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프루기 라틴어: Marcus Licinius Crassus Frugi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제국 로마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제국 |
가족 |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양증조부, 외증조부)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양할아버지, 외조부)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양아버지, 외삼촌) 이름미상의 여성(어머니) 마르쿠스 칼푸르니우스 피소(친아버지) 마르쿠스 푸피우스 프루기 칼푸르니아누스(친할아버지) |
자녀 |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프루기 |
직업 | 로마 제국 집정관 |
임기 | 기원전 1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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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의 집정관.2. 생애
1차 삼두정치가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의 법적 증손자이자, 혈연상 외증손자로, 본래 출신 가문은 칼푸르니우스 피소 프루기 집안 출신이다.친할아버지 마르쿠스 푸피우스 프루기 칼푸르니아누스는 로마 원로원 의원으로, 2대 왕 누마 폼필리우스의 차남 칼푸스를 시조로 둔 칼푸르니우스 일족의 피소 가문 사람이다. 그는 마르쿠스 푸피우스라는 자녀 없는 정치가에게 이름을 받는 형태로 입양되면서, 상속을 위한 입양 절차에 따라 이름을 마르쿠스 푸피우스 프루기 칼푸르니아누스로 개명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코그노멘을 여전히 피소(Piso)로 유지했고, 다시 칼푸르니우스 피소 가문에 본인의 아들을 환속 형태로 보낸 방식으로 칼푸르니우스 피소 가문 사람임을 분명히 했다. 이런 이유로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프루기의 아버지는 마르쿠스 칼푸르니우스 피소라는 이름을 썼다.
아버지 마르쿠스 칼푸르니우스 피소는 기원전 44년 법무관을 지낸 인물로,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적극 지지한 기원전 54년 재무관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의 이름 미상 딸과 결혼해,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프루기를 얻었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프루기의 양부는 혈연상 외삼촌인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이다. 그는 스폴리아 오피마 자격을 갖춘 로마 장군이었지만, 아우구스투스에게 허락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때의 공적으로 로마 제국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황제, 황족이 아닌 장군 자격으로 개선장군이 됐고, 마지막으로 임페라토르라고 개선장병들에게 불렸다.
양부인 외삼촌 부부에게 가문을 이을 자녀가 없어 일찍이 입양되었고, 명예로운 경력을 아우구스투스의 후원 아래 밞은 다음, 기원전 14년 집정관을 지냈다. 발레아레스 제도에 세워진 비문에 따르면 기원전 10년 히스파니아 타라코넨시스 총독을 지냈고, 이후 기원전 9년, 기원전 8년의 2년 동안 아프리카 속주 총독에 재임했다.
이름 미상의 아내와의 사이에서 같은 이름의 아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프루기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