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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0-01-29 15:49:17

스캇 롤렌


스캇 롤렌의 수상 경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
2006

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 1997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신인왕
토드 홀랜스워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스캇 롤렌
(필라델피아 필리스)
케리 우드
(시카고 컵스)

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 200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3루수 부문 실버 슬러거
알버트 푸홀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스캇 롤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마이크 로웰
(플로리다 말린스)

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 1998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3루수 부문 골드 글러브
켄 캐미니티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스캇 롤렌
(필라델피아 필리스)
로빈 벤추라
(뉴욕 메츠)
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 2000~2001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3루수 부문 골드 글러브
로빈 벤추라
(뉴욕 메츠)
스캇 롤렌
(필라델피아 필리스)
스캇 롤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 2002~2004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3루수 부문 골드 글러브
스캇 롤렌
(필라델피아 필리스)
스캇 롤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마이크 로웰
(플로리다 말린스)
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 2006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3루수 부문 골드 글러브
마이크 로웰
(플로리다 말린스)
스캇 롤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데이비드 라이트
(뉴욕 메츠)
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 2010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3루수 부문 골드 글러브
라이언 짐머맨
(워싱턴 내셔널스)
스캇 롤렌
(신시내티 레즈)
플라시도 폴랑코
(필라델피아 필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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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rolen.jpg
스캇 브루스 롤렌
(Scott Bruce Rolen)
출생 1975년 4월 4일
국적 파일:미국 국기.png 미국
출신지 인디애나 주 에반스빌
신체 193cm / 111kg
포지션 3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3년 드래프트 2라운드 전체 46번 (PHI)
소속팀 필라델피아 필리스 (1996~2002)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2002~2007)
토론토 블루제이스 (2008~2009)
신시내티 레즈 (2009~2012)
수상 7× All-Star (2002~2006, 2010~2011)
World Series champion (2006)
NL Rookie of the Year (1997)
NL Silver Slugger Award (2002)
8× NL Gold Glove Award (1998, 2000~2004, 2006, 2010)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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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e hand catch!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동했던 3루수로, 2010년까지 골드 글러브를 8회 수상하여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레전드 브룩스 로빈슨(16),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레전드 마이크 슈미트(10)에 이어 역대 3루수 골드글러브 수상 횟수 3위에 올라 있다.

ESPN, MLB, 베이스볼 레퍼런스, 팬그래프

2. 경력

2.1. 필라델피아 필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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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이 가득해보인다

어릴 때는 유격수로서 아지 스미스를 동경하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팬으로 자라났지만 고교 마지막 해에 3루수로 포지션을 바꿨다.

A-Rod, 대런 드라이포트, 빌리 와그너, 크리스 카펜터가 지명받은 드랩에서도 수준급 재능으로 꼽혔는데도 고교 시절 농구에서도 재능을 보여 농구 장학금 제안을 받기도 하는 등 고교 출신으로서 사이너빌리티에 문제가 있었다. 결국 2라운드까지 밀리며 필리스에 지명받고 1996년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콜업되었다. 필리스는 상당한 유망주로 보았으며 성적은 그다지 좋지 못했으나, 꾸준히 출전하였고 다음해에 신인상을 위해서 신인 규정 타석을 채우기 전에 마이너로 내렸다.

결국 1997년 신인답지 않은 좋은 성적으로 만장일치로 신인왕에 올랐다.[1] 공교롭게도 97년 아메리칸리그 역시 만장일치 신인왕이 탄생했는데 다름아닌 노마 가르시아파라. 롤렌은 이듬해 골드글러브까지 수상하자 암울한 미래만 가득해보였던 만패 필리스 팬들은 "제2의 마이크 슈미트가 나타났다!!!"고 설레발을 떨며 장밋빛 미래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특히 유격수의 수비범위를 줄여버릴 정도의 뛰어난 수비범위와 강력한 어깨는 오늘날로 치면 에반 롱고리아 정도였으며, 주루도 뛰어나고 준수한 컨택능력과 파워히팅으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5툴 플레이어[2]로 분류되었다. 다만 인조잔디 구장인 베테랑스 스타디움(Veterans Stadium)에서 부상 우려로 인해 그의 주루 툴은 많이 손해를 보게 되었고 99,00년을 부상으로 망치고 말았다. 롤렌 본인도 이에 짜증이 많이 나서 프런트에 지속적으로 잔디 교체를 요구해달라고 징징댔고, 결국 시티즌스 뱅크 파크(Citizen's Bank Park)가 개장하기 전인 2001년부터 필리스는 구장 잔디를 천연잔디로 교체해야 했다.

