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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르도 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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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투리아스 공상 예술부문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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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cardo Muti (1941.7.28. ~ 현재)
1. 개요2. 생애3.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4. 음반5. 지휘의 특징6. 한국에서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 서곡 중 하이라이트. (베를린 필하모닉 연주, 2009 유로파콘서트)

1. 개요

이탈리아의 지휘자. 1941년 나폴리에서 태어나 안노니오 보토에게 지휘를, 브티넬리에게 작곡을 배우고 프랑크 페라라에게 레슨을 받았다. 베르디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오페라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대가로 알려져 있다.[1]

2. 생애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에서 수학하여 지휘와 작곡을 배웠으나 지휘자로서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음악원 졸업 전 지휘자로 데뷔했고, 귀도 칸텔리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1969년 피렌체 5월 음악제의 음악감독 직을 맡았고, 이후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베르디의 '돈 파스콸레'로 데뷔하였다.[2]

1972년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아이다가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아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1973년 오토 클렘페러의 후임으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가 되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후 유진 오르만디의 눈에 띄어 1975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수석 객원 지휘자가 되었고, 1980년에는 유진 오먼디의 뒤를 이어 상임지휘자가 되었다.

1986년에는 아바도의 후임으로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지휘자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2005년 라 스칼라 극장 단원 및 경영진과의 불화로 절대 다수의 불신임 투표를 받아, 19년간 수행해 온 라 스칼라 극장 음악감독 직에서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된다. 사실 무티는 단상 위의 독재자로 유명했는데, 이에 참다 못한 단원들에게 결국 '당신의 위대한 음악적 성취에도 그곳에 이르는 길은 인간에게 해롭다'라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3]

90년대에는 세이지 오자와, 주빈 메타 등과 함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가 되었고, 빈 필의 명예 단원으로 추대되었다. 2000년대 후반 들어 라 스칼라 극장과의 관계가 멀어진 대신, 빈 필하모닉과의 유대를 더욱 깊이 하고 있다. 2020년대인 지금에도 크리스티안 틸레만, 프란츠 뵐저-뫼스트 등과 더불어 빈 필하모닉의 정기연주회와 잘츠부르크 음악축제에 매년 초빙되는 지휘자로 활약 중이다.

2010년부터는 하이팅크의 후임으로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았으며,[4] 2022/2023년 시즌을 끝으로 13년간 수행해온 음악감독직을 내려놓고, 2023년 하반기부터는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역사상 첫 명예 음악감독(Music Director Emeritus)으로 활동하고 있다.

3.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를 대표하는 지휘자 3M(리카르도 무티, 로린 마젤, 주빈 메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1993년을 시작으로 1997년, 2000년, 2004년, 2018년, 2021년에 이어 2025년까지 총 7회에 걸쳐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를 지휘할 예정이며, 이는 1987년 지휘자 초빙 형식으로 전환된 이후 역대 최다 기록이다.[5] 자잘한 이벤트를 즐겨했던 빌리 보스코프스키, 로린 마젤과는 달리 빈 신년음악회를 '이벤트'성 행사보다는 하나의 '음악회'로 생각하는지 이벤트는 최소화하고 그동안 신년음악회에서 연주되지 않았던 곡들을 발굴하여 포함시키는 등 학구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1부 시작은 왈츠(혹은 행진곡), 2부 시작은 서곡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는것도 무티만의 특징. 오페라가 장기인 그답게 등장하는 해마다 서곡 연주는 빠뜨리지 않고 있으며, 1993년 '인디고와 40인의 도적 서곡', 1997년 주페의 '경기병 서곡', 2000년 '빈의 아침과 점심 저녁 서곡', 2018년 주페의 '보카치오 서곡', 2021년 주페의 '시인과 농부 서곡' 등은 무티의 드라마틱하고도 호쾌한 연주스타일이 잘 드러난 연주다.

등장 초기인 1993, 1997년에는 젊은 시절의 그답게 왈츠, 폴카도 씩씩하고 호쾌한 스타일로 연주했으며 특히나 1997년에는 초연곡을 무려 11곡이나 집어넣어 생소하고 지루했다는 평도 들었다. 그러나 2000년 이후부터는 이전과는 달리 노련하게 빈 필을 리드하며 나름의 빈 왈츠 연주스타일을 확립한 듯 보인다. 60대에 접어든 이후인 2004년 신년음악회부터는 안경을 쓰고 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빈 신년음악회에 지속적으로 초청받는 것을 보면 연주하기 까다롭다는 빈 왈츠 연주도 빈 필의 마음에 든 모양(빈 왈츠에 대한 빈 필의 자부심은 매우 대단해서, 정 아니다 싶으면 가차없이 더 이상 지휘자로 초빙하지 않는다. 클라우디오 아바도,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등 두 번씩 초청 받은 지휘자들이 더 이상 초빙 받지 못한 예들이 있다.).

