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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스: 1999/스토리/챕터 7/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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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줄거리
2.1. 대각선의 비밀2.2. 파란색과 회색2.3. 의사봉을 내려놓다2.4. 증명의 시작2.5. 사차 방정식2.6. 오만과 편견2.7. 미노타우로스의 미궁2.8. 델포이 신탁2.9. 한계 밖2.10. 지구로 귀환2.11. 바위가 떨어지는 순간2.12. 콩 파티2.13. 예술 물결2.14. 방 안의 모래폭풍2.15. 개척자들2.16. 수문을 열다2.17. '폭풍' 연설2.18. 모든 것은 수이다2.19. 길의 갈림길2.20. 그리스 비극2.21. 오마주의 대가2.22. 기도하는 사람2.23. 로제타석2.24. 역사의 순환2.25. 최초의 원2.26. 거울과 커튼2.27. 술의 신을 위한 찬가2.28. 두개의 숫자2.29. 우산과 매듭2.30. 그리고 지금, 커튼콜

1. 개요

리버스: 1999메인 스토리 챕터 7의 줄거리를 다루는 문서.

2. 줄거리

2.1. 대각선의 비밀

먼 과거, 섬의 해변가에서 37이 사람들이 왜 무리수를 싫어할까 라며 혼잣말하고 있었다.

37의 어머니인 77이 그녀에게 무리수가 싫냐고 묻자, 37은 조금이라고 답한다. 셀 수 있는 유리수완 달리 영원히 셀 수 없단 것이 그 이유였다. 77이 37이 좋아하는 원에도 무리수가 있지 않냐고 하자 37은 π는 구하는 방법도 알고, 계산에도 넣을 수 있어 특수하다고 한다. 그런 소수의 무리수를 제외한 나머지는 계산도 불가능하여 수의 축만 차지한다고 말한다. 77은 웃으며 37에게 무리수를 아직 잘 모르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파일:7장정사각형.png
77은 모래사장에 길이가 같은 네 변, 교차하는 두 대각선을 그린다. 그녀는 우리는 무리수에 관한 그 어떤 지식이 없어도 귀류법으로 무리수임을 증명할 수 있다고 한다. 이에 37은 피타고라스의 정수비를 바탕으로 만든 수론이 미덥지 않다고 말한다. 77이 그것에 동의하며 이것이 발견되면서 정수비로 세워진 고전 왕국이 무너졌고, 우리 발밑에 가늠할 수 없는 신비한 왕국이 있다는 걸 증명해 줬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왕국을 여는 열쇠는 정사각형의 대각선에 숨어있다고 한다.

37은 비로소 우리의 인식에서 벗어나는 숫자는 언제나 존재한다는 무리수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 그녀는 무리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면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있으리라 믿게 된다. 하지만 섬사람들이 무리수를 싫어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듣지 못해 이를 다시 묻는다.

그러자, 77의 얼굴이 깨진다.
엄마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저 기억의 끝 장면만 떠오를 뿐이다. 부드럽게 휘어진 입가, 차분한 표정... 그것은 연민에 가까웠다.
37의 머릿속에서 어린 시절부터 머리 위로 폭탄이 떨어지는 기억까지의 순간의 주마등이 쉴새없이 지나가고, 그녀는 섬의 어느 객실에서 눈을 뜬다. 벌떡 일어나 앉은 37은 바로 옆의 소피아에게 자신이 얼마나 누워있었는지 물었고, 소피아는 일주일 동안 의식이 없었다고 답한다. 37은 그 즉시 더 쉬어야한다는 소피아의 만류에도 시간이 없다며 서둘러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녀는 우리의 '원'이 깨졌다며 빨리 6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 오솔길 - 상징 동물 #====
???: 콩을 먹지 말라. 빵을 손으로 뜯지 말라. 흰 수탉을 보면 멀리해라. 이제 우리도 학파의 계율 몇 가지는 잘 숙지하고 있구나.
???: 이런 이야기를 나눈 지 정말 오랜만이네. 시간은 참 빨리 흘러. 이 늙은이의 머리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어…
???: 촛불을 켜려면 새벽까지 기다렸어야지. 태양이 속아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늦췄을 테니 말이야. 그랬으면 우리가 더 많은 시간을 이야기할 수 있었을 텐데.

◉ 말도 안 돼

???: 당연한 반응이야. 옛날 사람보다 자연의 법칙을 더 잘 아는 네가 촛불과 일출을 어떻게 연관 지을 수 있겠니. 그런데 말이다, 아주 오래전 사람들은 겪은 일들을 이렇게 생각했단다.
???: 추수 축제에 나팔을 채우니까 나무에서 열매가 맺히고, 들판에는 수확할 곡식으로 물결쳤네?
???: 밤에 성냥을 켜니 달이 빛을 내네?
???: 이렇게 세상을 이해하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야. 물론 그 당시에는 실수가 있었고, 잘못된 원인에 기인한 현상도 있고, 잘못된 추론에서 비롯된 이론도 있지.
???: 그렇게 '상징'은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수단이 되었단다.

◉ 예를 들면?

???: 꽃은 축복과 수확을 상징하지. 우로보로스는 영원한 순환을, 독수리는 기민함과 지혜를, 흙은 안정감과 보호를 상징한단다.
???: 조금 더 간단한 것들을 볼까. 원은 보호를, 삼각형은 안정을, 삼중나선은 변화, 그리고 정신과 육체, 영혼의 통합을 상징하지.
???: 시간이 지나면서 비슷한 것들은 연관되어 점점 더 많은 상징이 만들어졌단다.

◉ 너무 모호해

???: 원인과 결과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이 관련이 있고 어떤 것이 관련이 없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지. 만약 결과가, 우리가 예상한 것과 다르다면 그 상징은 틀린 것이지.
???: 다시 말하자면, 물리적 형태가 잘못된 게 아니야. 물리적 사물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아. 잘못된 것은 그것에 부여된 의미와 개념이지.
???: 물건은 물건일 뿐, '본질'은 변하지 않아. 성냥이 달의 발광체가 아닌 성냥인 것처럼, 동물은 동물일 뿐이고, 원과 삼각형은 도형일 뿐이지...
???: 그리고 '너'도 '너'일 뿐이고.

2.2. 파란색과 회색

전도자의 강당에서 버틴은 이곳이 평소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그때, 888이 버틴에게 이번 질의에 그녀와 동료의 운명이 달려 있다며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이들은 섬의 좌표 누설 사건, 버틴 측과 재건 측이 야기한 섬의 피해에 관해 단체 표결을 진행하려던 참이었다. 210은 교인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 손님들이 우리에게 '선물'을 가져다준 건 분명하다며 재단과 재건의 손, 둘 중 어디를 믿어야 하냐는 것이다. 이후 그가 몸을 반쯤 숙이고 손으로 버틴 쪽을 가리킨다.

버틴은 진리의 돌 앞에서 맹세컨대, 자신은 이번 누설에 관해 아는 바가 없다고 말한다. 인간 군대에 정보를 누설하지도 않았고 재단도 영토 분쟁을 적극적으로 중재하고 있다고 한다. 888이 버틴이 상황을 재단에 일일히 보고하고 이후 그 정보의 행방을 모르는 게 맞는지 묻자 버틴은 이를 인정한다. 210은 재단이 인간 친화적 조직이라며 그들을 의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외친다. 게다가 우리보다 7년이나 뒤쳐진 조직에게 '유출'에 대항할 지식과 경험을 구해야할 이유도 없다고 한다.

교인들이 술렁이자 210은 그래도 성급하게 조약돌을 던지진 말라며 재건의 손을 다시 보자고 한 뒤 손으로 아르카나 쪽을 가리킨다. 210은 아르카나에게 성지 입구에 그녀의 신도들이 무더기로 사망한 건에 대한 설명을 요구한다. 그는 그들이 수학 수업 때문에 미쳐 진리의 문 앞에서 머리를 박고 죽어야만 했던 거냐고 반쯤 농담으로 말을 던지는데, 아르카나는 바로 그거라고 답한다. 그녀는 자신의 신도들이 지식 습득 쪽으론 부족한 게 사실이지만 학파와의 협력에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한다. 학파가 무시하면서도 여전히 의존하고 있는 현상 세계에서 아낌없이 물자를 지원하고 있다고. 그러더니 대뜸 여기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한다. 재판관인 6은 이를 허락한다. 아르카나는 그의 허락에 감사 인사를 한다.

그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곳에 방문하기 전, 어느 젊은 예술가가 자신에게 들려준 '원' 에 관한 오래된 전설이었다.
태곳적에 처음으로 지혜를 가진 영혼이 어둠 속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는 이 세계에 두려움을 느꼈어요. 자신보다 훨씬 더 크고 강한 자연 때문에요. 자연 속에서 그의 자아는 좀처럼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보잘것없었죠.
반항심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주위에 마력의 원을 그렸고, 그것으로 자신과 외부 세계를 구분 짓고자 했습니다.
가장 원시적인 주술이 탄생한 거죠. 피조물은 내재된 영성으로 외부 세계 현상의 압박에 저항하기 시작한 겁니다.
투쟁의 과정에서 피조물은 자신의 한계를 더 명확하게 깨닫게 됩니다.
이게 바로 최초의 '원'이에요.[1]
아르카나
이어서 아르카나는 원이 우리를 지켜주었고, 지금까지도 원이 주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재밌는 건 인간 자신의 존재, 한계와 증명 모두 이 원에 의존하여 확립됐다는 것이다.

그때, 갑자기 37이 강당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다. 버틴을 비롯한 교인들 모두가 놀란다. 6이 37에게 무슨 일인지 묻는다.
섬이... 우리 섬이... 아파요.
37
그녀의 한 마디에 모두가 침묵하고 있는 와중에 강당 천장에 무언가가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그 쿵소리는 쉴새없이 들리게 된다. 누군가 우박이라도 내리는 건가 하고 소리치니, 37을 따라 강당에 들어오진 못하고 밖에 서있던 소피아가 아브락사스들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에 놀란 버틴은 자신의 크로노그래프를 들여다 본다.
...'폭풍우'예요.
이 시대의 '폭풍우'가... 도래했습니다.
버틴
====# 오솔길 - '폭풍우' 피난 안내 #====
긴급 안내: 개인의 안전을 위해 즉각적인 생명의 위협이 없는 조사원은 지금 당장 하던 일을 멈추고 이 보고서를 읽으십시오.
타임키퍼가 '폭풍우' 24시간 경보를 발령했으니, 모든 조사원은 안내를 받은 후 진행 중인 임무를 포기하고 본부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폭풍우' 피난시 주의사항:
· 규정에 맞는 개인 물품을 보관하기 위해 공간을 우선적으로 확보해 두었으나, 본부의 공간은 제한되어 있으므로 미등록 인원 또는 20kg을 초과하는 개인 물품과 함께 본부로 돌아오지 마십시오. 재단 구성원이 아닌 조사원 가족도 무관한 인원에 포함됩니다.
· 특수한 상황이 아닌 경우, 재단의 기본 원칙을 지키기 위해 미등록 인원 또는 20kg을 초과하는 개인 물품과 함께 부득이하게 본부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경우, 먼저 가장 가까운 발성 기능과 다이얼(최소한의 원형 가동 부품 및 발성 기능이 있는 표준 규격, 예를 들어 라디오가 있는 자동차)을 가지고 있는 장치를 통해 본부에 연락해 명확한 답변을 받으십시오. 재단의 기본 원칙은 〈재단 조사원 행동 수칙〉 제1장 제1~3절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폭풍우 증후군의 감염은 현재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재단 내부 안전상의 이유로 귀환자는 반드시 공통된 검사를 받아야 하며, 감염 정도가 과도할 경우 행동을 제한하고 '폭풍우'가 끝날 때 까지 전용 격리 구역에 수용됩니다.
· 도움이 필요한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을 경우, 〈파견 임무 대피 지침〉에 기록된 다양한 지원 방법을 사용할 수 있으며, 규정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지원 신청의 경우 최대한 빨리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2.3. 의사봉을 내려놓다

지금 '유출'이 일어난 거냐는 교인의 질문에 버틴은 설명을 시작한다. 정확히는 24시간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것이고, 각 시대의 '폭풍우'는 완충 기간이 있다는 것이다. 폭풍우 증후군은 임계점에서 점점 전 세계로 확산되는데, 증상이 매번 달라 패턴을 완전히 파악하진 못했다고 한다. 24시간 전에 '폭풍우'를 예측할 수 있게 된 건 라플라스 연구소의 협조 덕이라고.

교인들은 혼란에 빠진다. '유출' 관측을 사명으로 여기는 이들에게 지금 상황은 예상에서 한참 벗어난 일이었다. 이에 888이 이 섬은 '유출'의 영향을 받지 않고 계속해서 의제의 결론을 내려야하니 자리에서 벗어나지 말라고 소리친다. 그리고 37을 부르고 아무나 담요를 가져다달라고 요청한 뒤, 42에게 소피아와 함께 아브락사스의 상황을 확인해 보라고 지시한다.

강당이 질서를 되찾아가던 그때, 210이 대뜸 굳이 표결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한다. 그는 '유출'이 곧 닥쳐오면 영성의 조수가 흘러 넘칠 것이고 현상 세계의 불쾌한 것들은 모조리 하수도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우리는 자질구레한 건 버리고 다시 '본질'을 연구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37이 이번은 다르다고 소리친다. 이 섬은 병에 들어 현상 세계 속으로 추락했다는 것이다. 곧 영성의 조수가 우리의 위로 넘쳐흐르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은 곧, 섬도 '유출'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뜻이다. 교인들의 반발이 거세진다. 37은 아페이론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에 888은 37이 외부인을 성지로 들여 아페이론을 노하게 했다고 하자 37이 놀란다. 888은 물론 이건 독단적인 추측이라며 재건도 허락 없이 성지에 들어갔다고 덧붙인다.

888은 교인들에게 섬이 '유출'에 잠길 거란 증거가 없다고 말한다. 과거의 사건은 의문점이 많고, 학파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줬기 때문에 당장 우리는 계속 따져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재단과 재건의 처리는 그 다음이라고 한다.

888이 집회를 원래대로 돌리려는 노력이 무색하게도 소피아가 강당으로 들어와 교인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리게 된다. 그녀는 진리의 전당에 발을 들인 것을 사죄하면서도 아브락사스의 머리에서 물감이 떨어지는 등, 상태가 이상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같이 해변가로 나간 42에 대해서도 말하려던 찰나, 42가 소피아를 넘어 미친듯이 분노하며 강당 안으로 뛰어든다. 그의 얼굴에서도 알록달록한 물감이 떨어지고 있었다.
진리 같은 건 없었어, 초월도 없었지!!! 모든 건 다 가짜고! 그림자고! 불빛이고, 부스러기다!
누구도 허무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 이 섬도 모순 속에서 소멸하고 말 거야!!!
42

간신히 42를 제압한 뒤, 버틴은 교인들에게 이것이 폭풍우 증후군이며 37의 말대로 섬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 이들의 '유출' 면역 능력이 약해진 것이라고 외친다. 한 교인이 지금까지 그런 적이 없었다고 하자 210은 평생 보라색 소를 본 적이 없다 해도, 그것으로는 보라색 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다른 교인은 외부인이 섬에 온 이후로 안 좋은 일이 끊이질 않는다며 재단과 재건 둘 중 하나는 이 상황을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자 누군가 37과 '0'이 성지에서 뭔가를 저질러 아페이론의 노여움을 산 거라고 한다. 37은 아무말도 하지 못하지만 버틴은 재건 때문이라며 그들이 석제 팔찌의 협정을 어긴 것을 따지려고 하는데 한 교인이 버틴이 지닌 표본 추출 장치를 언급하며 재단이 여기서 뭘 찾으려고 했던 건지 묻는다. 버틴은 대답을 얼버무린다. 그때, 아르카나가 웃기 시작한다.
좋아요, 좋아요 버틴.
대립은 더 커지고, 투쟁은 더 격해지죠.
당신이 어떻게 바뀌게 될 지 궁금하군요.
아르카나
혼란이 격해지려는 강당을 6이 석제 종을 울리며 중재한다. 그는 변론을 이만 중단하기로 한다. 지금 하는 논의는 전혀 의미가 없고 섬엔 처리해야 할 더 시급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재단과 재건에 대한 건 본인이 직접 결론을 내리겠다고 선언한 뒤, 지금 당장 양측 모두 섬에서 떠날 것을 명령한다. 숫자 6은 조화를 의미했으나, 이번엔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버틴은
[ 6의 판결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
그녀는 이것이 납득할 만한 결론이라 생각한다. '폭풍우'에 관한 논의, 비대팅 핵종 R에 대한 샘플 채취, 후속 조사를 위한 단서는 이미 충분히 마련되었다. 이보다 중요한 건 이들과 협력하진 못해도 이들이 재건 쪽으로 넘어가는 건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버틴은 이것이 먼저 표결할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한다.

버틴이 일어서서 동의한다고 말한다. 이에 아르카나가 버틴과 같다고 말한다.

[ 더 지켜보기로 한다. ]
그녀는 섣불리 판단했다간 막심한 손해를 낳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폭풍우'에 관한 교류가 이제 막 시작되었고, 동굴의 비밀도 밝혀지지 않았으며 재건의 수장이 이곳에 있었다. 버틴은 그녀가 이 결과를 받아들일지, 그리고 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온 건지 생각한다. 버틴은 이건 소리 없는 제로섬 게임이며 먼저 답하는 쪽이 아웃이라고 판단한다.

아르카나가 모든 동족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말을 꺼낸다. 이에 버틴이 그 판단에 동의한다고 말한다.

아르카나는 다만 걱정이 든다며 자기와 버틴이 떠나고 나면 당신들은 우리의 원조가 없어도 괜찮은지 묻는다. 6은 우릴 지켜주는 원이 타격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이건 현상 세계의 풍파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후 그가 42의 이마에 손을 얹고 주문을 외더니, 42가 멀쩡히 깨어나게 된다. 버틴은 마도술로 폭풍우 증후군을 잠재웠단 사실에 경악한다. 6은 42나 이 섬이나 지식의 정화가 필요한 것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번 일은 원만하게 해결될 것이고, 자신의 결단도 변하지 않을 거라 장담하며 아르카나에게 이해해주기를 부탁한다. 아르카나는 안될 이유가 없지 않냐고 하지만 자기들도 출발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르카나가 버틴에게 이에 동의하는지 묻자 버틴은 침묵한다.

6은 이들에게 철수하는 데 두 시간을 주기로 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번 사건의 결론이자 아르카나와 나눴던 이야기에 대한 대답으로 이야기 하나를 인용하고 싶다고 말한다.
파일:7장6연설.png
6은 자신도 그 원에 관한 전설을 들어본 적이 있지만 그 뒷이야기가 더 있다고 말한다.

그 이야기 속의 사람들은 자연을 두려워하지만 우리의 선조는 자연을 향해 나아갔다고 한다. 자연도 그 숭고함으로 우리를 받아들인 결과 완전무결한 융합이 이루어졌고, 원은 더 이상 대립과 대항을 상징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아폴론의 별의 계시를 받아 지식의 승화와 영혼의 공명을 이루어 냈기 때문에 두려움을 극복하고 만물의 형식과 본질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고전적 인간'이었다.
화해의 용기와 평화의 결심, 헌신의 정신은 저항과 의심보다 더 보잘것없는 것이 아닙니다.
회의를 마칩니다.
6
6이 자리를 떠나려던 그때, 37이 기다려달라고 외친다. 그녀는 자기가 우리의 원을 고치겠다고 말한다. 888의 말대로 본인이 아페이론의 노여움을 샀으니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다시 성지에 가서 아페이론의 시험을 통과하고 과오를 만회해 보이겠다고 약속한다. 6이 마지막으로 그 의식을 통과한 게 3세기 전이라며 37에게 그 시련 말고도 섬을 정화할 다른 방법이 있는 건 알고 있는지 묻자 37은 긍정한다. 이어서 6이 그 시험에서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지도 아는지 묻자 마찬가지로 긍정한다. 마침내 6은 이를 허가하기로 한다.
====# 오솔길 - 폭풍우 증후군 조사 기록 #====
이번 폭풍우 증후군은 크게 유화의 변형과 투쟁의식 강화로 요약할 수 있으며, 폭푸웅 증후군의 심각성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


표현주의적인 형태의 유화 변형이 온몸에서 나타나며 제어할 수 없다. 동시에 감정이 극도로 예민하고 쉽게 화를 내는 이상 행동이 나타나며, 이상 행동은 다음을 포함하나 이에 국한되지 않는다.
· 단어 발음¹ 을 바로잡기 위해 치명적 무력 사용
· 가족 단위로 독립 민족임을 선언하고 건국 선포
· 자신의 유화 변형 색깔에 따라 당파를 나누고 색깔이 다른 개체 박해
......

아테네
유화의 변형 증상은 얼굴에만 나타나며 회복 사례는 소량 있으나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공격성 강화, 특히 올리브 나무² 를 보았을 때 강한 파괴 충동을 일으킨다.
광장 곳곳에서 전쟁 발발 여부를 묻는 민주적 표결이 여러 차례 진행되었고, 결국 표결에서 둘로 갈라져 전쟁이 시작됐다.

카이로
유화 변형 증상은 얼굴의 일부 기관에 국한되며 인체에 미치는 실제 영향은 경미하여 무시할 수 있다.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주로 욕설의 증가로 나타난다.
피해가 컸던 현지 군은 피라미드를 전시 참호로 개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
......

각지 조사원이 보내온 정보에 따르면 이 '폭풍우'의 임계점은 빈이며 임계점과 물리적 거리가 가까울수록 폭풍우 증후군이 심각하다.

¹ 예: 오스트리아 액센트가 아닌 독일어 사용자는 오스트리아인의 공격을 받게 된다.
²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는 평화에 대한 보이콧이다.

2.4. 증명의 시작

강당 밖으로 나온 버틴에게 소네트가 이번 '폭풍우'의 임계점이 빈이라는 본부의 통보를 전달한다. 이후 이번 폭풍우 증후군에 대해 설명하고, '폭풍우' 발생 원인이 1929년과 유사하게 재건이 국제 정사를 뒤흔들어 현시대의 붕괴를 가속화한 것이라고 말한다.
파일:7장강당앞풍경.png
섬의 하늘을 본 버틴은 시대의 히스테리가 이 섬까지 번지게 되었단 걸 느낀다. 다행인 건, 그녀의 동료들은 멀쩡하단 것이었다.

일주일간 지하 감옥에 머물면서 온갖 연금술 재료를 챙겨둔 레굴루스는 가까스로 '폭풍우' 면역 지역을 찾아냈더니 그게 갑자기 쓸모없어졌다는 것에 매우 황당해한다. 버틴은 쓸모없게 된 게 아니라 조금 약해진 거라며 정정한다. 폭풍우 증후군의 영향을 받은 건 해변뿐이고, 강당 주변 구역은 아직 안전하단 것이다. 이에 릴리아가 그 범위가 줄어들지 아닐지는 모르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버틴은 이 섬 전체에 거대한 마도술 주문이 걸려 있는 것 같다며 섬이 약해진 건 그 주문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6이 단체 정화 의식을 준비하는 것 같고, 37도 시련 의식 이야기를 꺼낸 것으로 보아 학파에게도 대응 방법은 충분히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APPLe이 말하길, 아페이론 학파의 경우 전수되는 진리는 이성적인데 신봉하는 교리는 종교적이라 그들에게 계승되는 마도술은 후자와 연관 됐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릴리아는 그러는 한편 우리가 걱정된다고 한다. 그녀는 아르카나가 먼저 철수할 시간을 달라고 했는지 물었고, 버틴은 긍정하며 6이 두 시간을 줬다고 답한다. 크로노그래프를 확인한 버틴은 카운트다운이 20:00이 되면 반드시 섬을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전까지는 버틴 손목의 팔찌도 여전히 작동할 터이다.

상황 파악을 완료한 릴리아는 2시간 안에 계획을 실행해야겠다고 말한다. 혼자 떨어져 있던 탓에 정보를 받지 못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레굴루스가 이에 대해 묻자 소네트가 답 해주려고 하던 그때, 37이 이들 앞에 불쑥 나타나 다들 어디 가는 거냐고 묻는다. 소네트는 흠칫 놀라고 버틴은 태연하게 어떻게 떠날지 논의 중이었다고 답한다. 레굴루스도 이에 합세해 버틴이 자기 여행가방 안에 우리를 넣고 에게해를 건널 생각이었다고 말한다. 37은 이를 진지하게 듣고 해변 북쪽의 고지대에서 남쪽으로 다이빙하면 된다고 추천한다.

37은 입수하기 좋은 장소를 찾아줄 테니 버틴이랑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한다. 버틴이 이해하지 못해 되묻자 유일한 0으로서 자기랑 다시 아페이론을 만나러 가는 거라고 답한다.

마르타가 소피아에게 37한테 안 가는지 묻는다. 소피아는 모르겠다며 37이 그 시련을 받으러 가는데도 자기는 전혀 도움이 안된다고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기도 뿐이라고 한다. 마르타가 37은 진리의 보살핌을 받기 때문에 아무 일 없을 거라며 안심 시키지만 소피아는 37도 결국 다치고, 죽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마르타가 학파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아페이론의 시험이 뭘 의미하는 지를 모른다고 말한다.

우리는 추측을 제시하고 증명을 가다듬을 순 있지만, '본질'의 영역에선 그 무엇도 단언할 수 없기 때문에 신전 앞에 엎드려 질문을 하고 동굴의 울림으로부터 '옳다' 혹은 '그르다'라는 답을 얻는 것이라고 한다. 한 사람의 본질의 숫자를 검증하는 거나, 일어난 일의 진위를 검증하는 건 쉽지만 아페이론의 시련은 달랐다.
"시험에 통과한 사람은 모든 것을 초월하는 진리를 얻는다."
"하지만 실패하면 가장 무시무시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소피아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것에 손대려는 인간은 화를 면할 수 없기에 우리는 경외심을 갖고 영혼이 육체에 맞도록 하고, 만물이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게 해야한다고 말한다.
'무한'은 우리가 발을 들일 수 없는 영역이에요. 그건 오래되고 신비한, 말할 수 없는 존재에게만 속하는 겁니다. 우리는 그저 받들고, 기도하고, 숭배할 뿐이에요.
소피아
지금 37이 그 문을 두드리고 초월적인 진리를 나눠달라고 간청하는 것이었다. 만약 그녀가 실패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소피아 본인도 37을 대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생각했지만 결국 그 일은 37밖에 할 수 없단 걸 깨달았다고 한다.

소피아가 37의 걱정을 하며 흐느끼고 있는 와중에 37은 버틴 일행의 앞에서 한 번의 수고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좋다고 떠든다. 시험에 통과하면 아페이론이 한 가지 질문에 답해준다며 본인이 적합한 질문을 고르면 바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레굴루스가 버틴이 같이 갔다가 위험에 빠지면 어떡할 거냐 묻자 37은 자신에겐 위험해도 0은 어떤 숫자를 곱해도 0이기 때문에 버틴은 다르다고 한다. 의심을 멈추지 않는 레굴루스에게 버틴은 괜찮다고 말한다.

37은 신전에 들어가면 고개를 돌리면 안 되며 중도 포기할 수도 없다고 하면서도 지난번 검증이 중간에 끊기고 만 것을 회상한다. 버틴은 질문을 하지도 못했으며 37 본인의 질문은 이젠 할 필요도 없어졌다고 한다. 그녀는 버틴의 말이 옳았음을 인정한다. 현상 세계의 혼란은 '본질'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

37은 답을 얻고 6과 모두를 설득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소네트도 버틴에게 릴리아와 함께 철수 준비를 마칠 거라며 걱정 말라고 한다. 이에 버틴은 37과 아페이론을 만나러 가기로 결심한다. 다만,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 이건 분명 기회였다.
재건의 손을 따라잡을, 천재일우의 기회.
버틴은 아페이론이 시련을 통과한 이에게 한 가지 질문에 답을 해준다고 한 것을 떠올린다.
가령 내가 '폭풍우 면역의 방법'을 대놓고 물어본다면...
그것도 대답해 줄 수 있을까?
버틴

2.5. 사차 방정식

'폭풍우'가 내리기 까지
앞으로 22시간
라플라스 연구 센터의 연구원들은 혼란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루시가 암호 해독팀장, 울리히에게 다가가 진전이 있는지 묻자 울리히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기존의 그 어떤 언어에도 속하지 않고, 일반적인 표기법에도 맞지 않는단 것이다. 그는 다들 경험이 적은 신입 조사원이 자신의 마도술로 보낸 보고서이다 보니 주문을 잘못 베낀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연락원 도라가 마커스에게 아르카나가 주문을 시전하는 장면을 본 게 맞는지 묻는다. 마커스는 정확히는 카카니아의 거울 마도술에서 전(前) 재건 멤버인 이졸데의 기억을 봤다고 답한다. 이에 도라는 그녀의 기억이 정확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지 묻는다. 마커스는 말끝을 흐리며 부정한다. 카카니아의 마도술에도 그 어떤 왜곡도 없다고 장담할 수 있는지 묻자 마커스는 모르겠다고 답한다. 마지막으로 마커스의 '읽기' 마도술에 오류가 없었다고 장담할 수 있는지 묻자 마커스는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자신은 화면을 봤으며, 아르카나가 읊조리는 목소리도 들었다고 확신한다. 그게 무슨 언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음성 기호는 정확하다고 한다.

