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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허브 페녹 (1944~1948) | 2대 밥 카펜터 (1950~1953) | 3대 로이 하메이 (1954~1958) | 4대 존 퀸 (1959~1972) | 5대 폴 오웬스 (1972~198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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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4년 이전까지는 단장의 역할을 구단주가 겸임했음. |
에드 웨이드 Ed Wade | |
출생 | 1956년 1월 31일 ([age(1956-01-31)]세) |
펜실베이니아 주 풀턴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템플 대학교 |
프런트 | 필라델피아 필리스 단장(1998~2005) 휴스턴 애스트로스 단장(2007~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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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필라델피아 필리스, 휴스턴 애스트로스 단장.필리스 시절에는 투자를 많이 했고 유망주도 제법 모았으나 팀을 진정 강팀, 우승권으로 만들 능력은 부족했던 인물이며, 결국 우승은 명단장 팻 길릭이 이뤄냈다. 애스트로스 시절에는 상태가 좋지 않던 팀의 리빌딩을 지지부진하게 늦추면서 팀을 더 암흑기로 몰아넣었다는 평을 받는다. 이래저래 평가가 안 좋은 단장이지만 유망주들 모으는 능력은 제법 대단한 인물.
2. 필라델피아 필리스(1998~2005)
홍보부서 인턴 사원으로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입사한 웨이드는 홍보부에서만 일하면서 휴스턴 애스트로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를 거쳤고 1989년 필리스 GM 보좌역, 1995년 부단장을 거쳐 1998년부터 단장직을 수행하게 되었다.그는 집권 초 J.D. 드루 사태에서 전체 1픽을 갖고 있던 1998년 드래프트에서 드루 지명을 포기하고 팻 버렐을 지명하는 한편, 2000년 시즌 중반에 에이스 커트 실링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 트레이드[1]했고, 재계약 문제와 인조잔디 등 여러가지로 구설수에 올라서 자신과 불화까지 생겼던 스캇 롤렌을 2002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트레이드하면서 마이너에서 촉망받던 2루수가 있었음에도 2루수를 받아온다.
대신, 확장드래프트에서 탬파베이 데블데이스에 지명되었다가 상의해서 곧바로 트레이드해왔던 바비 아브레우를 2002년 말에 5년 64M으로 묶는 한편, 같은 시기 팻 버렐을 6년 $50M으로 묶는 동시에 짐 토미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FA로 풀리자 6년 $85M 계약으로 데려왔고 수비가 준수한 3루수 데이빗 벨도 4년 $17M으로 잡아왔다.
그런데 10년 $140M으로 잡으려던 롤렌을 놓치자 남은 예산으로 맺은 이 계약들은 오히려 필리스의 발목을 잡는 계약들이 되고 말았다. 당장 롤렌을 붙잡지 못하고 2루수 플라시도 폴랑코를 데려오며 체이스 어틀리를 억지로 3루로 돌리려다 실패했고, 짐 토미를 산 것 자체는 좋았는데 라이언 하워드는 외야를 볼 수 있는 선수가 아니었다.[2] 버렐은 공격력은 준수했지만 수비력이 폐급이라는 표현도 아까울 정도로 노답이라 필리스 팬들의 공적이 되었고, 아브레우만이 그나마 부상 없이 꾸준히 150~160경기 출전하며 제 몫을 했다.[3]
게다가 폴랑코는 2004년 이후 FA로 팀에서 내보내고 어틀리 자리가 나는가 했더니 난데없이 폴랑코와 어틀리를 공존시켜보겠다면서 5년 $20M으로 사인해버리는 바람에 어틀리가 진짜 새될뻔 했다.[4] 사실 2005년 토미 부상만 없었어도 하워드가 신인왕을 차지하는 일은 없었을테고 하워드는 아마 지금쯤 일본프로야구에서 뛰고 있었을 것이다.[5]
팀의 성적도 결국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왕조를 무너뜨린다는 원대한 플랜과는 전혀 거리가 있는 성적을 거뒀다. 비록 마지막해인 2005년에는 아깝게 1경기차로 실패한 바 있지만, 냉정히 말해 꾸준히 플레이오프 컨텐더로 자리잡는 팀이라 말할 수 없는 5할 승률을 오르내리는 팀이었으며 유망주들은 MLB 콜업이 다가옴에도 자리를 잃어만 갔다. 결국 웨이드 단장은 2005년 이후 경질되었고, 이후 필리스는 명단장 팻 길릭이 1년간 웨이드가 싸놓은 똥을 치운 끝에 2007년부터 내리 디비전 우승을 차지했으며 결국 길릭 단장의 지휘 하에 2008년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새로 집권한 루벤 아마로 주니어 단장은 이후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위성구단삼아 필리스를 MLB 최강팀으로 길러냈다.
