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한국형 스릴러의 단점을 모아 놓고, 답답하고 한심한 주인공+바보같고 무능력한 경찰+초인적인 범인이라는 공식[1]을 만들어버려 근래 한국형 스릴러의 암흑기를 알려버린 영화다.[2]2. 리뷰어들의 평론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는 알겠다. 방관하는 사회, 집단 이기주의가 만연한 현실 그 자체가 공포일 테니. 하지만 이를 이야기로도, 장르로도 영리하게 풀어내지 못한 것이 문제다. 살인사건을 목격하고도 신고를 하지 못하는 인물의 심리가 공감을 형성하지 못하니 사건이 진행될수록 쫄깃하기는커녕 답답함만 더해간다. 신고를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할 영화가 신고를 왜 안 하는지 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 아이러니. 게다가 살인마를 비롯한 영화의 설정 대부분은 <추격자>의 흥행 이후 무수히 양산된 한국형 스릴러의 기시감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한다. 후반부 산사태 장면처럼 무너져 내리고 만 스릴러.
- 서정환 (무비스트) (★★)
- 서정환 (무비스트) (★★)
목격자가 졸작이라 불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바로 개연성이죠. 목격자의 캐릭터들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움직임을 보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비합리적인 선택을 설명할 다른 근거가 있냐면 그것도 아닙니다. 즉 이 영화는 전개를 위해 개연성을 희생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이런 걸 흔히, 영화가 억지를 부린다고 하죠.
- 영화 평론가 라이너. 목격자 리뷰에서.
- 영화 평론가 라이너. 목격자 리뷰에서.
메가로돈의 가이드 리뷰에서 제가 올해 본 모든 영화를 통틀어 가장 멍청하고 조잡한 각본이라고 했었죠. 참으로 죄송하게도 그 말은 취소입니다. 하루 만에 1위가 목격자로 바뀌었습니다.
- 영화 평론가 발없는새. 목격자 가이드 리뷰에서.
- 영화 평론가 발없는새. 목격자 가이드 리뷰에서.
제가 정말 열 받는 건, 이 영화를 비판하기 위해서 무슨 영화 이론이나, 연기, 연출, 촬영에 대한 이야기를 할 필요조차 없다는 겁니다. 상식만 있으면 됩니다. 이 영화의 설정은 상식 하나로 다 무너집니다.
- 영화 유튜버 거의없다. 걸작선 70회 목격자 1부에서.
- 영화 유튜버 거의없다. 걸작선 70회 목격자 1부에서.
3. 개연성과 핍진성
3.1.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행동
3.1.1. 주인공
- 가장 큰 문제로 주인공은 살인사건을 목격하고도 살인범이 자신의 아파트 호수를 안다는 이유로 경찰 수사와 범인 검거에 전혀 협조하지 않는다. 자신의 주소까지 알고 있는 살인범을 일부러 신고 안 하고 방치해두면서도 경찰을 노골적으로 피하기까지 한다.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거대 범죄 조직의 표적이라도 된 것도 아니고, 조력자나 공범도 없이 혼자 뿐인 범인을 이미 경찰에서 유력 용의자로 단정하고 사진까지 들이밀면서 목격 증언만 해주면 바로 잡는다고 하는데도 경찰을 믿지 못한다며 한사코 증언을 거부한다. 작중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신고만 하지 않으면 살인마가 자신과 가족을 절대로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자기 집주소까지 아는 살인마를 경찰에서 잡아준다고 하는데도 거절하겠는가? 한마디로 자신과 가족을 언제든 죽일 수 있는 정신나간 살인마를 경찰보다 더 믿은 것이다. 문제는 이 살인마는 신고만 하지 않으면 해치지 않겠다는 언질 따위 준 적도 없다. 오히려 신고도 하지 않았던 필구[3]나 4층 여자를 무참히 망치로 습격하고 쳐죽이는 등 믿을 수 없는 위험한 인간이라는 것 만을 계속 입증해왔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바보처럼 입을 꾹 다물고 언제 범인이 들이닥쳐 일가를 몰살할지 모르는 집에서 멍청하게 일상생활을 영위한다. 상당한 공포와 불안에 떨면서도 말이다. 직접 신고하기가 부담스럽다면 익명의 인터넷 제보도 있으나 이 역시 끝내 하지 않는다. 보복이 두렵고 공권력을 믿지 못하겠다면 집을 비우고 숙박시설이나 친척집으로 피하든가, 사설경호원이나 조폭이라도 고용하든가, 마지못해 가족들을 나이프나 가스총으로 무장하게끔 하여 그들 자신을 지키게 할 수도 있었겠으나, 주인공은 이 중 그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 경찰에 신고하지도 그렇다고 스스로를 보호할 방책을 세우거나 하다못해 달아나지조차도 않으니 관객들은 주인공에게 전혀 공감을 할 수가 없었다.
- 신고를 하는 사람들은 대단한 의협심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 가족이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신고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예슬, 이혜진양 실종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안양 초등생 유괴 살인 사건 당시, 사건이 발생한 마을은 아이들이 실종되었을 때부터 범인이 잡히기 전까지 초비상 상태로 주민들이 다들 패닉에 빠져 있었다. 언제든 내 자녀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기사 당연히 이럴 때는 사소한 거동수상자만 보여도 제보전화가 폭주하는데, 범인이 잡히기 전까지는 내가 불안해서 못살기 때문이다. 무슨 권력과 유착된 거대조폭이라면야 괜히 신고했다가 다른 조직원들에게 보복당할 위험이 있어서 꺼리는 경우는 있으나, 극 중 범인은 그냥 또라이 한 명이다. 나중에 상훈이 맨손으로 직접 처단하러 나설 정도로 뭐 대단한 빽이나 연줄이 있는 인물도 아니다. 상훈이 막판에 산사태 속 혈투까지 벌였던 것도 무슨 살해당한 여인에 대한 복수심이나 이타심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냥 나와 내 가족이 위험할 수 있다란 판단을 내리고 직접 나선 것 아니던가. 상훈처럼 범죄자와 맞짱까진 못뜨더라도 신고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고 그게 정상이다. 상훈처럼 나와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목격자만' 특별 배려로 살려준다는 보장이 있지 않다. 신고를 안 하면 나는 안 죽이겠지 하고 안도할게 아니라, 오히려 그런 사람이 주변에 어슬렁 거린다는 것을 무서워해야 정상이다.