도라는 마커스에게 당시 상황을 확인하는 것뿐이니 긴장할 필요 없다고 말한다. 이어서 재단이 기동 부대를 빈으로 파견했으니 주문과 관련된 두 마도학자를 반드시 데려와야 한다고 알린다. 마커스는 명령을 확인하고 연락을 끊는다. 이건 그리 이상적인 결과는 아니었다.

그때, 이니그마가 나타나 의미 불명의, 마도술로 형상화한 마도학자 기억 속의 마도술 주문을 마도술로 읽은 것을 해독해야 한다며 기막힌다고 말한다. 이런데도 당신들은 '객관적 복원'같은 소리나 하고 있다며 독설한다. 가령 영적 인식의 교차 검증, 네 번의 교차 검증이 가능하다면 그게 왜 아직 과학을 대체하지 못하는 거냐고 비아냥대기 까지 한다.
당신들은 왜 전부 아직도 은퇴를 안 한 거야? 차라리 원숭이들한테 타자기로 셰익스피어 희곡이나 치라고 시키지!
한편 울리히가 아들러는 암호 해독팀 명단에 없었다며 깜짝 놀란다. 이에 루시가 본인이 오라 했다고 답한다. 그가 인간이지만 암호학에서 많은 공로를 세웠던 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이라며 말을 이으려던 울리히의 앞으로 이니그마가 바짝 다가가 자기는 왜 안 되냐고 따지기 시작한다.
내 누나가 그레타 호프만이라서?
이건 그녀가... 고결한 인품에 희생정신 넘치는 조사원이 인류의 신성한 사명을 위해 목숨 바쳐 비의 장막 속에서 가져온 주문 아닌가?
...아, 내가 깜빡했군. 그녀가 가져온 게 아니라 그녀의 멘티가 가져왔지.
그런 와중에 루시가 정식 멤버는 아니니 언제든 빠질 수 있다고 말한다.
빠져? 어째서?
...난 누나가 왜 죽었는지 알 권리가 있어!
이니그마
이니그마가 광기 어린 말투로 마도 네제곱의 주문을 해독 해보자며 마지막에 얻게 되는 게 구원인지 허무인지 보자고 외치더니 이내 비웃으면서 자리를 떠난다. 해독팀 멤버들은 침묵에 잠긴다. 루시가 그 침묵을 깨고 해독을 계속 하라고 지시한다. 모든 가능성을 파헤치기 전까진 이 면역 주문이 무효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는 것이 그녀의 판단이다. 그리고 아들러 호프만도 암호 해독팀 명단에 올리라고 지시한다. 울리히는 곧바로 아들러를 쫓아 달려 나간다.

그때, 도라가 내선 전화를 받더니 루시에게 재활 센터에서 연락이 왔다고 전한다. 도라는 루시가 직접 가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한다.

루시의 조수 시몬이 재활 센터에서 병동 안에 있는 연구원 매튜에게 심문을 하고 있었다. 재건의 손 가면을 쓴 매튜는 온갖 소리가 머릿속에 맴돈다고 외친다. 본인이 말로 설명하고 글로도 썼는데 댁들은 자기가 '조증'을 앓고 있다고 생각할 뿐이었다며 웃어댄다. 시몬은 그래서 가면을 쓴 건지 묻는다. 그는 어쨌든 자신의 추론을 증명해야 했다고 답한다. 이제 그 인자하고 하나뿐인 어머니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거라며 자기는 비로소 제일 끝내주는 논문을 쓸 수 있을 거라고 외친다.

시몬이 '어머니'가 무엇인지 묻자 갑자기 겁을 먹은 매튜는 놈들이 알아차렸다며 자기를 죽여달라고 애원한다. 그 순간, 매튜의 머리가 터져버린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 새로 태어난 존재가 나타난다. 그것은 괴물의 형태를 한 재건의 신도였다. 곧이어 재활 센터에 경보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하자 이 상황을 전부 목도한 루시는 재건의 손 가면에 대한 모든 연구를 즉시 중단할 것을 명령한다. 그 위험성이 선을 넘었단 것이다. 이후 안전 요원에게 현장 정리를 지시한다.

루시는 방향이 완전히 틀렸다고 혼잣말한다.
====# 오솔길 - 해독팀 인원 명단 #====
※울리히——통과
선발 이유: 라플라스에서 암호 해독에 가장 능한 마도학자이자 마도술에서 가장 뛰어난 암호 전문가. 또한 에너지 소비율이 매우 우수해 두 번의 보급으로 72시간 동안 고품질 작업을 지속할 수 있어 해독팀장으로 추천한다.
팀장 코멘트: 나에 대한 평가가 잘못 됐어. 이 기록은 이미 360시간으로 정정됐는데, 그래도 승낙하지.

※도킨스——통과
선발 이유: 도킨스, 언어학 전문가, 주문의 어원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에게는 이런 인재를 많이 필요로 한다.
팀장 코멘트: 도킨스는 인재야. 하지만 긴장감이 부족해서 때 아닌 썰렁한 개그를 할 수도 있어. 혼자 두지 말고 진지한 직원을 보내 그를 감시할 것. 썰렁 개그 방지 장치를 사용하고, 벌금을 3파운드로 설정하도록 해.

※리처드——통과
선발 이유: 리처드는 훌륭한 이론 수학자로, 우리에게 수학적 조언을 제공할 수 있다.
팀장 코멘트: 리처드는 수학 문제를 푸는 데만 신중하지 하루 평균 세 번 책상 모서리에 부딪혀. 그가 실험에서 사고를 낼 경우를 대비해서 똑같이 감독관이 똑같이 필요해.

※매튜——통과
선발 이유: 결단력이 뛰어난 매튜는 해독 작업에 결정적인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
팀장 코멘트: 그는 너무 무모해. 그에게 결정을 하게 두는 건 권하지 않겠어. 그렇지 않으면 실험실 폭발은 사소한 일이 되어버릴 걸.

※윌리엄스——통과
선발 이유: 윌리엄스는 남들이 알아채지 못할 허점을 잘 발견하기 때문에 매튜가 엉뚱한 행동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치밀하다.
팀장 코멘트: 우리는 이런 걸 내성적이라고 하기로 했어. 잘 발견한다는 게 꼭 검거까지 이어지는 건 아니지. 검산은 그에게 혼자 맡기도록 해.

※빅토르——통과
선발 이유: 빅토르는 비약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어 연구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지 않도록 한다.
팀장 코멘트: 빅토르는 괜찮지. 하지만 생각을 종잡을 수 없으니 도킨스와 한 조에는 두지 마. 분명히 3파운드를 내고 도킨스의 농담을 들을 테니까. 기발한 농담과 썰렁한 농담이 뒤섞이면 문제가 생겨.

※아들러——미정
선발 이유: 아들러는 뛰어난 암호학자일 뿐만 아니라 이번 해독이 마도학자만의 과제가 아니기 때문에 인류의 의견이 필요하기에 추천한다.
팀장 코멘트: 유보하도록 하지. 팀에 인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8년 동안 두문불출하는 사람은 필요 없어.

2.6. 오만과 편견

루시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생각에 빠진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주문과 위험한 것으로 판명된 가면 한 개가 현재 '폭풍우' 연구 대상의 전부였다. 그녀는 시몬에게 타임키퍼에게 부탁한 '비대칭 핵종 R' 표본 추출 작업에 대해 묻는다. 시몬은 섬사람들이 경계하는 탓에 타임키퍼가 타이밍을 잡지 못해 진전이 없지만 한 시간 전에 통신으로 타임키퍼가 다시 지하로 갈 것이며 섬의 면역 구역이 약화됨을 알렸다고 한다.

루시는 가면과 주문은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그녀는 빈의 조사원의 보고가 모두 사실이라면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고 한다. 아르카나는 왜 이졸데와 그 오빠에게 직접 가면을 주지 않았냐는 것이다. 시몬은 마커스의 보고서에 미흡한 부분이 많다고 하지만 루시는 지금 우리는 알고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추론할 수 밖에 없다며 마커스는 일을 잘 마쳐줬다고 말한다.

아르카나는 기적을 보여주려고 했지만 가면은 기적이라고 할 수 없는, 그저 도구일 뿐이라고 한다. 게다가 앞서 벌어진 참사로 인해 가면에는 연구 가치마저 없었다. 우리가 원리를 밝혀내더라도 재건의 방식을 모든 동료에겐 쓸 수 없다는 게 루시의 주장이다.
이 주문이 사실로 입증되면...
...프로메테우스가 훔친 불씨 그 자체가 되는 거야.
루시


암호 해독팀 사무실에선 이니그마가 주문에 대해 비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울리히가 이니그마에게 무슨 말인지 묻는다. 이니그마의 말에 따르면 지금 가진 정보는 암호학적인 해독을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운 좋게 찾아낸다 한들 그걸 검증할 수 있는 이도 없기 때문에 이런 방향으로는 성과를 낼 수 없다고 한다.

윌리엄스[해독팀인원]가 무슨 근거로 하는 말이냐 묻자 이니그마는 이건 그저 간단한 추론일 뿐이라고 답한다. 윌리엄스는 그가 이해해 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며 고귀하신 인간의 논리로 우리 모두의 노력을 부정했다고 화를 내더니 곧바로 이니그마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다. 이니그마는 얼얼한 뺨을 만지며 경악한다. 인간중심주의자들에게 신물이 나있던 그는 이내 허공에 볼펜을 휘두르기까지 한다. 이니그마는 당황하며 그저 자신의 성과를 말한 것 뿐이라고 말한다.

울리히는 윌리엄스가 매튜와 같은 실험실의 연구원이었단 걸 기억해내며 그 역시 가면의 영향을 받았으리라 짐작한다. 이니그마는 윌리엄스의 지표는 정상이었다며 그 부작용에 잠복기가 있는 건지 의심한다. 울리히는 지금 그가 눈앞에서 발광하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외친다. 마침내 윌리엄스가 '폭풍우'로 인해 세상에 한 대밖에 안 남은 콘웨이의 오토마타까지 던져 부수자 울리히는 스위치를 눌러 경비병들을 부른다.

복도에서 울리히가 루시에게 사태에 대해 보고한다. 예상을 벗어날 정도의 지장은 없으며 윌리엄스를 즉시 제압했다고 한다. 루시는 피해를 최소화해 기쁘다고 말한다.

울리히는 윌리엄스보다 더 통제가 힘든 건 아들러라고 말한다. 그는 지금도 아들러를 팀에 넣은 게 이해가 안 된다고 한다. 아들러가 연구 센터에 큰 공헌을 한 건 무려 8년 전의 일이고, 지금의 그는 패배주의자에 확고한 인간주의자라며 비판한다.
그는 마도학을 이해한 적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한 적도 없습니다. 지금까지도 '폭풍우' 이전의 세계에서 살려고 하고, 자신에게 익숙한 구세계는 이미 기름때투성이로 변해버렸단 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어요!
울리히
하지만 루시는 아들러가 행동력을 상실한 건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마도학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의 방식으로 마도술의 효용을 다룰 수 있는 것이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방향으로 연구가 나아갈 수 있게 한다고 한다. 그녀는 이 주문이 마도학자 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응용되어야 함을 상기시킨다. 루시는 울리히에게 그가 비협조적이라면 그를 내쫓을 권한이 있다고 알린다. 그것이 울리히의 역할이라고.

그때, 이니그마가 이들 쪽으로 걸어온다. 루시는 그에게 행동력을 상실하지 않아 기쁘다고 한 뒤, 보고할 게 있는지 묻는다.
팀장과 팀원의 시선이 뜻하지 않게 허공에서 교차하며 그들의 직장 생활에서 가장 난감한 1초가 흘렀다.
결국 울리히가 먼저 자리를 떠나고, 이니그마가 보고를 시작한다.

그는 가망 없는 일로 시간 낭비하는 것이 지긋지긋하다며 루시에게 서류를 건넨다. 현재 연구가 무의미하단 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해 낸 문서였다. 그는 주문의 길이가 암호학적으로 해독하기엔 너무 짧아 오래된 문서와 같은 책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으며 설령 찾아내도 증명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하급 마도학자가 상급 마도학자의 주문을 쓸 수 없단 것을 언급하며 이 주문이 우리의 인식 범위 밖의 능력을 가진 아르카나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우리 중에선 주문을 사용할 수 있는 이가 전무하다고 한다.

루시는 마도학자가 아닌 이니그마가 마도학자의 규칙을 신경 쓰는 이유를 묻는다. 이니그마는 이런 반문이 돌아올 줄 몰랐다는 듯 말문이 막혀 침묵한다.

루시는 확실히 마도학자는 마도술 운용에서 편차가 크다며 이에 대해선 인정한다. 이 부분은 메디슨 포켓이 더 과격하게 비판적인 주장이 담긴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녀는 암호 해독팀에게 이 주문을 검증할 능력이 없는 걸 알고 있지만 하나의 팀으로 그 목표의 실현 가능성을 구상해 보는 것뿐이라고 한다. 이후 이니그마의 추론은 논리에 부합하지만 실질적으로 작용하진 않다며 서류를 그에게 돌려준다.
파일:7장루시아들러1.png
루시는 이니그마의 논리적인 사고력이 마음에 들지만 그게 꼭 거기에 얽매여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한다. 그의 말대로 마도학자 능력에 한계가 있듯이, 논리도 그 한계가 있지 않냐는 것이다. 지식은 여러 경로를 통해 얻을 수 있고 그 길에서 증거를 찾는 이가 당신들만 있는 건 아니라고 한다. 루시는 당신들이 실패해도 다른 사람이 있고, 이 방향이 틀렸다 해도 그다음 방향이 있으며, 이번 '폭풍우'에서 안 되면 다음을 기약하면 된다며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중요한 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거야. 대가를 따지지 않고 나아가야 하지. 우리는 그 유효한 길을 찾아내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이 비에 우리가 씻겨 내려갈 테니까.
루시
침묵에 잠겨있던 이니그마가 천천히 입을 연다.
...실패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있다.
Warum dann? Warum musste es Greta sein?[3]
(그렇다면 왜 하필 누나여야 했지?)
이니그마
루시가 알아듣지 못해 되묻자 이니그마는 논리에 맞지 않는 질문이었다며 넘어간다. 그리고 당신의 '다른 사람'이 돌파구를 얻을 수 있길 바란다며 자신의 시도는 여기까지라고 선언한다.

이니그마가 화난 듯 돌아서서 가는가 싶더니, 문득 루시가 이곳에서 뭘 기다리는지 궁금해져 그녀에게 묻는다. 부하의 푸념을 들어주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루시인 걸 아는 그는 여기에 그녀가 관심 가질 만한 것이 있을 거라 추측한다. 그러자 루시는 그냥 충전 중이었다고 답한다. 이곳에 공용 전원 플러그가 있다고. 하지만 기다리는 것도 사실이라고 한다. 하얀 벽돌집의 비둘기들이 날아오르기를. 루시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비둘기들이 날아와 그녀의 손 위에 앉는다.
파일:7장루시비둘기.png
좋아.
...한계에 더 가까워진 사람들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군.
루시
====# 오솔길 - 불을 쓸 때는 조심해야 해 #====
???: 조심해, 여기 뜨겁게 타오르는 탐구자의 불이 있으니, 꺼지지 않도록 조심하렴.
???: 한때 많은 불 도둑들이 이곳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헬리오스의 불타는 바퀴를 막고 불꽃을 훔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려고 애썼지.
???: 신들은 이기적이어서, 인간이 자신들의 힘을 가지는 것을 꺼린단다.

{{{#!folding [ ◉ 너무 이기적이야 ]
???: 후후후, 권력이 없을 때는 그렇게 말하기 쉽지. 베풂을 아는 건 매우 귀한 미덕이야. 그리고 지식을 나누는 방법을 아는 건 더욱 귀하고.
???: 그중에서 가장 어려운 건 바로 자신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채우는 것이란다.
???: 순식간에 왔다가 사라지는 게 영감인데, 다른 두뇌에서 영감을 똑같이 재현할 수 있을까?}}}
{{{#!folding [ ◉ 먼저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는 법 ]
???: 빵집 앞에 일찍 가서 기다리는 데 익숙한 사람처럼 아주 객관적인 평가구나.
???: 나중에 온 사람들이 배고프더라도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먼저 들어가야 하지.
???: 과학 분야에는 빵집 대기자들보다 훨씬 더 많은 불도둑이 있단다. 저기 항공우주 소재의 옷을 입은 괴짜들을 보렴.
???: 그중에는 연구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과학을 사랑하는 마도학자와 미래를 내다보며 기묘한 영감으로 가득 찬 인간 과학자가 있지.
???: 원소와 번개, 원자... 아마 이 단어들의 마도학 출처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과학을 좋아한다면, 분명 그 의미를 알고 있을 테지.
???: 이런 걸 진보라고 하지. 이 불 도둑 집단은 시간의 강이 계속 흘러가는 한, 4차, 5차, 65,535번째로 더 많은 기술 혁명을 가져올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단다...}}}

◉ 이야기에 전말이 바뀌는 것 같네

???: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니, 서두르지 마렴. 반전'은 곧 시작될 테니.
???: 갑자기 내린 비는 미래에 대한 사람들의 열정을 꺾었지. 플로피 디스크와 많은 영리한 인재들은 빗속에서 사라졌단다.
???: 일부 불 도둑들은 귀한 불씨가 사라진 것에 비통해했어. 그들은 울부짖고, 분노했지. 그리고 잃어버린 것을 되찾겠다고 다짐했단다.
???: 다른 불 도둑은 어땠을까? 한번 맞춰보렴.
???: 그들은 수천 년의 진화에도 불구하고 다시 바다로 돌아간 실러캔스처럼, 혼돈과 마도학의 품으로 돌아갔어.
???: 어쩌면 쓸모없는 과학을 버리고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일지도 몰라. 누가 알겠니.
???: 불 도둑들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란다. 앞으로 프로메테우스가 어떤 시련을 마주할지, 판도라의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지는 아무도 몰라.

2.7. 미노타우로스의 미궁

소네트가 통신으로 릴리아에게 본부가 지원 준비를 두 시간 안에 마칠 것이라는 정보를 전달한다. 릴리아는 아르카나를 미행하며 그녀의 동태를 보고한다. 지금 그녀는 고지대 끝에 서서 바람을 쐬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선 섬의 모든 것이 다 보인다고 한다. 소네트의 옆에서 통신을 듣던 레굴루스가 재건이 도주 경로를 짜는 것 아니냐고 묻자 릴리아는 언젠가 우리가 재건과 수영 대회를 열면 꼭 너를 추천하겠다고 답한다. 이후 '거북이'한테 빨리 헤엄치라 전하라고 한 뒤, 통신을 끊는다.

레굴루스는 소네트에게 너희의 계획이 뭔지 이제 알겠지만 아주 약간 걱정된다고 말한다. 소네트는 이미 연습을 많이 해 오차가 0.00025% 이하라며 자신 있다고 한다. 레굴루스는 계획에 대해선 믿고 있지만 버틴이 두 시간 안에 돌아올지가 걱정된다고 한다. 제시간에 버틴이 돌아오지 못한다면 키는 이들이 알아서 잡아야 했다. 소네트는 버틴이 동굴에서 뭔갈 새로 발견하면 '폭풍우' 면역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다. 레굴루스는 지하엔 별로 좋은 추억이 없다며 질색한다.

레굴루스는 아페이론의 시련에 대해서도 의심한다. 이에 APPLe이 아페이론은 아낙시만드로스가 내놓은 철학적 개념으로, '근원'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이는 무규정, 무제한의 물질적 실재로, 만물은 근원에서 태어나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 섬의 교인들에게는 더 실질적인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소네트는 마르타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한다. 아무리 본질에 가까운 '숫자'를 통한다고 해도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지식은 제한적이기에 한계를 초월한 지식을 얻으려면 한계가 없는 아페이론에게 도움을 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APPLe은 자기가 알기로 오래되고, 모호하고, 검증 불가능한 특수한 존재일수록 증명되기 어려운 마도학 에너지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위대한 존재와의 교감을 통해 숭배자들은 초월적인 영적 인식의 인도를 받았으며, 동시에 그들도 숭배자들에게서 대가를 받았다고 한다.

소네트는 '대가'라는 말에 흠칫하며 APPLe에게 자세한 설명을 요구한다.
파일:7장지하미궁1.png
섬의 지하 미궁에서 37의 달리라는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37이 버틴에게 1에서 7로 뛰라고 지시한다. 이들은 걸음으로 4차 마방진을 만들고 있었다. 버틴은 지난번엔 이러지 않았다며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에 37은 시련이 이미 시작됐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지식을 구하는 길은 검증보다 더 험난한 법이라고. 37은 여긴 크레타 왕의 미노타우로스 미궁과 같아서 우린 결국 최심부에 도착할 것이라며 안심시킨다. 버틴이 미궁에 들어간 사람은 다 제물 아니었냐고 외치지만 37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마침내 마방진을 완성하지만, 곧바로 미궁의 형태가 바뀌어 37이 이번엔 마원진[4]을 완성해야 한다고 외친다.
파일:7장지하미궁2.png
우여곡절 끝에 미궁이 정렬되고, 심층부로 향하는 문이 열리자 37은 그곳으로 곧장 달려간다.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멈춰선다. 그 문 앞에 뜬금없이 6이 나타났던 것이다. 37은 여기선 포드 원[5]이나 괴물군(수학) 아니면 힐베르트 무한 호텔 같은 게 나올 줄 알았다고 한다.

그녀는 6으로 보이는 무언가에게 진짜 6인지 묻자 그는 뜸을 들이더니 그렇다고 답한다. 37은 본질 앞에서 우리는 모두 벽에 비친 그림자인데 어떻게 진짜 6이라고 단언할 수 있냐고 말한다. 그러자 6이 슬며시 웃는다.[6] 37은 이 믿기지 않는 상황에 자신은 이제 의심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6은 웃은 걸 부정하며 진짜 6이라고 말한다. 이 문은 6이 대대로 지켜온 것이라고.

37은 6이 형식만 차리고 우릴 보내줄 거라며 안좋은 예감이 든다고 한다. 형식이 제일 중요하다는 6의 말에 그녀는 본질이 가장 중요하다고 반박한다. 6은 고개를 젓더니 지금 묻고자 하는 것도 본질에 관한 질문이라고 말한다. 아주 중요한 거니 진지하게 들어달라고 부탁한 뒤, 버틴에게는 그냥 듣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37.
네가 찾는 진리가 너의 믿음을 무너뜨린다 해도...
그래도 넌 나아갈 건가?
6

2.8. 델포이 신탁

37은 자기가 믿는 게 진리인데 왜 진리가 진리 때문에 무너지냐며 당혹스러워 한다. 6은 이에 진리가 없는 것이 진리의 본질이라면 어떻겠냐고 묻는다. 37은 허무도 하나의 확실한 답이라며 그것도 일종의 진리라고 말한다. 그녀는 그가 말하는 게 210 같다며 진짜 6 맞냐고 묻는다. 6은 좀 더 구체적으로 질문을 바꿔보겠다고 말한다.
진리로 향하는 길에 문이 하나 있어. 그 문을 열면 네가 찾던 진리를 얻을 수 있지.
하지만 동시에 네가 잘 알고 있던 세계가 무너지고 만다면... 그래도 그 문을 열겠어?
37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물론이라고 답한다. 세계가 진리로 인해 변한다면 이전의 세계가 잘못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냐고 한다.
그게 분명 진리라면 어째서 정답이 오답에 양보해야 하는 건데?
37
이를 들은 버틴은 충격을 먹은 듯 놀란다. 37의 답변을 들은 6은 질문에 통과한 보상으로 주문 하나를 준다.
파일:7장6주문.png
이 스크롤이 37이 위대한 존재와 교감할 때 영적 격차를 뛰어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37은 제대로 된 질문은 나오지도 않았다며 6이 형식만 따질 줄 알았다고 버틴에게 푸념한다. 하지만 버틴은 그녀와 생각이 달랐다. 버틴이 문제에 대해 얘기하려던 찰나, 6이 37에게 말하고 싶은 잠언이 있다며 이들의 대화를 끊는다. 이는 '6'이 아닌 '아티커스' [7]로 불렸던 사람으로서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37과 예전에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읽었던 것을 상기시킨다. 진리와 정치는 양립할 수 없기에 경계 밖에서 지혜만 추구하는 것과 직접 그 안에 뛰어들어 고통받는 것,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순간이 왔을 때, 부디 37이 오늘 했던 답을 잊지 않길 바란다고 말한다. 직후 6은 자리를 떠난다.

37은 그의 말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버틴에게 걸음을 재촉한다.

미궁의 수수께끼들을 재밌다는 듯 풀어나가며 앞으로 나아가는 37과는 달리 버틴의 걸음은 무거웠다.

37이 버틴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묻는다. 버틴은 그냥 생각 중이었다고 답한 뒤, 37에게 뭘 물어볼지 정했냐고 묻는다. 버틴은 37이 '유출'의 본질에 대해 질문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37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레굴루스가 했던 말을 계속 생각해 봤다고 한다. 진리가 눈앞에 있다 해도 직접 답을 구한 게 아니라면 차라리 포기하겠다는 말이었다. 37은 이를 귀를 막고 델포이 신전의 신탁을 듣지 않는 것처럼 무리수다운 생각이라고 평하면서도 그 어떤 교리에서도 이를 금하진 않았다며 맞는 말이라고도 한다.
레굴루스는 뒤쳐지고, 한눈팔고, 늦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결국 우리는 진리에 도달할 거야...
근본적으로 다를 게 없어.
37
37은 그 대신 '유출'에서 모두를 건져낼 수 있는 적절한 질문을 생각해 뒀다고 말한다. 그러자 버틴은 이에 수긍한 뒤, 자기는 여기서 멈춰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37은 버틴이 무리수가 아닌데도 이러는 것을 의아해 한다. 그녀는 자기는 여기서 기다리며 지켜볼 것이고, 37 혼자서 문을 열어야 한다고 말한다. 37의 질문이고 37의 증명이기에. 이어서 37이 물어보려는 질문이 곧 자신의 질문이었다며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다고 덧붙인다.

37은 마침내 버틴이 외부의 관찰자가 되기로 했다며 숫자 0에 부합하는 결정을 한 그녀를 이해한다.[8] 그녀는 버틴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혼자서 앞으로 나아간다.

버틴은 심호흡하고 속으로 그 익숙한 주문을 되뇌인다.
그런 일이 생길까? 만약...
여기서 우산을 들어주고 있으면 될지도.
버틴

2.9. 한계 밖

동굴 안에서 교인들이 정화 의식 준비를 마치고 6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888은 37이 시련을 통과할 수 있을지 걱정한다. 이에 210이 누가 알겠냐고 하면서도 그녀가 가진 재능을 알기에 수수께끼들은 어려울 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제일 문제는 아페이론의 추궁이었다. 질문을 하기 전에 아페이론의 질문에 먼저 답을 하는 것이 그것의 규칙인데, 만약 대답을 하지 못하면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9]

한 교인은 그 실패의 대가가 너무 가혹한 탓에 오랫동안 역대 6은 교인들이 참가하지 못하게 막아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888은 그건 6의 거짓말이며, 4년 전에 의식을 통과한 사람이 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꺼낸다.
그녀들은 많이 닮았어요. 천부적 재능과 사고방식 그리고 넘을 수 없는 고난과 마주했을 때 제일 먼저 해결책을 떠올리는 것까지.
통과했을 때 모든 진리를 얻을 수 있는 통로가 눈앞에 있다면...
시도해 보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888

파일:7장지하미궁3.png
37의 시련이 막바지에 이르고, 그녀는 미궁의 최심부에 도착한다.

37은 안개 속에서 실루엣을 발견했고, 그것은 곧 자신의 어머니의 모습을 하게 된다. 그녀는 엄마를 부르며 왜 여기 있는지 묻는다. 그러자 그것은 자기는 37이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며, 그냥 그림자이자 불빛이고 그녀의 눈앞에 투사된 환영일 뿐이라고 한다. 37의 형편없는 감각기관으론 본 적 없는 걸 상상할 수 없고, 들은 적 없는 소릴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인다. 그것은 자신을 37의 불안한 기도이자 그녀가 하늘의 빛을 보기 전의 간수이며 물 위에 비친 그녀의 고민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37은 엄마처럼 보인다고 하며 자신이 진리의 문 앞까지 온 게 맞는지 묻는다. 그녀는 자신의 엄마가 여기 있는 것을 보아 그녀가 정말 초월적인 천국에 도달했다는 것이라며 자신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고 외친다. 그런데 그때, 그것이 갑자기 이상하게 웃기 시작한다.[10]
...천국?
우리 딸,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설마 내 말을 믿은 거야?
37이 경악하며 걸음을 멈춘다. 그것은 37에게 정말 의심해 본 적이 없냐고 묻는다. 해변가의 그 기하학 형체들이 정말 초월적 세계의 상징이라면 왜 이 조각 중에서 엄마의 숫자를 알아볼 수 없는 건지 생각해본 적 없냐는 것이다.