하지만 필리스가 00년에 에이스 커트 실링을 팔아넘기는 것을 보며 필리스에게 많이 실망한 롤렌은 필리스가 7년 $90m의 계약을 제안하자 거절했고 이에 필리스는 10년 $140m[3]의 파격적인 제안을 했음에도 거절했다. 특히 스프링 트레이닝 기자회견에서 무려 45분 동안이나 필리스의 갖가지 문제점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하고 뒤이어 래리 보와 감독과 에드 웨이드 단장과의 불화까지 겹쳐지는 통에 .259 .358 .472로 태업을 벌였고 찌질하기로는 보스턴과 자웅을 겨루는 필라델피아 팬들에게 내내 야유를 받았다. 결국 필리스는 FA를 앞둔 2002년 중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그를 넘겼는데, 플로리다 말린스 원정 중이던 카디널스 선수단에 합류하려고 비행기를 타기 전 가진 인터뷰에서 "천국에 온 것 같다. 빨리 가고 싶다."는 발언으로 어그로를 끌더니, 10년 $140m과 비교하면 말도 안되는, 헐값 계약인 8년 $90m을 제안한 카디널스와 냉큼 사인해버리며 필리스 팬들의 분노[4]를 가중시켰다(...)

또한 이 때의 트레이드[5]에서 필리스가 카디널스의 2루수 플라시도 폴랑코를 받아왔고, 2003년을 앞두고 FA 3루수 데이빗 벨을 영입하는 바람에 2003년 콜업을 기다리고 있던 체이스 어틀리는 말 그대로 새됐다(...)[6] 결국 2004년에도 플래툰으로 우울한 시즌을 보내야 했고 겨우 2005년[7] 26세 시즌에야 첫 풀타임 시즌을 보내게 되었다. 안습.

결국, 롤렌은 마이크 슈미트의 후계자가 되는 대신 J.D. 드류와 함께 필리 팬덤 한정 천하의 개쌍놈이 되었다. 시티즌스 뱅크 파크가 개장한 지금도 필라델피아 원정만 오면 필리 팬들은 구수한 욕설과 야유로 맞아준다.

2.2.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파일:external/my.execpc.com/ROLEN.jpg
필리스 시절 사진과는 달리 얼굴이 정말 환해보인다

트레이드 이후 자신이 그토록 뛰고 싶었던 카디널스와 8년 $90m이라는 저렴한 몸값으로 사인한 뒤, 발전 없는 좌익수/3루수가 1루수로 정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필리스 시절의 태업은 온데간데없이 맹타를 휘두르고 최고의 수비를 펼쳐 4연속 올스타와 3회 골드글러브를 땄다. 2004년에는 실질적인 커리어 하이인 .314 .409 .598 34홈런 124타점, fWAR 9.0, rWAR 9.1 찍고 MVP 투표 4위에 오르기도 했는데, 다만 2005년 LA 다저스전에서 최희섭과 충돌하여 왼쪽 어깨를 다치고 시즌을 마감하는 등 수많은 부상에 시달렸다.

사실 플레이 자체는 롤렌의 지나친 허슬플레이였고 오히려 최희섭은 멀쩡하자 국내에선 자승자박이라고 롤렌을 놀려댔다. 이것은 한국 언론이 롤렌에 대해 잘 모르니까 한소리로 롤렌은 교사인 부모님에게서 보이지 않아도 항상 최선을 다하라고 가르침을 받았고, 평범한 땅볼에도 미친듯이(?) 1루로 달려간다. 롤렌 본인은 최희섭과의 충돌에 대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면서 감정 없이 넘어갔다.

이 부상의 여파로 2006년에는 어깨에 철심을 박은채로 플레이를 했고, 2006년 디비전시리즈와 내셔널리그 챔피언쉽 시리즈에서는 그다지 좋은 활약을 보이지 못했지만 챔피언쉽 시리즈에서 홈런성 타구를 날리기도 하였다.[8] 참고로 엔디 차베즈가 잡은 이 타구는 Endy Chavez로 검색하면 자동으로 NLCS catch가 뜰정도로 상당히 유명하다. 윌리 메이스의 the Catch에서 따서 NLCS의 the Catch라고 부르는 듯. 결국 월드시리즈에서는 시리즈 첫 홈런을 날리는 등 .421로 활약한다.