- 어차피 상훈이나 여성 목격자나 범인과 안면이 있는 사이가 아니므로 설사 신고한다해도 크게 위협이 되지 않으며, 도리어 범행현장에 계속 어슬렁 거리는게 훨씬 위협적이다. 당연히 경비원 순찰도 강화될테고 아파트 주민들도 경계를 하면서 다닐텐데 거주민도 아닌 거동수상자가 계속 목격자들을 감시 한다며 배회하고 다니는 것은 범죄 은폐가 아니라, 완전 나 잡아달라고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는 격이다. 물론 범인이 도망가버리면 영화 스토리가 진행이 되지 않기 때문에 스릴러라는 영화를 위해 리얼리티와 개연성을 희생시킨 것이다. 이런 이해할 수 없는 범인의 행동에 맞춰 상훈도 절대 신고를 못하는 이해할 수 없는 자로 만들어놔야 했기에 관객들은 주인공의 심리에 공감하며 몰입이 되는게 아니라 답답하고 두 바보들의 숨바꼭질를 보는 듯한 한심한 느낌마저 드는 것이다. 유명 유튜브 영화 평론가가 고구마 폭식에 비유했던 것도, 주인공과 범인에게 몰입하여 쫓고 쫓기는 긴장감을 느꼈던 게 아니라, 그저 두 답답한 바보들의 한심한 행동을 보고 있자니 너무 영화의 진행을 위해 억지스러운 행위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리라. 목격자와 비슷한 상황을 다루고 있는 다른 영화 《무언의 목격자》나 《블라인드》와 비교해 보면, 이 두 영화에서 사건을 목격한 주인공들은 정상적으로 사리판단이 가능한 사람들이지만, 무언의 목격자의 주인공 카렌은 언어장애인으로 말을 못 해서 자신이 목격한 상황을 경찰에게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블라인드의 주인공 민수아는 분명히 뺑소니 사고 현장에 있었고 당시의 상황도 제대로 기억했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라서 아무도 수아의 말을 믿지 않는다.[4] 이렇듯 이 두 영화는 사건의 목격자가 된 주인공에게 일정한 핸디캡을 부여해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이 해결에 난항을 빚게 되는 개연성을 부여했다. 그런데 상훈은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멀쩡히 사리분별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단지 무섭다는 이유만으로 신고를 하지 못하는 답답한 모습만을 보여준다. 게다가 경찰을 앞에 두고, 범인을 그 뒤에 두고도 무서워서 신고조차 못하던 이 시대 최고의 소심남(...) 상훈이 각성하여 맨손으로 범인 잡겠다고 뛰쳐나가고, 영화 내내 거의 초능력자 수준으로 경찰들을 농락하고 괴력을 발휘했던 절대강자 범인이 상훈 따위에게 험한 꼴 당하고 결국 산사태로 인해 죽었으니 '이거 대체 뭔가'라는 벙찐 심정을 갖게되는 것이다. 이런 범인에게 농락당한 경찰들은 뭐가 된단 말인가. 주인공이 앞에서 보여준 행동이 너무 소심하고 찌질했기에 마지막 각성도 시원한 느낌보다는 어이없는 느낌을 갖게되는 것이다.
- 한 유명 영화평론 유튜버는 오히려 방관자를 부추기는 영화라고 비꼬았다. 상훈이 신고했다가 일가족 다 털릴 뻔 했기 때문이다. 뭔 거창하게 방관자를 비판하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괜히 목격하고 신고했다가 애견도 잃고 일가족이 습격당한 처절한 상훈의 모습을 보다보면 관객은 그냥 목격도 하지말고 신고도 하지 않는게 상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농촌마을 같은 '집단주의'가 강한 곳에서는 서로 일을 도와주는 등 이권이 얽혀있기 때문에 내 주민을 건드리는 것이 나를 건드리는 것과 동일하니 남의 일에 나서는 것이지, 뭐 거창한 이타심을 가져서가 아니다. 조폭도 똘마니가 맞고 들어오면 집단으로 가서 복수하는데, 이게 이타심인가.'' 도시의 사람들이라고 특별히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이 아니고 단지 신고를 꺼리는 경우는 상훈 같은 꼴 날까봐 두려워서 그런 것이다. 실제 언론에서 괜히 신고했다가 인생 종친 사람을 과장해서 보도하고, 심지어 영화에서도 이런 걸 적나라하게 보여주니 신고를 꺼리는 것이다. 서로 얽혀있는 관계도 아닐 뿐더러 남의 일에 끼어들었다가 상훈처럼 험한 꼴 날까봐서 꺼리는 것이니 단순히 이것을 '나쁘다'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은 피상적이고 무책임하다.
3.1.2. 범인
- 사건 당시 범인의 행동을 정리하면 범인은 모자를 제외하고 마스크 같은 것으로 얼굴을 가리지도 않고 피해자를 기절시킨 후에 트렁크에 넣어서 납치했고 살해 뒤 암매장하려다가 몸을 묶지 않는 바람에 피해자가 저항해서 달아나자 피해자를 쫓는다. 범인은 피해자를 다른 곳도 아니고 아파트의 주차장 중 불빛이 환하게 밝히는 가로등 밑에서 살해했다. 이때 범인은 주인공이 자신의 범행을 목격한 것을 확인한다. 그런데 범인은 피해자의 몸상태를 확인하지도 않고 자리를 떠났는데 2시간 후에 피해자가 깨어나서 핸드폰으로 신고를 하려고 하자 다시 찾아와서 살해한다. 범인은 이렇게 매우 허술하게 범행을 저지르는데 어떻게 그동안 잡히지 않을 수가 있으며 2시간동안 대체 뭘 하고 있다가 다시 나타났다는 말인가.
- 범인은 주인공이 목격했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같은 옷만 입고 신분을 숨기지 않는다. 범행 당시와 같은 검은색 옷에 같은 검은색 모자 차림을 극중 내내 그대로 유지한다. 얼굴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어도 모자랑 옷만 보면 저놈이 범인이구나 하고 단번에 알아챌 수준. 심지어 옷만 갈아입지 않는 게 아니라 살인에 사용한 흉기인 망치까지 그대로 들고 다닌다.(???) 이렇다 보니 극장에서 어느 관객이 범인의 이런 극중 모습을 보고 "저놈 무슨 토르냐?"라며 실소했다[5]는 썰이 있을 정도.
- 범죄자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상훈이 목격자인 이상 신고를 하든 안 하든 반드시 상훈을 제거해야만 한다. 그 유명한 유덕화의 천장지구에서도 여주인공이 범인의 얼굴을 알자 신고 안하겠다고 사정해도 죽이려고 한다. 여주인공은 실제 신고를 안했음에도 후환을 제거해야 한다며 죽이려고 하는데 유덕화가 간신히 말려서 살아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목격자>의 범인은 대체 뭘 보고 상훈을 믿는단 말인가? 영화에서는 상훈을 감시하기는 하지만 범인은 그냥 양아치 1명(…)에 불과할 뿐이다. 범인이 무슨 아파트의 모든 방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고 GPS추적기를 상훈에게 달아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는 초대형 조폭의 수장이란 설정도 아니며[6], 설령 그런 조폭이라는 설정일지라도 상훈의 인터넷 사용 내역까지 잡아낼 수 없다. 즉 범인이 상훈의 스마트폰은 감시할 수 있다고 쳐도, 인터넷으로 제보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하물며 이 영화속 범인은 그냥 양아치인지라 인터넷은커녕 스마트폰 사용내역도 감시할 수 없는 입장이다보니 그냥 근처 어슬렁 거리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감시가 되지 않아 굳이 그렇게 경찰 깔린 범행현장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고 돌아다녀야 할 이유가 없다. 형사가 집에 오는 것 정도만 감시할 수 있는 상태인데, 전화로 형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다른 약속장소를 잡아 만나면 끝이기에 원래 범인은 상훈을 믿어서도 안되고, 상훈 역시 이왕 이렇게 된거 신고라도 해서 본인이 실종이나 살해당하면 꼬리가 밟히게끔 해놓는게 차라리 범인이 접근을 꺼리게 하는 방법이다. 즉 범인이 상훈을 제거하면 범행은폐가 아닌 오히려 수사망이 더 조여지게 되는 장치로 해놨어야 했다는 것.
