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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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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석 / 16석 | ||||||||
연방상원 | 3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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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Land Mecklenburg-Vorpommern,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독일 동북부에 위치한 주로, 역사상으로는 메클렌부르크와 포메른 별개의 지역으로 나누어졌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포메른 주의 영토가 베를린의 항구 기능을 담당했던 최대도시인 슈테틴을 포함하여 대부분 폴란드로 넘어가면서, 독일에 남아 있던 포어포메른과 브란덴부르크 북부 일부 지역이 한 주로 통합되었다. 일단 이 곳 주민들은 자신의 출신에 따라 메클렌부르크면 메클렌부르크, 포메른이면 포메른이라고 잘라서 말하지 절대로 지역을 합쳐서 부르지 않는다고 한다. 주도는 슈베린(Schwerin)이나 최대 도시는 로스토크(Rostock)이다. 1945년 전후 이 일대를 점령한 소련이 메클렌부르크와 포어포메른을 통합하여 신설한 주로 동독이 세워진 뒤인 1952년에는 동독 측의 행정구역 개편 작업에 따라 로스토크, 슈베린, 노이브란덴부르크의 3개 구(Bezirk)로 해체되었으나, 독일 통일 직전인 1990년에 다시 부활하였다.
이름이 긴 탓인지 보통 앞 글자를 따서 엠-파우(MV)라고 부르거나 멕폼(Meckpomm)이라고 줄여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독일에서 가장 큰 섬들인 뤼겐 섬과 우제돔 섬이 있다.
스켈리도사우루스, 스쿠텔로사우루스와 더불어서 전기 쥐라기에 번성한 원시 장순아목 공룡[2] 중 하나인 에마우사우루스가 이 지역에서 발견됐다.
2. 역사
전통적으로 분리되어있던 지역인 만큼, 메클렌부르크와 포메른 지역으로 나누어 서술한다.2.1. 메클렌부르크
메클렌부르크 문장
12세기 무렵까지는 슬라브족이 대부분 거주하고 있던 지역이었지만 작센 공작 하인리히 사자공(Heinrich der Löwe)에 의해 점령된 이후 기독교 전파 및 게르만족의 이주에 힘입어 서서히 게르만화가 이루어졌다. 이 지역에 살던 슬라브 부족인 아보드리텐의 부족장 니클로트(Niklot)는 30년 동안이나 저항하기도 했다. 니클로트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 프리비슬라브(Pribislav)는 결국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하인리히의 제후가 되는 것에 동의하면서 메클렌부르크의 영주가 되었고, 1차 대전 종전 전까지 후손들이 영주를 맡았고 아직도 가문이 이어지고 있다.
비스마르는 1229년에 처음으로 도시 지위를 얻은 후 1301년에 메클렌부르크의 영지가 되었다. 이후 뤼베크나 로스토크와 연합하며 메클렌부르크 영주와 힘다루기를 했고 한자 동맹에도 가입했다.
1347년에 영주령에서 공국으로 승격되었다. 16세기에는 종교개혁에 동참하여 루터파로 개종하였고, 30년 전쟁에서는 페르디난트 2세에게 저항하다가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에게 공국을 빼앗기기도 하였다.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공국을 되찾았으나 비스마르 등 북부 영토 일부가 스웨덴에 귀속되기도 했다. 1695년에 슈베린과 귀스트로로 갈라졌던 2개의 공국이 통합되었으나 1701년에 체결된 함부르크 조약으로 메클렌부르크슈베린 공국과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로 재편성되었다.
1815년 빈 회의를 통하여 양 공국은 모두 대공국으로 지위가 상승했으며 최소한의 자치권은 유지한 채로 북독일 연방과 독일 제국에 편입되었다. 다만 척박한 토지와 중세적 봉건 구조가 잔재한 관계로 독일 제국 시기 제국 안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중의 하나였다.[3] 가령 20세기 초반까지도 이곳 농민들에게는 거주 이전 및 결혼의 자유가 없었고, 거주 이전 및 결혼을 하려면 영주에게 허락을 맡아야 했다. 그래서 그런지 현재까지도 독일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다. 하술 참조.