하지만 2007년에는 지병인 천식이 악화되기까지 했고, 어깨 부상은 결국 타격에도 영향을 주며 커리어 로우를 찍었고, 9월 초 왼쪽 어깨를 다시 수술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또한 평소에 토니 라루사 감독과 불화가 있었는데,[9] 월트 자케티 단장과 토니 라루사 감독의 파워게임에서 당당히 자케티 단장의 편을 들었다가 계약 만료된 라루사 감독의 재계약이 결정되자 결국 롤렌은 토론토 블루 제이스트로이 글로스와 트레이드되어 팀을 떠났다. 같은 팀 동료였던 짐 에드먼즈역시 비슷한 이유로 신시네티로 트레이드되었다.

2.3. 토론토 블루제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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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캐나다로 온 그는 계속해서 부상에 시달렸다. 더욱이 부상으로 인해 많은 경기를 결장하면서 타율 .262에 OPS가 2년 연속으로 8할 밑으로 내려가며 로이 할러데이와 비슷한 연봉을 받으면서도 전혀 몸값을 못한데다 트로이 글로스가 27홈런을 친 것과 대조되며 J.P. 리치아디 단장의 삽질로 기록되었다.(리치아디는 09년 이후 물러났다.) 결국 2009년 다시 부활하여 가치가 웬만큼 오르자 월트 자케티 단장이 있는 신시내티 레즈로 시즌 중반에 트레이드되었다.

2.4. 신시내티 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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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NL 중부지구. 09년에는 상대적으로 부진하며 제이스에서의 성적을 까먹었지만 연장 계약을 맺은 2010년[10]에는 06년 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130경기 이상 출전하는 기록을 세우며 20홈런과 OPS 8할을 찍었다. 당연히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4번타자로서 조이 보토, 제이 브루스와 함께 중심타선에서 활약하며 신시내티 레즈의 2010 NL 중부지구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개인적으로도 오랜만에 올스타에 선정되고 통산 8번째 골드글러브를 땄으니 이 정도면 재기선수상(Comeback Player of the Year)을 노려볼만한 성적이었다. (다만 실제로는 팀 헛슨이 받았다.)
이 당시 리더십을 발휘했는데 에피소드는 다음과 같다.
2010년의 어느날 롤렌은 더스티 베이커 감독으로부터 다음날 경기는 쉬라는 통보를 받았다. 편한 마음으로 휴식을 취하려던 롤렌은 상대 선발 투수가 로이 할러데이임을 확인하고는 베이커를 찾아갔다. 자신이 빠지면 미겔 카이로가 3루수로 나서야 했는데, 카이로는 앞선 선발 출장에서도 잭 그레인키라는 에이스를 상대했기 때문이었다. 롤렌은 베이커 감독에게 내일은 자신이 나설테니 좀 더 쉬운 투수를 상대하는 경기에서 카이로에게 기회를 주라고 부탁했다. 이러한 롤렌의 이타적인 태도는 보토에게 리더로서 나아길 길을 보여준 것이었다.#

그러나 2011년엔 다시 어깨 부상이 도지며 65경기 출장에 .242의 타율에 그쳤다. 아무래도 빅초이와의 충돌이 롤렌의 커리어를 뒤집어 놓은듯.

한편으로, 필리스 팬들은 트레이드가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롤렌에 대한 원한을 절대 잊지 않고 있었는데, 2010년 NLDS 1차전에서 로이 할러데이가 5회에 스트라이크 존에 아주 살짝 걸치는 삼진을 잡았을 때 짜증을 내는 롤렌에게 퍼부어지는 광적인 팬들의 야유는 해당 게임의 하이라이트와도 같을 정도[11]였으며, 윌슨 발데스가 2011년에 투수로 등판했을 때에도 롤렌이 엉덩이에 볼을 맞고 걸어나가자 19회 새벽까지 남아있던 필리스 팬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실컷 부우우우우우를 외쳤다. 이쯤 되면 천하의 개쌍놈 취급이다. 역시 필리건들이란...