- 범인 입장에서는 상훈이 확실한 목격자란 증거도 없으며 상훈이 사는 아파트에 살던 세 명만 목격자라는 증거가 없다. 애초에 상훈이 걸린 것은 아내가 물을 마시기 위해 불을 켰기 때문이지 상훈이 사진이라도 찍다가 눈이라도 마주쳐서가 아니다. 그런데도 범인은 상훈의 집에서 불이 잠깐 켜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상훈을 목격자로 확신하고 24시간 일거수일투족 감시에 들어가는 잉여짓+똥배짱을 보이다. 거기에 상훈을 제거하려는 것도 상훈에게 개인적인 원한을 가져서가 아니라 범죄 은폐를 위해서인데, 그 엄청난 아파트 한 가운데에서 살해를 해놓고선 딱 상훈만 봤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정말 현실에서의 범인이라면 최대한 범행 현장에서 멀리 도망가는게 정석이다. 즉 아무도 목격하지 못했고 오직 상훈만 목격했다는 증거가 없는 이상 상훈에게 집착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짓이다. 상훈이를 감시해서 봉인시켜놨다고 해도 다른 목격자가 신고해서 경찰이 잠복하고 있다면 그대로 걸려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훈이 범인과 아는 사이도 아니고 밤에 그것도 멀리 베란다에서 힐끗 본 것은 그다지 의미있는 목격도 아니다. 청주 물탱크실 주부 살인 사건만 봐도 범인 얼굴이 CCTV에 선명하게 찍혔으나 여전히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 하물며 상훈이 카메라로 찍은 것도 아니고, 한밤 중에 멀리서 모자 쓴 사람 얼굴 힐끗 본게 뭐 엄청난 가치가 있는 목격이라고 볼 수도 없다. 게다가 영화 속 아파트 주민들의 성향이나 무능한 경찰의 행동을 보면 그냥 차라리 멀리 도망갔으면 미제로 남았을 텐데, 범행 은폐 하겠답시고 설쳐댄 행동때문에 도리어 꼬리가 잡히고 상훈에게 험한 꼴 당하고 죽었다.
3.1.3. 경찰
- 경찰은 살인 용의자의 집을 덮치면서 대문으로만 우르르 몰려갔다가 폭탄트랩이 터지고, 폭탄이 터졌음에도 혼자만 안 다치고 멀쩡한 범인은 유유히 창문으로 도주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경찰이 용의자의 집을 급습할 때 창문이나 뒷문 같은 도주로를 미리 차단하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게다가 체포되기 싫어서 목격자들을 마구 쳐죽여대는 놈이 형사들이 자기 집을 덮치는데도 멀리 달아나긴커녕 바로 상훈 일가족을 몰살하러 달려간다. 잘 쳐줘서 어차피 곧 잡힐 거니까 분풀이라도 하려는 심산이라 쳐도 정상적인 경우라면 증인보호 프로그램이 작동하고 있을 것인데 잡히고 싶어 환장한 것일까.[7] 그나마 체포작전 사이에 형사 한 명이 증인보호를 위해 주인공의 집으로 찾아가기는 하는데 이 부분도 말이 안되는 장면이다. 아무리 작전에 동원되는 인원이 많다고 해도 경찰은 절대 홀로 움직이지 않는다. 순찰을 도는 경찰조차 2인 1조 근무가 보편화되어 있는 시대에 증인보호를 위해 단 한 명의 형사만 움직인다는 것은 범인에게 '여기 허술하니 제발 와주십시오'라고 비는 꼴이다.[8]
3.1.4. 아파트 주민
- 인간의 이기심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아파트 주민들을 너무도 편협하고 쓰레기같은 군상들로만 묘사하는데, 집값떨어진다는 이유로 언론과 경찰에 협조 거부를 촉구하는 '경찰 · 언론 협조 반대 동의서'를 돌리고 실종된 아내 찾는 남편을 길거리에서 네가 집에서 못해서 달아난 걸 주민들에게 피해 준다고 면박주는가 하면 주인공 일가가 이사가는 순간까지 4억 밑으로 팔지 않았느냐고 궁시렁 대는 등 계속 발암을 유발한다. 문제는 이런 인물 묘사가 입맛은 쓰지만 뭔 깨달음을 준다거나 생각할 거리를 주는 입체적인 묘사가 아니라, 극도로 멍청하면서 비현실적이고 짜증날 정도로 자극적인 모습뿐이라서 오히려 감정 이입을 방해하고 있다. 모든 도덕적, 인도적 판단을 집어치우고 타산적인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살인사건이 일어났지만 범인을 잡은 아파트'와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 범인을 못 잡아서 계속해서 실종사건,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아파트' 중에서 어느 아파트의 집값이 더 똥값이 될 지는 생각을 못하나 보다. 당장 협조거부 운운하다가 '여자 한명 죽은 아파트'에서 백주대낮에 살인마가 망치 휘둘러서 여자 1명, 주민 1명, 강아지 1마리, 경비원, 형사까지 살해당하고 4명[9]이 습격당해 부상을 입은 희대의 흉가가 되어버렸다. 추가 살인이 없었다 쳐도 요즘같이 SNS, 인터넷이 발달한 세상에 살인사건에 대한 언론 및 경찰에 대한 비협조 결의 공문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짤로라도 올라가면 반응이 어떨까? 사실 살인사건보다 이 공문이 사회에 미치는 파급력이 훨씬 더 클 수도 있다. 원래 단순 살인사건 같은 경우는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사건도 많다.[10] 그리고 보도가 돼서 대중이 관심을 가지더라도 이것도 냄비근성으로서 만약 범인이 잡혔다면 시간이 좀만 지나도 결국 대중에게 잊혀진다. 하지만 이 공문은 이 아파트를 사회에서 매장시킬 정도의 파급력을 줄 수도 있다. 살인이 일어났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살인마가 돌아다니는 흉흉한 아파트란 소문이 도는 게 훨씬 더 집값을 떨어뜨릴 뿐더러, 무엇보다 그 단지에 살고 있는 본인들이 가장 무서울 텐데 어째 다들 살인마 검거에 관심조차 없다. 한국에서 여자들이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을 추모하며 분노했던 것은 희생자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지만, '누구든 상관없고 여자라서 죽였다'는 범인의 진술에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내가 죽었겠구나. 나는 단지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는 생각이 든 것이 한몫했다. "니 가족이라고 생각해봐"는 한국에서 아주 잘 통용되는 말 아니던가.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아무도 살인마를 방치할 시 내 가족이 당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신고에 대한 보복, 집값 하락만 두려워한다. 즉, 이기심이 가득한 아파트 주민을 묘사한 게 아니라 비현실적인 바보로 주민들을 설정한 것이다. 영화 유튜버 거의없다는 작중에서 묘사되는 아파트 주민들의 모습을 두고 "도대체 이 아파트는 뭔데 이렇게 살인친화적이죠?