그것은 37을 '나의 가련한, 사랑스러운 딸아'라고 부르며 그녀가 너무 순진하다고 말한다. 가족의 품에 미련이 너무 많은 게 아니라면 계속 의심하고, 자기가 깔아둔 낡은 길을 답습하면 안됐다고 한다. 게임의 룰이 이미 달라져 추측이 틀렸는지를 따지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혼란을 일으키는 사람, 형세를 어지럽히는 사람, 규칙을 새로 만드는 사람, 그들이 바로 선두에서 걷지.
우린 틀리지 않았어. 그저 뒤쳐졌을 뿐이지. 천국이란 이름의 환상에 속아 현실을 꿰뚫어 볼 능력을 잃어버린 거야.
하지만 그것은 37이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이젠 상관없으며 다시 37과 함께 계산할 수 있다고 한다. 37이 나지막히 엄마를 부른다. 그것은 그녀에게 손을 내민다.

그것은 이 세계를 거대한 폐허로 비유한다. 그 폐허를 차지한 중생들은 우리를 비웃고, 배신하고, 추방하고, 정신 이상자 취급했다며 비난한다. 하지만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도 언젠가 알게 될 것이라면서.
우리 딸, 나의 가장 소중한 조개 속 진주.
자, 엄마에게 오렴. 논쟁과 재난이 일어나기 전으로, 너와 나 그리고 숫자의 증명만 있는 해변으로 함께 돌아가자꾸나.
내가 무궁무진한 비밀과 만물의 본질 그리고 모든 것을 초월한 진리를 나누어줄게.
너도 그걸 위해 여기 온 거 아니니?
77?
37은 자신의 어머니가 있는 계단의 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런 그녀가 문득 당혹스러워 하며 걸음을 멈추고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엄마.
내 숫자는 37이야. 무한대가 아니라.
...내가 왜 무궁무진한 비밀을 알아야 해?
37


혼자 기다리고 있던 버틴은 미궁에 큰 진동이 울리기 시작함을 느낀다. 이내 그녀는 37의 대답이 틀린 건지 우려하게 된다.

37 앞의 환영이 사라지고, 동굴 내벽에서 난데없이 태풍이 몰아친다. 폭풍의 중심에서 37은 고개를 들고 하늘 위를 올려다 본다.
파일:7장37미궁.png
그녀는 무한한 비밀 같은 건 알고 싶지 않다고 외친다. 그녀는 자신이 37일 뿐이고 유한한 숫자라며 파도에 언제든 휩쓸릴 수 있지만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그 위대한 존재들과는 달리 자신의 유한함을 알기 때문이라고.

바람이 거세지고 37은 눈도 제대로 뜨기 힘들어졌지만 그 자리에 꿋꿋이 서있는다.
아페이론, 난 그냥 간단한 질문을 하고 싶어서 온 거예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현상 세계의 어둠에 휩쓸리지 않고 한 번의 고생으로 영성의 '유출'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나요!
37
갑자기 폭풍이 멎어들고, 암벽에서 메아리가 울려온다.
지혜로운 대답이다.
...한계를 존중하는 인간이여, 너는 겸손함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보상으로 너는 원하는 것을 얻게 될 것이다.
???[11]
37의 귀에 이해할 수 없는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겹친 암벽이 공명하는 소리에 가까운 소리를 지속적으로 들은 37의 호흡에는 점성이 더해지고 비강에서 피가 쏟아져 나오게 된다. 곧이어 현기증도 몰려온다.

37은 아페이론이 답을 알려주기로 했다며 이 상황을 믿지 못한다.
설마 이 문제의 답을... 이 초월적 진리를...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걸까?
37


울리히가 연구원들을 헤집어 나가며 루시에게 달려간다. 그는 루시가 자신에게 준 쪽지가 재건의 면역 주문에 사용된 마도학 언어였다며 이것을 어디서 구한 건지 묻는다. 루시는 다시 쪽지를 건네받고 연구 센터 전원에게 정식으로 '폭풍우' 연구가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고 알려야 한다고 말하고 지휘 통제실로 향한다. 그곳엔 도라가 새로운 정보를 연구 센터의 각 부서에 전달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이니그마도 있었다. 그는 루시에게 상황에 진전이 없다며 유감을 표한다.
파일:7장면역주문쪽지.png
루시는 비둘기가 자신에게 가져다 준 쪽지를 건네며 이것을 발송하라고 지시한다. 검증은 마쳤다고 한다. 이것이 '폭풍우' 면역 주문을 정확하게 읽는 방법이었다.

이니그마가 떨리는 손으로 쪽지를 받아들고 주문을 천천히 읽어나가려던 찰나, 도라가 달려와 쪽지를 가져가더니 이것을 모두에게 알려야 한다고 외치며 기계 앞으로 뛰어가 쪽지를 펼쳐 주문을 천천히 확인한다.
La unua... cirklo...
그녀가 전송 버튼을 누르고 기뻐하며 돌아선다. 바로 그때, 갑자기 도라의 몸이 갈라지더니 부스러기가 되어 바닥에 떨어진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지옥에 그 자리의 모든 이가 충격에 빠진다. 곧이어 비상 경보가 울리기 시작하고, 마침내 혼란이 찾아온다. 이니그마는 경악하며 주문의 전송을 중지하라고 외쳤고, 루시는 제자리에 서 있었지만 그녀의 기다란 스크린은 놀란 듯 번쩍거린다. 루시는 이런 상황에도 누군가는 현실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판단 한다. 그녀는 주문에는 문제가 없다고 단언한다.

2.10. 지구로 귀환

암호 해독팀 사무실에서 연구원들이 비상 경보에 당황하고 있었다. 복도의 기밀 문이 내려오고, 루시가 경고를 외치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그때, 스크린에 새로운 정보가 나타나고 연구원들이 하나 둘 모여 그것을 바라본다. 누군가 암호 해독을 마치고 정확한 독법을 찾아낸 것이었다. 연구원들은 흥분하여 바깥의 상황은 미뤄둔 채 그 주문을 읽기 시작한다...

이니그마가 복도를 뛰어가며 '젠장'을 연신 외친다. 그는 복도의 기밀 문이 닫히기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안으로 들어온다. 해독팀 사무실 안은 연기로 자욱하다. 이니그마는 문을 두드리더니 연구원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며 '주문의 정확한 독법'을 받아도 절대 읽지 마라고 소리친다. 그가 자신과 트러블이 있긴 했어도 믿어달라고 외치지만,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는다.

그때, 사무실의 문이 열린다. 이니그마가 연기 탓에 기침을 해대며 연구원들의 생사여부를 확인한다. 그러자 리처드[해독팀인원]가 걸어나온다. 기이할 정도로 뻣뻣해 보였던 리처드는 입술을 떼어보려 시도하자 이내 얼굴에 한줄기 금이 간다. 피부가 말라붙은 땅덩어리처럼 변한 그가 쓰러지려 하자 이니그마가 간신히 붙잡아 그가 산산조각 나는 일은 면하게 된다. 이니그마는 그에게 재활 센터로 데려다 주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리처드는 도킨스[해독팀인원]에게 가보라고 힘겹게 부탁한다.

그러자 온몸에서 진흙물이 흘러내리는 무언가가 걸어 나온다.[14] 처참한 도킨스의 모습에 충격 먹은 이니그마의 뒤로 라플라스 안전 요원들이 들이닥쳐 나머지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라고 그에게 지시한다.

이니그마는 주문을 해독했음에도 제어할 수도 없고 쓸 수도 없다는 것에 완전히 멘탈이 나가버린다. 이니그마는 우리가 저주를 불렀다며 점점 광기에 물들어 가기 시작한다. 도라는 부스러기로 변했고, 리처드는 온몸이 흙덩어리로 뒤덮이고, 도킨스는 진흙 인형이 되어버렸다. 빅토르[해독팀인원]는 뜬금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모든 물리적 수단을 다 동원해도 내부에서 그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는 여전히 타이핑을 하고 이니그마에게 문까지 열어 주는데도 말이다.
고작 세 단어를 읽었을 뿐인데, 세 단어.
그는 곧 정신이 나갈 지경이 되어 헛웃음을 짓는다.
...우리가 대체 뭘 연구한 거지, 루시? 어느 분노한 신에게서 어떤 초월적인 힘을 훔쳐온 거야?
이니그마
연락원은 긴급 공지를 발송하며 사고의 파급 범위를 확인하고, 재활 센터 직원들은 사고의 부상자들을 전부 데려간다. 통화를 마친 루시는 이니그마에게 그의 임무가 이미 끝났으며, 후속 작업은 다른 이에게 맡길 것이니 가서 쉬라고 말한다. 이니그마는 그녀의 말에 분노가 차올라 연구를 중단할 생각이 없는 거냐고 따진다.

이에 대한 루시의 대답은, "연구는 계속되어야 해." 주문의 유효성, 심지어 어떤 인간이든 사용할 수 있다는 잠재적 가능성이 이번에 증명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은 가장 중요한 과제는, 주문 부작용을 없앨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한다. 루시는 이제 인간 연구원의 협조는 없어도 된다고 말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이상하리만치 차분하고 절제되었다.
...마도학의 저주는 마도학으로 없애는 수밖에 없거든.
루시


고요함을 되찾은 미궁의 최심부 안에서 버틴이 37을 부른다. 그녀는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버틴이 37을 여행가방 안으로 넣으려던 그때, 37의 품 속에서 6의 스크롤이 빛나기 시작한다. 빛이 점점 강해지더니, 갑자기 멜로디 소리가 들려온다.
+1, -1, +2, -3, 3, -3, +2, -1, +1...
...그런 거였구나, 이해했어.
버틴이 이해하지 못해 되묻는다. 정신을 되찾은 37은 버틴에게 이것이 숫자라고 외친다. 스크롤이 위대한 존재와 교감하는 데에 도움을 줘 이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 질문의 답, '유출'에서 살아남을 방법, 아페이론이 준 궁극의 답은...
일련의 숫자였어.
37
====# 오솔길 - 장례 연기 알림 #====
'폭풍우' 면역 주문의 확산으로 인해 발생한 사고에서 연구진 사상자가 속출했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특별 관리 규정에 따라 사망자들의 장례식은 잠정 연기되지만, 우리는 사상자들의 이름을 가슴에 새기고 그들의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연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도라, 에반스, 게리——부스러기가 되다
......
리처드, 빈센트——피부가 전환되다
도킨스——온몸이 진흙으로 변해 언어능력을 잃다
빅토르——존재가 사라져 물리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
마거릿——몸이 작아지다
루이——크림처럼 용해되다

2.11. 바위가 떨어지는 순간

시련이 끝나고, 37은 아페이론이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진리로 향하는 암호를 알려줬다고 외친다. 그녀가 기뻐하며 나가서 모두에게 알리자고 말하자 버틴도 모두에게 도움이 될 거라며 동감한다. 이것은 분명 최고의 엔딩일 테지만, 버틴은 왠지 모를 불안감이 마음속 한 구석에 남아있음을 느낀다.

버틴이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며 돌아가는 37을 불러 세운다. 그녀는 6이 준 스크롤이 효과를 발휘한 것을 보아 그는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 예상하고 도와준 건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는 왜 37에게 그런 경고를 했냐는 것이다.

6이 교인들을 이끌고 섬의 지하 통로를 걷고 있었다. 한 교인이 이 진언의 벽을 지나면서 근거 없거나 거짓된 말을 한다면 암벽이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들은 이미 침묵의 벽, 선의의 벽, 지혜의 벽을 지나온 참이었다. 이것은 '정화'를 완성하기 위한 의식에 필요한 시험이기도 했다.

걷고 있는 와중에 888이 갑자기 6의 앞을 가로막는다. 888은 지금이 아직 규명되지 않은 그 질문을 꺼내기에 적절한 타이밍이라고 말한다. 곧 다른 교인들도 그녀를 따라 6의 주위를 둘러싼다. 6dl 이건 의로운 행동이 아니라고 말하자 888도 기만 역시 의로운 행동이 아니라고 응수한다.

888은 6이 지난 4년 간, '6'이 된 그날부터 일부 문제들을 회피해왔다고 한다. 그게 점점 누적되어 학파 내부에서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학파의 존망이 걸린 지금, 교인들에게 솔직히 대답해 줄 것을 요구한다. 이후 진언의 벽에게 증인이 되어줄 것을 간청한다.
거짓말을 해도 괜찮아. 그럼 암벽이 무너지겠지. 침묵해도 괜찮아. 그럼 내가 거짓을 말해 암벽을 무너뜨릴 거야.
210
210은 이건 도덕에 관한 문제지 논리 시험이 아니라며 그저 6의 진심을 확인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한다.

입을 닫고 있던 6이 교인들에게 궁금한 게 무엇인지 물어본다. 210은 왜 우리의 연구가 지난 4년 동안 진척이 없었고, 왜 1929년과 이번 '유출'에 관한 예측을 완전히 실패한 것인지 질문한다. 그는 '유출'의 본질이 초월적 규칙의 구현이라는 전제 자체가 잘못됐던 건지 의심한다. 하지만 6은 질문 대상을 잘못 골랐다고 말한다. '유출' 연구는 '6'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지혜로는 이 질문에 답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는 걸 증명하듯 암벽에는 아무 반응도 나타나지 않는다.

888이 210의 질문이 너무 추상적이라고 평한다. 그녀는 '6'은 대대로 영혼의 숫자를 받을 때 전대의 지혜를 계승 받기 때문에 지금의 6도 이걸 알 것이라고 말한다.
'유출' 연구의 이전 담당자... 77말입니다. 그녀는 아페이론의 앞에서 어떤 질문을 했고, 어떤 진리를 얻었습니까?
888
888은 그녀가 시련을 통과하고 멀쩡히 돌아온 것을 똑똑히 봤고, 이후 그녀가 전대 6과 탐구를 위해 현상 세계로 나갔지만, 배는 제때 돌아오지 못했고 '유출'이 눈앞에서 일어났다고 말한다. 좌표는 왜 누설됐으며, 히스테리는 왜 여기까지 번졌냐는 888의 질문이 6에게 쉴새 없이 쏟아진다. 888은 우리가 믿고 있는 '진리'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이냐고 묻는다. 그러자 6이 불현듯 웃음을 터뜨린다. 교인들은 순간 숨을 멈춘다.
히파소스가 루트 2의 비밀을 발견하면서 피타고라스학파는 몰락했습니다.
뉴턴무한소의 도출을 간과하다 미적분의 높은 탑을 무너뜨릴 뻔했죠.
러셀집합론의 역설을 발견하며 세 번째 수학의 위기를 일으켰습니다. 그는 집합론을 보완했지만 모순이라는 유령에서 벗어날 수 없었어요. 결국 괴델이 판결을 내리고 불완전성이 최종적으로 승리했죠.

운명의 바위는 높은 산에서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37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열게 되어있어요.
888은 무슨 뜻인지 묻는다. 6은 888에게 감사를 표하더니 질문에 답해주겠다고 말한다. 77은 888의 말대로 '유출'의 본질에 관한 질문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녀는 무슨 일이 지고의 존재한테 벌어졌기에 세상이 이렇게 미쳐 돌아가는 거냐고 질문했다고 한다.
돌아온 답은 이겁니다.

"혼돈이다."
6
교인들 모두가 얼어 붙는다. 마찬가지로 암벽은 미동조차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득히 깊숙한 곳에서 진동이 울려오기 시작한다.

교인들 중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건 210이다. 210은 6의 멱살을 잡고 그가 6이 된 순간부터 '유출'이 초월적 규칙의 완전한 혼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냐고 윽박지른다. 그는 6이 4년 동안이나 이 사실을 숨겨왔던 것에 분노한다. 진동이 점점 거세지자 888이 당장 모두를 데리고 떠나야 한다고 외치며 6과 210을 갈라놓고 교인들을 통솔하기 시작한다. 혼란 속에서 6은 정화 의식에서 낭송해야 할 경전을 읊기 시작한다.
...신께 기도한다. 부디 당신이 앞으로 해야 할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기를.

네가 이 모든 것에 익숙해졌을 때, 영원한 신들과 필멸하는 인간의 체계를 알게 되리라.
동굴 밖에서는 엄청난 진동에 소피아가 의식이 잘못된 건지 걱정한다.
세상 만물을 누가 포용하는지, 또 어떻게 하나로 연결되는지 알게 되리라.
다른 곳에 있던 레굴루스도 소네트에게 같은 걱정을 내비치지만 소네트는 섬을 감싸던 거대한 마도술 주문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네가 마땅히 알아야 하듯, 너는 알게 되리라. 우주는 어디서든 하나라는 것을.
37이 우리의 원이 사라졌다고 나지막히 혼잣말 한다.
...그러면 너는 바라지 않아야 할 것을 바라지 않고, 속지도 않을 것이다.
6은 스크롤을 덮고 교인들에게 기도하자고 말한다. 입을 열고 자신의 존재를 초월하려는 유한한 자의 희망을 이야기하자고 하고, 그 의지로 보잘것없는 자신을 초월해 영성에서 처음으로 쏟아지는 눈 부신 빛에 닿았으며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그가 어둠 속에서 횃불을 밝힌다. 888이 그에게 어디로 가는 거냐고 외친다. 6은 마지막 정화에도 도달하지 못했다며 더 깊은 곳으로 갈 거라고 답한다. 그는 교인들을 뒤로한 채 홀로 걸어간다.
====# 오솔길 - 질문과 답 #====
???: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수수께끼가 있지. "아침에는 네 발로, 오후에는 두 발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은 무엇일까?" 너무 잘 알려진 수수께끼라 시시해졌지만 말이다.
???: 그래도 나를 위해 정답을 말해주겠니?

{{{#!folding [ ◉ '사람' ]
???: 맞아! 사람이야. 오이디푸스는 이 멋진 대답으로 스핑크스를 물리치고 영웅이 되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되었지.
???: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받는 것.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의식이야. 이를 통해 우리는 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지.}}}
{{{#!folding [ ◉ 출제자에 대해 말해줘 ]
???: 스핑크스? 스핑크스는 이집트에서 인자함과 고귀함을 상징했지. 하지만 그리스인들에게는 미스테리한 비밀을 가지고 있으며, 신의 징벌을 내리는 위험한 존재로 여겨졌어.
???: 질문에 대한 답을 맞히면 의식이 끝나고, 정답자에게는 스핑크스가 지키고 있는 보물에 갈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다 하지.}}}

◉ 의식?

???: 그래, 의식. 포도주를 따르거나 송아지를 도살하고, 아이를 안고 불 주위를 도는 행위... 더 간단하게 말하자면 하나의 질문과 하나의 답 속에서 한 약속이 이뤄지는 거야.
???: 모든 요구에는 대가가 따르지. 포도주든, 피든, 불이든 제물로 그 대가를 치르지만, 때로는 물리적이거나 눈에 보이는 것일 필요는 없단다.
???: 그리고 그 보물이 우리가 원하는 것과 다를 수도 있고.
???: 또 다른, 질문을 살펴볼까. 폴리페무스는 '이름이 무엇인가?'라고 물었지.
???: 오디세우스는 '아무도 아니다!'라고 대답했고, 그의 재치 덕분에 키클롭스의 동굴을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단다.
???: 인간과 무위, 이보다 더 닮을 수 없는 두 가지 대답이지. 하지만 답을 외친 자들은 어김없이 운명에게 발목을 잡혔어.
???: 자, 이제 전설 얘기는 그만할까. 넌 이미 대가를 치렀으니까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을 거야.

2.12. 콩 파티

첫째, 콩을 먹지 말라.
둘째, 떨어진 것을 줍지 말라.
셋째, 흰 수탉을 만지지 말라.
버틴이 비몽사몽하며 정신을 차린다. 그녀는 자신의 눈앞에 놓인 섬의 풍경이 평소완 사뭇 다르단 걸 느낀다. 37은 그녀의 옆에 있지 않았으며 크로노그래프도 고장난 듯 숫자가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레굴루스가 버틴에게 달려와 연회가 곧 시작될 거라고 알린다. 당황해 하는 버틴에게 오늘은 우리가 재건을 몰아내고 '폭풍우' 면역 방법을 찾아 교인들을 수렁에서 건져낸 기념비적인 날이 아니냐고 외친다. 이후 버틴을 이끌고 뛰어가다 뭔가를 발로 걷어차게 되는데, 레굴루스는 '소 키울 때 쓰는 거' 아니냐며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고 핀잔한다.
넷째, 검으로 불을 휘젓지 말라.
다섯째, 멍에를 뛰어넘지 말라.
여섯째, 길에서 나무를 패지 말라.
이윽고 도착한 광장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려 기념일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진다. 공기 중엔 바비큐의 냄새가 가득 퍼지고, 사람들은 포도주가 담긴 항아리를 가져와 먹고 마시며 떠든다. 릴리아 역시 포도주를 마셔대고 있었고, 그 옆의 APPLe은 이미 만취해 있었다. 210은 버틴의 일행이 가져온 커피를 보고 호기심을 가져 한 입 마셨다가 쓰다며 바로 뱉어버린다.

그때, 소피아와 함께 있던 37이 다행이라며 버틴을 부른다. 그녀는 곧 소피아와 중대 발표를 할 거라고 한다. 소피아가 자기 영혼의 숫자에 대한 증명을 마쳤다고. 버틴의 머리 위로 날갯짓 소리가 들려오고, 버틴이 깜짝 놀란다.
일곱째, 새 옷을 입고 홀에 들어가지 말라.
홀에 들어갈 땐 반드시 우측에서 들어가 좌측으로 나갈 것.
여덟째, 집에 제비를 두지 말라.
37이 그 제비는 6을 부르러 가는 길이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그녀는 6이 아직도 전도자의 강당에서 자고 있다고 한다. 소피아는 버틴에게 우리를 도와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한다. 그녀는 또한 재단과의 협력도 순조롭게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한다.

버틴은 이해가 안된다고 혼잣말한다.
아홉째, 신성한 담장 안에서 잠들지 말라.
열째, 잠자리에서 일어날 땐
침구를 말아서 잔 흔적을 지워라...
레굴루스는 버틴에게 딱딱하게 굴지 말라고 하며 바비큐가 든 접시를 들고 오다가 소네트와 부딫혀 떨어뜨리고 만다. 소네트가 이에 사과하고, 레굴루스는 괜찮다고 하며 떨어진 접시를 집어 들고 한쪽에 둔다.

소네트는 자기도 소피아의 숫자가 궁금하다고 말한다. 그러자 레굴루스가 내기를 하자고 한 뒤, 자기는 3으로 나누어지는 수에 걸겠다고 한다. 소네트가 이에 응하며 자기는 139로 나누어지는 수에 걸겠다고 말한다. 37은 자신과 6, 210을 더한 수 보다 백 배는 더 좋은 숫자라고 한다.

그때, 갑자기 근처에서 닭 울음소리가 울려오자 소피아가 자기가 키우는 흰 수탉이라고 설명한다. 이후 소피아가 닭을 들어올리며 모두에게 보여준다.
셋째, 흰 수탉을 만지지 말라.
버틴은 '흰 수탉'을 되뇌인다. 그녀는 재단 직원이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신분증을 줍는 것도 목격한다.
둘째, 떨어진 것을 줍지 말라.
버틴은 점점 이 상황에 기괴함을 느끼게 되고 곧 시야가 일그러진다. 그녀는 자신이 지하에서 벗어난 적이 없음을 떠올리며 섬에 무슨 일이 생겼다고 짐작하고, 마침내 눈을 뜬다.

버틴은 돌아가는 길이 올 때와 같은 길처럼 보이지만 조금 다르단 걸 느낀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음표들이 자신을 어디론가 데려가려고 한다고 추측하며 그녀는 그것을 따라가기로 한다.

이동하던 중, 레굴루스의 환영이 그녀를 막아선다. 엄청난 커피를 준비했다며 같이 마시자고 제안하는 레굴루스에게 버틴은 콩을 먹는 것은 섬의 계율을 어기는 것이라며 거절한다.
???: 해적 캐릭터 형상이 쇠갈고리와 해적선밖에 없는 것처럼 환상의 본질은 커피콩밖에 없어.
???: 후훗. 이렇게 하면 설득력 있는 실체를 만들어 낼 수 없고, 조금만 의심해도 완전히 무너져 버리지.
???: 인간의 이해력은 아주 제한적이야.
???: 개념으로 각종 사물을 포장하고,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어야 그 작은 머리가 돌아가거든.
???: 하지만 전반적으로 한 사람이 너무 많은 걸 알게 되어 극작가가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여러가지 묘사에 익숙해지면...
???: 그런 포장들은 무시하고, 가장 핵심적이고 사물의 본질을 구성하는 부분을 직시하기 시작하지.
???: 그래서 넌 어떻니? 무엇이 널 만들었지?
???: 네 본질은 커피콩보다 더 훌륭할까?

{{{#!folding [ 버틴: 나의 과거 ]
??? : 그래, 인간의 모든 조각은 과거에 형성된 조건 반사에 기초할 뿐이란다.
??? : 모든 선택과 행동은 과거에서 미래를 향한 연장이야. 엄밀하기 그지없지.
??? : 영혼과 사고는 파고들 틈조차 찾을 수 없단다.
??? : 커피를 마실 때 우유와 설탕을 넣는 사람이 꼭 우유와 설탕을 즐기고 싶어 하는 건 아니야.
??? : 그냥 커피를 마시고 싶지만, 혀가 그 씁쓸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지.
??? : 그럼 그들은 커피를 좋아하는 걸까? 그저 아침에 일어나 멍한 그 상태를 참을 수 없는 것뿐일지도 모르지.
??? : 이런 이유로 모든 사람을 휩쓴 거야.
??? : 그것들을 하나하나 벗겨낸 후에 비로소 진정한 음료 한 잔을 맛볼 수 있단다.}}}
{{{#!folding [ 버틴: 나의 신념 ]
??? : 신념, 영혼, 그런 것들이 정말로 존재할까?
??? : 목마른 노새는 맑은 샘물을 꿈꾸고, 굶주린 치타는 얼룩말을 쫓고, 외로운 홍학은 유익한 친구를 갈망하지.
??? : 생명의 모든 행동은 육체와 뇌에 의해 해석돼.
??? : 어쩌면 우리 모두는 결함이 많은 육체가 환경에 적응하려고 만들어진 피드백의 집합체일지도 모르지.
??? : 진정한 우리는 어디에도 없을지도 모른단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다 이번엔 37의 환영을 마주한다. 그녀는 아직 집회중이니 왼쪽으로 집회장을 떠나라고 말한다. 버틴은 자신이 왼쪽에서 왔다며 그쪽으로는 갈 수 없다고 말한다. 37은 버틴이 이미 계율을 절반이나 어겼다고 한다. 4색 정리가 증명될 때까지 감옥에 있어야 하지만 우리는 친구라며 자기가 변호해 주겠다고 하더니, 처벌을 '감옥에서 자와 컴퍼스로 각을 3등분하기' 로 줄여준다고 한다.

버틴은 앞으로 가야 하지만 그곳은 오른쪽이라 갈 수 없었다. 그녀는 왼쪽과 오른쪽을 바꿀 방법을 생각해낸다.[16]
??? : 오~ 각도를 바꾸면 좌우가 바뀌는군. 대체 누가 이렇게 자유로운 정의를 만든 거지?
??? : 이런 제멋대로인 정의 속에 살면서 계율까지 지켜야 하니, 나처럼 머리가 굳은 노인은 참을 수가 없단 말이야.
??? : 정의를 간단하고 이해하기 쉽게 만들고, 어린 아이의 순수한 시선으로 그 취약한 개념들을 살펴 보는 거야.
??? : 일단 수학부터 시작하자꾸나. 그것들도 이렇 게 취약할까?
??? : 1은 영원히 1일까? 3과 4 사이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또 다른 정수가 있을까?

{{{#!folding [ 버틴 : 진리는 영원해 ]
??? : 그럼 영원한 진리는 너에게 뭘 가져다줬지?
??? : 실제로 본 적이 없고,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적도 없다면, 그것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하지?
??? : 어쩌면 벽에 진 그림자야말로 진실일지도 몰라. 태양은 그림자가 빛에 비추어지는 행위를 통해 생기는 허상일 뿐이야.
??? : 동굴에 머물면서 그림자를 즐기는 동굴 친구들이 진정한 현자라면?
??? : 그럼 진리를 제대로 주시해 봐, 친구.}}}
{{{#!folding [ 버틴 : 당신 말이 맞아 ]
??? : 그래, 수학의 정의는 취약할 수도 있어.
??? : 하지만 '수학의 정의는 취약하다'는 이 정의도 취약할 수 있지.
??? : 어떤 것에 의문을 품게 되면 네 의문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단다.
??? : 그다음에 의문을 제기하고, 다시 의문을 제기하고, 계속 반복해...
??? : 믿는 걸 선택하는 것 외에 이 의문으로 만들어진 마트료시카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어.}}}
소네트는 연회에 관심 없어보이는 버틴에게 다른 곳에 가서 토론하는 것을 제안한다. 버틴은 거절하지만 소네트는 자기가 이미 과거의 교훈을 받아들였다며 즉흥적인 변론은 어떠냐고 묻는다. '폭풍우'는 이미 지나가 임무에만 매달려 있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버틴은 소네트에게 상황을 설명하기엔 시간이 많이 걸리는 탓에 당장 거절할 이유를 찾아야 했다. 버틴은 소네트의 목소리를 사라지게 만드는 방법을 떠올린다.[17]
??? : ..., ..., ...
??? :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고 싶다면 말을 아끼고, 귀를 막는 게 최선이란다.
??? : 침묵하고 냉혹하게, 하지만 너무 과하지는 않도록 주의해야 하지.
??? : 그렇지 않으면 입 밖으로 뱉지 못한 단어가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어.
??? : 그리고 양쪽 모두 침묵을 선택할 때 경청을 포기한 두 세력은 최고의 폭력이 되지.
??? : 세상이 평화로워지려면 어느 한쪽이 포기해 야 하지. 이 규칙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이 있었나?

