤 재산분할로 다저스를 나락으로 빠뜨렸다. 결국은 강제로 구단주직에서 쫓겨났다. 이후 프랭크는 2016년부터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의 구단주로 재직 중.[44] 프랭크 맥코트 회장 겸 구단주 (2004~2012), 제이미 맥코트 사장 (2004~2009)[45] 빌 버베이시의 아버지.[46] 일명 PDP. 영화 머니볼에 나온 그 뚱뚱한 사람의 모델. 실제로는 그닥 안 뚱뚱하다. 하버드 출신으로 빌리 빈의 머니볼 혁명을 도왔던 점을 높게 평가받아 단장으로 임명되었다. 최희섭플로리다 말린스에서 데려온 것도 그다. 구단주 맥코트는 그를 낮게 평가했고, 지역 언론들도 컴퓨터만 본다고 구글 보이라고 깠다. 결국 그는 1년만에 해임되었고 최희섭은 덕분에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으며, 다저스는 나락으로 빠지기 시작한다.[47] 맥도날드의 창업주[48] 찰스 스톤햄 구단주 (1919~1936), 호레이스 스톤햄 단장/구단주[200] (1936~1976[201])[49] 전형적인 빅마켓 단장 중 하나로 평가 받는 단장이다. 배리 본즈 시대를 만드는 등 강팀을 만들었으나, 이후 팀의 노쇠화로 약화된 전력에 과감히 리빌딩을 시도했다. 리빌딩 기간 동안은 상당히 팬들이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봤으나, 리빌딩 이후 자이언츠는 월드 시리즈에서 2회 우승하는 쾌거를 이루어내고 있으며, 2014년에 세이빈이 물러난 뒤에도 현재 진행형이다.[50] 2001년까지는 사장.[51] 그러나 2012년 중순부터 "Director of Major League Operations"라는 요상한 직책을 가진 빌 기베트(Bill Geivett)가 오다우드의 마지막 2년 동안 실권을 행사했다. 메이저리그 프런트 오피스 운영에 있어 로키스가 나름대로 혁명적인(...) 행보를 가져갔다는 평가도 있다.[52] 1947년부터 사장 겸임, 1964년까지는 구단주.[53] 1911년까지는 사장.[54] 톰 요키 사장 겸 구단주 (1933~1976), 진 R. 요키 사장/구단주 (1976~1992[202])[55] 1992년부터 대주주.[56] 메이저리그에서 유명한 타자 덕후.[57] 전직 보스턴 레드삭스의 단장으로 테오 엡스타인의 전임자. 한국 선수에 관심이 많은 단장들 중 하나. 그러나 그의 노력은 대부분 흑역사로 돌아갔다. 대표적인 예로 정대현을 영입하고자 했으나 메디컬 테스트에서 탈락, 고등학교 2학년생이던 김성민을 영입하려다가 대한야구협회와 갈등을 빚기도 했으며, 류현진 포스팅에도 참여하려했으나 LA 다저스쇼미더머니에 발리는 등, 제대로 성공한적이 없는 듯.[58] 2014년부터 단장 겸임.[59] 2005년부터 9년간 프리드먼 단장, 실버맨 사장, 스턴버그 구단주의 삼위일체가 가장 잘 맞아떨어진다고 알려져 있었다. 셋 다 구단 지분을 갖고 있기도 하고. 이것이 최근 만년 하위권이던 탬파베이의 상승세의 원동력이라고 알려져 있었다.[60] 떠오르는 사기꾼계의 신성. 아무도 기대 않던 버논 웰스 팔아치우기를 성공했고 2012-13 오프시즌 그간 쌓아둔 유망주들의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거성 영입에 공을 들이며 평가가 올라갔지만 토론토는... 그러나 2015년 브렛 로우리를 빌리 빈에게 사기쳐서 조시 도날드슨을 데려오는 쾌거를 이룩한데 이어 극한의 런 나우 정책으로 팀을 챔피언십 시리즈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사장인 마크 샤파이로와의 갈등으로 시즌 말 사임했다.