살인e편한세상? (들어오면)조옷돼캐슬?"이라고 깠을 정도. - 베트남 전쟁 말기 미군에서 무모한 닥돌명령이 많이 내려졌기에 상관살해인 프래깅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프래깅의 원인은 '두려움'이기 때문에 단순히 미국을 위해 애국합시다라는 감상적인 접근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미군들이 한번 해볼만한다고 납득할 수 있는 작전을 짜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마찬가지로 신고를 꺼리는 것은 인간들이 '나쁜 게' 아니라, 이 영화에서 극명하게 보여줬듯, 무능한 경찰과 신고했다가 X될 수 있다는 '두려움'때문이기 때문에 단순히 앵무새처럼 '나에게 손해일지라도 남을 위해 신고합시다'라고 외칠게 아니라, 신고를 하는게 이익이 되도록 시스템을 짜야만 한다. 헌데 이 영화에서는 단순히 도시인들이 나빠서 그렇다는 일차원적인 접근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실 한국인들이 오지랖이 넓은 편이라 과거 공개수배 사건25시나 그것이 알고싶다 같은 방송에서 조폭이라도 공개수배가 방영되면 제보전화가 폭주할 정도였다. 심지어 경찰청 사람들에 단골로 악역으로 출연했던 재연배우는 주변에서 보고 신고하는 사람들이 많아 소동을 겪은 적이 많다고 한다. 헌데 이 영화는 거대조폭도 아닌 그냥 양아치 1명을 아무도 신고하지 못하는 말도 안되는 상황부터 이미 현실성에서 벗어나 있다. 게다가 그 범인이 1명만 살해한 것도 아니고 그 인근 야산을 전용 암매장터로 애용할 정도니 인근에서 약 20여명에 달하는 실종자들이 발생했다는 것인데 그렇게 많은 실종자가 발생했음에도 다들 조용하다? 전혀 현실적이지 못한 판타지일 뿐이다. 현실은 전혀 다르다. 위에서 인용한 우예슬, 이혜진양 실종사건 때 일대 동네가 공포에 질려 마비되었고 제보전화가 폭주했었다. 그게 정상이다. 단순히 실종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자녀가 당할까봐 그런 것인데, 어째 이 영화에서는 양아치 1명에게 마을주민들이 하나둘씩 떼죽음을 당하고 있음에도 그 양아치 1명에게 신고했다가 보복당하거나 경찰에 협조했다가 집값 떨어질 것만을 걱정할 뿐이지, 자신이나 가족이 범행대상이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인간들로 묘사된다.
- 상훈의 절규에도 창문조차 열어보지 않는 것은 이 영화의 막장 세계관을 고려하면 합리적인 행동이다. 헌데 신고 안하는 주민들이 나쁘다는 논리는, 마치 공산주의가 잘못된게 아니라 타인을 위해 열심히 일하지 않는 인민들이 잘못이란 논리와 같다. 신고를 잘하는 국가는 그 나라 국민들이 희생정신이 충만해서가 아니고, 신고를 하는게 이익이 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괜히 현상금을 내걸고 수배전단을 뿌리는게 아니다. 만약 인간들이 자신들이 알지도 못하는 타인을 위해 미친 듯 건강을 잃어가면서까지 일을 할 수 있고 도와줄 수 있는 존재라면 공산주의는 성공한다. 하지만 그런 존재가 아니니까 생산량이 떨어지며 폭망하게 된 것이다. 공산주의 하에서는 몸을 혹사하며 일하면 '손해'니까 설렁설렁 하는게 합리적인 행동인 것처럼, 이 영화의 세계관에서는 상훈처럼 신고를 하면 손해니까 신고를 안하는 주민들이 합리적인 행동이다. 이들에게 "왜 당신은 제3자를 위해 목숨바쳐 일하지 않고 신고도 안하는가!"라면서 울부짖어봐야 공허한 뻐꾸기다.
3.1.5. 전 남친
- 피해여성의 전 남친이 범인으로 지목되자 경찰이 우르르 몰려와서 자신을 잡으려 할 때 겁을 먹고 달아나는 것 정도야 이해할 수 있지만 차를 몰고 경찰차를 박살내는 등 갑자기 영화의 장르가 액션영화로 변경되어 격렬히 반항하는 등 범인도 아닌데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폭력적인 면모를 보인다. 거기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급의 진범이 나타나서 간단히 죽여버린다. 대체 경찰이 쫓고 있는 피해자 전남친의 위치를 범인이 어떻게 알고 찾아온 것이며, 청산가리를 먹고 죽었다는데 아무리 부상을 입었다지만 경찰관 수십 명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을 갖춘 성인남자가 청산가리를 먹인다고 저항 흔적 하나 안 남기고 얌전히 먹고 죽어 자살로 처리되는 건 말이 안 된다. 게다가 그는 명백히 범인이 아니기 때문에 일단 변호사를 대동하고 차근차근히 심문에 임하면 알리바이가 확실해서 무혐의로 방면될 것이 뻔한데 그런 식으로 '나 범인이요'를 대놓고 풍기며, 정말 범인이 아니었음이 드러난 뒤에도 기물파손 등 다른 죄로 결국 체포되고도 남을 짓을 저지르며 도망가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현실적'인 측면에서는 작중에서 그가 스토킹으로 신고당한 전적이 있다고 언급되는 등 다른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도망간다고 추측할 수 있겠으나 그렇다고 작중의 개연성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다.