{{{#!folding [ 버틴 : 다른 방법이 없어 ]
??? : 난 젊은이 특유의 그 단호함이 마음에 들어. 너희는 항상 곧바로 선택을 내리잖니.
??? : 소수와 다수를 무시하고, 도덕과 선악을 팽개치고, 옮고 그름의 개념만 가지고 있어.
??? : 하루빨리 그 정확한 개념을 발견하길 바라마.}}}
{{{#!folding [ 버틴 : ... ]
??? : ...그래, 이미 이 최고로 강력한 무기를 장악했구나.
??? : 나도 같은 수단으로만 너에게 대응할 수 있겠구나.
??? : 이걸로 비긴 건가...}}}
버틴은 마지막으로, 소피아를 맞닥뜨리게 된다. 자신의 영혼의 숫자를 얘기하려던 참이었다는 소피아에게 버틴은 지금 여길 떠나야한다고 말한다. 소피아는 버틴만이 이 검산을 도와줄 수 있다며 잠깐이면 된다고 부탁한다. 버틴의 눈앞에 계산식이 떠오르고, 정답을 채워넣는다.
1+2+3=1×2×3= 6
소피아는 6이 완벽하지만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다며 답을 0으로 바꿔달라고 부탁한다.
1+2+3=1×2×3= 0

다음 계산식이 나타난다.
111÷3= 37
소피아는 이 숫자는 너무 눈부신데다 자신과 다르다며 다시 0으로 돌려달라고 말한다.
111÷3= 0

세번째 계산식이 나타난다.
2×3×5×7=210
소피아는 이 숫자를 37이 싫어하며 자기는 이 숫자조차 가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하자며 이번에는 꼭 자기가 원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장담한다.
2×3×5×7= 0

버틴의 주변에 셀 수 없이 많은 수가 지나간다. 이것이 무리수인 것을 알아 본 버틴은 이 답도 0으로 해야 할 것 같다고 판단하고, 0을 입력하자 마침내 그 수들은 모두 0으로 바뀐다.
??? : 나는 누구인가. 그건 영원한 문제지.
??? : 이름처럼 단순할 수는 없어. 결국 이름은 우리가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니까.
??? : 자신의 존재에 당황한 인간은 궁극적인 진리에게 답을 구하기 시작했지.
??? : 하지만 곧 진리 역시 인간의 이해 능력을 넘어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
??? : 바로 그때 두려움이 그들을 사로잡았지. 그래서 그들은 진리 탐구를 뒤로 미루고 더 간단한 것을 찾았어.
??? : 겁에 질린 아이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히 간단한 대답.
??? : 위안을 주는 거짓말과 진실보다 더 무서운 것 사이에 갇히게 돼. 그것은 전혀 진실이 아닐 수도 있어.
??? : 그렇다면, 나는 대체 누구일까?

{{{#!folding [ 버틴 : 내 생각에, 나는 나야 ]
??? : 오! 정답은 수수께끼 속에 숨어 있었군.
??? : 이 답을 기억하렴. 이건 경험자의 조언이란다.
??? : 네가 다른 사람의 각도에서 자신을 관찰하면, 이를 통해 재미있는 농담을 얻을 수 있을 거야.}}}
{{{#!folding [ 버틴 : 당신이 누군지는 나도 몰라 ]
??? : 오호호, 재미있는 농담이구나.
??? : 유머 감각이 있는 건 좋은 거야. 기분을 즐겁게 하는 건 심신에 이롭거든.
??? : 하지만 농담하는 목적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을 웃기기 위한 것이지.
??? : 본론으로 돌아오자꾸나. 넌 올바른 길을 가고 있어.
??? : 이 문제의 답은 혼자서는 얻을 수 없어. 적어도 거울을 보면 알 수 있지.}}}
곧 증명이 끝납니다. 빛의 세계가 바로 앞에 있습니다.

파일:7장해변가1.png
버틴은 어린 37이 해변가에서 모래성을 쌓는 모습을 마주한다. 버틴이 그녀를 부르지만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모래성을 완성한 37은 완벽하다며 혼잣말을 한다.

파일:7장해변가2.png
갑자기 버틴의 시야가 지직거리더니 37은 사라지고, 77이 그 자리에 서있었다. '유출'과 '혼돈'을 되뇌이던 그녀는 모래성을 무너뜨린다.
이건 너무 못생겼잖아! 전혀 아름답지 않아! 이게 어떻게 지고한 규칙의 계시야...
나한테 어떻게 이런 답을 줄 수 있냐고?!

그들에게 이런 결과를 말해줄 수는 없어. 분명 어디선가 오류가 난 거야. 내가 증명해야 해. 밖으로 나가서...
77
파일:7장해변가3.png
마침내 버틴의 눈앞에 아르카나가 나타난다. 버틴은 깜짝 놀라 심호흡한다. 아르카나는 버틴을 '우리 아이'라 부르며 그녀도 모래성 쌓기를 하러 온 건지 묻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제 내가 그걸 무너뜨릴 거예요.
아르카나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버틴은 물에 빠져 소리들이 아득히 멀어짐을 느낀다.

버틴이 갑자기 의식을 차린다. 사방에는 익숙한 암벽들이 있었고, 37도 그녀의 옆에 있었다. 37은 방금 끔찍한 꿈을 꿨다고 한다. 그녀는 꿈을 잊으려는 듯 고개를 내젓고 아페이론이 알려준 정답을 모두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하며 밖으로 나가려 한다. 37의 얼굴 위로 악몽에서 벗어난 기쁨이 넘쳐 흐른다.

동굴의 출구에 가까워지자 점점 햇빛이 새어들어오게 되고, 시끌시끌한 소리도 들려온다. 37이 소피아가 자기를 마중 나온 게 분명하다며 신난다는 듯 밖으로 뛰쳐 나간다. 버틴은 본능적으로 그녀를 따라가야 한다고 느끼고 그녀를 따라 밖으로 나간다.



파일:7장동굴바깥.png
예고도 없이 불길이 그녀에게 치솟는다. 버틴은 공기 중에 퍼진 냄새에 익숙함을 느낀다. 그것은 전쟁의 화약 냄새였다.
무...슨...?

2.13. 예술 물결

군사 기지의 군인들이 저 섬이 바로 맞은편에 있고, 물자도 다 있는데 딱 상륙 명령만 안 떨어진다며 불만을 표하고 있었다. 이들에겐 시커먼 '동료들'본인이 '월든'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무기상이 제공한 마도학 개량 무기까지 있었다. 현재 이들은 앞서 벌어진 상륙 실패와 늘어지는 정치 협상에 사기가 꺾인 상태였다.

군인 게오르기는 투덜대면서 망원경을 들고 그 섬을 들여다 보기로 한다. 그는 분명 어제와 같은 각도로 보는데도 섬이 보이지 않는 것을 의아해 한다. 그는 다른 곳을 둘러보던 중, 새들이 무리지어 떠나는 것을 목격한다.

다른 군인이 게오르기에게 카드 게임이나 하자고 부르는데, 그의 상태가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한다. 알록달록한 물감 한 방울이 그의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것이다.
그래, 저 섬은 원래 우리 거였어. 우리 바다 위에 있고, 우리가 발견했으니까... 우리 섬이 아닐 이유가 없지!!!
곧 그의 모습에 경악한 다른 군인들도 똑같이 몸에서 기이한 물감이 번져가게 된다. 고요한 가운데 라디오 소리만 울려 퍼진다.

카카니아가 유화로 번진 링슈트라세 거리를 달려 나간다. 그녀는 자신의 집 앞으로 가 자신의 가족들인 엄마, 아빠, 앨버드, 엘리자베스를 크게 부르며 문을 두드리려고 하는데 문이 움푹 들어가는 바람에 거의 넘어질 듯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이내 기괴한 광경을 마주하고 뒷걸음질을 치게 된다. 카카니아는 자신의 오빠를 부른다.
파일:7장앨버드.png
클라라...? 별일이네. 뭐 때문에 그렇게 당황한 거야?
앨버드는 자신의 몸에서 물감이 흐르는 와중에도 비즈니스 스쿨에 가야 한다며 나중에 얘기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카카니아는 그가 분명 그에게 결투를 신청한 인간 동창이 그의 팔을 못 쓰게 만들어 다시는 그곳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맹세한 것을 기억했다. 그녀는 그의 오른팔 쪽을 보는데, 그곳엔 다른 색의 온전한 팔이 붙어있었다.
아, 이선 말이구나... 맞아, 이선 때문에 다친 건 맞아. 그도 어쩔 수 없었겠지.
프래터니티에 그의 반마도학적인 입장을 밝히는 게 무엇보다 시급했으니까.
뭐, 괜찮아. 우린 이미 비겼거든... 그가 팔을 돌려줬어.
앨버드
앨버드가 왼손을 들어 올리고, 칼을 바닥에 내던진다. 그는 이제 때가 됐다며 엘리자베스를 분수에 밀어 넣은 개자식들을 찾으러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클라라에게 몸조심하라고 당부하고 그녀의 옆을 지나친다. 카카니아가 가지 말라고 소리치지만, 이미 그는 삼각형 바퀴를 단 마차를 타고 가버린 뒤이다.

그때, 마커스가 그녀에게 달려와 폭풍우 증후군이 퍼지기 시작해서 더 있다간 그녀도 히스테리에 감염될 거라고 외친다. 마커스가 자기랑 같이 떠나자고 권유하려던 찰나, 바닥에 진동이 울리며 그녀의 말을 끊기게 만든다.

얼굴이 뒤틀린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고 모국어로 된 노래를 부르며 거리 반대편에서 쏟아져 나온다. 전쟁 전단이 그들의 손에서 떨어져 거리 위로 흩날리게 된다. 카카니아는 대열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오로라를 알아본다. 그녀는 지난주에 오로라와 결혼식 얘기를 했었던 것을 기억한다. 극도로 흥분한 시민들은 거리의 기물을 파손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마커스는 이들이 이성을 잃었다고 외친다. 그녀는 카카니아를 이끌고 이곳에서 벗어나려 한다.

마커스는 기동대와 진료소에서 만나기로 했다며 그곳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카카니아는 우리에게 아직 만회할 기회가 있다는 마커스의 말을 언급한다. 그녀는 마커스도 원하는 일을 했고, 자기도 해야 할 일을 했다며 우리가 한 일이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는지, 그 주문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건지 말해달라고 슬픔에 목이 메어 힘겹게 부탁한다.

복도에서 이니그마가 씩씩거리며 대체 왜 실험을 멈추지 않는 거냐며 화를 낸다. 그러자 총책임자의 사무실로 이어지는 철문이 열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울리히가 씩씩거리며 나오더니, 이니그마는 이제 연구팀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이 복도에 올 권한이 없다고 말한다.

이니그마는 관리 조례가 적힌 수첩을 울리히의 얼굴에 던진다. 그는 지금 일어난 일 중에 조례랑 맞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알아두라고 말한다. 그리고 루시보고 들으라는 듯, 아무리 총책임자라 해도 이 상황에서 계속 실험할 권한이 없다고 외친다. 울리히가 지금은 전시 상황이고, 실험 참여자들이 이미 동의서에 서명했다며 이니그마에게 꺼지라고 화낸다. 그는 '폭풍우'가 오기 전까지 이제 18시간 밖에 남지 않았고 이것이 돌파구를 얻을 유일한 희망이라 말한다.
...잊지 마. 이 희망은 당신 누나가 목숨 걸고 우리에게 가져다준 거라는 걸!
울리히
곧 이니그마의 눈빛이 분노로 차오르고, 울리히도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 그래. 누나가 희생했지. 우리에게 돌파구가 될 성과를 가져다주기 위해. 그 후엔 더 많은 사람이 희생됐고.
...이렇게 된 거 맞아?
이니그마가 순간적으로 울리히를 팔로 벽에 밀어 붙인다.
이 미친 실험을 계속하는 이유를 난 알아야겠어!
그는 끝내 규율을 어기고 철문의 암호를 풀기 시작한다. 곧 경보음이 울리고, 울리히는 자신의 머리를 움켜잡으며 일어난다. 그는 이곳에 미친놈이 너무 많다며 투덜대더니 루시는 중요한 일 때문에 바빠서 상대할 시간이 없다고 외친다. 이니그마는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딨냐고 소리친다.
여긴 이제 로봇 한마디에 좌지우지되는 곳이 된 거야? 재단의 인도주의 원칙은 그냥 공염불이었나???
그녀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우리가 완전히 혼란에 빠진 사이에 기계유를 마시며 신문이나 읽고 230볼트 전압 풀에 몸 담그고 충전 중이신가?
이니그마
마침내 암호를 푸는 데에 성공한 이니그마는 울리히를 떨쳐내고 안으로 들어간다. 실내는 온통 컴컴하다.
파일:7장루시피스톤.png
그때, 피스톤 하나가 이니그마의 발치에서 빙그르르 돈다.
...아들러? 어서 와.
루시
====# 오솔길 - 7년의 액땜 #====
???: 이 거울 좀 봐. 얼룩이 꽤 많이 묻었네.

{{{#!folding [ ◉ 깨졌어 ]
???: 그래. 깨졌지. 가뜩이나 지우기도 힘든 얼룩이라 주인이 고의로 깨뜨린 것일 수도 있어.
???: 이제 얼룩은 보이지 않고, 주인에게는 수많은 작은 거울이 생겼지. 이건 실수로 두고 간 것 같구나.}}}
{{{#!folding [ ◉ 얼룩이 보이지 않아 ]
???: 다시 자세히 보렴. 떨어져 나간 부분은 더 이상 보이지 않지만, 예전에 어디에 큰 얼룩이 있었는지 지레짐작 할 수 있지. 바로 저기 말이다.
???: 주인은 거울을 깨뜨리면 얼룩이 지워질 거라고 생각했겠지. 지금은 그저 산산조각이 난 거울 조각만 있고, 얼룩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구나.}}}

◉ 거울의 주인은 누굴까?

???: 큰 야망을 가진 매력적인 여자이지. 세상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바라며,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고방식에 동참할 것을 제안하는 레이디란다.
???: 반대로 그녀의 오빠는 그녀와 정반대야. 평생을 세상의 양해를 구했고, 어떻게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결투 끝에 한쪽 팔을 잃었지.
???: 그렇지만 두 사람은 매우 닮았어.. 똑같이 외롭지.
???: 거울의 양면과도 같은 남매였지. 그녀는 또 다른 자신을 볼 때면 몰려드는 반감을 참지 못했어. 인생은 저렇게 살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
???: 그리고 이제 오빠는 동생이 그토록 바랐던 수술을 결국 하게 되면서, 잃어버린 팔과 함께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존엄성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어.
하지만 동생은 수술 후 트라우마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였지.
???: 아까 말했지, 거울의 양면 같은 남매라고.
???: 하지만 이제 거울이 깨졌어. 그녀가 7년간의 불운을 이겨낼 수 있으면 좋겠네. 불쌍한 것.

2.14. 방 안의 모래폭풍

루시의 목소리는 그 피스톤으로부터 나오고 있었다. 대화하기 적절한 모습이 아니라 판단한 루시는 시몬에게 자신을 다시 끼워줄 것을 요청한다. 그녀는 곧 얼굴이 있는 로봇에 루시를 끼워넣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게 만든다. 할 말을 잃은 이니그마에게 루시가 사실 방금 그 말은 예의상 한 거라며 사실 어떤 걸 끼우든 자기한텐 별 차이가 없다는 실없는 소리를 한다.

이니그마는 왜 실험을 중단하지 않는지, 깡통 안에 있는 루시나 울리히 같은 의식 각성자에겐 애초에 인명이란 개념이 없어서 희생을 무시할 셈이냐고 묻는다. 그때, 울리히가 안전 요원을 대동하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 이니그마를 끌어내려 한다. 하지만 루시는 그가 이러는 건 파악한 정보가 부족해 판단 오류가 일어났기 때문이라며 괜찮다고 말한다. 그녀는 이니그마가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면 가장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거라 믿는다.

그러나 이성적이라고 알려진 인간이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과장되게 외친다. 이니그마는 우리는 로봇이 아니며, 그는 루시가 고집스럽게 연구를 밀고 나가는 건 지금 그녀가 그저 마도학자의 특수한 폭주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려는데, 루시가 그의 말을 끊는다.
실험은 이미 중단됐어.
...여기만 빼고.
이니그마는 이해하지 못한다. 루시가 이 대답에 상대가 기뻐하기를 기대했다는 듯 싱긋 웃는다. 그녀는 이니그마와 메디슨 포켓이 지적했듯, 이 주문은 연구 센터 대부분의 능력적 한계를 넘어섰고, 지금 실험에 참여 중인 건 사전 동의서에 서명한 소수의 마도학자뿐이라고 한다.

이니그마는 '사전 동의서'라는 단어에 신물이 났다. 그는 루시 본인도 이미 그 '한계'를 알고 있으니 남은 사람도 당연히 내보내야 하는 거라고 외친다. 루시는 이니그마의 말이 옳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이내 옳은 게 무슨 소용이 있냐고 덧붙이자 이니그마는 또 다시 되묻는다. 루시의 온화한 미소는 오히려 역효과를 보이고 만다. 그는 루시의 그 얼굴을 인간미를 만들어보려는 헛된 시도로 여기며 늘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루시는 이니그마가 '한계' 같은 말을 한 것을 의외로 여긴다.

루시는 오늘날 인류가 누리는 성취는 모든 인류가 함께 노력한 결과라고 말한다. 문명의 발전과 과학의 발달은 인류가 한 번씩 한계를 뛰어넘었기 때문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이들이 말하는 진보였다. 이니그마는 허울 좋은 말이라고 한다.

루시는 현실이 이러니까 우리가 한계를 뛰어넘어야만 하는 거라고 말한다. '폭풍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발전은커녕 인류의 미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주문 부작용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첫걸음이 되어 줄 것이고, 더 많은 이들이 안전하게 주문을 사용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니그마는 그렇다면 누가 그런 능력을 갖고 있는 거냐고 묻는다. 그렇게 하나씩 대입해 볼만큼 우리 목숨이 여러 개인 것도 아닌데 말이다. 루시는 다행히 울리히 덕분에 돌파구를 찾았다고 한다. 그녀는 의식 각성자만 남기고 나머지 마도학자는 돌아가도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니그마가 '의식 각성자?' 라며 되묻자, 실내의 조명이 켜진다. 시몬이 루시에게 전력이 복구되어 실험을 재개할 수 있게 됐다고 알린다. 루시는 이니그마에게 아직 이성적으로 합의를 보지 못했다며 기다려 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여기서 실험을 한다는 것에 놀란다. 루시가 철제 실험대 앞에 앉는다.
파일:7장루시실험대1.png
조명이 켜지고 그녀의 몸에 회로가 잔뜩 연결된다. 장치는 이 의식 각성자의 모든 행동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 루시가 심호흡하고 입을 연다.
La unua...
이니그마는 루시가 그 주문을 읽으려 하는 것에 경악한다. 그는 그녀가 부작용을 제대로 목격한 게 맞는지 묻는다. 루시가 점점 숨을 거칠게 내뱉는다.
파일:7장루시실험대2.png
강철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게 정상일 터다. 하지만 루시의 그 표정에는 미소라곤 온데간데 없고, 두려움의 표현만이 존재했다. 루시는 목소리를 떨더니 더는 못 버틴다며 시몬을 부른다. 가장 원시적인 본능은 공포였다.

이니그마는 그녀가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더욱 분노하며 다들 그녀의 실험을 멈추지 않는 이유를 묻는다. 라플라스의 총책임자인 루시마저 멈춰버리면 누가 그 자리를 이어 받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울리히는 그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호통치며 이니그마 본인이 여기에 남기로 했기 때문에 이것이 그가 지켜봐야 하는 광경이라고 말한다.
한심하고 편협한 인도주의적 가치관을 가지고 여기 와서 우리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
도대체 우리에 대해 뭘 안다고.
울리히
시몬이 루시의 앞으로 다가가 이건 그저 정해진 프로그램의 일부일 뿐이라며 그녀를 격려한다. 두려움이 조금 가신 그녀는 '정해진 프로그램'이라는 단어가 좋다고 말한다. 루시는 이를 악문다.
Cir...klo.
갑자기 조명이 꺼지고, 루시는 시몬에게 자신이 주문을 다 읽었는지 묻는다. 시몬은 긍정한다.
음, 좋아...
갑자기 모래바람이 불어닥치고 이니그마는 흠칫한다. 곧 그것은 루시의 몸을 휩쓸었고, 마지막으로 피스톤만이 허공에서 굴러 떨어지게 된다.

2.15. 개척자들

이니그마는 이내 그녀가 죽었다고 판단하기에 이른다. 그는 자기한테 보여주고 싶던 게 이거였냐고 혼잣말한다.
우리의 총책임자가 왜 이미 누차 검증된 저주를 위해 의미 없이 목숨을 잃었는지 보라고...?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어!!
이니그마
하지만 울리히는 그에게 진정하라고 말한다. 이니그마는 그녀가 바로 여기서 죽었다고 외친다. 울리히는 이 실험이 이미 여러 차례 진행됐다고 알려준다. 이니그마는 이들이 살인과도 같은 실험을 여러번 자행했단 것에 더없이 큰 충격을 먹는다. 울리히는 이니그마가 저주에 겁을 잔뜩 먹어 가장 중요한 문제를 그냥 넘기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주문에 효과가 있느냐, 없느냐 질문을 던진다. 이니그마는 저주가 실패를 의미하는 게 아니냐고 말한다.
아니, 이건 두 가지로 볼 수 있어.
왜냐하면 처음으로 주문을 읽은 게 나거든. 도라보다 훨씬 먼저.
울리히 본인이 읽었을 땐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그 기적같은 가호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고. 이후 기쁜 마음으로 소식을 루시에게 전하고 그녀가 떠난 후에야 온몸이 녹아내리는 저주가 나타났다고 한다. 그때 울리히의 옆엔 아무도 없어서 구조 요청 버튼을 누르지도 못했으나 시간이 흐른 뒤, 맨 처음 세상에서 각성했던 모습으로 깨어났다고 한다. 맨 처음의 모습에 대해 되묻는 이니그마에게 그는 의식 각성자에 대해 설명한다.

의식 각성자에겐 피와 살도, 신경도 없으며 그저 의식과 원시적인 리듬만으로 어떤 물건에 담기게 된 것이다. 정신과 육체가 결합하여 이들은 인간처럼 배우고, 생각했으며, 저주를 견뎌내고 주문을 실험할 수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저주는 이들을 각성시킨 '원초 의식'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인간의 정신은 육체가 파괴되면 소멸되지만, 이들은 외재적 매개체가 어떻게 무너지든 의식은 깨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울리히는 이 이상적인 상황을 전제로 한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각성자, 루시를 찾아내서 이를 증명했다고 말하려던 찰나, 이니그마가 이게 가설에 불과하지 않냐며 이번에 깨어났다고 다음에도 그럴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고 외친다. 울리히가 그의 손을 뿌리친다.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어, 인간.
이건 의식 각성자의 영역이야...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우리뿐이니까,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해.
울리히
그는 광기가 아닌 이성을 바탕으로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이니그마는 침묵한다. 그때, 피스톤이 침묵을 깬다. 그녀는 2번 부작용 재현에 성공한 것 같다고 한다. 콜먼 실험실에서 제공한 117개 보호 주문은 전부 효과가 없다고도 덧붙이며 시몬에게 기록을 지시한다. 곧 조명이 다시 켜지고, 루시는 실험을 빠르게 진행하길 원했다. 발생할 일을 생각하면 소모될 금속량이 어마어마했지만 이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한다. 로봇이 이니그마를 돌아보더니 놀란 듯 묻는다.
...아들러 연구원, 왜 여기 있는 거지?
음, 당신의 그 컴컴한 방에서 나와 다시 연구 센터의 단체 작업에 동참한 걸 보니 기쁘네.
갑자기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루시에게 시몬이 그는 실험팀 멤버가 아니며 멋대로 들어온 거라고 정정해준다.
그래? 미안, 깨어날 때마다 무작위로 일부 데이터가 사라지거든.
그녀는 이니그마에게 자기와 할 얘기가 있는지 묻는다. 이니그마는 울리히가 이미 다 말해줘 더 이상 할 얘기는 없다고 답한다. 그가 이 실험의 위험성을 제대로 평가했는지 묻자, 루시는 마도학에서는 가늠할 수 없는 게 많다고 답한다. 그녀는 어쩌면 여기서 '신념'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니그마는 루시가 했던 말처럼 그녀가 '신념'을 논한 것을 의외로 여긴다. 루시는 태연하게 다시 실험대에 앉는다.
파일:7장루시실험대3.png
루시는 실패와 성공의 여러 확률을 계산해 봤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가 속수무책인 미지의 상황에 갇혔을 때, 우리는 무엇에 의지해야 앞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찾을 수 있냐는 것이다. 루시의 드문 감성적인 모습에 이니그마가 그녀의 회로가 끊어진 건 아닌지 의심한다.
이런 어둠 속에서 우리가 가진 건 '앞으로 나아가려는 신념' 밖에 없으니까.
루시
루시는 최초의 증기기관이 울릴 때 세상에 눈을 떴다고 한다. 그때 그녀의 회로를 가득 채운 단 하나의 순수한 열정이 바로, '앞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인간들이 과학과 이성의 높은 탑을 세우고, 그 탑이 혼란과 파괴를 불러오는 것을 봤지만, 인간들은 그럼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종착지가 어디든 '폭풍우'가 모든 것을 멈추게 하기 전까지는, 우린 결국 앞으로 나아가야 하니까.

루시는 이니그마에게 자신에게 신념이 있는 한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걱정 말라고 말한 뒤, 곧바로 시몬에게 다음 실험의 진행을 지시한다. 이니그마는 자신이 더 이상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그는 이를 악물고 지옥의 광경을 애써 뒤로하며 사무실에서 나간다.

밖에 서있던 울리히는 이니그마에게 우리가 뭘 하는지 잘 봤을 거라고 말한다. 인간들이 '폭풍우' 때문에 신념이 무너질 때, 여길 넘겨받은 건 자신들이라고 한다.
이 거대한 기계가 다시 돌아가게 한 것도, 그 화구에 새 연료를 넣은 것도, 텅 빈 여백에 앞으로 나아가는 계단을 그려 넣은 것도 우리야.
울리히
계속 실험에 참여할 것이냐는 이니그마의 질문에 울리히는 자기는 도움도 안 되면서 떠들어대는 쓰레기가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다고 답한다. 하지만 이니그마의 입에선 울리히가 예상했던 비아냥이 아닌 뜬금 없는 질문이 튀어나온다. 애덤스를 기억하냐는 것이다. 울리히는 그 이름이 가져다준 암담한 기억에 더는 조롱의 말을 뱉지 못한다.
애덤스, 로만, 아돌프, 실비아, 앨버트, 루이스...
그들은 비의 장막에 씻겨 내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지.

멜빈, 프랜시스, 캐럴린, 레오폴트...
그들은 외출 신청 후 소식이 끊겼어.

이제 어쩌면 도라, 리처드, 도킨스, 빅토르까지...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아? 내 스승, 동창, 동료 모두 나보다도 더 여기 서 있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었어.
그런데 그들은 다 떠나고 당신과 나만 여기 남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군.

...그런데 이젠 내가 당신들까지 그 추도자 명단에 올려야겠어, 울리히 팀장?
잠시 숙연해진 울리히는 이내 마음을 다잡고 이니그마의 어깨를 힘껏 친다. 자기까지 그런 나약한 감정에 물들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이전에 빈정거렸던 말을 취소하기로 한다. 루시가 당부한 것도 있고, 자기도 팀워크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이니그마에게 지금은 마도학자의 판이니 우리가 결론을 얻고 난 후에 당신들이 나서야 한다며 가보라고 권유한다.

이니그마는 심호흡한다. 혹시라도 과하게 훈훈한 멘트가 들리는 일이 없도록 신중하게 말을 뱉는다.
그거 알아, 울리히. 당신이 무사히 돌아오면...