3. 휴스턴 애스트로스 (2007~2011)
2006년부터 2007년 9월까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케빈 타워스 단장의 보좌역 겸 스카우트로 일한 웨이드는 2007년 9월 20일 휴스턴 애스트로스 단장이 되었다. 조금 웃긴 것은, 드레이튼 맥레인 구단주의 "리빌딩 X & 리툴링[6] O + 팜 순위 상승" 전략에 대해 웨이드가 전적으로 동의하는 인터뷰를 했다는 것이다. 이에 감복한 구단주는 웨이드를 단장으로 임명했고 평균 연령이 30대를 넘어선 애스트로스는 그렇게 리빌딩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필리스 시절 불펜을 좋아했고 빅마켓답게 불펜을 끌어모을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스몰마켓인 휴스턴에서는 불펜을 끌어모으는 전략은 무리였다.[7] 하지만 웨이드는 대책없이 불펜을 끌어모으기 시작했고, 브래드 릿지를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보내면서 마이클 본과 제프 지어리를 받아오는데 그친다.[8] 또한 대책없이 중심타선만 보강하면서 미겔 테하다를 영입하며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유망주들을 퍼줬다. 그 외에도 이반 로드리게스를 영입하였고, 이상한 FA들을 잔뜩 영입[9]하면서 로이 오스왈트를 도와줄 선발투수를 데려오지 않았다. 그런데 거기서 오스왈트까지 부상을 앓기 시작한다.
이러다보니 애스트로스의 리빌딩은커녕 리툴링조차 제대로 될리가 없었고, 86승, 74승 등 애매하기 짝이 없는 등수로 08, 09년을 허송세월로 보냈다. 그런데 멍청한 구단주[10]는 그게 리툴링 잘 되고 있는건줄 알고 2011-12 2년 연장계약까지 선물해줬다.
2010년을 16승 33패로 시작하고서야 웨이드는 상황을 이해했다. 그리고 데드라인에 로이 오스왈트와 랜스 버크먼을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뉴욕 양키스로 팔아치우며 리빌딩에 돌입하나 했는데 팀은 76승이라는 애매하기 짝이 없는 등수로 시즌을 마무리하며 다시 골머리를 썩였다. 게다가 팜 순위도 리그 30위에서 26위로 상승했을 뿐 리그 최악인건 똑같다.
게다가 리빌딩 한답시고 버크먼이 돌아오겠다고 하는데도 계약을 거부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팬들의 분노를 더욱 자극했다! 결국 서운함을 느낀 버크먼은 애스트로스의 원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가버려서 절대반지까지 차지했고, 애스트로스 팬들은 웨이드를 욕하며 버크먼에게 기립박수를 보내는 암울한 신세가 되었다.
또한 2011년에도 파이어세일은 계속되었는데, 이번엔 마이클 본과 헌터 펜스였다. 펜스는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팔아넘기며 다시금 필리스의 위성구단이자 전담 호구임을 인증했고[11], 본을 팔아넘기면서 호구짓의 정점을 찍었다.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의 리그 최고수준 투수 유망주들을 받아오는데 실패하고 B급 유망주들만 받아온 것. 게다가 같이 온 중견수 조던 셰이퍼는 마리화나 소지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이쯤 되면 답이 없다.[12][13] 결국 애스트로스 2011 시즌은 규정타석 채운 선수가 카를로스 리 뿐인 가운데 프랜차이즈 최다패 기록인 106패를 달성하며 마감했다. 특히 마지막 경기에서는 숙적 카디널스가 2011 MLB 와일드카드 레이스에서 승리하는데에 제대로 호구노릇을 해줬다.
필리스가 고마워해야 할 15가지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에드 웨이드. 아이고 두야…
결국 맥레인 구단주는 구단에 정나미가 떨어져서 구단을 매각하는데 합의했고, 사무국은 매각 비용을 깎는 대신 2013년부터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애스트로스 팬들은 꿈도 희망도 없게 되었다.
에드 웨이드 단장의 재임기간은 2012년까지다.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AL로 옮기기 전인 NL 중부에서의 마지막 시즌도 암울하게 보내게 될 듯 하다.