[61] 1907 시즌까지 사장 겸임.[62] 월터 브릭스 시니어 사장 겸 구단주 (1935~1952), 월터 브릭스 주니어 단장/사장/구단주 (1952~1957[203])[63] 1961~1978년까지는 사장 겸임.[64] 마이클 일리치 구단주 (1992~2017[204]), 크리스토퍼 일리치 구단주 (2017~ )[65] 1978년부터는 사장, 1983년까지는 단장 겸임.[66] 2006년부터 팀도 잘 나가고 돈도 많이 쓰면서 빅마켓 운영을 하고 있지만, 파이어 세일을 시작한 사람 중 하나다. 1997년 플로리다 말린스 우승멤버들을 98년에 다 팔아버렸고, 2002년 타이거스 단장으로 와서는 팀을 일신하기 위해 혹독한 리빌딩에 돌입. 2003년 119패를 했으나 이후 팀을 강팀으로 만들었다.[67] 클락 그리피스 구단주 (1920~1955), 캘빈 그리피스 구단주 (1955~1984)[68] 칼 폴라드 구단주 (1984~2009), 짐 폴라드 구단주 (2009~ )[69] 미네소타의 전성기를 이끈 단장. 커비 퍼켓의 불의의 은퇴 이후 리빌딩에 들어가며 1990년대를 보내다가 2000년대에 론 가든하이어 감독과의 콤비 플레이로 4번의 지구 우승을 이끌어냈다. 2007 시즌 이후 수석고문으로 추대됐으나 2011년에 다시 단장으로 복귀했다.[70] 찰스 코미스키 구단주 (1900~1931), J. 루이스 코미스키 구단주 (1931~1939), 그레이스 코미스키 구단주 (1939~1956), 척 코미스키& 도로시 코미스키 리그니 구단주 (1956~1958)[71] 아더 앨린 주니어 구단주 (1961~1969), 존 앨린 구단주 (1961~1975)[72] 선수로서는 듣보잡에 가까웠으며, 프런트 오피스 커리어를 쌓으며 빛을 본 케이스. 빌리 빈에게 조공을 바치는 걸로 유명한 단장이다. 그래서 호구처럼 비칠지 모르지만, 오클랜드도 못한 월드 시리즈 우승도 했다. 그것도 90년 가까이 묵은 블랙삭스 스캔들의 저주를 풀면서! 아지 기옌의 아지볼을 나름 최선을 다해 지원해주었으며, 결과도 비록 최고는 아니었지만 준수했다. 현재는 부사장으로 승진했다.[73] 2012년부터는 부사장.[74] 1950~1957년까지 단장 겸임.[75] 1963~1966년까지 구단주 겸임.[76] 2004년까지는 부사장, 2010년까지는 사장, 이후 회장.[77] 2010년까지는 단장,[78] 2015년부터는 사장.[79] 일명 라티노 성애자. 중남미 선수들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다.[80] 버지 버베이시 단장 (1977~1984), 빌 버베이시 단장 (1994~1999)[81]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는 호구로, 버논 웰스 트레이드, 게리 매튜스 주니어 FA 딜 등 주옥같은 망한 딜을 이끌어냈다는 평을 받았다. 결국 2011년에 여지없이 짤렸다. 디포토가 현재 열심히 똥을 치우는 중이긴 한데 대체적인 반응은 디포토나 리긴스나 똑같다는 말만 무성하다(...)[82] 밀워키의 전성기를 만들어낸 팜 디렉터 출신. 수비로 일낸다로 유명하며, 전임 단장이 워낙 최고의 단장이라 비교되는 면이 있는 편. 시애틀 팬들은 유명 세이버메트리션 톰 탱고까지 기용해가며 수비로 일낸다던 취지가 무색하게 수비가 몇 시즌 안 좋자 다시 수비도 안되는 막쓰잉어로 라인업을 채우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래도 투수 유망주는 세이프코 필드 빨도 적절히 활용하며 잘 키우는 편. 