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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2 03:54:58

모리 소이켄

1. 개요2. 생애3. 그 외

1. 개요

森宗意軒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까지 산 인물로, 낭인이 되어 시마바라의 난에 참전하기도 했다. 아명은 덴노스케(傅之丞)였고, 사망한 일자는 1638년 4월 12일.

2. 생애

생년은 불명이나 모리 나가모토(森長意)[1]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가업을 이어 카와치이시카와군에 있는 미쿠마리고샤다이묘진(水分五社大明神)의 나기다이묘진(南木大明神)을 섬기는 신직으로 일했다. 무사가 된 이후로는 산자에몬(三左衛門)이라 개명했으며, 고니시 유키나가의 가신으로 일하게 된다.[2] 임진왜란 당시에는 유키나가의 짐과 배를 관리하여 조선으로 나가려 했으나, 풍랑을 만나 난파하고 만다. 남만인에게 겨우 구조된 산자에몬은 유럽에 머물렀고, 오란다에도 체류해 그곳에서 6~7년을 보내며 온갖 학문과 기술을 배운다.

그 후 으로 떠난 산자에몬은 입묘로(入廟老)라는 사람에게 화공과 화술(火術),[3] 의술[4]을 가르치고 일본으로 귀국했는데, 당시엔 주군 유키나가가 이미 세키가하라 전투 패전으로 참수된지 오래였기에 고야산에 몸을 숨기게 된다. 오사카 전투가 벌어질 때에는 사나다 노부시게를 따라 싸우지만 낙성 후 히고국(肥後国)[5]의 아마쿠사 제도로 내려가 소이켄(宗意軒)이라 개명한 뒤 그곳에서 살게 된다. 타사키 시게요시라는 제자도 두었다.

새로운 터전에서 키리시탄 탄압과 폭정이 벌어지자 아마쿠사 시로 토키사다와 만나 협력하여 시마바라의 난을 주도하고[6] 군량 및 물자의 수송과 정보 보고를 담당하는 지위에 오르는 등 적극적으로 참전했으나 끝내 타사키와 함께 전사했다.

사후[7]에는 그를 그리워한 주민들에 의해 신사가 세워졌으며, 이 신사는 카미아마쿠사시 오야노마치나카에 자리잡고 있다.[8] 현지 주민들에게는 모리스케 씨(もりすけさん)라는 애칭을 지닌 친근한 할아버지 정도로 취급되고 있다고. # 이 신사에서 참배했더니 피로와 아픔이 가셨고 심지어는 혼수상태에 빠져있던 가족이 일어났다는 증언이 있는 걸 보면 건강 관련으로 효험이 뛰어난 듯.[9]

3. 그 외

주군과 협력자 둘 다 키리시탄이어서 그런지 이 사람도 키리시탄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원래는 신토를 믿던 성직자였지만 개종한 사람쯤으로 여겨지는 듯.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각종 기술과 학문을 배웠고, 다른 이들에게 그걸 전수해 준 적도 있어서 노회한 스승같은 이미지로 비추어질 때가 많다. 한 술 더 떠서 아예 생사를 마음대로 조작하는 요술을 쓰는[10] 판타지스러운 인물로 각색되기도 하는데, 이걸 극단적으로 묘사한 것이 바로 야마다 후타로마계전생이다. 음탕하고 요사스러운 현장[11]에서도 성욕을 드러내기는 커녕 오로지 도쿠가와의 몰락만을 부르짖는 광기어린 성격의 복수귀로 묘사된 것이 특징.[12] 세가와 마사키가 그린 만화판인 주 ~인법마계전생~에서는 개성적인 외모를 지닌[13] 작달막한 노인으로 그려졌다.

대중매체에 의해 이미지가 괴상해지기 전부터도 요술사라는 이미지가 있었던 모양인지, 모리 소이켄에 대한 설화 중에는 서양문물만 갖고는 해낼 수 없을 이야기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바다에서 거대한 물고기를 소환해 타고 다닌다든지, 허공에 거대한 를 불러낸다든지, 굽 하나짜리 게다를 신고 바다를 건넌다든가 말 타고 구름 위를 노닐었다든지 등등... 세 번째 설화는 기독교의 영향이 꽤 있어보인다.

마계전생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Fate 시리즈에서도 영 좋지 않은 이미지로 그려지는 것 같다. 자세한 것은 모리 소이켄(Fate 시리즈) 문서 참고.

[1] 모리 쵸이켄(森長意軒)이라고도 하며, 니시무라 마고베에(西村孫兵衛)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사였다고.[2] 소이켄의 누이가 유키나가의 부인 내지는 첩이 되었다는 설 때문에 보기보다 가까운 사이였다는 추측도 있다.[3] 화포, , 불화살 등의 화기 다루는 법과 봉화 올리는 법을 가리킨다.[4] 그 중에서도 외과수술 분야를 가르쳤다고 한다.[5] 현재의 구마모토현이다.[6] 타사키가 둘의 만남을 주선해주었다고 한다.[7] 난에 참전하기 전 시점인 1637년 경에 세워졌다고도 한다.[8] 인근에 바다가 있어 멧돼지가 사는 산 속임에도 가 돌아다니는 곳이며, 의외로 경치가 좋은 편. 일설에 의하면 이 경치를 마음에 들어한 소이켄이 이와지마보다 이곳을 더 선호했다고 한다.[9] 플라시보 효과일 수도 있겠지만, 모리 소이켄이 살아생전에 쌓았던 경력과 가족력을 생각하면 나름 근거있는(?) 효험인 셈.[10] 기독교인이 뭔 네크로맨시냐 싶겠지만, 당시 일본에서 기독교에 대한 인식은 그 정도로 좋지 않았다.[11] 소이켄이 쓰는 인법 마계전생은 상당히 에로틱하면서도 기괴한 것이 특징이다. 자세한 과정은 이 항목을 참고할 것. 이러다보니 마계전생은 섹스나 강간 미수 장면이 굉장히 자주 나오게 되었다.[12] 유이 쇼세츠에게 요술과 군략을 가르친 것도 막부 전복을 위해서라는 설정이 붙어있다. 실제 역사 상으로는 시마바라의 난 때 전사한 것이 정설이라 쇼세츠와 만났을 리는 없고, 풍문으로 나돌던 생존설을 채택한 것이라 봐야 할 듯. 생존설을 반영하면 1651년 기준으로 70~80대 쯤 될 것이다.[13] 스타워즈의 요다처럼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