당신과 다시는 한 팀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간곡하게 영구 신청서를 써서 위에 제출할 거야.
그럼 우리 중 누구도 팀워크 때문에 골치 아플 일이 없겠지.
이니그마
울리히가 그의 말에 나지막히 웃고는 그 신청을 기다리겠다고 받아친다.

이니그마가 생각에 잠긴다. 논리도 마도학처럼 한계가 있다면 그 한계를 뛰어넘는 열쇠는 그 둘을 합치는 데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는 화학 실험실의 앞에 도착한다. 금속 문패 밑에는 '출입 금지' 팻말이 허연 잇자국과 스크래치와 함께 걸려 있다. 이니그마는 잠시 주저하다가 노크를 한다. 누구인지 묻는 소리가 들려오자 이니그마는 자기 소속과 이름을 말 한 뒤, 메디슨 포켓 연구원을 찾아왔다고 답한다. 그는 메디슨 포켓의 논문 중, '마도학자 혈통의 순수성과 주술 시전 능력의 선형 관계에 관한 논증'을 언급하며 그 데이터가 필요해 빌려도 되는지 묻는다.

이내 문이 열리는데 그곳엔 다른 연구원이 서있었다. 그녀는 이니그마에게 그냥 가져가라며 메디슨 포켓의 논문을 건넨다. 논문의 얼룩은 방금 쓰레기통 속에서 구출해서 그런거라고. 그러면서 메디슨 포켓을 찾는 거라면 지금 밖에 나갔다고 알려준다. 이니그마는 황당해 하며 지금 '폭풍우' 카운트다운 중인데 그가 어디로 간 건지 묻는다. 연구원도 규정에 따라 밖으로 나가면 안되는 걸 안다고 하면서도 말끝을 흐리더니, 메디슨 포켓이 위대한 발상이 떠올랐다며 그건 '폭풍우' 속에서만 실험할 수 있는 것이라 했다고 한다.
====# 오솔길 - 진단 기록——의식 각성자 #====
진단대상: 루시
검사 항목: 엑스레이 촬영, 현상술, 투시술, 자력 감응 검사, 6세~60세까지의 연령별 지능검사, 시력, 청력을 포함한 감지 능력 검사...
임상 결과: 대상의 코어가 주문을 암송한 후 잠시 의식을 잃었다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외장체의 교체성을 고려할 때 해당 부상은 무시하고 코어의 변화만 설명하겠다.
거의 변화가 없다.

피험자의 코어는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으며 명백한 외상은 없었고 내부 손상 역시 발견되지 않았다. 각 검사 지수는 정상이었다. 대상의 외부 몸체가 대부분의 저주를 견디는 것으로 보아 대상의 정신은 물질 운반체의 특성보다 큰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주류 관점 중 하나에 따르면 의식 각성자의 의식은 알려지지 않은 거시적 마도학 현상에서 비롯되며, 아마도 이러한 마도학 현상은 주문의 부작용을 무시하고 코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소수의 저주를 극복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목표는 의식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저주로 사망하지 않는다.

최종 진단: 스스로가 저주의 부작용 샘플이 되어 계속 검증하겠다는 목표의 제안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전 기록에 따르면 의식 각성자는 영원하지 않으므로 관찰을 유지해야 하며 코어 손실이나 정신 이상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실험을 중단해야 한다.

2.16. 수문을 열다

'폭풍우'가 내리기 까지
앞으로 17시간

메디슨 포켓이 '면역 구역'의 경계로 나와서 자연에 감탄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재단 직원이 메디슨 포켓에게 지금 하는 행동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었다. 재단 본부 입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외부 파견자들이 본부로 복귀하는 중이었고, 등록 및 검사 인원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사방팔방 뛰어 다니며 파견 직원을 붙잡고 실없는 소리를 해대는 메디슨 포켓을 재단 직원이 다시 잡아 끌더니 그가 신청한 외출 시간은 딱 15분이라며 이 선을 넘는 순간부터 시간을 잴 것이라고 말한다. 메디슨 포켓은 태연하게 폭풍우 증후군이 나타나면 곧장 돌아갈 거니 걱정 말라고 한다. 그는 이 시대의 증상이 얼굴이 변형되는 것을 제외하면 전부 훌륭하지 않냐고 말한다.
파일:비대칭핵종R추출장치.png
천재에게 일주일은 프로젝트를 뒤엎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메디슨 포켓은 첫 번째 장치를 바탕으로 감도를 크게 높인 두 번째 '비대칭 핵종 R 표본 추출 장치'를 꺼낸다. 그는 표본 추출에 방해되지 않게 면역 구역에서 최대한 떨어져야 한다며 가장 이상적인 거리는 1500km 라고 하나, 이내 그럴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이후 장치 상자를 들고 선을 넘어서 '폭풍우'의 깊은 곳으로 향한다. 재단 직원은 미심쩍어 하며 시간을 재기 시작한다.
아주 좋아. 이제 이 주목할 만한 순간을 지켜보자고...
연구 센터 멍청이들이 '비대칭 핵종 R'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는 걸 증명할 거야.
메디슨 포켓


이니그마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다. 모든 방해로부터 안전한 이 방에서 그는 먼지가 쌓인 화이트보드에다 이번 '폭풍우' 연구가 성공할 수 있을지 가정해 보기로 한다.
Ⅰ. 마도학자가 사용할 수 있도록 주문 파악
Ⅱ. 인간이 사용할 수 있도록 주문 실체화
제일 중요한 '주문 파악'을 다시 나누면...
Ⅰ. 마도학자가 사용할 수 있도록 주문 파악
*a. 시전 조건 달성
*b. 부작용 감소
루시가 생각한 게 이거야. 의식 각성자는 이미 시전 조건을 당성한 상태라서 울리히는 성공한 거고,
재활 센터의 다른 마도학자는 '기적의 가호'라는 걸 느끼지 못한 거지.
그럼 부작용을 없앨 방법만 찾아내면 그들이 주문을 실체화해서 다른 사람도 사용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의식 각성자의 수는 너무 적어서 느리고 효율도 낮아 24시간 안에 마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없는지 생각한다. 루시의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당신은 마도학자가 아니잖아.
왜 그들의 규칙을 신경 쓰지?
그는 지금 생각하던 건 제쳐두고 응용 가능한 부분에서만 고려하는 것을 떠올린 뒤, 과감하게 Ⅱ단계를 지운다.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은 모두가 주문을 사용할 수 있는 시전자가 되는 거야.
문제는 시전 조건에 있는데... 이게 제일 큰 문제군.
그는 손을 멈추고 옆의 논문을 바라본다. 메디슨 포켓의 이론은 정확했다.
파일:7장마도학세포.png
마도학자의 주술 시전 능력과 혈통의 순수성은 선형 관계를 보이며 이건 그들 체내의 독특한 세포군과 연관이 있다. 마도술을 사용할 때 이 세포의 활성이 떨어지고 탕약 나무의 성분은 그것을 활성화해서 마도술 사용 시간을 연장해주지만,[18] 이건 지속성의 문제일 뿐 본질 자체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하급 마도학자는 고급 마도술을 다룰 수 없으며 이는 객관적인 사실이다. 그는 이것을 전압으로 비유한다. 대다수의 혈통은 가전제품과 같아 230볼트의 정격 전압만 있고, '폭풍우' 면역 주문은 1000볼트, 어쩌면 그보다 높을지도 모를 고압 전기인 셈이기에 이런 전압에서 작동하지 않는 가전제품은 그대로 박살 난다는 것이다.

인간은 애초에 주문을 시전할 수 없다. 이니그마 본인도 그 주문을 반쯤 읽었으나 그 어떤 것도 느끼질 못했다는 것을 떠올린다. 그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패배주의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 머리를 굴린다.
이 *같은 이론상으로는 불가능해! 마도학은 확실성이 없다고.
그 **놈들이 거듭 말했던 사실이지... 이런 건 애초에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가 없잖아![19]
마음이 급해진 이니그마는 논문은 치워두고 책상에 쌓인 마도학 문헌을 닥치는 대로 들춰보기 시작한다. 그는 어느 고서에 기록된 의식이나 넘쳐흐르는 영성의 재료 같은 건 없는 거냐고 혼잣말을 해댄다.
...잠깐, 넘쳐흐르는 영성...?
문득 스쳐가는 기억에 곧바로 치워뒀던 자료들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는 울리히가 자기한테 보라고 했던 타임키퍼가 에게해에서 보낸 보고서를 찾아내려고 한다. 그러면서 그 마도학자 집단이 '폭풍우'를 '유출'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생각한다. 대체 무엇이 아래로 흘러내리냐는 것이다.

그때, 갑자기 문 앞의 책더미가 쓰러지더니 이내 진흙 골렘으로 변해버린 도킨스가 문을 열고 그의 방에 들이닥친다. 그는 크게 놀라지만, 이내 도킨스가 자신을 공격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후 책더미를 쓰러뜨린 것이 유령으로 변해버린 빅토르인지 혼잣말을 하자, 도킨스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보드펜이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벽에 글씨를 적기 시작한다.
나예요.
이후 펜은 방향을 바꿔 문밖을 가리킨다.

그는 방 밖으로 나온다. 바깥은 또 실험 사고가 일어나기라도 한 듯 떠들썩했지만 이번에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기쁨이 흐르고 있었다. 그때, 직전에 만났던 메디슨 포켓의 동료 연구원이 근처에 있던 이니그마를 부른다. 그가 연구에 진척이 있는 건지 묻자 그녀는 메디슨 포켓의 추측이 증명되었다고 한다. 성분은 아주 적지만 그가 '폭풍우' 상황인 바깥에서 '비대칭 핵종 R'을 검측해냈다고 한다. '비대칭 핵종 R'은 맨 처음 '폭풍우'의 빗방울 속에서 발견됐기 때문에 합리적인 추측이라고. 그건 '폭풍우'가 오기 전 24시간 동안 대기 중에 퍼져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손쉽게 '비대칭 핵종 R'을 추출할 방법이 생겼다는 것이다.

연구원의 설명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한다. 이니그마의 표정이 매우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그는 '유출'과 '비대칭 핵종 R'을 되뇌인다.
그녀가 옳았어. 주문은 유효해. 누구든 사용이 가능하지... 방법도 간단하잖아. 바로 우리 앞에 있다고!
'폭풍우' 기간의 외부 세계는 천연 그대로의 의식 장소와 같아 모든 시전 재료가 다 있다는 것이다. 이니그마는 이는 고압 전기 탑과 같아서 전선을 끌고 오기만 하면 된다고 비유한다. 그는 연구원과 자신을 도와준 도킨스와 빅토르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급하게 뛰어간다.[20]

마침내 그는 기밀 문 입구에 도착한다.
울리히 팀장, 루시를 만나게 해줘!
그녀에게 전해... 내가 한계를 뛰어넘을 방법을 찾았다고.
이니그마

2.17. '폭풍' 연설

이니그마가 두 의식 각성자들 앞에서 화이트보드를 들고, 혈통의 한계를 해결할 방법을 설명한다.
파일:7장이니그마보드1.png
그는 이번에도 전류로 비유한다. 대부분의 상황에선 주문 시전자가 사용하는 건 자신의 혈관에 있는 마도학 회로이기 때문에 이럴 것이라고 한다. 가전제품이 고압 전류를 감당할 수 없는 것 처럼, 하급 마도학자는 고급 주문을 다룰 수 없다. 그런데 만약, 주문 시전자가 특수한 전기장에 있고, 외부 세계에 있는 회로의 힘을 빌린다면 어떻게 되냐는 것이다.
원래 가전제품을 쓰는 건 마도학자 본인뿐이었지.
그런데 만약 우리가 지구 전체를 포함시킨다면...?!
우리가 대기 전체로 전류를 분담한다면?!
울리히가 우리는 가전제품이 아니라며 그의 말을 끊는다. 이니그마는 얘기를 끝까지 들어볼 것을 부탁한다. 루시가 경청해주는 덕에 그는 말을 다시 이어 나간다.
파일:7장이니그마보드2.png
'폭풍우'가 내리기 전 24시간 동안 세계는 솟구치는 마도학 에너지 속에 놓이게 되고, 이때 외부 세계는 영성이 넘쳐흐르는 거대한 주문이자 특수한 전기장이 된다. '폭풍우' 면역의 핵심 성분인 비대칭 핵종 R이 당당하게 대기 중에 숨어 있는 것이다. 정답은 늘 문제 안에 있었다. 필요한 건 시전자에게 부족한 '마도학 에너지'를 외부 세계에서 빌려올 전선뿐이다.

이니그마는 연구 센터가 계산에 필요한 데이터를 이미 갖고 있다며 지난 8년 동안 세운 관측 시스템인 헛수고가 아니었다고 외친다. 혈통이 X인 사람이 '폭풍우' 속에서 '전기'를 얼마나 빌려와야 하는지 알려주니 말이다. 그다음, 시전자가 외부 세계에서 '전기를 빌릴 때' 도와줄 변환기를 만들면 더 이상 한계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니그마의 설명이 끝나고, 울리히는 그의 말을 헛소리로 여긴다. 울리히가 비유의 논리에서 추론을 완성한 것을 지적하자 이니그마는 뒷부분이 순수한 이론적 내용이란 건 인정하지만 출발점은 정확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울리히는 마도학은 전기학이 아니라며 이니그마가 그 원리를 전혀 모른다고 외친다. 이니그마는 그것도 일종의 에너지가 아니냐고 반박한다. '폭풍우'의 원리를 아는 사람은 없지만 그게 거대한 마도학 에너지장인 것은 맞다. 그는 당연히 그걸 써먹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용히 듣던 루시가 이니그마의 얘길 이해했다며 기발한 발상이라고 평가한다.
괜찮아, 울리히. 내가 보니까 인간은 늘 똑똑하면서도 어리석더라고.
그래서 동료 심사 매커니즘이 있는 건가 봐.
이니그마는 이해해줘서 고맙다고 하려다가 이내 말문이 막힌다. 루시는 자신이 익힌 소통 스킬이 통해서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인다.

루시는 인체와 물체가 발산하는 독특한 에너지장을 촬영하는 고전압 촬영기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기법은 이후 마도학 계량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근거가 됐고, 그 성과는 오늘날 '폭풍우' 관측 시스템에도 쓰이게 됐다. 그건 볼 수 없지만 분명 존재하는 마도학의 '눈 부신 빛'을 우리가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루시는 이니그마의 추론에 타당성이 있으며 연구 센터에 그걸 수행할 모든 기술이 갖춰져 있다고 한다. 그녀는 울리히에게 존 티토를 찾아서 공식 계산을 맡기고, 안전 구역 밖에서 실험을 진행하라고 지시한다. 주문 내용은 그들에게 알려주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울리히는 내심 내키지 않았지만 이내 재빨리 나간다.

루시는 다음으로 시몬에게 이를 X한테 알려달라고 지시한다. 그가 개발했던 '밸런스 헬멧'을 이니그마가 말한 변환기의 프로토타입으로 쓸 수 있다고 한다. 그 헬멧은 몸 안팎의 에너지장의 균형을 잡아주어 한때 고위험 마도술 제품을 다루는 연구원을 보호하는 데 사용되었다. 하지만 부작용에 대한 연구가 끝날 때까지 실험 신청은 보류하라고 덧붙인다.

업무 배정이 신속하게 이루어지자 이니그마는 자신이 할 일은 없는지 묻는다. 루시도 마침 그걸 논의하려던 참이라고 답한다. 그녀는 굉장히 획기적인 구상으로 인간 사유의 유효성을 증명했다며 폭음에도 지능이 떨어지지 않았다며 칭찬한다. 그녀는 그 구상이 실제 적용되어 더 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이니그마는 술을 끊은지 7년이나 됐다며 의아해 한다.[21]

그런데, 루시가 그의 대책에서 한 가지 빠진 게 있다고 말한다.
당신의 종족, 당신의 종족...
인간은 어떻게 시전하지?
루시
이니그마는 정곡을 찔렸다고 느낀다. 그는 효율의 극대화를 바탕으로 구상을 세워서 인간까진 고려하지 못한 게 맞다고 말한다. 인간까지 포함하려면 이후에 만들어질 면역 방어구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들이 주문을 완벽하게 파악한 후, 그걸 제품에 집어넣어야 한다. 루시는 그러니 이제 이니그마가 그걸 계속 개선해야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폭풍우'는 이제 16시간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시간이 없다고 외치지만 루시는 계획 중 실현할 수 있는 부분은 이미 실행 중이라며 그의 구상이 낭비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말한다. 그녀는 모든 사람을 구할 수 있도록 계획을 완성해달라고 부탁하듯 지시한다. 그녀의 지시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이니그마는 그녀의 말을 인정하고 수긍하며 밖으로 나간다.

초안 작성을 마친 시몬이 이니그마가 자기 동족을 '간과'했을 리는 없을 테지만 그는 동족을 포기하고 이 계획을 우리에게 제시한 거라고 하며 그에게 너무 가혹한 건 아닌지 묻는다. 루시는 실험대에 앉으며 이게 옳은 판단이라고 답한다.

그때, 내선 전화가 울리고 시몬이 받는다. 그녀는 가능한 모든 기술적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답한 뒤 전화를 끊는다.
...루시 씨, 제노입니다.
3시간 전에 타임키퍼 소대의 모든 통신이 두절됐다고 합니다. 연구 센터에서 기술 지원이 가능하냐고 묻더군요.
...즉시 섬의 우리 측 사람에게 연락해야 한다고 합니다.
시몬


아이의 웃음 소리가 들려온다. 소피아가 혼란 속에서 의식이 깨어나며 신음을 흘린다.
걱정하지 마, 소피아. 이건 그저 게임일 뿐이야!
나 금방 나갈 거야... 걱정되는 거면 해변에서 기다려, 알았지?

안 돼, 37, 가지 마!!!
강렬한 폭음이 터져나오고, 소피아는 돌 위에서 깨어난다. 그녀는 풍비박산이 나버린 해변가의 모습에 충격을 먹는다.
====# 오솔길 - 암호화 기록#882 #====
"제노가 타임키퍼와의 전용 라인 구축에 대해 보냈던 협조 요청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요."
"구체적인 내용은 군사기밀이어서 밝힐 수 없습니다."
"과학 연구소는 먼저 제노가 원하는 통신의 목적을 파악하고 전용 라인을 만들 가치가 있는지 판단해야 합니다."
"제노의 행동 목적은 군사기밀이어서 밝힐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간단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계속 대답하지 않는 것은 암묵적 동의로 여기겠습니다."
"저는 대답할 권한이 없습니다."
"...좋아요. 제노는 재건의 손에 대한 군사 행동을 준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타임키퍼와 교신이 필요한가요?"
"대답할 수 없습니다."
"좋아요, 이번 행동은 타임키퍼의 안전을 보장해 주는 건가요?"
"대답할 수 없습니다."
"이건 굉장히 비상식적인 작전이지요?"
"대답할 수 없습니다."
"이번 작전은 인류 평화 안전보장이사회의 동의를 얻었을 겁니다. 그렇습니까?"
"우리는 군인이고 명령을 수행합니다, 아가씨."
*이후 제노 측은 전화를 끊었다.

2.18. 모든 것은 수이다

소피아는 이명을 느낀다. 그녀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린다. 다들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고, 그녀는 그들을 위해 광장에서 기도를 하던 도중 지진이 일어났다. 생각에 잠긴 소피아의 머리 위로 폭격기가 지나간다. 인간 군대가 섬으로 쳐들어온 것이다. 그녀는 분명 재단 마도학자가 중재할 것이라고 했다며 그들이 약속을 어긴 건지 의심하게 된다.
진정해, 소피아. 네 영혼은
점점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있어.
그녀는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애쓰며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마음 먹는다. 침착함은 '정수'가 되기 위해 필요한 미덕이었다. 그녀는 허리춤의 자에 손을 올리고 경건하게 주문을 외운다.
Ένα ευθύγραμμο τμήμα σχηματίζεται όταν ενώσουμε δύο σημεία![22]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소피아는 정화 의식이 실패했는지 걱정한다. 그녀는 한참을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다. 그러다 시야에 익숙한 모습이 나타나고, 이내 그것이 42임을 알아본다. 그는 허공을 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소피아가 그를 도와주러 가려던 그때, 미쳐버린 인간 군인들의 웃음 소리가 들려온다. 이후 폭격이 떨어지고, 42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된다. 충격 먹은 소피아는 자신에게 진정하라고 연신 되뇌인다.
정수는 미덕의 화신이자 정화의 모범이며,
한 사람의 영혼이 이념 세계에 대응되는
존재이자, 진정한 인간이다.
그녀는 42가 있던 곳으로 갔고, 이내 헛구역질을 하게 된다.

만물의 원리는 수이다.
만물의 원리는 수이다.
만물의 원리는 수이다.
소피아는 목소리를 떨며 그는 그저 6과 7로 분해된 거라고 혼잣말한다.
42=6×7
다른 사람을 찾아 42의 일을 알려야 한다고 말하던 그때, 절벽에서 다른 교인이 소피아를 부르며 대피 장소로 가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얼마 못 가 그 교인도 폭격에 휩쓸리고 만다. 소피아의 숨이 격하게 가빠진다.
18=2×9
이대로 무너지게 둘 순 없던 그녀는 동굴로 가야 한다고 판단한다. 그때, 어린 교인 '레이시'가 덤불 속에서 웅크린 채 흐느끼며 소피아를 부른다. 자신에게 오라는 소피아에게 레이시는 거부하며 '그 사람들'한테 가지 않을 거라고 외치더니, 갑자기 얼굴이 물감으로 물들게 된다. 그녀의 얼굴을 본 소피아가 놀라자 이내 그녀는 숲 안으로 달아난다.
우리의 정화를 방해하는 건
부동소수점이다.
소피아는 레이시의 영혼이 걷잡을 수 없는 '오류' 상태에 놓였다며 검수자인 자신이 이곳의 오류를 수정해야 한다고 마음 먹는다.

소피아는 두통을 억누르며 37을 찾아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기로 한다.
37=1×37
소피아는 37이 소수이기 때문에 쉽게 분해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그녀가 시련을 통과하고 모든 걸 초월한 진리를 손에 넣고, 오류가 전부 수정되어 모든 것이 원상복구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게 바로 진리니까.

용기를 내라! 평범한 인간도 신성한 종족이니까.
자연은 이미 그들에게 모든 오의를 보여주었다.
네가 그 선물을 깨우친다면 너는 내가 당부한 모든 일을 이룰 것이다.
너의 영혼을 치유하고 모든 악과 죄업에서 구원을 얻으리.
〈황금시편〉
37이 기대한 대로 소피아는 동굴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화약 연기를 뒤집어 쓰지 않은 37은 소피아의 옷이 왜 헤진 거냐고 천진난만하게 물을 뿐이다. 소피아는 멀쩡한 37의 모습을 보고 크게 안도한다.

37의 뒤를 따라온 버틴이 바깥이 좀 이상하다고 말하는 것을 소피아가 끊고 들어와 37의 팔을 붙들고 아페이론을 만나 그 질문을 했는지 묻는다. 37은 친구에게 설명해줘야 한다는 것에 정신이 팔려 바깥의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그녀는 한 번의 고생으로 영원히 '유출'을 피할 방법을 물어봤다고 하며 자신이 얻은 답을 말한다.
모든 것을 초월하는 진리.
또한 모든 것을 구원할 주문.
전부이자 마지막인 희망.
그녀가 가장 기대했던 순간.
...그게 다야?
아페이론이 준 궁극의 해답이... 일련의 숫자라고?
소피아
그녀의 질문에 37이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의 유한한 육신으로는 그 초월적 진리를 감당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녀는 시간을 조금만 더 주면 자신이 이 암호를 풀 수 있다고 장담한다. 자신의 폐가 타들어가는 것을 느낀 소피아는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나지막히 묻는다.
글쎄, 한 달? 아니면 일주일?
37
37은 자신의 생에 가장 어려운 증명이 될 수 있지만 결국엔 알아낼 거라며 언젠가 우리를 진리의 왕국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때, 37이 소피아가 우는 것을 발견한다. 그녀의 얼굴은 이미 눈물로 얼룩져 있다.
너무 오래 걸려... 37...
그렇게 너무 동떨어져 있는 진리는 지금 우리에게 닥친 현실을...
바꾸지는 못해...
소피아
소피아는 37의 손을 뿌리치고 발악하듯 현상 세계의 먼지와 연기 속으로 뛰어든다. 그녀는 내달리며 지금의 상황에 오열한다. 자신이 왜 달리고 있으며, 왜 아직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게 된다. 그저 걱정만이 몸 안에서 타오를 뿐이다.
이것이 진리인가?
이것이 답인가?
진리가 돌고 도는 생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한들...
수레바퀴 안에 있는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안녕. 길을 잃은 아이야.
아르카나
소피아는 이 모든 참상과 동떨어진 이를 맞닥뜨린다. 아르카나는 슬퍼하는 그녀에게 '진리'가 보살펴주지 않은 거냐고 묻는다.

2.19. 길의 갈림길

37은 폐허가 되어버린 해변을 바라본다. 그녀는 자신이 시련을 통과하고 답을 얻었는데도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 자신의 탓인지 궁금해 한다. 버틴은 이를 부정하며 외부 세계의 히스테리가 번진 것뿐이라고 한다. 모든 것이 예상을 벗어났다고 판단한 버틴은 크로노그래프를 들여다 본 뒤, 이내 자신과 37이 동굴에 들어간 지 벌써 6시간이나 지났단 걸 깨닫는다.[23] 버틴에겐 이전에 6이 제시한 철수시간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젠장, 제노 아카데미와의 계획이...
버틴
그녀는 지금이 초비상사태라고 판단한다. 다른 동료들을 찾기 위해 37에게 가야 한다고 말하려는데, 37이 소피아를 찾아야 한다고 외친다. 37이 뛰어가려던 그때, 어디선가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파일:7장6폐허1.png
돌기둥 뒤에 쓰러져앉아 만신창이가 된 6의 모습을 본 37은 크게 놀란다.
...시련을 통과한 건가? 무엇을 묻고 어떤 답을 얻었지?
37은 아페이론에게 얻은 답을 세 번째로 얘기한다. 잠시 침묵에 빠지게 된 6에게 그녀는 다들 정화 의식을 하러 간 게 아니냐고 묻는다. 이후 소피아를 언급하는데, 6의 옷자락이 짙게 젖어 든 걸 발견하자 결국 입을 다물게 된다. 6은 버틴에게 할 말이 있으니 와 달라고 부탁한다.

여기서 위로 가면 나오는 광장에 버틴의 동료와 다른 교인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정화'는 마쳤습니다. 상황이 잘 풀린다면 영향을 받았던 사람도 바로 깨어날 겁니다.
버틴은 정화 의식 도중 무슨 일이 있었고, 그 지진 이후 자신과 37이 기이한 꿈을 꿨다며 그때 섬의 모두가 잠에 빠진 것인지 묻는다.
우리의 신앙이 이 땅의 질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신앙이 무너진 것뿐입니다.
37은 믿지 못해 되묻는다. 버틴은 처음 섬에 왔을 때 거대한 주문이 섬을 감싸고 있다고 추측했던 것을 얘기한다. 그 주문이 이들이 말한 '원'인 것인지, 그게 의식에서 무너진 건지 묻는다. 6은 의식은 의식일 뿐 신앙의 근원이 아니라고 일축하고, 우리를 무너뜨린 건 우리가 끊임없이 추구하던 진리라고 한다. 그는 37을 보지 않고 허공만 바라보며 무덤덤하게 답을 내놓는다.

아르카나가 현자들이 지식에 눈이 멀어 현실에 태만하다고 비판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의 그 대단한 지혜는 어딨는 거냐고 묻는다. 소피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르카나는 소피아의 마음속 비명과 절망이 들린다고 말한다. 그녀는 몇 년을 타인을 위해 공헌하고 기도하며 고행을 이어 나간 소피아의 그 충실한 마음은 누구도 의심하지 못할 거라고 한다.
...그런데도 '진리'는 당신을 선택하지 않았죠, 아닌가요?
소피아는 이를 애써 부정하며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쉽게 움직이질 못한다. 설령 벗어난다 해도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른다.

아르카나는 경건한 이에게 내리는 축복이라며 그녀에게 다른 선택지를 준다고 한다. 무슨 말인지 눈치챈 소피아는 교리에 어긋난다며 거부한다.
...교리?
하지만 당신은 그들의 일원인 적이 없지 않나요?
진리가 그걸 증명했죠.
파일:7장소피아숫자2.gif
누구도 운명을 피할 수 없어요. 언제나 그랬죠.
아르카나
소피아는 자신의 발치에 닿은 유리병 안에 담긴 쪽지를 펴 본다.


파일:7장소피아숫자3.png
√2
소피아의 귓가에 이명이 들리고, 그녀는 이내 쓰러진다.