그리고 성적 부진으로 결국 2015년 짤렸다.[83] 부 단장이었으며 이전 단장인 잭 쥬렌식이 짤려서 임시 단장을 수행했다.[84] 벤 시브 구단주 (1901~1922), 톰 시브 구단주 겸 사장 (1922~1936), 존 시브 구단주 겸 부사장 (1922~1937)[85] 코니 맥 구단주/단장 (1901~1954[205]), 얼 & 로이 맥 공동 구단주 (1950~1954)[86] 월터 A. 하스 주니어 구단주 (1980~1995), 월터 J. 하스 사장 (1990~1992)[87] 1996년까지는 사장 겸임.[88] 1996 시즌까지는 단장, 1993~1995/1996~1998년까지 사장 겸임.[89] 1993년까지는 스카우터, 1998년까지는 부단장, 2016 시즌부터 부사장.[90] 2016 시즌부터 단장.[91] 오늘날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팜 시스템의 8할은 루나우가 만들었다. 카디널스 팜 디렉터로 일하던 시기 드래프트를 예로 들자면 프랜차이즈 역사에 드물었던 고졸 투수 드래프트를 단행했더니 초대박으로 굳어지는 분위기이다. 진정한 화수분 야구란 무엇인지 보여주며 카디널스의 2011년 월드 시리즈 우승 이후 겪은 알버트 푸홀스의 이적과 토니 라 루사 감독의 은퇴 이후의 시대에도 자신은 팀에서 나갔지만 여전히 그의 공으로 일궈낸 팜은 카디널스가 몇년을 우려먹을 뎁스를 자랑한다. 2012년부터 휴스턴으로 옮겼는데, 보너스 풀 제도가 강하게 적용된 2012년 드래프트에서 카를로스 코레아를 1픽으로 지명하여 싸게 계약하는 작전으로 당초 마크 아펠이 1순위로 예상되던 드래프트를 혼돈으로 몰아간 바 있으며, 그 과정에서 놓치는 줄만 알았던 휴스턴 출신 스탠퍼드 대학교 에이스인 아펠을 2013년에 1순위로 지명한 바 있다. 그리고 2017년 팜 출신 선수들을 코어로 키워내어 월드 시리즈 우승을 거두며 능력을 입증했다.[92] 1962년까지 구단주.[93] 1957년까지 단장, 1959년까지는 구단주.[94] 1991년부터 사장)/1999(단장)[95] 2001년부터 사장[96] 구 샬럿 시절 제외.[97] 2006년부터 단장.[98] 스탠 크랑키 구단주 (2000~ ), 조쉬 크랑키 사장 (2011~ )[99] 1987년부터 단장 겸 사장.[100] 2013년부터 구단주.[101] 2005년부터 부사장.[102] 1994년까지는 단장.[103] 2007년부터 사장.[104] 2017년까진 부사장.[105] 테드 애리슨 구단주 (1988~1995), 미키 애리슨 구단주 (1995~ )[106] 1976년부터 구단주.[107] 1979년까지는 단장, 이후 부사장 겸 고문으로 승진.[108] 1979년까지는 선수 인사담당을, 1985년부터는 부사장 겸임.[109] 델 해리스 단장 (1987~1991), 래리 해리스 부단장/단장 (2001~2008[206])[110] 월터 브라운 구단주/사장/단장 (1946~1964[207]), 마조리 브라운 구단주 (1964~1965)[111] 1963년부터는 사장 겸임, 1964년부터는 공동 대주주[112] 돈 개스턴 구단주 (1983~1993), 폴 개스턴 구단주 (1993~2002)[113] 위크 & 어빙 그로스벡 구단주 (2002~ )[114] 1984년까지 단장, 1970~1997/2001~2006년 사망시까지 사장, 1984~2001년까지 부회장.[115] 1990년까지는 부사장, 1982년부터 2년간 부단장 겸임.[116] 2007년부터는 단장 겸임.[117] 1985년까진 회장.[118] 1985~1998년까진 회장.[119] 뉴올리언스 호네츠 시절 제외.