2008년 7월에 쌈박질을 벌였던 애스트로스 릴리버 숀 샤콘이 웨이드를 아예 저세상으로 보내버렸어야 한다는 한탄을 하는 중.[14]
결국 새 구단주 짐 크레인이 프런트 물갈이를 선언하며 웨이드는 짐을 싸게 되었다. 휴스턴 현지에서는 그저 OLLEH! 현지시간 2011년 11월 28일 발표가 이어지며 공식적으로 경질이 결정되었다. 켄 로젠탈 사전 보도.
단장에서 짤린 뒤, 친정팀 필리스가 스카우팅 담당 특별고문으로 데려갔다. 대체로 팬들의 반응은 이거 노리고 그동안 실컷 퍼준거냐?라는 반응
웨이드가 잘린 2012년, 제프 러나우 단장이 취임한 뒤 성적은 마찬가지로 시궁창이지만 먹튀들을 처리하고 괜찮은 유망주들을 끌어모으면서 리빌딩은 순항을 계속하고 있다. 슬슬 2016년쯤이면 AL 서부 대권에 도전할 만 하겠다는 말도 나오는 중. 그리고 2017년, 기어이 월드 시리즈를 우승했다.
4. 재평가?
이 글 본문은 전반적으로 편향된 관점, 혹은 트레이드 당시 팬들의 불만에 의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씌여져 있다. 웨이드가 모자란 단장임은 맞지만, 리틀필드를 넘어 빌 버베이시에 비교하기엔, 많이 억울하다. 유망주 육성과 스카우팅에서 제법 뛰어난 인물이기 때문이다.우선 위에 언급된 것처럼 필라델피아 필리스 단장 시절에도 유망주들은 제법 모아서 성장시켰다. 최악의 단장 반열에 오르려면 FA계약, 트레이드, 유망주 육성 모두에 걸쳐 두루 말아먹어야 하는데 필리스 우승의 토대가 된 젊은 선수들을 육성한 것은 웨이드의 공이 크다. 단장 재임 98년부터 1픽만 봐도 팻 버렐, 브렛 마이어스, 체이스 어틀리, 개빈 플로이드, 콜 해멀스, 그렉 골슨 정도만 빼고 백발백중 다 성공했다. 그나마 마이어스와 어틀리, 해멀스는 10픽 너머에 있었는데도. 다만 진정한 강팀, 우승으로 이끌 능력이 부족했을 뿐이다.
휴스턴을 보자. 2014년 현재 휴스턴 팜은 TOP 수준이다. [15] 그런데 여기에 에드 웨이드가 공헌한 점이 많다. 2011년 1라운더 조지 스프링어와 2010년 1라운더 딜라이노 드실즈 주니어가 13시즌을 마친 현재 마이너에서 맹활약을 했고, 헐값에 선수를 퍼줬다고 비난받았던 헌터 펜스 트레이드에서 건진 코자트, 마이클 본 트레이드에서 건진 오버홀쳐는 선발투수로서 13시즌 말에 빅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개별 트레이드를 보면, 브래드 릿지를 보낸 트레이드는 트레이드 직전 06-07년 당시 푸홀스 충격으로 정신 못 차리고 있을 때임을 감안해야 한다. 게다가 데려온 마이클 본은 정상급 리드오프로 잘 성장했다. 테하다 트레이드 역시 여러 선수들을 퍼줬다고 해도 그들 중 제대로 터진 유망주는 전혀 없으며, 루크 스캇이 좀 아깝긴 하지만 그는 지명타자에 더 어울리는 선수였다. 굳이 리빌딩을 하지 않고 리툴링을 선택한 방향은 문제지만 트레이드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호세 발베르데는 큰 유망주 출혈없이 데려와서 잘 써먹었고, FA 마무리 라이언은 2011년 부진했지만 2010년 12년에는 호성적을 올렸고 거액을 받는 선수도 아니다.
로이 오스왈트 트레이드가 실패작이라고 할 만한데, J.A. 햅, 브렛 왈러스, 조나단 비야를 받았는데 햅은 필리스에서 성적이 좋았고 왈러스는 탑 1루수 유망주였다. 결과적으로 꼬이긴 했지만 트레이드 당시 받아온 매물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조나단 비야는 14시즌 현재 주전 유격수로 팀에 남아 있다. 버크만 트레이드로 받아온 불펜투수 멜란슨은 곧바로 팀의 주전 마무리가 되었고, 후임 단장 르나우는 멜란슨을 보스턴에 넘기면서 주전급 유격수 제드 라우리를 받아 왔다. 마이클 본 트레이드는 조단 셰퍼와 폴 클레멘스는 그다지 돋보이지 않지만 브렛 오버홀쳐가 14시즌에도 선발로서 충분히 잘 던졌고, 헌터 펜스 트레이드는 재레드 코사트, 존 싱글턴, 도밍고 산타나를 포함했는데 코사트는 선발로서 실력을 증명했고 말린스로 트레이드되면서도 제법 높은 가치의 선수들을 받아왔다. 싱글턴은 좀 헤매긴 했지만 탑 1루 유망주로서 빅리그 승격되기도 전에 장기계약을 받은 최초의 선수로 기록되었고, 도밍고 산타나는 14시즌 현재 팀내 코레아, 어펠 다음 세번째 유망주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정도면 펜스 트레이드는 호구 트레이드가 아니라 빌리 빈 급 사기 트레이드다.