37은 6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학파의 신앙을 고수해야할 학파의 수장이 신앙의 종말을 고했다. 37은 엄마가 얻은 초월적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답이 맞을 거라는 걸 본인도 안다고 말한다. 지고의 존재도 혼돈에 빠졌고, 그렇게 현상 세계의 분란도 '본질'에 영향을 주기 충분해졌다.
하지만 혼돈 역시 일종의 진리 아닌가...?
무리수 역시 숫자인 것처럼. 네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건 거기 존재할 뿐이야.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모두의 신앙이 그것 때문에 무너진 거야?
37
6은 여전히 그녀를 보지 않는다. 그는 이건 37의 문제도 아니고, 정답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답하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이후 시련의 장소에서 자신에게 했던 대답을 기억하냐고 묻는다. 37은 고개를 끄덕이고, 6은 그럼 충분하다고 말한다.
넌 이해하지 않아도 돼. 타인과 다르다고 해서 자신을 의심할 필요도 없어. 그저 너의 길을 걸으면 되는 거야.
넌 잘못한 게 없으니까.
37은 이를 바로 이해하지는 못한다. 6이 버틴에게 부탁할 게 있다고 말한다. 그는 배의 상처를 부여잡으며 마도술의 빛을 모으는데, 빛은 얼마 못 가 사라지고 만다.
보시다시피 저는 이제 함께하기가 어렵습니다.
혹시라도 최악의 상황이 닥친다면 37을 데리고 떠나, 37이 숫자 암호를 풀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37은 충격 먹은 듯 놀라지만 버틴은 아무런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수락한다.
그의 생기 없는 푸른 눈동자가 점점 어둡게 가라앉았다.
6은 우리의 삶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한다. 조화와 절제 속에서 자신을 억누를 것인가, 아니면 격정과 광기 속에서 파멸로 향할 것인가. 전자는 좁은 숲속의 오솔길이고 후자는 끝없는 어둠이라고 한다. 그는 1에서 10까지 모든 숫자는 특별한 도덕적 의미를 갖고 있지만 6은 학파 수장을 맡고 있다고 한다.
6은 균형을 의미하니까.
버틴
6은 긍정하며 우리는 언제나 격정과 이성의 조화에 신경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이 심오한 숲을 빠져나가 핏줄 깊은 곳에서 시작된 부름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학파는 계율과 맹세를 지키며 현상 세계를 뒤로하고 지고한 존재를 향해 지식의 숭배를 바쳤다. 이런 믿음이 섬에 번영을 가져오고, 구원을 얻을 수 있게 해줬다.

버틴은 학파가 싫어하는 '무리수'가 다른 격정과 광기의 길에 해당하는 건지 묻는다. 6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계속 이어진 '유출'에 의해 외부 세계와의 연결이 끊어졌다고 한다. 4년 전의 탐색은 무의미하다 판명됐고, 이들은 가장 뛰어난 학자들을 잃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이들의 실패를 가져온 건 신앙 내부의 위기였다. 배는 전복되었고, 그 역시 기울어진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을 힘이 없다고 한다. 학파는 분열되고, 타지에서 온 광신자들이 그 허무 속에서 그들이 가장 갈망하는 증오를 퍼뜨릴 것이라고 한다. 버틴이 재건을 막을 거라고 장담한다. 이에 6이 눈을 감고, 앞서 했던 약속을 잊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그때, 익숙한 모습들이 이쪽으로 다가온다. 6은 그들이 정화 의식에 참여하지 않은 분수와 숫자 없는 제자라는 것을 알아본다. 하지만 그들의 차림새는 예전과 전혀 달랐다. 재건의 복장을 입은 그들은 6이 학파를 이끌 능력이 없단 게 증명되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정화란 게 무슨 도움이 된 거냐 물으며 이게 '정수'의 미덕이라면 차라리 영원히 분수로 남겠다고 선언한다.

37이 정화 의식에서 사고가 났다며 6을 변호하려 하지만 다른 재건 교인이 고상한 숫자놀음이나 한다며 37보고 비키라고 소리친다. 교인은 분쟁을 피하면 영원한 평화가 보장될 거라 믿었던 게 어리석었다고 하며 인간이 저지른 이 끔찍한 짓을 보라고 외친다.
우리는 행동해서 우리에게서 빼앗긴 것을 되찾아야 해. 그게 바로 진정한 '구원'이야.
재건 교인
37은 자신이 '진리'를 얻었다며 자신의 말을 들어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하지만 이젠 이들에게 그 '진리'란 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교인은 그건 인간에게 맞서는 데에도 도움이 안 되고, 폭격에 목숨을 잃은 동료를 살릴 수도 없다고 외친다. 교인이 맹세한 학파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쓸 수 있는 진리의 주문을 읊는다. 하지만 그에게 믿음이 무너진 지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른 교인이 인간을 선택한 정수들과는 더는 말 섞을 필요가 없다며 재단의 사자를 죽이고 머리를 베어내 위대한 '어머니' 께 바치자고 외친다.

버틴은 이들이 가면 때문에 이성을 잃어 더이상 대화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그녀는 저들이 노리는 건 자신이니 37에게 6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피하라고 지시하고, 자기는 광장에 가서 일행들을 찾을 거라고 말한다. 외부와 통신이 가능한 미스 라디오가 그곳에 있었다.
걱정하지 마. 앞서 재건의 손을 상대로 세워둔 계획이 있으니까. 지금 실행해도 그렇게 늦은 건 아니야.
버틴

2.20. 그리스 비극

이 세계는 하나의 관문이다.
적막한 혹한의 황무지로 향하는.
잃어버린 이들이여.
그대가 잃은 건 이미 유토피아에 있다.
프리드리히 윌리엄 니체 〈고독의 노래〉
모래사장 위로 불길이 번진다. 인간, 재건, 교인이 한데 섞여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포화의 번쩍이는 빛과 마도술의 눈 부신 빛이 서로 비추고, 해양 생물의 사체가 널브러져 있다.

6을 보살펴 출혈이 멎게 만든 마르타가 37에게 나갈 것이냐 묻는다. 37은 6을 부탁하고 소피아를 찾아야 한다며 밖으로 달려 나간다. 바깥은 광기에 물들어 굉음과 포화로 가득 찼다. 거대한 진동 탓에 넘어져버린 37의 앞에 소피아가 나타나 괜찮냐고 묻는다. 37이 반가운 목소리를 듣고 손을 내밀려던 찰나, 소피아의 복장을 보고 멈칫한다.
파일:7장소피아재건1.png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복잡한 심정을 내리눌렀다.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까?
소피아는 37에게 자신의 숫자를 알게 됐다며 37의 계산이 정확하다고 말한다. 이에 37은 진심으로 기뻐한다. 위대한 예언자의 아주 좋은 숫자라며 항상 알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37은 잠시 숫자 이야기를 멈춘 뒤, 소피아의 눈을 들여다 본다.
...우리 아직 친구 맞지, 소피아?
37
소피아는 여전히 이러는 37의 모습을 우스워한다. 그녀는 무미건조하게 아직 친구라고 답하더니, 더 중요한 게 있다고 말한다.

정신나간 인간 군인이 비행기를 몰고 이들의 위로 날아와 폭격을 실시하려고 한다. 이에 소피아는 망설임 없이 주문을 외운다.
Διορθωθεί το σφάλμα![24]
비행기가 공중에서 깔끔하게 폭발한다. 적잖이 충격을 먹은 37에게 소피아는 작별인사를 고한다. 자신에게 아르카나가 다른 길을 제시해 줬다고. 37은 자신이 진리를 찾았는데도 떠나려는 이유를 묻는다. 자기한테 조금만 시간을 주면 모든 게 좋아질 거라고 약속한다.

소피아는 눈을 감고 잠언을 떠올린다.
올림픽 경기장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장 낮은 등급은 현장의 상인이며, 다음은 참가 선수다.
그중 가장 높은 경지는 바깥의 관찰자다.
이 지혜로운 자들만이 진정한 현자이며...
그들만이 자신을 '생의 수레바퀴'에서 완벽하게 구할 수 있다.
...모두가 다 너 같진 않아, 37.
바깥에 있을 자격은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거든.
소피아가 손에 든 성상을 움켜쥐자 끈적한 검은 액체가 번져나가더니, 순식간에 공중의 비행기가 사라지고 하늘이 노란 빛으로 바뀐다. 소피아는 더 미룰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재건으로 들어가 모든 교리를 버리고 현상 세계에 가서 복수의 소용돌이에 몸을 던질 것이라고 한다.
파일:7장소피아재건2.png
이리 와, 37.

그녀의 눈에 눈물이 흐른다.
네가 정말 모든 걸 극복하고 뛰어넘을 수 있는 천재라면...
나에게 널 증명해봐.
날 막아줘, 뛰어넘어줘, 쓰러뜨려 줘...
...날 부숴줘.
37은 그녀가 이러는 이유를 궁금해 한다. 소피아는 이것이 예정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운명은 무리수고, 학파를 등지고 선택했어야 할 길을 택한 것이라고 하며 자신도 주저하지 않을 테니 37도 그러길 바란다고 말한다. 37은 절망한다.

37의 마도술이 소피아의 옷자락만 가르자, 그녀는 왜 살려 주는 거냐고 묻는다. 37은 싸우고 싶지 않다고 울먹거리며 외친다. 잠시 침묵에 빠진 소피아는 이내 고개를 젓더니 37에게 정신이 나갔었다며 사과한다. 37의 손은 진리를 떠받들기 위한 것이지, 싸우기 위한 게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난... 길 앞의 먼지를 치우는 게 나의 사명이지.
안녕, 나의 친구.
소피아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그대로 돌아선다. 이후 곧바로 재건의 신도들에게 해변의 '청소'를 서두르라 지시하고, 아르카나의 인도에 따라 섬을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37이 소피아를 부르려던 그때, 소네트가 나타나 그녀를 대신 부른다. 소네트는 악몽과 다른 곳에서의 전투로 인해 정신을 많이 소모한 상태였다. 그녀가 소피아에게 어째서냐고 물어보듯 째려보자 소피아는 다 각자의 사명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곤 소네트의 옆을 스쳐 지나가며 이번엔 싸우지 않겠지만 다음엔 적이 될 거라고 말한다.

눈 깜짝할 새에 소피아를 포함한 재건 신도들이 사라진다. 해변에는 자갈과 금속 잔해만 남아 그들이 이미 해변의 청소까지 마친 모양이다.
진리는... 모든 것을 초월하고, 현상 세계의 모든 먼지를 능가해야 하는데...
진리가 우리를 빛의 전당으로 이끌고, 모두가 불행과 악에서 벗어나 행복할 수 있게 해주는 거... 아니었어?
나는 믿었고 또 손에 넣었는데... 그런데...
37
37이 주저앉아 울먹거리며 자신을 탓하기 시작한다. 그때, 소네트와 함께 온 버틴이 37에게 진리는 배신하지 않았다고 확답한다. 이들은 아직 그 암호를 풀지도 않았던 것이다. 37은 "암호..."라고 나지막히 뱉으며 버틴의 손을 잡고 일어난다.

버틴은 아르카나가 아직 떠나지 않았다는 릴리아의 보고를 전한다. 그녀는 모든 게 진짜 끝나기 전에 재건을 막을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크로노그래프는 15시간이 남았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버틴은 소네트에게 가자고 말한다.
====# 오솔길 - 숲 속의 행적 #====
이를 위해 만들어진 운명이 있고,
잠언과 예상이 있으며,
신중한 생각과 발걸음이 있다.
선택되는 것은 곧 믿음이다.

숲은 그 안의 모든 것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열정 아니면 이성.
여행자는 더듬더듬 손을 내밀어 가지와 잎 사이로 넘어지거나
조용히 좁은 길로 돌아서거나
몸을 돌려 떠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다.

읽어라. 그 소리가 재촉한다.
지금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다가오지 않는다면
이 손을 놓았을 것이다.
그것은 이전에도 없었다.


앞으로 나와라. 사람은 그렇게 말했다.
상인, 참가자, 일반인과 영웅.
이야기하기 전에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연회가 시작되면
그들은 어떻게 사라져야 하는가?

그 밖에 있는 자는
이를 위해 만든 시간이 아직 오지 않은 것이라며
그것을 초월한다고 자인하는 자는
아직 대열에 없는 것이다.

2.21. 오마주의 대가

라플라스의 연락원이 섬의 통신이 복구되었고, 제노도 타임키퍼 소대와 연락을 취했음을 보고한다. 시몬은 이제 연구 센터의 지원은 여기까지라고 알리면서도 전화를 끊지 않고 질문을 한다.
...다시 확인하죠. 여러분의 작전이 인류 평화 안전 이사회의 뜻이 맞습니까?
시몬
전화 너머의 상대는 침묵을 유지하다 물론이라고 답한다. 그는 우리가 군인이며 명령을 수행한다고 말한다.

버틴 일행은 아직 공격 받지 않은 섬의 고원에서 아르카나와 만난다.

아르카나는 이 섬이 흥미롭다고 말한다. 현자들이 발밑에 원을 그리고 자신이 세상 밖에 서있다고 주장하고 대대로 이에 성실히 임하며 원을 지키고 숭배했지만, 그건 결국 모래 위에 그려진 원이었다고 한다. 버틴은 동의하지 않으며 모래땅이 약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영원을 추구하는 거라고 반문한다.

그러는 한편 인간의 비행기에 이 시대의 것이 아닌 무기가 실려 있었다며 재건이 기술을 제공한 건지 묻는다. 아르카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보인다. 버틴은 원한을 부추기고 섬의 순혈 마도학자를 구하는 재건의 목적은 이미 이뤘을 텐데 이들이 이러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여길 거점으로 삼을 거였다면 정화 의식이 실패했을 때 움직일 수도 있었지만 아르카나는 줄곧 이곳에만 있었다. 이번에도 아르카나는 그저 웃는다.
이해가 잘 안되죠, 버틴?
...난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르카나
버틴이 섬찟 놀라고 릴리아가 소네트와 함께 그녀의 앞으로 나서며 바로 시작하자고 말한다.

아르카나는 안타깝다고 말하더니 자신의 팔목에 있던 석제 팔찌를 내보인다. 팔찌가 미끄러져 떨어지고 이내 가루로 변한다. 그녀는 이걸 간직하고 싶었다고 아쉬워하면서 버틴의 것은 어떻게 풀 거냐고 묻는다. 버틴의 팔찌는 아직까지도 붙어있었다. 레굴루스가 섬이 이 지경이 됐는데도 작동하는 이유를 궁금해 하지만 소네트는 계획 대로라고 한다.

소네트는 처음엔 섬의 규칙에 의문이 들었지만 점점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자연어를 바탕으로 전달되는 지식은 취약하고 허점이 많기에 교인들은 더 정확한 수학을 받들고, 그걸 진리의 언어로 본 것이다. 그들은 언어의 모호함을 비웃고 모순을 파헤쳤다고 한다. 마치 그 변론과 이 팔찌의 규칙처럼. 릴리아도 소네트의 주장을 이어가려는 듯 팔찌의 규칙인 '먼저 공격할 수 없다'의 '공격'이 뭐냐고 질문을 던진다. 소네트는 이를 '공격 의도가 없으면 공격으로 판정되지 않는다' 라고 해석한다.

아르카나가 흥미롭다며 웃고는 소네트를 '재단의 강아지'라 부르며 충성스러운 동료를 희생할 준비가 됐는지 묻는다. 이내 그녀의 뒤에서 모호한 피조물 형상이 나타나고, 소네트는 같은 실수를 하진 않을 거라고 단언한다.
모두의 평화를 위해...
내가 당신을 막을 겁니다.
소네트
전장이 변하고 아르카나는 버틴에게 얼마나 달라졌는지 보여달라고 말한다. 버틴은 그녀의 마도술이 위험하지만 우리의 목적도 그녀를 정면에서 상대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아르카나는 검은 통로만 남기고 어딘가로 사라지지만 버틴은 저 통로에서 그녀의 기운이 느껴진다고 한다. 이들은 제노 측과 약속한 시간이 되기 전에 원래 계획대로 아르카나를 나타나게 해야한다. 타임키퍼 소대는 각자 위치를 정하고 아르카나가 보낸 재건의 손 부대를 차례대로 정리하기로 한다.

시간이 흐르고 마지막 단계만이 남게 된다. 버틴이 예상보다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는 것을 의심하지만 릴리아가 시간이 없다고 외치자, 버틴은 의심을 거두고 작전에 집중하기로 한다.

배 위에 오른 소피아는 그저 입을 닫은 채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재건 교인이 그녀에게 다가가 아르카나가 정말 우리와 떠나지 않는 건지 묻는다. 소피아는 성상을 어루만지며 그녀가 그것을 주면서 했던 말을 회상한다.
당황할 거 없어요, 우리 아가. 제대로 들은 게 맞으니까.

...난 오늘 죽을 겁니다.
아르카나


동료들이 각 주문 지점의 준비를 마쳤다고 보고하고 버틴이 이를 확인한다.
대형 마도술 등록 번호 000262603100008, '소망의 길'[25] 사용을 신청한다!!
A급 위험 단계의 범죄자를 파르메니데스 기지로 전송한다!
버틴
거대한 주문의 빛이 중앙에 있던 아르카나를 뒤덮는다. 오히려 흥미로워 하는 듯한 아르카나에게 릴리아가 순조로운 여정이 되길 바란다며 능청스럽게 말한다.
파일:7장제노기지1.png
제노의 파르메니데스 기지에서 이고르 장군을 포함한 장병들이 마도술 신호를 기다린다.

이내 대형 마도술이 감지되고, 목표까지 관측되자 기폭 장치 가동의 카운트다운을 시작한다.
6, 5, 4, 3, 2...
1——
파일:7장제노기지2.gif
진공 폭탄 폭파 성공.
마도학 에너지 신호 감청 불가, 생체 반응 흔적 없음.
목표, 아르카나, 섬멸 완료...
조작원이 성공한 건지 재차 확인하며 99년에도 못 이룬 걸 해냈다며 좋아한다. 이에 이고르는 경계를 늦추지 말라고 주의를 주면서도 그 전투를 위해 잃었던 모든 것이 이 순간 세계의 역사에 기록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때, 조작원의 감청 리시버에서 무언가 치직대는 소리가 모두에게 들려온다. 이에 조작원이 생체 신호를 감지한 것 같지만 불확실하다고 하자 이고르가 헤드폰을 이어 받는다.
파일:7장제노기지3.png
...아니, 아니다. 그건 생명의 소리가 아니야.
...바람 소리다.
이고르
이들은 마침내 이 위대한 승리를 축하하고 장군과 타임키퍼 소대에게 경의를 보낸다.
상황실에서 최종적인 승리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아르카나, 사망.
====# 오솔길 - 총알과 미적분 #====
???: 국적 없는 총알 하나가 이 지붕 아래에 있어. 총알은 군대도 국가도 아닌 오직 평화를 위해 존재하지.
???: 세기말의 폭우로 많은 동지들이 사라졌지만, 총알, 운 좋게도 비를 피해 살아남았단다. 예리한 탄두는 여전히 시린 은빛을 뿜어내며, 언제라도 적의 몸을 뚫을 준비가 되어 있지.
???: 안타깝게도 다른 덩치가 큰 동료에게 모든 것을 빼앗겼단다. 이제 버튼 하나만 누르면 큰 폭발이 일어나니, 그를 비롯한 나머지 탄약은 필요 없게 되었지.

{{{#!folding [ ◉ 총알을 많이 아낄 수 있다니. 잘됐네 ]
???: 음.. 수학자들과 교류한 후부터 예산에 대해 더 민감해 진 것 같네.
???: 뭐, 자연스러운 일이다. 총알 하나를 아끼는 것보다 총알 열 개를 아끼는 것이 낫고, 총알 열 개를 아끼는 것보다 백 개를 아끼는 것이 더 낫지. 간단한 산수 문제야.
???: 하지만 총알의 대장인 장군처럼 생각할 것이 더 많지. 다음 폭우에도 이 총알은 무사할 수 있을까?}}}
{{{#!folding [ ◉ 잘됐네, 일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래도 별로야? ]
???: 대가 없이 무언가를 얻는 건 요행 같지만, 그걸 누가 싫어할까? 누구에게나 명예와 자유 중에 선택하라고 한다면, 아마 3초 이상 망설이지 않을걸.
???: 하물며 평범한 총알은 어떻겠니? 3초면 총알의 일생을 담을 수 있을 충분한 시간이지.
???: 하지만 총알의 대장인 장군처럼 생각할 것이 더 많지. 다음 폭우에도 이 총알은 무사할 수 있을까?}}}

◉ 장군? 그게 누군데?

???: 가장 통찰력 있고 뛰어난 거물이지. 기회가 되면 그와 얘기해보렴.
???: 하지만 요즘 그의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아. 그와 이야기 할 때는 1999년에 사용된 보수적인 전술과 발사되지 못한 미사일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도록 조심하렴. 특히 그해에 희생된 총알은 절대 금물이야.
???: 그는 미래를 위해 많은 걸 바쳤지만, 미래는 정말 그에게 너무 인색했어.
???: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할 때마다 한 발짝씩 떨어져, 가까이 다가가려는 모든 노력을 무력화시키지. 그 아무리 빠른 총알이라고 해도, 어떻게 멈추지 않는 미래를 잡을 수 있겠나.

{{{#!folding [ ◉ 그렇다 해도 계속 쫓아야지 ]
???: 미래를 쫓다니, 참 낭만적이구나. 계속하여 쫓는다면 그 간격은 한없이 좁혀지다, 어느 순간 그 거리가 0이 되겠지.
???: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점점 더 느려질 테지. AK47을 대체한 모신나강의 총알은 그때만큼 맹렬하지 않아. 미래는 갈수록 떨어졌고, 과거는 더욱 가까워졌지.}}}
{{{#!folding [ ◉ 앞으로는 총알이 필요 없게 될까? ]
???: 쉿... 그런 말은 입 밖으로 내지 말아라. 특히 대장 근처에서는 말이야.
???: 총알은 미래를 따라잡기 위해 이미 많은 대가를 치렀어. 더 이상 필요 없다고 한다면, 그 탄약 비용 청구서는 너에게 보낼 거다.
???: 자, 이 총알은 그냥 내버려두자. 고독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거든.}}}

2.22. 기도하는 사람

고른 모래사장 위에
바다와 육지 사이에
내가 무엇을 세우고 만들어야
내려앉는 어두운 밤을 막을 수 있을까?

부디 알려주길, 어떤 주문을 새겨야
파도의 습격을 막을 수 있는지
부디 알려주길, 어떤 보루를 세워야
나보다 더 긴 세월을 지킬 수 있는지

알프레드 하우스먼[26]
폐허가 되어버린 강당에서 210이 부상자들을 살핀다. 888도 부상을 입은 29를 업어 와 눕힌다. 888이 마르타에게 6이 깨어났는지 묻자 마르타는 고개를 젓는다. 불과 몇 시간 전만해도 이 자리에서 학파 일에 관한 토론을 나누었었지만 지금은 강당의 절반이 비어 있었고 폭격에 부서진 천장이 그 빈자리를 메웠다.
신앙의 붕괴, 인간의 폭격, 재건의 손의 이간질... 연이어 터진 사고에 이곳의 모든 것이 무너졌다.
고요 속에서 한 교인이 기도를 하기 시작하자 이내 210, 888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도 따라 기도를 읊조린다. 그러자 888이 업어 온 29가 "그만!"이라고 외친다. 진리 따윈 없는 이 상황에서 기도가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우리가 긴 세월 동안 추구한 모든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운 좋게 살아남은 우리는... 또 무얼 위해 살아가야 합니까?
29
그때, 37이 진리는 아직 존재한다고 외치며 강당으로 들어온다. 그 옆에는 타임키퍼 소대가 서있었다. 그녀는 아페이론의 시련을 통과하고 진리를 얻었으니 조금만 시간을 주면 풀 수 있다고 장담한다. 그러자 888이 그녀에게 다가가 최선을 다 해 돕겠다고 하면서,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지 조심스럽게 묻는다. 37은 일전의 일이 떠오르는 탓에 쉽사리 답하지 못한다.

이에 버틴이 나서서 암호 해독 속도를 높일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라플라스가 같은 연구를 하고 있었다는 걸 떠올린 것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먼저 37의 동의가 필요하다며 37에게 진리를 다른 이들과 공유해도 되는지 정중하게 묻는다.
'폭풍우'가 내리기 까지
앞으로 9시간
루시의 부작용 실험은 이때까지도 계속되고 있었다. 부작용은 완전히 무작위이며, 현재 통계 샘플에선 0.52%의 확률로 아무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비교적 경미한 부작용은 연구 센터에서 비축해 둔 주문으로 막을 수 있지만 그 외의 부작용은 여전히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위험성을 가졌다.

특이사항으로는 부작용의 90% 이상이 '진흙'. '먼지'와 관련이 있다는 것. 루시는 이것이 주문의 힘의 출처와 관계가 있는 건지 의심한다. 이후 자신이 이전에 추가로 쓴 부작용 목록을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몬이 노크하고 들어와 제노의 계획이 성공했음을 알린다. 루시는 영광스러운 일이라며 자기 대신 장군에게 축하를 전해달라고 말한다. 이후 시몬은 두 명이 연락을 요청했으며, 그중 한 명은 타임키퍼라고 한다. 그녀가 '폭풍우' 면역 연구와 관련된 숫자 암호를 해독하는 데 지원해주길 희망한다고 한다.

루시가 당장 연결하라고 지시한 다음, 나머지 한 명은 누구인지 묻자 시몬은 마커스를 도와 주문을 보낸 카카니아라고 답한다. 시몬은 카카니아에게 주문의 부작용에 대해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주문의 정확한 독법을 원한다고 전한다.

2.23. 로제타석

타임키퍼 소대와 살아남은 정수들은 37의 연구소를 정리하고 있었다. 버틴은 루시로부터 연구 상황을 전달받는다. 그녀가 말한 정보를 다 외울 순 없던 탓에 버틴은 통신 설비를 설치한 뒤에 다시 학파 사람들에게 설명해 줄 수 있는지 묻는다.

잠시 후, 컴퓨터 모니터가 켜지고 X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레굴루스는 X의 지시대로 그간 돌고래가 물어다 준 APPLe 2호의 무선 통신 설비를 장치에 연결한다. 그때, 갑자기 큰 소리가 울리자 교인들이 겁을 먹는데 X는 메디슨 포켓이 작업 중이라며 안심시킨다.

X가 버틴에게 이제 '폭풍우'가 8시간밖에 안 남았는데 섬의 면역 구역이 이제 더 줄어들지 않는지 묻는다. 버틴은 면역 구역의 약화가 멈췄고, 폭풍우 증후군도 강당 안쪽으로는 들어오지 않는다고 답한다. X는 진리에 대한 교인의 태도에 영향을 받아 약화가 멈춘 것 같다고 추측한다. 그들의 신앙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주문이 섬의 '폭풍우' 면역 범위만 증폭시킨다는 것이다.

울리히가 무선 통신으로 X의 말을 끊으며 끼어든다. 그는 더 중요한 과제를 위해 버틴에게 질문하기로 한다. 그는 37이 지하 동굴에서 한 질문에 대해 묻는다. 버틴은 37이 유한한 육체로 진리를 감당하지 못한다고 했다며 처음 아페이론의 답을 듣고 정신이 나갈 것 같았지만 이후 6의 스크롤이 그 울림을 일련의 숫자로 옮겨지게 하여 답을 얻게 됐다고 말한다.

울리히는 그것이 문제의 열쇠라고 말한다. 우리 양쪽이 동시에 '폭풍우' 면역에 관한 동일한 질문의 답을 얻었고, 이것이 로제타석이라고 외친다. 이해하지 못한 버틴에게 루시가 대신 설명해주기로 한다.

로제타석엔 동일한 교서가 신성 문자, 민중 문자, 고대 그리스어 총 세 가지 언어로 새겨져 있다. 신성 문자는 신에게 바치는 문자, 민중 문자는 평민이 사용하는 문자이며, 둘 다 고대 이집트 상형 문자로 비석 발굴 당시 이미 실전된 상태였지만 고대 그리스어는 지금 사람들도 읽을 수 있기에 세 문자의 대조를 통해 사람들은 마침내 고대 이집트어를 해독하게 되었다.
...지금 우리에게도 세 가지 언어가 있죠.

첫 번째 신성 언어는 37 씨가 동굴에서 들은 진리예요. 듣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나가버리고, 전혀 해석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민중 언어는 우리가 지금 탈취한 원시 주문이에요. 읽는 순간 저주를 불러일으켜서 보통 사람은 다룰 수가 없죠.

세 번째 고대 그리스어는 당신이 공유한 숫자 암호로, 우리가 다룰 수 있습니다.
그 자체에는 신력이 없지만 우리가 앞서 두 언어의 비밀을 푸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루시
37이 비유가 흥미롭다는 듯 끼어든다. 그녀는 우리의 연구를 합치면 오직 신에게만 속한 지식을 얻을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울리히는 이에 동의하며 이걸로 그 본질을 이해하고 비밀을 파악한다면 결국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주문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37과 울리히가 좋아하던 와중에 루시가 둘의 대화를 끊으며 울리히의 가설에 '만약'이 많다고 지적한다.