3.1.6. 4층 여자
-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살해현장을 목격했던 4층 여자는 주인공에게 같이 경찰서에 가서 신고하자고 주인공의 집까지 찾아와 애원을 하지만 주인공이 이를 한사코 뿌리쳐서 결국 거절당하고, 풀이 죽은 채 집으로 돌아가다가 자신을 미행하던(?) 범인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경찰을 불신하고 범인이 자신의 집까지 알고 있어 신고하기를 너무나 꺼리는 정신나간 주인공은 차치하고 이 4층 여자는 신고하려는 의지는 있었으나 '경찰서에 가는 게' 너무 무서워서 못 했다고 한다. 주인공을 찾아오기 전에 자기 집 안방에서 문 다 걸어잠그고 112눌러서 휴대전화로 신고하거나, 주인공이 하려다 만 것처럼 인터넷으로 익명제보하면 되는 일이다. 관객입장에선 쉽게 공감가지 않는 장면이다. 더군다나 이 여자 역시 가족, 즉 남편이 있는데 남편과 같이 가도 될 일을 굳이 안면도 거의 없던 이웃인 주인공을 찾아오는 걸 보면 이 역시 이상하다. 또한, 이 여자는 어쩌다가 범인에게 들켰는지 알 길도 없다. 주인공 상훈이야 한밤중에 아내가 불 켜서 들켰다 치고 좋게좋게 봐줘서 주인공을 24시간 불철주야 감시하고 있던 살인범이 주인공을 찾아 상담하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서 신고한다 어쩌구 하니까 쳐죽였다라고 해석해볼 순 있겠는데 그렇다 해도 너무 말이 안된다. 4층 여자가 상훈에게 같이 신고하자고 하소연한 것은 상훈의 집 안이었는데 살인범이 상훈의 집에 도청장치라도 설치해놨단 말인가? 게다가 사람을 교살이나 독살도 아니고 망치로 쳐죽였는데 흔적 하나 안 남고 살인사건이 난 아파트에서 목격자로 추정되는 주민이 난데없이 실종됐는데 단순히 가정불화로 인한 가출로 유야무야 되는 것은 수사 주체가 현대 대한민국 경찰이 아니라 조선 시대 포도청이라 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부실수사의 극치다. 게다가 범인은 4층 아줌마를 죽인 후 상훈과 한참 추격전을 벌이다가 경찰이 바로 집 앞까지 나타났는데 유유히 다시 아파트로 들어가서 시체를 흔적 하나 안 남기고 깨끗이 은폐하여 어찌어찌 야산에 파묻는다.
3.1.7. 4층 여자의 남편
- 4층 여자의 남편은 처음엔 살해당한 자신의 아내가 실종된줄로만 알고 아파트 단지내에 전단지까지 뿌려가며 아내를 찾아나서는 개념인으로 나오나 극후반에는 자신의 아내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도 방관한 주인공을 죽일 작정으로 자동차로 들이받고 공격하는데, 공격한 이유가 범인이 상훈을 죽이면 아내를 풀어준다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의 아내가 어떻게 됐는지를 알고도 침묵한 주인공을 보면 남편 입장에선 분노가 치미는 건 당연하겠지만 그렇다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11] 살인 청부를 받아서 다짜고짜 실행하는 것은 영화내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사회에서도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 관객 입장에선 발암을 넘어 어이상실하게 만드는 씬이다. 게다가 단순한 살인청부도 아니고 살인범이 상훈의 일가족을 몰살하러 간다는 것을 이 아저씨는 알고 있었는데 경찰의 총에 맞아 제압된 후에야 그걸 털어놓는다. 이때 범인이 상훈이 가족을 잃고 죽지 못해 사는 꼴을 보는게 더 재밌을 것 같다고 했다고 말해주는데… 그래놓고 상훈이 자기 아내가 살인범에게 이미 죽었다고 말했을 때는 안 믿는다. 남의 일가족을 몰살하러 가는 사람이 생면부지의 여자를 납치해서 뭐하려고 했는지 알 수 없다. 게다가 아무리 상훈과 형사가 그의 사정을 알고 나서 봐주고 싶어했다 쳐도, 다른 부상도 아닌 총상을 입었는데(총기 안 풀려있기로 유명한 한국에서!) 그냥 교통사고 낸 걸로 조용히 처리되는 건 말도 안 된다.
3.2. 비현실적인 설정
- 영화 도입부에 범인을 피해 도망가는 피해자가 헐렁한 블라우스를 입고 있는데 아무리봐도 큰 스마트폰이 안전하게 들어갈[12] 주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범인이 망치질을 하고 떠난 후 정신차린 여성은 스마트폰을 어디선가 꺼낸다. 하여튼 어딘가에 가지고 있었다고 쳐도, 왜 트렁크 안에서는 신고를 안 한건지 의문이다. 손이 뒤로 묶여있고 해서 폰을 꺼낼 수 없고 키패드도 볼 수 없었다면 설명은 되는데, 묶여있지도 않았다.
- 영화에서 방관자 효과를 보여주려고 하고 있는데 사건이 일어난 장소는 엄밀히 말하면 방관자 효과가 일어날 수 없는 환경이다. 주인공이 범행을 목격했을 때는 범인과 피해자 빼고 아무도 없는 새벽 시간대였고, 장소는 자신의 집 안이다. 여기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경찰에 신고를 할 것이다. 다른 사람도 사건을 목격했으니 그 사람이 신고를 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방관자 효과는 "나 말고 본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누군가 신고했겠지?"라는 생각이 들어야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주인공은 자신의 집 안에 있다. 자신의 집 안에 있는데 다른 집에 사는 사람이 이 장면을 목격했는지 안했는지 도대체 어떻게 아는가? 주인공은 자신의 집 안에 있어서 다른 사람이 목격했는지 안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신고를 할 거라고 생각할 수 없어[13] 방관자 효과가 일어날 수 없다.[14]
- 새벽 2시에 아파트 주차장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는데 초반부에서 이걸 목격한 사람이 주인공 단 한 사람뿐이라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작중에서는 경찰들끼리 목격자가 없는 게 말이 되냐는 질문에 "새벽 시간이라 다들 자고 있었나 보죠"라는 짧은 대사로 넘긴다. 그리고 범인은 2시간 후인 새벽 4시에 다시 나타나서 피해자를 확인사살했는데 그 사이에 피해자를 발견한 사람도 이 장면을 목격한 사람도 아무도 없다. 이걸 정리하면 이 아파트는 새벽 2시부터 4시 사이에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전부 잠들어 있었고 2시간동안 아파트에 출입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말이다. 수백가구가 모여사는 아파트면 새벽에 일 때문에 출퇴근하거나 운동을 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이 아파트에는 그런 사람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 한참 양보해서 정말로 새벽 2시에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전부 다 잠들어있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매우 조용했을 것이기 때문에 비명 소리를 듣고 깬 사람이 있어야 한다. 방음이 잘 안되는 아파트이기 때문이다.[15] 잠귀가 밝은 사람이라면 비명 소리를 듣고 깨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아파트 주민을 통해서 "고양이들이 많이 울어서 (사람이 비명을 지른 거라고) 확실치 않(게 생각했)다"는 답을 내놓는다. 피해자는 큰 소리로 "살려주세요"라고 소리를 질렀는데 주민들은 이걸 고양이 울음소리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영화 유튜버 거의없다는 "고양이는 한국어를 못한다(...)"라고 정리하며 영화에서 내놓은 답에 대해서 "고양이요? 한국 길냥이들은 짧은 한국어정도는 구사하는 모양이죠?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건 상식입니다. 고양이는 한국어를 못합니다"라고 비판했다.