두 공국은 1차 대전의 종전과 더불어 다른 제국 내 왕/공국과 마찬가지로 폐지된 채 공화정으로 변신하고, 여전히 분리된 채로 주의 하나로 바이마르 공화국의 행정 구역으로 편입되었다. 이 둘이 하나로 합쳐진 것은 1934년 나치에 의해서이다. 이후 2차대전의 패배와 더불어 소련군이 메클렌부르크를 점령했다. 종전 당시에는 서방측 연합군이 주도 슈베린을 비롯한 메클렌부르크 서부 지역을 점령했으나 포츠담 회담의 합의 사항에 따라 소련군에게 이 지역을 인계했다.
2.2. 포메른
관련 문서: 포메른포메른 문장
포메른 지역에는 원래 슬라브족의 한 계열로 추측되는 포메른족이 고대부터 거주하고 있었다. 12세기 게르만족의 정복/이주 및 기독교 전파로 이 지역에도 독일화가 이루어졌고 원주민이었던 포메른족은 독일인으로 동화되었다. 독일화된 이 지역은 그라이펜(Greifen)[4] 가문이 다스리는 공국이 되었다. 이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을 포메른 공국의 종주국으로 삼으면서 오랫동안 브란덴부르크와 갈등을 겪으면서 사실상 독일 국가가 되었다. 브란덴부르크와의 종주권 문제는 1529년, 그림니츠 조약이 체결되면서 브란덴부르크를 종주국으로 섬기지 않아도 되었지만 대신 그라이펜 가문이 절손되면 브란덴부르크가 포메른을 상속받기로 합의하면서 끝났다. 이 시기에 마르틴 루터와 친밀했던 요하네스 부겐하겐을 초청하여 종교 개혁을 실시하였고 루터교회로 개종했다. 17세기 중반에 보기슬라프 14세(Bogislaw XIV)는 여럿으로 분할상속되었던 포메른 공국의 지역들을 모두 상속받아 통일했으나 후계자를 남기지 못하고 1637년에 죽었다. 그러자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에 의해 포어포메른은 스웨덴에, 힌터포메른은 브란덴부르크에게 넘어갔다.
1653년의 포메른 지도. 주황색이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 하늘색이 스웨덴령. 왼쪽의 노랑색은 메클렌부르크.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의 후신인 프로이센 왕국은 스웨덴으로부터 1720년 슈테틴을, 마지막으로 1815년에는 슈트랄준트와 뤼겐 섬을 흡수하여 같은 해 포메른 주(Provinz Pommern)를 설치했다.
포메른 주 지역은 이미 확고한 독일 문화권으로 자리 잡았으나, 그단스크를 중심으로 한 포메른 동부 지역은 중세를 거치면서 폴란드 리투아니아의 폴란드 왕령 프로이센으로 흡수되었고 이후 폴란드 분할로 폴란드가 사라지면서 프로이센 왕국령 서프로이센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이 지방은 포젠 지역과 함께 여전히 폴란드인이 다수로 남아 있어서, 프로이센은 이 지역을 적극적으로 독일화시켰다. 가령 폴란드어를 사용 금지했으며, 폴란드인이 믿는 가톨릭을 탄압했고 독일인을 적극적으로 이 곳으로 이주 및 정착시키려 프로이센 정착위원회를 세우고 국가 차원에서 노력했다. 덕분에 1819년 독일인 46%, 폴란드인 52% 비중이었던 인구수는 19세기 후반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독일화 정책으로 인해 제1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기 직전인 1910년 인구 조사에서는 독일인이 65.5%, 폴란드인이 35.5%를 차지할 정도로 독일인의 숫자가 늘었다.[5] 이 지방에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폴란드가 독립하면서 '포모제[6] 주(Pomorskie Voivodeship)'라는 행정 구역을 설치하였다.