루시는 버틴의 설명 중, 스크롤이 기이한 울림을 숫자로 번역해 줬다는 부분에서 착안하여 그것이 면역 주문의 부작용을 낮춰줄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냐고 묻는다. 이 말을 들은 모두가 얼어붙는다. 확실히 마도학의 저주는 마도학의 방식으로 없앨 수 있어야 했다. 루시는 이어서 그 스크롤을 잠시 빌려준다면 비약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한다. 이들 측에서도 학파에게 필요한 모든 걸 지원할 수 있을 거란 말도 덧붙인다.

이 통신을 들은 888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불만을 표한다. 학파의 귀중한 유산을 인간을 위해 일하는 연구 조직에 넘겨야 하냐는 것이다.
비밀 엄수를 원칙으로 삼는 교파의 입장에서 이건 그들 맹세의 핵심과 신앙의 급소를 건드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때, 37이 불쑥 왜 안되냐고 묻는다.
이것도 진리를 위해서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37

2.24. 역사의 순환

888은 그 스크롤이 학파의 선현이 물려준 귀중한 유산이며 시련에 도전하는 믿음을 가진 이에게만 주어진 것이라고 한다. 아페이론이 나눠준 비밀을 깨닫기 전 까진 그걸 계속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인간에게 복속된 외부 조직과 공유하는 건 안된다고 말한다. 그녀가 37을 잡아끌듯 연구실 밖으로 데리고 나온다.

37은 어째서냐고 물을 뿐이다. 우리가 전도회를 열고 방문객을 응대한 것도 다 지식과 지혜를 공유하기 위한 것 아니냐고 묻는다. 이번에 공유해 주먼 암호를 푸는 데 도움이 될 거라며 진리의 빛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걸 증명하겠다고 외친다. 하지만 888은 스크롤이 교류와 학습에만 쓰일 거라 장담할 수 있는지 단호하게 묻는다. 인간이 그걸 무기를 만드는 데 쓰지 않을 거란 보장이 있냐는 것이다. 37이 흠칫하고, 888은 고개를 들어 천장에 난 구멍을 바라본다.[27]
아페이론 학파에 들어오기 전에 나와 내 일족은 오랫동안 세상을 떠돌았어.
보통 사람보다 더 오래 산다는 이유로 세상은 우리를 용납하지 못했지.
진리의 아이야, 부디 늙은이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다오.
888
그녀는 인간이 멋진 성과를 이루었고 그것에 자기도 감동했던 건 사실이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인간이 그런 건 아니라고 한다. 그저 맹목적으로 힘을 추구하는 인간이 더 많으며, 888 본인이 그걸 겪고 설득하다 지쳐서 이곳까지 오게 됐다고 한다. 그녀는 37이 공유하려는 건 지식만이 아니라고 한다. 그건 하나의 의식이고 힘이었다. 조화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반대로 무기의 공식이 되어 폭력에 쓰일 수 있었다. 이에 버틴이 끼어들어 888에게 그런 일은 없을 거라며 약속하려 한다. 하지만 888은 버틴도 그저 어린애에 불과하다며 이를 거절한다. 모두가 할 말을 잃어 침묵한다.
...하지만 그게 진리잖아요.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습니까?
210
에상치 못한 210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는 스크롤 하나 빌려주고 그 비밀에 닿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있냐고 말한다. 현실에 안주하는 곳엔 진리의 빛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지난 4년의 실패를 겪고도 모르겠냐는 것이다. 그는 원한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려는 용기를 잃지 말자고 외친다.

37이 감동먹은 듯 210의 이름을 나지막히 부른다. 210은 이건 37이 통과한 시련이고 그녀가 얻은 스크롤이니 그녀에게 결정권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의 태도는 진심 어린 지지보다 무심함에 가까워 보인다. 그는 우리에게 더 나은 선택지가 있냐는 말을 남기고 손을 흔들며 자리를 벗어난다.

자신의 결심을 굳힌 37은 신도들을 돌아보며 스크롤을 공유하고 연구 센터와 협력하여 암호를 풀겠다고 선언한다. 진리는 진리일 뿐이며 다른 것 때문에 변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여러분, 만약 동의하신다면 손에 든 조약돌을 던져주세요! 6이 여기 있었다면, 그는 분명 민주적으로 결정했을 겁니다.
37
그대로 떠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조약돌을 던진다. 37의 옆에서 888의 탄식이 들려온다.

시간이 흐른 후, 릴리아는 본부로의 스크롤 배달을 위해 비행을 하려 한다. 그녀는 소네트의 걱정에 유럽에서 벗어나지도 않으며 거리도 세 시간 밖에 안된다고 말한다.
응, 맞아, 상당히 위험하지. 하지만 이건 '폭풍우' 속에서 768해리[28]를 비행하는 거야, 소네트.
그들이 〈비행 메뉴얼〉을 수정하게 할 절호의 기회라고!
릴리아
바다로 곤두박질 치면 안된다는 레굴루스의 걱정에 릴리아는 레드38은 APPLe 2호가 아니라며 비아냥댐과 동시에 그대로 날아가 버린다.
안전하게 면역 주문을 사용하려면 두 가지 단계가 필요하다.

a. 시전 조건 달성
X가 존 티토가 공식의 유도 계산을 마쳤으며, 그의 팀도 변환기의 프로토타입 설계를 끝냈다고 보고한다. 이제 위에 있는 '높으신 분들'의 실험 신청 승인만 남은 상황이다.
b. 부작용 감소
루시는 학파의 스크롤이 콜먼의 방어 주문보다 더 뛰어난 방어 효과를 보여줄 거라며 분석 진행 속도가 크게 올라갈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아직 3단계가 남아 있었다.
이니그마가 어떻게 해야 인간도 주문을 쓸 수 있는지 고뇌한다. 그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결과는 주문을 실체화하여 재건의 가면과 비슷한 방어구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주문을 완벽하게 해석해야했다. 지금으로선 그럴 시간도 없고 조건도 맞지 않아 그가 모두가 시전자가 되게 하는 꼼수 같은 방법을 택한 거지만 문제는 인간은 애초에 시전을 전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37은 '영성의 파도'와 스크롤을 빌려 모두가 면역 주문을 읽을 수 있게 하려는 이들의 계획을 듣는다. 버틴이 37의 생각을 묻자 그녀는 아주 못생긴 계획이라고 답한다. 억지에 꼼수만 잔뜩이고, 응용만을 위한 것일 뿐 이론의 아름다움은 없다고 한다. 반면 레굴루스는 '폭풍우' 속에서 뭔갈 뜯어내는 게 마치 보수당 총리 관저에서 로큰롤 파티를 여는 것처럼 짜릿하다며 좋아한다.

37은 이들이 주문을 이해하지도 못 한 채 이걸 써먹을 생각뿐이라며 비판한다. 이걸로 충분하지 않냐는 버틴에게 그녀는 이것이 완전한 증명이 아니며 곧 난관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 말한다. 37이 자기도 그 주문을 보고 싶다고 하자 소네트가 연구 센터에서 안전하게 주문을 보낼 방법을 찾고 있다고 전한다.

곧이어 울리히의 통신이 들려오고, 안전을 위해 주문의 텍스트만 전송했다고 한다. 읽는 방법은 타임키퍼를 통해 개별적으로 전달할 거라고. 울리히는 섬에 시각화할 통신 수단이 부족한 걸 고려해 클라드니 공진법으로 각 알파벳을 개별 전송할 것이라 알린다. 그가 그 기술을 설명하려다가 순간 욱하더니 시간이 없다며 결국 그만두기로 한다. 이후 미스 라디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 뒤, 다른 이들에겐 사각형의 금속판을 바닥에 고정하고 위에 가는 모래를 얇게 뿌려달라고 부탁한다.
파일:7장클라드니1.png파일:7장클라드니2.png
그다음 미스 라디오를 통해 특수한 녹음을 보낼 테니 그녀가 그 음파를 느끼고 그것에 따라 판의 가장자리에서 춤추면 된다고 말한다.[29] 별문제 없다면 정상파가 모래 위에서 도형을 이룰 것이라 한다. 그것이 주문이었다. 버틴은 판 위에 나타나는 알파벳을 순서대로 기록한다.
파일:7장면역주문쪽지2.png
버틴은 주문을 보자마자 뭔가를 느끼고 흠칫한다. 그녀는 눈앞에 보이는 걸 믿지 못한다. 이에 레굴루스가 걱정하자 버틴은 "내가 아는 언어라서"라고 답한다.
그렇다. 그건 낯설지 않은 언어였다.
여행 가방을 여는 주문도 이 언어로 적혀있었다.
유일한 문제는 그거다. 누가, 언제 그걸 가르쳐주었지?
백지 같은 그 밀레니엄의 밤인가?
아니면... 어머니?

...37, 나 알 거 같아.
...이 주문의 뜻은 '최초의 원' 이야.

2.25. 최초의 원

이 충격적인 소식은 통신 건너편의 라플라스 연구원들도 듣게 된다. 울리히는 빈의 조사원이 주문과 관련하여 "오래된 기적이자 구원의 서클이다."라고 보고를 한 것을 떠올린다. 아르카나도 그 당시에 허공에 원을 그렸었다. 주문과 저주에 신경이 쏠려 이 중요한 정보들을 잊고 있었단 것에 울리히는 책을 내리치며 자책한다. 이내 루시가 울리히의 책임이 아니라고 말한다. 앞서 그 정보를 그냥 넘긴 건 그게 연구에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말은, 이 주문의 뜻이 '최초의 원'인 게 연구에 어떤 의미가 있냐는 것이다.

37이 무언가 깨달은 듯 놀라더니 갑자기 종이에 대고 뭔갈 적기 시작한다. 레굴루스가 버틴이 '원'이라 말한 덕분에 37이 신났다고 말하자 37도 그에 동의하듯 주문의 본질이 원이라고 말한다.

37의 설명은 로제타석의 가설로 돌아간다. 가설의 기본적인 내용은 이 주문과 숫자 암호가 가리키는 본질이 '유출' 면역의 방법으로 같다는 것이다. 이제 주문의 본질이 원이라는 걸 알게 됐으니, 이는 곧 숫자 암호의 본질 또한 원이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37은 암호에 대해 방향을 잡지 못했었지만 로제타석 가설에 의해 입증할 방법이 생겼다고 한다.

하지만 소네트는 이해가 안된다고 말한다. 그 암호와 '원'에 어떤 연관성이 있냐는 것이다.

이니그마도 마찬가지로 다른 해독원의 전달 덕에 알게 된 '최초의 원'에 대해 생각에 빠진 참이다. 아르카나도 원을 그렸지만 그게 단순한 상징이 아닐까 싶다는 해독원의 의견에 이니그마는 흥분하며 그것을 부정한다. 그는 마도학자가 자신의 경험을 상징으로 바꾸는 데 능하다고 말한다. 상징에 부합하는 매개체를 통해서만 마도술의 효과를 증폭시킬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 주문이 상징하는 게 바로 '최초의 원'이라고 했을 때...
우리가 그걸 실체화해서 모두가 사용할 수 있게 하면...
...그 형태도 원이어야 할까?
이니그마


37의 계산 종이가 이미 연구실 바닥 전체를 뒤덮었다. 그리고 마침내 37은 정답을 찾은 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언제나 그랬듯 가장 단순한 것에 가장 심오한 게 담겨 있다며 이미 그녀에게 '최초의 원'이라고 설명해 주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교차점이 0인 풀린 매듭[unknot]도 원이라는 것을 떠올리며 이것이 폐곡선의 변형, 매듭[knot]일 것이라 추측한다. 정확히 어떤 매듭인지 찾기 위해 37이 마도술로 기하학 형체들을 만들어낸다. 마침내 37은 그 암호가 존스 다항식의 약어라는 것을 알아낸다.

[math(t^{-4}-t^{-3}+2t^{-2}-3t^{-1}+3-3t+2t^2-t^3+t^4)]
파일:7장매듭1.png
이게 바로 우리가 찾아낸 가장 깊은 곳의 비밀, 신에게 바친 언어야.
그 어떤 음성이나 문자도 필요 없는, 가장 순수한 구조, 가장 본질적인 형식이지.
...아름다운 도형, 간단한 매듭 말이야!
37
이를 확인한 버틴은 검증을 위해 루시에게 검증을 부탁한다. 이들의 연구를 귀담아 듣던 루시는 즉시 그 매듭의 실험을 진행할 수 있다고 답한다. 통신기 너머에서 다시 정적이 이어진다. 미스 라디오가 통신의 볼륨을 높이지만 미세한 전류음과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다. 시간은 이미 20분을 지난 상태다. 버틴이 루시를 불러도 자갈이 떨리는 소리만 들리자 그녀는 통신에 문제가 생겼는지 걱정한다.

그때, 루시의 힘겨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파일:7장루시실험대4.png
저주가 코어까지 번지기 전, 불을 훔친 자가 미소 지었다.
...성공했습니다.
루시

2.26. 거울과 커튼

'폭풍우'가 내리기 까지
앞으로 4시간
이니그마가 타임키퍼와 아페이론 학파가 인간도 주문을 시전할 방법을 찾았다는 것에 무덤덤하게 감탄한다. 이처럼 이미 자신의 의무를 다한 연구원들은 모처럼 잠잠했다. 루시도 그들이 이룬 중요한 성과를 재단에 보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예상과 달리 재단에서의 반응은 별로였다고 한다.

루시는 재단 회의를 열어 타임키퍼와 학파의 성과에 대해 설명했다. 그들은 매듭이 뭔지도 모르는 듯 했다.
매듭에서 연구하는 건 3차원 공간에서 폐곡선의 매듭과 체인 형태이지 곡선 자체가 아닙니다.
모든 폐곡선은 원둘레와 위상 동형 사상이 존재하고, 위상 수학에서 그것들은 모두 원에 속하기 때문이죠.
평면에서 원둘레의 값이 같은 매듭은 풀린 매듭[unknot]으로 불립니다.
그러니까 '매듭 없는' 원이죠.
루시
하지만 그들은 이 성과를 널리 알리기엔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개념이 어려울 뿐 아니라 모든 선거구 사람을 한데 세워놓고 고등 수학 원리를 가르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루시는 그 보고가 너무 시기상조였다며 일단 면역 방어구부터 생산한 후에 정식 보고를 해야한다고 판단한다. 이니그마도 그에 동의한다.
파일:7장루시아들러2.png
루시는 그렇지만서도 이것은 분명 널리 알릴 가치가 있는 결론이라고 말한다. 시간을 들여 주문을 복제하고 인간이든 마도학자든 매듭짓는 방식만 알면 의식을 준비할 수 있다고 한다. 고작 끈 하나가 가장 오래되고 최고로 간단하고 쉬운 주문이자 '폭풍우'를 넘을 수 있는 열쇠였다.

이니그마는 의원들이 흔쾌히 예산을 내놓았을 텐데 루시가 그 얘기를 안 한 것에 의문을 가진다. 루시는 나중에 부처간 협력 보고서에 쓸 거라고 답한다. 게다가 지금 매듭의 효과는 주문과 다를 바가 없어 변환기와 부작용 연구가 완료되기 전까진 보급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이니그마는 어쨌든 자신의 임무가 끝났고, 다음엔 자기랑 울리히를 같은 팀에 넣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는 한편, 이니그마는 루시가 실험실에 없는 것을 의외로 여긴다. 그가 설마하며 또 충전하고 있는 게 아니냐 묻자 루시는 기쁜 표정으로 그가 연구 센터의 공용 전원 플러그 위치를 외워가고 있다며 좋아한다. 그녀는 최상의 컨디션으로 학파의 스크롤을 맞이하고 싶다고 말한다.

릴리아가 상공을 가르며 주위에 펼쳐진 폭풍우 증후군에 물든 구름에 감탄한다. 재단 건물에 거의 다다른 상황에 오리티우 떼는 여전히 그녀를 쫓고 있었다. 릴리아는 이것들이 본능적으로 면역 구역을 향해 날아가는 것 같다며 신기해 한다. 연료도 탄약도 부족해진 터라 그녀는 어떻게든 오리티우 떼를 따돌리려 한다.
저걸 끌고 부회장 사무실로 달려들까... 하지만 다른 사람까지 목숨을 잃을 수 있으니... 됐다.
릴리아
릴리아가 고민하던 그때, 시야에 활짝 핀 새싹 하나가 들어온다.
릴리아 씨, 이쪽으로 와요!
드루비스
릴리아는 망설임 없이 드루비스가 피워낸 숲을 향해 급강하한다. 그녀가 숲에 부딪히기 직전에 바로 위로 꺾어 빠져나오자 제때 반응하지 못한 오리티우 떼들은 숲의 그물에 걸려들고 만다.

오랜만에 신선한 공기를 마시게 된 드루비스는 릴리아에게 칭찬을 보낸 뒤, 릴리아를 안내해주기로 한다.

마커스가 기동 부대가 출발 준비를 마쳤다고 알리며 카카니아에게 정말 동행하지 않을 건지 묻는다. 카카니아는 마커스의 통신기를 손에 쥔 채 고개를 젓는다. 마커스가 고개를 숙여 눈물이 맺힌 눈가를 목도리로 감추자 카카니아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시킨다. 그녀는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걸 도와줬으며 이 실험에는 지원자가 한두명 필요하다고 말한다. 마커스가 주문 시전의 성공과 생존 확률이 0에 가깝다고 하지만 카카니아는 0은 아니지 않냐고 한다. 이미 그녀는 갈 곳도 없었다.
나는 이 도시에서 태어나 여기서 자랐어요. 이곳은 나의 고향이자 터전이며, 내가 돌아올 곳이자 내 세계의 전부예요.
그곳의 부당함에 마음 아파하고 금박 아래 감춰진 부패에 목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난 이곳을 사랑해요.
카카니아
그녀는 이곳을 떠난다는 생각도, 망가뜨릴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이곳과 함께 사라지는 게 자신이 지은 죄에 가장 합당한 결말이라고 말한다. 마커스도 이건 막을 수 없는 일이란 걸 깨닫는다.
...저도 선생님처럼 용감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안녕히 계세요, 클라라 씨.
마커스
마지막 수송을 위한 헬기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곳엔 구속복을 걸친 이졸데가 눈을 내리깐 채 앉아 있었다. 카카니아가 마커스의 손을 맞잡으며 작별인사를 고하고 떠나려던 그때, 이졸데가 말을 건다.
...곧 생일이죠, 선생님?
이졸데가 허공에다 손을 뻗는다. 그녀는 아직 깨고 싶지 않은 꿈에 빠져 있었다. 그녀의 꿈속에선 세상이 어제와 같았고, 모든 것이 여전히 아름다웠다.[30] 이졸데는 카카니아를 위해 만들었다며 브로치를 건넨다.
파일:7장카카니아브로치.png
터콰이즈토파즈예요. 선생님과 선생님의 눈동자를 닮았죠...
축복을 빌게요. 늘 행복하세요. 선생님의 용기로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기를.
이졸데
이졸데가 여전히 허공에 대고 카카니아를 위해 기도한다. 카카니아는 오늘 누군가 죽는다면, 옛 친구에게 또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냐고 생각한다.
Süße träume, Frau Dittarsdorf.[31]
(부디 좋은 꿈 꾸길 바랄게요, 이졸데 양.)[32]
카카니아
그녀가 브로치를 받아 정장에 꽂는다. 그때, 통신기에서 소리가 들리게 되자 카카니아는 다급히 루시에게 연구에 진척이 있는지 물어본다.
====# 오솔길 - 와이어하우저 여사에 대한 감찰 보고서 #====
와이어하우저 여사는 산림 사건 이후 마도술을 사용하여 공공장소를 파괴하고 점유하여 심각한 손실을 입힌 혐의로 마도술의 영향을 제거하고 장소를 복구해야 하며, 120시간의 재단 봉사 활동에 강제적으로 참여하고 20만 톱니 동전의 벌금을 부과 받았다.
와이어하우저 여사는 처벌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그녀는 임시 수목 처리반과 함께 과도하게 자란 나무를 3일 이내에 처리하고, 재단 내부의 모든 그린 벨트를 다듬었으며, 처리한 나무를 충분히 활용하도록 강력하게 요청했다. 수목 처리반은 나무를 목재로 가공해 엔지니어링팀에 보냈고, 남은 재료는 2차 가공을 거쳐 유기질 비료로 만들었다. 남은 열매는 와이어하우저 여사가 식당에서 봉사활동 시간을 이용해 도토리 빵과 베리 파이로 만들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요약하면, 와이어하우저 여사는 그동안의 뛰어난 성과와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로 보상의 의무를 충분히 이행했다고 판단된다. 와이어하우저 여사에 대한 감시와 행동 제한을 사전에 해제할 것을 권고한다. 이상.

2.27. 술의 신을 위한 찬가

6이 깨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37은 분명 자신의 성과에 그도 기뻐할 거라 기대한다. 그녀는 버틴에게도 자신이 진리의 빛이 아직 존재한다는 걸 증명했다며 소피아도 곧 돌아올 거라는 기대를 내비친다. 잠시 고개를 숙이고 침묵하던 버틴은 소피아도 37의 성과에 기뻐할 거라 말한다. 한편, 210과 888이 보이지 않자 37은 그들이 6을 맞이하러 간 건지 궁금해 한다.

전당 밖에서 210이 6에게 별로 기뻐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6에게 37이 암호를 풀고 '유출'을 넘길 방법을 찾았으니 우리도 마땅히 그녀를 위해 기뻐해야 한다고 말한다. 6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210도 개의치 않는다.
...그런데 넌 여전히 차분하군.
그녀가 성공하든 말든 다 소용없다는 걸 이미 알기 때문인가?
210은 '유출' 중에 살아남을 수 있는 주문은 가장 지엽적인 응용문제일 뿐, 신앙의 몰락이라는 사실을 바꾸진 못한다고 한다. 아주 작은 기적과 잠깐의 불빛으로는 이미 침몰될 운명인 배를 구할 순 없다고. 그러면서도 37이 그런 실질적인 질문을 한 것을 의외로 여기며 현상 세계의 부스러기가 그녀까지 바꿔 놨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다른 교인들에게는 그녀처럼 허무 같은 걸 무시할 만한 의지가 없다고.

6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묻자 210은 널 조롱하는 중이라고 답한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우리의 위대하고 완벽한,
마땅히 존경해야 할 아페이론 학파의 수장이 완벽한 허무주의자라는 걸!
그는 단 한 번도 이들의 신앙을 존중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4년이나 그걸 숨겨온 것이라고 조롱한다. 6은 진리는 진리를 좇는 사람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210에게 진리가 그저 허무에 불과하니 모든 걸 버리고 복수하듯 어둠 속으로 걸어갈 건지 묻는다. 210은 코웃음을 치더니 운명이 지혜롭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구제 불능의 회의론자와 아무 입장 없는 허무주의자...
그들만이 이 요동치는 배에서 그 관중석 자리를 지킬 수 있는지도 모르지.
210
210은 지금쯤이면 포도주를 담글 철이라고 아쉬워하며 그대로 자리를 떠난다.

6이 말 없이 정해진 길을 따라 나아간다. 37이 그를 발견하고 뛰어와 안도한다. 그녀는 888이 '유출'이 오기 전에 모든 죽은 자와 산 자를 기리기 위해 축제를 열기로 했다며 6도 참석할 건지 묻는다. 6은 대답 대신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기억하냐고 묻는다. 37이 시련에서 했던 얘기 아니냐고 말하던 그때, 갑자기 겁에 질린 듯 눈을 크게 뜬다.

37은 교인들이 안전한 곳에서 축제를 열 수 있게 면역 구역을 다시 계산했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바다 앞 모래사장에서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37이 저곳이 면역 구역 밖이라며 경악하고, 이내 888이 실수를 한 것이라며 말해주러 뛰어가려는데 6이 그녀를 붙잡는다.
37...
경계 밖에서 지혜만 추구하는 것과 직접 그 안에 뛰어들어 고통받는 것,
둘 중에 넌 한 가지만 선택할 수 있어.

...어떤 선택을 할지 생각해 뒀니?
6


루시는 연구 과정에 도움을 준 답례로 연구 센터에서 이례적으로 카카니아와 성과를 함께 나누기로 했다고 전한다. 매듭의 주문 유효성은 일반 마도학자와 인간의 몸으로 검증까지 마쳤다고. 하지만 여전히 시전 조건을 충족한다거나 부작용을 피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며 카카니아에게 유감을 표한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슬픈 기색이 없는 카카니아는 매듭을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게 맞는지 다시 확인하고 그걸로 충분하다며 반가운 소식이라 답한다.

루시는 반가운 소식을 두 가지 더 전한다. 첫째, 저주는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란 것.[33] 실험 결과 부작용이 전혀 발생하지 않을 확률이 0.49% 라고 한다. 둘째, '폭풍우'가 가까워질수록 유출된 영성이 점차 많아져 주문 시전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 하지만 이런 요인을 모두 고려해도 성공 확률은 여전히 극히 낮다고 한다.

카카니아는 그래도 수많은 기준수를 곱하면 1보다 큰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 빈에 매듭을 퍼뜨리겠다고 하며 감사인사를 보낸다. 마도학자든 인간이든 누구든 자신의 동포이니 그들 모두 살아갈 기회를 누려야 한다고.

루시가 통신을 끊고 돌아서는데, 재단 직원이 심각한 얼굴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직원은 그녀가 재단에 의사 결정 신청 절차를 밟지 않았다며 방금 저지른 행위가 규정을 심히 위반했음을 알린다.
음, 확실히 무모하긴 하지.
하지만 내가 약속했어. 최동 연구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이건 '언약'이야.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언약'은 '실행'해야 하는 '약속'이라고 하는군.
루시


'폭풍우'를 앞둔 마지막 순간, 888과 210이 축제의 가운데에서 연설을 시작한다.

긴 시간 동안 방황한 이들은 계명의 모든 진리를 추구하고 광기에서 벗어나 아름다움과 조화의 척도를 찾아냈다. 하지만 이제 이들의 신앙과 초월적인 왕국의 꿈은 깨져버렸고 지고의 규칙도 허무로 변했다. 이들의 고고한 삶을 지탱하던 기반은 이제 존재하지 않으며, 생의 수레바퀴에 빠져 실수를 반복하는 삶이 예정되어 있었다.

210은 다행히 아직 진리에 다가갈 또 다른 길이 남아있다고 외친다.
...'유출'로 들어가 몸으로 그것을 증명하는 겁니다.
888
이들은 기쁨에 젖어 잔을 부딪힌다.

잡상인 일리치가 거리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 카카니아를 발견한다. 마찬가지로 일리치를 발견한 카카니아는 자신이 들고있던 전단지를 건네며 그가 아는 사람을 전부 찾으라고 지시한다. 그녀는 이것을 더 빠르게, 더 널리 퍼뜨리길 원했다. 일리치는 다들 도망치느라 바쁘다며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자기도 그 미친놈들에게 더 물들고 싶지 않다고. 그가 한가하게 매듭 강좌나 한다고 비아냥대자 카카니아는 이게 살아남을 방법이라고 외친다.
이건 효과가 확실한 해결책이 아니야. 그저 도박을 해보는 것뿐이지.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알아야 해!
세계가 사라지기 전에 어느 판에 걸어볼지 선택할 권리는 있어야 하니까!
카카니아
그녀가 일리치에게 한 번만 믿어달라고 애원하자 그는 결국 수긍하며 이게 진짜면 나중에 커피를 사주겠다고 말한다.

37이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비명을 지른다. 뛰쳐나가려는 37을 필사적으로 붙wkq는 6에게 그녀가 왜 저들을 막지 않는 거냐며 흐느낀다.

그때, 마르타가 이들 앞에 나타난다. 때마침 밖으로 나온 버틴은 마르타에게 저들과 함께할 건지 묻는다. 마르타도 자신이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6에게 답을 구하러 온 것이라 말한다. 6은 자신이 해줄 말이 별로 없지만, 운명이 우리보다 자신의 운명을 더 잘 알고 있다 생각한다고 답한다. 마르타는 이해하며 그의 답변에 감사를 표한다.
그렇게 그녀도 그 평탄한 길로 나아갔다.
술의 신을 위한 찬가
⠀[ 원어 가사 ]⠀
Bacchum in remōtīs carmina rūpibus
Vīdī docentem – crēdite posterī! –
Nymphāsque discentēs et aurēs
Capripedum Satyrōrum acūtās

Euhoe, recentī mēns trepidat metū
Plēnōque Bacchī pectore turbidum
Laetātur, euhoe, parce Līber
Parce gravī metuende thyrsō

Fās pervicācēs est mihi Thyiadas
Vīnīque fontem lactis et ūberēs
Cantāre rīvōs atque truncīs
Lapsa cavīs iterāre mella

Fās et beātae coniugis additum
Stellīs honōrem tēctaque Pentheī
Disiecta nōn lēnī ruīnā
Thrācis et exitium Lycūrgī

Tū flectis amnēs, tū mare barbarum
Tū sēparātīs ūvidus in iugīs
Nōdō coërcēs vīperīnō
Bistonidum sine fraude crīnēs
Bistonidum sine fraude crīnēs
⠀[ 한국어 가사 ]⠀
저 멀리 절벽 사이에서 바쿠스를 보았네.
후대의 친구여, 나를 믿어주길. 그는 지금 주신의 찬가를 가르치고 있다네.
물의 신 님프와 반인반수 사티로스도 귀를 쫑긋 세우고

아아! 가까워진 두려움에 여전히 마음이 떨리지만
바쿠스로 충만해진 영혼은 기뻐하며 혼란스러워하네
아아! 부디 용서하시길, 바쿠스여. 저를 용서해 주소서.
당신의 그 치명적인 지팡이는 절도 두려운 마음이 들게 하나니!