- 주인공과 범인에 대한 비판을 전술했지만 이 영화의 설정 중 가장 큰 문제점은 주인공과 범인은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주인공과 범인은 아무런 안면이 없다. 주인공은 범인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며 범인도 주인공이 사는 집 빼고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른다. 그런데 주인공은 아무것도 모르는 범인을, 신고만 하지 않으면 절대 보복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신고하지 않았고, 범인은 아무것도 모르는 주인공이 신고하지 않자 겁만 주면 앞으로도 계속 신고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제거하려고 하지 않았다. 주인공과 범인은 대체 뭘 보고 서로가 서로를 믿고 있단 말인가? 주인공과 범인이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라 애정이 있는 관계도 아니고,[16] 중간에 가족이나 친구로 이어진 관계라든지,[17] 직장동료나 상사라서 앞으로도 계속 만나게 될 사이인 것도 아니다.[18] 둘은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더 이상 만나게 될 일도 없다. 주인공 입장에서는 범인을 신고한 후에 몰래 가족들이랑 같이 집에서 먼 곳으로 피신하면 그만이고, 범인 입장에서는 자신을 모르는 주인공을 몰래 살해한 후에 도망치면 그만이다.[19] 그런데 둘 다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현실성과 개연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다.
- 아파트 내부에 CCTV를 찾아보겠다는 경찰 수사과정은 초반에 잠깐 언급될 뿐 실제로 기껏 설치된 CCTV로 그 시간에 깨어있던 목격자만 찾으려고 하고, 범인이 찍혔는지는 찾아볼 생각을 안 한다. 대충 외관으로 보아 아파트 단지가 건축된 지 길어봤자 10년 남짓으로 보이는데, 그 정도 아파트 단지 곳곳에 CCTV가 없다는 것은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설정이다.[20] 심지어 불빛이 아주 환하게 밝혀진 가로등 밑에서 모자를 제외하곤 얼굴을 가릴 것(예: 마스크)이라곤 어떤 것도 착용하지 않은 채 망치로 수차례 폭행하고, 근처에서 은둔해있다가 2시간 뒤에 다시 찾아와 확인사살을 하는데, 이 2시간 동안 그 사람의 얼굴이 CCTV에 잡히지 않았다는 것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억지 설정이다. 경찰들 대사에서 워낙 대규모 단지라 탐문수사하기도 어렵다고 하는데, 엔딩 장면에서 아마 드론 등으로 공중에서 촬영한 듯한 장면으로 단지가 잡히는데 동 수도 몇 개 안 되는 대단지라고 하기는 어려운 규모다. 이 정도면 CCTV도 몇 개 설치 안 해도 되기 때문에 사각지대도 적을 것이다. 심지어 도중에 현장을 목격했을 가능성이 있는 여자가 실종되기까지 하는데, 납치의 가능성을 전혀 상정하지 못 한다.[21] 그리고는 이런 핵심 증거를 무시하고 "스토커로 변해버린 전 남자친구가 있다"라는 정황증거만으로 피해자의 전 남자친구를 체포하려하고 남자친구가 죽자 자살로 처리하며 수사를 종결해버리는 경찰의 막장 수사 능력을 보여준다.
- 영화 마지막에 주인공은 방관자 효과를 체험해보고 싶었던 건지 아파트 단지 한복판에 서서 큰소리로 "사람 살려!!"라고 소리치지만 아무도 창문조차 열어보지 않는다. 현실에서 저렇게 소리지른다면 '어떤 미친X이 소리지르고 있나' 확인하려고 쳐다보는 사람부터, 경비실에 저 사람 좀 어떻게 해달라고 민원 전화가 빗발칠 것인데 그러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매우 비현실적이다. 더군다나 영화 자체의 내용만 봐도 이 부분은 억지가 심한데, 집값 떨어진다고 안절부절 못하는 주민들이 안그래도 살인사건 일어나서 더 떨어질까봐 눈에 불을 켜고 있는데 한복판에서 저런 소리 지르는 사람을 내버려 둘 리가 없다. 아마 심리학에서 방관자 효과 연구의 방아쇠를 당긴 키티 제노비스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여겨지는데, 항목을 찾아가면 알겠지만 키티 제노비스 사건은 그 사건을 최초 보도한 기자의 조작 내지 왜곡 보도였음이 드러났다.
- 범인의 내구도가 터미네이터급으로 강하다. 어지간한 공격은 무표정하게 잠시 움직임을 경직시킬 뿐, 바로 아무런 문제 없다는 듯이 따라온다. 대표적으로 경찰이 범인의 집을 급습할 때. 트랩이 터졌을 때 범인은 옷들만 몸에 둘렀는데, 폭발장소에 가장 가까이 붙어있었음에도 불구,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다. 그런데 부탄가스 폭발의 위력은 그거만으로 막을 수 있을정도로 만만한 게 아니다. 그만큼이나 가까이 딱 붙어있었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즉사다. 또한, 주인공의 집에 쳐들어와 주인공의 아내와 몸싸움을 벌일 때도 다리미로 머리를 직격당했는데도 몇 초 후에 바로 일어나서 멀쩡히 돌아다니고, 장도리로 정강이를 직격당했는데 이후 약간 절뚝거리지만, 아무리 아이가 딸렸다지만 뛰어서 도망가는 주인공의 아내와 별 차이 없는 속도로 추격한다.
- 주인공의 가족이 키우던 강아지가 주인도 모르는 사이에 2번이나 실종된다. 아파트에서 문을 열어놓고 개를 키우는 집은 없고 개와 외출을 할 때는 당연히 목줄을 채운다. 주인이 모르는 사이에 강아지가 실종된다는 것은 대놓고 살인마가 집을 출입한다는 얘기인데, 이에 대한 명확한 설명 따윈 없다. 또한 개가 두 번이나 없어질동안 집에 개가 없다는 걸 두 번 다 눈치조차 못 챘다. 심지어 한번은 딸이 말해주고 나서야 알았다. 정말 반려견을 무슨 장난감급으로 가볍게 여기지 않는 한 이런식으로 반응할 반려견 주인은 거의 없다. 심지어는 개 찾겠다고 아파트를 뒤지고 전단지도 뿌릴 정도로 애지중지하던 견주들이 그러니 더더욱 실소가 나온다.
- 살인범은 그저 살인 현장을 목격했을 뿐 신고도 하지 못하는 주인공을 감시한답시고 경찰이 탐문 수사 중인 아파트에 수시로 출몰한다. 심지어는 경찰과 대화 중인 주인공을 숨어서 지켜보며 주인공과 아이컨택까지 하는데 이 장면이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최고의 발암 씬이다. 과도하게 과감하다. 죽은 여자의 전 남친을 독살해버렸을 때부터 드러났지만 터미네이터나 007급의 신묘한 능력을 보여주는데 경찰의 감시를 피해 자유자재로 신출귀몰하여 자기를 본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쳐죽이고 그 과정에서 얼굴조차 가리지 않으면서 신원을 일절 들키지 않는다. CCTV가 없을 수가 없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타면서도 얼굴도 안 가리는데다[22] 영화 내내 초반부 살인 장면에서 입었던 옷차림을 그대로 유지하는 놈이 말이다. 그렇다고 천재적으로 계획살인을 하는 것도 아니고 백주대낮에 경비원이고 형사고 눈 앞에 보이는 사람이면 무작정 다 쳐죽이고 다니는 막무가내 사이코에 불과하며, 머리가 좋은 편도 아니라서 나중에 주인공의 딸을 죽이러 갈 때는 자신의 흉기인 망치를 두고 갔다가 진경에게 망치로 두들겨맞아 쓰러지는 등 삽질만 연속으로 벌인다. 이런 저능한 살인마가 죽여서 매장한 사람의 수가 무려 20명 이상으로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 막판의 산사태 씬 이후에 드러난다.