아무튼 19세기 중반 산업혁명의 물결이 유럽을 휩쓸고 포메른도 예외가 아니어서 슈테틴을 중심으로 각종 공업 지대가 형성되었다. 다만 그 일대를 제외한 대부분은 여전히 융커 계층이 운영하는 농장지역이었기에 많은 포메른 주민들은 일거리를 찾아 베를린과 루르 지방의 공업지대, 또는 멀리 미대륙으로 이주해나간다. 전후 폴란드 땅이 되면서 사실상 소멸한 포메른 방언이, 브라질로 이민간 독일인의 후예들 일부에게 남아 있다고 한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 제국이 패배했지만 포메른 주(Provinz Pommern)는 털린 땅이 없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또다시 패배하고 포메른은 소련군에게 점령당했다. 이오시프 스탈린은 1939년 폴란드 침공 당시 자신들이 점령한 옛 폴란드의 동부 지방 영토를 돌려주기 싫어서 소련에 편입 시켜버렸고 독일의 동부 지방 영토를 희생하여 동프로이센 남부와 힌터포메른을 폴란드의 영토로 귀속시켰다. 이 과정에서 독일인들이 강제 추방 당하고 독일인들이 남긴 유산들이 파괴된 것은 물론이다. 독일인들이 거주하던 곳이었으니 이 곳에 있던 역사적 건물들이 폴란드인들, 특히 폴란드 공산당에게 중요할리가 없었고 당연히 전쟁으로 파괴된 건물을 복구하기는 커녕 구시가지까지 그냥 다 밀어버리고 공산주의식 콘크리트 건물들과 고속도로를 깔아버렸다.
2.3. 메클렌부르크와 포메른의 통합 이후
소련군 측은 종전 직후인 1945년 7월 메클렌부르크와 독일에 남아 있었던 포어포메른, 브란덴부르크 북부 일부를 하나로 합쳐 메클렌부르크포메른(Land Mecklenburg-Pommern) 주를 신설했다. 가령 노이브란덴부르크라는 도시는 브란덴부르크가 아닌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에 있다[7]. 포메른 동쪽이 폴란드 영토가 되어버린 관계로 1947년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52년 동독 정부가 모든 주의 기능을 정지하는 중앙집권적 행정구역 개편을 실시하면서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역시 사라졌고 대신 그 자리에 로스토크, 슈베린, 노이브란덴부르크의 3개 구를 설치하였다. 이후 1990년 독일 통일 직전에야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이 다시 등장했다.현재의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기는 메클렌부르크와 포메른 그리고 브란덴부르크의 문장을 합친 것이다.
3. 정치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의회의 원내 구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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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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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적 79석 | }}}}}}}}} |
통일 초기에는 잠시 기민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통일 이후 등장한 각종 부작용에 따른 헬무트 콜 내각에 대한 실망+전통적인 북독일 정치성향으로 사민당이 1998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주 정부에서 여당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사민당의 쥘비아 브렛슈나이더는 2002년부터 2019년에 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주의회 의장으로 활동했다.[8] 또한 구 동독 공산당을 계승한 좌파당도 만만찮은 지지를 보여주고 있다. 통상 사민당이 40% 정도의 지지를 획득하며 기민당이 20% 초반, 좌파당이 10% 후반의 지지율을 획득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의 지역구가 이곳에 위치하기도 했다.
다만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는 작센주와 함께 통일후 민족민주당(NPD)이 지지율이 높은 지역이었다. 2006년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의회 선거에서 7.3%의 득표율로 의석 6개를 얻어 처음으로 원내 진입 하였으며, 2011년 주 선거에서는 6% 지지율을 얻어 5개 석을 얻어냈다.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가 다른 독일 지역에 비해 경제적으로 낙후된 느낌이 있긴 하지만, 발전이 특히 더 디딘 동부 포어포메른 지역에서 NPD 지지율이 높았다.[9] 주 의회에 입성한 NPD 의원들도 모두 이 쪽에서 당선된 자들. 슈트랄준트나 뤼겐 섬 등이 여기에 포함되는데, NPD 지지자들 때문에 내외국인들의 기피 지역이 되는 바람에 관광업에만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지만 NPD도 60년대엔 서독의 경제 취약지역에서 반짝 지지율로 7~10% 지지율로 주 의회에 입성했던 적이 몇 번 있었으나, 2기도 채 넘기지 못하고 아웃오브안중이 되었고 통일 후 동독의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절차를 밟았다. 하지만 신극우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부상하며 NPD의 지지율을 그대로 빨아들임과 동시에 정치무관심층에 속했던 다른 반유럽연합, 반난민, 음모론자들을 규합하여 17%에 가까운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참고로 독일에 거주하는 많은 외국인들에겐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가 어느 정도 악명이 있는 것이, 1992년에 벌어졌던 로스토크 해바라기 아파트 사건 때문이다. 주로 베트남 이주민들이 살던 해바라기 아파트에 극우주의자들 수백명이 몰려가 지역 주민의 방관 및 응원 하에 방화한 사건으로, 다행히 거주민 중 아무도 죽거나 다치진 않았지만, 독일 사회에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당시 체포된 370여명 중 1년 금고형을 받은 사람은 3명에 불과했다. 대다수가 10대 후반이라 10여명만 가벼운 벌금형을 받고 나머지는 다 풀려났다. 이 사건에서 어떤 아재가 나치식 경례를 하다가 그만 바지에 지리는(...) 사진이 찍혔다.(그 사진) 독일 내에서는 네오 나치를 조롱하는 짤방으로 간간히 쓰인다.
