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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3 23:44:13

맥라렌 M6A

파일:맥라렌 로고(1965-1967).png
파일:맥라렌 M6A.jpg
M6A

1. 개요2. 역사3. 파생형
3.1. M6B3.2. M6GT
4. 참고 문헌5. 둘러보기

1. 개요

브루스 맥라렌과 맥라렌 레이싱이 개발한 그룹 7 레이스 카로, 1967년 캔-암 시즌을 위해 개발되었다. 이전에 사용하던 M1B의 후속 차량이며 M6A는 1968년부터 M8A로 서서히 교체되었다.

2. 역사

찰스 쿠퍼와 의견 갈등을 빚고 있던 브루스 맥라렌은 기존의 팀을 떠나 자신의 팀인 맥라렌 레이싱을 창설한다. 초기에 포뮬러 원 위주로 활동하던 맥라렌 레이싱은 다른 레이스 시리즈들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데, 그중 하나가 캐나디안-아메리칸 챌린지 컵, 일명 캔-암 시리즈였다. 당시 캔-암은 FIA 그룹 7 규정 차량들을 위한 레이스였고 공기역학이나 엔진 등의 설계에 대해선 큰 제약이 없었다.

자동차의 독창성과 성능을 보여주기 좋은 대회였기에 브루스 맥라렌은 캔-암에 차량을 만들어 출전시키기로 한다. 첫 시즌에는 M1B를 운용했다. 성능은 분명 좋았지만 우승하지 못했는데, 맥라렌은 새로운 레이싱 프로젝트를 세워 M6A를 개발하기로 한다. 맥라렌은 1967년 초 오프 시즌 동안 M6A를 개발하기 위해 설계자들을 모았다. 여기에는 로빈 허드, 고든 코퍽, 타일러 알렉산더, 돈 베레스포드 등의 사람들이 포함돼있었다.

대부분의 다른 차량들은 차체 아래에 스페이스 스틸 프레임을 사용했지만, 브루스 맥라렌은 1967년 시즌을 위해 알루미늄으로 모노코크 섀시를 제작했다. 이 때문에 M6A 차체는 가볍지만 튼튼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리어 액슬 앞쪽 중앙에 장착된 5.9리터 쉐보레 V8 엔진은 액슬 사이의 중량 분배가 잘 되도록 구성되었다. 또한, 캔-암 레이스에 적합한 차체를 디자인하고 다운포스를 증가시키도록 차량 형상을 구성했다. 차체는 캔-암 서킷에 적합한 다운포스를 적절히 증가시키도록 특별히 형성되었다.
파일:1967 캔-암 로드 아메리카.jpg
1967 로드 아메리카

그렇게 첫 번째 M6A가 1967년 봄에 완성되었다. 특이한 점은 M6A가 종이에 그려진 설계도를 기반으로 무려 11주 만에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맥라렌 팀은 레이스를 위해 굿우드 서킷에서 2,000마일 이상 테스트를 진행했고 차량 설계 조정을 위한 데이터들을 축적했다. M6A가 추가로 두 대 완성되자 시즌 오프닝 레이스를 준비하기 위해 M6A들을 북미로 배송했다. 완성된 차량에 맥라렌의 상징적인 오렌지색을 사용했으며, 이것이 맥라렌 오렌지의 시초이다.

그렇게 캔-암 첫 번째 경기 예선에서 이 차량들의 ​​진정한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데니 흄이 주행하던 M6A가 가장 빠른 랩타임을 기록했고 브루스 맥라렌이 그다음으로 빨랐다. 브루스는 오일 누출로 인해 완주하지 못했지만, 흄은 팀의 첫 우승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다음 로드 아메리카에서의 레이스에선 M6A이 코스 기록을 10초 차이로 깼고 압도적인 성능을 보여줬다. 그렇게 맥라렌은 1967년 캔-암 시즌 6개 레이스 중 5개를 우승했고 다양한 서킷에서 최고 랩타임을 경신했다.

1968년 시즌에선 M6A가 퇴역한 후 M8A로 대체됐다. 한편, 맥라렌은 트로잔-타우라낙 레이싱에게 커스터머 팀용 복제 차량 제작을 맡겼고, 이렇게 제작된 M6B는 팀들에게 판매됐다. 덕분에 M6B는 캔-암 시리즈를 포함한 다양한 레이스에 출전할 수 있었다.