드래프트도 2008-2011 4년간 결과가 좋았다. 제이슨 카스트로는 중심타자급 포수로 성장했고, 조지 스프링어는 메이저리그 올라와서도 좋은 데뷔시즌을 보냈다. Foltynewicz는 팀내 제 4의 유망주가 되었고, 단지 드쉴즈의 성장이 정체되고 있고 1라운더 하위픽인 Mier가 부진한 정도다. 14시즌 정상급 선발투수로 팀을 이끈 댈러스 카이클 역시 2009년 드래프티다. 르나우?? 르나우가 데려오는 선수들이 돋보인 건 14시즌에 이르러서이고, 초창기 르나우가 리빌딩한다며 데려온 유망주 크라우스, 그로스만, 맷 도밍게즈 등은 그다지 가치있는 선수도 아니었고, 그가 전체 1픽으로 드래프트한 어펠, 코레아도 전체 2픽이었던 벅스턴과 브라이언트보다 못한 평가를 받고 있다. 14시즌 1픽 에이켄을 갖은 논란을 일으키며 날린 것은 덤.
즉 웨이드는 리툴링 방향이 잘못되었지만 개별 선수들을 보는 눈은 상당히 좋았고, 르나우는 리빌딩 방향은 잘 잡은 듯 하지만 현재까지 리빌딩 과정이 너무 혹독하고 잡음과 민폐도 많이 일으키고 있다. 이처럼 웨이드는 두 팀 모두에서 유망주들은 제법 육성시켰다. 14시즌 이후 휴스턴 유망주들이 빅리그에서 더 좋은 활약을 한다면 상당한 재평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MLB 전문 김형준 기자는 2014년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대한 전망을 하면서 웨이드의 공로를 인정했다. 애스트로스 전망
그러나 2014년으로부터 5년이 지난 2019 시즌 종료시점에서 휴스턴의 우승에 웨이드가 공헌한 것은 생각보다 미미하다. 웨이드의 유산 가운데 터진건 2017년 월드시리즈 MVP인 조지 스프링어와 2015년 사이영상 수상자 댈러스 카이클 뿐이고, 직접적으로 휴스턴에서 뽑은게 아닌 트레이드 대상까지 범위를 넓혀도 마이크 폴티뉴비치의 트레이드 상대인 에반 개티스, 도밍고 산타나의 트레이드로 받아온 마이크 파이어스, 제러드 코사트의 트레이드 상대인 제이크 마리스닉정도. 그리고 이 트레이드들을 에드 웨이드의 업적이라고 할 수도 없는게, 선수들 모은건 웨이드일지 몰라도 그 선수들을 활용해 팀에 도움된 다른 선수들을 트레이드로 데려온건 러나우이다. 싱글턴과 드실즈는 망한 유망주가 되어 방출되었거나 팀을 옮겼다. 저 위에 미겔 테하다 트레이드 상대로 퍼준 유망주들 중 터진게 없어서 괜찮다고 서술되어 있는데, 이는 헌터 펜스 트레이드에도 똑같이 적용된다.[16] 물론 월드 시리즈 MVP와 사이영상 수상자를 뽑아놓은 안목은 인정받을만 하다.