'Jamel'이란 이름의 마을은 아예 동네 사람들이 죄다 네오나치인 것으로 악명높다. 대놓고 나치 포스터를 벽화로 그려넣기까지 했으며, 독일 제국 시절 국기[10]를 게양하였다. (BBC(2016), 프랑스 2(2019))
그나마 20년이란 세월이 지나면서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기성정당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졌고, AfD 지지율도 다른 동독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편인데, 그 배경 중 하나로 통일 후 작센, 작센안할트, 튀링겐처럼 동독 지역만 커버하는 지역공영방송국이 별도로 생긴 것이 아니라 기존 서독의 북부 주들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함부르크, 슐레스비히홀슈타인를 관할하던 NDR에서 공영방송을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에도 서비스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해석도 있다.[11] 더군다나 관광업이 주요 산업인지라, 해안지역 고루고루 독일인들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기 때문에 외국인공포증도 덜할 수 밖에 없다. 여전히 극우가 초강세를 보이는 작센주 동부 지역과 달리 같은 Tal der Ahnungslosen(무지의 골짜기) 지역이었으면서도 그보다는 많이 덜한 배경으로 보인다.
4. 경제
독일 내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에 속한 주이다. 원래도 별다른 산업 지구가 없었던 곳인데 공산주의 정권 40년과 통일의 부작용을 겪으면서 완전히 황폐화됐다. 인구 밀도도 독일 내에서 가장 낮은 반면 실업률은 2023년 기준으로 8.0% 정도로 독일 내에서 가장 높은 곳들 중 하나이다. 2023년 독일 전체의 실업률은 5.7%이다.[12]. 이것이 최근 30여년 동안 비교적 낮은 수치이다. 독일 경제가 최악의 불황을 겪던 2000년대 초반에는 20%를 넘기도 했다.전통적으로는 발트해라는 지리 조건을 이용한 관광업이 주된 산업이다. 주민들의 75%가 서비스업에 종사한다. 갯벌 때문에 사주가 아닌 섬을 제외하고는 모래해수욕장이 전무한 북해와는 달리 발트해 쪽은 해안선따라 모래 해수욕장이 쭈욱 펄쳐져있어서 접근성도 좋아 독일 국내에서 해수욕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다만 지리적으로 많이 북쪽인 관계로 여름 한철에만 주로 관광객들이 몰린다.
5. 언어
전통적으로 저지 독일어의 영역에 들어가는 곳이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후 소련군을 피해서 온 피난민과 슐레지엔, 동프로이센 등지에서 쫓겨난 추방민들의 유입으로 인하여 사투리는 상당부분 사라지고 표준 독일어가 우세를 점하고 있다. 사실 이는 단순히 이 지역뿐만이 아니라 독일 대다수 지역이 제2차 세계 대전 전후로 피난 및 이촌향도 현상으로 인한 외부민 유입으로 인해 겪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바이에른 지역을 빼면 사투리를 잘 보존하고 있는 지역이 드물 정도.과거 슬라브족들이 살던 땅이었던 탓에 지명에는 여전히 슬라브 어원이 많이 보이는 편이다. 가령 슈베린(Schwerin)은 슬라브어족의 일파인 폴라브어에서 장소를 뜻하는 어미 -in과 동물(가축 또는 말)이 많다는 뜻의 zver가 합쳐진 단어에서 유례하였다. Zverin->Swerin->Schwerin이 된 것.[13] 그 외에도 슬라브어의 영향을 받아 이 지역 지명의 모음 뒤에 오는 w는 장음을 뜻한다. 가령 귀스트로(Güstrow)는 귀스트로프로 읽는 게 아니라 귀스트로- 이다.