늘상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시작 직전에 관행적으로 해 온 기념 멘트를 하는 신년음악회의 전통에 충실하다. 특히 새천년을 열었던 2000년, 2004년,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무관중으로 진행한 2021년에는 다소 투박한 영어로 간단한 메세지를 전달한 후 전통의 멘트[6]를 날렸다.(다국어+끝장나는 말빨로 관객들을 홀렸던 로린 마젤을 떠올리지는 말자.)

무티가 80세를 맞이하는 2021년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역사상 처음이자 유일한 무관중 신년음악회로 진행되었다. 무티는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 연주 직전에 직접 마이크를 잡고 브람스, 브루크너, 말러의 혼이 살아 숨쉬는 역사적인 콘서트홀(빈 무직페라인 황금홀)에서 무관중으로 연주할 수 밖에 없는 비정상적인 상황에 대해서 깊은 슬픔과 우려를 표하지만, 음악과 예술의 힘으로 극복하길 바란다는 요지의 메세지를 전달한 후, 전통적인 멘트인 "Die Wiener Philharmoniker und ich wünschen Ihnen!! Prosit Neujahr!!" 그리고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로 짧고 굵은 한마디 "Grazie" 를 남긴 후 연주에 임했다. 이 날 마지막 앵콜 라데츠기 행진곡 연주에서는 예년과 달리 스네어 드럼의 도입부 없이 바로 시작했다.[7]

그리고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탄생 200주년인 2025년의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 지휘자가 리카르도 무티로 발표되면서, 그는 총 7번째 지휘를 맡게 되었다. 요한 슈트라우스 1세 탄생 200주년이었던 2004년 신년음악회에 이어 그 아들의 탄생 200주년 신년음악회도 모두 무티가 맡게 되면서, 그가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에서 가지는 위상이 얼마나 큰 지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4. 음반

라 스칼라 극장 음악감독을 맡기 이전인 1970년대부터 필하모니아 관현악단 등과도 오페라 녹음을 하였다. 아이다, 카풀레티가와 몬테키가를 위시한 베르디, 벨리니 녹음 들이 있다. 이외에도 모차르트, 바그너 등에서도 훌륭한 평을 받는다. 특히 베르디는 현존하는 지휘자 중에서는 최고 중 한명이라는 평이다. 베토벤, 브람스, 스크리야빈 교향곡 전곡(필라델피아) 등 교향악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1997년 신년음악회는 지금은 사라진 EMI에서 발매되었는데, 이는 EMI에서 처음으로 발매한 신년음악회 음반이다. EMI는 무티의 2000년 신년음악회도 발매한 바 있다. 무티는 오랜기간 EMI와의 관계를 유지해왔는데 90년대 중반 EMI에서 저가시리즈인 레드라인 시리즈를 통해 무티의 EMI녹음 대부분을 풀어버리는 만행을 저지른 바 있다(본의아니게 레드라인 시리즈를 대표하는 지휘자로 널리 인식되어버렸...) 최근에는 시카고 심포니의 자체 레이블인 'CSO-Resound'를 통해 시카고 심포니와의 녹음을 발매하고 있다.

5. 지휘의 특징

스칼라 좌의 음악감독을 맡은 만큼 이탈리아 오페라 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오페라에 능한 지휘자이며, 교향악 음악도 오페라처럼 소리를 이끌어내고 극적인 효과를 내는데 탁월하다.