3. 파생형

3.1. M6B















3.2. M6GT

파일:맥라렌 M6GT_(1).jpg
파일:맥라렌 M6GT_(2).jpg
M6GT

1966년부터 월드 스포츠카 챔피언십은 그룹 4와 그룹 6 레이스카들이 허용되었는데, 1967년 르망 24시에서 그룹 6 프로토타입들의 성능이 너무 압도적이자 FIA는 1968년부터 엔진 용량을 3리터로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이 때문에 7리터짜리 포드 GT40이나 페라리 330 P4, 412 P, 섀퍼럴 2F와 같은 차량을 출전에 어려움을 겪었고 제조사들의 항의로 이어졌다. 그렇게 그룹 4와 그룹 6 참가 팀들의 수가 적어지게 되었고 FIA는 1969년에 그룹 4 호몰로게이션 규정 중 로드카 최소 생산 대수를 50대에서 25대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브루스 맥라렌은 레이싱 드라이버이기도 했지만, 당대 최고의 스포츠카를 만들고 싶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마침 그룹 4 규정이 완화되었기도 하고, 수익성도 좋은 그랜드 투어러로 경쟁하는 그룹 4 레이스에 출전하기로 한다. 브루스 맥라렌은 총 250대의 공도용 및 경주용 자동차를 수년 내로 제작한다는 프로젝트를 세운다.

1969년 맥라렌은 M7A와 M8B의 개발에 집중하고 있었으며 트로잔은 M10B와 M6B의 개발을 담당하고 있었다. M6GT의 개발은 트로잔 워크스와 함께 맥라렌의 콜른브룩 워크숍에서 이루어졌는데, 1969년 1월 아직 미완성된 프로토타입 M6GT가 런던 레이싱 카 쇼에서 M8A와 포뮬러 머신과 함께 공개됐다. 이때 토니 딘, 데이비드 프로펫, 존 울프, 스텐 액셀슨, 테크스피드 레이싱을 포함한 몇몇 사람들과 업체가 M6GT를 주문했다.

최초의 섀시인 M6GT-1[1]은 1970년 초까지 완성되지 않았다. 반면 트로잔은 고객인 데이비드 프로펫에게 섀시 M6GT-R을 제공했다. 이름에 'R'이 들어가있듯 이는 공도용 차량이 아닌 레이스 차량이었는데, 데이비드 프로펫은 3월의 실버스톤 국제 트로피 레이스에서 M6GT를 운용하려했다. 데이비드 프로펫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M6GT로 레이스에 출전하려 했지만 공장에서 생산 지연이 발생하고 M6GT가 그룹 4 인증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고객들이 주문을 취소했다. 한편 차량을 인도받은 데이비드 프로펫은 그룹 4 대신 다른 레이스들에 출전했다. 데이비드는 여러 레이스에 출전하며 좋은 성적을 냈고, 그중 1969년 MC GT 크리스탈 팰래스에선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파일:맥라렌 M6GT-1.jpg
캔-암 프로젝트와 포뮬러 원으로 지연된 브루스 맥라렌의 M6GT-1은 마침내 1970년에 완성이 되었다. 브루스 맥라렌의 차량은 데이비드 프로펫의 레이스 차량과 여러 차이가 있었는데, 수동으로 올리는 접이식 헤드라이트와, 인테리어가 다듬어진 조종석, 부드러워진 서스펜션과 고품질 유리섬유 차체 등 여러 차이점이 있었다. 브루스 맥라렌의 M6GT는 빨간색으로 칠해졌으며 번호 OBH 500H로 등록되었다. 이후 해당 차량은 브루스의 자가용으로 사용되었다. 한편 M6GT 프로젝트는 1970년 6월 브루스 맥라렌이 사고로 사망하면서 사실상 중단되었다. M6GT는 맥라렌의 첫 번째 공도용 차량이라는 점에서 상징적인 모델이며 이후 브루스 맥라렌의 꿈은 25년 뒤 맥라렌 F1으로 다시 실현되게 된다.

4. 참고 문헌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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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후에 브루스 맥라렌의 자가용 차량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