6. 관광
통일 이후 이 곳의 지역 공영 방송은 북부독일방송(NDR)에서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니더작센이나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와 함께 저지독일/북독일 문화권적 동일성은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14] 위의 외국인 혐오와 관련된 몇몇 사건들이 있었지만, 이 지역에도 볼거리는 매우 많다. 하지만 아직은 대외적으로 널리 홍보하지 못해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은 해변 리조트아니면 이미 널리 유명한 슈베린과 비스마어 정도. 대부분은 독일 내국인 관광객들이다.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은 역사 및 문화 유적을 중점으로 여행을 해도 좋으며, 발트해 연안에 펼쳐진 해변과 유명 리조트들에서 장기 숙박을 하며 해수욕, 낚시 등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슈베린 성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은 슈베린 성이다. 본래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국의 궁성으로, 원래는 방어 목적으로 서기 973년 슈베린 호수에 있는 섬에 위에 지어졌다. 이후 증축과 여러 르네상스 및 바로크 개축을 거쳐 지금의 로맨틱 양식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동독 시절 때 관리가 영 안되었던 걸 통일 이후 복원을 하였고 지금도 일부 복원 작업 중. 성 자체도 매우 특출나지만, 넓직한 정원과 호수를 비롯한 주변 경관도 매우 아름답다. 현재는 성의 절반정도가 주 의회의 의사당으로 쓰이고 나머지 절반은 박물관으로 일반에 공개되어있다. 메클렌부르크 대공작과 그 가족들이 살던 방들과 응접실, 왕좌실, 예배당 등을 둘러볼 수 있다. 북쪽의 노이슈반슈타인 성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지만, 이는 현대에 붙어진 것이다. 슈베린 성은 실제로 10세기 이후로 공작 가문 대대로 거주하고 통치하던 성이고,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19세기 바이에른의 왕이었던 루트비히 2세의 기행으로 무리하게 과시용으로 짓다가 완공도 못했다. 그러나 현대에는 해외에 서독에 있던 백조의 성이 매우 유명해졌고 슈베린 성은 철의 장막을 벗어난 통일 후 뒤늦게 세계에 다시 알리려다보니 관광업계에 의해 이런식으로 불리는 것. 역사와 미술사적으로 본다면야 슈베린 성이 훨씬 더 으뜸이다.
슈베린 성 정문 바로 앞 다리 건너에는 17, 18세기 10만여점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주립 박물관이 있다. 본래 1882년 프리드리히 프란츠 3세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이 설립한 것으로, 지금은 슈베린 성, 루트비히스루스트 궁, 귀스트로 성과 주 정부의 소유가 되었다.
노이슈트렐리츠 시에는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국의 쌍둥이 제후국이던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국의 궁전도 있었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의 끝물인 1945년 4월 29일 밤 화재로 사라졌다. 그나마 잔해가 남아있었지만 동독 정권은 봉건주의 잔재를 청산한다며 완전 철거해버려 정원만 남았다. 다행히 통일 이후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베를린의 프로이센 왕궁처럼 복원이 진행중이긴 하나, 주정부에서 벌이는 복원 사업도 많은데 궁전 규모도 엄청 컸던지라 복원 비용도 어마어마하게 들것으로 예상되다보니 후순위로 밀리는 중. 전쟁으로 사라지기 전에는 이렇게 생겼었다.
비스마르 시내
비스마르와 로스토크, 슈트랄준트는 한자동맹 시대부터 유명한 항구 도시이다. 비스마르와 슈트랄준트는 구시가지 시내의 정비와 관리가 잘되어있고, 두 도시 모두 구시가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로스토크는 공업화가 많이 이루어졌던 도시라 2차세계대전 때 폭격을 심하게 받아 역사적 의미의 구시가지는 일부밖에 보존되지 못하였다. 드레스덴의 구시가지 복원 사업의 성공사례로 인하여 이 지역에서도 꾸준히 구시가지 복구 여론이 강해지고 있다.
귀스트로는 메클렌부르크 공작령이 두 지역으로 분할 되는 과정에서 메클렌부르크귀스트로 공작령의 수도가 되었다. 그 당시에 공작의 궁전으로 쓰인 귀스트로 성 규모가 상당히 크다. 북독일의 바로크-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과 넓직한 정원이 인상적.
슈베린 남쪽 30km에 위치한 루트비히스루스트는 18세기 말 메클렌부르크슈베린 공작이 잠시 천도를 했던 곳으로, 공작이 살기 위해 지은 바로크 양식의 루트비히스루스트 궁전이 위치해있다. 본래 매우 조그만 다른 이름의 마을이였으나 천도와 함께 계획적으로 도시를 설계하고 짓기 시작하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루트비히스루스트 궁은 2016년 현재 대대적인 내부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나 복원된 일부 방과 화려한 연회홀은 입장하여 관람할 수 있다.