그의 지휘는 매우 정교하다는 평이 높다. 특히 지휘를 마치 야전군 사령관이 하듯이 매우 힘차게 하는데 이것이 바로 그의 개성이자 메리트이다.[8]

무티의 바톤 테크닉은 현존 최고라고 볼 수 있으며, 그 정교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현재는 젊은 시절에 비해 간결해진 동작을 보여주고 있지만, 80세가 넘은 고령임에도 꼿꼿이 서서 절도있게 지휘하는 모습에서는 젊은 지휘자 못지 않은 박력이 느껴진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나폴리 열혈남아.[9]

이러한 지휘 성격으로 인해 음반보다는 실제 연주회에서 진가를 느낄 수 있는 전형적인 실황형 지휘자이다. 실제로 그의 음반은 베르디 외에 딱히 베스트라고 선택되는 것들이 없는데, 정작 실연에서의 무티는 악단을 완벽하게 통제하면서 놀라운 연주를 들려준다.[10]

6. 한국에서

1985년에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1996년과 2004년에 라 스칼라 필하모닉과 내한하였고, 2016년에는 시카고 심포니와 내한하였다. 이전에도 2013년에 내한할 계획이었으나, 급성 독감에 걸려 대타로 로린 마젤(!)이 지휘하였다.

2004년 라 스칼라 필하모닉과는 9월 4일, 5일 이틀간 공연했다. 96년에 이은 8년 만의 내한이었으며, 첫날 공연은 고양 어울림누리 개관 공연으로 열렸다. 세계 탑 클래스의 지휘자와 악단이 서울이 아닌 지방을 먼저 찾은 경우는 흔치 않은데, 개관 행사가 중요하긴 중요한 모양... 고양에서는 로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 베르디의 '멕베스' 중 춤곡과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을 연주하였다.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5번과 브람스 교향곡 2번을 연주한 둘째날 예술의 전당 공연보다 고양에서의 공연이 더 무티스러운 레퍼토리로 채워졌고, 실제로 첫날 공연이 더 훌륭했다. 게다가 첫날의 앙코르로 무티의 최고 장기 중 하나인 베르디 오페라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서곡을 깜짝 연주했는데, 안 그래도 차이코프스키 5번으로 이미 흥분 상태였던 객석을 확인사살해 버리는 놀라운 연주였다. 공연 끝나고 로비에서는 '아니 불을 확 질러버리고 끝내버리면 어떡해!!' 등의 호평이 쏟아졌다.[11]

2016년 초 시카고 심포니와의 내한에서도 둘째날 공연에서 베르디의 '나부코' 서곡을 앙코르로 연주해서 예당 콘서트홀을 뒤집어놨다(베르디 연주로 열광하는 객석을 보는 흐뭇하게 바라보는 취미가 있는 듯하다... 내가 곧 베르디이니라... 뭐 이런 식.). 이때에도 첫날 베토벤 교향곡 5번과 말러 교향곡 1번 연주에서는 그 해석과 관련하여 많은 논쟁을 낳기도 했다. 프로코피예프, 힌데미트, 차이코프스키로 채워진 둘째날 공연이 오히려 무티와 시카고 심포니 조합의 케미를 잘 보여주는 연주로 호평받았다, 앞서 언급한대로 앙코르의 '나부코' 서곡은 차이코프스키 4번에서 시카고 금관에 취해있던 객석에 결정타를 날렸으며 수차례의 커튼콜 끝에 쏘쿨하게 손 한번 흔들어주고 퇴장했다.

이외에도 한국인 성악가들은 이탈리아 성악가들에 비해 실력과 열정이 뒤지지 않는다는 등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정경화와의 친분도 많이 작용한 것 같다. 내한 공연에 왔을 때 정경화가 무대 뒤로 찾아오면 기쁘겠다는 말도 하는 걸 보니...

2016년 5월에 경기 필하모닉[12]과 협연을 가졌다. 오케스트라의 이름값에 비해 표값이 비싸서 말이 좀 있었지만 실제 공연 후에는 납득된 모양.

2021년 11월에는 14일부터 17일까지 빈 필하모닉과의 내한공연을 진행하였다. 당초 내한 계획은 16일까지만이었으나, 18일 이후의 중국 투어가 취소되면서 17일 부산 공연이 추가되었다.[13] 14일(서울 세종문화괴관)과 17일(부산 벡스코) 공연에서는 모차르트의 교향곡 35번 "하프너",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 "더 그레이트"[14]를, 15일(대전 예술의전당)과 16일(서울 예술의전당) 공연에서는 슈베르트의 교향곡 4번 "비극적", 스트라빈스키의 디베르티멘토 "요정의 입맞춤", 멘델스존의 교향곡 4번 "이탈리안"을 연주했다.[15] 앵콜로는 14일과 17일 공연에서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황제 왈츠를, 15일과 16일 공연에서는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 서곡을 연주하였다. 이번 내한은 코로나-19 이후 첫 대형 오케스트라의 내한이기도 하여 큰 관심을 모았다.