- 공산주의가 폭망했던 것도 인간은 이기적이고 자신의 이익을 중시하는 본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다 똑같이 배급하면 힘들게 일할수록 손해니까 다들 슬슬 나태해지며 요령을 피우는 방향으로 진화하기 때문에 공동생산량이 점점 저하되며 폭망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단순히 '타인을 위해 몸바쳐 일합시다. 그렇지 않으면 나쁩니다!'라고 외치는 것은 아무런 해결책도 안될 뿐더러,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뿐이다. 헌데 이 영화는 신고했다가 처참한 꼴을 당한 주인공을 보여주면서도 계속 타인을 위해 신고해야 한다는 식의 피상적인 해결책으로 접근하고 있다. 영화 스파이더맨에서 주인공이 남을 돕는 이유가 거창한 이타심에서 시작되었던게 아니다. 1편에서 자신이 조금만 도와주면 어떤 범죄자를 잡을 수 있었는데 내 일이 아니니 내 알 바 아니라고 무시했다가[23], 자신이 모른 체한 탓에 도망가는 데 성공한 그 범죄자에게 친아버지 같은 존재였던 자기 삼촌이 당했기 때문이다. 즉, 스파이더맨이 남을 돕는 것도 거창한 이타심이 아니라 그게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고, 각종 참사나 사건사고[24]의 피해자 및 유가족들이 매우 높은 확률로 활동가가 되어 '다시는 이런 일이 있지 않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아 말하며 사회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의 무관심을 비판하고 신고를 활성화시키려는 의도라면 신고를 하는 게 유리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야만 한다. 헌데 이 영화는 오락영화인 스파이더맨만도 못한 게, 왜 남을 도와야 하는지를 논리적으로 납득시키는 게 아니다. 신고했다가 온가족이 다 죽을 뻔한 상훈을 보여주며 논리적으로는 신고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걸 보여주는 한편, 단순히 감상적으로 '그래도 신고합시다'라는 황당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4. 결말
영화의 결말 즈음, 갑작스런 산사태 장면이 나온다.무능한(?) 경찰을 믿을 수 없던 주인공은 비오는 날 산까지 따라올라가 범인과 1:1 격투를 벌이고 그 와중에 뜬금없이 산사태가 일어난다. 그리고 결국 산사태에 휩쓸려 버린 주인공은 머드축제라도 온 것마냥 온 몸에 진흙만 뒤집어쓴 채 몸을 털고 일어난다. 참고로 산사태로 인해 범인이 산에 묻어둔 시체들이 드러나게 되는데… 스릴러 영화에서 살인마의 시체 은닉장소를 밝혀내기 위해 천재지변까지 일으키는 걸 보고 많은 관객들이 실소를 금치 못했다. 이름하여 갑분산(갑자기 분위기 산사태). 그리고 눈을 떠보니 살인마는 날카로운 나뭇가지에 찔려서 치명상을 입고 무력화된 상태다.
작중 초반에 주인공이 산사태 가능성을 언급한 것을 보아 나름 복선을 넣으려고 했던 것 같다. '우천시 출입금지, 토사 유실 우려'라고 쓰인 표지판도 여러 번 등장하고 말이다. 하지만, 바로 코앞에 아파트 단지가 늘어선 산에서 비 좀 왔다고 송전탑이 무너지고 자동차들 휩쓸릴 정도의 산사태가 갑자기 난다. 심지어 민둥산도 아니고 삼림이 우거진 산이다. 커다란 나무가 뿌리까지 뽑혀서 떠내려가는 CG는 당황스러울 뿐이다.
다만 실제로 2011년에 강남부촌 아파트 앞의 우면산이 무너져서 생긴 산사태가 있고 영화 속의 산사태는 이와 매우 흡사하다. 우면산 산사태 당시 사진 산사태로 서울 강남의 부촌 아파트가 흙더미에 깔리고 재벌가 인물이 사망하는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현실은 언제나 픽션보다 더한 법.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극에서의 '개연성'과 '현실성'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 현실에서 존재하는 내용을 다룬 것이 현실성이고, 말이 되도록 극을 전개시키는 것이 개연성이다. 사극이거나 실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아닌 이상, 극에서는 개연성이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번개에 맞아 사람이 죽는 일은 분명 현실에서 있는 일이지만(현실성), 그렇다고 (실화가 아닌)[25] 영화의 마지막에서 주인공이 뒷산에서 최종 보스와 싸우다가 최종 보스가 갑자기 벼락을 맞아 죽어서 주인공이 승리했다는 전개로 간다면 관객들은 당연히 저게 말이 돼?(개연성) 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소설이나 극을 맨 처음 배울 때 작가 지망생들이 제일 많이 지적받는 부분이 바로 이 현실성과 개연성은 다르다는 점이다. 작품이 말이 안된다고 지적받았을 때, '진짜 현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이에요'라고 변명하는 것은 초보 중에 초보들이나 할 변명인 것이다.