슈베린과 비스마르는 함부르크 광역권으로 분류될 정도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기 때문에 여행을 할 계획이라면 함부르크를 거점으로 당일치기 여행으로 다녀와도 충분하다. 그 외의 지역은 로스토크를 거점으로 삼던가, 함부르크에서 로스트크를 거쳐 베를린으로 간다는 계획으로 여행하며 거쳐갈 수도 있다.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에 버려지거나 방치된, 과거 귀족들이나 다른 지역 왕족들이 지었던 저택들(Herrenhaus)이 많이 남아있는데, 최근 들어 일반인들이 이런 저택들을 사들여서 손수 수리하고 복원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7. 종교
대다수 구 동독 지역들이 그렇듯이 공산 정권의 영향으로 주민들 다수가 무종교이다. 통계에 따르면 주민들 중 80%가 무교이며 대략 17%가 개신교, 3%는 가톨릭 신자. 개신교 중에서도 루터파가 다수라고 한다.8.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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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거 메클렌부르크를 통치한 니클로트 가문(Haus Mecklenburg)의 문장, 포메른을 통치한 그라이펜 가문(Haus Greifen)의 문장, 브란덴부르크의 붉은 독수리 문장이 합쳐졌다.[2] 스테고사우루스와 켄트로사우루스, 투오지앙고사우루스, 안킬로사우루스, 폴라칸투스 같은 검룡류나 곡룡류가 속한 조반류의 부류 중 하나다.[3]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세계의 종말이 다가온다면 나는 메클렌부르크로 가겠다. 거기서는 무슨 일이든 50년 늦게 일어나니까(Wenn die Welt untergeht, so ziehe ich nach Mecklenburg, denn dort geschieht alles 50 Jahre später.")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4] 폴란드어로는 Gryfici.[5] 다만 이 인구조사는 폴란드인의 숫자를 의도적으로 줄이려는 독일 정부의 조작이 있었을 수도 있다는 가설 때문에 신뢰받지는 못하는 자료다.[6] 포메른의 폴란드어[7] 다만 노이브란덴부르크는 1292년부터 메클렌부르크 영토였다.[8] NPD 소속의 한 의원이 연설을 한답시고 증오 발언을 일삼자 입닥치라며 강제로 내려가게 만든 사람이다.[9] 이 쪽은 Tal der Ahnungslosen, 즉 무지의 골짜기라고도 불리는데, 과거 독일이 분단되었던 시절에도 동독 대부분에서 서독 뉴스채널 신호가 잡혀서 집에서 TV로 시청할 수 있었기 때문에 동독 주민들 대부분이 동독 정부의 검열 없이도 다른 나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볼 수 있었던 반면, 포어포메른 지역과 작센 동부지역은 안테나 신호 한계로 서독 뉴스를 수신할 수 없었다. 이 두 지역모두 통일 이후 극우주의자들이 기승을 부리는 곳이다.[10] 하켄크로이츠가 금지된 관계로 네오 나치들이 대용품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 상징 중 하나이다.[11] 브란덴부르크주는 통일 이후 ORB라는 별도의 방송사가 있었으나 근처 베를린의 SFB와 NDR과도 교류가 있었고, AfD가 등장하기 한참 전인 2003년에 베를린 SFB와 합쳐서 RBB가 됨[12] 참고로 상황이 괜찮은 바이에른주와 같은 곳의 실업률은 3%대이다[13] 참고로 베를린도 슬라브어에서 왔다. 호수가 많다는 뜻의 Brlo와 어미 -in이 합쳐져서 변형된 지명. 곰을 뜻하는 독일어 Bär와는 관계도 없지만 후세에 발음이 같게 들리니 자연스레 곰이 베를린의 상징이 되었다.[14] 메클렌부르크 지역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에도 북부독일방송의 전신인 북부방송(Nordische Rundfunk AG, 약칭은 NORAG)의 가청권에 들어갔다. 다만 포어포메른 지역은 오늘날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방송의 전신인 Funk-Stunde Berlin의 가청권이었다. (당시 힌터포메른 즉 포메른 동부는 동프로이센의 동부방송(Ostmarken Rundfunk AG) 가청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