[120] NBA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계 단장.[121] 잭 해리슨 구단주 (1946~1958), 레스 해리슨 공동 구단주 겸 단장 (1946~1958)[122] 루이스 M. 제이콥스 구단주 (1963~1969), 맥스 & 제레미 제이콥스 형제 구단주 (1969~1972)[123] 2002년까지는 구단운영 부사장 겸 단장.[124] 1997년까지는 스카우터, 1999년까지는 스카우트 부장, 2002년까지는 부사장 겸 부단장.[125] 아더 워츠 구단주 (1972~1983), 빌 워츠 구단주 (1983~1985)[126] 2010년부터 사장.[127] 1990년까지는 단장, 1986년부터는 사장.[128] 1996년부터 부사장.[129] 1996년부터 단장.[130] 2010년부터 대주주.[131] 래리 밀러 구단주 (1985~2009), 그렉&게일 밀러 구단주 (2009~ )[132] 1987년까지는 단장, 1988년부터 사장.[133] 1992년부터 구단 운영인사, 1996년부터 부사장.[134] 2012년까지는 단장[135] 허버트 시몬 구단주 (1983~ ), 시몬 구단주 (1983~2005)[136] 1995년까지는 단장, 1988년부터 사장.[137] 고든 건드 구단주 (1983~ [208]), 조지 건드 3세 공동 구단주 (1983~2005)[138] 1975년부터 사장 겸임.[139] 1975년부터 부사장 겸임, 1987년까지는 단장, 그 이후부터 사장.[140] 제리 콜란젤로 단장/구단주 (1968~2004[209]), 브라이언 콜란젤로 단장/사장 (1995~2006[210])[141] 1966년까지는 단장.[142] 2017년까지 단장.[143] 2017년부터 단장.[144] 레이 패터슨 단장 (1972~1989), 스티브 패터슨 단장 (1989~1993)[145] 1958~1985년까지 상임 이사회장 겸임.[146] 2017년까진 단장.[147] 1973년까지는 단장, 1941~1959년까지는 부사장, 그 이후부터 구단주, 1965년부터는 사장까지 겸임.[148] 2005년까지는 부사장. 그 이후부터는 구단주와 사장 역임[149] 프레스턴 로버트 티시 공동 구단주 (1991~2005), 스티브 티시 공동 구단주 (2005~ )[150] 존슨앤드존슨의 소유주[151] 빌리 설리반 사장/구단주 (1960~1991 [211]), 패트릭 설리반 단장 (1983~1990)[152] 로버트 크래프트 구단주 (1994~), 조너던 크래프트 사장(2005~)[153] 2014년까지는 회장.[154] 사망 전까지 구단주 지위는 유지했으나 2014년에 알츠하이머 증세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사장인 조 엘리스가 경영을 맡고 있다.[155] 83년부터 마케팅 부장, 98년부터 부사장, 2011년까지는 최고운영책임자, 그 이후부터 사장.[156] 윌리엄 클레이 포드 구단주 (1964~2014)[212], 마사 파이어스톤 포드 구단주 (2014~ )[157] 2000년대 초중반 암흑기 시절에 0승 16패의 시즌 전패의 흑역사를 쓴 무능한 단장이다. 이 단장이 있었을 때 잘 한 거라고는 '메가트론' 캘빈 존슨을 드래프트에서 뽑은 것 정도. 그나마 그 메가트론도 꿈도 희망도 없는 구단의 현실에 좌절해서 2015년 시즌을 끝으로 한창 더 뛸 수 있는 나이에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158] 알 데이비스 구단주 겸 단장 (1966~2011), 캐롤 데이비스&마크 데이비스 구단주 (2011~ )[159] 캐롤 로젠블룸 구단주 (1972~1979), 조지아 프런티어 구단주 (1979~2008)[160] 2008년부터 대주주.