대사를 통해 산사태 우려가 있는 동네란 걸 넌지시 암시하니 완전 뜬금포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고작 대사 몇 마디 했다고 해서 개연성이 생긴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러니 이때 영화평론 유튜버들은 결말을 직감하고 "설마… 아니기를" 빌었으나 그게 진짜 결말에 나오니 절망했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작품에서 우연에 의해 사건이 해결되는 것은 절대 좋은 각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굳이 제작진을 변호하자면
[1] 이후 이 공식은 몇달 되지 않아 개봉한 도어락에도 계승되었다.[2] 2000년대에 접어들며 봉준호, 박찬욱의 영화들이 한국형 스릴러 장르를 새로이 개척하고 추격자, 황해 등을 제작한 나홍진 감독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2010년대 이후로도 좋은 평가를 받는 스릴러 영화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면서 스릴러 장르에 대한 국내의 인식이 크게 변화하고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가고 있었지만, 미옥, 골든 슬럼버, 7년의 밤, 목격자, 도어락 등 속칭 못 만든 스릴러 영화들이 주구장창 등장한 2018년 이후 이후로 유독 한국 영화계에서 스릴러 장르를 표방하고선 정작 장르의 요소는 일체 찾아볼 수가 없는 속 빈 강정인 망작 영화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거기다 2020년 이후 들어서 부턴 아예 스릴러 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에서조차도 이런 케이스의 영화가 급증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비판받고 있는 추세다.[3] 동네 지적장애인. 일명 '콜라'.[4] 수아는 실명한 대신 다른 감각이 예민하게 발달되어 있었고 이 감각 때문에 사고 상황을 기억하고 있었으나, 시각장애인에 대한 편견(눈이 보이지 않으니 사고 상황을 알 리가 없다는) 때문에 그 누구도 수아의 증언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5] 영화 내내 같은 옷차림에 망치까지 계속 가지고 다니는 모습이 흡사 묠니르를 든 토르같다고 해서 나온 비유.[6] 그런데 만약 이렇게 설정을 했다면, 그 범죄조직은 대체 무슨 이유로 돈도 안 되는, 사람을 죽이고 파묻는 짓을 대체 왜 하는 것이냐는 문제가 생긴다. 범죄조직이 나쁜 짓을 저지르는 건 맞지만 무슨 '악행의 예술'을 추구하는(...) 집단도 아니고 나쁜 짓으로 이익을 보기 위해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기 때문에 돈이 안 되는 이런 범죄를 굳이 저지르는 이유에 대한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7] 물론, 이 영화에서는 의도적으로 경찰을 극도로 무능한 집단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거 없다. 애초에 저 바로 다음 장면이 범인 검거에 실패하고 경찰서로 돌아온 경찰들보고 주인공이 우리 가족 안전은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따지는 장면이다. 그리고 당연하듯 의도적으로 무능하게 그려진 경찰들은 증인 보호 시스템이 있다고 반론하며 주인공을 안심시키기는커녕, 고개를 떨구고 아무 말도 하지 못 한다.[8] 두 명이 왔다가 한 명은 차에서 대기하고 한 명만 올라갔다고 주장할 수도 있으나, 1층에서도 범인과 주인공 가족이 난리를 피웠기 때문에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면 분명 눈치를 채지 않을 수 없다.[9] 주인공 가족, 지적장애인[10] 실제로 한 분기(3개월)에 50~80여건의 살인기수 사건이 발생하고 있지만 이게 언론에 보도되는 경우는 오히려 소수이다. # 살인 사건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이루어졌거나 극도로 잔인하거나 전과가 많은 사람이 저지른 게 아닌 이상 잘 보도가 되지 않는다.[11] 현실에서나 창작물에서나 다른 사람의 가족을 인질로 잡아서 움직이게 만들려고 할 때는 해당 인물에게 자신이 가족을 데리고 있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통화를 하게 해주거나 사진이나 녹취를 보내주든 한다. 막말로 그냥 말로만 자기가 가족을 데리고 있다고 주장하면 이 놈이 진짜 범인인지, 정신나간 허언증 환자인지 어떻게 아는가. 근데 이 살인마는 4층 아줌마를 다짜고짜 망치로 패 죽여서 야산에 파묻었기 때문에 4층 아저씨를 움직이게 만들 증거가 전혀 없다. 범인은 대체 뭘로 4층 아저씨를 설득을 시켰다는 말인가?[12] 헐렁한 주머니로는 안 된다. 이 여자 트렁크에 갇혀 있다가, 아파트 담장을 넘었다. 그리고 아파트 중앙부까지 갔는데, 이 과정이 나름 전력질주다. 그러면서도 전화기가 떨어지지 않고 안전하게 들어가 있었다?[13] 다만 이걸 굳이 억지로 변호하자면 주인공이 "아무리 새벽이라지만 깨어있는 사람이 나 말고 아무도 없겠어? 다른 사람이 봐서 신고했겠지?"라고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아무리 새벽이라도 아파트 전체에 깨어있는 사람이 자신 단 한 명뿐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정말 그때 아파트에서 깨어있던 사람이 주인공 단 한 명뿐이었다.[14] 그리고 범인은 이 넓은 아파트에서 누가 자신을 신고했는지 모를 수밖에 없다. 범행 장소로 창문이 있는 가구만 대충 어림잡아도 300~400가구나 된다. 이 상황에서 범인은 자신을 본 사람이 몇 명인지 절대로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신고를 한다고 보복을 당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15] 대표적인 예로 야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하라가 있다(...). 이런 짤방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16] 서로가 서로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는 관계라 주인공은 범인을 신고해서 범죄자로 만들 수 없고, 범인은 차마 주인공을 죽일 수 없다는 설정.[17] 이 경우는 주인공은 가족이나 친구를 생각해서 차마 범인을 신고할 수 없고, 범인도 같은 이유로 주인공을 살해할 수 없고 오히려 주인공을 살해하면 범인이 반드시 조사를 받게 되기 때문에 손해가 된다는 설정.[18] 이건 주인공이 가족 등의 이유로 사직하면 잃을 게 많아서 차마 직장을 그만 둘 수 없고, 범인은 주인공의 상황을 알며 가까운 위치에서 감시할 수 있어 주인공을 믿을 수 있다는 설정.[19]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면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없다는 걸 바로 알 수 있다. 주인공 입장에서는 절대로 잡혀서는 안 되는 범인이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을, 대체 뭘 보고 겁만 주면 절대로 신고하지도 않고 도망치지도 않을 거라고 믿을 것이며, 범인 입장에서는 절대 살해당하지 않으려는 주인공이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을, 대체 뭘 보고 신고만 안 하면 절대로 안 죽일 거라고 생각한다는 말인가?[20] 주택법 상 지하주차장이 아닌 지상주차장이나 보행로, 화단 등은 CCTV의무설치대상이 아니다. 지상전체를 보면 어린이놀이터 등 몇군데 시설에만 법적으로 CCTV를 설치해야하기에 통상 차량출입구등 극히 일부 장소에만 추가로 설치한다.[21] 추가로 옷도 안 갈아입고 실종자와 같은 엘리베이터를 탄다. CCTV로 목격자를 찾을 정도면, 발견을 못 하는게 더 이상하다.[22] 당장 경찰들이 아파트 CCTV를 돌려보면서 공격이 있었던 새벽 2시에 깨어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골라냈으니 CCTV가 있는 것도 확실하다.[23] 사실 이건 자신이 방금 전에 시덥잖은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아서 소소하게 복수한 것.[24] 세월호 참사 같은 국가적 대재난 수준의 대형참사부터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김용균 사건 등 구조적 문제로 인한 산업재해, 대구 아동 황산 테러(공소시효 폐지의 계기가 되었다) 같은 흉악범죄, 윤창호 사건 같은 단순 음주운전 교통사고까지,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25] 실화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의 경우, 아무리 개연성이 없게 느껴지는 전개를 해도 관객들에게 실제로 이렇게 일어났던 일이라서 이런 식으로 전개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면 관객들은 결국 납득한다. 물론 실제 있었던 일이 너무나도 드라마틱한 나머지 관객들이 납득을 못할까봐 주인공의 활약을 일부러 실화보다 너프시키는 영화도 있지만.(예: 핵소 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