그리하여 나는 지칠 줄 모르는 제사를 노래하고
술과 젖이 흐르는 샘물과 개울을 읊조리며
다시 그려낸다.
텅 빈 나무줄기에서 넘쳐흐르는 꿀을.

당신의 반려가 어떻게
별들 사이에서 영광을 더했는지
펜로즈 가문이, 어쩌다 재난 속에서 갑자기 무너졌는지
트라키아인과 리쿠르고스가 어떻게 파멸했는지 노래하네.

당신은 강의 흐름과 이역의 바다를 바꾸고
외딴 봉우리에서 술에 취한 채
살무사로 트라키아의 신도를 위해 머리를 틀어 올린다.
하지만 그녀들은 물리지 않네.
하지만 그녀들은 물리지 않네.
[34]
210, 888과 같은 길을 걷기로 결정한 마르타를 포함한 교인들은 술잔을 들어올린 채 '유출'에 휩쓸리고, 카카니아는 일리치와 그의 지인들과 함께 매듭을 만드는 데에 성공했지만 그녀를 제외한 이들이 전부 '폭풍우'에 휩쓸리게 된다. 이후 이졸데가 건넨 카카니아의 브로치가 반짝 빛난다.
====# 오솔길 - 매듭의 예술 #====
???: 너무 피곤해 보이는구나. 다행히 연회는 끝났으니까 괜찮아. 비록 큰 도움은 아니겠지만... 머리라도 빗겨 줄게.
???: 안 그러면 머리가 엉켜서 풀 때 아플 수 있거든.

◉ 맞아, 한 번씩 겪어본 일이지

???: 맞아. '매듭'은 오랜 친구거든. 읽고 쓰는 방법을 알기도 전에 매듭을 배우기도 하지.
???: 매듭은 흐름의 일관성을 깨뜨리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고, 무언가를 상기시켜 주는 표지판 역할을 하기도 하지.
???: 풀잎, 동물의 털, 심지어 떨어진 머리카락까지 손에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사용하여 매듭을 만들 수 있어. 그래도 가장 튼튼한 매듭은 밧줄로 묶는 거야.
???: 매듭은 많은 이야기에서도 등장하지. 아마 엄청 바쁠 거야. 때로는 승낙을 상징하고, 또 때로는 수를 셀 때 사용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종말과 회복을 가져오기도 한단다.

◉ 또 뭐를 할 수 있을까?

???: 당연하지! 매듭의 범용성과 유용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
???: 알렉산더가 '위대한 알렉산더'가 된 것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은 순간이었지. 그리고 축제에서 긴 밧줄을 잡고 걸었던 것만으로도 축복을 받았다고 해. 줄의 작은 매듭에 한 나라의 역사를 담을 수 있거든.
???: 고대 잉카인들은 '키푸'라는 기록용 매듭을 사용했어. 수백 가지의 천, 색상, 길이의 끈을 복잡하게 변형하여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했지. 셰익스피어가 26개의 글자만 가지고도 걸작을 만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대단하지 않니?

◉ 더 실용적인 것 없어?

???: 주변을 둘러보렴. 선원들이 매듭을 이용해 수심을 기록하고 돛을 고정할 때 사용하지. 마부가 말의 고삐를 튼튼하게 매듭을 지어 묶는 것처럼, 존경할 만한 신사나 숙녀라면 가장 유행하는 매듭을 알고 있지. 언제든 넥타이나 모자 끈을 다시 맬 수 있도록 말이야.
???: 혹은 DNA의 매듭과 같은 나선 구조를 생각해 보렴.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 매듭에는 우리의 유전자 배열, 물질의 변화 등 다양한 비밀에 대한 힌트가 담겨져 있단다.
???: 어쩌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정말 끝없이 긴 매듭이 존재할지도 몰라. 모든 것을 기록하는 키푸처럼 세상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겠지.
???: 너도 매듭을 직접 묶어봐. 머리카락 한 가닥을 들고, 고리를 만들고 끝을 통과시킨 다음 조여봐. 그래, 그렇지.
???: 이 매듭으로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기억하길 바라.

2.28. 두개의 숫자

시간은 1990년 8월 15일로 바뀌었다. '폭풍우'가 모든 것을 씻어내려 모래사장은 부스러기 하나 남지 않은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모르겠어...
용감하게 본질로 돌아간 사람들을 축복해야 하는데...
왜 자꾸 슬퍼지는 걸까.

자신의 숫자를 알게 된 소피아를 보며 기뻐해야 했는데...
왜 괴롭기만 했을까.
37
37은 다들 떠나려는 게 자신이 부족했기 때문인 거냐며 무릎을 꿇고 오열한다.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어린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현상 세계에서의 첫울음이었다.
마침내 6은 37의 답을 깨닫는다. 그녀는 직접 그 안에 뛰어들어 '고통'받는 것을 택했다. 그는 이제 헤어질 시간이라 짐작한다.

6은 37에게 섬 밖의 세상으로 가라고 말하고, 버틴에게는 부디 그걸로 전쟁을 일으키는 일은 없길 바란다고 말한다. 버틴은 그것이 우리들의 사명이라고 답한다. 6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버틴이 이전부터 찾았던 전기 작가 '우르드'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말한다. 다만 전대 6의 기억 중에 버틴처럼 특수한 숫자를 가진 여성이 있었다고. 안타깝게도 그가 이어받은 기억에는 이런 모호한 정보밖에 없다고 한다.

6이 돌아서서 섬 안으로 향하고 나머지 살아남은 교인들도 그의 뒤를 따른다. 37이 벌떡 일어나 다들 떠났는데 6마저 떠나려는 거냐고 묻는다. 그는 원한에 휩쓸리길 원치 않고 격정의 길을 택하지 않은 사람도 있어 동굴로 돌아갈 거라 답한다. 성지로 이어지는 길은 무너졌지만 사람들의 신념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은 부서진 신앙의 눈부신 빛을 다시 되찾을 생각을 품고 있었다.

37이 같이 갈 거라 소리치지만 6은 이미 그녀가 선택했기 때문에 이곳으로 돌아오면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녀의 고통과 의문은 외부 세계를 직접 겪는 과정에서 답을 얻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파일:7장3761.png
수천 년 전, 최초의 신앙인들은 로마 제국의 전쟁을 피해 이곳으로 와 교파를 세웠다. 500년 전, 이곳으로 피난 온 아랍의 난민이 그들의 필사본으로 동굴의 책을 가득 채웠다. 반세기 전, 자신의 연구가 전쟁에 남용되어 고통받던 학자가 이곳으로 와 현대 수학의 지혜를 보완했다.

6은 그들 중에도 수많은 37과 6이 있었다고 하며, 우리와 그들이 본질적으로 다른 게 있냐고 묻는다. 37이 숨을 들이킨다. 6은 우리가 없어도 37과 6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 말한다. 그는 그녀가 숫자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그녀만의 산식을 써내려 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버틴은 6이 경계 밖에서 지혜를 추구하기로 했다고 짐작하며 지혜가 왜 경계 밖에 있어야 하냐고 묻는다. 그는 웃으며 지혜는 만능이 아니라고 답한다. 그건 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지만 허무로 이끌기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허무한 지혜가 필요한 사람도 있기 마련이라고. 6은 누군가는 이곳에 남아서 표류하는 이들에게 정치와 무관한 피난처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후 그는 37의 외침을 뒤로하고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자갈에 넘어지기도 하며 그녀는 계속해서 6을 불러댄다.
기다려줘, 6!!!

...아티커스!
파일:7장3762.png
남자가 걸음을 멈췄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름이었다.
그는 37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걸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늘 본질을 구분하는 데 가장 능했으니까.
...칩거하는 곳에 날 위해 작은 문은 남겨둘 거지? 우리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혼돈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낼 거야. 더 나은 답을 계산해 낼 거야. 현상 세계를 끝까지 파헤칠 거야...
그때 만약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난관에 부딪히면, 예전처럼 널 찾아가서 문제를 이야기하고 진리를 구해도 될까...?
37
6은 델포이 신전의 둘기중에 새겨진 세 가지 잠언을 떠올린다. '너 자신을 알라', '매사에 지나치지 말라' 그리고, '함부로 맹세하면 화를 부른다'. 하지만 사람들의 의문에 답해주는 것은 수장의 의무였다.
...널 위한 문을 남겨둘게, 37.
너와 네 동료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6
37은 그제야 웃으며 6과 약속하기로 한다. 그녀는 눈물을 닦고 6에게 작별 인사를 보낸다.

뱃고동 소리가 울려오자 버틴은 제노가 데리러 왔다며 37에게 같이 가자고 말한다. 라플라스 연구원들도 그녀를 보고 싶어 한다고. 그녀의 어깨가 떨리자 버틴은 두려운 건지 묻는다. 37은 조금이라고 하면서도 익숙해지려고 노력하겠다 다짐하며 미소 짓는다.
...왜냐하면 우주는 어디서든 하나니까, 난 알아.
37

2.29. 우산과 매듭

우리는 모두 동굴 속의 죄수로
불빛에 비친 구석의 부스러기를 쥐고 있다.
하지만 결국 사람들은 두 손을 맞잡고 족쇄와 수갑을 흔들며
듣지 못하는 이는 보지 못하는 이를 이끌고,
말하지 못하는 이는 걷지 못하는 이를 부축하며 함께 모은다.
진짜 세계의 작은 조각을.
그로부터 6일 뒤, 버틴은 재단에서 메스머 주니어를 만난다. 그녀의 눈 밑엔 이날 버틴이 본 연구 센터의 모든 이가 그랬던 것처럼 다크서클이 짙게 깔려있었다. 버틴이 메스머 주니어에게 자기한테 줄 게 있는 건지 묻자 그녀는 그들이 전해달라 했다며 무언갈 건넨다.
파일:7장폭풍우우산2.png
이번 연구의 최종 결실이자 모두의 지혜가 합쳐진 결정체, '폭풍우' 면역 방어구야.
...너한테는 하등 쓸모없는 물건이지.
메스머 주니어
변환기, 조화 장치 그리고 주문 코어[35]로 구성된 1세대 '밸런스 우산'이라고 한다. 루시가 이미 알려진 162가지의 부작용에 맞춰 시뮬레이션하고 꽤 괜찮은 성과를 얻었다고. 스크롤 원본은 이미 학파에 돌려줬다고 한다. 버틴이 부작용이 그게 전부가 아니지 않냐 묻자 메스머 주니어도 그래서 이 우산이 아직 테스트 단계에 있다고 한다.

주문 코어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원래 큰 공헌을 한 두 발견자를 기념하기 위해 '37-루시 매듭'이라고 이름 붙였었으나, 당사자 모두가 반대했다고 한다. 버틴도 37이 이 매듭의 수학적 성질로 이름을 붙이고 싶어 했던 것을 기억했다. 그녀는 그걸 발견했을 뿐 발명한 게 아니라고 했었다.

루시도 명명권에 관심이 없던 탓에 연구의 세 번째 공헌자, 아들러 호프만에게 넘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그조차 처음부터 거절을 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날짜를 쓸 뻔했으나, 성으로 이름 붙여도 된다는 말을 듣고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호프만 매듭이요?
호프만 선생님의 성을 이름으로 붙인 건가요?
재단 직원이 마커스에게 소식을 알리며 우산을 전달하고 있었다. 직원은 그레타 호프만이 이걸 위해 치른 희생을 모두가 기억하길 바라는 게 이니그마의 뜻이라고 밝힌다. 이후 장기 휴가 신청을 해도 된다는 직원의 말에 마커스는 외출 신청을 할 거라고 말한다. 자신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지만 그걸 가지고 신세계로 가 볼 거라고.
...자허토르테는 여전히 그 맛 그대로일까요?
마커스
마커스가 우산을 소중하게 끌어안으며 깊게 허리 숙여 인사하고 밝은 곳을 향해 달려간다.

메스머 주니어는 우산대에 주입된 비대칭 핵종 R에 대해서도 실험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설명을 마친 그녀가 재활 센터로 돌아가려 하자 버틴이 우산이 너무 적은 것 같다고 말한다. 인간은 여행가방 안에서 '폭풍우'를 피하지 못해 그들에게 우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메스머 주니어는 말문이 막힌 표정으로 그 우산은 샘플일 뿐이라며 재단 로비에 신청서가 있으니 자유롭게 신청하라 덧붙인 후 바로 뒤돌아 가버린다. 버틴은 나지막하게 고맙다고 말한다.

홀로 남은 버틴은 우산을 펴보인다.
...37의 말이 맞았어.
아름다운 증명이네.
버틴


재단의 광장에서 레굴루스와 동료들이 버틴을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우산 수령이 간단했다는 버틴의 말을 끊고 레굴루스는 그보다 APPLe 2호가 더 중요하다며 설마 재단이 보상해주지 않는 거냐고 묻자 버틴은 "아."하고 만다. 레굴루스의 흥분을 식히려는 릴리아는 이제 막 표창식을 마치고 온 참이었다. '폭풍우' 속에서 중요한 서류를 전달한 공로라고.

훈장에 딱히 관심이 없던 릴리아는 그 훈장을 연금술에 써먹으라며 레굴루스에게 준다. 드루비스도 마찬가지로 릴리아와 표창식에서 받은 훈장을 그녀에게 준다. 드루비스가 버틴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며 아쉬워 하자 버틴이 마침 '폭풍우'와 전쟁으로 인해 망가져 버린 곳에 드루비스가 필요한 참이라고 말한다.

레굴루스와 APPLe이 이런식으로 훈장을 모아 배를 마련할 궁리를 하던 도중 소더비가 나타난다. 레굴루스는 그녀를 보자 마자 인사하며 손을 내민다. 그 의미를 알아챈 소더비는 자기한텐 훈장이 없지만 이게 있다며 보석 꾸러미를 그녀의 손에 놓는다. 감격한 레굴루스는 소더비를 그대로 끌어안는다.

마침내 소네트까지 이곳에 찾아오게 된다. 그녀는 레굴루스를 부르며 버틴이 제출해달라고 한 레굴루스의 부탁이 승인 됐다고 알린다. APPLe 2호가 다시 제작될 거라고.
마침 잘 왔어, 소네트.
...이제 우리에게 배 두 척이 생겼네.
버틴

2.30. 그리고 지금, 커튼콜

루시가 조수와 함께 자신의 사무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노크소리가 들려오자 루시는 들어오는 것을 허락한다. 이내 방문객이 다급하게 뛰어 들어온다.
진짜야, 루시?! 라플라스 연구 센터를 떠난다고?!!
이니그마
루시는 침착하게 긍정하며 청문회도 이미 끝났다고 한다. 이니그마는 이런 큰 공헌을 한 이에게 정직 처분이 내려졌단 것에 격노한다. 그가 루시가 없었다면 우산도 못 만들고, 부작용으로 모두 죽어나갔을 거라 하지만, 루시는 오히려 자신이 주문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한 탓에 통제 불가능한 사고가 일어났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선 그도 항의했었다.
하지만 이게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정신이야... 이성적인 자기 혁신 정신.
루시
루시는 이것이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단언한다. 8년 만에 '폭풍우'를 견딜 우산을 만들게 됐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우리의 방식은 일부 직원들에겐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을 거라고 말한다. 실제로 수많은 연구원이 항의서를 보냈다고 밝힌다. 그들은 루시가 냉혹하고 비인간적이며 무감정한 데다 생명을 짓밟고 반인도주의적이라고 비판했다.

게다가 루시의 마도학 능력이 통제가 가능한 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린다고 한다. 그게 아니여도 그녀는 기밀 유지 협약을 어기고 빈에 매듭을 알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분명 누군가는 그 덕에 살아남았다며 그거면 충분하다고.

하지만 이니그마는 여전히 화를 삭히지 못했다. 그조차도 포기했을 때, 반드시 인간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던 것도 루시였다. 그러나 루시는 그가 이렇게 흥분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와는 상관없는 데다 그와 울리히는 책임자 직책으로 러브콜을 받았을 거라고.
젠장 불공평하니까!
이니그마가 루시가 처분받은 유일한 이유는 그녀가 한 번만 희생할 수 있는 다른 사람과 다르기 때문이라며 그게 아니었다면 그들도 루시의 묘비 앞에서 훈장을 수여해야 했을 거라 울분을 토하자 루시는 그럼 이니그마도 책임자 자리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게 그에게 공평한 거라는 말과 함께. 이상하리만치 이성적이고 진부한 그녀의 말에 이니그마는 말을 내뱉질 못한다.

루시는 울리히도 훈장을 받았으나 별로 기뻐하진 않았고, 지금도 위원회 건물 앞에서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다들 의식 각성자의 특징을 잘 알다 보니 투쟁이 먹히진 않는다고. 그녀는 둘 중 하나는 책임자 자리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니그마가 겨우 분노를 억누르며 그녀의 말에 수긍한다.

그녀는 이니그마를 호프만 연구원이라 부르며 자신은 그 처분에 별로 개의치 않고, 권력을 바란 적도 없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의식이 각성된 순간부터, 인간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지금도 그렇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녀는 유형의 존재 대부분은 더 나은 삶을 희망한다는 공통된 방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루시도 이들과 쉽게 교류하기 위해 인간과 유사한 가면을 쓰고 말투를 고쳐나갔지만, 그녀에게 사람들은 "겉모습의 일치는 본질의 차이를 더 부각할 뿐이다."라고 자주 그랬다고 한다. 그렇지만 루시는 여전히 이럴 것이라고 말한다. 언제나 그랬듯 우리의 교차점은 진보에만 있을 뿐이라고.

Z괜찮은 요양 장소를 소개해 줬다며 휴가에 대한 상상에 빠진 루시를 이니그마는 멍하니 바라만 본다. 떠날 준비를 모두 마친 루시는 시몬에게 출발하자고 외치는데, 이니그마가 마지막으로 봐달라며 루시의 126종의 부작용 보고서를 건넨다. 34번째 부작용 부분에 조금 의문이 생겼다고. 루시는 누락된 부분이 있다고 인정하지만 시간이 없어 나중에 울리히에게 물어보라며 보고서를 돌려준다.

보고서를 돌려받지 않는 이니그마는 슬픈 목소리로 말한다.
실험으로 부작용이 남은 거지?
당신이 등록한 부작용은 126종이 아니라 162종이었어.
34번째 부작용 데이터는 명백하게 잘못 베껴 쓴 거고.

...당신이 목숨 걸고 작성한 리스트인데도 바로 알아보지 못하는군.
그는 루시가 자신을 '호프만 연구원'이라 부르는 것도 8년 전, 그녀가 막 이곳을 이어받았을 당시에만 그랬으며 그 이후엔 누나와 구분하기 위해 '아들러'로 부르게 됐다고 한다. 그는 그녀가 실험으로 인해 연구 능력이 손상될 지경에 이른 거냐며 떠나야 하는 진짜 이유가 이것인지 묻는다.
모두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 대가로 자신은 뒤로 물러서야 했던 거냐고!!
루시가 드물게 입을 열지 않는다. 시몬이 보고서를 받아들며 출발할 시간임을 알린다. 그녀는 그제야 이니그마를 '아들러 연구원'이라 부르며 자신의 데이터 오류를 바로잡아줘 고맙다고 말한다. 이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나자, 이니그마가 그녀의 뒤에 대고 소리친다.
내가 그 자리를 맡을게! 당신이 바라는 그 일, 내가 하겠다고! 진저리나는 그 위원들을 상대할게!!!
하지만 그건 건물 꼭대기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그 높은 분들을 위해서가 아니야!!
...바깥에서 이 건물을 우러러보는 사람들을 위해서지!
이니그마
그 말에도 루시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이곳에서 그녀의 소임은 끝났다.

그때, 울리히의 부름이 울려퍼지자 루시가 뒤를 돌아본다. 원형의 복도에 연구원, 사무원, 실험실 책임자, 경비병 등 연구 센터의 모든 직원들이 가득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울리히가 그녀를 향해 외친다.
루시 씨를 향해, 경례!
파일:7장루시경례.png
사람들이 각기 다른 언어로 작별 인사를 건네며 지난 24시간 동안 나온 수많은 서류들을 내던진다. '폭풍우' 연구를 위해 태어나고, 그 후 자신의 사명을 다한 종이들이었다. 그녀처럼.
사람들이 왜 나한테 서류를 던지는 거지, 시몬?
꺼지라는 뜻인가?
...아니요. 존경을 표하는 것 같습니다.
오, 그래?
표정 시스템을 장착하지 않은 루시는 그저 몸을 돌려야 했다.
가지, 시몬.
라플라스의 충전기가 그리울 거야.

...Z 씨가 추천한 곳에도 230볼트 충전구가 있겠지?
루시
루시가 라플라스에 남기는 마지막 말을 끝으로 챕터 7은 마무리된다.
====# 오솔길 - /lo/-그래서 이 새의 자리에 앉을 다음 사람은 누구? #====
0001 익명 No.92272174 ▶
루시가 이직했는데 그 자리에는 누가 와?

0002 익명 No.92272271 ▶〉〉92272411
울리히? 과학 연구소에서 두 번째로 믿을 수 있는 의식 각성자잖아.

0003 익명 No.92272305 ▶
루시 말고 다른 사람이겠지.

0004 익명 No.92272379 ▶
거길 누가 가? 전기 의자잖아.

0005 익명 No.92272411 ▶〉〉92273050
〉〉92272271
울리히가 제일 반대 했어. 위원회 건물 앞에서 단식 투쟁까지 하면서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자리에는 안 앉겠다던데. 존은 어때? 로직에도 밝고 프로젝트 관리도 잘 하잖아.

0006 익명 No.92272669 ▶
루시는 훌륭한 리더였어. 이번 사고도 그녀의 책임은 아니잖아. 가장 좋은 방법은 그녀를 돌아오게 하는 거야.

0007 익명 No.92273050 ▶
〉〉92272411
존이 누구야? 설마 십육진법으로 말하는 그 사람 얘기하는 거 아니지?

0008 익명 No.92273059 ▶〉〉92273342〉〉92273451
기계공학팀의 존을 추천해. 창의적이고 개척정신이 있어서 과학 연구소의 책임자로 적합할 거야.

0009 익명 No.92273342 ▶
〉〉92273059
지난주에 있던 정전은 기계공학팀의 존이 실험실의 모든 기계를 병렬로 연결해서 일어난 거잖아. 아직까지 휴직하고 정신 검사를 받고 있다던데.
나는 차라리 의료팀의 존을 고를래.

0010 익명 No.92273451 ▶〉〉92273773
〉〉92273059
의료팀의 존은 지난 달 신약 조제법 테스트 하다가 폭발을 일으켰다지? 다행히 의료진의 응급처치 덕분에 지금도 병상에서 아기같이 푹 자고 있다던데.

0011 익명 No.92273773 ▶〉〉92273887
〉〉92273451
그럼 이론물리학팀의 존은 어때? 그의 프로젝트는 안전하고 지금까지 사고를 친 적도 없었으니 앞으로도 없겠지. 일을 처리할 때 논리부터 따지니까 책임자로서 딱이야.

0012 익명 No.92273887 ▶
〉〉92273773
이론물리학팀의 존은 전근을 신청한 지 오래야. 지금 그 팀에는 파일을 옮기는 것을 잊은 아들러 밖에 없을 걸? 아들러는 확실히 현재 라플라스 최고의 이론물리학자긴 해.

0013 익명 No.92273982 ▶〉〉92274029
과학 연구소 전체를 뒤져도 책임자에 적합한 존이 없다니! 루시처럼 판단력, 실행력, 장기적인 과학 연구 안목을 갖추고 우리의 연구를 무조건 지지해 주면서 X의 괴상한 발명품이나 이선학의 새로운 이론에도 기꺼이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존은 없을까? 루시보다 좀 더 유머러스 하면 좋겠는데.

0014 익명 No.92274029 ▶〉〉92273987
〉〉92273982
루시보다 유머러스 한 존을 찾고만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울리히한테 부탁하자. 그 어떤 정치꾼인 존이나 동상 같은 존을 데려다 놓고, 루시에게 돌아오라고 하는 거야.

0015 익명 No.92273987 ▶
〉〉92274029
좋은 생각이야. 위원회 건물에서 봐.

0016 익명 No.92274024 ▶
카드 가지고 갈게. 그런데 왜 선택지에 존 밖에 없는지 알려줄 사람?

[1] 앞서 언급된 '어느 젊은 예술가'가 테오필일 가능성이 높은데, 테오필이 아르카나에게 한 '최초의 원' 이야기는 이것과 완전히 다르다. 테오필은 모두에게 내재된 신비한 힘에 원시인이 경외심을 갖게 되어 자신의 주변에 원을 그리게 된 것이 '최초의 원'이라고 말했었다.[해독팀인원] 오솔길 - 해독팀 인원 명단의 인원이다.[3] 음성 언어를 중음, 일음으로 설정하면 해당 언어로 말하지만, 특이하게도 영음, 한음으로 설정하면 독일어로 말하는 부분이다.[4] n × n 사각형의 배열을 가진 마방진과는 달리 여러개의 원형 고리의 배열을 가진 마법진이다.[5] Ford circles.[6] 메인 스토리상 6은 단 한번도 웃음을 보인 적이 없었다.[7] 6의 개인 스토리 '끝없는 밤의 행적'에서 밝혀진, 6이 숫자를 받기 전에 쓰던 그의 본명이다.[8] 이후 37이 '올림픽 경기장에서 제3의 입장처럼'이라는 비유를 하는데, 이는 챕터 5의 '평화의 멍에'에서 맨 처음으로 나오는 인용문과 관계가 있다.[9] 210은 이를 설명하면서 자신의 머리에 달린 포도를 손가락으로 터트리더니 "이렇게 되겠죠."라고 말한다.[10] 갑자기 안광이 사라지는데, 사뭇 섬뜩함을 자아낸다.[11] 인게임상으로도 '???'로 표기되며, 목소리는 피치를 한껏 낮춰서 텍스트가 없으면 알아 들을 수 없을 정도다.[해독팀인원] [해독팀인원] [14] 마치 불에 그슬린 커다란 진저브레드 인형 같다고 묘사된다.[해독팀인원] [16] 인게임상으로는 화면의 오브젝트를 조종하여 화면을 180도 뒤집어 방향을 바꾼다.[17] 인게임상으로는 화면의 오브젝트를 조종하여 버틴의 귀를 막아 소네트의 목소리가 안 들리게 만든다.[18] 인게임에서의 체력 시스템인 '활성'과 그것을 충전해주는 '탕약 캔디'의 연관성이 바로 이것이다.[19] 한국어 기준, 텍스트의 별표 처리가 된 부분은 음성도 삐 처리가 되어 그가 신랄하게 욕지거리를 했음을 알 수 있다.[20] 아후 자신의 뒤를 돌아본 연구원은 진흙 골렘과 공중에 떠있는 펜을 발견하고 비명을 지른다.[21] 뜬금없이 루시가 이니그마에게 폭음을 했다고 하는 것은 이니그마가 과음을 하고 굴러떨어져 죽을 뻔한 과거와 관련이 있다. 연속된 주문 부작용 실험으로 인해 루시의 기억이 어디까지 나빠졌는지 알 수 있는 부분.[22] 그리스어로 '두 점을 연결하면 선분이 형성된다'를 뜻한다.[23] 이들이 동굴에 들어간 시점인 '증명의 시작'의 시간은 12일 23시 경이고, 이 시점의 시간은 13일 5시 경이다.[24] 그리스어로 '오류를 수정하다'를 뜻한다.[25] 챕터 1에서 버틴이 물레를 돌리고 나타난 소네트가 버틴에게 썼냐고 물어봤던 그 주문이다.[26] 알프레드 에드워드 하우스먼(1859 ~ 1936). 영국의 시인이다.[27] 이때 888의 본래 종족이 '벤시'임이 드러난다.[28] 약 1422.34km 이다.[29] 미스 라디오가 '진동'을 말하고 싶은 거냐 묻자 울리히는 어떻게 레이디에게 '진동'이란 말을 할 수 있냐고(...) 호들갑을 떨다가 이내 그게 맞다고 한다.[30] 이때의 날짜는 1월 13일이고, 카카니아의 생일은 12월 7일이다. 이졸데의 상태가 어떤지를 보여주는 부분.[31] 영음과 한음 기준, 독일어로 말하는 부분이다.[32] 영문은 Sweet dreams, Ms. Dittarsdorf.[33] 한국어 기준 "저주는 피할 수 없습니다." 라고 번역이 된 부분인데, 이는 명백한 오역이다. 2.2 버전인 지금까지도 수정이 안 된 상태이다.[34] 한국어 가사의 경우, 하오플의 공식 번역본이며, 오역이 다소 포진되어있다.[35] 우산의 조명으로 보이는 부분을 자세히 보면 주문의 매듭인 것을 알 수 있다.