[1] 2020년대까지 살아 있는 지휘자들 기준으로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최고 거장이 무티라면, 19세기 독일 오페라의 최고 거장은 크리스티안 틸레만으로 꼽히는데, 이 둘 모두 오페라와 콘서트를 겸하는 악단의 음악감독직을 오랫동안 수행했으며, 오페라와 콘서트를 모두 빡빡한 스케쥴로 소화하는 빈 필하모닉 역시 무티와 틸레만을 매우 선호한다. 두 지휘자 간 접점은 거의 없지만, 유사한 점이 군데군데 보이기도 한다.[2] 갑자기 이른 새벽 일면식도 없던 카라얀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출연 제의를 하여 깜짝 놀랐다고 한다.[3] 당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공연 직전에 단원들이 보이콧으로 무대에 오르지 않자, 무티가 직접 피아노 반주를 하며 공연을 마친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4] 하이팅크는 바렌보임이나 무티 등과 달리 고령 등의 이유로 시카고 심포니에서 음악감독 대신 수석지휘자직을 수행했다. 그래서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홈페이지에 따르면 전임 음악감독들을 소개하는 게시물에서 하이팅크는 빠져있다. 하지만 바렌보임과 무티의 재임기 사이의 공백 5년간 시카고 심포니의 형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수장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5] 초빙 형식 전환 이전의 기록을 합치면 빌리 보스코프스키가 25회로 가장 많고, 두 번째는 13회를 기록한 클레멘스 크라우스, 그 다음이 11회인 로린 마젤이다. 다만, 앞의 둘은 모두 1987년 이전의 기록이며, 로린 마젤의 경우 초빙 형식으로 전환된 이후의 지휘 기록은 4회(1994, 1996, 1999, 2005)이다.[6] Die Wiener Philharmoniker und ich wünschen ihnen, Prosit Neujahr![7] 스네어 드럼 도입부 없이 라데츠키 행진곡을 연주한 예로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한 1989년과 1992년 두 번 모두가 그랬고, 무티 자신의 연주회에서는 1993년 첫 신년음악회가 그러했다.[8] 사실 리카르도 무티가 체격이 다부지다 보니 그런 면도 있다.[9] 또한 나이에 비해 비교적 동안인 외모도 한몫한다. 비슷한 동년배인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할 때 지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것을 비교하면, 정말 80이 넘은 노장 지휘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정정하다.[10] 향후 무티가 내한하게 되면 꼭 한번 가보자. 특히나 예술의전당 합창석에서 보게 된다면 음악 뿐 아니라 그의 칼같은 바톤 테크닉을 코 앞에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11] 그러나 1년 후 이렇게 케미 터지던 라 스칼라에서 거의 해고에 가깝게 사임하게 된다...[12] 공히 한국 최고수준의 오케스트라라고 인정받는 서울시향이나 KBS 교향악단이 아닌 경기 필하모닉이란 점에서 화제가 되었다. 경기도문화의전당 측에서 초청에 대단히 공을 들였다고 한다.[13] 2019년 크리스티안 틸레만 및 안드레스 오로스코-에스트라다가 지휘를 맡은 빈 필하모닉 내한공연을 기점으로 빈 필하모닉 내한공연이 유럽 현지 공연과 동일한 프로그램 및 거의 동일한 퀄리티로 진행되고 있다. 유럽 현지에서마저도 클래식 음악의 수요가 점차 줄면서 인터넷 매체나 해외 순방 공연으로 수익을 더 확보해야 하는 악단이 늘었는데 빈 필하모닉도 완전히 예외는 아니다. 201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한국에서 클래식 음악 티켓 수요가 생각보다 괜찮다는 반응이 늘어나면서, 2021년 빈 필하모닉 내한 역시도 중국 투어 취소에 따른 여파를 한국 투어 연장으로 일부 충당하기에 이르러, 한국 클래식 감상 수요도 생각보다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14] 이 교향곡의 번호에 대해서는 견해 대립이 있으나, 빈 필하모닉 측에서는 개정 도이치 카탈로그에 따라 기존에 7번으로 분류되던 교향곡을 배제하는 학설을 받아들여, 미완성 교향곡을 8번이 아닌 7번으로, 더 그레이트 교향곡을 9번이 아닌 8번으로 표기하고 있다.[15] 애당초 16일 공연은 초청공연으로 기획되었으나, 공연 당일 오전 잔여좌석을 일반 관객에게 개방하여, 결과적으로는 4일 공연 모두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