[161] 조 로비 구단주 (1965~1990), 마이크 로비 부사장/단장 (1978~1990), 팀 로비 구단주/사장 (1990~1993)[162] 1996년까지는 사장 겸임, 1993~2009년까지는 대주주.[163] 1987년까진 사장 재직, 1973년부터 구단주도 겸임.[164] 토니 모라비토 구단주 (1946~1957), 빅터 모라비토 공동 구단주 (1950~1963), 조세핀 모라비토 폭스 구단주[213] (1957~1977), 엘리자베스 모라비토 공동 구단주 (1964~1977)[165] 존 요크 구단주 (2000~ ), 데니스 디바톨로 요크 공동 구단주 (1977~ ), 제드 요크 공동 구단주 (2008~ )[166] 조지 할라스 구단주 겸 사장 (1920~1983), 조지 할라스 주니어 단장/사장 (1963~1979[214]), 버지니아 할라스 맥카스키 구단주 (1983~)[167] 에드 맥카스키 부사장/회장 (1967~1999[215]), 마이클 맥카스키 사장/회장 (1983~2011[216]), 조지 맥카스키 이사회장/회장 (2004~ [217])[168] 폴 브라운 구단주 겸 단장 (1968~1991), 마이크 브라운 부단장/구단주 겸 단장 (1968~ [218])[169] 찰스 비드윌 구단주 (1933~1947), 바이올렛 비드윌 울프너 구단주 (1947~1962), 찰스 비드윌 주니어 구단주 (1962~1972), 빌 비드윌 구단주 (1962~2019), 마이클 비드윌 부사장/사장 (1996~ [219])[170] 랜킨 M. 스미스 시니어 구단주 (1966~1997), 테일러 스미스 구단주 (1997~2002)[171] 미국의 인테리어/건축자재 체인 홈디포의 공동 창업주.[172] 1982년까지는 단장.[173] 잭 켄트 쿡 구단주 (1961~1997[220]), 존 켄트 쿡 사장/구단주 (1981~1999[( 1997년부터 구단주 겸임.])[174] 1974년까지 대주주[175] 로버트 어세이 구단주 (1972~1997), 짐 어세이 단장/부사장/구단주 (1984~ [221])[176] 빌 폴리안 회장 겸 단장 (1997~2011[222]), 크리스 폴리안 단장 (2009~2011)[177] 라마 헌트 구단주 (1960~2006), 클락 헌트 회장/구단주 (2005~ [223])[178] 1975 시즌까지 단장.[179] 앨 러너 구단주 (1999~2002), 랜디 러너 구단주 (2002~2012)[180] 1992~1994 시즌까지 풋볼 관리부사장 역임.[181] 2002년까지는 회장, 1988년부터 구단주.[182] 1940년까지는 구단주.[183] 1916년부터 사장 겸임.[184] 1940년부터 구단주 겸임.[185] 1964년까지는 구단주 겸 사장.[186] 1971년까지는 구단주.[187] 2011년부터 사장 겸임.[188] 1959년부터 인사담당, 64년부터 78년까지 단장.[189] 1957년까지는 단장.[190] 91년부터 97년까지는 사장 겸 단장, 08년에 단장 대행.[191] 1969년까지는 부단장.[192] 2000년까지는 단장, 1988년부터는 사장.[193] 2010년부터 사장.[194] 1946~1952년까지 공동 구단주.[195] 1983년부터 구단주 겸임.[196] 2015년부터 사장.[197] 1996년까지는 대주주,[198] 1996년부터 1997년까지 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