한편으로는 최근 험악해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신시내티 레즈 라이벌리에서 카즈 부주장 야디어 몰리나브랜든 필립스[12]의 싸움에서 크리스 카펜터야디어 몰리나를 뜯어말리며 양 팀 선수들의 싸움에 있어 중재자가 되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영상과 설명[13], 험악해진 라이벌리에 대한 소개

2012년 초반, 노쇠화를 피할수 없었는지 최악의 부진에 빠졌다. .245 .318 .398 8홈런으로 시즌을 마쳤고, 2012 NLDS 3차전에서는 연장 10회초에 결정적인 에러를 범하며 팀이 리버스 스윕을 당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며 기량이 점점 쇠퇴하고 있고, 롤렌의 후계자인 토드 프레이저가 확실한 레즈의 주전 3루수로 정착하면서 롤렌은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

3. 명예의 전당 떡밥

부상이 잦은 건 흠이지만 유리몸?[14] 2000안타와 300홈런을 넘어섰고 통산 500개의 2루타를 쳤다. 그 결과 2000안타, 500 2루타, 300홈런, 1200타점을 모두 기록한 역대 3번째 3루수가 되었다. 앞선 두명은 조지 브렛치퍼 존스.

수준급의 장타력과 컨택능력, 8회 골드글러브 위너로서 수비까지 모두 갖춘 전천후 3루수[15]기 때문에 40대 초반까지 누적스탯을 쌓아나간다면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입성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커리어를 생각보다 빨리 접으면서 다소 애매한 스탯을 남겼기 때문에 호프집 입성은 요원한 상태. 언젠가 실제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다른 3루수들에 비하면 임팩트 있는 시즌은 그들만큼 있되, 쌓인 누적에서 많이 밀리긴하다. 만약에 가게 된다면 베테랑위원회를 통해 가게 될 가능성이 높을것으로 전망중. 사실 WAR 60정도를 명전급 커트라인으로 보는데 충분히 명전에 들어가고도 남을 위대한 선수다. 공, 수, 주 3박자에서 좋은 활약을 한 선수라 무려 누적 BWAR는 70.3, FWAR는 69.8 이나 된다.

2018년 명예의 전당 투표 첫 해에서, 입성 동기 치퍼 존스가 압도적인 득표율로 가볍게 입성한 반면 롤렌은 10.2%에 그치고 말았다. 다음 해인 2019년에는 17.2%를 기록. 장기투숙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 그래도 2020년에 35.3%로 크게 뛰며 희망이 생기긴 했다. 특히 온라인에서 압도적으로 지지를 받고 있어 전망이 밝은 상황.

4. 여담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김병현의 9구 3삼진에서 첫타자였다.

카디널즈에 있을 때 동료인 짐 에드먼즈알버트 푸홀스와는 성격이 판이하게 달랐다고 한다. 관심받기 좋아하고 매 경기를 즐긴다는 자세로 임해와서 에인절스에서 뺀질이 소리까지 들었던 에드먼즈나 자부심이 넘쳤던 푸홀스와는 달리 묵묵히 자기할일을 소처럼 일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고. 실제로도 알버트 푸홀스까지 합쳐서 세 선수는 성격도 많이 다르고 해서 생각보다 그닥 친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경기 내에서는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하니 흠좀무. 신기하게도 플레이에 있어서 모두 성격과 상관없이 허슬플레이어로 유명했다.