5. 관련 문서
[1] 이 트레이드에서 필리스로 온 선수들 중 비센테 파디야만이 필리스의 로테이션에서 4~5선발로 활동했고 나머지는 모두 실패했다. 실링은 알다시피 랜디 존슨과 함께 준수한 활약을 보였고, 디백스의 2001년 월드 시리즈 우승에도 공헌했다.[2] 이 때문에 하워드는 2004년부터 LA 다저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등으로 트레이드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런데 폴 디포데스타와 데이브 리틀필드가 이 딜을 거절했다.[3] 이후 아브레우는 팻 길릭이 2006년 데드라인에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한다.[4] 다행히 2005년 6월 폴랑코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로 트레이드되며 어틀리가 풀시즌을 뛰게 되었다. 폴랑코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디트로이트에서 4년 반을 뛰었고, 후에 필리스로 돌아와서는 3루수로 포지션을 바꿔서 골드글러브까지 수상을 했다.[5] 이런 일들 때문에 웨이드의 유일한 업적인 신인 드래프트마저 묻히고 있는 편이다. 어틀리 하워드 등을 제외하고도 콜 해멀스, 브렛 마이어스, 카일 켄드릭, 라이언 매드슨 등 많은 전·현직 필리스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웨이드의 성과라 할 수 있다.[6] 쉽게 말해, 리빌딩은 싹다 뜯어고치고 몇년쯤 고생하면서 체질개선하는 것이고, 리툴링은 현재 전력에서 주요 선수들 대부분은 남겨두고 몇명만 바꿔가면서 계속 일정 순위 이상을 노리는거라 보면 된다.[7] 그나마 쓸만한 불펜을 제대로 잡지도 못했다. 호세 발베르데를 붙잡지 않고 데려온 브랜든 라이언은 애스트로스 팬들에게 무지막지하게 까이는 먹튀가 되었다.[8] 마이클 본이야 성공작이지만 겨우 지어리를 받아온 것은 문제가 있었다. 애스트로스에게 필요한건 오스왈트를 보좌할 선발투수였다.[9] 이로서 드래프트 픽을 신나게 날려먹었다. 게다가 구단주가 하도 구닥다리여서 MLB 사무국의 슬롯머니를 지킨답시고 계약금도 제대로 지원해주지 않는 바람에 그나마 있던 픽까지 전부 허공에 날려먹었다.[10] 잘 보면 알겠지만, 이런 웨이드 단장을 계속 신임한 드레이튼 맥레인 구단주가 진정한 흑막이라는 말도 많이 있다.[11] 그래도 싱글턴과 코사트를 받아왔으니 딱히 손해를 본것까진 아니다. 이들은 여전히 MLB 최고수준 유망주들이기 때문. 일단 코사트는 2013시즌 메이저무대를 밟으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나, 싱글턴은 마이너에서 고전했다. 2020년 현재 사점에서는 휴스턴도 딱히 이득을 보진 못한 트레이드로, 코사트는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채 잦은 부상으로 골골대다 결국 은퇴했다. 한편 싱글턴은 휴스턴에서 5년 1000만 달러라는 유망주 염가(라고 생각되었던) 장기계약까지 맺었으나 눈 뜨고 못 봐줄 삽질 끝에 방출되었다. 결과적으로 메인 칩인 코사트와 싱글턴은 죄다 망했고 살아남은 유망주는 추후지명선수였던 도밍고 산타나뿐었으며, 그도 카를로스 고메즈 트레이드 당시 칩으로 밀워키 브루어스로 넘어가서 터졌다. 결국 휴스턴에서 제대로 활약한 선수는 없는 셈.[12] 이 당시 트레이드가 막 완료된 8월 초부터 중순까지 위키피디아 에드 웨이드 페이지에는 필리스 팬들과 빡친 애스트로스 팬들, 웨이드의 소수 지지자들 간에 수정전쟁이 벌어지며 급기야 중립적이지 않다는 경고문까지 붙게 되었다.[13] 애스트로스 팬덤이 분개한 것은, 리빌딩의 핵심이 되어야 할 이들을 팔아넘겼다는 자체에 크게 화가 난 것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나름 괜찮은 유망주들을 받아온 트레이드인 펜스 딜에 대해서도 분노하고 있는게 그 근거.[14] 애스트로스 팬덤에서는 꽤 유명한 사건인데, 샤콘은 뉴욕 양키스에서 쏠쏠하게 활약을 하며 FA에서 휴스턴으로 왔는데 맹렬한 빈타에 힘입어 9게임 연속 노디시전을 기록하면서 멘탈이 붕괴되었고, 시즌 중 웨이드 단장에게 불펜 강등을 통보받자 웨이드의 멱살을 잡고 테이크 다운을 하며 장렬하게 방출, 메이저리그 커리어 아웃을 달성했다. 웨이드를 싫어하는 애스트로스 팬들 사이에서는 지금까지도 자주 회자되는 흠좀무한 무용담이다.[15] 독보적인 1위는 아니지만 무조건 5위 안에는 든다.[16] 헌터 펜스 트레이드로 결국 남은게 외야유틸 백업인 제이크 마리스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