여배우 줄리아 스타일스와 닮은꼴로 유명하다(...)
파일:external/www.bennadel.com/julia_stiles.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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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수상은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이, 1992년 에릭 캐로스부터 시작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신인왕 5연패를 끊은 수상이기에 더욱 주목받았다.[2] J.D. 드류, 지미 롤린스, 체이스 어틀리 등의 사례에서도 잘 알 수 있는 대목인데, 필리스는 타자들을 지명할 때 예나 지금이나 신체조건이나 운동능력(툴)을 가장 중시한다. 때문에 비교적 최근인 2000년대 중후반 이후 드랩이나 트레이드에서 필리스는 툴 좋은 흑형들을 많이 데려오는 편.[3] 참고로 계약했다면 케빈 브라운, 알렉스 로드리게스, 데릭 지터, 매니 라미레즈, 마이크 햄튼에 이은 6번째 1억달러 계약이었다.[4] 필리스는 예로부터 카디널스와 엮여서 재미를 본 일이 별로 없다. J.D. 드류 사태도 그렇고, FA제도의 불씨가 된 커트 플러드의 카디널스→필리스 트레이드 거부사태도 그렇고 여기 언급된 롤렌 트레이드도 그렇고. 때문에 라이언 하워드가 카디널스 팬이었다고 밝혔을 때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고 2011 NLDS에서 삽질을 해주고 부상까지 당해주시자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물론 일방적으로 당한게 아니라 이 모든 카디널스 잔혹사를 단번에 뒤집을 수 있었던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스티브 칼튼 트레이드.[5] 롤렌과 덕 니클과 연봉보조 차원 현금을 내주면서 필리스가 받은 대가는 고작 플라시도 폴랑코, 버드 스미스, 마이크 팀린. 폴랑코야 롤렌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필리스에 와서 맹활약을 했으나 나머지 선수들은(...) 버드 스미스는 데뷔 첫해였던 01년 노히터를 기록하며 선전했으나 02년 6점대 ERA로 망가졌고 트레이드 이후 필리스 소속으로 단 한경기도 못 뛴채 커리어를 마감했고, 마이크 팀린은 2002년 이후 테오 엡스타인을 따라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준수한 불펜으로 활약하며 우승을 맛봤다. 실질적인 이득은 하나도 챙기지 못한 필리스의 완패.[6] 당해 롤렌이 태업을 벌일 때부터 마이너에서 어틀리를 롤렌의 자리인 3루로 돌려보려고는 했지만 어틀리는 3루에서 폭풍 에러를 거듭하고 다시 2루로 돌아갔다.[7] 2005년을 앞두고 5년 $23m에 사인한 폴랑코는 어틀리 때문에 사인한 첫 해부터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되고 말았는데, 09년까지 예정되었던 그 계약이 종료되고 10년부터 다시 필리스로 돌아와버렸다. 그것도 3루수로 포지션을 바꿔서. 2010년부터 폴랑코는 필리스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되었다.[8] 본인도 충격이었는지 다음 이닝에 평범한 타구를 더듬어서 패배에 일조할뻔 하기도...[9] 2006년 롤렌은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롤렌의 세인트루이스 생활은 점점 꼬여가고 있었다. 앨버트 푸홀스와 대립각을 세우게 된 것. 연습 배팅 순서, 상품 판매 수입 등에서, 롤렌은 번번히 푸홀스와 자존심 싸움을 했는데, 그 때마다 토니 라루사 감독은 푸홀스의 편을 들었다. 어느새 세인트루이스는 롤렌을 필두로 월트 자케티 단장을 지지하는 백인 선수들과 푸홀스를 필두로 라루사 감독을 지지하는 히스패닉 선수들로 갈리게 됐다.#[10] 당초 $11,625,000의 거액 연봉이 예정되었지만 2010 연봉을 $7,666,666선으로 낮추고 11년과 12년 $8,666,666, $6,500,000의 계약과 마지막 해의 보너스를 보장받았다. 사실상 연봉 추후지급을 명시한 계약 갱신.[11] 다만 이 판정에 대한 보상판정 성격으로 제이 브루스가 풀카운트에서 볼넷을 골라 나가는 바람에 퍼펙트 게임이 무산되었다. 그런데 필리스 팬덤에서는 두번째 퍼펙트게임을 무산시킨 원흉으로 구심이 아닌 롤렌을 지목했다(...)[12] 카즈를 더러운 암캐라고 디스하기도 했으며 2000년대 후반 들어 카즈 팬들 사이에선 공적 1순위로 꼽힌다. 오죽하면 라루사 감독이 필립스에게 "카즈 출신 애들이랑 자케티 단장한테 민망하지 않냐"면서 적당히 까라고 했을 정도. 롤렌 말고도 레즈에는 카즈 출신 선수들이 굉장히 많으며 월트 자케티 단장도 카즈 출신이다.[13] 영상에서는 롤렌이 껴안고 있다가 갑자기 배틀이 벌어지는데, 이건 롤렌이 싸움을 건게 아니라 카펜터를 껴안고 있다가 갑자기 뒤에서 조니 쿠에토가 뒷치기 펀치를 날린 것이다. 실제로 카펜터와 롤렌은 친한 사이이며, 잘 보면 해설자가 오해를 하는 영상에서도 싸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카펜터와 함께 빠져나온다.[14] 최희섭과의 충돌로 인한 어깨 부상과 그 후유증이 그가 은퇴할 때까지 발목을 잡았던 대부분의 부상 및 재활 경력이었다. 만약 충돌하지 않았다면 이 선수의 커리어는 더욱 뛰어났을 것이다. 물론 대다수 일반 레벨의 선수들에게는 이 정도 통산 커리어는 꿈도 꾸지 못할...[15] 이런 점 때문에 벨태현과 자주 비교된다. 벨트레가 좀더 타격 친화적인 구장에서 뛰었다면 롤렌과 비슷한 수준의 스탯을 쌓았을 것으로 평가받는 이유로, 실제로 베이스볼 레퍼런스에서 계산한 커리어 시믈러리티 스코어도 910점으로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